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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 8 장 | 요한복음 8장 최근 답변 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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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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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제공 : CGNT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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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요한복음 8 · 3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 35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 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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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2/19/2021

View: 705

[개역개정] 요한복음 8장 – 한국컴퓨터선교회

요한복음 8장 ; 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33절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 34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 35절 종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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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cm.co.kr

Date Published: 8/13/2021

View: 8234

요한복음 8 KLB – 간음한 여자가 용서받음 – Bible Gateway

간음한 여자가 용서받음 – 그러나 예수님은 감람산으로 가셨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예수님이 다시 성전으로 오시자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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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12/9/2022

View: 2869

2020/07/24(금) “요한복음 8:12-20” / 작성: 정한조

본문 요한복음 8:12-20 찬송가 84장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 예수, 빛이심을 선언하시다(12절) 오늘 본문 12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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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1/18/2021

View: 9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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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20171001 본문 / 요한복음 8:1~12 본문 요한복음 8장 1~2절에 보면,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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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ooyoungro.org

Date Published: 3/20/2021

View: 5462

[요한복음 8 – 문제와 해설]

요한복음 8 장. 1. 예수를 고소하려는 사람들이 무슨 건덕지라도 잡을 심산으로 간음한 여자를 잡아왔다. 율법에 의하면 이 여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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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khong.org

Date Published: 2/2/2022

View: 8349

요한복음 8장 1-11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제목 : 독백으로 살지 말고 대화로 살라본문 : 요한복음 8:1-11팬더믹 기간 중에 온 가족이 한 지붕 아래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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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ogeumnews.com

Date Published: 4/27/2021

View: 9689

요한복음 8장 (우리말성경) / 다니엘성경 – genie – 지니

요한복음 8장 (우리말성경) – 09:40. 1. 예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습니다. 2. 이른 아침에 예수께서 다시 성전으로 가시자 많은 백성들이 예수께 나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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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genie.co.kr

Date Published: 11/1/2022

View: 6537

요한복음 8장 1-11절 – 다음블로그

감사합니다. 오늘 이 새벽에도 이 작은 자에게 주님의 은혜를 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이 작은 자도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을 다라 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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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2/22/2022

View: 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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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장
요한복음 8장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요한 복음 8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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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2. 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m25a3LHyS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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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3 바리새인들이 가로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거하니 네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도다 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여도 내 증거가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앎이어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 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 19 이에 저희가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연보 궤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21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22 유대인들이 가로되 저가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저가 자결하려는가 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24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25 저희가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26 내가 너희를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 하시되 27 저희는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28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30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33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2020/07/24(금) “요한복음 8:12-20” / 작성: 정한조

본문 요한복음 8:12-20

찬송가 84장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

예수, 빛이심을 선언하시다(12절)

오늘 본문 12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요한복음 7장은 이스라엘의 3대 명절 중의 하나인 ‘초막절’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두 번째 해의 유월절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지 않으시고, 유월절에서 6개월 후에 있는 초막절에 올라가셨습니다.

초막절에는 중요한 행사가 2개가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예루살렘 성전에 모인 사람들이 실로암으로 가서 물을 길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사장들도 순금 항아리를 들고 동행하여, 실로암의 물을 담아 조심스럽게 들고 다시 긴 행렬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 수문(water gate)으로 들어와서, 제단에 부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를 지날 때 반석에서 생수가 터지게 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초막절이 지나면 보리를 파종해야 하는데, 그때 비를 내려주시기를 소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절기에 영원한 생명수이신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38)”라고 있는 힘을 다해 외치셨습니다.

초막절에 행한 또 하나의 행사는 ‘등놀이’였습니다.

초막절이 끝나갈 무렵에 예루살렘 성전 ‘여인의 뜰’에 4개의 금 촛대가 높이 세워 불을 밝혔다고 합니다. 그렇게 불을 켜면 전기가 없던 당시에 그 주변이 환해져서, 그 불빛 아래에서 여인들이 바느질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불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처음 세상을 창조하실 때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출애굽 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를 지날 때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삶에 빛이 되는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의 끝날을 ‘큰 구원의 날’로 여겼습니다. 그날도 다 끝나갈 때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이 “나는 세상의 빛이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 시키기 위해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장인의 양을 치던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그 부르심을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를 “제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라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합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표현하시기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입니다. 이 표현과 “나는 세상의 빛이다.”가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표현하면, “나는 세상의 빛으로 존재한다.”입니다.

12절을 다시 봉독하겠습니다.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이시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없는 세상은 어둠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만이 더이상 어두움에 다니지 않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르다’ 동사의 문자적인 뜻은 ‘같은 길에 서다’입니다. 당시 이 동사는 3가지의 경우에 사용하곤 했습니다. 군인이 자신의 지휘관을 따른 경우와 노예가 주인의 뒤를 따르는 경우 그리고 제자가 스승을 따를 때입니다. 만군의 주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지휘관이시고, 죄의 노예였던 우리를 영원히 해방시켜 주신 구원의 주인이시며, 그 어떤 스승과도 비길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의 스승이십니다.

그래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길을 걷지 않으면, 우리는 어둠의 질곡, 죄의 진창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삶은 사람이 보기에는 바르게 보이지만, 필경은 사망의 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었습니다. 그 열매는 먹음직하고 보암직했습니다. 그 열매를 먹기만 하면 그 누구보다도 지혜롭게 될 것만 같았고, 하나님과도 견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죽음이었습니다. 빛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각광(脚光)을 받고 사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빛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고, 그 결과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아들들과 이스라엘의 죽음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인류 역사에서 단 12명 밖에 없었던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3년이나 따랐지만, 빛을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두운 밤에 나가서 예수님을 은 30에 팔고, 스스로 죽음의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오직 빛이신 주님을 따를 때만 어두움은 어두움이 되지 못하고, 생명의 길을 걸으며, 올바른 분별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 바리새인들과 변론하시다(13-19절)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선언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바리새인의 반응을 13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13)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자기 선언, ‘나는 세상의 빛이다.’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즉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이 빛을 얻으리라”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갈릴리 나사렛 출신의 배운 것, 가진 것 없는 목수가 무슨 근거로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함부로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반응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14-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메시아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갈릴리 나사렛의 천한 목수의 아들이자 목수로 오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못 믿은 것이 아니라 안 믿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서 이미 ‘나사렛 예수는 결코 그리스도 일 수가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께서는 “나는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만, 너희는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판단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오감을 따라서 예수님을 판단했고, 모든 사람을 다 판단하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에 판단하실 필요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확인하게 되는 것은, 자신이 분명히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제대로 된 기억이 아닌 것으로 판가름 나는 것이 있고, 또 분명히 보고 들었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 중에 보고 들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주저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나이가 들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이 본래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틀릴 수 있고, 온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인생을 사는 하나의 지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17-18)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예수님 주변에는 제자들과 따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적자, 비난자, 비판자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길을 묵묵히 그리고 바르게 걸어가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하시므로 친히 주님의 증인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증인이 되어 주신다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으며, 꺼릴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옳다고 인정해 주시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예수님의 답변 이후에 사람들의 질문과 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을 19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19)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과 사람들은 “당신의 아버지가 도대체 어디에 계시오?”라고 비아냥거리며 물었습니다. 이 질문은 중의적입니다. 즉 “당신은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팔아 당신의 주장을 정당화하지 마시오.”의 의미이기도 하고, “당신의 아버지(목수 요셉)는 이미 죽지 않았소.”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질문의 의미가 무엇이든지 간에 바리새인들과 사람들은 영적으로 생명의 빛 속을 거닐고 있지 아니하고, 어두움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헌금함 앞에서 말씀하시다(20절)

그런데 오늘 본문은 약간 의아하게 보이는 단어, 하지만 눈여겨볼 단어가 있습니다.

(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 율법을 지킴 중에는 철저한 헌금행위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사를 드릴 때 온전한 제물을 드리려고 했을 뿐만이라, 십일조도 철저하게 드리려고 했습니다. 심지어 가족들이 먹기 위해서 마당에 있는 밭에 심은 채소와 조미료 역할을 하는 식물의 십일조까지 드리려고 했습니다.

당시 성전 중 여인의 뜰에는 나팔 모양의 헌금함(넓은 입구에서 내려갈수록 좁은 통로의 함)이 13개가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거기에 헌금을 넣을 때, 헌금이 들어가는 소리가 자신의 의를 더욱 굳게 세워준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헌금함 앞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이 바치는 헌금을 받으시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재물이 필요하시기 때문이시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과 자신이 벌어들인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고백하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드리는 사람이며, 헌금의 종류와 액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드리는 사람의 삶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진리와 생명에는 동떨어진 삶을 살면서도, 단지 헌금을 드리는 것으로만 스스로 의인이라고 자신을 과대포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서 “화 있을진저!”라고 말씀하시며 탄식하곤 하셨습니다.

구약의 미가 선지자는 사람이 드려야 할 본질적이고 올바른 헌금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 6:6-8)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선지자는 사람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진정한 헌금이 무엇인지 바르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목적 삼고 살아가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보다 더 바른 헌금은 없습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삶을 헌금으로 드리는 삶을 살아내면, 우리 자신이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게 여겨져도, 또 우리가 연약한 아이처럼 여겨질지라도 우리는 주님의 역사하심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빛이신 주님께서 우리 삶의 길을 밝혀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이 은총 속에서 사시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기에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빛이 되시는 주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율법을 지키고, 철저한 헌금을 드리는 것으로만 해도 빛 된 삶을 살 수 있다고 자신들을 과대포장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라옵나니,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드리는 바른 헌금과 같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우리의 삶이 이 땅에서 마지막 숨을 내어 쉴 때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세상의 빛이신 주님께서 우리의 매일매일을 밝혀 주시옵소서. 오늘도 세상의 빛이신 주님의 조명 아래에서 사는 한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주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다가 어두움에 다니지 않게 되었거나 주님을 외면하다가 어두움에 빠지게 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2. 바리새인들은 주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알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주님을 또는 주님의 말씀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알지 못했던 것이 있었습니까? 그것이 어떻게 교정되었습니까?

3. 당신이 주님께 드리고 있는, 또 드리고 싶은 삶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4. 세상의 빛이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며,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기 위하여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정한조)

요한복음 8장 1-11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제목 : 독백으로 살지 말고 대화로 살라

본문 : 요한복음 8:1-11

팬더믹 기간 중에 온 가족이 한 지붕 아래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처음엔 좋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스트레스가 생겨 납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 됩니다.

아무리 가족이라 할지라도 저마다 생각들이 다릅니다. 그러다 보니까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관점이 다릅니다. 자연히 갈등이 생기고 다툼의 소지는 여전합니다. 서로 조심한다고 하지만 깨지는 소리가 요란 하기만 합니다. 갈등과 다툼의 발단은 바로 말 한마디가 문제의 화근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사실 대화의 첫 걸음은 굉장히 중요 합니다.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하는 첫 마디는 대화가 물 흘러 가듯이 잘 진행되게 합니다. 하지만 배려나 이해하는 마음이 없이 무턱대고 화를 내고 신경질적인 첫마디는 혼자 떠드는 격이 될 뿐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그 중에는 사람들로부터 비난 받고 조롱받는 죄인들도 많았습니다. 만약 이들과 대화하는 것이 목격 되면 똑같이 죄인 취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죄인 취급 받는 이들은 이웃과 말을 해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대화의 대상으로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저 함부로 뿜어대는 독백에 무시 당하고 살뿐이다. 세상은 이들의 아픔과 상처를 이해하고 함께 아파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한 공동체 안에서 사는 것 조차 아주 싫어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을 바라보시는 관점은 다릅니다. 예수님이 상대방을 향한 대화의 첫걸음은 굉장히 온유 합니다. 예수님은 죄는 미워 하시지만 죄인을 향해서는 긍휼로 품어 주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간음하다 들킨 여인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질질 끌려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우리가 현장에서 간음하다 적발해서 붙잡아 왔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돌로 쳐 죽여야 하는데 ..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진정한 숄루션을 얻기 위해 질문한 게 아니다. 한 여인을 미끼로 꼬투리를 잡아 예수님을 고발하려는 사악함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사악한 심중을 아시고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 합니다.

그랬더니 나이 든 사람이나 젊은 사람들이나 할 것 없이 슬그머니 하나씩 쏜살같이 사라집니다.

저런 인간은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웅성 거리며 떠들석했던 순간은 지나 갑니다. 어느새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과 간음한 여인 둘만 남게 되었습니다 .

예수께서 여인에게 질문을 합니다. 너를 고발하려고 하던 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 여인이 대답을 합니다.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분명하게 집고 넘어 갑니다.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을 향한 용서의 마음은 풍성합니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 이전의 삶을 버리고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게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아름다운 대화를 보면서 몇 가지 교훈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대화의 첫 걸음이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말로 남을 판단하지 말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한꺼 번에 몰려와서 한 여인을 난도질을 합니다. 여럿이 몰려와서 한 사람에 대해서 온갖 비난과 정죄를 쏟아 붓는다. 간음한 여인을 붙잡아 왔을 당시에 이 여성에게 몸을 씻거나 몸을 가릴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여인을 앞에 세워 두고 온갖 모욕을 줍니다. 예수님에게 그녀의 수치를 드러내게 합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게 인간이 할 짓인가? 생각하게 합니다. 당시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예수를 고발할 건덕지를 얻기 위해서라면 한 여인의 수치와 모욕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위배가 되는 큰 죄를 범했다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현장 한 복판에 버젓이 세워두고 독백만 할 뿐이다. 독백이라면 상대방을 앞에 세워 두고 혼자 지껄이는 말투 입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여인을 앞에 세워 둔 채.. 예수께 질문 합니다.

이런 자는 모세의 율법에 의해 돌려 쳐 죽어야 한다. 공식대로 산다. 여기엔 은혜는 없다. 공식대로 간음한 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나 지배적이다. 이들에게서 긍휼의 냄세는 전무 하다. 그저 잔인할 뿐이다.

여인을 향해 마구 쏟아 붓는 말들을 모습을 보면서 욥의 친구들이 생각납니다.

욥이 까닭없이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때에 친구들이 우르르 찾아와 무슨 말을 하나요.. 하나님은 욥에게 까닭없는 고난을 주셨건만.. 친구들은 너가 죄를 범해서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열변을 토합니다.

친구들이 얼마나 욥의 가슴을 후벼 팠으면 욥이 뭐라고 말하나요..욥 19:2에 “ 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욥은 친구들을 향해 짓부수기 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얼마나 후벼 팠으면 이런 말을 할까? 계속해서 욥은 말합니다. 욥 19:22에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박해하느냐 내 살로도 부족하냐..욥이 친구들에게 한 말이 뭔가요? 제발 하나님 노릇좀 하지 말라.

예를 들어 친구 셋 이 와서 누가 심한 말을 하면, 상식적으로 좀 말리거나 해야 하는데 같이 덩달아 욥에게 칼로 상처난 곳을 후벼 파내는 겁니다.

오늘 우리들 주변도 보세요.우리도 하나님 노릇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누가 좀 잘못이라도 하면 우르르 몰려가서 온갖 말들로 더 힘들게 합니다 . 박살을 냅니다. 비단 한 아이가 잘못이라도 하면 부모는 한 가지 대답만 듣고 싶어 온갖 부질없는 말을 쏟아 붓습니다. 그 한 가지 답변을 얻기 위해 “왜 그랬어” 윽박 지르고 난리를 칩니다.

대화로 어떻게 되었는지 자초지종 물어 볼 인내는 없다. 그저 온갖 욕설과 비난의 말을 쏟아 부어야 직성이 풀리는 듯 합니다. 그럴수록 당사자는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갈 뿐이다.

오늘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과 문제를 풀어 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들었던 돌을 내려 놓을 수 있겠는가?

먼저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과 대화에서 보여준 ABC 를 보라.

우선 간음한 여인을 멀리하지 않는다. 결코 간음한 여인을 비난하지 않는다. 간음한 여인을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은 향해서 비난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죄인을 비난하러 오시지 않으시고 죄인 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음을 알 수 있다. 마 12:20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니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그리고 예수님은 여인을 향해 용서하시면서 새로운 가르침을 부여해 주십니다 .요 8:11에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대화의 abc는 오늘 우리들이 배워야 할 지침이기도 합니다.

오늘 내가 익숙한 말투의 습관을 보라. 상대방을 향한 대화를 어떻게 시작하고 있나요? 나는 대화로 시작한다고 하지만 내 안에 바리새인적인 생각이 가득차 있지는 않는지! 어느새 내 자신은 상대방을 더 코너로 몰아 붙이는 독백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말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독백의 말들을 한번 나열해 보자.

“너 이리와 바”.. 벌써부터 우리의 시작은 강압적이다.

어느 누구에나 “야 임마 넌 맨날 그 모양 그 꼴이냐”.. “내가 그럴줄 알았지”.. “넌 잘하는 게 뭐야” 상대방을 향해 인격적으로 모드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 상대방을 버젓이 세워 놓고 독백만 한다.

그렇게 당당했던 바리새인들..

예수님이 그들을 향해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 한마디에 그렇게 당당했던 자들이 어른 들로부터 얼른 그 자리를 피합니다. 어른들.. 오랫동안 자신들의 죄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다. 어른들이 쏜살같이 사라져 버린다.그 순간 자신이 돌을 들고 있었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 거린다. 겉은 노련미 넘치게 보이지만 자신들이 들고 있었던 돌을 순간 남몰래 감추거나 누가 볼까봐 서둘러 버린다.

여기 양심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면 양심이 워킹한다. 말씀이 내 안에 없을때는 양심이고 뭐고 없다. 그저 자기 욕망과 탐욕에 허덕일뿐이다. 그런데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니까.. 양심이 나를 못 견디게 한다.

왜 이들은 그렇게 당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도망쳐 버렸을까?

우선 먼저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하신 말씀을 토대로 해서 답을 얻어 보자.

표리 부동한 사람들.. 이들을 향해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정죄하는 자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하십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며 사는 사람들을 향해 지칭하는 용어 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며 삽니다. 소위 내로남불 이라는 말이 있지요. 자신을 위해서는 아주 좋게 해석 합니다 .하지만 남을 향해서는 너무나 날카로운 칼을 들이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라는 또 다른 의미는 하나님의 자녀와 반대되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 온갖 일에 다 참견하고 남을 정죄합니다.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하신 말씀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자기 생각과 조금만 달라도 무시 하며 깔보는 사람, 늘 부정적인 말, 비아냥 거리는 말, 남의 의견을 짓밟아 버리기를 밥먹듯이 하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 하실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겉으로 너무 의로운 척 했습니다. 자신들은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고 의를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자부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은 그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평가 하고 계십니다 .이들은 얼마나 챙피했을까요? 스스로 의로운척 하고 말로 자신의 존재감은 드러내려고 했던 이들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들을 향해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독사의 자식들아 ..

둘째, 아무리 돌에 맞아 죽을 정도의 죄를 지은자라 할지라도 인격적으로 말문을 열라

11절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다독인다. 질타로 시작하지 않는다. 다독이는 이유는 하나다. 넌 내게 있어서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돌에 맞아 죽을 정도로 죄 짓고 산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고 합니다.

이 말 한마디는 닫혀 있던 여인의 마음을 열게 하는 신호탄이 됩니다 .대화는 닫혀진 마음을 열게 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독백하며 간음한 여인을 무턱대고 정죄합니다. 그럴수록 마음의 빗장을 더더욱 단단하게 채울 뿐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향해 뭐라고 말씀 하시나요?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 대화는 분노와 억울함을 푸는 열쇠가 됩니다.

나는 정죄하고 돌로 치려고 하는데 주님은 정죄하지 않고 돌을 내려 놓으라고 합니다 .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들이 예수님과 때론 부닥칩니다. 예수님을 향해 왜 저런 인간을 가만히 나 두시는지 의아해 한다.

나는 너무 성급한 말투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지.. 무턱대고 야단과 질타 보다는 다독이면서 대화의 첫걸음을 열면 어떨까? 소리 친다고 아이의 마음이 열리는 게 아니다. 난리 친다고 배우자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난리치고 화를 낸다고 대화를 무르익게 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에게 화병만 쌓여갈 뿐이다.

고개를 숙였던 여인.. 그런데 이제는 얼굴을 든다 그리고 예수님께 주여 라고 답을 한다.

우리는 한 가지 틀에 너무 매여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공의와 법으로만 처리하지 않으신다. 사랑과 은혜로 대하신다. 빌 4;5에 보면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여인은 입을 연다.

여인이 생각하는 예수님.여인은 이 분은 날 존중해 주는 구나..나 같은 쓰레기같은 인간조차도 인격적으로 대해 주시는 구나..하는 느낌을 받으니까 마음의 문을 활짝엽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태도는 많은 아픔과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친구로 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면에서 죄인들의 친구가 되었을까요?죄인들이 예수님께 이끌렸다는 점입니다 .죄는 미워 하지만 죄인을 향한 끌어 안음입니다. 그들의 죄가 사람들의 눈에는 돌에 맞아 죽을 정도로 심각한 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엄청난 죄를 용서 하십니다 .

주님은 죄인들에게 다가 갑니다. 무턱대고 야단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의 아픈 심정, 그들이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다가갑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왜 예수님은 죄인들의 마음을 열수 있었을까? 아무리 내가 죄인들의 친구로 왔다고 말을 하지만 쉽게 통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분명 죄인들의 마음을 열 수 있었던 비결은 먼저 이해다. 상대방을 향한 배려와 이해가 앞설 때에 상대방의 닫혀있던 마음이 조금씩 열린다.

우리는 이렇게 살지 못했다. 우리 안에 있는 생각들이 너무 강하다. 틀에 박힌 고정관념들, 상대방을 향한 배려나 이해심이 너무 낮다. 그런 자신을 인지하지 못한 채 상대방만 나무란다. 그러다 보면 독백만 할 뿐, 대화는 없다.

독백은 자기 앞에 인격적으로 대해야 할 대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얘기만 계속할 뿐이다.

조금이라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냅니다.

상대방이 왜 이렇게 했는지 에 대해 들으려는 태도는 안중에 없다 . 내 생각에 어긋난 것, 내 뜻대로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한 분풀이만 할 뿐이다. 상대방이 그런 상황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처지를 이해하려는 배려가 없다.

관계 속에서 일방 통행만 주장하는 독백에 머문다면 관계는 더욱더 악화될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만 쌓여갈 것입니다. 아픈 상처를 더 곪게 할 뿐입니다 .

예수님을 통해서 보자.

우리는 이런 수준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 보자

외형적인 것만 보다 보면 더 중요한 내면을 무시하기 쉽다. 죄에 눈이 멀면 죄인을 함부로 대하기가 쉽다. 스스로 의로운 척 하면 공의만 강조할 뿐 은혜의 깊은 맛을 맛보기 어렵다. 좀더 자신에 대해서 솔직해 지자. 난 공의만 알았지 은혜는 몰랐음을 인정해 보라.

죄만 보았지 죄인을 향한 이해나 배려가 턱 없이 부족했음을 인정해 보라.

무턱대고 소리 친다고 소리 지른다고 상대방이 입을 열지 않는다. 오히려 그럴수록 입을 닫을 뿐이다. 마음의 문은 더 깊게 닫을 뿐이다.

마지막, 독백으로 살지 말고 대화로 관계를 만들어 가라

독백은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닫게 한다. 하지만 대화는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합니다.

자신의 대화 습관은 어떠했나.. 어느새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버럭남 버력녀..라고 씁쓸한 별명이 붙여지지는 않았는지요..조금만 참고 먼저 들어 주면 되는데. 그걸 참지 못하고 먼저 화부터 낸다. 남들은 이미 귀를 닫고 마음을 닫고 있다. 혼자 독백하며 온갖 주워 담지 못할 말들을 마구 쏟아 부었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누구나 죄가 죄인보다 앞서면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처럼 툭하면 자기 의를 내세우면서 돌부터 먼저 든다. 돌을 든 채 남을 비판 평가해 버린다.

예수님처럼 대화를 시작해요.

수치와 모멸감에 지쳐 있던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엽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너를 정죄하던 사람들이 어디에 있느냐.. 그 동안 한 마디의 말도 없었던 여인이다.

그런데 예수의 질문 앞에 여인은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님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말은 너무나 짠 합니다 .

여인은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뭘 느꼈을까요?이 사람이 날 존중해 주는 구나 .

예수님은 죄는 미워 하십니다. 하지만 죄인을 향한 마음은 너무나 부드럽기만 합니다.

물론 지금 당장 모든 게 바꿔 질 수는 없다. 여인은 죄사함받고 새로운 변화를 위해 과감하게 불편함을 받아 들인다.

예수님의 대화는 결코 독백이 아니라 대화였다.

사람을 앞에 두고 혼자 경고 하지 않으신다. 혼자 일인 다역을 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분처럼 온유하셨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의 죄를 묵과 하시지 않으셨다.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진정한 격려로 그녀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

세상의 떡으로 기준 삼고 살지 말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가져야 할 시선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지금 살아야 한다.

요즘 메타버스라는 용어를 자주 쓴다. 메타는 초월이란 뜻이고, 버스는 세계(유니버설)란 의미로 즉 초월 세계라는 의미다. 메타 버스의 특징 중에 하나가 순간성이다. 순간을 놓치면 지금 얻을 수 있는 유익을 잃어버리기 쉽다. 순간성을 맛보는 맛.. 세상의 떡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그 순간에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맛..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 맛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 순간에 얻는 기쁨, 예수의 삶을 맛보는 참 맛을 느끼며 살아가야 할 때다.

이것이 오늘 대화는 끊어 지고 독백으로 사는 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다.

지금 나의 삶의 처지가 어떠한가?

주님은 한 여인을 버젓이 세워 놓고 독백하는 바리새인들은 향해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다.주님은 오늘도 부단히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내면의 바리새인/서기관을 자각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 이중적이고 껍데기가 벗겨지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독백에 머물 뿐이지 진정한 대화를 만들어 갈 수는 없다.

누군가의 대화에서 내 말을 줄여야 할때를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올바른 말을 선택하도록 하나님께 영감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 모습 속에서 간음하며 살아온 자신의 모습이었다면 이들을 향해 주시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앞에 새로운 삶의 첫걸음을 내딛자.

너무나 익숙한 독백을 멀리하고 대화를 시작하라.

엡 4:29을 보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사람을 앞에두고 혼자 화내고 열내고 분노하고 열받아 했던 모습들..독백의 돌을 내려 놓으라

독백은 상대방을 향해 더러운 말만 무성하게 할 겁니다. 더러운 말로 인해 상대방을 더 수치스럽게 만들 것입니다 .더 비참하게 만들 것입니다. 자신감을 상실하게 만들 것입니다.

대화는 덕을 세우는 말을 할 것입니다. 경청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해로 인한 끄덕임과 안전성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예수님은 독백으로 살지 않으시고 대화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깐부로 사셨다.

예수님의 그 어떤 죄인이라 할지라도 대화로 친구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깐부다.

오늘 우리도 내 안에 독백은 사라지고 대화로 어떤 사람일지라도 품고 안을 수 있는 깐부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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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장 (우리말성경) – 09:40 1. 예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습니다. 2. 이른 아침에 예수께서 다시 성전으로 가시자 많은 백성들이 예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께서 앉아서 그들을 가르치실 때 3.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을 하다가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사람들 앞에 세우고 4. 예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들은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우리에게 명령했습니다.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신22:22-24 6. 그들이 이런 질문을 한 것은 예수를 시험해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는 속셈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구부린 채 앉아서 손가락으로 바닥에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7. 그들이 계속 질문을 퍼붓자 예수께서 일어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 8. 그러고는 다시 몸을 굽혀 바닥에 무엇인가를 쓰셨습니다. 9.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제일 나이든 사람부터 하나 둘씩 슬그머니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예수와 거기 홀로 서 있던 여인만 남게 됐습니다. 10. 예수께서 일어나 여인에게 물으셨습니다. “여인아, 그들은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느냐?” 11. 여인이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예수는 세상의 빛이심] 12.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13.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당신이 당신 자신에 대해 증거하니 당신의 증거는 진실하지 못하오.” 14.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비록 내가 나를 증거한다 해도 내 증거는 참되다.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고 또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한다. 15. 너희는 사람의 기준대로 판단하지만 나는 어느 누구도 판단하지 않는다. 16. 그러나 내가 판단한다 해도 내가 내린 판단은 옳다. 그것은 내가 혼자가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이 증거하면 참되다’고 기록돼 있다. 신17:6;신19:15 18. 내가 나 자신을 위한 증인이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 또한 나를 증거하신다.” 19. 그러자 그들이 예수께 물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어디 있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도 모르고 내 아버지도 모른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20. 이것은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헌금 궤 앞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직 예수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를 잡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진리와 자유] 21.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떠나갈 것이고 너희는 나를 찾다가 너희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22. 이에 유대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저 사람이 자살하려나? 그래서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인가?” 23.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아래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24. 그래서 나는 너희가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너희가 ‘내가 곧 그’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너희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25. 그들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26. 내가 너희에 대해 말할 것과 판단할 것이 많이 있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며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대로 세상에 말하는 것이다.” 27. 그들은 예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시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28.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인자가 높이 들려 올려질 때에야 ‘내가 곧 그’임을 알게 되고 또 내가 내 뜻대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께서 내게 가르쳐 주신 대로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9. 나를 보내신 그분이 나와 함께하신다. 그분이 나를 홀로 두지 않으시는 것은 내가 항상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30. 예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31. 예수께서 자기를 믿게 된 유대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너희가 내 말대로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내 제자들이다. 32. 그리고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33. 그들이 예수께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어느 누구의 종이 된 적도 없는데 당신은 어째서 우리가 자유롭게 된다고 말합니까?” 34.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사람마다 죄의 종이다. 35. 종은 집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수 없지만 아들은 영원히 머물러 있다.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참으로 자유롭게 될 것이다. 37.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을 안다. 그런데 너희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38. 나는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의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고 있다.” [아브라함 자손과 예수] 39.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만약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이 한 일을 너희도 했을 것이다. 40. 그러나 지금 너희는, 너희에게 하나님께 진리를 듣고 말해 준 사람인 나를 죽이려고 한다. 아브라함은 이런 일을 하지 않았다. 41. 너희는 너희의 아버지가 했던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우리는 음란한 데서 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4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할 것이다. 내가 하나님에게서 와서 지금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뜻으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다. 43. 어째서 너희는 내가 말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느냐? 그것은 너희가 내 말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44. 너희는 너희 아버지인 마귀에게 속해 있고 너희는 너희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하고자 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다. 또 그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에 진리 안에 서지 못한다. 그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자기 본성을 드러낸다.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45. 그러나 내가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너희는 나를 믿지 않는다. 46. 너희 가운데 누가 내게 죄가 있다고 증명할 수 있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 어째서 나를 믿지 못하느냐? 47.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너희가 듣지 않는 까닭은 너희가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8. 유대 사람들이 예수께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하며 귀신들렸다고 하는데 그 말이 옳지 않소?” 49.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다. 다만 나는 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데 너희는 나를 멸시하는구나. 50.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를 위해 영광을 구하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심판자시다. 5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내 말을 지키는 사람은 결코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52. 이 말씀에 유대 사람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당신이 귀신 들렸다는 것을 알았소. 아브라함도 죽었고 예언자들도 죽었는데 당신은 ‘누구든지 내 말을 지키는 사람은 결코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니 53. 당신이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다는 말이오? 아브라함도 죽었고 예언자들도 죽었소. 당신은 대체 스스로 누구라고 생각하오?” 54.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만일 내가 나를 영광되게 한다면 내 영광은 헛된 것이다.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바로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내 아버지시다. 55.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만약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나도 너희와 같이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나는 분명 아버지를 알고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내 날을 보리라고 기대하며 기뻐하다가 마침내 보고 기뻐했다.” 57. 유대 사람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당신은 아직 나이가 50세도 안 됐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단 말이오?” 58.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59. 그러자 유대 사람들이 돌을 들어 예수께 던지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피해 성전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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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015(수)

8장

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3.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19.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21.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22. 유대인들이 이르되 그가 말하기를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그가 자결하려는가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2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26.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

27. 그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28.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30.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37.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39.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40.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1.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48.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4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50.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52.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53.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5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55.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7.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9.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묵상 1~11절:

오늘 본문은 7장 마지막절인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7:53)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8:1)”로 이어진 다음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로 연결된다.

그 얘기는 7장의 초막절 명절 중에 예루살렘에서의 가르침과 논쟁이 있은 이후에 일단 초막절 명절은 끝이 나고 무리들은 다 각각 집으로 갔으며, 예수님은 감람산으로 가신 것으로 일단락 되어진다.

무리들은 각기 자기 집으로 돌아 갔지만 예수님은 감람산으로 가신 것은 어느 주석에 보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초청하신 자가 아무도 없어서 어느 집으론가 가시지 못하고 산으로 가셨다고 하는데 이에는 동의하기가 좀 어렵고 아마도 기도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7장 53절부터 8장 11절까지는 [ ]로 묶여져 있는데, 추측 하건대 어떤 사본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더불어, 많은 성서학자들 중에서 과연 이 부분이 이 본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옳은가 하는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 ]로 묶여 있었던 것 같고, 대부분의 이 본문이 이곳에 원래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 같다.

2절에 ‘아침에’라고 기록된 아침이 바로 다음날 아침인지 몇 일이 지난 다음의 아침인지는 정확하지 않은 듯하다. 영어 본에는 ‘이른 아침에Early in the morning’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아직도 예루살렘에 머무르고 계셨으며, 성전으로 가셔서 백성들을 가르치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계략을 꾸미는 장면이 나온다.

성도들은 영적인 싸움은 늘 계속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에게도 이토록 쉼 없이 지속적으로 영적 공격이 계속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우리는 늘 영적인 전쟁을 치뤄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느끼기에 영적인 전쟁을 느끼지 못한다면 자신의 영적 상태를 참으로 깊이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탄이 건드리지 않는 상태라는 것은 어쩌면 사탄이 건드릴 필요가 없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내가 주님께로 나아가려고 하면 할수록 사탄은 그에 준하는 공격을 가해 옴을 깨우쳐야 한다.

우리 주님께도 이런 일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탄은 주님께로 나아가려는 모든 이들에게 줄기차게,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을 한다는 것을 깊이 새기고 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본문은 유명한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 사건이다.

사탄의 도구로 쓰여지고 있으면서 주님을 대적하는 도구로 활약하고 있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이 여인을 현장에서 붙잡아 와서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당연히 돌로 쳐 죽이도록 되어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겠소?” 하고 도전하는 것이다.

이 의도에는 두 가지 함정을 가지고 있다. 먼저 모세의 율법대로 돌로 치라 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법칙에 스스로 모순되는 것으로 얼마든지 예수님을 거짓 스승으로 모함할 수 있고, 만약 돌로 치지 말고 용서하라고 하면 모세의 율법을 정면으로 어기는 자가 되기에 또 그 죄를 물어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간교함을 다 아시고 바로 그들의 도전에 답하시지 않으시고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주 중요한 장면이다. 주님께서 땅에 뭐라고 쓰셨는지는 기록하지 않았으니 우리의 관심사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미리 알려 준다.

중요한 점은 주님께서 그렇게 하시니까 그 무리들이 잠시 잠잠해졌다는 점이다. 7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여기서 주님은 우리들에게 영적 전쟁에 임하는 중요한 자세를 알려 주신 것이다.

영적으로 어떤 도전이 있을 때, 특히나 사람들, 본문처럼 그들의 뜻을 이루기 위한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고 의기양양해 하는 무리들 앞에서는 더욱 더 그들의 흐름에 말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운동 경기에서 자신의 팀의 선수들을 좀 안정시킬 필요가 있을 때 감독들은 타임아웃을 신청한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잠시 숨을 고를 수 잇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그런데 그 기회를 감독은 잘 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경기의 승패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영적 전쟁이 임하는 우리 모두에게 바로 그 지혜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상대가 격한 반응을 보일 때 그들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영적 전쟁의 주도권을 사탄이 쥐도록 허락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영적 전쟁의 승리자는 우리 주님이시고 따라서 영적 전쟁을 주도하시는 이도 우리 주님 이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페이스 조절, 또는 분위기 전환은 참으로 중요한 영적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요소임을 잊어서는 정말 안 된다.

바로 그것이 기도요, 지혜인 것이다.

오늘날의 성도들은 이 일에 지혜를 구해야 한다.

주님은 그 긴박한 장면에서 바로 이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신 것이다. 사탄의 무리들에게 그들의 분위기를 유지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잠잠해졌을 때에 주님은 이제 주님의 방법을 말씀하신다.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이것이 주님의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다.

우리들은 흔히들 이 때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한 듯 하다.

아니 나의 경우 정말 할 말이 없다.

이제는 좀 더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주님의 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기도와 주님과의 동행만이 이 오류들을 줄일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무기이다.

그러시고 말씀하신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성경은 다시 무리들에게 뭔가를 전달하려는 시도를 하시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이는 참으로 매우 중요한 장면이다.

만약 주님께서 그들을 바라보고 계셨더라면 그들은 다시 흥분했을 수도 있다. 쉽게 말하면 그들의 양심이 그들 스스로를 비춰볼 여건을 조성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심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의 가라 앉혀진 흥분을 계속 유지하시기 위해 다시 땅에 뭔가를 쓰셨던 것이다.

어떤 단어를 쓰셨는지, 혹은 문장을 쓰셨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내용이 그 상황보다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저자는 이를 쓰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러자 그 의기양양해 하던, 이제야 말로 예수를 올무에 가둘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하고 예수를 잡기 위해 예수께 다가왔던 그들이 신기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성령님의 역사이다.

영적 전쟁에서 참으로 피할 길이 없어 보이고, 도저히 승리할 확률이 없어 보이는 절박한 순간에도 우리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분위기를 전화시킬 수 있는 비장의 무기 즉 기도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도해야 한다.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기도해야 한다.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성령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반드시 승리를 안겨주신다.

이제 사탄의 무리들은 모두 떠났다.

그리고 그 절박하고 치열했던 영적 전쟁의 무대에는 오직 그 죄인인 여인과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만이 남아 있다.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주님은 이 여인에게 묻는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이 여인은 죽음 직전에서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그 여인의 답은 “주여 없나이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 답을 할 때 이 여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잠시 글 쓰기를 멈추고 그 여인의 심정을 헤아려 보려 했다. 그러다가 멈췄다. 어찌 그 심정을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얼마나 많은 복잡한 생각들이 오고 갔을까?

아직 주님은 최후의 말씀을 남기셨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죄가 발각 되었는데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죄로부터 사면을 받았다는 의미가 아닌가? 죽을 죄를 졌는데 정죄함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생명을 얻었다는 의미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주님은 그 여인으로 인하여 참으로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주님의 모든 사역에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을 맞이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어떠한 책망도, 정죄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여인에게 말씀하신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하다.

그 여인이 죽어야 할 그 순간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그 여인의 행실이 죄가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 그 여인은 범죄한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정죄함을 받지 않고 그 죄에서 사함을 받아 자유를 얻은 것이다. 새 생명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명하신다.

‘가서’라는 단어는 이 여인에게는 명백한 자유와 새 생명의 단어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새 생명을 얻어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그렇게 얻은 새 생명으로 이제는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이다.

예수를 믿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자가 주님의 은혜로 새 생명을 얻은 자들이 크리스천들이다. 아니 나다.

그런 크리스천들에게, 아니 나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 새벽에도 이 작은 자에게 주님의 은혜를 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이 작은 자도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을 다라 다시는 범죄하지 않기를 원하나이다.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시사 다시는 주님 앞에서 범죄하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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