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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의 기도 | 한나의 노래 – 마커스워십 (Official) | Hannah’S Song 92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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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ERS WORSHIP
마커스 목요예배 실황
– 마커스워십2016 수록곡
“ 한나의 노래。Hannah’s song。 “
( 작사/작곡 임선호 )

어제와 다른 괴롬과 슬픔
깊은 탄식에 기도할 수 없고
The grief and sadness that differ from yesterday
make me unable to pray.
처연한 내 안의 속사람은
주를 보지만 말하지 못하네
Though my sorrowful inner being sees the Lord,
I can not speak anything.
나를 악한 자로 보지 않고
나의 원통함 그 마음을 아시니
The Lord never sees me bad,
He knows my bitterness and my heart.
오직 나의 주 내 주의 사랑이
나의 속사람을 고쳐 주시네
Only my Lord, only His love
heals my inner being.
*
주의 사랑이 목마름 채우고
주의 위로가 눈물을 닦으니
His love satisfies my thirst
His comfort wipes out my tears
주님의 은혜가 필요한 이 땅에서
이곳에서 주와 함께 노래하리라
In this land where the grace of the Lord is needed
I’ll sing with the Lord here.

Copyright © 2016 Markers Worship.
Administered by Kwangsoo Media. All rights reserved. Used by permission.

∙ Worship Leader : 심종호
∙ Inst.
– E.Guitar : 임선호 / B.Guitar : 곽노연 / Drums : 김현성
– Piano : 정지영 / Synthesizer : 박찬민 이민영
∙ Vocal
– Sop : 김진영 박은선 / Alto : 박은미 이예지

∙ Video Editor : 엄항용
∙ English Translator : 김현성
∙ Editor in Chief : 이영
─────────────────────
목요예배 안내 / 초청사역 문의 / 재정후원 신청
마커스워십。 www.markersworshi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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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 KLB – 한나의 기도

2 한나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 기쁨으로 채우셨습니다. … 뽐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나는 정말 기쁩니다. … 아무도 없습니다. … 보호자도 없습니다. … “교만한 자들아,

+ 여기에 더 보기

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10/11/2022

View: 5285

[영적 거장들의 기도-1] 한나의 기도 – 기독교신문

한나는 모든 만물들은 여호와의 것이며 모든 것들을 세우신 이도 여호와 하나님이시기에 가난한 자를 일으키시고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려 귀족들과 …

+ 여기에 보기

Source: www.gdknews.kr

Date Published: 5/17/2021

View: 8698

한나의 기도 (사무엘상 1: 9~18) – 다음블로그

영혼에 담아둘 수 없고, 담아둬서도 안 되는 고통과 상처를 하나님께 쏟아냈습니다. 우리 몸에 들어와서는 안 되는 이물질이 들어오면 토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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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5/26/2022

View: 9605

한나의 기도 – 오목천교회

응답을 받는 기도는 초점이 오직 하나님께,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에 있어야 한다. 한나의 기도는 성소에서 들려주는 축복의 말을 신뢰하므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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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omch.kr

Date Published: 9/5/2021

View: 6602

한나의 기도 – Church of Jesus Christ

“한나의 기도”, 『리아호나』 , 2022년 6월호. 구약전서 그림. 한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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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5/23/2021

View: 2175

한나의 아픔 그리고 기도 (삼상 1:10-11) – 썹목사

한나의 아픔 그리고 기도 (삼상 1:10-11) 사무엘서는 선지자 사무엘이 기록한 역사서이다. 사무엘서에는 이스라엘의 정치 체제의 전환과 발달 과정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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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sub2.tistory.com

Date Published: 11/11/2021

View: 8899

설교, 한나의 기도(사무엘상 1:1-20) – 네이버 블로그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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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weblog.naver.com

Date Published: 6/5/2021

View: 3171

두란노

사무엘은 한나의 기도로 태어났고, 한나의 기도 가운데 성장했으며, 한나의 기도와 헌신으로 드려져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라났다. 사무엘의 삶과 인격, 그리고 그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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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uranno.com

Date Published: 8/4/2022

View: 5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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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노래 - 마커스워십 (Official) | Hannah's song
한나의 노래 – 마커스워십 (Official) | Hannah’s tune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한나 의 기도

  • Author: MARKERS W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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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6. 11. 30.
  • Video Url hyperlink: https://www.youtube.com/watch?v=z08kH0Yav6M

[영적 거장들의 기도-1] 한나의 기도

1. 서론: 한나의 생애와 신학

성경에서 하나님이 어떤 한 사람에 대하여 특별한 뜻을 갖고 계실 때에 그 선택된 한 사람의 탄생 이전에 많은 예비하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특별한 뜻에 의해 태어나는 인물은 대부분 그 인물의 잉태부터 출산 때까지 고통스런 상황이 펼쳐지거나 심상치 않은 일을 겪게 된다. 자식이 없음으로 인해 멸시 받거나 낙담하다가 기도함으로 자식을 얻게 되는 내용은 성서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자식이 없던 상황에서 기도했던 대표적인 인물들로는 구약성서에 ‘한나’와 ‘사라’가 있고, 신약성서에는 ‘엘리사벳’이 있다. 이들은 모두 자식을 잉태하지 못해 고통을 겪다가 오랜 기간 인내하며 기도한 결과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각각 ‘사무엘’, ‘이삭’, ‘세례요한’과 같은 특별한 자식을 얻었다.

한나(Hannah)는 엘가나(Elkanah)의 부인이었다. 엘가나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사는 에브라임 사람이었다. 엘가나에게 부인이 두 명이 있었는데, 그 중 첫째 부인이 한나였고, 브닌나는 둘째 부인이었을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남자들이 둘 혹은 그 이상의 아내들을 거느렸다는 증거들이 있다. 다윗과 솔로몬 같은 왕들의 경우, 그 관행은 부분적으로 정치적 요인들에 의한 것이었다고 설명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 두 번째 부인을 얻는 것은 첫 번째 부인의 불임에서 기인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신 21:15-17은 두 사람 모두 자녀를 낳았을 때의 상속 관행들을 법제화 한다). 하나님께서 일부다처제를 허용하셨을까? 아브라함, 야곱, 기드온, 다윗, 솔로몬 등이 모두 중혼을 했고, 모세의 율법도 일부다처제를 묵인한 것으로 여길 수도 있는 부분이 있다. 즉 신명기 21장 15-17절의 본문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한 명의 남편이 여러 명의 부인과 결혼하는 풍습을 허용하신 걸로 오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원 뜻은 일부일처제이며, 신약 성경에서도 이 점에 관해 더욱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딤전 3:12). 중혼을 묵인한 것과 적극적으로 그것이 옳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즉 일부일처제는 창조의 원리(창세기 2:24)인 반면에 중혼은 명백한 죄악으로서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며 결코 정당한 일이 아니다. 사랑하는 남편에게 자신 이외에 또 다른 아내가 있는 여자의 일생은 어떤 삶이었을까? 가난보다 힘들고 척박한 삶이 아닐까? 한나의 삶이 바로 그런 고통스런 삶이었다. 세상 일이 남편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 다 해결이 된다면 이렇게 복잡한 세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엘가나도 한나의 불행을 보면서 행복하지만은 않았으리라. 엘가나의 또 다른 아내인 브닌나(Peninnah). 그녀는 그녀대로 행복하지 않았다. 브닌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한나를 괴롭힌다. 사무엘서는 초장부터 한 남자에게 아내가 둘이라는 암울함이 배경이다. 이 암울한 배경이 바로 한나의 삶의 배경이었다.

일부일처제를 최초로 파괴한 인물은 가인 계통의 라멕이다. 즉 라멕은 구약성서에서 최초로 두 아내를 맞이한 자다. 창세기 2장 24절(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에는 신성한 결혼의 원리가 나타나 있다. 이에 반해 불과 2장 뒤로 가면 창세기 4장 19-24절에 결혼 붕괴의 이야기가(라멕의 두 아내 이야기) 나타난다. 사무엘상에서는 결국 엘가나와 한나 그리고 브닌나 모두 행복하지 않은 일그러진 가정이라는 상황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고, 한나의 삶의 투쟁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 된다.

사무엘서 1장 2절에 의하면,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기 때문에 브닌나는 축복받는 존재이고, 한나는 불임의 벌을 받는 존재같이 여겨질 수도 있다. 인과응보(因果應報) 사상은 당시에 널리 퍼져있던 사상이었다. 즉 선을 행하면 선의 결과로서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악(죄)을 행하면 악(죄)의 결과로서 하나님께 벌을 반드시 받게 된다는 사상이다. 그렇기에 한나의 불임은 한나 또는 엘가나의 죄에 기인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고난이 축복이라고 했던가? 사무엘서 1장에서도 결국 고난이 축복이 되었다. “고난이 축복이다”라는 사상은 사무엘서 이외에도 성경의 여기 저기(욥기 등)에 살짝 숨어있는 관념 중 하나이다. 결혼 생활에서의 한나의 불임도 겉으로 보기에는 죄에 대하여 받는 벌로 비춰질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고 사실 축복이었다. 왜냐하면 1장 5절에서처럼 한나의 불임은 하나님께서 한나로 하여금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불임의 고통을 준 것은 한나에게 벌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었다. 한나의 불임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계획안에 있었던 일이었고, 임신하지 못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셨다. 한나가 불임으로 인한 고통 중에 통곡하며 기도하게 하시고 서원기도까지도 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1:5). 결국 한나가 임신하지 못해 자식을 낳지 못한 일도 훗날에 사무엘을 낳게 되는 큰 복을 받게 하려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었던 것이다.

엘가나는 예배의 사람이었다. 매 해 자기의 성읍에서 나와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다(1:3). 하나님께서는 한나에게 생명을 잉태하여 자녀를 낳는 일을 아직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 이유로 브닌나가 한나를 업신여겼었을까? 자식은 브닌나에게만 있었음에도 남편 엘가나의 사랑이 한나에게 편중되는 것에 대한 브닌나의 질투에 의해서였을까? 브닌나는 한나를 심히 격분케 했고 괴롭게 하였다(1:6). 엘가나는 한나를 편애하여 분깃을 두 배로 주면서 티를 냈고, 이에 브닌나는 한나를 더 미워하게 된 것 같다. 어쨌든 브닌나가 한나를 격분시키자, 한나는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울면서 먹지 아니하였다. 이에 남편 엘가나는 왜 먹지 않고 울기만 하고 슬퍼하는지 물어 보기도 하고, 자신이 열 아들보다 낫지 않느냐고 했다(1:8). 한편 한나라는 이름은 ‘은혜(grace)’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매력적인(gracious)’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한나는 그 이름대로 실제로도 매력적인 여성이었을까? 그녀의 이름의 의미대로 한나가 매력적인 여성이라 남편 엘가나의 사랑을 듬뿍 받았을까? 결국 한나는 하나님께 사무엘을 낳는 은혜를 입게 되고, 이후 6자녀들을 더 낳는 축복을 받는다(2:21).

2. 한나의 기도: 사무엘상 1장 9-18절에 나타난 기도의 특징들

하나님만이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음을 깨달은 한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나의 기도’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한나의 기도는 간절한 기도였다. 어떤 간절함이었을까? 성경에 보면 여호와 앞에서 운 사람들이 그 눈물의 힘으로 승리한 경우를 보게 된다. 히스기야 왕은 이사야를 통해 죽으리라는 통보를 받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심히 통곡했다(왕하 20:2-3).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눈물을 보아주셨고(왕하 2:5) 그는 15년을 더 사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다.

한나의 간절한 기도의 배경은 사무엘상 1장 9절에 나타난다.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그 의자에 앉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어 10절에서는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했다’고 한다. 이때 한나의 기도의 첫 번째 특징이 나타난다. 즉 한나의 기도는 통곡하는 기도이다. 통곡이란 무엇인가? 통곡(痛哭/慟哭)은 “소리를 높여 슬피 운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이다. 히브리어로 ‘통곡’이라는 말은 강조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나가 보통으로 통곡한 것이 아니라 아주 심히 통곡한 것을 뜻하는 것이다. 한나의 기도는 여호와 앞에서 울면서 더 깊어지는 기도였다. 성경에 보면 한나가 울었다는 표현이 7절, 8절, 10절에서 세 번이나 등장한다. 그런데 7절과 8절의 눈물이 홀로 서러워서 흘린 눈물이었다면, 10절의 눈물은 하나님 앞에서 흘린 눈물이었다. 그것도 단순히 울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통곡했다.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두 번째 한나의 기도는 서원하는 기도이다. 서원하는 기도란 맹세하는 기도이다. 즉 하나님과 1:1의 약속을 하는 기도이다.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11절)라는 말로 자신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잊지 말아달라는 간절함을 표현했다. 한나의 서원의 내용은 1장 11절(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에 나타난다.

세 번째 한나의 기도는 오래하는 기도였다. 그동안 부흥집회라든가 교회 여러 곳에서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는 말이 있어왔다. 重言復言(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는 말은 성서 중 마태복음 6:7-8에 나타난다. 한자로 중언부언이라는 말에서 중은 중복되다 할 때의 중(重)이고 부(復)는 ‘다시’라는 의미가 있다, 즉 반복하는 의미로 부(復)자를 사용한다. 이 말 때문에 여러 말을 반복해서 기도하는 것을 금기시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여러 말을 반복해서 기도하지 말라는 의미라기보다는 기도하는 대상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이말 저말 아무 생각 없이 반복적으로 형식적인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한다. 성서의 다른 본문으로 예를 들자면 누가복음 18장 1-8절 과부와 재판관의 이야기가 참고가 될 수 있다. 네 번째 입술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기도를 했다. 한나는 술에 취한 것처럼 입술을 움직이며 심정을 토로하는 기도를 했다.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13절)라는 말인데, 이 말은 입으로만 하는 기도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했다는 뜻이다.

다섯 번째 원망과 앙갚음 대신 기도했다. 한나는 자신을 격분하게 하고, 어려운 상황으로 만드는 브닌나에게 앙갚음을 하지 않았다. 한나는 마음이 괴롭고 원통하며 격분될 때 오히려 기도했다(1:6, 7, 10, 16).

여섯 번째 근심들을 하나님께 다 맡기는 기도를 했다. 그러했기에 한나의 얼굴에는 근심 빛이 사라졌다고 한다(1:18). 즉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서 음식을 먹고 일상생활을 하며 다시는 슬픈 기색을 띠지 않았다고 한다. 엘리 제사장이 한나에게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선포했을 때, 한나는 그대로 믿고 그대로 따랐다. 엘리 제사장이 한나에게 “평안히 가라” 했을 때. 한나는 걱정하고 근심하는 마음이 아닌 평안한 마음으로 갔을 것이다. 한나는 근심들을 하나님께 다 맡기는 기도를 했다. 그러했기에 한나의 얼굴에는 근심 빛이 사라졌다(1:18). 즉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서 음식을 먹고 일상생활을 하며 다시는 슬픈 기색을 띠지 않았다고 한다. ‘평안한 마음으로 갔다’는 것은 하나님께 근심과 걱정과 아픔과 회한 등 모든 것을 맡겼을 때 나타나는 행동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간구를 멸시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시 116:1). 즉 하나님의 뜻을 바라며 인내하는 자에게는 당신의 적절한 응답을 분명히 허락하신다(약 1:4).

3. 한나의 기도 그 내용: 사무엘상 2장 1~ 10절

한나의 기도의 내용은 사무엘상 2장 1-10절을 통해 알 수 있다. 한나가 이런 찬양을 지어 부른 이유는 무엇인가? 한나의 찬양은 그녀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다. 한나의 감사 찬송은 신약의 마리아에 의해 되풀이 되었다(눅 1:46-55). 이제 그녀에게 공허와 비참함과 수치는 다 지나가고 생명과 기쁨, 그리고 존귀가 찾아왔다.

1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첫째로 한나의 기도는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감사의 기도였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자신(내 뿔)이 높아졌음을 고백하는 기도였다. 여기서 뿔이란 ‘강력한 능력’을 상징한다(단 7:21 참조). 한나는 사무엘을 낳은 것이 큰 위로와 힘이 되었고,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자기를 높여 주셨음을 감사하고 있다. 원수들을 향하여 입이 크게 열렸다는 것은 이제는 멸시하는 자들 앞에서도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는 분임을 증거하게 되었다. 한나는 주님의 구원하심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기도를 했다.

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둘째로 한나의 기도는 하나님 한 분만을 향한 기도였다. 하나님 같은 반석은 그 어디에도 없고, 하나님 이외에는 거룩하신 이가 없으며, 하나님 밖에 다른 존재는 없다는 고백을 하는 기도였다. 여기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이다(고전 10:4).

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4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5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셋째로 교만한 자에 대한 경고의 기도였다. 한나는 타인들(청중들, 독자들)을 향하여 종용한다. 즉 자신을 향해 교만한 말을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는 기도였다. 그리고 한나는 하나님께서는 지식의 하나님이시기에 사람의 행동을 다 아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것과 같이 낱낱이 드러날 것이다(마 10:30). 아무리 용기가 충만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없이는 그 용사의 활이 꺾인다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자는 멸망하게 되고 넘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멀리하시고 겸손한 자를 사랑하신다(잠 16:5). 교만은 멸망의 지름길이다(잠 16:18). 결국 풍족하던 자들도 이제는 양식이 없다. 그러므로 품을 팔러 다닌다. 하지만 주리던 자들은 다시는 주리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2:5). 또한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한나는 이제 노래한다. 자신은 자녀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두었던 자는 이제 쇠약하다(2:5)고 승리의 노래를 한다.

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넷째로 한나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찬양하며 기도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신다고 한다. 그리고 스올에 내려가게도 하시고 스올에서 올리시기도 하신다는 기도이다. 한나는 모든 만물들은 여호와의 것이며 모든 것들을 세우신 이도 여호와 하나님이시기에 가난한 자를 일으키시고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려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찬양하는 기도를 했다.

9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다섯째로 하나님은 심판자이시고,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당할 자가 없다는 기도를 한다. 철저하게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고 섬기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기도이다. 거룩한 백성들의 발을 지켜주실 분도 하나님이시고, 악인들을 잠잠케 하실 분도 하나님이심을 찬양하는 기도를 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완전한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표현을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라고 표현했다. 하늘에서 우레로 대적자들을 치신다고 하신다. 한나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심판자이심을 다시 일깨워준다. 한나는 하나님께서는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그 분의 왕에게 힘을 주시며,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여주시는 분이시라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했다.

4. 결론: 기도의 교훈들과 적용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인 삶을 주관하실 뿐만 아니라 민족의 삶 전체를 주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심판하시고 때로는 축복하시면서 당신의 예정하신 목적을 향하여 역사하신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예정은 그들이 세상의 빛이 되도록 하게 하는 것이었으며, 또한 메시야의 강림을 위해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나이 어린 사무엘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범죄 한 백성 위에 임박한 진노를 게시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제사장과 은혜를 저버린 백성들을 심판하신다는 주제를 반영하고 있다. 사무엘상 1장과 2장에 나타난 한나의 이야기에서 개인과 민족의 이야기가 얽혀 있지만 이 모두를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오직 한 분 이신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개인적이고 사적인 범죄로부터 흉악하고 불순종하는 민족의 큰 죄악에 이르기까지 백성을 자비와 공의로 다스리신다. 이와 같은 사상을 갖고 있는 민족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큰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하여 섭리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알아 본 한나의 기도에서 실천할 사항들은 어떤 것들인가? 첫째로 슬프고 괴로울 때에 기도해야 한다. 한나는 마음이 괴로울 때 슬플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기도했던 것이다. 한나는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드리고 사무엘을 얻은 후에 그가 서원한 대로 이행했다.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삼상 1:28) 둘째로 눈물로 통곡하며 기도하고, 오래 기도해야 한다. 한나의 기도에서 배웠듯이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기도하고, 오래 기도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개개인의 인격보다는 집합적 인격을 강조하신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도덕, 종교 문제는 개인적이라기보다는 가족적, 사회적, 민족적 문제였다. 하나님은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아들을 주실 때 개인적인 기도의 응답으로만 주시지 않았다. 즉 한나도 결국 기도의 응답으로 사무엘을 얻었지만 이는 개인적인 사건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즉 한나의 아들 사무엘을 이스라엘의 사사 중 마지막이자 가장 위대한 사사로 세워 주신 분도 하나님 이셨고, 왕국 건설을 위한 선지자 중 첫 선지자(모세 이후로)로 사무엘을 주신 하나님 이셨다. 하나님께서는 한나가 브닌나로 인해 격분될 때, 통곡하며 탄식하며 기도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태를 통해 위대한 영적지도자 사무엘을 주셨다. 사사시대의 어둠을 거둬내시고 빛을 주셨다. 아이를 낳지 못해 고통당했던 한나는 그저 자신에게도 아이를 허락해 달라고 개인적인 기도를 했지만, 하나님은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될 아이를 세워가셨다. 넷째로 근심과 걱정 그리고 고통이 있을 때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해야 한다. 한나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갔다. 한나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완전하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완전한 계획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고통이 있고 근심과 걱정 등이 있을 때,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토로하고 맡기는 기도를 해야 된다. 하나님께서 영적인 성숙으로 인도하며 하나님이 이뤄 가신다. 다섯째로 사람과 다투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한나가 브닌나와 다투지 않은 것처럼, 사람과 다투지 말고 염려와 고통과 억울한 심정을 다 주님께 아뢰고 기도해야 한다. 주님만이 우리에게 해결책을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소망이시다. 마지막으로 사무엘서에 신학적으로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이 있다. 계시와 이스라엘 선택의 문제와 하나님의 섭리하심이다. 엘리와 사무엘, 사울과 다윗이 섬긴 하나님은 그들에게 무슨 표(10:2-9)나, 꿈이나, 신탁이나, 예언(26:6) 등으로 나타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그들과 운명을 같이 하셨고, 이스라엘의 영광이요, 힘이셨다(4:21).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셨으며, 하나님의 능력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성공의 유일한 원인이시며,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했다. 병고(삼하 21:1-14)도 죽음(6:19)도 하나님의 의지에 달렸으므로, 이 세상의 역사 뿐 아니라 생명과 사망에까지 하나님께서 섭리하심으로 주관하신다(1:5). 절대자이신 하나님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한 가지는 사람에게 협력을 요구하시는 것이다(15:11)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베드로 전서 5:7

기도: 우리가 한나의 기도를 배워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며 기도하고, 오래 기도하며, 간절히 기도하고, 서원하며 기도하게 하옵소서.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는 기도를 하여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 받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에도 감사하고, 한나처럼 욥처럼 축복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예진 박사

평택대학교(B.A)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M.A 구약신학 수료)

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M.A구약신학 , M.Div) 피어선신학전문댜학원(Ph.D 구약신학)

순복음 목양교회 부목사

시인• 수필가(한국문인협회 2014년 등단)

《칼빈신학과 한국신학》(2009)

《우리들이 좋아하는 푸른 시 100선》 1.2.3.4(2017, 2018, 2019, 2020)

한나의 기도 (사무엘상 1: 9~18)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질문 중 하나가 “선하신 하나님께서 왜 고통을 허락하시는가?”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여러 대답이 가능하지만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고통을 통해서 우리에게 기도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서 우리가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를 가르치십니다.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개인적인 고통일지라도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한 시대, 한 나라의 고통을 품는 기도로 변화시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기도를 통해 이루어질 때는 자신만의 문제를 해결 받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 한 역사의 고통과 상처까지 치유 받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역사 중에서 가장 어둡고 타락했던 시대가 ‘사사시대’입니다. 사사시대 역사의 어둠을 거둬내고 역사의 새벽을 가져온 것이 바로 한나의 기도입니다. 한나가 기도한 이유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고통 때문이었습니다. 그 고통은 개인적인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고통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고통, 역사의 고통을 치유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주셨던 고통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나에게 주어진 고통은 역사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한나의 고통에는 한 시대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한나의 기도를 통해서 개인이 고통 속에서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한 시대, 한 역사의 고통을 치유하시는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배워야합니다. 한나의 기도로 사무엘상 1장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여인이 고통 속에서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시고, 그 기도를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사용하셨는지를 알아야합니다.

남편의 사랑으로도 해결되지 못하는 고통

한나의 고통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나의 남편 엘가나, 엘가나의 또 다른 아내 브닌나, 당시 제사장이었던 엘리입니다. 한나가 이 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갔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한나는 남편 엘가나의 사랑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에 갈급했습니다.

한나가 남편의 사랑에 만족하지 않았다는 것은 남편의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한나의 남편 엘가나는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남편 엘가나의 사랑으로도 치유되지 않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남편의 사랑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만 채워지는 빈자리였습니다.

한나의 남편 엘가나는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경건한 가문의 후예였습니다. 그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경건하다는 것과 두 아내가 있었다는 것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나 당시 문화의 낮은 윤리적 수준에서는 자녀 생산을 위해 두 번째 아내를 들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 아내 브닌나의 이름은 ‘아이를 많이 낳는다’는 뜻입니다. 실제 엘가나는 브닌나를 통해 얻은 여러 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가나는 한나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엘가나는 제사드리는 날이 올 때마다 자기 아내 브닌나와 그 모든 아들딸들에게 제물로 드릴 고기를 나누어 주곤 했습니다. 그러나 한나에게는 두 배를 주었는데 그것은 그가 한나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한나에게 자녀를 주지 않으셨습니다”(삼상 1:4~5).

한나는 남편에게 두 배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남편에게 다른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 사랑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한나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한나에게 고통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생겨난 고통은 하나님만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사람의 사랑으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하는 기도를 통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17세기 영국의 시인 조지 허버트가 쓴 ‘도르래’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을 때 축복의 잔을 가지고 인간에게 축복을 부어주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모든 축복을 다 부어주시다가 다 부어질 무렵 중단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축복을 다 부어주면 인간들이 하나님 대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에 취해 살까봐 안식이 없는 나머지를 남겨두기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안식 없음을 그 나머지로 남겨두시고, 그것을 도르래가 되게 하셔서 인간을 하나님의 가슴으로 전달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한나의 마음속에 있었던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 그 고통은 도르래가 되어서 그 고통을 하나님께 전달하게 했던 것입니다. 고통이 심할수록 하나님께 더 빨리 가까이 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지만 당시 문화에서 여인에게 아이가 없다는 것은 가장 큰 고통 중 하나였습니다. 한나는 그 고통이라는 도르래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갔습니다. 남편의 사랑으로도 해결되지 못하는 고통을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고통을 오직 하나님께 쏟아내다

둘째, 한나는 엘가나의 또 다른 아내 브닌나의 괴롭힘에 맞서 싸우지 않고 하나님께 그 괴로움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 토해냈습니다.

“여호와께서 한나에게 자녀를 주시지 않았으므로 브닌나는 계속해서 한나를 괴롭히고 업신여겼습니다. 이런 일이 해마다 계속됐습니다.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브닌나가 한나를 괴롭혔기 때문에 한나는 울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6~7절).

브닌나가 한나를 괴롭힌 것은 계획적이고 의도적이었습니다. 브닌나는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한나를 괴롭히고 그것을 즐겼습니다. 한나는 자신을 괴롭히는 브닌나에게 대항하지 않았고 다투지 않았습니다. 이와 매우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아브라함의 가정과 비교해보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도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사라는 자신이 주도해서 하갈이라는 여종을 들였습니다. 그런데 하갈이 교만해져서 아이를 낳은 후에 사라를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사라는 자신을 무시하는 하갈을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먼저 남편에게 가서 따졌습니다. “내가 당하고 있는 이 고통은 모두 당신 책임입니다. 내가 내 종을 당신 품에 두었건만 이제 그녀가 임신했다고 나를 멸시합니다. 여호와께서 당신과 나 사이에 판단하시기를 바랍니다”(창 16:5).

“여호와께서 당신과 나 사이에 판단하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은 점잖게 번역했지만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당신이 죽든지 내가 죽든지 해보자”는 뜻입니다. 부부가 강렬하게 싸울 때 나오는 표현입니다. 하갈에게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사라가 어느 정도 괴롭혔냐면 하갈이 도망갈 정도였습니다. 사라가 하갈을 이긴 것입니다. 한나는 사라와 정반대였습니다. 한나는 브닌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염없이 울기만 하는 여인이었습니다. ‘한나’라는 말의 어원적인 의미는 ‘사랑스러운’, ‘매력적인’입니다. 한나는 이름에 합당한 성품을 가졌습니다. 한나는 브닌나와 다투지 않고 하나님과 다퉜습니다. 브닌나에 받은 괴로움을 되갚아주지 않고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사라처럼 남편에게 괴로움을 쏟아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한나에게 남편 엘가나는 ‘한나, 왜 그렇게 울고 있소? 왜 먹지 않고 있소? 왜 그렇게 슬퍼하고만 있소? 내가 당신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않소?’하고 말했습니다”(8절).

“내가 당신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않소?”라는 말을 보면 엘가나는 한나의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나는 남편에게 쏟아내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괴로움을 오직 하나님께만 쏟아냈습니다.

“한나가 대답했습니다. ‘내 주여, 그런 게 아닙니다. 저는 슬픔이 가득한 여자입니다. 저는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신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제 심정을 쏟아 낸 것입니다’”(15절).

‘심정을 쏟아 냈다’는 말의 원문은 ‘영혼을 쏟아 냈다’는 의미입니다. 영혼에 담아둘 수 없고, 담아둬서도 안 되는 고통과 상처를 하나님께 쏟아냈습니다. 우리 몸에 들어와서는 안 되는 이물질이 들어오면 토하게 됩니다. 쏟아내게 됩니다. 우리 영혼에 죄가 들어오면 아프게 되어 있습니다. 미움, 분노, 상처, 괴로움은 우리 영혼 속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영혼을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육체도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영혼의 통곡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쏟아냈습니다. 이것이 한나의 기도 이면에 있었던 비밀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괴로움을 토해낸 것이 한나의 기도입니다. 여러분, 누군가에게 고통을 쏟아내면 일시적인 효과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욥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통에 대하여 욥이 친구들과 많은 대화를 했지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고통과 괴로움을 쏟아내며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고통에 대한 토로, 고통에 대한 원망, 한탄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서원하는 것입니다.

“한나는 마음이 너무나 괴로워 울고 또 울면서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맹세하면서 말했습니다. ‘전능하신 여호와여, 만약 주께서 주의 종의 비참함을 굽어보시어 저를 기억하시고 주의 종을 잊지 않고 제게 아들을 주신다면 제가 그 평생을 여호와께 바치고 결코 그 머리에 칼을 대지 않겠습니다’”(10~11절).

한나가 하나님께 쏟아내는 영혼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기적인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기도입니다. 한나의 기도는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면 아들을 온전히 바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아들이 목표였고 하나님이 도구였다면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의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을 아셨기에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실제 한나는 당시 제사장 엘리의 영적 무지에 분노하지 않고, 엘리를 통해 확인해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믿었습니다.

영적 분별력 잃어버린 제사장 ‘엘리’

사사시대의 깊은 암흑기의 절정은 엘리라는 영적 지도자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엘리는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나중에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엘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상 1장 9절에 “엘리 제사장이 여호와의 성전 문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의자’는 다른 곳에서 왕좌, 보좌 등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의자가 아니라 어떤 지도자의 위치, 신분, 직무를 가리킵니다. 제사장이 직무를 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구약 율법을 보면 제사장이 앉아서 직무를 행하지 않습니다. 제사장은 직무를 행할 때 항상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엘리는 앉아 있었습니다. 엘리는 영적 운동력과 영향력이 없고, 정체된 상태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무엘상 1장은 고통 속에서 기도하는 한나라는 여인과 하나님께로부터 직무를 받았지만 그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없었던 엘리라는 지도자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4장 13절을 보면 블레셋과의 전투에 법궤를 보낸 후에 “엘리는 하나님의 궤로 인해 마음을 졸이며 길가 한쪽 의자에 앉아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엘리는 항상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엘리의 무지가 나타납니다. 고통 속에서 울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신음하듯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한나를 보고 엘리는 ‘독한 술에 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영적 분별력의 무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엘리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예의 있게 대했습니다. 엘리의 권위를 인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통을 주시는 이유

“당신의 여종을 나쁜 여자로 여기지 마십시오. 저는 너무 괴롭고 슬퍼 여기서 기도하고 있었을 뿐입니다”(16절).

한나는 사무엘이 태어났을 때 하나님께 헌신한 대로 엘리 제사장의 집으로 보냈습니다. 한나는 엘리가 영적 영향력이 미약해도 하나님께서 엘리를 통해서 주시는 축복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엘리가 말했습니다. ‘평안히 가시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당신이 구한 것을 허락하실 것이오’”(17절).

엘리가 축복했기 때문에 한나가 기도응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한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이지 엘리가 중매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엘리가 한나의 태도에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복을 빌어준 것입니다. 한나는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있었지만 제사장 엘리를 통해 전해들은 강복의 선언을 응답받은 줄로 여겼습니다. 이것이 한나의 위대한 믿음입니다. 비록 제사장 엘리의 영적 영향력이 미약하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라면 하나님의 임재의 통로로 여기고, 받아들이고, 그를 통해 주어진 강복의 선언을 믿은 것입니다.

“한나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총받기를 바랍니다.’ 그러고 나서 한나는 가서 음식을 먹고 그 이후로 얼굴에 근심을 띠지 않았습니다”(18절).

한나의 마음속에 확신이 생겼습니다. 제사장 엘리의 강복선언과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날 목회자나 사역자를 당시 제사장과 동일시할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역의 원리로 말하자면 여전히 이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주어지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간절히 기도하는 신앙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한나의 기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한나가 기도하는 것과 술 취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제사장 엘리와 다시는 상종하지 않겠다고 할 수 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믿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지도자가 부정한 것을 덮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정은 밝혀야 하고,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내 생각, 내 기준, 내 수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무슨 설교를 들어도 은혜를 못 받는 성도가 있고, 그 어떤 설교를 들어도 은혜를 받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자기 기준입니다. 한나는 엘리의 강복선언을 하나님의 응답으로 믿고 다시는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남편의 사랑으로도 해결되지 않은 고통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갔고, 자신을 괴롭히는 누군가와 다투지 않고 모든 괴로움을 오직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엘 리가 영적 영향력이 부족한 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주신 강복선언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한나의 기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고통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나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통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고통을 주셔서 역사의 새벽을 가져올 사무엘을 준비하게 하시고, 사무엘을 잘 양육할 수 있는 영적 어머니로 연단하셨습니다. 고통이 긴 이유는 그만큼 깊은 기도를 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고통이 강한 만큼 깊은 기도와 오랜 기도를 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의 사람으로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해 보면 하나님이 주신 고통은 지극히 개인적일지라도 개인의 고통이 아닙니다. 그 고통에는 뜻이 있고, 하나님의 섭리가 있으며, 그 고통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면 나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 시대와 역사의 고통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통로가 됩니다.

한나의 기도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의 아픔 그리고 기도 (삼상 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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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아픔 그리고 기도 (삼상 1:10-11)

사무엘서는 선지자 사무엘이 기록한 역사서이다. 사무엘서에는 이스라엘의 정치 체제의 전환과 발달 과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이 시기에 사사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넘어가게 된다. 이때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을 받아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과 두 번째 왕 다윗을 왕으로 임명하는 임무를 수행했다(삼상10:1, 16:13).

이처럼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로서 사사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던 인물이다. 성경은 중요한 인물을 소개할 때, 그 사람의 탄생 비화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사무엘도 마찬가지다. 사무엘서는 사무엘의 부모를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삼상 1:1)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삼상 1:2)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엘가나에게는 두 명의 아내가 있었다. 한나와 브닌나. 이 중에서 한나가 첫 번째 아내(본처)이고, 브닌나는 두 번째 아내이다. 안타깝게도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 여성이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아이(특별히 아들)을 낳지 못하면 “죄인” 취급을 받았다. 결정적인 이혼 사유가 될 수 있었다.

여차하면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날 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와 재혼하기도 힘들었다. 아마 엘가나가 한나 외에 또 다른 아내(브닌나)를 둔 이유도 한나의 불임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가나는 한결같이 한나를 사랑했다. 그래서 내치지도 않았고, 타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위로하고 보듬어 주었다.

(삼상 1:8)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하지만 남편의 지극한 사랑조차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나의 슬픔과 아픔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기에는 브닌나의 공격도 크게 한몫했다. 브닌나는 자기가 후처라는 자격지심 때문인지, 떡두꺼비 같은 아들까지 떡하니 낳아 줬는데도 한나만 바라보는 남편에 대한 원망 때문인지, 아니면 애도 못 낳는 주제에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한나에 대한 질투심 때문인지 몰라도 한나를 지독하게 못살게 굴었다. 어찌나 못살게 굴었는지 한나는 서럽고 억울해서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을 정도였다.

(삼상 1:6-7, 우리말성경) 여호와께서 한나에게 자녀를 주시지 않았으므로 브닌나는 계속해서 한나를 괴롭히고 업신여겼습니다. 이런 일이 해마다 계속됐습니다.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브닌나가 한나를 괴롭혔기 때문에 한나는 울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브닌나도 브닌나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엔 이게 다 불임 때문이었다. 아들만 낳았으면 애초에 엘가나가 후처를 들일 일도 없었을 것이고, 행여 브닌나가 있다 해도 이렇게까지 자기를 업신여기고 괴롭히지는 못했을 것이다. 한나가 아들을 낳기 전까지는 이 슬픔이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본문은 한나가 불임이라는 사실과 함께 그녀의 마음이 괴로웠다는 것을 반복해서 알려 주고 있다.

(삼상1:2)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삼상1:5-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삼상1:6-7) 브닌나가 그를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삼상1:10-11)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삼상1:15-16) 한나가 이르되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 이니이다

성경에서 반복은 강조이다. 무슨 말인가? 한나는 절대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한나의 정체성이자 인생이었다. 하지만 한나의 불임은 불임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서 불임 여성에 대한 언급이 나오면 ‘여기에 주목하라’는 신호라고 생각하면 된다.

왜냐하면 불임이 불임으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불임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대체로 출산으로 끝을 맺는다. 그것도 그냥 ‘아이를 낳았다’ 정도가 아니라 ‘중요한 인물을 낳았다’로 끝난다. 대표적인 예가 이삭, 야곱, 요셉, 삼손, 세례 요한이다. 이 중에서 삼손의 출생 기사를 읽어드리도록 하겠다.

(삿 13:2)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삿 13:24)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그러므로 본문이 한나의 ‘불임’을 여러 차례 강조하는 것은, 한나는 결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반드시 아이를 낳을 것이며, 그 아이가 장차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인물이 될 것이라는 암시이다. 한나의 슬픔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가 안고 있는 큰 슬픔은 오히려 큰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이런 걸 두고 복선이라고 한다.

한나는 불임의 아픔과 슬픔을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 제목은 당연히 ‘아이를 낳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때 한나는 아들을 낳게만 해주시면,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했다.

(삼상 1: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는 통곡하면서 기도했고, 오래도록 기도했다.

(삼상 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삼상 1: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어찌나 간절히 기도했던지 그 모습이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한나는 엘리 제사장으로부터 “당신 도대체 뭐하는 여자길래 벌건 대낮에 이렇게 취해있느냐?”고 질책을 받기도 했다.

(삼상 1:12-14) 그(한나)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이 말을 듣고 한나는 “내가 술 취한게 아니라,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속이 상해서, 속에 쌓인 슬픔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그 마음을 하나님께 털어놓는 중이었다”고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삼상 1:15-16)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엘리는 이 말을 듣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도가 응답 될 것이라고 축복하면서, 평안한 마음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표면적으로는 축복을 빌어주는 것 같지만 엘리의 됨됨이와 신앙 상태를 생각해 보면 사실상 빨리 돌려보내기 위한 빈말에 가까웠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나는 엘리의 말을 듣고 정말로 평안을 얻었다.

(삼상 1:18, 우리말성경) 한나는 가서 음식을 먹고 그 이후로 얼굴에 근심을 띠지 않았습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한나는 엘리 제사장의 영혼 없는 축복을 듣는 그 즉시로 고민이 싹 가시면서 입맛이 돌아오고, 잠도 푹 잘 자고, 삶에 활기가 샘솟았다. 어떻게 한나는 엘리 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평안을 얻을 수 있었을까? 간단하다.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나는 엘리 제사장의 말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다. 이것은 엘리가 대단한 사람이라서가 아니었다(왜냐하면 엘리는 지극히 사사시대적인 제사장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나의 믿음이 컸기 때문이다. 한나는 제사장 엘리의 입술에서 나온 말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과연 하나님은 한나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셨다. 그녀의 고통을 돌보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한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마침내 한나가 아들을 낳게 된 것이다.

(삼상1:19~20)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 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참고로 한나는 ‘은혜를 입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사무엘은 ‘하나님께 구하다’는 뜻이다. 사무엘의 출생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 한나가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결과였다. 하지만 득남의 기쁨도 잠시, 한나는 사무엘이 젖을 뗄 즈음(일종의 관형적 표현으로 약6-7세라고 생각하면 된다)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생이별 해야 했다. 아들을 낳게 되면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했기 때문이다(삼상1:11).

여기서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나실인으로 키우는 것이다. 한나는 아들을 낳으면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겠다(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겠다)고 서원했다.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집(성전)에서 봉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나는 서원한 대로, 사무엘을 성전에 바쳤다. 이제부터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을 도와 성전을 직무를 섬기게 될 것이다.

(삼상 1:27-28)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여기서 주목해야 할게 하나 있는데, 남편 엘가나의 반응이다. 율법에 따르면 아내의 서원은 남편에게 귀속되었다. 쉽게 말해서 남편이 아내의 서원을 취소시킬 수 있었다는 뜻이다(민30:6-8). 아무리 한나가 서원을 했다고 해도, 엘가나가 “안 된다”고 그걸로 끝이었다.

그런데 엘가나는 한나의 서원을 취소시키지 않았다. 인정하고 존중해주었다(삼상1:23). 왜냐하면 엘가나는 한나의 임신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겼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엘가나도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문은 엘가나의 믿음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삼상 1:3)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가나가 살던 당시는 여전히 사사시대였다. 사사시대는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제멋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던 시대였다(삿 21:25).

그런데 이러한 시대 속에서 엘가나는 매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이 말은 1년에 한 번씩 연례 행사를 치렀다는 뜻이 아니라, 율법에 따라 대 속죄일을 성실하게 지켰다는 의미다. 이처럼 한나와 엘가나는 믿음으로 불임의 시기를 견뎌냈고, 믿음으로 사무엘을 낳았고, 믿음으로 사무엘을 드렸다. 사사시대에는 한나 같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이제 한나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되짚어 보면서 말씀을 맺도록 하겠다.

1. 한나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한나는 자신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문제 그 자체를 놓고 기도한 것도 있지만, 이 문제로 인한 자신의 감정 상태도 기도했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고 진솔하게 기도했다. 간절히 기도했고, 오래 기도했고, 그야말로 미친 듯이 기도했다. 한나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한나처럼 진솔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 되길 바란다.

2. 한나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한나는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믿었다.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시리라 믿었다. 그러니까 그토록 간절하게 기도한 것 아니겠는가? 믿음이 없으면 기도할 수도 없고, 기도할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한나의 기도는 곧 그녀의 믿음과 정비례 한다고 할 수 있다. 한나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여러분의 기도 생활은 어떤가?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기도는 메말라 있지 않은가? 믿음과 기도는 보폭이 같다. 믿는 만큼 기도하고 기도한 만큼 믿음이 자란다. 항상 기도에 힘쓰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 바란다.

3. 한나는 드리는 사람이었다.

한나는 아들을 낳으면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드렸다. 그리고 약속대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다. 뿐만아니라 하나님께 경배(감사와 찬양)를 올려 드렸다. 그 찬양의 내용이 2장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삼상 2:1-2)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받기만을 바란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경우도 너무나 많다. 주신 ‘분’ 보다, 주신 ‘것’을 더 중요시 하는 것이다. 한나가 아들을 주신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신 아들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면 어떻게 됐을까? 서원을 깨트렸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아마 사무엘서는 ‘사무엘’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이름으로 기록되었을 것이고, 한나의 인생은 수록되지 못했을 것이다. 명심하라. 받은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신 분이다.

이 사실을 망각하면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거나, 아무런 기쁨도 감사도 없이 억지로 드리게 되거나, 성의 없이 드리게 된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하나님께 받은 것보다 하나님이 더 귀하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고 믿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 한나는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것들을 기억하며, 한나처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들 되기 바란다.

4. 한나는 더 받은 사람이었다.

한나는 기나긴 불임 끝에 사무엘을 낳았다. 그리고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다. 외아들을 하나님께 드렸으니 이제 다시 한나에게는 아들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한나는 사무엘을 드린 후에 더 많은 자녀를 낳았다.

(삼상 2:21)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단순히 따져 봐도 아들 하나를 드리고, 아들을 셋을 더 낳았으니 3배는 더 받은 셈이다. 여기에 추가로 딸까지 더 낳았다. 더군다나 하나님께 드린 사무엘은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인물이 되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결코 밑지는게 아니다. 손해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것을 빼앗아가는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우리가 드린 것 보다 비교도 안 될 만큼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 주는 분이시다.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더욱 드리기 바란다. 그래서 더 큰 은혜를 받아 누리는 사람 되길 바란다.

한나의 인생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믿음으로 나아가고, 기도로 나아가고, 힘써 드리며, 동시에 풍성히 받아 누리는 하루하루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눅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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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나의 기도(사무엘상 1:1-20)

어느 정도의 교회생활을 했거나, 성경을 관심있게 읽은 성도라면 한나의 기도와 관련된 이야기는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기도의 방법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한나처럼 기도해야 응답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는 중요한 은혜의 방편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어떤 본문에 기도가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문맥과 관계없이 해석하고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 본문을 단순하게 이해하여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 여성이 한나처럼 기도하면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아이를 가지지 못한 부인이 아이를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는데도 얻지 못한다면 한나처럼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믿음이 없기 때문일까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한나의 기도는 이 사건에서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장에 등장하는 한나의 기도는 사람마다 자기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사사시대를 접고 왕정시대를 열어가는 인물인 사무엘의 출생배경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주시는 일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어떤 본문이든지 구속사와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와 어떻게 연관이 되어 있는지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장에 기록된 한나의 기도가 구속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본문의 주제는 경건한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구속사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1. 사무엘 출생 당시의 역사적 배경(삼상 1:1-3)

첫 번째로 사무엘이 출생할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사무엘서의 저자는 사무엘의 출생과 관련한 그의 가문과 시대적 배경을 설명함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출생할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은 사사시대 말기입니다. 사사시대의 특징은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17:6; 21:25)라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자기 생각이 곧 법이고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 혼돈과 무질서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이때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죄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주변의 블레셋이나 모압, 미디안 등을 일으켜 징계하셨기 때문에 자주 어려움 가운데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엘가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역대기에 보면 그의 가문을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대상 6:22-27). 또한 사무엘을 소개할 때도 레위 자손으로 소개합니다. “사무엘은 엘가나의 아들이요 엘가나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여로함은 엘리엘의 아들이요 엘리엘은 도아의 아들이요”(대상 6:34)

이 엘가나 가정은 당시에 성전이 있었던 실로에 매년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상 1:3을 보면 그 시대에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엘리 대제사장이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홉니와 비느하스에 대하여 사무엘상 2:12에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사무엘상 2:13-17에 그들의 죄악상을 열거하고 있는데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가로채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의 헌금을 가로채거나 부당하게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행동을 가리켜 내레이터는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삼상 2:17)라고 하였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기도 하였습니다(삼상 2:22).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의 목회자가 색을 밝히는 것을 말합니다. 사사시대는 신정국가로서 제사장이 통치하고 다스리는 성막중심의 생활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부패한 제사장이 성막에서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을 가르쳤다고 하는 것은 당시의 종교와 사회가 부패하였다고 하는 것을 드러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무엘의 출생 당시의 역사적 배경입니다.

사실 이러한 역사는 비단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만이 아니라 중세시대가 그러하였고, 지금 우리 한국사회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볼 때 기독교는 국민의 의식개혁과 함께 근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이 복음을 듣고 세계 선교역사에서도 연구할 정도로 크게 성장하였고,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중요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점차적으로 우리나라에 기독교인의 수가 감소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교회의 부패가 한몫을 담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중심에는 구약시대의 홉니와 비느하스와 같은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2. 사무엘 출생 당시 엘가나의 가정문제(삼상 1:1-8)

두 번째로 사무엘이 출생할 당시에 엘가나 가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엘가나는 당시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바쳐진 자로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리치고 본을 보이며, 백성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해야 할 레위 지파 사람입니다. 그런데 엘가나는 두 여인을 아내로 두었습니다. 성경의 결혼은 반드시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가 가정을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창조시에 하나님께서 하와를 이끌어 아담에게 주실 때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창 2:23)라고 하였습니다.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이때 내레이터는 이 사건을 가리켜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니라”(창 2:24)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아담의 부모는 누구며 하와는 부모는 누구입니까? 없는데 왜 이 말을 할까요? 이것은 창조 때부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은 보편적인 규칙이라는 것입니다. 사사시대를 살았던 레위인 엘가나는 이 규칙을 어겼습니다. 사사시대에 우리가 아는 사사 기드온은 아들만 70명을 낳았습니다. 아들 딸 다 합치면 150명은 될 텐데 도대체 기드온은 몇 명의 아내를 두었을까요? 이 점을 이해한다면 당시 엘가나가 하나님을 섬기고 매년 당시 성막이 있었던 실로에 와서 규칙적으로 제사를 드리기는 하였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고 세상의 풍속을 따랐다고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가정에 문제가 생겨나게 되었는데 한나는 자식이 없었고 브닌나는 자식이 있었으므로 서로 갈등하게 되었습니다.

이 갈등구조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요? 엘가나는 두 부인 가운데 한나를 더 사랑했습니다. 사무엘상 1:4-5을 보십시오.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그러자 사랑을 받지 못하는 브닌나는 한나를 계속 괴롭힘으로 문제를 풀어가려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상 1:6에 보면 브닌나는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원어 성경에 있는 대로 번역하면 “그녀를 자극하게 할 목적으로 계속해서 심하게 괴롭혔다”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 보면 ‘격분하게 하다’라는 동사는 미완료형으로 번역됩니다. 히브리어의 시제는 우리말이나 영어처럼 시간에 강조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동작의 완료여부에 그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브닌나가 괴롭히고 있는 이 행동이 습관적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대개의 영어번역 성경이 그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브닌나가 한나를 괴롭힌 행동은 그 정도에 있어서 심한 것 정도만이 아니라 그 괴롭히고 있는 행동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나는 브닌나의 괴롭힘이 계속될수록 그의 고통 역시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울고 먹지 아니하였습니다(삼상 1:7). 여기에 울며 먹지 아니하였다고 하는 동사는 히브리어로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어서 브닌나의 괴롭히고 자극하는 행동이 계속되는 것처럼 한나가 울고 먹지 아니하는 행동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나의 남편 엘가나는 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가려고 하였을까요? 사무엘상 1:8을 보십시오.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사실 이 위로의 말을 가만히 보면 묘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편 엘가나의 말에는 “당신에게 아들이 없지만 열 아들보다 내가 더 낫지 아니한가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느냐?”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우리가 이 본문을 가만히 보면 아이러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엘가나나 브닌나는 사람마다 옳은 대로 행하는 무정부시대요 무질서와 혼돈의 시대에도 매년 실로에 있는 성전에 올라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세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이것이 사무엘이 출생할 당시 엘가나 가정의 문제였습니다.

3. 사무엘 출생 당시 한나의 기도(삼상 1:9-20)

그러면 한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려고 하였을까요? 이것이 세 번째로 살펴볼 내용입니다.

한나는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삼상 1:10, 11, 15).

그에게 있는 심중의 괴로움을 하나님께 구하였는데 그것도 서원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한나의 기도는 당시 엘리 대제사장이 마치 포도주와 독주를 마신 것처럼 보일 정도로 간절하게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삼상 1:13-14).

한나는 그의 모든 괴로움은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고 그 괴로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기도하였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슬픔을 아시고 구원해 주실 줄을 믿었습니다. 한나의 이러한 믿음을 잘 볼 수 있는 구절이 그가 기도함으로 아들 사무엘을 얻고 난 뒤에 기도한 내용 가운데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무엘상 2:2-3과 6-7을 보십시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한나의 이러한 기도를 볼 때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의 열쇠를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기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보면 하나님 주권사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무엘상 1:5에 보면 “⋯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라고 하셨고, 사무엘상 1:19에 “⋯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행동을 달아보시고 거기에 따라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사실 성도라면 모든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믿음생활의 본질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의 인격과 능력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신자에게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신자의 특성은 기도이고 기도가 없는 신자는 참 신자가 아니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여러분! 이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 아들을 주신 것을 보십시오.

기도에는 분명히 응답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그가 아들을 낳았을 때에 아들의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하였는데 그렇게 지은 이유를 말하기를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삼상 1:20)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엘리 대제사장 앞에서 기도할 때 서원한 대로 사무엘을 여호와께 드리기 위하여 엘리 대제사장에게 가서 말할 때에도 “내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삼상 1:26-27)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만 주신 것이 아니라 세 아들과 두 딸도 주셨습니다(삼상 2:21).

한나의 기도의 결과로 가정의 문제가 다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이며 그 은혜를 경험하는 방편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건한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과 만나 교제하는 방법이요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4. 구속사와 한나의 기도의 관계(삼상 1:20)

네 번째로 우리가 살펴본 내용은 한나의 기도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시는 역사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본문을 처음 시작할 때도 생각하였습니다만 이 본문은 한나의 기도에 그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한나의 기도의 결과로 주신 사무엘의 출생에 그 강조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나처럼 이런 방법으로 기도하면 아들을 주실 수 있다고 할지라도 일반화하여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어떤 사건을 설명하는 것을 규칙으로 바꾸는 일은 신중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이 본문은 기도에 관한 교리와 규칙을 가르쳐주는 본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를 열어가는 일에 있어서 기도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역사 가운데 행하시는 구속사에서 기도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이 본문을 함께 살펴본 바와 같이 당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사사시대 말기에 한 레위인 가정 엘가나의 부인인 한나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한나의 기도로 말미암아 자신이 간절하게 구하던 아들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사무엘은 후일에 블레셋의 지배하에 40년간이나 고통을 당하던 이스라엘을 미스바 전투에서 구원해 내었습니다(삼상 7:3-14; 참조. 삿 10:7).

뿐만 아니라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사사시대의 어둠을 걷어내고 왕정시대를 열었습니다. 사사시대 말기에 하나님의 주권과 기도의 능력을 믿었던 경건한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우리를 구원할 메시아를 보낼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압제에서 구원한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한나가 당시에 실로의 성전에서 간절하게 기도할 때 블레셋의 압제에게 구원하고, 왕정시대를 열어갈 인물을 달라고 기도했을까요?

아닙니다. 한나는 당시에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로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구속사와 한나의 기도와 맞물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경건한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과 만나 교제하며 개인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은혜의 방편이 될 뿐만 아니라, 구속사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작정과 구속사를 말하지 않고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라 할지라도 한나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하는 일 자체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격과 약속을 믿는다는 구체적인 믿음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과 만나 교제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앵글을 더 넓혀서 교회와 국가를 위하여 기도한다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경건한 성도의 기도를 통하여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구속사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가시기 때문입니다.

구속받은 성도들이 하나님과 만나 교제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시려는 구속사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역시 성도의 기도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통치 방식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할 마음을 품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나가 자식을 달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한나와 만나시고 자식들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주셔서 블레셋에 40년간이나 압제당하는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시고, 어두웠던 사사시대의 무대를 걷어 내리고 왕정시대라는 새로운 무대를 열게 하셨습니다.

기도의 중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우리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되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꿈을 가진 자라면 한나처럼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든지, 아니면 교회와 국가를 위한 문제든지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믿음의 표현으로서 온 세상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는 방법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안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입니다. 또한 기도는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법입니다.

고통을 기도로 바꾼 리더십

한나

박 혜 원 리더십개발연구소 공동 소장

로버트 클린턴 박사는 하나님의 섭리적 환경에 반응하는 자세에 따라 그 리더십 성장이 달라진다고 했다. 위대한 리더십일수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고통의 위기들을 축복의 기회로 바꾸는 위대한 반응을 보인다. 그 결과 그는 공동체로 하여금 믿음으로 담대히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한나가 그런 여인이었다. 한나는 지금으로부터 약 3,100년 전인 BC 1,110년경에 이 땅에 살며 고통을 당할 때 오로지 하나님을 의뢰하여 믿음으로 승리했던 여인이다.

한나, 그 이름은 단지 기도해서 아기를 얻은 여인 정도로 인식되었을 뿐, 리더십으로는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녀가 당했던 고통을 기도로 가져가 승리함으로 이스라엘 역사에 끼친 영향력을 생각하면 리더십의 관점에서 그녀를 새롭게 평가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고통을 당했던 한나의 기도에 대한 응답과 그녀의 헌신을 통해 리더십 부재의 위기를 당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기도하기를 쉬지 않는 능력 있는 선지자요 사사로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끈 리더십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한나의 숨겨진 리더십을 보게 된다.

이 글에서는 한나가 당대에 당했던 많은 원통함과 격동을 어떻게 놀라운 기회로 바꿀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방법과 결과는 어떠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녀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고자 하는 성경적인 리더십 교훈들을 배워 우리들도 고통의 위기를 만날 때 그녀처럼 기도와 믿음으로 승리하여 우리 공동체를 부르신 사명을 성취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한나에게는 큰 고통과 번민이 있었다. 그녀는 엘가나의 첫째 아내로 둘째 아내인 브닌나는 자식들을 많이 낳고 사는데 그녀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문화에서 자녀를 낳지 못하는 여인은 존재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엘가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한나에게 갑절의 제물을 주며 사랑을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고통은 여전했다. 오히려 남편의 계속되는 사랑 표현 때문에, 브닌나의 질투와 격동은 매년 더해갔다(삼상 1:7).

고통 속에 숨겨진 축복이라는 보물

성경은 한나의 이 고통이 여호와의 주권 아래 이루어진 일임을 알려준다.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셨다는 것이다(삼상 1:5). 자녀를 수태하거나 하지 못하는 일은 모두 여호와의 손에 달려있다(창 18:10, 29:31, 30:2, 22 참고).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의 믿음을 연단시켜 온전케 만드시기 위해 고통이라는 이름의 용광로를 만나게 하신다(약 1:2~3).

한나는 고통당할 때 가장 고상한 반응을 선택했다. 원통함과 격동을 불러일으키는 브닌나와 싸우지도, 남편에게 하소연하지도, 포도주나 독주를 찾지도 않았다. 그녀는 오로지 금식하며 울며 기도함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다. 고통을 만날 때 기도로 반응하는 사람은 축복이라는 선물을 누린다. 한나의 고통이 기도라는 고상한 반응을 만났기에, 자신뿐 아니라 사무엘을 얻은 이스라엘, 믿음 안에서 한 가족이 된 우리들에게까지 축복이 된 것이다.

고통 속에는 놀라운 축복들이 숨어 있다. 그래서 서양속담에 “No cross, no glory!” (십자가 없이는 영광이 없다), “No pain, no gain!” (고통 없이 얻는 것은 없다)이라는 말이 전해온다. 고통 속에 숨겨놓은 보물찾기라는 게임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연단시키신다. 따라서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고통을 만나면 반가워할 것이다. 그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일까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기도로 가져가면 문제와 고통은 복으로 바뀐다.

한나의 기도가 주는 리더십 교훈

한나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는 점에서 배울 점이 있다. 사무엘상 1장에 한나의 기도가 상세히 서술되어 있는 것은 우리의 교훈을 위함일 것이다. 우선 한나는 개인 기도를 하기에 앞서 실로에서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를 드렸다. 일반적으로 심한 번민과 고통에 치심하면 전체 질서를 깨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나는 전체 질서를 존중했다. 온 가족과 함께 나아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먼저 한 것이다(삼상 1:9).

둘째로, 여호와의 전에 남아 하나님과 독대하며 진실하게 기도했다. 자신의 괴로운 마음을 여호와 앞에 쏟아놓고 기도하며 통곡했다(삼상 1:10). 하나님은 시시로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는 기도를 하라고 우리에게 명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괴로움과 고통을 가감 없이 솔직히 토해놓는 기도를 기뻐하신다(시 62:8).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은 상한 감정까지도 그대로 아뢰며 눈물로 하는 기도를 기뻐하신다.

셋째로, 서원을 통해 기도의 목표를 분명히 했다. 자기의 욕심이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했기에 한나의 기도가 응답된 것이다. 아들을 주시면 거룩한 나실인으로 주께 드려 그 나라와 영광을 위하겠다는 선한 목표를 향한 의지가 분명했다. 이와 같이 기도의 목표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부합되어 영광 돌리는 것일 때 그 기도는 분명 응답될 것이다(요일 5:14).

넷째로, 한나는 하나님 앞에 조용히, 그러나 집중하여 오래 기도했다. 그녀는 조용히 자신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입술을 동하면서 말함으로써 슬픈 심정을 여호와 앞에 통했다(삼상 1:12~16). 기도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 하지 말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면 응답하신다(마 6:5~18). 표현과 입술 시인(롬 10:10)은 인격적인 교제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하나님 앞에서도 입술을 동하며 자기의 마음을 쏟아놓으려면 집중된 시간이 필요하다.

다섯째로, 기도 후에 오직 믿음으로 시인하고 태도와 행동을 바꿨다. 엘리가 평안히 가라고 축복 기도를 해줄 때, 한나는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화답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믿음으로 화합하고 입으로 시인하며 선포해야 한다. 그리고 아직 아무런 변화가 없어도 그녀는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는 태도를 취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여호와께 경배하고 귀향했다(삼상 1:18~19).

마지막으로, 한나는 기도를 한 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그 남편 엘가나와 동침한 것이다. 인간이 할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 권고하사 잉태하게 하신다. 혹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는 생각에 자신의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면 응답이 지연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기도의 동사들은 구하고(ask), 찾고(search), 두드리는(knock) 것이다. 마치 숨겨놓으신 보물을 찾듯이. 이렇게 하여 하나님은 귀한 아들 사무엘을 주셨다.

질서정연한 과정 리더십으로 성실성 보여준 한나

사랑이 무궁하시며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이러한 기도를 멋지게 응답하셨다. 한나로 잉태하게 하셨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게 하셨다. 한나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삼상 1:20)는 의미에서 사무엘, 곧 하나님이 들으심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었다. 한나는 그를 호명할 때마다 감사했을 것이다. 기도할 때는 간절하지만 응답을 받은 후에는 감사를 잊어버리기 쉬운 우리들에게 중요한 교훈이다. 예수님께서도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하시면서 응답하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표현을 촉구하신다.

성실성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성숙한 리더십에게 나타나는 필수 성품이다. 하나님의 기도응답 앞에 한나 역시 자신의 서원을 갚는 성실성을 보여주었다. 코람데오, 곧 하나님 존전의식으로 자신이 기도할 때 서원했던 말 그대로를 자발적으로 실행했다. 한나의 이러한 성실성의 근거는 그녀의 기도 속편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녀가 하나님의 주권을 깊이 깨닫고 인정하는 성숙한 믿음 위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참고 삼상2:1~10). 한나의 성실성은 ‘말이 영수증이 되게 하라’는 서양 속담의 한 모본이 된 것이다. 또한 한나는 질서정연하게 일을 처리하는 과정 리더십(course of sort management)의 면모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먼저 그 가정의 질서를 깨지 않으면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진행시켰다. 그녀는 이 서원을 이루기 위해 미리 마음을 정하고 결단했다. 남편과도 상의하여 의합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나가 이미 얻고 있던 남편의 신뢰와 존경심을 보라(삼상 1:22~23). 그리고 용의주도하게 일을 진행시켜 나아갔다. 그 남편 엘가나의 허락 하에 사무엘이 젖떼기까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지 아니하고 양육에 집중했다.

때가 참에 한나는 사무엘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 사랑으로 아기 사무엘이 충분한 애착을 경험하게 한 뒤 돌보고 훈련시켜 혼자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기초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해 진 때 그를 독립시킨 것이다. 사무엘과 함께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준비해 가지고 나아가 여호와 앞에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한나는 제사장 엘리 앞에 기도 응답으로 얻은 아들을 여호와께 드리되 평생을 드린다고 선포했다. 또한 매년제를 드리러 올 때마다 아들을 위해 작은 겉옷을 지어다 줌으로 사랑을 표현했다(삼상 2:19).

이와 같이 한나는 믿는 바를 행동한(religion in motion) 리더십이다. 그녀는 더 이상의 자식들을 아직 받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바친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행할 수 없는 의미심장한 헌신이다. 그 능력은 어디서 나올까? 이는 그녀가 알고 있는 하나님에 관한 바른 지식에 기인함을 알 수 있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삼상 2:3).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그녀에게 세 아들과 두 딸을 주심으로 위로와 상을 주셨다(삼상 2:21).

이렇게 매사를 순서를 따라 바르게 행함으로 한나는 질서와 화평의 하나님(고전 14:33)을 닮은 성숙함을 보여준다. 그 결과 이제 젖 뗀 어린 아이 사무엘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했고(삼상 1:28), 부모가 집으로 돌아갔는데도 울지도 않고 늠름하게 여호와를 섬겼다(삼상 2:11). 이는 기도의 준비에 따른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또한 사무엘에게 왜 하나님의 전에 머물러야 하는지 이해시키고 준비시켰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사 26:7).

계속되는 한나의 선지적 기도

한나의 기도는 속편으로 이어진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깊어지면서 기도하는 즐거움으로 나아간다. 이제는 기적이나 받은 선물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 그분을 인하여 즐거워하게 되는 것이다(합 3:17~18). 고통을 기도로 통과하고, 기적으로 응답을 받고, 자신이 서원한 것을 행동으로 성취한 한나의 기도는 성숙한 모습이 여실하다. 이전에는 마음이 괴로워 통곡하며 기도를 시작했다면 이제는 즐거움과 영광과 권세와 구원과 승리를 노래함으로 기도를 시작한다(삼상 2:1).

한나의 기도 속편의 주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재권 찬양에 있다. 그녀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주권과 반석이 되심을 찬양한다. 또한 교만과 오만의 말을 내지 말고 겸손할 것을 선포한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심을 찬양한다. 또한 여호와는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고, 음부에 내리게도 높은 곳으로 올리게도 하시며,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높이기도 하시는 크고 위대하신 권세를 가지신 공평하신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며 찬양한다(삼상 2:2~7).

또한 이 기도는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승리를 선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지적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주재권의 극치는 주의 영광과 권세가 온 세계 위에 있다는 것이다. 영광의 위를 마음대로 주시며 땅의 기둥들이 여호와의 것이며 세계를 그 위에 세우심을 선포한다.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시며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사 의의 나라를 세우실 주를 높인다. 또한 대적할 자 없는 권능의 여호와,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의 기름 부은 왕에게 힘을 주시고 뿔을 높이실 것이라는 종말론적 선포의 기도로 마친다(삼상 2:8~10).

한나의 기도 속에 태어나고 자란 사무엘의 국가적인 영향력

사무엘은 한나의 기도의 열매이며 한나 리더십의 열매이다. 리더십 학자들은 리더십의 극치는 리더십을 키워냄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사무엘은 한나의 기도로 태어났고, 한나의 기도 가운데 성장했으며, 한나의 기도와 헌신으로 드려져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라났다. 사무엘의 삶과 인격, 그리고 그를 통해 행사된 영향력의 크기는 한나 리더십의 영향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사무엘의 사람됨과 그가 행사했던 영향력을 살펴보자.

아이 사무엘은 점점 자라나며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더욱 은총을 받았다(삼상 2:26). 사무엘은 어린 아이 때부터 순종하는 사람이었다. 아이 사무엘이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을 때,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니 두 번씩이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며 엘리에게로 달려가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했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연습을 한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 아마도 집을 떠나오기 전에 한나로부터 이렇게 말하는 방법을 배우고 훈련 받았을 것이다.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함께 계심으로 말(입술)의 권세를 주셨다. 그의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해 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이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다(삼상 3:19~20). 그리하여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었다(삼상 4:1).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카리스마를 얻게 된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순종하는 사무엘에게 온 이스라엘이 순종하는 권세가 임한 것이다.

사무엘은 기도함으로 이스라엘 부흥의 역사와 전쟁의 승리를 얻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우상을 제하고 전심으로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말하니 그들이 그렇게 했다. 또한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미스바로 모였다. 거기서 그들은 금식하고 회개했고 사무엘은 그들을 다스렸다(삼상 7:3~6). 블레셋이 치러 올라오자 백성들의 요청으로 사무엘이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큰 우뢰를 발하여 승리하게 하셨다.

사무엘은 기도와 예배 중심으로 다스린 영적인 리더십이었다. 그가 돌을 취해 ‘에벤에셀’이라 부르며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고 기념했다. 이에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아 주시는 은총과 평안을 누리게 되었다. 또한 사무엘은 기도하는 처소들이었던 벧엘, 길갈, 미스바로 해마다 순회하며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자기 집이 있는 라마에서도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으며 백성을 다스렸다(삼상 7:12~17). 이렇게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지 않는(삼상 12:23)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국가적 리더십을 행사했다.

결론적으로 가장 완벽한 준비는 기도이며,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의 창고를 여는 열쇠이다. 기도로 입술의 권세를 얻은 리더십은 통솔에 날개가 달린다. 그래서 위대한 리더십들은 기도하는 자들이었다.

위대한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는 당시에 약 4천 명의 선교사를 거느리며 세계에서 가장 큰 선교 단체인 중국내지선교회를 이끌었다. 그는 오직 기도로 사람들을 움직인 것이 성공적인 사역의 비결이었다고 말했다. 폴 시다 목사는 「기도」(디모데, 2001)에서 “사탄은 우리의 지혜나 수고는 비웃지만, 우리의 기도에는 떤다”고 말했다. 고통을 만날 때 가장 고상한 반응인 기도로 나아가 권능과 영광을 누리는 리더십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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