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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4 장 | 열왕기하 4장 51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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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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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은 CGNTV와 공동체성경읽기(PRS)가 공동기획하여 제작한 영상으로 무단으로 영상을 편집 및 재배포가 금지됩니다.
*영상 제공 : CGNT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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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4

과부의 기름 그릇 · 1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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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4/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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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4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열왕기하 4 · 43그 사환이 가로되 어찜이니이까 이것을 일백명에게 베풀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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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1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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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4장 & 성경주석 – BIBLE STORY

길갈에서 맹독이 든 국물을 고침. 42. 엘리사가 떡 20개로 100명을 배부르게 함. <열왕기하 4장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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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ible-story.tistory.com

Date Published: 11/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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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4:1-38 엘리사, 미망인 그리고 수넴 여인 – 성경의 진리

열왕기하 4장 1절 말씀에 따르면 이 여인은 그녀의 남편이 죽고난 후 큰 고난을 겪고 있었다. 열왕기하 4:1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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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thewordofgod.kr

Date Published: 6/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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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10월 23일. 열왕기하 4장. – 하늘품은교회

열왕기하 4장. 불신앙의 시대에 빛을 비춘 귀한 사람들. 1. 엘리사의 네 가지 기적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과부의 기름에 대한 기적(1~7), 수넴 여인이 늦게 얻은 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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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apoom.or.kr

Date Published: 5/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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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4장. 기적(능력)에서 인간적인 향기가 나야 한다.

열왕기하 4장. 기적(능력)에서 인간적인 향기가 나야 한다. · 1) 수넴 여인은 아들을 낳았고, 아이는 자라서 아버지와 함께 밭에 있을 때 머리가 아프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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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unmill.tistory.com

Date Published: 6/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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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4(화) “열왕기하 4:1-7” / 작성: 이창호

본문 : 열왕기하 4장 1절-7절 엘리야가 승천한 후 그의 겉옷을 취한 엘리사가 요단강을 가르고 건넌 기적을 계기로 선지자 생도들이 그를 엘리야의 영감을 받은 후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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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6/8/2021

View: 2493

열왕기하 4장 – 네이버 블로그

열왕기하 4장 ; 사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 · 왕하 4:1-10 · 우리가 가진 것으로 ; 내게 있는 것이 내 것은 아닙니다 · 왕하 4:11-24 · 내게 있는 것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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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2/18/2021

View: 3489

열왕기하 4 KLB – 과부의 기름 – 어느 날 한 – Bible Gateway

과부의 기름 – 어느 날 한 과부가 엘리사에게 와서 이렇게 호소하였다. “저의 남편은 죽었습 니다.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그 사람은 여호와를 잘 섬기는 예언자의 생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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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12/3/2022

View: 3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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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4장
열왕기하 4장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열왕기하 4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 Views: 조회수 19,0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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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 23.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pxY8x0_Iw5o

열왕기하 4

7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6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5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4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3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2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1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엘리사와 수넴 여인

8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에 한 귀한 여인이 그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9 여인이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10 청하건대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리이다 하였더라

11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에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 누웠더니

12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여인을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13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그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랴 왕에게나 사령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하니 여인이 이르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하나이다 하니라

14 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까 하니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하니

15 이르되 다시 부르라 하여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라

16 엘리사가 이르되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하니 여인이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17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엘리사가 여인에게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18 그 아이가 자라매 하루는 추수꾼들에게 나가서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렀더니

19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사환에게 말하여 그의 어머니에게로 데려가라 하매

20 곧 어머니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죽은지라

21 그의 어머니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

22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사환 한 명과 나귀 한 마리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하니

23 그 남편이 이르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거늘 그대가 오늘 어찌하여 그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냐 하는지라 여인이 이르되 평안을 비나이다 하니라

24 이에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몰고 가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위하여 달려가기를 멈추지 말라 하고

25 드디어 갈멜 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그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

26 너는 달려가서 그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27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그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가만 두라 그의 영혼이 괴로워하지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하니라

28 여인이 이르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하니

29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하는지라

30 아이의 어머니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따라가니라

31 게하시가 그들보다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지도 아니하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그에게 말하여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32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33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34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35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 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36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이르되 네 아들을 데리고 가라 하니라

37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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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 중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채주가 이르러 나의 두 아이를 취하여 그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2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저가 가로되 계집종의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나이다 3 가로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4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대로 옮겨 놓으라 5 여인이 물러가서 그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저희는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 오고 그는 부었더니 6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 오라 아들이 가로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7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고한대 저가 가로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8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고로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9 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줄을 내가 아노니 10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 11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서 누웠더니 12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곧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13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저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왕에게나 군대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여인이 가로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하니라 14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저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꼬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15 가로되 다시 부르라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라 16 엘리사가 가로되 돐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여인이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17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돐이 돌아오매 엘리사의 말한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18 그 아이가 저으기 자라매 하루는 곡식 베는 자에게 나가서 그 아비에게 이르렀더니

19 그 아비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 아비가 사환에게 명하여 그 어미에게로 데려가라 하매 20 곧 어미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미의 무릎에 앉았다가 죽은지라 21 그 어미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서 22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컨대 한 사환과 한 나귀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23 그 남편이 가로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어늘 그대가 오늘날 어찌하여 저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뇨 여인이 가로되 평안이니이다 24 이에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몰아 앞으로 나아가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의 달려가기를 천천하게 하지 말라 하고 25 드디어 갈멜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저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 26 너는 달려가서 저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27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저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가만 두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28 여인이 가로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29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찌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30 아이의 어미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좇아가니라 31 게하시가 저희의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는 모양도 없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가로되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32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33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34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35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36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서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가로되 네 아들을 취하라 37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38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생도가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생도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39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서 야등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 외를 따서 옷자락에 채워가지고 돌아와서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저희는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 40 이에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더니 무리가 국을 먹다가 외쳐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 하고 능히 먹지 못하는지라 41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가로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해독이 없어지니라 42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익은 식물 곧 보리떡 이십과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저가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열왕기하 4장 & 성경주석

<열왕기하 4장 흐름정리>

성경에 기록된 모든 이적은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냄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고 영광 돌리게 하는 데에 근본 목적이 있다. 엘리사가 행한 기름 사건과 수넴 여인의 잉태, 그녀 아들의 죽음과 소생, 해독 이적 등도 엘리사의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밝히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이 모든 이적은 어려움에 처한 자의 필요를 돌아보고 채워 주며 죽은 자에게 새 생명을 부여해 준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엘리사의 사역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주로 선고하였던 엘리야의 사역과 대비된다.

<열왕기하 4장 줄거리>

1. 엘리사가 과부의 기름을 늘려 줌.

8. 엘리사가 선한 수넴 여인에게 아들을 줌.

18.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다시 살림.

38. 길갈에서 맹독이 든 국물을 고침.

42. 엘리사가 떡 20개로 100명을 배부르게 함.

<열왕기하 4장 개역한글>

1.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 중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채주가 이르러 나의 두 아이를 취하여 그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2.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저가 가로되 계집종의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나이다

3. 가로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4.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대로 옮겨 놓으라

5. 여인이 물러가서 그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저희는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 오고 그는 부었더니

6.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 오라 아들이 가로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7.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고한대 저가 가로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8.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고로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9. 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줄을 내가 아노니

10.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

11.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서 누웠더니

12.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곧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13.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저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왕에게나 군대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여인이 가로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하니라

14.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저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꼬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15. 가로되 다시 부르라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라

16. 엘리사가 가로되 돐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여인이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17.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돐이 돌아오매 엘리사의 말한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18. 그 아이가 저으기 자라매 하루는 곡식 베는 자에게 나가서 그 아비에게 이르렀더니

19. 그 아비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 아비가 사환에게 명하여 그 어미에게로 데려가라 하매

20. 곧 어미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미의 무릎에 앉았다가 죽은지라

21. 그 어미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서

22.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컨대 한 사환과 한 나귀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23. 그 남편이 가로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어늘 그대가 오늘날 어찌하여 저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뇨 여인이 가로되 평안이니이다

24. 이에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몰아 앞으로 나아가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의 달려가기를 천천하게 하지 말라 하고

25. 드디어 갈멜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저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

26. 너는 달려가서 저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27.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저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가만 두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28. 여인이 가로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29.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찌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30. 아이의 어미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좇아가니라

31. 게하시가 저희의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는 모양도 없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가로되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32.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33.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34.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35.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36.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서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가로되 네 아들을 취하라

37.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38.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생도가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생도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39.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서 야등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 외를 따서 옷자락에 채워가지고 돌아와서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저희는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

40. 이에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더니 무리가 국을 먹다가 외쳐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 하고 능히 먹지 못하는지라

41.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가로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해독이 없어지니라

42.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익은 식물 곧 보리떡 이십과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저가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43. 그 사환이 가로되 어찜이니이까 이것을 일백명에게 베풀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2

44. 저가 드디어 무리 앞에 베풀었더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다 먹고 남았더라

<열왕기하 4장 성경주석>

4:1 아내 중에.

이것은 “선지자의 생도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 주는 중요한 계시이다. 그들은 어리거나 미혼자이거나 수도원에 은둔하여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백성과 함께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백성에 속해 있고, 백성과 함께 살며, 백성을 위해 일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만 관심을 두고 금욕적 공동체에서 함께 살면서 거룩함에 이르려고 애쓰는 대신, 나라의 이익을 위해 살며 자신의 물질적 이득을 구하지 않고 주변 모든 이의 공동 이익을 구했다.

4:1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이 사람은 여호와의 신실한 경배자였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감화력은 이스라엘 왕국 전역에 많은 영향을 끼쳐 참 하나님의 경배를 촉진시켰다.

4:1 채주가 이르러.

모세의 법은 빚진 자를 부리는 것을 인정했지만 “종”이 아니라 “품꾼이나 우거하는 자같이” 부릴 수 있으며, 팔린 사람은 희년까지만 섬기면 되었다(레 25:39~42). 이곳의 경우에는 채권자가 채무자의 생전에는 그의 권리를 아들들에게 행사하지 못했지만 채무자가 사망하자 그들의 봉사를 요구하여 아버지의 의무를 이행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4:2 내가…어떻게 하랴.

이 질문은 선지자의 친절한 마음을 드러낸다. 엘리사는 백성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 언제나 친절하고 동정적이어서 언제나 도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왕이 요청했을 때, 그는 기꺼이 전 군대의 필요를 공급했으며, 가난하고 외로운 과부가 요청했을 때 외면하지 않았다.

4:2 무엇이 있는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것을 사용하신다. 그분은 그분의 자원이나 능력에 제한이 없으며, 따라서 기름병이 없어도 그녀의 필요를 쉽게 채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그녀가 가진 것을 취하여 당신의 축복을 그곳에 두셨다. 오늘날 하나님의 종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선천적인 능력이나 물질적인 자원이 풍부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들이 그들의 가진 것을 하나님과 그분의 사업에 바치고 그분의 축복을 구하면 그들이 가진 적은 것이 여러 배로 늘어날 것이다. 가난한 자를 도우려 애쓰는 사람은 그들을 돕는 것이 곧 자신들을 돕는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가난한 자들도 그들 자신들이 가진 것을 자원으로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자비가 시들해져 유익보다는 해를 끼칠 수 있다.

4:2 한 병 기름 외에는.

기름 한 병은 많지 않지만, 하나님의 손길과 축복을 통해 그녀의 모든 필요를 채우기에 충분하였다. 우리의 재능과 재산이 많지 않을 수 있지만, 그분께 바쳐진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사용하여 증가시킬 수 있다. 기름 한 병은 과부의 극도의 가난을 나타내는 표시였지만, 여호와께서 그녀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기도 했다.

4:3 조금 빌지 말고.

과부의 반응은 그녀가 가진 믿음의 분량이 될 것이었으며, 그녀의 분량만큼 여호와께 받을 것이었다. 그녀가 가진 믿음이 작으면 적게 받을 것이고, 큰 믿음이면 많이 받을 것이다.

4:5 그는 부었더니.

과부는 불신으로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는 선지자의 지시에 즉시 반응했으며, 아들의 협력도 얻었다. 예속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들들도 자신들을 위해 무언가 할 일이 있었다. 그녀의 믿음과 순종은 아들들의 믿음과 순종을 낳았다. 믿음이 믿음을 불러일으키며, 한 사람의 순종이 다른 사람의 순종을 북돋운다.

4:6 기름이 곧 그쳤더라.

사람이 더 이상 받을 준비를 하지 못할 때 하나님은 더 이상 주지 못한다. 마지막 그릇이 채워졌을 때 비로소 기름의 기적적인 공급이 그쳤다.

4:7 빚을 갚고.

과부는 여호와께 청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았다. 그녀의 요청은 아들들이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가난 때문에 여전히 많은 필요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필요들을 채워 주기 시작하셨다. 그분은 항상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축복을 주신다.

4:8 수넴.

이스르엘 골짜기에 있는 성읍으로, 길보아산 북서쪽 약 8킬로미터 지점이며, 당시 엘리사의 거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25절) 갈멜산에서 약 26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엘리사가 나라 이곳 저곳을 순회하던 중 자주 이 마을(현재는 소넴)을 지나갔다.

4:8 한 귀한 여인.

부유한 여인(참조 삼상 25:2; 삼하 19:32) 또는 고위층 여인.

4:8 저를 간권하여.

엘리사에게 이 안락한 집의 친절함이 베풀어졌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그들의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음식과 거처가 필요하며, 그리스도인 교제와 우정의 축복에 감사한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의 삶은 그가 섬기는 사람들에게 받는 친절한 호의로 기쁘고 유쾌해지곤 한다.

4:10 작은 방.

부는 종종 그 소유주를 자기 중심적으로 만들어 타인의 필요와 갈망을 잊게 한다. 그러나 분명 수넴의 이 고상한 여인의 경우는 달랐다. 그녀는 귀부인이었으나 동정심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자신의 필요를 적절히 공급받자 다른 사람들과도 자신의 소유를 나누었다. 그녀는 자기 식구들을 돌보는 책임도 있었지만, 가정의 의무들 때문에 엘리사와 다른 사람들의 필요와 안위를 잊어버리지 않았다. 엘리사는 여행하다가 수넴 마을에 도착하면 쉼과 편안함이 깃든 유쾌한 시간을 갖기를 고대하곤 했다. 따뜻한 환대는 이 땅의 자녀들에게 하늘의 평화와 교제를 조금이나마 맛보도록 돕는다.

4:12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수넴 여인은 엘리사에게 친절했으며 그는 그녀에게 친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베푼 호의에 그가 무엇으로 보답할 것인가? 그녀는 물질적으로는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녀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었다. 고귀한 마음은 호의를 받고 보답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4:13 내가…어떻게 하랴.

이것은 시험하는 질문이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그녀의 마음에 있는 것을 정확히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순수하게 선지자이기에 그를 대접했는가 아니면 어떤 보상을 받기 위해 은밀한 욕망을 품었는가?

4:13 왕에게…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엘리사는 자신이 궁정과 국가의 최고 권세자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엘리사가 수넴 여인을 위해 왕의 도움을 얻을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4:13 내 백성 중에.

그녀의 대답은 그녀가 완전히 만족하고 있다는 생각을 드러낸다. 그녀는 백성들과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으며 이웃과 다툼도 없고 친구들과 화해해야 할 문제도 없었다. 평화롭고 행복한 공동체였고, 왕이나 왕의 사신들이 더 행복한 삶을 위해 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4:14 무엇을 하여야 할꼬.

이미 온전히 행복하고 이 세상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 준다는 것은 그다지 쉽진 않지만, 엘리사는 그녀에게 봉사할 것을 찾기 위해 계속 노력을 기울였다.

4:14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모든 히브리 여인에게 명백한 불행과 치욕으로 간주되었다(참조 창 30:23; 신 7:13, 14; 삼상 1:6, 7, 11; 시 128:3, 4; 눅 1:25).

4:14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자녀를 몹시 갖고 싶었겠지만 그녀는 남편이 늙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떤 희망도 없다고 믿었다.

4:15 문에 서니라.

그녀가 엘리사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중함과 예의로 이렇게 했을 것이다.

4:16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사람에게 불가능해도 하나님께는 불가능하지 않다. 그녀가 아들을 원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위해 가능하게 할 수 있으셨다. 그 해 안에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한 엘리사의 약속은 그녀의 절실한 소망을 훨씬 초월하는 것이었다.

4:16 속이지 마옵소서.

즉 실현될 수 없는 희망을 내 앞에 둠으로 나를 속이지 마옵소서. 자식을 약속받았을 때 아브라함(창 17:17)과 사라(창 18:12)와 사가랴(눅 1:20)가 쉽게 믿지 않은 것과 비교하라.

4:17 돌이.

참 선지자는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 예언을 하지 않는다. 엘리사가 약속한 대로 되었다.

4:19 내 머리야.

일사병의 일종일 것이다. 추수는 연중 가장 더운 계절에 하는 힘겨운 노동이었다.

4:20 죽은지라.

슬픔과 기쁨, 눈물과 웃음, 삶과 죽음은 죄악 세상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여정에서 별개의 것이 아니다. 수넴 여인의 아들은 가정에 기쁨을 주었지만 가슴에 고통을 가져오는 매개도 되었다. 수넴 여인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그를 얻었지만, 지금 죽음이 그를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4:22 내게로 보내소서.

이때는 바쁜 추수철이어서 이 큰 집안의 사람과 짐승이 모두 들판에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짐승 한 마리와 몰이꾼을 급히 사용하겠다고 요청했다.

4:22 하나님의 사람에게.

충실한 아내인 이 여인은 자기가 하려는 여행과 속히 돌아올 계획이라는 사실을 남편에게 알렸지만, 여행의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가 이미 죽은 아들을 일으키도록 선지자에게 요청하려는 의도를 남편에게 알렸다면, 그는 부질없는 여정이라 생각하여 그녀의 목적을 단념시키려 했을 것이다. 그것은 믿음의 문제였고, 따라서 그녀가 그 문제를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만 두려 한 것 같다.

4:23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어늘.

둘 다 성일(聖日)로, 제사와 성회가 있는 경우이다(대하 2:4; 사 1:13; 호 2:11; 암 8:5). 분명 이런 날에는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경배나 종교적 교육과 교화를 목적으로 모였을 것이다. 초하루나 안식일이라면 선지자에게 향하는 그녀의 여행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겠지만, 이 경우에는 남편이 그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4:23 평안이니이다.

믿음과 소망에 찬 대답이었다. 아이는 죽었지만 그녀는 슬픔과 좌절의 길로 가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람이 애당초 하나님께 간구하여 그 아이를 주시도록 했다면, 그를 회복시킬 능력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있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그것을 맡길 때 평안이라는 완전한 보증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의 응답이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그것이 아니더라도 평안을 지니고 그분의 뜻에 겸손하게 순종하며 엎드릴 수 있다.

4:24 천천하게 하지 말라.

그녀가 아무리 불편할지라도, 종에게 가능한 가장 빠른 속도로 가라고 재촉했다. 짐승을 타고 약 26킬로미터의 거리를 가는 것이 그다지 쉽지 않았겠지만, 그녀의 생각은 되도록 빨리 엘리사에게 도착하는 것뿐이었다.

4:25 저를 보고.

선지자의 집은 아마도 높은 곳에 있어서, 계곡 아래 대부분 지역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엘리사가 멀리서 오고 있는 그녀를 알아보았다.

4:26 저를 맞아.

엘리사는 즉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았으며, 그녀가 그에게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종을 보내 그녀를 맞이하고 가능하면 그녀가 온 이유를 알아보도록 했다.

4:26 평안하다.

다시 한 번 그녀의 대답은 “평안”이었다. 그녀는 마음의 부담을 선지자의 종이 아닌 오직 선지자에게만 드러낼 것이었다.

4:27 그 발을.

성경은 끈질기게 요청할 경우에 하는 이 같은 행동에 대한 많은 실례를 기록한다(마 18:29; 막 7:25; 눅 8:41; 요 11:32 등).

4:27 저를 물리치고자.

무감각한 종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여 그녀를 완강하게 물리치려 했다.

4:27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

엘리사는 즉시 여인의 심중에 채워진 감당할 수 없는 어떤 슬픔을 알아차렸고, 그의 온화한 동정심이 그녀에게 동했다. 사랑과 긍휼로 가득한 하나님의 진실한 자녀의 마음은 무거운 짐을 지닌 모든 사람을 향해 동정심으로 동할 것이며, 주님처럼 그들에게 쉼을 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참 사랑은 자비와 친절이며, 궁지에 처한 사람들의 호소에 반응한다.

4:27 내게 숨기시고.

때때로 여호와께서는 특정한 사람의 상황을 당신의 종들에게 드러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시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선지자는 없다. 계시는 오직 하나님의 뜻과 조화되게 주어진다. 선지자가 특정 문제와 관련된 사실을 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가 여호와의 참 선지자가 아니라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선지자들도 사람이며, 그들의 지식과 판단도 다른 사람들처럼 제한적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특별한 계시와 지혜를 주실 때만 그들의 기별은 독특한 권위를 지닌다. 이와 같은 경우처럼 선지자가 모든 사실을 다 알아야 한다는 생각은 부적절하다.

4:28 내가…아들을 구하더이까.

여기서 여인이 선지자를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심중의 비통함을 토로하고 있다. 그녀가 먼저 아이를 구하지 않았고, 아이는 선지자가 한 약속의 결과였다. 그러나 이렇게 아이를 얻었으나 이제 그녀에게서 취해갔다. 그녀는 여러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던 것은, 엘리사가 지금 그녀가 지닌 슬픔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은 쓰라린 슬픔을 드러낸다. 그녀는 자신이 요구하지도 않았던 아들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고, 따라서 슬픔은 아들에 대한 사랑을 전혀 알지 못했을 때보다도 훨씬 컸다.

4:29 네 허리를 묶고.

엘리사는, 그 여인이 황급한 여행으로 힘이 소진하여 되돌아가는 길이 훨씬 더 어렵고 힘겨울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몸소 여행하는 것을 회피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알자 즉시 종에게 행동 방법을 지시하여 급파했다.

4:29 내 지팡이를…들고 가라.

이 지팡이는 엘리사의 선지자 직분을 상징했으며, 모세의 지팡이처럼(출 4:17; 출 17:5, 9; 민 20:8, 9) 하나님의 능력의 징표로, 그것을 지니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할 것이었다.

4:29 인사하지 말며.

종에게 무뚝뚝하고 무례하게 행하라는 것이 아니라, 노상에서 시간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동방에서 인사는 길고 의례적이며, 예의를 갖추려면 시간이 걸린다.

4:30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여인은 엘리사의 종보다 엘리사를 더 신뢰했다. 그녀는 엘리사의 기도와 사역의 능력을 알았으며, 그를 전적으로 신임했다. 여호와께서는 엘리사의 한 마디 간청으로 아이를 회복시킬 수 있으셨으나 선지자의 지팡이와 종을 존중하기로 선택하여 아이를 소생시키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비탄에 빠진 여인은 엘리사를 여호와께서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실 기별자로 의지했고,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그녀의 믿음을 존중하여 그녀의 소원에 맞게 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셨다.

4:31 소리도 없고 듣는 모양도 없는지라.

이 말은 게하시가 소년에게 엘리사의 지팡이를 놓은 것을 하나님이 영예롭게 해 주시기를 기대했음을 암시한다. 생명이 소생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 여인이 여호와께서 엘리사의 지팡이와 그의 종 게하시라는 대리자를 통해 응답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더라면, 응답이 그 방법으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당신의 놀라운 능력을 이루실 통로로 게하시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어떤 약점이 그의 삶에 있었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어떤 방법으로 일하거나 일하지 않기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4:31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이 말은 단순히 그 아이가 잠들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년은 낮에 어미의 무릎에서 죽었고(20절), 32절에서 그가 죽었다고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죽음은 자는 것으로 여겨진다(신 31:16; 왕상 2:10; 단 12:2; 요 11:11~14; 행 13:36).

4:33 기도하고.

믿음으로 열렬히 기도하여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였다(히 11:35).

4:34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아이의 생명을 되돌아오게 하는 데 엘리야가 이런 방법을 사용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그가 하나님께 지시를 받아 이 방법을 사용했거나 아니면 엘리야의 행동을 모방했을 것이다(왕상 17:21). 기도가 다른 수단의 사용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선지자의 몸이 죽은 아이의 몸에 온기를 전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아이를 소생시킨 것은 아니다. 소년이 죽음에서 돌아온 것은 처음에 생명을 부여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였다. 이것은 기적이었으며, 하나님만 실행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여호와께서 이 죽은 아이를 다시 소생시킨 것처럼, 재림 때에도 무덤 속에서 잠자고 있는 당신의 모든 신실한 자녀들을 일으킬 것이다(사 26:19; 요 5:28, 29; 고전 15:52; 살전 4:16; 계 1:18).

4:36 네 아들을 취하라.

아이의 생명이 돌아왔을 때, 어머니를 불러 아들을 취하라고 했다. 엘리야가 과부의 아들을 죽음에서 일으켰을 때 어머니에게 그를 넘겨주었고(왕상 17:23),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렸을 때 어머니에게 돌려주었다(눅 7:15). 예수님의 마음은 자녀를 잃고 울고 있는 모든 어머니에게 동하며, 그분이 부활의 기쁜 날 무덤 속에 잠자고 있는 자녀들의 생명을 소생시켜 천사들이 그들을 어머니의 손에 안겨줄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45).

4:37 절하고.

어머니의 말은 나와 있지 않다. 그녀는 너무도 감사하여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깊이 감사하여 그녀는 선지자의 발 앞에 엎드려,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죽은 아이의 생명을 소생시켜 준 것에 대해 어머니로서 감사한 마음을 쏟았다. 그녀가 하나님과 그분의 선지자에게 나타낸 믿음은 헛되지 않았다.

4:38 길갈에.

참조 2:1 주석. 엘리야는 젊은이들이 동료에게 봉사의 삶을 살 준비를 갖출 수 있는 이 중요한 훈련 기관들에 관심을 보임으로 여호와의 사역을 확립하는 데 많은 일을 했다. 엘리사도 이 학교들에 계속 관심을 가졌다. 종종 그는 필요한 격려와 권면을 주기 위해 그들을 방문했다.

4:38 흉년이 들었는데.

고대 팔레스타인에서 흉년은 흔히 있었고, 많은 고통과 심지어는 죽음도 초래했다(참조 창 12:10 주석).

4:38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영적인 교훈을 듣는 경우일 것이다. 마리아가 예수의 발치에 앉았던 것처럼, 이 생도들도 엘리사 앞에 앉아 하나님의 교훈을 배웠다. 이는 귀중한 시간으로 여겨졌을 것이며, 성령이 임재하여 생도들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의 교훈들을 심어주었다. 그들은 매일의 양식보다 영에 속한 것들에 더 감사하라고 배웠다.

4:38 큰 솥을 걸고.

영적인 양식이 중요하지만, 육체도 음식이 필요하다. 엘리사는 그 땅을 황폐시키고 있는 기근의 영향으로 야윈 학생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동정심이 일었다. 엘리사는 그들의 영적인 복지뿐 아니라 현실적인 필요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모든 사람을 먹일 수 있는 큰 솥을 걸라고 명했다.

4:39 들에 나가서.

선지자 학교는 모두 시골 공동체에 자리잡고 있어서 학생들은 식량을 자급하고 농사짓는 훈련을 받을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식량이 부족하여 선지자 학교의 학생들은 분명히 식량을 찾아 들로 나가야 했을 것이다.

4:39 야등 덩굴.

여기 언급된 식물의 정확한 형태는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이것이 달걀 모양의 쓴 들외 혹은 호리병박을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을 먹으면 고통과 격렬한 설사를 일으킨다. 생도들은 이 들외를 질 높은 음식인 보통 오이(민 11:5)로 여겼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연녹색의 작은 잎과 참외 같은 열매가 달린 콜로신쓰(colocynth)라는 덩굴 식물이 발견되는데 치명적인 결과를 줄 수 있다. 「70인역」과 「불가타역」에는 이것이 “콜로신쓰”라고 되어 있다.

4:39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

선지자라는 사실만으로 모든 지식이 주어지거나 모든 치료와 예방을 활용하는 일에서 면제되는 것도 아니다. 이 생도는 자신 앞에 있는 채소의 성질을 모르고 독을 모았으며 그의 노동의 열매를 먹은 모든 사람의 생명을 위태롭게 했다.

4:40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

쓴맛 때문에 음식에 독이 있다는 사실이 즉시 드러났다. 그것은 솥 안에 있는 온전한 다른 채소와 섞였겠지만, 호리병박은 솥 전체에 독을 퍼뜨렸다. 죄는 사망의 독이다. 그것의 영향은 퍼진다. 그것은 천태만상으로 날마다 우리 앞에 놓여있어 우리를 고통과 비애로 이끈다. 도처에서 찾을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죄와 오류를 멀리하는 것이 유일한 안전책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결과는 분명 사망일 것이다.

4:41 가루를 가져오라.

이 가루가 독초를 위한 천연 해독제인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은 오염된 여리고의 샘물에 던진 소금(2:20~22)과 동일한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가루는 해가 없었고, 그것을 먹는 사람들에게 생명과 건강을 주는 원료였다. 그것은 선지자의 손에 있을 때 사망의 원인인 죄의 영향을 중화시키는 생명의 표징이 되었다. 여기에 영적인 교훈이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망의 정죄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떡이다. 죄인이 아무리 오랫동안 사망의 악한 열매를 많이 먹었다 해도, 복음에는 치료와 회복의 능력이 있다. 성령은 죄로 인해 생긴 모든 악을 원상태로 회복할 능력이 있다. 하나님께는 온갖 종류의 죄악에 대한 해독제가 있다. 그리스도는 살려는 의지를 가진 모든 사람을 위한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다(요 6:27, 33, 35).

4:42 바알살리사.

이 성읍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 살리사(Shalisha)와 동일한 지역일 것이다(참조 삼상 9:14 주석).

4:42 처음 익은 식물.

모세의 율법에 따라, 추수한 모든 첫 열매는 하나님께 드려야 했으며, 제사장에게 가져와야 했다(민 18:12, 13; 신 18:4). 이 경우에는 여호와를 신실하게 예배하는 자가 그의 첫 열매를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가져왔다. 레위 제사장은 이보다 훨씬 전에 북방 왕국에서 사라졌으며(대하 11:13, 14), 따라서 이스라엘의 경건한 사람들은 선지자들을 여호와의 대표자로 인식하여 율법에 따라 제사장에게 드려야 할 제물을 선지자들에게 가져왔을 것이다.

4:42 보리떡.

팔레스타인에서 보리는 보통 동물 사료로 사용했다. 밀보다는 못하게 여겨졌지만 과자와 빵으로 만들어(삿 7:13; 요 6:9) 사람들이 먹기도 했다.

4:42 채소.

히브리어 카르멜(karmel), “열매.” 곡물 또는 밭작물의 일종일 것이다. 「제임스왕역」에 “husk”(껍질)로 번역되었고 난외주에 “보따리” 혹은 “의복”으로 되어 있는 이 히브리어는 성경 다른 곳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자루”(「개역한글판」) 혹은 “가방”을 뜻한다고 제안한다.

4:42 무리에게 주어.

심지어 선지자나 그와 함께한 사람들에게 이때는 궁핍한 때였다. 백성들은 배고팠고 음식은 부족했다. 엘리사는 자신과 자신의 이익을 생각할 수 있었지만, 백성들의 필요를 생각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광야에 계실 때,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마 14:14).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무리를 돌려보내 스스로 음식을 사먹도록 하려 했지만, 예수께서는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다(마 14:16).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지치고 궁핍한 무리들을 볼 때,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4:43 사환.

히브리어 므샤레트(mes∨aret), “종.” 그러나 흔히 “종”에 해당하는 에베드(‘ebed)라는 단어가 나타내는 것보다 높은 지위이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는 모세의 므샤레트라 불리고(출 24:13), 천사들은 므샤레팀(mes∨ahretim) 곧 “사역자들”이라 불린다(시 104:4).

이 사환은 첫 열매들을 인간의 안목으로 바라보았지만, 엘리사는 동일한 음식 선물을 믿음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환에게 내린 선지자의 명령은 어리석고 성취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어떻게 작은 보리떡 20개와 적은 곡식으로 배고픈 사람 100명을 만족케 할 것인가?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도 예수께서 보리떡 5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로 무리를 먹이려 하실 때 비슷한 심정으로 질문하였다.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요 6:9). 자신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편에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무수한 사람들이 오늘도 여전히 배고프다.

4:44 같이.

엘리사는 영감을 받아 말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는 선지자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하나님께는 무한한 능력이 있다. 그분의 자원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채울 수 있다. 그분의 손에 접촉되면 아무리 약소한 양식이라도 늘어날 수 있다. 이 몇 개 안 되는 빵 덩어리가 참석한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분히 채울 만큼 늘어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능력 때문이었다. 익명의 농부가 자신의 첫 열매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로 엘리사에게 가져왔다. 여호와께서 그 예물을 가납하셔서 그것 위에 당신의 축복을 얹으셨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여호와께서 우리의 예물을 받아 축복하신다. 할 일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과 자신의 부족함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과 모두를 위해 공급하시는 그분의 풍부함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들의 손에 있는 것이 궁핍한 자들의 필요를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면 채우고 남을 것이다.

하늘은 많은 사람이 믿는 것보다 지상과 가깝다. 하나님은 항상 이 땅에 사는 당신의 궁핍한 자녀들에게 관심을 두시며, 그들의 필요를 공급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나님의 능력이 궁핍한 자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역사하지 못할 지역이나 백성은 아무데도 없다. 모든 농작물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와 그분의 풍부한 사랑으로 인한 기적임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일하시며, 지상의 연약한 자녀들의 필요를 돌아보신다. 그분의 사랑과 능력이 오늘날에는 엘리사 시대만큼 현저하게 나타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우리의 눈이 열릴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여전히 임재하시며 여전히 사랑과 자비로 지상의 궁핍한 자녀들을 돌보고 계심을 지금보다 훨씬 더 자주 분명하게 이해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들이 여호와께 예물을 가져올 때, 그분의 능력과 축복으로 그들의 미약한 자원이 여러 배로 불어나 무수한 사람들의 현세적 및 영적 필요를 채울 수 있다. 오늘날 세상에 필요한 것은 선지자 엘리사가 지녔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믿음과 영적 통찰력, 용기와 긍휼, 능력과 영성이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열왕기하 4:1-38 엘리사, 미망인 그리고 수넴 여인

성경의 진리

열왕기하 4:1-38 엘리사, 미망인 그리고 수넴 여인

엘리사는 성경 이야기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인물 중 하나이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로서 엘리야의 사역을 물려받기도 하였다 (열왕기하 2:2). 그는 온힘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따랐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많은 기적을 행하셨다. 이 중 두 가지 기적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의 문제점들을 해결해 주시는 능력에 집중하려고 한다.

열왕기하 4:1-7: 두 아들을 가진 미망인

첫 번째 기적은 한 미망인과 두 아들의 이야기이다. 열왕기하 4장 1절 말씀에 따르면 이 여인은 그녀의 남편이 죽고난 후 큰 고난을 겪고 있었다.

열왕기하 4:1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위의 구절에 따르면, 이 여인은 주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던 자의 아내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의 남편은 그의 가족이 결코 처리할 수 없는 액수의 빚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리하여 채권자에게 두 아들을 노예로 넘겨야 하는 상황에 치달았다. 미망인은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에게 자신의 고통을 울부짓었다. 물론 그녀가 엘리사에게 도움을 청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긴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들에게 발걸음을 돌리기 마련이지 않은가?

열왕기하 4:2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엘리사 또한 미망인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빚에 대해 그녀를 비난 하지도 않았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미망인의 가족의 경제적 상황이 파산에 이르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걸렸을 것으로 본다. 많은 실수와 오차 없이 결코 하룻 밤 사이 이런 상황을 맞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에 어떠한 일들로 이러한 상황을 맞게 되었나가 아니라, 현재 상황에서 다급하게 도움을 필요로 했던 미망인이 주님을 찾았다는 것이다. 엘리사 또한 미망인의 골치아프고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요청을 무시하지 않았다. 바로 뾰족한 해결책이 떠올랐던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주시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엘리사는 미망인을 어떻게든 도우려는 자세가 되어있었다. 2절 말씀에서 엘리사의 물음에 대한 미망인의 대답을 살펴보자.

열왕기하 4:2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미망인은 아주 심각한 빈곤에 빠져 있었다. 그녀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빚을 어떻게든 갚아보려는 심정으로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버렸던 것이다. 식탁도, 침대도, 심지어 부엌 도구 조차도 없었다. 남아있던 한 가지는 기름 한 그릇.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는 기름 한 그릇 만으로도 충분하였다. 3-4절 말씀을 보자.

열왕기하 4:3-4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통해 미망인에게 빈 그릇을 빌려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 놓으라고 명령하셨다.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을 빼버리면 이러한 명령은 꽤나 무모한 조언일 수 밖에 없다. 과학적 논리를 따르자면 기름 한 그릇은 같은 크기의 그릇 하나 밖에는 채울 수가 없다. 그러므로, 기름 한 그릇으로 수많은 그릇을 채울 수 있다는 엘리사의 말은 결코 불가능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을 이야기에서 빼버린다면 말이다. 하나님 없이는 모든 것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인간과는 달리 과학적 논리에 의한 제한을 받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관한 한 중요한 것은 어떠한 것이 과학적인 논리와 일치하느냐가 아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느냐이다. 과학적인 설명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것들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절박한 미망인을 곤경에서 구해주시는 하나님! 이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항상 돕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항상 승리를 거두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다시 성경 말씀으로 되돌아 가자면, 엘리사의 조언은 하나님의 뜻과 완벽히 일치하였고, 그러므로 100% 이루어 질 수 밖에 없던 것이다. 엘리사의 말 그대로, 즉, 하나님의 뜻대로, 미망인이 (i)빈 그릇을 빌리고 (ii)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iii)모든 그릇에 기름을 붓고 (iv)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니 그대로 이루어졌다. 미망인은 그 날까지 기름 한 그릇이 그 많은 그릇을 채우는 광경을 본 적이 없으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미망인의 믿음이 필요했다. 하나님에 관한 한 어떠한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난 적이 있었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믿고 이를 따르는 것이다. 결국 미망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을까?

열왕기하 4:5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미망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랐다. 그녀는 엘리사와 헤어진 후 곧바로 빈 그릇을 빌리고,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그대로 말이다. 이에 대한 결과는 6절 말씀에서 볼 수 있다.

열왕기하 4:6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그녀는 빌린 그릇을 모두 기름으로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채울 빈 그릇이 없어지고 나서야 흐르던 기름이 멈추었다. 그들은 기름을 팔아 빚을 청산하고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열왕기하 4:7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기름을 판 돈으로 빚을 갚음은 물론 남은 돈으로 미망인의 가족이 생활할 수 있을만큼 넉넉했다. 그리하여 여인은 곤경에서 벗어남은 물론 넘치는 은혜를 받았다. 이는 모두 그녀가 주님을 믿고 도움을 요청하였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압박에 고통을 받던 미망인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았고, 그 결과 곤경에서 벗어나 부유한 여인이 될 수 있있다. 항상 우리에게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 있으신 주님을 찬미하라.

열왕기하 4:8-30: 수넴 여인

하나님께서 곤경에 처한 자들을 구해주시는 능력을 다루는 성경 말씀은 위의 미망인의 이야기 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곤경에 처한 자들에게 자비를 배푸시는 하나님이시며, 그러므로 성경은 믿음으로 곤경에서 벗어나는 자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 중 하나는 열왕기하 4장에 속한 이야기로서 위에 거론된 미망인과 두 아들의 이야기 뒤에 나온다. 이는 8장 부터 시작된다.

열왕기하 4:8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에 한 귀한 여인이 그를 강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 여인이다. 단, 이번 이야기 속의 여인은 가난한 미망인과는 반대로 경제적 걱정이 없는 높은 지위를 지닌 여인이었다. 어느 날 엘리사가 그 여인의 동네를 지나게 되었고, 그녀는 엘리사를 자신의 집으로 식사 초대를 하였고 마침내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 여인이 얼마나 엘리사를 존경하고 환대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자신이 존경하고 환대하고 싶지 않은 자에게 그 누가 매번 식사를 제공하겠는가? 이 여인은 왜 그토록 엘리사를 존경하였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9절 말씀에서 알 수 있다.

열왕기하 4:9

“여인이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이 여인에게 엘리사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엘리사를 향해 보인 존경과 환대는 곧 하나님을 향한 존경과 환대와도 같다. 그녀의 노력은 음식으로 끝나지 않았다. 9-10절 말씀을 보자.

열왕기하 4:9-10

“여인이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청하건대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리이다 하였더라“

이 여인은 실로 엘리사에게 큰 호의를 배풀었다. 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그가 언제든 머무를 수 있도록 작은 방까지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여인의 마음을 그냥 지나치실 하나님이 아니다. 11-13절 말씀을 보자.

열왕기하 4:11-13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에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 누웠더니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여인을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그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랴 왕에게나 사령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하니 여인이 이르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하나이다 하니라“

엘리사 또한 이 여인의 호의를 느끼고 이에 대한 답례로 왕이나 사령관에게 그녀를 대신해 부탁을 전해주리라는 제안을 하였으나, 충분히 만족할 만한 삶을 살고 있었던 여인에게는 그다지 솔깃하지 않았다. 그녀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14-17절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다.

열왕기하 4:14-17

“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까 하니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하니 이르되 다시 부르라 하여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하니 여인이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엘리사가 여인에게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이 여인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다시 말해, 과학적으로 이 여인과 노년의 남편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 논리에 의해 불가능 한 일들 마저도 이루어 내시는 분이 있으시니, 그 분은 하나님이시다. 미망인의 이야기를 통해 보았듯이 하나님께 불가능이란 없다.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것들은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이 여인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녀는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이 외에 중요한 사실은, 엘리사 또한 그녀의 바램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만약 엘리사가 그녀의 바램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왕이나 사령관에게 부탁할 것이 있는지 그녀에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 엘리사는 다른 이들과 똑같이 자신의 오감이나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만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 경우, 하나님께서는 엘리사에게 이 여인의 진실된 바램이 무엇인지 계시하지 않으셨다. 대신, 하나님께서는 게하시를 통해 이를 엘리사에게 알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시고 그리 하셨다. 엘리사에게 정보가 전달된 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직접 여인의 미래에 대해 알려주셨고, 엘리사는 여인에게 한 해가 지난 후 그녀가 사내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고 전해주었다. 16절은 엘리사의 계시에 대한 여인의 답변을 담고 있다.

열왕기하 4:16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여인은 엘리사가 그녀에게 거짓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바램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쉽게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성경이 논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들에 대해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 실제로 이루어지기에는 너무 비현실적으로 좋고 놀랍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선물과 은사는 놀랍고 완벽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야고보서 1:17). 하나님에 관한 한 “비현실적으로 놀랍고 훌륭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으로부터는 오직 좋고 진실된 것들만 오기 마련이다. 에베소서 3장 20절이 이야기 하듯,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하나님께서는 능하신 분이시다.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다. 여인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녀의 마음 속에서 아이를 갖게된다는 것은 정말이지 그녀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놀라운 일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엘리사의 예언이 거짓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은 놀라운 만큼 또한 사실이다. 17장은 이 약속이 이루어졌음을 이야기 한다.

열왕기하 4:17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엘리사가 여인에게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과연 한 해가 흐르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대로 그녀는 사내 아이를 낳게 되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나던 중, 건강적 문제로 더 큰 고통이 따랐다.

열왕기하 4:18-20

“그 아이가 자라매 하루는 추수꾼들에게 나가서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렀더니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사환에게 말하여 그의 어머니에게로 데려가라 하매 곧 어머니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죽은지라“

여인의 아들은 심각한 병에 걸려 금방 죽고 말았다. 야고보서 1장 17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선물은 모두 좋고 완벽하나, 이에 불구하고 아이는 사단의 공격을 받았다. 이 또한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 성경은 믿는 자의 자녀들, 형제자매, 아내, 혹은 믿는자 자신들이 질병에서 안전하다고 이야기 한 적이 없지 않는가? 우리의 적, 사단은 존재한다. 그 사단이 바로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성경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은 자들을 “마귀에게 짓눌린” 사람들이라고 칭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사도행전 10:38). 병든 자들은 마귀의 악한 영향에 짓눌리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죽음과 질병은 선물과 은사와 달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마귀에게서 오는 것이다. 이렇듯 마귀가 때론 사람들에게 질병을 가져다 줄 수도 있으나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마귀보다 훨씬 더 능하신 분이셔서 어떠한 질병이든 고치실 수 있다. 시편 103장 33절 말씀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시편 103:3

“그[하나님]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하나님께서는 과학적으로 치유가 불가능한 질병까지도 모두 치유하신다. 수넴 여인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하나님께서 죽은 아이를 살려내실 것인가? 아이의 죽음에 대한 여인의 반응과 하나님의 해결책을 살펴보도록 하자.

열왕기하 4:21-24

“그의 어머니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사환 한 명과 나귀 한 마리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하니 그 남편이 이르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거늘 그대가 오늘 어찌하여 그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냐 하는지라 여인이 이르되 평안을 비나이다 하니라 이에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몰고 가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위하여 달려가기를 멈추지 말라 하고“

위의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여인은 아이의 죽음마저도 되돌릴 수 있다고 믿었다. 죽은 아이 곁에서 애도를 하거나 남편에게 아이의 죽음을 알리는 대신 이 여인은 아이의 시신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대 위에 올려놓고, 그녀가 직접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러 갈 수 있도록 남편에게 사환 한 명과, 나귀 한 마리를 부탁하였다. 여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선물인 아들의 죽음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신의 아들의 죽음이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라고 받아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아무에게도 아이의 소식을 전하지 않고 곧장 엘리사를 찾아갔던 것이다. 25-28절에서 그 후 어떠한 상황이 펼쳐졌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열왕기하4:25-28

“드디어 갈멜 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그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 너는 달려가서 그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그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가만 두라 그의 영혼이 괴로워하지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하니라 여인이 이르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하니“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누구든 하나님의 계시 없이는 미래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엘리사는 여인의 아이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 지 알 방법이 없었다.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여 여인은 큰 슬픔에 잠겨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용기를 내어 아이를 떠나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갔다. 이에 대해 엘리사는 바로 대응하였다.

열왕기하 4:29-31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하는지라 아이의 어머니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따라가니라 게하시가 그들보다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지도 아니하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그에게 말하여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먼저 게하시가 여인의 집에 도착하여 엘리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으나 아이는 깨어나지 않았다. 얼마 후 여인과 엘리사가 집에 도착하였다.

열왕기하 4:32-33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이와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엘리사는 하나님께 기도를 올린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여인에게 약속하신 아이가 숨을 거두었고, 게히시가 엘리사의 조언대로 아이를 살려보려 했지만 아이는 살아날 기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엘리사는 한 순간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대신, 엘리사는 올바르게 상황에 대처한다. 즉,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올린다. 주어진 문제가 무엇이든 모든 해결책은 하나님께 있다. 엘리사는 해결책이 필요했고, 그 상황을 해결 할 방법을 알고계신 유일한 분이신 주님께 기도를 하였다. 그 결과, 34-35절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엘리사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열왕기하 4:34-35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 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위의 구절에서 엘리사의 행동은 엘리사 자신의 생각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알게된 해결책 이었다. 이는 기적적인 결과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 하나님의 계시로 인하여 죽었던 아이가 깨어나 여인의 품으로 돌아가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열왕기하 4:36-38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이르되 네 아들을 데리고 가라 하니라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여인을 깊은 슬픔에서 구원해 주셨다. 논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되돌릴 수 없을 듯 했던 아이의 죽음까지도 되돌리시며, 그의 도움을찾는 자들을 돕고자 하실 때 하나님께서 넘지 않으실 벽은 결코 없다는 사실을 보여시고자 하였던 것이다.

3. 결론

이 글에서 우리는 성경 속 두가지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어려움 속에서 구해주시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이 외에도 성경 속에는 이와 같은 기적적인이야기가 더 많이 있다. 이 글에서 살펴 본 미망인과 수넴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주어진 어려운 상황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들은 어둠 속에도 빛을 찾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내미시는 좋은 하나님이시며 그 분께 불가능이란 없다. 빈 그릇을 기름으로 가득 채우시고, 죽은 아이를 되살리시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 못하실 것이 없는 분이시다. 실로 우리가 생각하고 구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능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항상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에 의지하라. 그리하면 한치의 예외도 없이, 하나님께서 당신을 어떤 고난에서도 이끌어내 주실 것이다.

타소스 키울라초글루

매일말씀묵상. 10월 23일. 열왕기하 4장. > 매일말씀묵상

열왕기하 4장. 불신앙의 시대에 빛을 비춘 귀한 사람들.

1. 엘리사의 네 가지 기적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 과부의 기름에 대한 기적 (1~7), 수넴 여인이 늦게 얻은 아들이 죽은 후 다시 살아난 이야기 (8~37), 국에 들어간 독을 제거한 이야기 (38~41), 그리고 보리떡 20 개로 100 명을 먹인 이야기 (42~44) 입니다 .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타락했던 시대에 하나님은 엘리야와 엘리사를 보내셔서 각각25년과 50년을 사역하게 하셨는데, 이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영광을 깨달아 알게 하셨습니다.

2. 죽은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와 두 아들을 위하여 기름을 그치지 않게 하신 기적이나, 보리떡 이십 개로 백 명의 생도들이 함께 배불리 먹고 남긴 기적은,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된 기적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경우 모두 하나님께서는, 비록 적을지라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통해서 일하셨습니다. 무에서 유를 만드실 수 있으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누군가의 작은 헌신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거기에 은혜를 더욱 부어주시며 , 드리는 자의 믿음을 더하십니다 .

3. 그리고 선지자 생도들이 함께 생활하다가 끓인 국에 잘못 넣은 들호박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죽게 된 상황에서, 엘리사가 해독을 하여 살게 되었다는 기적은, 다른 기적들과 함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 주의 종들도 얼마나 곤고하며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었는가를 보여줍니다 .

4. 이런 상황 속에도 신앙이 빛나는 한 여인을 성경은 소개합니다 . 이름도 없이 수넴 여인이라고만 알려진 ‘ 한 귀한 여인 ’(8) 입니다 . 그녀는 엘리사가 그 길로 지날 때마다 숙식을 제공해준 여인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엘리사를 위해서 자기 집 위에 방을 만들고 , 거기에 ‘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 ’ 를 두었다는 상세한 묘사는 그녀의 주도면밀한 준비와 배려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

5. 엘리사는 여기에 감동하여 여인의 청을 들어주겠다고 하지만, 여인의 대답은(13) 여인이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얼마나 자족함으로 살고 있는지 그녀의 경건을 보여줍니다(딤전6:6). “ 저는 지금 이대로 주님의 은혜로 만족하고 살아갑니다 . 부족함이 없습니다 .” 라고 고백합니다 .

6.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아들이 없다는 상황을 살펴,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던 어느 날 이 아들이 죽게 되고, 여인은 서둘러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있는 갈멜산으로 갑니다. 여인의 믿음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빛납니다. 그녀는 원망이나 한탄 대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로 간 것입니다. 남편에게 그녀가 하는 말은 그녀의 신앙을 보여줍니다. “평안하다(23)” 즉 ‘잘 될 것입니다’라는 말입니다. 엘리사는 여인과 같이 서둘러 자기 지팡이를 가지고 사환 게하시로 하여금 그 집으로 가서 아들을 살리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인은 엘리사가 같이 가주기를 원하고 결국 엘리사가 당도하여 죽은 아들 위에 올라 엎드려 기도함으로 아들은 다시 살아납니다.

7. 히브리서 기자가 믿음의 장을 쓰면서 구약 믿음의 영웅들을 열거할 때 이 수넴 여인을 언급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 “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 히 11:35). 정확한 신분은 밝히지 않지만 , 이 말씀은 구약 성경에서 사르밧 과부와 수넴 여인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 불신앙이 편만하던 그 시대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 하나님의 뜻에 따라 통치하는 선한 왕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은 북 이스라엘에서 , 이런 귀한 믿음의 여인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습니다 . 우리 시대에도 불신앙과 불만족의 태도가 온 교회와 세상 안에 만연하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실과 상황이 , 우리 신앙의 나태함에 대한 핑계가 되지 못합니다 . 성경은 이 여인을 증인으로 우리 앞에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도저히 신앙인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저 북 이스라엘의 영적 형편에서도, 빛처럼 빛나는 사람들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도 이 불신앙과 불경건의 시대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흔들리지 않는 빛으로 살아가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옵소서. 등대와 같이 우리가 지켜야 할 자리를 굳게 지키며,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보이고, 하나님의 자비와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금씩 성경 알아가며 나도 변하려고 :: 열왕기하 4장. 기적(능력)에서 인간적인 향기가 나야 한다.

열왕기하 4장에서는 ‘엘리사의 기적편’이라고 말할 정도로 엘리사가 행한 기적을 중심으로 다룹니다. 4가지의 기적이 있는데, 두 가지는 인간적인 정을 느낄수 있는 기적이고, 다른 두가지는 ‘능력’에 초점을 맞춘 기적인듯 합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엘리사가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 한 여인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다.

1) 선지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죽었는데, 그 아내가 빚으로 인해 두 아이를 빼앗길 형편이 되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며 엘리사를 찾아옴

2)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집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여인은 기름 한 그릇 뿐이라고 함.

3) 엘리사는 밖에 나가서 이웃에게 그릇을 최대한 많이 빌리라고 하고 문을 닫고 기름을 빌려온 그릇에 옮겨 담으라고 함.

4) 여인이 아이들과 문을 닫고 기름을 옮겨 붇는데 빌려온 그릇에 다 차니 기름이 멈췄다.

5) 엘리사는 기름을 팔아 우선 빚을 갚고, 나머지로 두 아들과 생활하라고 함으로 문제 해결.

2. 엘리사가 수넴 여인에게 신세를 지고 엘리사는 감사하는 마음에 수넴 여인이 아들을 갖게 함.

1) 엘리사가 수넴 지역에 가면 한 귀한 여인이 엘리사를 강권하여 자기 집으로 모셔 음식을 대접함으로 엘리사가 수넴에 갈 때마다 그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2)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위하여 남편과 상의하여 작은 방을 만들고 침상과 책상, 의자와 촛대를 두어 머물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3) 하루는 엘리사가 게하시를 통해서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나, 여인은 소원이 없다고 한다.

4) 게하시는 그 여인이 아들이 없으니 아들을 얻게 해 주면 어떻겠는가 제안한다.

5) 엘리사는 여인을 불러 내년 이맘 때에 아들을 안으리라고 말해주나 여인은 믿지를 못했다.

3. 수넴 여인의 아들의 죽음과 엘리사가 그 아들을 다시 살림

1) 수넴 여인은 아들을 낳았고, 아이는 자라서 아버지와 함께 밭에 있을 때 머리가 아프다고 함.

2) 어머니의 품으로 온 그 아들은 낮까지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죽게 됨.

3) 수넴 여인은 아들을 선지자의 방에 눕히고, 남편의 허락을 받고 사환과 함께 나귀 한 마리를 타고 엘리사를 만나기 위해서 갈멜산으로 달려감.

4) 달려오는 여인을 발견한 게하시는 엘리사의 지시를 받고 그 여인을 마중 나가지만, 그 여인은 급히 엘리사에게 달려와 엘리사의 발을 안았고, 당황한 게하시는 물리치려 했다. 엘리사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알리시지는 않았지만, 이 여인에게 큰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5) 여인은 자신의 죄가 생각나서 아이가 죽은 거라며 호소했고 왜 자기에게 아들을 주어서 오히려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셨냐며 호소했다.

6) 상황을 파악한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지팡이를 주어 가는 도중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고 그 아이 얼굴에 지팡이를 놓으라고 했다. 그래도 여인이 엘리사 곁을 떠나지 않자, 엘리사도 하는 수 없이 여인을 따라 그 아이에게로 향했다.

7) 게아시가 먼저 그 아이의 얼굴에 지팡이를 놓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엘리사가 도착하자 엘리사는 문을 닫고 여호와께 기도하고 아이 위에 엎드려 자기의 입과 그의 입에, 자기의 눈을 그의 눈에, 자기의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을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해졌다. 엘리사는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그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뜸.

8) 그 여인은 엘리사의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고 아이를 안고 나갔다.

4. 엘리사가 독이 든 솥의 음식을 해독해 줌

1) 엘리사가 길갈에 있을 때, 기근이 들어 먹을 것이 없을 때 사환에게 선지자들을 위해서 큰 솥을 걸고 국을 끓이라고 함.

2) 사람들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갔다가 들포도넝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호박을 따서 가져왔다.

3) 그것을 썰어서 국에 넣고 끓여 먹으려고 하는데 한 사람이 솥에 죽음의 독이 있다고 소리치자 아무도 그것을 먹지 못했다.

4) 엘리사가 어떤 가루를 솥에 던지고 나서는, 퍼다가 무리에게 먹게 하니 솥에 독이 없어졌다.

5. 엘리사가 보리떡 이십 개와 자루에 담긴 채소로 많은 무리를 먹이심

1)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긴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드렸다.

2) 그것을 엘리사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는데, 사환이 100여명의 사람에게 어찌 이것을 주어 먹게 하겠냐고.. 너무 적은 양이라고 말했다.

3) 엘리사는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고 다시 말했고, 오히려 먹고 남을 것이라고 했다.

4) 사환이 그들 앞에서 주었더니 정말 여호와의 말씀대로 먹고 남게 되었다.

[정리2. 내용의 재구성_잘 정리해서 내것으로 만들기]

본장은 엘리사가 행한 기적 중 4가지에 대해서 다룬다. 처음에 두 가지는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기적이고, 나중에 두 가지는 기적이라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진 듯하다.

처음의 기적은 선지자의 제자 중 한 명이 아내와 두 아이를 남겨두고 죽게 되었다. 그 아내는 두 아이를 먹이기 위해서 빚을 졌고, 그 빚을 갚지 못하자 빚쟁이는 두 아이를 종으로 데리고 가려고 하는 상황이 되어 엘리사를 찾아와 도움을 구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엘리사는 이를 불쌍히 여기고 그 과부의 유일한 재산인 <기름 한 그릇>을 가지고 기적을 일으키신다. 많은 그릇을 빌려오게 하고 그릇에 기름을 옮겨 담아도 기름이 마르지 않는 것이다. 빌려온 그릇에 기름이 다 채워지자 기름은 멈췄다. 그 기름을 가지고 빚을 갚고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두 번째 기적은 엘리사를 잘 섬겨 주었던, 수넴에 사는 한 여인에 대한 것이다.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선지자를 위하여 자신의 집에 방을 마련하고 침상과 책상들 지날 때마다 머물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해 줄만큼 극진히 엘리사를 섬기던 여인이었다. 엘리사는 이 여인에게 아들을 가질 수 있는 복을 주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갑자기 죽게 되자, 엘리사는 다시 그 여인을 위하여 아이의 생명을 살려주게 된다.

세 번째 기적은 선지자의 생도들이 먹을 것이 없어 들에 있는 채소들을 거두어 먹을 때, 잘못된 넝쿨이 들어가 먹을 수 없던 음식을 엘리사가 가루를 넣어 해독케 하고 먹을 수 있게 했던 기적이다.

네 번째 기적은 누가 헌물한 제한된 떡과 채소로 백여 명의 선지자 생도들을 먹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환은 이것을 어떻게 선지자들을 모두 먹일 수 있겠는가? 의문을 가질 때, 엘리사는 오히려 먹고 남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실로 모두 먹고도 남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음을 말한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기적(능력)에는 인간적인 향기가 나야 한다.

엘리사의 기적을 집중 보도한 것이 열왕기하 4장인데, 엘리사의 기적은 놀라운 것들이다. 제한된 기름이 계속해서 흘런 넘친다든지… 태가 닫힌 여인이 아이를 갖게 된다든지… 죽은 사람을 살려낸다는 이야기다. 뒤에 나오는 음식의 독을 해독한다든지, 음식의 양이 들어나는 것과 같은 것보다는 앞에 나온 사건의 기적이 훨씬 그 파워가 크다.

그런데도 그 기적에는 인간적인 향기가 난다.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거나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위기에 처한 가정을 살리기 위해 능력을 행하신 것이다. 정성을 다해 섬기는 수넴 여자를 위해 무엇인가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에 아이를 갖을 수 있게 한 것이고, 늦게 얻은 아들의 생명을 살려내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달려와 우는 여인의 아들을 살려낸 것이다. 물론 뒤의 기적에서 인간의 향기가 나지않는 것은 아니다. 굶주리고 있던 자들의 음식에 독이 들어 있어서 먹지 못함을 보고 먹을 수 있도록 해독한 사건, 적은 음식으로 많은 사람을 먹여야 할 처지에서도 음식이 남는… 그런 따듯함과 스토리가 있는 기적인 것이다.

기적과 능력은 인간의 향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저 힘만, 능력만, 기적만 나타나서는 별 매력이 되지 못한다. 사람의 향기가 나는 기적은 그 기적의 현장에 있지 못한 우리에게까지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이 있다.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도와와지, 나도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살려야지, 나도 누군가를 먹일 수 있다면 먹여야지와 같은 우리 안에 잠자고 있거나, 죽어 있던 선한 감정들을 일으키고 우리를 희생하는 자리로 인도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2. 엘리사의 주변(선지자의 제자들)은 참 가난했다.

이 당시 선지자들의 제자들의 삶이 얼마나 가난했는지를 볼 수 있다. 돈이 없이 빚에 쫓기고, 먹을 것이 없어 들풀을 뜯어다 먹고, 누가 준 떡과 채소로 근근히 생활해 가는 선지자들의 생도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수넴 여자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을 것같다. 엘리사라고 해도 그렇게 넉넉하지는 않았고, 있는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다녀야 했던 것이다. 다행이도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극진히 대접해 주었고, 그것에 엘리사는 감복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물론 시대가 선지자들을 지원해주는 시대는 아니다.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다스리던 때다. 그러니 선지자들의 생계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어려운 시절에도 하나님의 죽은 선지자 생도의 남은 아내와 자녀들을 돌봐주셨다. 못먹을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하셨으며, 적은 음식으로도 먹고 남음이 있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또한 수넴 여자와 같이 귀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주님의 종들을 섬기는 사람을 세워주셨다.

없고 가난한 시절, 참 기적이 많이 일어났으며 선지자를 향한 대접은 부족하지 않고 넉넉했다.

없는 시절이 되도록 기도할 필요는 없지만, 없는 시절을 두려워하지는 말아야 겠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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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4(화) “열왕기하 4:1-7” / 작성: 이창호

2007년 8월 14일, 화요일

본문 : 열왕기하 4장 1절-7절

엘리야가 승천한 후 그의 겉옷을 취한 엘리사가 요단강을 가르고 건넌 기적을 계기로 선지자 생도들이 그를 엘리야의 영감을 받은 후계자로 인정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후계자로 성읍의 좋지 못한 물을 소금으로 고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사역의 초기에는 대머리라고 자신을 조롱하는 젊은 아이들을 향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서슴없이 그들을 저주하여 암곰으로 하여금 죽이게 하는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엘리사는 어제 살펴본 바와 같이 북이스라엘 왕인 여호람의 안하무인격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다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보고 인내하는 모습에서 사역초기에 자기 혈기를 억제하지 못했던 그가 점점 더 성숙한 선지자로 성장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은 결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저절로 성숙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서 신앙이 퇴보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창세기에 소개된 가인과 아벨 형제 사이의 참극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가인이 처음부터 아벨을 시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창 4:3-5)

“세월이 지난 후에” 참으로 의미 있는 구절입니다. 가인도 처음에는 분명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 자신의 수확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즉 하나님을 향한 중심을 담아 하나님께 드렸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행사가 그저 눈에 보이게 위한 형식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재물의 가치를 따지시지 않고, 그 재물에 담긴 사람의 정성,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다는 사실은 바로 가인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형식적으로 변했음을 의미합니다. 가인이 올바른 신앙인이라면 자신이 드린 재물을 하나님이 거부하셨다면, 무엇보다도 자신의 제물에 무슨 흠이 있었나, 즉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중심을 먼저 생각해야 되었으나, 자신을 돌아보기 보다는 오히려 남을 탓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신의 손으로 친동생을 살해하는 처참한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이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초심을 잃는 성숙하지 못한 신앙인을 통해서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죽음이라는 어두운 결과만이 초래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비록 분노를 참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로 성숙되어져 가는 엘리사는 하나님의 권능과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많은 이적들을 행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열왕기서 기자는 엘리사 선지자가 행한 많은 이적들을 상세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을 향한 초심을 잃지 않고 점차로 성숙되어져가는 신앙인을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시고, 바로 그 사역을 통해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재확인하여 주십니다.

오늘 살펴볼 본문의 내용은 신학생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한 가정이 해체될 위기의 상황에 봉착하게 되고 이 위기의 상황이 어떻게 극복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의 삶은 어찌 보면 믿기 전이나 믿은 후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아니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을 믿은 후에 더 많은 시련이 몰아쳐옴에 신앙의 근본이 흔들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엘리사 신학교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 가정의 가장임에도 학업을 하는 동안에 경제적 활동이 어려웠기에 이곳저곳에서 돈을 융통해서 겨우 생활을 하는 가난한 신학생이었습니다. 가난한 삶에도 불구하고 이 가정은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가장의 죽음으로 인해 이 집안은 커다란 시련에 처합니다. 가장의 죽음 그것도 그처럼 하나님을 경외했던 남편의 죽음 앞에서 하루아침에 과부가 된 부인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게다가 남편의 사망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바로 빚을 갚으라는 독촉과 함께 변제능력이 없으면 두 아들이 대신해서 종으로 팔려가야 한다는 소식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절망감에 빠진 그녀! 이 비련의 여인은 자신에게 닥친 이 위기의 상황에 대처했는가를 본문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4:1)

야간도주, 잠적, 해외도피 등과 같은 용어들은 하루아침에 과부가 된 여인, 그것도 지금 빚 독촉과 함께 두 아들이 종으로 끌려가야한다는 이 상황에서 이 여인이 생각할 수 있는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위기의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먼저 선지자 엘리사에게 와서 부르짖었습니다.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4:1)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이 엄청난 시련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기 보다는 자신이 처한 위기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야기 했다함은 바로 이 상황에서 과연 내가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할지를 하나님께 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이 여인이 자신에게 닥친 비참한 상황 앞에서 좌절하고 낙담만 했다면 그녀는 자포자기했거나, 그녀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자신에게 닥친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자식들과 함께 야간도주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도저히 저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가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되나요?”

엘리사는 이 여인에게 “그러면 당신이 진 빚이 얼마요? 나와 우리 신학교에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보겠소.”라고 하지 않고, “내가 당신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겠소. 집안에 무엇이 남아있소?”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엘리사가 마음만 먹으면 이곳저곳에서 이 가족이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돈을 융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가 그녀에게 집안에 무엇이 남아있느냐라고 물었다는 것은 타인의 힘에 의지하지 말고 집안의 것을 다 팔아서라도 너희가 스스로 빚을 갚아보라는 의미입니다. 만약에 엘리사가 이 여인에게 돈을 주었다면 홀로 남은 그녀는 평생을 남에게 의지하면서 살려고 했을 것이고, 나아가 그녀와 그 두 아들은 자신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권능을 체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녀가 자신의 집에 남은 것이라고는 기름 한 병이라고 하자, 엘리사는 이 여인에게 모든 이웃에게 구할 수 있을 만큼의 빈 그릇을 구해서, 그 빈 그릇에 기름을 부으면 빈 그릇이 없을 때까지 기름이 채워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같은 엘리사의 답변에 이 여인이 택할 길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무시하거나 엘리사의 말을 믿고 행하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고 엘리사의 말대로 행한다 할지라도 반신반의하면서 그저 대강 그릇 몇 개만을 빌릴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엘리사의 말에 철저히 복종했습니다. 그녀와 그 두 아들은 그릇에 기름을 채우려고 했으니 그저 그 말대로 행했습니다. 과연 엘리사의 말대로 빈 그릇이 없다고 할 때까지 기름은 그들이 빌려온 그릇을 가득 가득 채워졌습니다. 마지막 그릇에 기름이 가득 채워진 연후에 그 여인은 다시 엘리사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당신이 말씀한대로 했다고 하자 엘리사는 그녀에게 그러면 이제 그 기름을 팔아서 빚을 갚고 그 남은 것으로 너희 식구가 생활을 하라고 합니다. 만일 이 여인이 엘리사의 말을 반신반의해서 그릇 몇 개만을 빌렸다면 그녀는 하나님의 권능은 체험을 했을 지라도 빚을 갚지 못했거나 겨우 빚만을 갚고 앞으로도 궁핍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본문에는 그녀와 그 두 아들이 얼마만큼의 그릇에 기름을 채웠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녀가 자신에게 닥친 엄청난 시련과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는 자신의 상황을 그대로 하나님께 들고 나와 하나님을 뜻을 구하는 모습에서 그리고 엘리사의 이성적으로 불가능한 말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행하는 모습에서 그녀와 그 두 아들은 빚을 갚고도 그들이 생활하기에 충분할 만큼의 재물을 취했을 것입니다.

성숙한 엘리사를 통한 하나님의 사역은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릅니다. 고통과 시련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위기일 수 있지만, 신앙의 눈으로 본다면 오히려 우리의 신앙을 진일보시키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남편의 돌연한 죽음 앞에서도 그리고 그로 인한 집안의 위기 상황에서도 여인은 그 상황에 좌절하거나 도피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나아가서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갔을 때 그 모든 상황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녀와 그의 가족들로 하여금 스스로 일을 해서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완전한 복종을 요구하십니다. 물론 이에 대한 선택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완전한 순종과 부분적인 순종은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만약 이 가족이 순종하되 형식적 또는 부분적인 순종을 했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은 체험했으되 후회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순종을 했을 때는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가족을 위해 베푸신 이적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그들의 삶 전체를 관통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만을 보지 않고 그 상황을 통한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는 우리의 삶속에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풍성히 넘치시기를 간구 드립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저희들이 때로는 감당하기 너무 힘든 상황들로 인하여 결코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않도록 붙잡아 주시옵소서. 힘든 상황 속에도 하나님께 우리의 절박함을 그대로 아뢰고 하나님을 뜻을 구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저희들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저희들을 이끌어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되 철저히 믿기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되 철저하게 순종하기를 결단하는 저희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 영광 받아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열왕기하 4장

<은혜가 필요한 인생>

왕하 4:1-17

오늘 본문은 엘리사의 사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선지생도의 아내(입술로 은혜를 구함)

어느날 선지생도의 한 아내가 엘리야를 찾아와 울부짖었습니다.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2 Ki 4:1) 선지학교의 구성원 중 한 명이 죽었는데 그 아내가 찾아와 자신이 처한 안타까운 상황을 말하였습니다. 남편이 죽고 그가 남긴 빚 때문에 자식이 빚쟁이의 종으로 팔릴 위험에 처해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빚을 갚아야 하는데 갚을 돈이 없었고 또한 그것을 해결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그를 도왔습니다.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2 Ki 4:2) 그의 집에 기름 항아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이웃에게 그릇을 비렬오게 한 후 그가 가진 기름 항아리로 다른 그릇에 기름을 붓게 하였습니다. 기적적으로 기름이 계속 나왔습니다. 그래서 다른 모든 그릇에 기름을 가득채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 한 선지자생도의 유족이 극한 어려움에서 벗어나도록 하셨습니다.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2 Ki 4:7) 자녀가 빚 때문에 종으로 팔려갈 처지였는데 빚도 갚고 생활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엘리사의 때에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그 일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때는 어떨까요? 이 때에 선지생도의 아내가 극한 어려움에 처해 있었는데 여전히 다른 시대에도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전혀 길이 없는 그곳에 길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그 은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있습니다. 동일한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은혜를 배푸십니다. 오늘날 그렇게 작은 항아리에서 많은 기름이 나오지는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방법은 매우 다양합니다. 꼭 기적이 아니어도 기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그 백성에게 주어집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말씀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선지생도의 아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은혜는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하여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격없이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커서 그렇게 구하는 사람에게 많은 경우 채워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구한 것(하나님의 은혜)을 얻게 될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 더욱더 큰 것(하나님)을 얻게 될 것입니다.

2.수넴 여인(삶으로 은혜를 구함)

엘리사는 수넴에 사는 한 여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에 한 귀한 여인이 그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2 Ki 4:8) 그 여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엘리사를 존경하고 섬겼습니다. “여인이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청하건대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리이다 하였더라” (2 Ki 4:9–10) 그녀는 엘리사를 위해 음식으로 섬길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 자신의 집 옥상에 엘리사가 지나가다 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수넴 여인의 그러한 헌신을 보고 엘리사는 그에게 감사인사를 하기를 원했습니다.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그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랴 왕에게나 사령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하니 여인이 이르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하나이다 하니라” (2 Ki 4:13) 그러나 수넴 여인은 자신은 부족한 것이 없고 지금으로도 만족하다고 말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의 마음씨가 고마워 그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까 하니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하니” (2 Ki 4:14)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는 그녀에게 자녀가 없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녀는 자녀가 없었고 만약 그 남편이 나이가 좀 많았다면 그 남편이 죽고 나면 그녀는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자녀는 바랄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나이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많이 바랬겠지만 이제는 그 소망마저도 끊긴 상태였습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하니 여인이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2 Ki 4:16) 엘리사는 그녀가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년 후에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수넴 여인에게 아기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마음을 본 엘리사는 그녀에게 아이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도 일어납니다. 소망할수도 없는 곳에 사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였습니다. 그녀에게 아기는 그 어느것보다 더 필요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앞선 선지자생도의 아내는 있는 자녀를 종으로 뺴앗기는 것 때문에 아파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아이 자체를 가져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더욱더 절박한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랄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바랄 수도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그 길을 가다보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 일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가슴벅찬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때론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습니다.

고인이 된 선지생도의 아내와 그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넴 여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모습입니다.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을 만말 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니다. 우리는 자격없고 그래서 가능성도 없어 보이지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오직 그 분의 사랑 때문에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은혜를 구하십시오. 은혜를 만나십시오. 은혜를 구한다는 것은 또한 수넴 여인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가 그렇게 살았을 때 하나님께서 구하지도 않은 놀라운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녀가 구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그녀는 삶으로 구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녀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에 은혜를 주셨습니다. 가장 필요한 일에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은혜를 구하는 삶이 되어 예기치 않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도 많이 경험하기를 기도합니다.

<공급하시는 하나님>

왕하 4:38-44

오늘 본문은 엘리사를 통해 일어난 음식에 대한 두 가지의 기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선지자를 위한 음식

엘리사가 길갈에 있는 선지자 학교에 있을 때에 그곳에 흉년이 있었습니다. 굶기를 밥먹듯 하던 어느날 엘리사는 죽을 끓이라 말하였습니다.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2 Ki 4:38) 죽을 끓이라는 엘리사의 말에 따라 죽을 끓이기는 하였지만 그 안에 넣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들에 나가 먹을 것을 찾았습니다.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 들포도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호박을 따서 옷자락에 채워가지고 돌아와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그들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 (2 Ki 4:39) 그 사람은 들포도덩굴을 만나서 그것의 열매를 땄습니다. 이것이 무슨 열매인지에 대해서는 오늘날 정확히 알려진바는 없습니다. 덩굴로 구성된 식물인 것만 확실합니다. 식물학자들은 독기가 있어 많이 먹으면 위험한 오렌지 크기의 열매가 열리는 박과의 콜로신스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여하큰 이 사람도 이것이 그리 먹기에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흉년의 때에 그것을 발견한 것 마저도 운이 좋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들호박(콜로신스)으로 죽을 끓여 선지자들에게 제공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맛을 본 사람들이 도저히 먹지를 못하였습니다. “이에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더니 무리가 국을 먹다가 그들이 외쳐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죽음의 독이 있나이다 하고 능히 먹지 못하는지라” (2 Ki 4:40) 아무리 흉년이어서 무엇인들 먹을 것 같았으나 그것은 ‘독’이라 표현될 정도로 맛이 너무 이상하여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나섰습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이르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독이 없어지니라” (2 Ki 4:41) 엘리사가 음식가루를 조금 죽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러자 그 음식은 독한 맛이 없어지고 먹을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의 한 끼 식사는 그렇게 만찬은 아니었지만 맛있는 죽 한 그릇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먹은 음식이 화려한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흉년의 때에 계속하여 그렇게 음식을 공급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번에 먹은 한 끼는 그들이 흉년의 때에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함께하고 있음을 알기에 충분한 한 끼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꼐서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지극히 어려울 때에 제공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때로는 그 어려움을 한 꺼번에 일소할 수 있는 것을 주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주 작은 것을 통해 그 어려움 속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 용도의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2.보리빵 20개

한 사람이 보리빵 20개와 햇곡식을 가져왔습니다.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그가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2 Ki 4:42) 그 보리떡은 첫열매로 만든 빵이었습니다. 그것은 본래 제사장에게 가져가야 합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아닌 엘리사에게 가져왔다는 것은 아마 이 사람이 북이스라엘의 잘못된 종교체제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가 드린 것의 정당성과 소중함이 드러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그 빵을 주라 하였습니다. “그 사환이 이르되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2 Ki 4:43) 사환은 엘리사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랬습니다. 빵 20개를 백 명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4-5명이나 먹을 양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 빵을 받는 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음믈 말합니다. ‘먹고 남으리라’ 그 말씀대로 그들이 빵을 먹었을 때 먹고 남았습니다.

예수님의 오병이어를 생각나게 하는 엘리사의 기적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기적이라는 형식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엘리사의 이 기적은 모든 경우에 빵 20개로 백 명이 먹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때에 그렇게 하셨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시면 무엇인들 못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십병(오늘의 빵 20개)의 기적을 획일화시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꼐서 이런 기적을 행하심은 그 분의 뜻을 행하심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시대에도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일구어내는 오병이어는 참으로 귀합니다. 한 사람의 정의에 대한 작은 헌신이나 사랑으로 드리는 헌신 등이 있다면 그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이라는 모양을 취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드리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오병이어처럼 여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장 오병이어의 기적이 아니라 할지라도 때로는 10년 아니면 100년이 흘러 그러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당장 기적이라는 모양이나 결과만 생각하지 말고 오늘날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가 되도록 헌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변에서 오병이어를 행하시길 원하시는데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거룩한 도구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십니다. 필요한 경우 어떤 방식을 통해서라도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흉년이 들어 먹지 못하여도 넉넉합니다. 흉년 중에도 간구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주실 것입니다. 기적의 방법이든 작은 헌신의 방법이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공급이며 그것은 날마다 신비입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을 볼 수 있고 고백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은 하늘의 신비로 가득한 삶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 매이지 않는 사람>

본문/ 왕하 4:1-17

세상은 우리를 여러 것으로 매이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매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엘리사가 만난 두 여인이 나옵니다. 그들은 세상에 매일만 했으나 매이지 않은 여인들입니다.

1.가난한 과부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오늘날로 하면 아마 신학생 정도 되는 전도사님의 아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엘리사를 찾아 온 이유는 그의 남편이 갑작스럽게 죽었는데 빚쟁이가 찾아와 빚 대신 자녀들을 종으로 데려가려 한다는 것을 하소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참 기막힌 사연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선지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불행이 그의 집을 휘감고 있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그녀는 어찌 해야 합니까?

없다는 것은 무시받고, 절망의 순간에 봉착하게 되기도 합니다. 가난한 선지자의 미망인이 그랬습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은 그것에 매입니다. 그래서 무시받아 처절하고, 절망의 깊은 수렁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미망인은 그렇게 가난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엘리사를 찾아가서 하소연하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녀를 도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 집에 있던 기름 한 그릇이 수많은 그릇에 채울 수 있는 기름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가난한 선지자 미망인의 경우처럼 세상에는 그런 기막힌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왜 그런지 모르는 기막힌 일들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그것에 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기름 한 그릇으로 해결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가난에 매이지 말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조용히 기대하며 세상에 맞서 살아가십시오.

오늘 우리가 가난한 선지자 미망인과 같은 처지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하였을 것 같습니까? 오늘 우리가 이 땅을 살 때 그렇게 세상이 우리를 속일 때가 많이 있을 겁니다. 그 때 세상이 아무리 그렇게 우리를 속여도 세상에 매여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 매이지 말고 세상속에서 당당히 살아가십시오. 세상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당당히 살아가십시오.

2. 수넴성의 부유한 여인

엘리사가 수넴에 이를 때마다 엘리사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사양하는 엘리사에게 간청하여 식사를 대접할 정도로 엘리사를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녀는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생각하다가 엘리사를 위해 집에 작은 방을 만들 생각을 해냈습니다. 엘리사가 언제든지 편안히 쉴 수 있도록 엘리사만을 위한 방을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부유하면 그 부유에 매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부요하여도 교만해집니다. 그 부요로 돈 쓸 곳을 찾아 다니느라 바쁩니다. 그러나 수넴 성의 이 여인은 그 부요에 매이지 않고 선한 일에 마음을 썼습니다.

수넴 성의 여인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하여 엘리사는 그녀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수넴성의 여인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였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들을 낳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 있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지요. 감사하게도 수넴 성의 여인은 자신의 부요에 매이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가지고 선한 일에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인가를 가졌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사람은 가진 것이 가장 위험합니다. 가진 그것에 매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매이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그렇게 섬기십시오. 자신이 가진 재산, 재능 모든 것으로 섬기십시오. 그것은 선한 것을 하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힘들어서 매이고,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행복해서 매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든 것의 정체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세상이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세상에 매이게 만드는 것은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초월하여 살아야 합니다. 세상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세상에 매이지 말고 하나님께 매여셔 살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합니다.

<담대한 소원>

본문/ 왕하 4:18-37

오늘 본문은 수넴 성 여인의 아들이 죽은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넴 성 여인은 죽은 아들을 두고 살아나기를 바라는 담대한 소원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 소원은 이루어져 수넴 성 여인은 다시 아들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말씀을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수넴 성 여인 아들의 소생

수넴 성 여인은 아들이 없었는데 엘리사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하였을 무렵에 아이가 갑자기 버리가 아프다고 호소하였습니다. 집에 들어간 아이는 어머니의 무릎에서 그만 죽음을 맞이합니다. 갑작스럽게 이 황당한 사건을 접한 수넴 성 여인은 그 순간 담대한 소원을 가지게 마음에 품습니다. 엘리사를 만나면 이 아이가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아이가 없을 때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 주셨는데 지금 갑자기 데려가심은 부당하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의 죽음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급히 엘리사를 모시러 갑니다.

수넴 성 여인을 만난 엘리사는 그녀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수넴 성 여인의 아들은 소생하게 됩니다. 수넴 성 여인의 당돌하면서도 담대한 소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수넴 성 여인의 아들이 소생한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보니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사건은 대단한 사건입니다. 성경에서도 죽은 자가 살아나는 사건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넴 성 여인의 믿음은 그의 아들을 살렸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냥 그대로 죽음으로 끝났을 일이 수넴 성 여인의 경우는 그녀의 담대한 믿음으로 소생되는 사건을 맞이한 것입니다.

우리가 품어 보았던 담대한 소원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저도 담대한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그것이 이루어질지 이루어지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품고 가고 있는 담대한 소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담대한 소원을 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2.오늘날의 의미

수넴 성 여인의 아들이 소생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도 실제 사견속에서 이런 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요? 신문보도를 통해 우리는 광신적 믿음의 소유자들을 접하곤 합니다. 죽은 지인이 소생할 거라고 생각하여 시신을 오랫동안 방치하고 기다린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정상적인 신앙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광신도라고 말합니다. 분명히 잘못된 신앙입니다. 그렇다면 그들과 수넴 성 여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수넴 성 여인은 아들의 소생을 바랬지만 그것을 말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숨기고 빠르게 움직여서 엘리사를 모셔왔습니다. 그녀는 상식을 초월하여 담대한 소원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상식선에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담대한 소원을 가질 때 그것이 많은 경우 현실적이지 않게 보일 수 있고 상식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식 초월성을 가집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상식안에 있어야 합니다. 상식을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수넴 성 여인이 빠르게 움직였던 것입니다. 또한 간청과 강청의 차이도 알아야 합니다. 수넴 성 여인은 강청한 것이 아닙니다. 간청한 것입니다. 강청은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간청은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도 받아들입니다. 다윗이 그의 아들이 중병에 걸렸을 때 그렇게 기도했고, 바울이 육체의 가시가 있을 때 그렇게 간청했습니다. 또한 시대와 시기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기적은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에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 전 시대에는 거의 없습니다. 출애굽 할 때를 제외하곤 거의 없습니다. 또한 그것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시기에도 그렇게 많은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엘리야가 소생한 것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셨습니다. 그러한 기적이 많이 일어난 이유는 시대적 소명과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시대에 다른 것을 강청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래서 어느 시대나 어떤 일이든 가능하십니다. 그러나 또한 사려깊은 분입니다. 그래서 시기와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담대한 소원으로 하나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런데 수넴 성 여인이 했던 것처럼 아들의 소생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가져야 하는 담대한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을 바래야 합니다. 우리 시대에 우리가 가야야 하는 담대한 소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 분의 자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담대한 소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니라 하여도 우리는 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 담대한 소원이 혼자만의 망상이나 상식을 (초월한 것이 아니라)벗어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우리가 품는 그 담대한 소원을 통해 위대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 나라를 더욱더 이룰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 Q T 왕하 4:1-10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언제나 늘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우리는 늘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어느곳에 있든지 그곳에는 하나님이 인도하시고자 하시는 선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고자 하는 선한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따라가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가며 선한 열매를 맺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임한 한 여인의 경험을 통해 오늘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함께 생각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으로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 중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채주가 이르러 나의 두 아이를 취하여 그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1절) 가난한 선지자 생도가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가난한 신학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착한 신학생에게 변고가 생겨서 결국은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그런데 더욱더 슬픈 일은 일하여 벌 수 있는 남편이 죽자 빚쟁이들이 찾아와서 빚을 받기 위해 두 아들을 노예로 팔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하고 가련한 일입니까? 선한 사람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이 세상은 죄로 인하여 많은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긴급한 처지에 있을 때 아이들의 어머니는 한 가지 희망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여기에서 엘리사를 찾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리고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부르짖었습니다. 엘리사에게 돈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그러나 여인은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 엘리사가 여인에게 묻습니다. “네 집에 무엇이 있느냐?” 여인은 집에 기름 한 병이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때 엘리사는 그 기름 한 병으로 모든 빚을 청산하고 또 가족들이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얻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기름 한 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름 한 병이 놀라운 일을 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그 기름 한 병이 그렇게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것을 전혀 예기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름 한 병은 놀라운 일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름 한 병을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가지고 있던 기름 한 병이 놀라운 일을 이루었던 것처럼 오늘날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극히 작은 것 하나가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것을 잘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더 많은 그 무엇보다 지금 가지고 있는 그것을 잘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지금 가진 것으로도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크신 역사로 인도하실 때도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가진 그 무엇을 사용하셔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로 “가로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대로 옮겨 놓으라”(3-4절) 하나님은 여인에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함에 있어 동역자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냥 그 집에 기름으로 가득한 드럼이 하늘에서 내려오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혼자 하지 않으시고 여인이 믿음으로 동참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인에게 빈 그릇을 빌려 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여인에게 돈을 빌려 오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빈 그릇을 빌려오라고 하셨다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만약 돈을 빌려 오라고 하셨다면 여인은 돈을 얼마나 빌릴 수 있을까요? 아마 거의 빌리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줄 사람은 거의 없었겠지요. 그러나 여인에게 주어진 요구는 빈 그릇이었습니다. 좋은 그릇도 아닙니다. 빈 그릇이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그릇은 빌리기에 조금 더 수월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인에게 여인이 할 수 없는 일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여인이 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게다가 여인을 동역자로 부르신 것은 여인이 그 일에 참여하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실재적으로 받을 기름의 양에 있어서도 여인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인이 빌려오는 빈 그릇만큼만 기름은 주어졌습니다. 빌려온 그릇에 기름이 다 채워졌을 때 그에 맞추어 기름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로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최선을 다 한 만큼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로, 우리에게 최선을 요구하실 때 우리는 그 일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크신 은혜를 주시는 은혜의 방법인 줄을 알아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매일 호흡하는 공기와 마시는 물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십시오. 매일 아침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며 기도하십시오. 오늘 내가 가진 것을 소홀히 여기지 말고 그것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며 정성껏 신실함으로 행하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 일 안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내 힘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십시오.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사모하십시오. 바로 그렇게 사는 우리의 삶 가운데 주님의 아름다운 인도하심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내게 있는 것이 내 것은 아닙니다 Q T 왕하 4:11-24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자기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관리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기도 하고 다시 거두어 가시기도 합니다.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요, 거두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니 우리는 그 분 앞에서 겸손히 순종해야 합니다. 주실 때도, 거두어 가실 때도 조용히 순종해야합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섬기십시오 오늘 본문에는 수넴 성에 사는 믿음 좋은 한 여인이 나옵니다. 이 여인은 엘리사를 위해 자신의 집에 엘리사를위한 공간을 따로 준비할 정도로 믿음에 열심인 사람이었습니다. 어느날 엘리사가 그 여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을 때 그 여인은 ‘필요한 것이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그 자체로서 엘리사를 돕고 섬겼던 것입니다.

엘리사가 그 여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에 여인은 자신은 필요한 것이 없으며 지금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그 여인에게 필요한 것이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세상에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 중에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모든 사람이 부족합니다. 한 사람도 예외없이 모든 사람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 부족함 가운데 그 부족함을 부족함으로 여기지 않고 이 여인처럼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 때만이 진정한 채움이 있습니다. 만족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부요한 자입니다.

만족하는 자는 부족하여도 그것이 괴로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얻기 위해 살지 않습니다. 있는 것에 만족하기에 감사하며 삽니다. 있는 것에 만족하기에 이 여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이 여인은 딱히 필요한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 여인은 자식이 없었습니다. 이 당시 자식이 없다는 것은 아주 큰 괴로움 중에 하나였습니다. 오늘날도 자식이 없으면 크게 상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당시에는 자식이 없으면 죄인 처럼 여기던 시기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자식이 없는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이 여인에게 그렇게 크게 부족하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자식 없음이 마음에 한이 되었다면 이 여인은 엘리사가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었을 때에 바로 ‘자식이 필요하다’고 말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필요한 것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자식 없음을 그렇게 크게 한 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넴 성의 이 여인도 역시 부족한 것이 많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그 것을 부족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바로 그런 자세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으로 선지자 엘리사를 섬기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남을 섬기려는 마음을 갖지 못합니다. 오히려 더욱더 많이 가지기만을 소망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 수넴 성의 여인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감사히 알고 그것으로 선한 일을 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갖지 못한 것을 더 가지려고 하며, 불만족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것은 부족한 것으로 인정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선한 일을 하고 섬기는 일을 하기 위해 수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가지고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면서 더 가지려고 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아이가 없이도 만족하며 믿음으로 살던 수넴 성의 여인에게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참으로 행복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느날 아이가 급작스러운 병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여인의 무릎에서 죽어갈 때 여인은 무엇을 생각하였을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아이가 죽자 수넴 성의 여인은 아이를 엘리사의 침대에 눕히고 남편을 포함한 다른 사람에게 비밀로 한 채 엘리사를 찾아 나섭니다.

아이는 수넴 성의 여인이 바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 아이를 데려가신 것일까요? 우리는 이 때 기억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여인은 아이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아이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아이가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이 거두어 가신 것입니다. 여인이 빼앗긴 그 아이는 본래 없던 아이였습니다.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가지게 되면 이제는 항상 그것이 자기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엇 하나 가지면 영원 전부터 그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 처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두어 가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무엇인가 주어진 것은 이제 영원히 내 것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계속 가지고 있으라고 주어진 것도 아닙니다. 내게 무엇인가 주어진 것은 그것으로 무엇인가 하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으로 훈련을 하도록 주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1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1억이 또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1억을 잃게 하여 그것을 가지고 그를 훈련시키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 1억이 영원전부터 자기 것이었던 것처럼 잃은 것에 대해 분노하며 잊지를 못합니다. 1억은 추가적으로 임시적으로 주어진 것이었기에 실재로는 자기가 잃은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1억을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잃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1억은 훈련을 위해 주어진 것인데 잃은 사람들이 그것을 훈련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의 존재 자체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잃어 버림을 견디지를 못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내가 그것을 영원히 가지고 영원히 내 것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나 자신이 훈련되어지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수넴 성의 여인은 자신의 아들의 죽음을 조용히 대하고 있습니다. 아주 조용히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가서 아이의 죽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찾습니다. 아주 조용히. 내게 있는 그것. 그것에 감사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것을 잘 사용하십시오. 단돈 1000원을 가지고도 잘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많이 가지지 못하여서 아우성이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너무 가져서 문제입니다. 그들이 가진 것을 잘 사용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들은 너무 많이 가진 것입니다. 잘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 죄는 비례하여 더 큽니다. 귀한 것을 묻어두고만 있으니 그 죄가 더 큽니다. 잘 사용하십시오. 내가 오늘 가지고 있는 그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라는 ‘은혜의 법칙’을 알고 고백하며 내가 가진 그것으로 욕심부리지 말고 귀하고 아름답게 선한 일을 위하여 사용하십시오.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인심써가며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복입니다. 각주>13절 주밀하다 빈틈이 없이 매우 찬찬하다. 원어의 의미는 “깜짝 놀라게 하다” 13절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

담대한 소망 Q T 왕하 4:25-37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일을 소망해 본적이 있습니까? 그러한 일을 소망한 다는 것은 꺾일 확률이 높기에 의험한 것이지만 그러나 확실하게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런 일을 소망하십시오. 그 일이 진정 필요한 것이라면 그 일을 소망하십시오. ‘부르짖어 경험’하는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담대한 소망 오늘 본문에 나오는 수넴 성 여인의 소망에 저는 ‘담대한 소망’이라는 이름을 붙여 봅니다. 수넴 성 여인이 가지고 있던 소망은 참으로 담대한 소망이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소망이었습니다. 그 소망은 작은 가능성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확실한 가능성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수넴 성의 여인처럼 죽은 사람을 침대에 누이고 저를 찾아 온다면 저는 그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수넴 성의 여인의 행동을 무조건 따라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이 수넴 성 여인에게 일어난 일이 진실이라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오늘날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믿어 의심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목사에게 조차도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그안에 담대한 마음을 주셨고 그래서 담대한 마음으로 그 희박한 가능성을 믿고 그 일을 소망하는 것. 그것은 참으로 담대한 것이기에 그것을 ‘담대한 소망’이라고 이름붙입니다.

‘담대한 소망’은 일어날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일입니다. 그러나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담대한 소망과 거짓된 환상을 구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짓된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막연히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개인적인 마음으로 담대한 소망을 갖기도 합니다. 그래서 망상에 가까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우리의 담대한 소망이 그런 망상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기는,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라하여도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나님만이 역사하시는 특이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담대한 소망을 품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담대한 소망을 품으십시오. 선한 마음으로, 선한 믿음으로 담대한 소망을 품으십시오. 어떤 누구도 불가능하다 말하여도 우리 안에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참으로 그 일이 일어나기를 소망하지만 가능성이 거의 제로인 것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 ‘담대한 소망’을 품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를 간구하십시오. 담대한 소망은 모든 것에 열려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담대한 소망을 가졌고 그 소망은 놀랍게 성취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수넴 성의 이름 모를 한 여인의 담대한 소망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죽었던 자신의 아들을 다시 안을 수 있었습니다. 담대한 소망을 가질 때 자신의 아들이 죽은 것을 알아 차리고 엘리사에게 가기까지, 그리고 엘리사를 만나서도 수넴 성의 이 여인은 그 자신 안에 품고 있는 담대한 소망을 한 마디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수넴 성의 여인이 한 마디라도 ‘죽은 아들이 살아나기를 바란다’는 말이 없습니다. 자신의 죽은 아들이 살아 나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실히 믿기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아들의 죽음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여인은 엘리사에게 조차도 자신의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란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침묵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여인은 자신의 죽은 아들이 살아 나기를 바라는 ‘담대한 소망’을 품었으면서도 이 일에 아주 조심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 나기를 바라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여인은 아주 신중하게 그 담대한 소망을 품었습니다. 이 바람이 그 녀 안에서 아주 강렬하였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지만 엘리사는 알았습니다. 담대한 소망을 가질 때는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떠벌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조심스럽게 간절히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바라는 이 담대한 소망의 자세를 보십시오. 이 여인은 이 일에 아주 침착하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아주 진실하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 담대한 소망을 통해 무엇을 이용해 먹거나, 이것을 통해 믿음을 증명하려는 그런 자세가 아닙니다. 이 일을 통해 한 생명이 살기를 바라는 간절한 간구입니다.

또한 담대한 소망을 가질 때 어떤 사람은 시도 때도 없이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담대한 소망이기 보다는 허망한 욕심들입니다. 이 여인은 아들이 없을 때도 만족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어떤 면에 있어서, 이 여인은 만족하며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었기에 이렇게 담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담대한 소망을 하나님이 들어주신 것입니다. 무조건 담대한 소망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강한 마음이나 하나님 앞에 강렬하게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는 아주 특별한 일에 담대한 소망을 가지십시오. 담대한 소망은 아주 강렬한 것입니다. 그런 강렬함이 여러 번 있으면 긴장하여 터져 죽을 것입니다. 꼭 필요할 때 하나님 앞에 강렬하게 소망하십시오. 그러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 같던 그 일이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담대한 소망!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때로는 필요하다면 세상의 모든 법을 바꾸어서라도 우리의 담대한 소망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때로는 담대한 소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가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주인이시오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경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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