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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닛시 뜻 | 여호와 닛시 Jehovah-Nissi | 제이어스 J-Us | Live Worship [Breakthrough] 인기 답변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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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닛시(히브리어:יְהוָה נִסִּי, Jehovah-nissi, 여호와는 나의 승리 혹은 깃발)란 성경 출애굽기에서 나타나는데 모세가 르비딤에서 아말렉에게 승리하고 그가 세운 제단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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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어스 #BREAKTHROUGH #여호와닛시
적군이 몰려올 때, 찬양하는 자들을 앞장세워
군대를 이끌었던 여호사밧처럼
우리도 완전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가로막힌 상황을 뚫고 나아가길 원했습니다.
제이어스는 어려움 앞에서 더 깊은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
형식에 매이지 않은 채 자유롭게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예배 가운데 고백하게 하신 노랫말과 멜로디를 이번 앨범에 담았습니다.
BREAKTHROUGH ; 돌파
이 시대와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적군을 향해
유일한 돌파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달려갑시다!

04 여호와 닛시
작사 김효정, 신용운
작곡 제이어스(J-US)
편곡 박다니엘

* 제이어스의 가치를 담은 굿즈가 새롭게 발매되었습니다!
J STORE : https://www.jsto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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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다섯가지 이름 – 이레,닛시,라파,샬롬,삼마

(창세기 22:14) #2 여호와 닛시 :하나님은 승리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말렉 사람에 … (출애굽기 17:15) #3 여호와 라파 :하나님은 치료자이십니다 그분의 뜻에 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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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ts.tv

Date Published: 11/23/2022

View: 9762

여호와이레,여호와삼마,여호와닛시,여호와라파,여호와샬롬 …

‘여호와(야훼)는 나의 깃발이다’ 라는 뜻의 헤브라이어. 헤브라이어 닛시는 깃발, 신호용 장대 등의 뜻인데,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말은 승리와 소망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cheshires.tistory.com

Date Published: 6/24/2021

View: 8752

[스크랩] 여호와 이레, 여호와 닛시, 여호와 라파 뜻이

모리아산의 별명. 뜻은 [여호와께서 보심]. 또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심].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한 때, 하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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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june153.tistory.com

Date Published: 6/2/2022

View: 590

배영진목사 설교 – 여호와 닛시 – 하늘문교회

여호와의 이름이 닛시다 이겁니다. 닛시라는 말은 나의 깃발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닛시라고 하면 ‘여호와하나님은 나의 깃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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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eavensdoor.or.kr

Date Published: 4/5/2022

View: 3097

하나님의 이름(8)여호와 닛시(출 17:8-16)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는 이 승리를 경험한 후 제단 하나를 쌓고 그 제단의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부르게 됩니다. ‘닛시’는 승리를 상징하는 깃발(banner)이라는 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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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imr.co.kr

Date Published: 1/12/2021

View: 3385

[여호와 이름] “여호와 닛시”(출17:8-16) – 복음 빵집

‘여호와 닛시’ יהוה נסי(예호와 닛시 3071)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이제부터 영원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깃발이 되신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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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dk153.tistory.com

Date Published: 2/9/2021

View: 3323

“여호와 닛시” 출애굽기 17:8-16 (01/06/2019) – 보스톤한인교회

그리고 이름을 붙입니다. ‘여호와 닛시.’ 제사장 나라인데 당연히 제단을 쌓아야죠. ‘닛시’의 뜻은 ‘나의 깃발’, ‘My flag’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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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cboston.org

Date Published: 10/5/2022

View: 2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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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닛시 Jehovah-Nissi | 제이어스 J-US | Live Worship [BREAKTHR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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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여호와 닛시 뜻

  • Author: J-US 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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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6. 12.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6dRRMzTEp8Y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여호와 닛시(히브리어:יְהוָה נִסִּי, Jehovah-nissi, 여호와는 나의 승리 혹은 깃발)란 성경 출애굽기에서 나타나는데 모세가 르비딤에서 아말렉에게 승리하고 그가 세운 제단에게 주어진 이름이다.[1][2]

번역 [ 편집 ]

첫 번째 단어의 문구는 테트라그라매톤인 여호와의 이름 자음 4글자인 여호와(יהוה)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영어성경에서 번역하는 경우 주님(LORD)이다. 여호와는 그의 히브리어 이름을 기독교적 영국식 발성의 이름이다. 70인 성경 번역자들은 니시 (nis·si’ )가 누스 (nus , 피난처로 도피함) 로부터 파생되었다고 믿었고, 그것을 “주님께서는 나의 피난처”라고 번역하게 되었다.[3] 그러나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 역에서는 그것이 나사스(na·sas’, 올림, 높임)로부터 파생되었다고 보고 여호와는 나의 높임이라고 번역하였다.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와 같은 많은 현대 기독교 번역은 그 이름을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고 번역하였다. 니시(Niss)의 어원인 네스(nês)는 히브리어로 깃발 혹은 승리를 의미한다.[4]

해석 [ 편집 ]

출애굽기 17장에서 모세가 산위에 있으면서 그의 지팡이를 위로 올리는 동안에는 이긴다는 것에 대한 해석에서 마튜 헨리(Matthew Henry)는 다음과 같이 주목한다. 여호와 니시는 – 여호와는 나의 깃발- 모세의 행동에서는 승리(깃발)로서 하나님의 홀이 올려지는 것을 언급한다고 한다. 여호와의 권능의 임재가 바로 승리였다. 승리의 날에 다 함께 기뻐하며 그 제단을 세웠다는 것을 기록하였다고 한다.”[5]

같이 보기 [ 편집 ]

#1

여호와 이레

:하나님은 미리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대신 양을 준비해 주셨다. 아브라함은 그 산을 여호와 이레라 이름했다. (창세기 22:14)

#2

여호와 닛시

:하나님은 승리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말렉 사람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모세가 세운 제단에 붙은 이름이다. (출애굽기 17:15)

#3

여호와 라파

:하나님은 치료자이십니다 그분의 뜻에 따라 살면 질병의 고통도 극복하고 치유될 수 있다.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않겠다” (출애굽기 15:26)

#4

여호와 샬롬

:하나님은 평강이십니다 기드온이 여호와로부터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고무의 말씀을 받앗을 때 쌓은 제단 이름이다. (사사기 6:24)

#5

여호와 삼마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는 분이십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여호와의 영광이 떠난 것을 보았으나, 이제 새로운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토록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할 것을 보았을 때 ‘여호와삼마’하고 외쳤다. (에스겔 48:35)

#1여호와 이레:하나님은 미리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대신 양을 준비해 주셨다. 아브라함은 그 산을 여호와 이레라 이름했다. (창세기 22:14)#2여호와 닛시:하나님은 승리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말렉 사람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모세가 세운 제단에 붙은 이름이다. (출애굽기 17:15)#3여호와 라파:하나님은 치료자이십니다 그분의 뜻에 따라 살면 질병의 고통도 극복하고 치유될 수 있다.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않겠다” (출애굽기 15:26)#4여호와 샬롬:하나님은 평강이십니다 기드온이 여호와로부터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고무의 말씀을 받앗을 때 쌓은 제단 이름이다. (사사기 6:24)#5여호와 삼마: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는 분이십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여호와의 영광이 떠난 것을 보았으나, 이제 새로운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토록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할 것을 보았을 때 ‘여호와삼마’하고 외쳤다. (에스겔 48:35)

여호와이레,여호와삼마,여호와닛시,여호와라파,여호와샬롬, 에벤에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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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이레 [Jehovah-Jireh] — 준비하시는 하나님

즉 여호와(야훼)가 준비한다 라는 뜻 입니다. 신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순종을 보고 그의 아들을 대신할 숫양을 미리 준비하여 숫양을 번제로 바치게 하였는데 이것은 후에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의 구속사적 예표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산을 여호와이레라 이름하였지요. 즉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려고 준비한 곳에 대해 붙여진 이름입니다.

여호와삼마 [Jehovah-Shammah] — 함께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야훼)가 거기 거한다’는 뜻의 헤브라이어. 헤브라이어로 ‘삼마’는 거하다, 존재하다의 뜻인데,

상황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항상 함께 필요한 곳에 거한다는 의미이다. ‘여호와(야훼)가 거기 계신다’는 뜻으로, 구약성경에 에스겔(에제키엘)의 환상 중에 하늘의 예루살렘에 붙여진 명칭이다.

《에스겔서》 48장 35절

“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고 되어 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여호와의 영광이 떠난 것을 보았으나, 이제 새로운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토록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할 것을 보았을 때 ‘여호와삼마’하고 외쳤다.

여호와닛시 [Jehovah-Nissi] — 승리가 되시는 하나님

‘여호와(야훼)는 나의 깃발이다’ 라는 뜻의 헤브라이어. 헤브라이어 닛시는 깃발, 신호용 장대 등의 뜻인데,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말은 승리와 소망을 뜻한다.

구약성경 모세가 아말렉 군대와 싸워 승리한 기념으로 세운 제단에 붙여진 명칭이다.

《출애굽기》 17장 15~16절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닛시라 하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여기에는 승리를 준 여호와에 대한 확신이 표시되어 있다. 상징적으로 여호와는 구원과 인도와 보호, 승리의 능력을 의미하며,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뜻한다. 여호와는 르비딤에서 아말렉을 물리친 후 모세에게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닛시라 부르게 하였다. 또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도록 하였다.

(사무엘상 17:47) 전쟁의 승패는 인간의 능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여호와라파(jehovah-Rapha) — “치료의 하나님”(Healing God)

출애굽기 15장 26절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며 살면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그분의 뜻에 따라 살면 질병의 고통도 극복하고 치유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그 분은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여호와샬롬 [Jehovah-Shalom] — 평강의 하나님

샬롬(shalom)은, 성경에 있어서는 전쟁의 대립개념으로서 쓰는 말. 그러나 평화, 화평, 평안, 평강 등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샬-롬-]은, 단지, 전쟁이 없다는 소극적인 상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무엇에 의해서도 저해되는 일 없는 개인 및 공동체의 생활에 있어서의 정신적, 물적, 육체적으로 자유, 완전한 이상적 충족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샬롬(Shalom)의 뜻 다섯가지

샬롬이라는 말에는 안녕이라는 뜻을 포함하여 다섯가지의 뜻이 있다.

첫째로 평화라는 의미가 있다.

이것은 외부적인 측면을 말하는 것으로 나자신이 살고 있는 가정과 사회와 나라가 언제나 평화롭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이 평화를 위하여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디모데에게 권면하였다

(딤전2:1-2). 그렇게 해야하는 이유는 다른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경건 생활이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두번째로 샬롬은 평강이라는 뜻이 있다.

이것은 내면적인 측면을 말하는 것으로 마음의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비록 외부적인 요인이 여의치 못하여 평화롭지 못하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나의 마음을 붙잡아 주심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의 내면적인 평강을 이루는 것이다. 평강을 너희에게 주노니 곧 나의 평강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요14:27)는 말씀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내적 평강을 말하는 것이다.

세째로 정의를 의미한다.

나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불의로 충만한 곳이 아니라 정의가 충만한 곳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암 5:24).

오늘날 처럼 불의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이 말을 간절히 원할 것이다.

교회 안에서 만큼은 하나님의 공의가 바로 서도록 해야 한다.

넷째로 샬롬은 질서를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가정과 사회는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간의 질서가 흐려져 가고 있으며 사회에서는 나이가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들 간의 질서가 무너져 내린지가 이미 오래 되었다.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이 질서의 문제는 서로의 위치를 구별해 주는 문제이지 결코 서로를 차별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도로에서 교통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운전자가 질서를 지키지 않아 일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정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질서의 문제와 많이 연관 되어 있기 때문에 질서가 바로 잡히지 못할 때 항상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다섯번째로 조화라는 뜻이있다.

이것은 서로 대립되거나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과 결핍을 채워 줌으로 전체적인 측면에서 온전함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에벤에셀[Evenezer] —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이스라엘의 아벡 근처 에브라임의 한 성읍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벡에 진을 치고 있던 블레셋(펠리시테인)을 맞아 이곳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했다(사무엘상 4:1)

후에 하나님은 그들이 블레셋인을 이기도록 해주었다. 이때 사무엘은 기념비를 세우고 에벤에셀이라고 불렀다. 《사무엘상》 7장 12절에는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야훼)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고 되어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있을 때 이것을 기념하고 후대에 기억시키기 위하여 돌을 취하여 기념비를 세우는 일은 구약성경에 자주 나타난다(창세기 31:44~47, 여호수아 4:6~7).

사사시대 말기에 일시적으로 신앙 각성운동을 통하여 승리와 평화의 시대가 왔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며, 이것이 이루어지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승리와 성공이 있다는 구속사적 진리의 단면을 보여준다.

[스크랩] 여호와 이레, 여호와 닛시, 여호와 라파 뜻이

여호와 이레:The Lord will provide – 준비하시는 하나님 [히](yhowah yirrh) [영] The Lord will provide 모리아산의 별명. 뜻은 [여호와께서 보심]. 또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심].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한 때, 하나님께서 그 대신 양을 준비해 주신데서, 아브라함은그 산을 [여호와 이레]라 이름했다(창 22:14). RSV는 이 뜻을 취하여 [여호와께서 준비하심]으로 하고 있다. 여호와 닛시:Jehovah Nissi – 승리가 되시는 하나님 [히] [句](yhowah nissi) [영] Jehovah Nissi(KJV), The Lord is my banner(RSV) 뜻은 [여호와는 나의 기]. 아말렉 사람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모세가 세운 제단에 붙인 이름(출 17:15). 여기에는 승리를 주신 여호와에 대한 확신이 표시되어 있다. 여호와 라파 – “치료의 하나님”(Healing God)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출애굽기 15장 26절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며 살면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그분의 뜻에 따라 살면 질병의 고통도 극복하고 치유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아래 자료는 참고하세요. ————————– 하나님의 여러가지 이름 하나님에 대한 여러가지 호칭과 성도에 대한 여러가지 호칭 하나님에 대한 호칭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그리스도인들)은 보통 하시드, 카도쉬, 캇디쉬, 하기오스, 성도(聖徒) 혹은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여러가지 이름 야훼:Yahweh(인명) [히] (Yahweh) [영] Yahweh, Jahweh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고유명사. 그러나 이 형태로는 성서에 보여져 있지 않고, 다만 연구적인 책이나 신학서에 보여지는 표기로 되고 있었는데, 공동 번역에서는 이를 취하고 있다.이 신명(神名)을 나타내는 네 개의 히브리어 문자 [ hwhy (YHWH)]는 모두 자음으로서, 이것이 원래 어떻게 발음되던 것인지 알 수 없어졌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입으로 부르기를 피하여, [주(아도나이) yn;doa} (adonay)]로 발음해 왔기 때문이다. 거기서 YHWH와 아도나이가 혼동되어, 여호와라는 발음이 생겼는데, 이것은 오독(誤讀)으로서 [야훼]로 발음하는 편이 옳은 것으로 정정되었다. RSV는 이것을 [Lord(主)]로 하고 있다. 여호와:Jehovah(인명) [히](yehowah) [영] Jehovah 구약성서의 하나님의 고유명사(출 6:3기타 빈출). 모세 이전부터 이스라엘의 선조들에게 알려져 있었는데(창 4:26), 특히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는 계시와 은혜의 하나님, 언약과 구원의 하나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다. 그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이를 언약의 백성으로 삼기 위해, 애굽에서 구출해 내신 구원자이시라는 점을 보여주신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점이다(출 6:7,7:5).이 이름은 구약에 가장 많이 씌여져 있고, 이 이름에 대하여 다른 모든 이름은 2차적이다. 쾰러 바움가르트너(Koehler-Baumgar-tner)의 사전에 의하면, 이 이름는 구약에 6,823회 씌어져 있다. 이에 대해 창조자, 지배자로서의 하나님을 나타내는 [엘로힘]은 2,550회로서 이에 비하면 2배반 이상의 빈도이다. 그리고 구약성서에 여호와의 이름이 보여지지 않는 것은<<에스더서>>, <<전도서>>, <<아가서>>의 3서뿐이다. 이 여호와는 본래는 [야훼](야웨)로 발음 하던 것이 종교개혁 이후부터 널리 유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대인은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안된다는 명령을 굳게 지켜, 신명을 부르는 대신[주 yn:doa(donay)=(主)] 즉 [아도나이]라 부르고 있었는데, 16세기부터 [야훼]를 나타내는 [자음 hwhy(YHWA)]과 아도나이의 모음이 혼동되어, [여호와]라는 발음이 생겨졌다. 최근에는 칠십인역이 이것을 [큐리오스Kuvrio](主)로 역하고 있는대로, [주]로 역하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되어, RSV는 Lord(主), 특히대문자만을 쓰고 있다. 아도나이:Adonai [히](adonay)=[主] [영] Adonai 신명(神名) 여호와(야훼)를 직접 부르기를 두려워한 유대교인들이(출 20:7,신 5:11), 그 대신[아도나이]라 부른데서 온 것. 바벨론 포로 이후 유대인은 [여호와](야훼)라는 문자마저 쓰기를 아주 두려워 하여, 이것을 붓으로 기록하는 일 마저 주저하고, 낭독 때에는 [여호와](야훼)의 글자를 종들이 그 주인에 대해 존칭으로서 부르는 [아도나이]로 불렀다(원뜻은 [우리주]로, 히브리어 [아돈(主)]의 복수). 이것이 얼마나 철저했는지는, 마침내 그들 자신중에서 [야훼](여호와)라는 신명(神名)의 발음이 잊어진 것에 의해서도 분명하다. [아도나이]라는 호칭에 의해 야훼의 초월성을 확인하는 이 관용적 호칭을 칠십인역은 그대로 계승하여, [야훼]를 [큐리오스 Kuvrio ](Kurios 主)로 역했다. 여호와 샬롬:Jehovah Shalom – 평강의 하나님 (Jehovah Shalom)「여호와는 평강이라」 기드온이 여호와로부터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고무의 말씀을 받았을 때쌓은 제단 이름이다(삿 6:24). 이 이야기가 쓰여졌을 때는 아마 그 제단은 남아 있었을 것이다. 여호와 삼마:Jehovahshammah – 함께하시는 하나님 (Jehovahshammah)「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 에스겔이 성전과 예루살렘의 이상적 재건을 예언하고 결론한 것이 이 여호와삼마이다(겔 48:35). 엘로힘:Elohim(인명) [히](eleph) [神] [영] Elohim 셈어의 [신(神)을 가리키는 최고의 말 [엘 laE (el)]의 복수형.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복수형으로 씌어지고, 신신 중의 일신, 궁극적으로는 여호와(야웨)를 나타내고 있다.일신격(一神格)을 나타내는데 있어서, 이러한 복수형을 쓰는 것은 달리도 예가 있는 것으로, 고대동방에서는 공동체의 대표자(그것이 인간이건, 신이건)를 복수로 나타내는 습관이 있었다.이런 복수는, 숫적다수보다도 오히려 힘과 탁월성 존엄의 복수를 나타내는 것이었다고생각된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이 금지 되어 있는 히브리인은(출 20:7),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부르는 대신에 이 엘로힘을 썼다. 하나님을 엘로힘으로 기록한 문서를[엘로힘 문서](E)라하여, 창세기 이하 5서 또는 6서의 편찬의 중요 자료가 되었다는 설도 되고 있다. 엘 샷다이(엘 샤다이):God Almighty(인명) –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히](el shadday) [영] God Almighty 신명(神名)의 하나. 전능의 하나님으로서 역되어 7회 나온다(창 17:1,28:3,35:11,43:14, 48:3,출 6:3,겔 10:5). [전능의 하나님]이라는 역은 70인역(Septuaginta)의 이해에 기초한 것으로,인간의 약함과 대비되는 일이 많은 실재의 용법에서 가장 타당한 것으로 되고 있다. [샤다이]로만 씌어져 있는 데도 많다. (민 24:4,16,룻 1:20,21,시 68:14,91:1,사 13:6,겔 1:24,욜 1:15,기타 욥기에는 31회). 신명기 1:6,12에서는, 샤다이가 인명(人名)에 포함되어 있다.출 6:3의 해석은 여러 가지로 논의되고 있는데, 이 절에서의 히브리어의 용법은, 하나님은이전에는 그 자신을 힘과 은혜의 행위에 의해 엘 샤다이(전능의 하나님, 큰 능력의 신)으로서 계시해오셨으나, 이제 이 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전국민을 구원해 내시는 놀라운 행위에 의해언약을 계속 지키시는 여호와이신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뜻으로 씌어져 있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H.콜-즈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기서 말해져 있는 것은, 여호와라는신명이 지금까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든가, 또는 교시(敎示)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신명에 대하여 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던 특별한 의미를, 하나님은 계시하신 것이다). 엘 엘로헤 이스라엘:El-Elohe-Israel – 이스라엘의 하나님 [히] [句](elelohe yisrael) [영] El-Elohe-Israel 원어의 뜻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엘] 야곱이 세겜에 세운 제단의 명칭(창 33:20). 무사히 귀국하게 된 은혜를 기념하여 붙인 이름으로 여겨진다. ———————————- 성도(聖徒):Saint 와 성도의 여러가지 이름 [영] Saint 구약에서는 주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서(시 85:8기타), 신약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리스도 신자를 가리키는 용어(골 1:2기타).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관련된 것을 통틀어, 그하나님과의 관련이 항구적이건, 일시적이건, 거룩한 것으로 여겼다. 선민 이스라엘은 그런데서 거룩했다(레 19:2,20:7). 또한 주 하나님께 가까이서 섬기는 제사장(레 21:6), 레위인(민8:17이하), 또는 선지자(왕하 4:9)도 거룩했다. 하나님과의 관련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도 [성도]로 불리웠다(시 30:4기타). 그러나 신약성서에서는 일반적으로 [성도]는, 모든 신자를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크리스챤 형제와 동의어이다(골 1:2). 성도는 주 예수께 대해서는 [제자], 동신(同信)의 친구나 무리에 대해서는 [형제]이다. 특히 교회의 일치를 강조하고 있는 에베소서에서는 [모든 성도]란 말이 거듭되고 있다(엡 1:15,18,6:18). 사도신경에서는 이뜻 깊은 말이 [성도가 서로 교제함을 믿는다]로 표현되어 있다. [성도]로 역된 원어의 주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1. [하-시드 ; (chasid)] 히브리어 형용사로, 뜻은 [경건한]인데, 거의 명사로 씌어지고, [성도](Saint)로 역된다. 이말은 [자비한 자](삼하 22:26), [경건한 자] (시 4:3,12:1,32:6기타)로도 역되고, 하나님의 [자비하심 [名] ds,j, (chesed)](mercy)의 개념에 기초한 경건에 강조가 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씌어진다(삼상 2:9[거룩한], 대하 6:41[성도], 시 30:4,37:28,50:5기타빈출, 잠 2:8). 시 85:8에서 보아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과 동의어이고, 그것은 인격의 우수함으로가 아니라(모든 백성이 반드시 다 경건치는 않았으므로), 하나님의 택하심과 은혜를 받은 자라는 점에 강조가 두어져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인용에서는 국민 중에 특히 경건한 사람을 가리켜 [성도]로 부르고 있고, 이 경우에는 도덕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이 말은 마카비시대에는 유다의 헬레니즘화 세력에 저항한 경건한 사람들의 무리를 가리키는 말로 되었다(I 마카 2:42, sunagwghv @Asidaivwn, 일군의 경건한 사람), 시 116:15,149:1,5,9의 [성도]는 이뜻으로 씌어져 있다. 2. [카-도-쉬 ; (qadosh)] 역시 [거룩한]이라는 형용사로서, 기본개념은 [여호와 (야웨)예배를 위해 성별된 자]이고, 이스라엘에 대해 씌어져 있다(신 33:3,시 16:3,34:9,단 8:24거룩한 백성). 3. [캇디쉬 (qaddish)] 아람어 형용사로서, [거룩한 자]를 뜻하고,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the saints of the Most High)라는 표현에 의해, 신앙을 위해 건투하는 이스라엘을 가리키고 있다(단 7:18-27). 4. [하기오스 (hagios) pl.] 칠십인역이 히브리어 [카-도-쉬]의 역에쓴 헬라어 형용사로서, 사람에 대해 씌어진 때는 명사로서 취급되고, [성도]로 역(마 27:52,행 9:13기타 빈출). 신약성서에 62회인용되어 있는데, 마 27:52에 있어서의 신약 이전의 성도를 가리키는 이외는, 모두 그리스도 신자를 가리키고 있다. 물론 그것은 오순절 이후이다(행 9:13,32,41,26:10,롬 1:7기타 빈출, 고전 1:2기타, 고후 1:1기타, 헵 1:1기타, 빌 1:1기타, 골 1:2기타, 살전 3:13,살후 1:10,딤전 5:10,몬 1:5,7,히 6:10기타, 유 1:3,계 5:8기타 빈출). 성도는 그 신분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갖는 자로서(롬 1:7), 덕 높은 사람을 부르는 동양의 [성인]과는 다르다. 물론 하나님과 관계는 성도가 하나님의 뜻과 인겨에 합치 한다는 관념이 잠재해 있는 것이다(엡 5:3). 이같이 하여 이 명사는 충성의 사상에 이어져 있다(엡 1:1,골 1:2). 이 다음의 발전 단계는 계시로거에 보여져, 거기서는 성도를 특징짓는 주께 대한 성별이라는 것은, 세상에서의 사단적 박해(계 13:7,14:12)가 와도 순교에 까지 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계 16:6,17:6). 그러나 신약성서에서는 일반적으로 [성도]는 모든 믿는 자를 가리키고 있다(행 9:13,41,26:10,롬 1:7,고후 1:1,13:12,엡 1:1,3:8).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하심에 의해 [세상](죄와 죽음의 법)에서 분리되고, 성별된자란 뜻으로서, 교회 즉 선미 중에 넣어진 자로서 이 이름이 주어져 있다. [성 베드로](Saint Peter), [성 바울](Saint Paul), [성 요한](Saint John)에서 보는 존칭으로서 saint가 사도나 복음기자에 대해 씌어지게 된 것은, 기원 3세기 말이나, 4세기 초이다.

[여호와 이름] “여호와 닛시”(출1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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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여호와 닛시에 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아말렉 군대를 쳐서 무찌르고 여호와의 깃발을 세웠습니다.

“여호와 닛시”(출17:8-16)

♣명제: 여호와 닛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깃발을 상징한다.

♣목적: 구원받은 백성들은 복음의 깃발을 세우고 나갈 때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적 같은 구원으로 애굽에서 나오게 됩니다. 바로 왕의 손에서 나온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바로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선택한 백성들을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건져내주셨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아 애굽에서 광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먹을 양식이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반석을 통해 생명수를 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 먹을 양식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선택한 백성들은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문제가 생깁니다. 바로 아말렉의 공격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전투력이 없습니다. 애굽에서 노예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전쟁할 수 있는 무기도 많이 없고 군대가 완전하게 형성되지 않은 오합지졸의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 아말렉의 적군이 쳐들어 왔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도 사탄들이 나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비 진리를 가지고 영혼을 죽이기 위해 공격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구원받은 백성들이 어떻게 사탄의 무리들과 싸워 승리해야 할 것인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 17:8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물이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에게 불평할 때에 하나님은 반석을 치라고 모세에게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생명수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불평이 있고 난 후에 바로 아말렉의 공격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불평하고 나태하게 있을 때 사탄들의 공격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싸우니라’ לחם(라함 3898) 포위 공격하다, 에워싸다, 취하다, 라는 뜻입니다. 아말렉 군대들은 광야에서 지쳐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에워싸면서 포위하여 공격하고 있습니다. 아말렉 족속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한 이유는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강제로 빼앗고 죽이기 위해 공격하고 있습니다.

아말렉 군대들이 공격한 시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는 틈을 타서 공격했습니다. 그것도 정신이 없을 때에 즉시 공격하게 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기 위해 미리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와 공격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싸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절대 피할 수 없는 전쟁입니다. 내가 싸우기 싫어도 상대가 전쟁을 걸어왔기 때문에 싸워야 합니다. 만약에 평화를 주장한다고 싸우지 않으면 모두가 몰살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죽기 살기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해 들어오는데 바로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공격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사탄들의 공격도 내가 하나님께 원망하고 주님을 따르지 않는 틈을 타서 공격하게 되며 믿음이 떨어질 때 공격하여 죽이려고 합니다. 또한 시험에 걸려 있을 때 사탄은 반드시 공격하여 나를 쓰러뜨리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복음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이들과 싸워야 합니다. 이단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가지고 나를 죽이기 위해 공격하고 있습니다. 나도 복음의 말씀을 공부하여 그들과 맞서 싸워 나의 생명을 지켜야 합니다.

출 17: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사람들을 택하여 아말렉과 싸우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משה(모셰 4872) 모세입니다. 이 단어는 משה(마샤 4871) 끌어내다, 구하다, 건져내다, 라는 뜻에서 왔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전하게 가나안 땅까지 인도해야 할 지도자입니다. 아말렉의 적군이 공격해 들어오기 때문에 백성들을 안전하게 위험으로부터 끌어내서 구하고 죽음에서 건져내어 생명을 보호해야 합니다. 이것을 볼 때에 모세는 바로 하나님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아말렉을 향해 싸우러 나가라고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시고 준비된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실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을 끝까지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יהושוע(예호슈아 3091) 여호수아입니다. 이 단어는 יהוה(예호바 3068) 여호와, 영원한 자, 라는 뜻과 ישע(야샤 3467) 구원하다, 해방하다, 건져내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는 전능하시고 영원한 하나님이 함께 임하여 택한 백성들을 죄악에서 구원하고 해방시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인물입니다. 모세는 성부 하나님을 예표 한다면 여호수아는 성자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직접 나가 싸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선봉장이며 대장이 되시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의 맨 앞에서 진두지휘하시며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을 사탄으로부터 보호하시고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모세는 산꼭대기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서게 되며 여호수아는 직접 전쟁터에 나가 적군들과 싸우게 됩니다. 이것을 볼 때에 성부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을 직접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으며 성자 하나님의 죽음을 통해 사탄의 공격을 직접 싸워 승리하게 하신 분입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와 여호수아가 보호하고 죽음에서 보호한 것처럼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나의 영원한 죽음을 위해 직접 사탄과 싸워주셔서 구원시켜 주시고 죄악에서 해방시켜 주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 17:10-11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게 되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게 되었습니다.

‘아론과’ אהרון(아하론 175) 아론입니다. 이 단어는 חרס(하라쓰 2040) 멸망시키다, 파괴하다, 허물어뜨리다, 라는 뜻의 어근에서 왔습니다. 아론은 모세를 도와주는 조력자입니다. 여호수아가 전쟁터에 나가 아말렉 족속들을 멸망시키고 파괴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완전하게 허물어뜨려 일어서지 못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다면 성부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는 모세를 도와주는 아론은 성령의 하나님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여호수아가 나가서 잘 싸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고 십자가의 사역을 잘 감당하여 택한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사탄으로부터 도와주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도 성령에 이끌려 가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이끌어 가시며 마귀와의 시험에서도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훌’ חור(후르 2354) 훌,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חור(후르 2353) 흰 세마포, 흰 천, 백색, 이라는 뜻에서 왔습니다. 훌도 모세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도록 아론과 훌이 도와주었습니다. 훌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도와주시는 성령님을 예표 하는 인물입니다. 그 이유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선택된 백성들이 구원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계속 흰 세마포 옷을 입고 영원한 천국에 갈 때까지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절대 아말렉 족속들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사역 속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사탄의 공격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죽음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했다고 해서 살아난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영적인 싸움을 잘했다고 해서 사탄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셨기 때문에 나는 주님의 그늘 안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출 17: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고 모세가 그 위에 앉았으며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내려오지’ אמונה(에무나 530) 확고함, 안전, 진리, 라는 뜻입니다.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았다는 것은 확고한 진리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안전하며 아론과 훌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팔이 내려오지 않은 것입니다. 모든 승리의 요인은 바로 십자가의 복음의 터 위에 있을 때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교회도 바로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져야 만이 사탄으로부터 공격을 받아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절대 이길 수가 없습니다.

‘아니한지라’ היה(하야 1961) 임하다, 성취하다, 계시다, 라는 뜻입니다. 진리의 터 위에 성삼위일체 하나님이 임하여 함께 계시니 다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 족속에게 패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항상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즉시 여호수아 군대가 이기게 하셨습니다.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은 것은 바로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다시는 떠나지 않고 선택된 백성들을 위해 싸워주시겠다는 다짐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받은 백성들도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면 절대 사탄과 마귀들로부터 이길 수 없습니다. 내가 능력이 있다고 지혜가 있다고 해서 사탄과 붙어 싸우면 무조건 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고 따라가야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기 때문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나의 가정도 사업도 교회도 직장도 주님께서 주시고 이끌어 가실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절대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 힘으로 했다면 이제 주님을 의지함으로 주님께서 이루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출 17:13-14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게 되면서 여호수아 군대가 아말렉을 쳐서 이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승리의 날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서 들리게 하라고 말씀하시고 아말렉이 완전히 패하여 천하에 기억도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날로’ פה(페 6310) 입, 말씀, 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 군대들을 무찔렀습니다. 칼날로 아말렉 군대들을 쳐부수었다는 것은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입에서 나오는 복음의 말씀의 검으로 사탄의 무리들을 모조리 죽인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사탄의 무리들을 이기게 할 수 있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성령의 검으로 마귀를 무찌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에 사탄과 마귀는 떠나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승리한 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라는 것은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죽으심의 사건과 다시 살아나심의 부활을 기념하여 기억하라는 의미입니다. 아말렉을 쳐부수어 다시는 아말렉이 천하에 다시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탄은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공격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사탄은 절대 나를 공격하지 못하고 건드리지도 못합니다.

출 17:15-16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여호수아 군대가 아말렉 군대를 이기고 나서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 닛시’ יהוה נסי(예호와 닛시 3071)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이제부터 영원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깃발이 되신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고 제단을 쌓았습니다. 앞으로 광야의 여정에 주님이 지켜주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 되십니다.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전쟁에 나갈 때에 군대들 마다 군기가 있습니다. 이 군기가 부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십자가 군기가 있습니다.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깃발이 나에게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주님의 피의 깃발이 날리고 있습니다. 이 깃발은 영원한 승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깃발이 있는 곳마다 사탄은 두려워 떨게 됩니다. 선택받은 백성들은 십자가 군기를 높이 들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 나가야 합니다. 맨 앞에 나를 위해 싸워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의 깃발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피를 보는 순간 사탄들은 간담이 서늘해질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 떨었습니다.

이제 나의 영원한 깃발 되시며 승리자가 되신 주님이 있기 때문에 아말렉 족속과 같은 사탄의 무리들은 겁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죄악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건져내주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깃발 아래에 있으면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의 절대 주권 속에서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팔이 올라가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시고 내려오게 하신 것도 하나님입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내가 아무리 전투력이 좋다고 해서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믿음이 부족하다고 해서 사탄에게 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팔을 높이 세워주신 것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주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두 승리해 놓았다는 것을 믿고 열심히 주님을 섬기며 나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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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닛시” 출애굽기 17:8-16 (01/06/2019)

1910 년 10월 14일 인디아나주 Hall이라는 어느 마을에 John이라는 아이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그 마을은 전기도 들어 오지 않는 시골 중에 시골이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까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소젖을 짜며 농장 일을 도왔습니다.

이 아이가 어느덧 14살이 되어 중학교를 졸업합니다. 졸업한 후 아버지가 다음과 같은 삶의 규범을 가르쳐 줍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 아버지로부터 이런 훌륭한 삶의 규범을 배운 John은 후에 어떤 사람이 되어 갈까요? 한 마디로 놀라운 성공가도를 가게 됩니다. 잠시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성공가도를 아깝게 놓친 이야기를 소개해 드립니다. 증기선을 개발한 미국의 발명가 로버트 풀톤이 나폴레옹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과 프랑스 관리들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프랑스가 영국 함대에게 패하는 결정적 이유가 됩니다.

1805년 전쟁에서 프랑스는 훈련 받은 군인 10만명 영국은 훈련 받지 못한 군인 3만명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을 이기려면 영국해협을 건너야 하는데, 바로 영국 해군에게 참패를 당합니다. 결국 영국을 점령하지 못합니다.

영국 해군에게 참패를 당한 이유는 증기선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국 해협은 바람을 예측하기 어려운 곳이라서 바람을 사용하는 배로는 승산이 없는 곳입니다. 증기선이 필요한 곳입니다.

만일 나폴레옹이 오래 전 증기선을 개발한 미국의 발명가를 만났더라면 역사는 바뀌어졌을 거라고 합니다. 나폴레옹은 영국을 점령했을 것이고 그 당시 프랑스 황제에 저항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을 거라고 합니다. 만일 그랬더라면 지금까지도 프랑스의 왕이 존재하고 나폴레옹 역시 그 자리에 올랐을 거라고 합니다. 만일 나폴레옹이 풀톤을 만났더라면….

그런데 정말로 나폴레옹이 풀톤을 만났더라면 세상의 역사가 뒤바뀌어졌을까요? 증기선을 갖느냐 안 갖느냐가 세상 역사를 좌우하게 되었을까요? 세상 역사가 증기선 하나에 좌우한다면 정말로 세상 역사는 보잘 것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세상 역사는 그 보다 더 위대한 무엇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힘든 광야의 길을 가는 이스라엘에게 아말렉이 싸움을 걸어 왔습니다. 그런데 아말렉은 야곱의 형인 에서의 손자입니다. 곧 아말렉과 이스라엘은 한 핏줄입니다. 이 아말렉이 큰 민족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모두 이삭의 자손들입니다. 불행히도 야곱과 에서는 다투게 되었는데 자손대대로 이어갑니다.

그러면 아말렉과 이스라엘이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사실 아말렉이 광야를 지나가는 이스라엘을 먼저 공격한 것입니다. 이길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말렉은 자신만만 합니다. 아말렉은 프랑스 처럼 잘 훈련된 군인들이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노예 생활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노예들에게 군사 훈련을 시킬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광야 생활에서 어떻게 무기가 제대로 있었겠습니까? 아말렉은 때는 이 때다 생각하고 이스라엘의 씨를 말리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어떻게 합니까? 9절 말씀입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급한대로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쓸만한 사람들을 골라서 아말렉과 싸우라고 합니다. 사실 쓸만한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모세는 너무도 잘 알았습니다. 전혀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그런데 의지할 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인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지팡이를 손에 잡고 서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10, 11절 말씀을 보면, 여호수아는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는 아론과 훌과 함께 산 꼭대기에 올라갑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깁니다.

그것까진 좋은데 모세가 혼자서 계속 손을 들고 있을수 없습니다. 결국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립니다. 언제까지? 13절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이스라엘이 완승을 거둡니다. 한편 모세도 아주 신기한 경험을 한 것입니다. 모세는 승리 후에 혼자서 골똘히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냥 이기게 하실수도 있는데 왜 내 손이 올라가야만 이기게 하셨나?”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14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억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이 아주 위트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억하라 하고 하나는 기억하지 못하게 하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깊은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기억하길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개입하셔서 전쟁에서 승리케 되었음을 기억하길 원하십니다. 반면 아말렉을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첫번째 이유는 금방 이해가 됩니다. 이유는 사람은 쉽게 교만해집니다. 훈련받지 못한 군인들은 자기들이 잘 해서 승리한줄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아닌 것을 알리시기 위해 모세가 손을 들고 있을 때만 이기게 하셨고 손을 내리고 있을 때는 지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한편 더 궁금한 것은 아말렉을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시는데, 왜 아말렉을 천하에서 기억 못 하게 하셨나요? 자비하신 하나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래도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야곱의 형 에서의 자손들이라서…? 사실 신명기 23:7절에 보면,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네 형제임이니라.”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서의 후손들이 에돔 사람들인데 에서의 후손 중에 한 족속이 아말렉 족속입니다. 그러니 에서의 후손들이라서 아말렉을 기억 못 하게 하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럼 왜 에서의 후손 중 유독 아말렉을 기억치 못 하게 하실까요?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출애굽기 19:5, 6절 말씀을 보면 나타나 있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스라엘은 온 세계를 위한 제사장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온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하여 온 세상을 구원할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온 세계는 물론 에서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 에돔도 포함이 됩니다. 그래서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스라엘을 없애려 하는 족속이 있었는데 바로 에서의 후손인 아말렉입니다. 이스라엘이 없어지면 온 세계를 향한 구원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쩔수 없이 아말렉을 향하여 이렇게 지독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곧 모세는 아말렉을 천하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아말렉 처럼 제사장 나라를 없애려는 민족은 없애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말렉은 제사장 나라를 없애려는 자들의 상징적 존재인 것입니다.

이에 이 귀한 것을 다시 깨달은 모세는 남은 아말렉을 치러 가는 것이 아니라 후세에 길이 남는 행위를 합니다. 15절 말씀입니다.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제사장 나라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 제단을 세웁니다. 그리고 이름을 붙입니다. ‘여호와 닛시.’ 제사장 나라인데 당연히 제단을 쌓아야죠. ‘닛시’의 뜻은 ‘나의 깃발’, ‘My flag’입니다. 보통 전쟁에서 승리하면 깃발을 꼳습니다. 제단을 쌓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두 가지를 다 하고 있습니다. 제사장 나라이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로 정한 것입니다.

또한 제단 이름을 ‘여호아는 나의 깃발’이라고 정한 이유를 16절에 밝히고 있습니다.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여호와께서 대대로 아말렉과 싸우시려는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은 온 세상을 위한 제사장 나라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나라에 대적하는 모든 아말렉과 대신 싸우시겠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대로 이 나라를 지켜 주실 것임을 확신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온 세상을 위한 제사장 나라임을 밝히고 이를 자자손손 알리기 위하여 ‘여호와 닛시’라는 제단을 광야 한 군데 쌓은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 닛시의 제단을 쌓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대하실까요? 오늘 본문 말씀 첫 절인 8절 말씀을 다시 보면,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기록되어 있는데 ‘그 때’가 어느 때라는 말씀은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그 때’라는 표현이 아주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전쟁의 승리의 기적 기사인 반면 바로 전에는 두 가지 기적 이야기가 연거푸 나옵니다.

첫번째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시는 기적이고 두번째는 반석에서 물을 나게 하시는 기적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승리의 기적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연히 세 기적 기사가 나란히 기록되었겠나요?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나라를 광야에 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먹이시고 입히시고 마시게 하시고 전쟁에서 보호하십니다. 이들을 통해서 온 세상을 구원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곧 그들을 온갖 기적의 힘을 가지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오늘 신년 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올해 저희 교회 표어를 ‘여호와 닛시’로 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사장 나라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로 말미암아 온 세계를 위한 제사장 나라가 되길 원하십니다. 브루클라인, 보스톤 그리고 미국과 한국, 또한 전 세계를 위한….

그래서 우리에게 기적적으로 먹을 것과 마실 것과 또한 승리의 기적을 올해도 베푸실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제단을 쌓는 것입니다. ‘여호와 닛시.’ 우리들의 이웃과 우리들의 자녀를 위하여….

한편 우리가 쌓는 제단은 우리를 지켜 줄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을 지켜 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웃을 지켜 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제단을 자녀들이 보지 않을까요? 그래서 우리들의 자녀들도 제사장 나라가 되어서 기적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처음 소개한 John이라는 소년은 부모님이 쌓은 ‘여호와 닛시’라는 제단을 보면서 아니 그 제단 앞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며 자라났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으라고 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늘 감사하라는 가르침을 통해서도 쉽게 알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UCLA의 전설적인 농구 코치인 John Wooden입니다. 그가 얼마나 ‘여호와 닛시’라는 제단을 쌓는 사람임은 그의 다음의 고백을 통해 잘 알수 있습니다.

“나는 항상 이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농구가 삶의 목적이 아닙니다. 농구는 우리가 사는 삶에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오직 승리를 주는 삶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구세주의 손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호와 닛시’의 제단 앞에서 삶을 산 것을 나타내 주는 고백입니다. 이런 John Wooden이 이끄는 UCLA는 NCAA 10차례 champion이 되었습니다. 한 때는 7년 연속 챔피온이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기록입니다.

이들이 이처럼 승리자가 될수 있었던 것은 이들에게는 게임의 승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을 위한 제사장의 삶입니다. 나머지 게임의 승부는 하나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단만 쌓고 다른 준비를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John Wooden코치는 선수들을 훈련시킬 때 게임 보다 연습하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가 이끄는 팀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게임에서 졌는지 이겼는지를 알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더 중요했던 것은 연습 과정이었고 그 과정을 멋지게 마쳤으면 게임의 승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승컵에 목표를 두었더라면 7년 연속 챔피온이 될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농구를 좋아했는데 골인 시키려고 애를 쓰면 안 들어 갑니다. 자연스럽게 쏘면 들어갑니다. UCLA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게임에 임하도록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 나라가 되려면 제단을 쌓는 일과 함께 주어진 일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목표가 세상 사람들과 다를뿐입니다. 우승컵이 목표가 아니라 매일 매일 제사장으로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으로서 이웃을 위해 사는데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지난주 설교 말씀을 통해 가나안 2019가 기다리고 있으니 함께 뛰어 들어가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분들은 1주일 생활하고 나서 말씀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작년과 똑 같이 광야인데요…?”

맞습니다. 우리는 광야 2019에 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광야에서 여호와 닛시의 제단을 쌓는다면 바로 가나안 2019로 변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 세상을 위한 제사장 나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니 함께 여호와 닛시의 제단을 쌓아 가십시다. 삼 세대가 함께 이 제단을 쌓아가고 이 제단 앞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다.

사실 2천년전에 주님께서 쌓은 제단도 바로 이 제단이 아닐까요? 여호와 닛시의 제단! 주님은 온 인류를 위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영원한 여호와 닛시의 제단을 쌓으신 것입니다.

한편 주님은 이런 미국 땅에서 여호와 닛시의 제단을 쌓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격려의 말씀을 하시지 않으실까요? 영화 트로이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제군들! 나는 수천 명의 병사보다 자네들을 더 믿는다. 용맹을 떨쳐보자. 우리는 사자다. 저 해변에 뭐가 기다리는가? 승리다! 가서 쟁취하자!”

작년도 표어는 ‘겨자씨를 심는 공동체’ 여성적인 표어를 주셨습니다. 올해는 남성적인 표어를 주십니다. ‘여호와 닛시’.

말씀을 거둡니다.

롱펠로우의 ‘인생 찬가’라는 시의 마지막 연입니다.

‘넓고 넓은 세상의 싸움터에서,

또는 인생의 진영 안에서,

말 못하고 쫓기는 짐승이 되지 말고,

싸움에서 이기는 영웅이 되라!’

2019년도 삼세대가 제사장 나라가 되어서 여호와 닛시 제단을 쌓는다면 우리 모두 영웅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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