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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 의 기도 | [짧은설교] 야곱의 위대한 기도 | 꿈의교회 김학중목사 빠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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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야곱의 기도 – 국민일보

하나님만이 나의 주인이 되시며 돈이 우상이 되지 않도록, 돈이 독이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내 땀으로만 얻은 물질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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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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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씨름은 과연, 사생결단의 기도인가? – 바른미디어

안타깝게도 이 본문을 야곱의 간절한 기도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 장상태 목사. 과연 야곱은 사생결단의 기도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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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ami.kr

Date Published: 3/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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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2: 22-32 야곱의 기도 – 心貧者

얍복강에서 드린 야곱의 기도는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성경의 이야기 중의 하나입니다. 설교의 단골메뉴이지요. 그만큼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알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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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dh153.tistory.com

Date Published: 12/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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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기도 – 동행일기

이 얍복강에서 씨름을 하기전 야곱은 창세기 32장 9-12절을 보면 하나님께 얼마나 절박한 기도를 하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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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llsmc.org

Date Published: 4/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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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기도

야곱의 기도 · 1)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 2) 야곱은 겸손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 3) 야곱은 분명한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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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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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별 기도이야기 – 야곱의 기도 – WMC 선교회

야곱의 기도의 특징은 자기와 함께 밤새도록 씨름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확인한 후에는,즉시 자신의 생각과 고집을 내어버리고, 하나님을 의존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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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mcprayer.org

Date Published: 8/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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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기도문] 야곱의 기도(창32:24-30) – 알쓸잡

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 기도문 중에서 야곱의 기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야곱의 기도(창32:24-30) 어떤 사람이 한번 시도한 일은 어떤 일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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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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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기도(3) “야곱(1)-벧엘의 서원기도” (창 28:10-22) 6/11/08

(1) 무엇보다도 열심을 내어 기도하지 못한 죄를 회개합니다. (2)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하지 못하고, 세상과 우상을 향한 것을 회개합니다. (3) 우리의 …

+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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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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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설교] 야곱의 위대한 기도 | 꿈의교회 김학중목사
[짧은설교] 야곱의 위대한 기도 | 꿈의교회 김학중목사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야곱 의 기도

  • Author: JOY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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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9. 21.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PZrmc77n8j0

야곱의 씨름은 과연, 사생결단의 기도인가? – bareunmedia

장상태 목사의 성경 오해 풀고 읽기(2)

“밤새 씨름을 합니다. 사생결단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나를 살려주시지 않으면 나는 당신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한 대형교회 목사님이 야곱의 씨름 기사(창 32:24)를 설명하며 위와 같이 설교했다. 야곱이 어떤 사람과 씨름을 했다. 이 씨름을 사생결단의 기도로 해석했다. 기도는 이렇게 붙들고 애원하듯이 해야 응답된다는 의미로 설교하셨다. 물론 기도는 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원인인 것처럼 말한다면 오류가 있다. 안타깝게도 이 본문을 야곱의 간절한 기도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 장상태 목사

과연 야곱은 사생결단의 기도를 했을까? 나무기둥 붙잡고 뿌리까지 뽑는 심정으로 매달렸을까? 이렇게 본다면 자연스럽게 야곱이 열심히 기도했으니까, 하나님이 도와주셨다 정도로 해석하게 된다. 잘못된 해석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불러온다. 그 결과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아닌 인간 중심의 신앙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

이 본문은 야곱의 인간적인 열심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지 않다. 야곱은 형 에서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크지 않았다.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불안과 불신을 깨우치며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인도하는 과정의 말씀이다. 야곱의 열심에 초점이 있지 않고, 야곱의 인간적인 고집을 꺾으시고 믿음의 길에 서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에 초점이 있다.

만약, 야곱이 이미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한 것으로 본다면, 본문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 많은 모순이 발견된다. 예를 들면, 열심히 기도했는데, 왜 환도뼈를 맞게 될까? 열심히 기도한 야곱은 왜 평생 다리를 절뚝거리는 장애인으로 살게 되는가? 야곱이 열심히 기도했다면, 왜 “어떤 사람”에게 축복해 달라고 요청하는가? 왜 그 “어떤 사람”은 즉시 축복해 주지 않고 바로 떠나려고 하는가? 많은 부분이 연결되지 않는다.

본문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야곱의 열심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성경 이야기를 사건의 순서에 따라 세밀하게 풀어 가야 한다. 창세기 32장은 야곱의 위기로 시작하고 있다. 이 위기 앞에서 얼마나 믿음이 없는지 강조하고 있다. 야곱은 일생일대의 위기를 자기 힘으로 이겨보려고 애처롭게 노력하고 있다. 야곱은 친형 에서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 부하 400명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는다. 환영하는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야곱은 잘 알고 있었다.

야곱은 몹시 불안하고 초조했다. 이 마음을 7절에서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로 표현하고 있다. 11절에서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라고 기도한다. 야곱은 몹시 두렵고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은 함께 하고 계심에 대한 사인을 보여 주셨다. 2절에서 “마하나님” 하나님의 군대를 보았다. 1절에서는 “하나님의 사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경에서 많은 경우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사자들과 군대로 함께하심과 보호하심을 보여 주셨다. 그렇지만, 믿음이 없어 이런 사인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땅과 자손의 약속을 받았지만, 아내를 두 번이나 누이라고 속였고, 여종을 통해서 자손을 이어가려는 믿음 없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광야 생활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보며, 수많은 기적을 경험했지만 끝없는 원망과 불신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많은 성경의 인물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인 믿음으로 순종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야곱도 그렇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 있는 동안 큰 재산을 얻고 두 아내와 여종을 얻었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계획과 방법에 의존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런 성향은 외삼촌 집을 나오면서 나아지지 않았다. 야곱은 하나님의 군대 “마하나님”을 보고서도 여전히 현재 상황 앞에서 믿음을 가지지 못했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기도했고, 에서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자기 재산을 나누어 형 에서에게 선물로 주려고 했다. 혹시 가족이 공격을 받게 될 것을 가정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아내 순서대로 열을 세운다. 라헬과 요셉을 가장 뒤에 둔다. 결정적으로 야곱은 다시 돌아와 얍복강 나루터에 혼자 남았다.

모든 예물과 가족은 얍복강을 건너게 하고 자신은 다시 돌아와 나루터에 남은 사실은 나 혼자라도 살아남겠다는 이기적인 의도 외에도 한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얍복 나루터는 요단 동편 지역으로 “약속의 땅”을 벗어난 지역이다.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벗어나더라도, 자기 신변과 안위가 더욱 중요했다는 사실을 나루터에 머문 모습이 보여준다. 야곱은 위기를 이기적인 방법으로 모면하고 싶었다. 모두 빼앗기고 죽더라도 자기만은 살고 싶었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없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창세기 33장에 나오는 야곱의 변화에서 알 수 있다.

33장 3절에서 야곱은 가족의 대표로서 죽음을 각오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나타난다. 야곱이 환도뼈를 맞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고 난 뒤에 일어난 변화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난 뒤에 비로소 가족의 대표자로서 당당하게 형에서 앞에 서게 된다. 성경은 야곱에 대해서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야곱의 기도로 상황이 변화한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치심과 깨닫게 하심으로 야곱의 내면적인 변화를 말씀하고 있다.

이는 야곱의 씨름과 환도뼈의 의미,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씨름했을 때, 씨름의 주체는 야곱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야곱과 씨름을 시작했다. 싸움의 주체는 야곱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다른 형태로 나타나서 싸움을 걸거나 씨름하는 모습은 가끔 반복된다. 출애굽기 4장에서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본 후에 이집트로 가려고 할 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그를 죽이려는 기사와 더불어 여호수아 5장에서도 비슷한 기사가 나온다. 중요한 신앙의 분기점에서 하나님이 나타나 믿음을 위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전형적인 패턴 중의 하나이다.

창세기 32장에서 야곱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신앙적인 결단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회피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것이 바로 환도뼈(카프예레크)를 치는 사건이다. 뼈(예레크)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아담이 하와를 보며, ‘내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창1:23)라고 했을 때와, 라반이 야곱을 처음 보았을 때, ‘내 골육’(뼈와 살, 창29:14) 즉, 가족,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특히 환도뼈는, 사람의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이다. 환도뼈(카프예레크)는 생식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출애굽기 1장 5절은 자녀들을 ‘허리에서 나온 자들(요츠에예레크)’이라고 한다. 따라서, 환도뼈를 친 것은 생명을 위협하는 것과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

야곱이 만약 열심히 기도했다면, 왜 이런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 고통을 경험해야 했는가? 이것은 기도가 아니라, 야곱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인간적인 고집을 부렸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 고집이 꺾인 후에 야곱은 비로소 기도했다고 볼 수 있다. 호세아 12장 4절에 따르면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야곱이 울면서 간절하게 간구한 모습을 겨루어 이긴 것과 구별하고 있다. 씨름한 이후에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한 말에 대해서 “울며 간구하였다”로 표현하고 있다.

이때, “어떤 사람”은 야곱에게 바로 기도해 주지 않는다. 무엇을 하는가? 27절에서 야곱에게 이름을 묻는다. 야곱은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그의 이름 뜻은 속이는 자였다. 이름은 자신의 존재이며 인생이었다. 환도뼈를 맞고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을 때, 야곱은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을 오래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신뢰하지 않았고 자신의 의지로만 걸어왔다. 하나님은 이것을 깨닫게 하시고, 이제는 다른 인생을 살기 원하셨다. 28절에서 야곱의 이름을 다시는 부르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의지로 이름을 바꾸신다. 이스라엘로 바뀌게 된다. 이스라엘의 해석에 관해서는 많은 이견들이 있다. 김정우 교수는 이 단어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이 단어의 어근 ‘샤랴’(싸우다, 고치신다, 다스리다, 등)을 ‘다스리다’(Noth)로 보고 동사를 기원형으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이여 다스리십시오(Hamilton)’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야곱은 이제 속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사모하는 자가 된다는 뜻이 된다.” 김정우 교수의 해설이 타당하다고 본다면, 이제 야곱은 이기적이고 자신만 아는 삶의 태도에서 하나님이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통치하며 살기를 바라는 인생으로 변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야곱이 어떤 사람과 씨름한 이 본문을 “사생결단의 기도”로 보기는 어렵다. 이렇게 보면, 이어서 나오는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게 될 뿐만 아니라, 야곱의 신앙과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를 오해하게 된다. 야곱의 씨름은 반대로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은 얍복강을 건너지 않고 남아서 혼자 힘으로 이 상황을 모면하고 벗어나려던 야곱을 꺾으셨다. 하나님께서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믿음에서 멀어져가는 야곱을 다시 강권적으로 붙잡으셔서 구속사 가운데로 인도하신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이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큰 은혜를 준다. 선택한 자녀에 대한 불가항력적인 은혜이다. 우리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자녀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선택한 백성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권능과 능력 가운데 보호하시며 하나님 자녀로서 합당한 성품을 갖추게 하신다.

“요한복음 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창세기 32:24-30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편집자 주: 필자 장상태 목사는 좋은우리교회를 담임하고, 튤립성경연구 섬김이, 디다스코 출판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장상태 목사 [email protected]

창세기 32: 22-32 야곱의 기도

야곱의 기도

창세기 32:22-32절 2016/1/15(금)

얍복강에서 드린 야곱의 기도는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성경의 이야기 중의 하나입니다.

설교의 단골메뉴이지요.

그만큼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알기는 잘 아는데 잘못 알려졌고 그리고 잘못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보통 이렇게 가르치고 이해합니다.

응답받는 기도, 능력의 기도란 무엇인가?

야곱처럼 하나님과 끈질기게 겨루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 응답 받는 기도, 능력의 기도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기도의 정석이니 당신도 문제라는 나무를 붙들고 야곱처럼 씨름하듯 기도하면 그 문제의 뿌리가 뽑히는 능력을 맛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상당히 근사하고 매력적이지요.

저 역시 이런 종류의 설교 수십 번 들었습니다.

한 때는 야곱처럼 하나님 대신 나무와 씨름한 적도 있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기도하는 습관 그리고 기도를 오래하는 모양새는 가지게 되었지만 야곱처럼 하나님을 뵙지는 못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자, 우리가 기도한 시간과 열정을 한 번 따져봅시다.

어때요?

불경한 이야기지만 사실 하나님께 좀 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한 문제를 놓고 10년 20년, 심지어 30년 기도했는데, 어떻습니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이 어려운 문제를 풀기에 앞서 오늘 본문의 내용을 한번 찬찬히 살펴보겠습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했던 야곱은 20년 만에 큰 부자가 되어 이삭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정말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성공했지요.

거기다가 처자식도 남부럽지 않을 만큼 큰 가문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에게 큰 걸림돌이 하나 있었습니다.

형 에서이지요.

장자 권을 빼앗기고 아버지의 축복마저 동생에게 빼앗긴 형 에서.

그 형이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가가 문제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좋은 감정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렸지만 세월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야곱의 문제였습니다.

궁리 끝에 야곱이 꼼수를 부리지요.

미리 사람을 보내어 분위기를 살펴본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형 에서가 동생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사백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게 됩니다.

큰일도 보통 큰일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궁리 끝에 또 꼼수를 부립니다.

자신의 제물과 가족을 세 떼로 나눕니다.

그리고 한 떼마다 형의 감정을 풀만한 뇌물을 따로 마련해 종들에 손에 맡깁니다.

그렇게 해서 한 떼, 두 떼, 세 떼를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두 아내와 두 여종 그리고 그 밑에서 난 열한 아들을 먼저 얍복강을 건너보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야곱, 오직 자신뿐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야곱은 아주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24절입니다.

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참 희한하지요?

씨름이라니요?

당시 씨름이란 양이나 염소를 치는 목동들이 자신의 힘을 키우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했던 놀이입니다.

그런데 동이 틀 때까지 어떤 이가 나타나 야곱을 붙잡고 씨름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어떤 사람이 야곱을 붙잡고 씨름한 것이지 야곱이 어떤 사람을 붙잡고 씨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도의 정석처럼 ‘하나님 붙들고, 문제 붙들고 씨름하라’는 말은 본문의 내용과 맞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을 붙잡고 씨름한 이는 누구일까요?

사람인가요? 악한 귀신인가요?

희한한 것은 야곱을 붙잡고 씨름한 이가 야곱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도 이지기 못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동이 트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급한 마음에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어떤 이’입니다.

32: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이제 그만 하자는 것입니다.

그 때 야곱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나옵니다.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여기서 우리가 야곱의 갈망, 야곱의 믿음을 보게 됩니다.

사실 야곱 자신도 지금 자신과 씨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경험상 분명한 믿음과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일 수도 있다는 갈망과 믿음입니다.

그래서 마치 하나님에게 구하듯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여기서 우리가 기도에 대한 패러다임을 변화시켜야합니다.

기도란 무엇인가?

축복을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누구에게요?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긍휼과 자비가 넘치시는 하나님에게 입니다.

제 욕심을 채우는 요술방망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그리고 그 은혜를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기도의 본질이라는 말입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묻습니다.

32: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왜 이름을 물었을까요?

그렇습니까?

그 이름을 불러 축복하기 위함입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축복하신 것처럼 야곱을 이스라엘로 축복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기도할 때마다 소망하는 것이 있습니다.

야곱처럼 제 이름이 불려 져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원합니다.

정말 축복받기 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은 제가 부른 이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넘치는 축복을 받기 바랍니다.

그래서 교회를 축복하고 교회 성도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가면서 축복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부른 이름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이것이 목사로서 주어진 제 직분입니다.

29절 봅시다.

야곱이 요청합니다.

32: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왜요?

축복 하는 자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게신 이, 여호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려주지 않고 그 이름을 묻는 야곱을 축복합니다.

계속해서 29절입니다.

32: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비로써 야곱은 자신과 씨름한 이가 전능하신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무엇으로요?

축복하심으로, 구원하심으로 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정말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절망하고 낙심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찾아와 우리를 붙들고 씨름하십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의지하고 있는 것 마저 하나님이 냉정하게 치십니다.

마치 야곱의 허벅지 관절처럼 마지막으로 힘을 지탱하고 있는 그것마저 하나님이 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야곱처럼 진심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갈망하며 간절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요?

‘내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진짜 축복을 구하라는 말입니다.

소떼와 양떼가 아니라 아내들과 자식들이 아니라 하나님 손에 붙들리는 진짜 축복을 구하라는 말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한 것처럼 진짜 축복의 삶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축복의 삶을 허락하십니다.

30절입니다.

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 ‘벧엘’에서는 꿈에 하나님을 뵈었지만, ‘브니엘’에서는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물별 기도이야기

3. 야곱의 기도

김 정 복 목사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 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 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 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 되었더라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 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사람이가로되 네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부를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사람이 가로되 어찌내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창32:22-29)

창32:24을 보면, 야곱은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 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소유도 건네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한 말씀이 있을 뿐. 야곱이 기도하였다는 기록은없다. 야곱이 기도한기록은 창세기32:9-12에 있을 뿐이다. 이곳얍복 나루터에서는야곱이홀로경야(經夜)하며,어떻게하면형의노여움을피할 수있을까하는 많은염려와생각에 골몰하고있었던것으로 본다. 그때에 하나님의사람이 야곱에게 찾아와서 날이새도록 야곱과씨름하였으나 야곱은 끝까지 자기생각을 버리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야곱을이기지못하여 야곱의 환도 뼈를치매 야곱의 환도 뼈가위골되었다고 되어있다. 야곱은 자기의환도 뼈가 위골(違骨)됨을깨닫고 그때에 비로소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깨닫고 그 사람을붙잡고 당신이내게축복하지아니하면 가게하지 아니하겠나이다하며간절히간구하여하나님의사람으로부터이스라엘이라는이름과함께축복을받게된다.여기서우리는야곱의 기도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야곱이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의사람이먼저 야곱을찾아오셨다.

하나님의 사람이 먼저 야곱을 찾아 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홀로 경야하며 형에서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을 보시고 친히 찾아오셔서 야곱과 씨름하신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람이 야곱과 함께 씨름하셨다하는 말씀은 야곱이 하나님께 기도하였다는 말이 아니고, 야곱이 자기생각과인간적인근심과 걱정으로 괴로워하는야곱을변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사랑의 씨름인것이다. 이때에 야곱은 에서에 대한 근심과 염려로 괴로워하며, 끝까지 자기의 고집스런 생각을 버리지 않기때문에 하나님의사람은야곱의환도 뼈를 치고 떠나려고 하신 것이다.

둘째 야곱이 순종하지 않았을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야곱의 환도 뼈를 치셨다.

야곱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끝까지 불신앙적인 자신의생각을 버리지 않고, 근심과 걱정으로 괴로워하므로, 결국 하나님의사람은 새벽에 이르러 야곱의환도뼈를 치시고 떠나려고 하신다.

야곱은 자기의 환도뼈가위골(違骨)됨을 알고 비로소 이사람이보통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사람이라는 사실을 안후에는, 즉시 하나님의 사람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과 함께 축복을받게 된다.

셋째 야곱의 기도의 특징

야곱의 기도의 특징은 자기와 함께 밤새도록 씨름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확인한 후에는,즉시 자신의 생각과 고집을 내어버리고, 하나님을 의존하고, 하나님의 사람에게서 축복의 응답을 받아내지 않고는 결단코 돌려보내지 않는 굳은 결심과 노력과 인내와 믿음에 있는 것이다. 우리도 야곱과 같이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분이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라는 사실을 분명히 믿고 알고 기도하여야 하며,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응답이 이루어질 때까지 끝까지 매어달려 간구하는 야곱과 같은 의지와 노력과 인내와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성경 기도문] 야곱의 기도(창32: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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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 기도문 중에서 야곱의 기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야곱의 기도(창32:24-30)

어떤 사람이 한번 시도한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시도할 것을 말할 때, “무슨 일이 있든지 하다가 중단하면 시작하지 않은 만도 못하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변함없이 끝까지 추진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는 교훈일 것입니다.

처음에만 열심히 달리는 마라톤 선수는 얼마 못 가서 결국 중도에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라톤 선수는 끈기 있는 지구력을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달려갑니다. 기도하는 일도 같습니다. 우리가 승리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려면 끈기 있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끈기있게 기도하는 신앙인은 반드시 기도에 응답과 승리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끈기 있게 기도하여 축복받은 인물이 있는데 삼촌 라반 집을 도망쳐 쫓기는 가운데 얍복강가에서 기도한 야곱의 모습입니다. 이 야곱이 어떻게 기도하였는지 알아봅니다.

1. 혼자서 씨름하는 외로운 기도를 하였습니다.

☞ 창32:22-24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 <홀로 남았으니>란 야곱에게 두려움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신앙에 두려움은 사람으로 하여금 소심케 하고, 낙심과 절망을 줍니다. 당신은 어떤 문제를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는 일입니다. 기도는 두려움을 몰아내고 평안과 감사를 줍니다.

2. 육체의 고통을 참아가며 기도하였습니다.

☞ 창32: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 되었더라”

♤ <위골됨> : 야곱은 천사와 씨름을 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과거 자신이 육으로 살던 모습을 깨닫지 못했고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야곱은 환도뼈가 위골 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고 울며 매달려 간구했습니다(호12:4참고).

3. 밤이 새도록 끈기 있게 기도했습니다.

☞ 창32:24,26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4. 하나님을 감동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 창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 야곱의 끈질긴 기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행하신 주님의 간절한 기도(눅22:39-46)의 예표이기도 하며, 오늘날 우리들이 실천해야 할 끈질긴 기도의 모범입니다.

♤ <감동> : 야곱과 씨름한 천사는 하나님이 천사로 현현한 분이셨습니다. 야곱의 끈기있는 기도는 주님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결국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기도가 주님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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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기도(3) “야곱(1)-벧엘의 서원기도” (창 28:10-22) 6/11/08

June 11, 2008 KCCBR Wednesday Bible Study

성경의 기도 (The Prayers in the Bible) (3)

“야곱 (1)-벧엘의 서원기도” (창세기 28:10-22)

1.

창세기의 세 족장은 모두 그 성격이 다르다.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 이어지는 한 가문의 이야기이지만, 이 셋의 성격과 기질은 너무나 다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다. 이삭은 평화로운 사람이다. 야곱은 움켜쥐려고 하는 사람이다. 오늘과 다음 주 두 번에 걸쳐서 야곱의 기도 생활을 살펴보고자 한다. 야곱의 기도 생활을 통하여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가?

야곱은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형 에서와 함께 쌍둥이로 태어났다. 이삭은 오직 리브가 한 여인만을 아내로 삼은 약간 특별한 (?) 사람이다. 더욱이 리브가도 잉태가 되지 않아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이삭은 기도하였다. 이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리브가가 잉태하여 두 자녀를 낳았는데 그들이 바로 에서와 야곱이다. 야곱은 그 이름이 뜻하는 바가 바로 “사기꾼”이었듯이 평생을 사기꾼처럼 산 사람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야곱의 기질에 방해를 받지 아니하시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야곱은 그 자신이 동생임에도 불구하고, 형에게 있는 장자의 권리와 아버지 이삭이 형에게 주고하자 하는 축복을 가로챘다. 결국 에서가 그를 죽이려고 하자, 부모에게 작별을 고하고, 리브가의 고향인 밧단아람으로 도망가게 된다. 리브가는 이미 가나안 여인들을 아내로 삼은 첫 아들을 핑계 삼아 야곱을 에서에게서 떼어 놓는데 성공하였다. 밧단아람 자기 친정으로 야곱을 보내어 그곳에서 신부감도 구해오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때 야곱과 헤어진 리브가는 다시는 그 사랑하는 둘째 아들을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였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고, 에서에게 갈 축복을 야곱과 공모하여 가로챈 그녀의 죄가 이러한 결과를 낸 것이다.

2.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아마 야곱은 혈혈단신 (孑孑單身: 고단하게 외로이 서 있는 혼자의 몸)으로 아니면 한두 명의 종자를 데리고 가나안 집을 나서서 하란으로 향했을 것이다.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그리고 그는 루스라는 동네에 이르러 황량한 황야에서 잠을 자게 된다. 문자 그대로 풍찬노숙 (風餐露宿: 바람을 반찬삼아 음식을 먹고, 이슬을 베게 삼아 숙박을 한다.)을 하게 된 것이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거의 “홈리스” (homeless)처럼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광야에서 돌을 베게로 하여 잠을 잔 것이다. 야곱은 이방인들의 동네에 들어가서 자는 것보다 광야에서 추위와 들짐승의 위험 속에서 자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때 야곱의 처지는 어떠하였을까? 그 마음이 어떠하였을까? 장자의 권리, 아버지의 축복을 탐내어 그것을 가로챘지만, 그 결과는 혈혈단신 홈리스처럼 광야에서 잠을 자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힘든 그때 우리에게 나타나신다는 것이다.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 때가 아니라,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을 그때에 하나님은 나타나시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때가 하나님을 가장 간절히 찾을 때이기 때문이다. 이때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가장 간절하게 바랄 때이기 때문이다. 이때가 인간의 한계를 느끼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릴 때이기 때문이다.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야곱의 사닥다리 (Jacob’s Ladder). 물론 이 사닥다리는 야곱이 땅에서 하늘로 놓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엄밀하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보여주진 사닥다리 환상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을 야곱의 사닥다리라고 부른다. 그렇게 부르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궁창이 있어서 인간이 하늘에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꿈을 통하여 하나님과 야곱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하늘에서 내려온 사닥다리를 통하여 보여주시는 것이다.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여호와이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정식으로 처음 말씀하시는 장면이다. 아마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을 이어져 내려오는 하나님의 계시의 음성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첫 번째 만남인 것이다.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시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렇게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을 또한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나는 야곱 너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과 사귐의 관계를 유지하고, 하나님과 사귐의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더해나갈 때, 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즉, 하나님과 나 사이에서 하나님은 나를 “너는 내 것이다.”라고 하시고, 나는 하나님을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하는 고백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먼 곳에 계신 타자 하나님이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신 분으로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러한 체험인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지는 가장 좋은 관계가 바로 기도인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주도적으로 나타나셔서 그에게 당신을 내어주시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의 성육신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라고 말씀하신다. 지금 야곱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말 그대로 홀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땅”과 “자손”에 대하여 까지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모두 말씀하시는 것이다.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야곱의 자손은 그저 한두 명이 아니다.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하게 된다.” 이것은 물론 이스라엘의 형성으로 일차적으로 완성되지만, 궁극적인 완성은 예수님의 복음을 통하여 말 그대로 온 세상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편만한 지금에 이르러서 온전하게 완성되어지고 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야곱과 “네 자손” 즉 예수님이 한 핏줄로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야곱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태어나게 하실 것이며, 그리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야곱과 예수님으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다. 야곱에게 이러한 비전을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이러한 비전에 동참할 수 있게 하여 주신다.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이제 이 말씀은 좀 더 개인적인 보호와 동행의 약속의 말씀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임마누엘의 약속이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겠다.”고 약속하신다. 또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야곱의 평생에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 보증의 말씀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언약인 것이다.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비전에 동참할 때, 하나님과의 사랑 이야기를 써나가는 인생을 살게 된다.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과 함께 써나간 이야기가 있는가?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고, 내가 종이 되어서 동행한 이야기가 우리의 인생 이야기인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나는 기도로 아뢴다. 그리고 삶을 산다.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증거가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인 것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 혼자 살도록 계획된 것이 아니다.

3.

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야곱은 그가 꾼 꿈을 온전한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였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깨달음이다. 하나님이 “여기 지금” (here and now) 계시다는 인식이 바로 살아있는 믿음의 필수적인 요건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서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예배한다. 지금 여기가 바로 나의 삶의 현장이며, 하나님과 만나서 하나님과의 사랑 이야기를 써 나가는 한복판인 것이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고 “두려움”을 체험하였다. 머리가 쭈뼛해지고, 온 몸이 닭살이 돋는 체험을 한 것이다. 나는 사람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피부로 체험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잠을 잤던 그 황량한 벌판이 곧 하나님의 집이요 (God’s House), 하늘의 문 (Heaven’s Gate)이라는 사실을 체험하였다.

18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야곱은 자기가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였다. 자신에게 임재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장소를 기념하였던 것이다. 기름을 붓는 행위는 성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땅을 하나님이 그와 그 자손에게 주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며 한 행위이다.

19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그리하여 야곱은 그곳의 이름을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이라고 명명하였다. 루스가 벧엘이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야곱은 야곱이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부분은 다음 주에 함께 보기로 하자. 이름이 변하는 것은 존재가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4.

20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이제 야곱의 서원기도가 나온다. 삼 절로 이어지는 이 서원 기도는 야곱의 요구 사항이 세 가지로 나오고, 그것이 이루어질 경우에 하나님께 자신이 드릴 것을 세 가지로 말씀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야곱의 기도 제목 (1)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이미 하나님은 그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야곱은 그것을 요구한 것이다. 우리도 이미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나의 것으로 삼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인 것이다. 우리가 야곱의 이러한 믿음을 평가절하하기가 십상이지만, 사실은 우리는 이러한 믿음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다. (2)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하나님의 지켜 주심과 함께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실 것을 기도한다. 그의 평생에 하나님의 허락하신 일을 다 이루기까지 그를 떠나지 않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도 야곱은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지금 야곱의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야곱의 이런 기도가 왜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이런 기도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는 때로는 이런 기도도 드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기도에서 더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을 늘 기억하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마 6:33) 우리의 일상에 대한 기도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위하여 기도할 때, 자동적으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우리의 기도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21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3)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하나님은 야곱과 그의 자손에게 대하여 까지 말씀하셨지만,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집을 떠나는 이 마당에서 다시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올 것을 가장 큰 기도의 제목으로 삼는다. 야곱의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가 되는 기도인 것이다.

야곱의 약속: (1)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야곱의 당찬 기도이다. 사실 누누이 언급하였듯이, 구약의 신앙고백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바로 야곱의 이 기도인 것이다. 즉,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시다.” 혹은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이 구약 전체의 신앙고백인 것이다. 그런데 야곱의 태도는 하나님이 자기의 이러한 기도 제목을 응답해 주시는 한에 있어서 여호와가 자기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기도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야곱의 기도에 당황하게 된다. 조건부 기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에 야곱은 그의 하나님과의 사랑 이야기를 써나가는 그 시작 부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아직 하나님에 대하여 많은 부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해 주신 말씀과 야곱이 하나님께 드리는 말씀은 어딘가 엇박자처럼 부조화해 보인다. 그러나 아주 잘못된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1000을 약속하셨다면, 야곱은 10을 분명하게 요구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까지 이어지는 미래를 포함한 말씀을 하셨는데, 야곱은 그 한 몸에 대한 기도에 머무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과 야곱의 차이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차이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이 얼마나 우리에게 쉽지 않은 기도임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의식적인 훈련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영적인 습관으로 몸에 배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야곱은 후에 밧단아람에서 돌아올 때, 벧엘에 와서 하나님께 단을 쌓는다. 즉 하나님께 정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창세기 35:1-3 말씀을 보자.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야곱의 이 서원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야곱과 그의 모든 가족들을 벧엘로 초청하시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야곱의 십일조의 서원이다. 사실 십일조는 서원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으로 드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시작임으로 이러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신실한 청지기의 삶을 사는 것을 통하여 늘 십일조 이상을 주님께 돌려 드려야 할 것이다.

5.

우리의 기도는 때때로 “나”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또 “주세요 주세요” (Give me, give me.)에서만 머무는 경우도 너무나 많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라도 드리는 것이 아무런 기도도 드리지 않는 것보다 100배 나은 것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사귐이 깊어지는 것이 우리의 기도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에게 좋은 것을 주세요.” 식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배워나가는 것이다. 때로는 기도의 응답을 통하여, 때로는 하나님의 침묵을 통하여, 때로는 하나님의 거절을 통하여 하나님과 사귐이 깊어지는 것이다. 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심정에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다. 이 시간 기도할 때, 우리의 소원을 아뢰되, 그 소원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소원이 되도록 하자. 야곱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극히 일부분만을 잡고 기도한 것이다. 이것은 그의 영성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가 우리의 영성의 어느 부분에 와 있든 간에 우리도 이 시간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 깊은 사귐으로 나아가자.

6.

이제 다음의 기도 제목으로 기도하자.

1) 감사의 기도

(1) 벧엘에서 야곱을 만나신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서 우리를 만나주시니 감사합니다.

(2) 우리 교회와 우리 가정과 우리 자신의 있는 모습 이대로 주님께 감사합니다.

(3)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지체들을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4) 입을 열어 기도할 수 있는 믿음과 시간과 장소와 건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2) 회개의 기도

(1) 무엇보다도 열심을 내어 기도하지 못한 죄를 회개합니다.

(2)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하지 못하고, 세상과 우상을 향한 것을 회개합니다.

(3) 우리의 마음이 주님과 지체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한 것을 회개합니다.

(4) 우리가 교회와 지체들을 위하여 구체적으로 기도하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3) 교회를 위한 기도

(1)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여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소서.

(2) 담임목사에게 말씀과 기도의 능력을 칠 배나 더하게 부어주소서.

(3) 말씀 사역을 하는 목자들과 교사들에게 영적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4) 직분자들과 성가대와 찬양팀과 모든 책임 맡은 자들이 더욱 충성하게 하소서.

(5) 우리 교회의 예배와 목장과 모든 모임들이 활성화 되도록 복을 부으소서.

(6) 문화광장을 통하여 성도의 교제와 복음 전파의 기회를 주소서.

(7) 여행 중인 지체들을 안전하고 유익한 여행으로 인도하소서.

4) 이웃을 위한 기도

(1) 박미혜 집사에게 온전한 치유를 허락하시며, 그 가정에 온전한 은혜를 부으소서.

(2) 원유기 집사의 손녀 메들린에게 온전한 성장과 치유를 허락하소서.

(3) 박경옥 자매 조카 예나에게 치료의 광선을 발하셔서 온전하게 치료하소서.

(4) 김성주 형제와 언제나 함께하시며, 우리 교회가 꾸준하게 사랑하게 하소서.

(5) 황경숙 집사 남편 탐 와이트 형제에게 치료의 광선을 발하셔서 온전히 치료하소서.

(6) 오스카, 안맹호, 황보민, 이의홍, 홍현민 선교사 및 북한의료선교를 위하여

(7) 배톤루지에 있는 한인교회들이 더욱 살아있는 주의 교회들이 되게 하소서.

5) 가정과 개인을 위한 기도

(1) 우리 가정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2) 우리 가족과 친지들 중에 믿지 않는 이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3)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바르게 성장하게 하소서.

(4) 우리 가정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게 하소서.

(5) 영육 간에 강건하고 육신과 세상과 사탄의 시험에서 늘 승리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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