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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을 행하되 낙심 하지 말지니 | [어노인팅 예배캠프 2020] 16_선을 행하면서 (Official Lyrics) 28230 투표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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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14-16일 진행되었던 어노인팅 예배캠프 실황 음반 수록곡 가사영상입니다.
16. 선을 행하면서_ When You Do What Is Good (강명식 작사,작곡) / 예배인도 : 소병찬
Producers
책임프로듀서| 박기범 for 어노인팅뮤직
프로듀서| 박기범
예배인도| 최요한, 소병찬, 전은주, 박기범
Players
예배인도 소병찬
드럼 서광석 / 베이스 한상도 / 퍼커션 박상찬
키보드 서진실 / 신디사이저 채푸른 / 일렉\u0026어쿠스틱 기타 정성권
싱어 강슬기 김찬미 이주희 최혜진 현효섭 양민호
Engineers
라이브 녹음|at 전주대학교(2020. 01. 14~16)
라이브 음향시스템| 레드사운드 어노인팅 삼아프로사운드
라이브 시스템 엔지니어 | 박유만
라이브 엔지니어| 양재혁, 박유만
라이브 어시스턴트엔지니어 | 이재혁 유성일 장대웅
라이브 녹음엔지니어| 박유만, 강우종
라이브 모니터엔지니어 | 김영원, 안상우
더빙스튜디오| 어노인팅 스튜디오
더빙녹음엔지니어| 박유만, 박기범
믹싱\u0026마스터링| 김대우 Daewoo Kim at Studio78, Nashville(studio78nashville.com)
VIDEO
무대 디렉팅| 김승빈
영상 디렉팅| 김영무
카메라 오퍼레이터ㅣ김영무, 오화영, 변준영, 이세라, 오병환, 정목영, 박하은
달리캠 오퍼레이터ㅣ스토리픽쳐스(박성재, 신종섭)
스크린 프리젠테이션| 박기범
영상편집ㅣ김영무(Main Video), 변준영(Lyric Video)
조명ㅣ 디오라이트 (임태윤)
Art \u0026 Design
무대 이미지디자인| 김석범
홍보| 오화영
사진촬영| 홍원의, 오병환
자켓디자인| 김석범
STAFF
예배캠프 총괄책임| 소병찬
예배캠프 실무책임| 박상찬, 김승빈, 최요한, 한경숙
발렌티어 스태프| 한연수 박종일 송영준 고단임 이다인 박세연 이은미 이승환 백나혜 신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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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목요일 7:30PM ㅣ 도림교회(2호선 신도림역)
문의: 02-574-6305 (평일 10AM-6PM 주말 공휴일 휴무)
*홈페이지에서 목요예배 안내 및 송리스트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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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6:9-10 KRV – Bible.com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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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8/12/2022

View: 2962

갈라디아서 6:9-10 – 대한성서공회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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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skorea.or.kr

Date Published: 10/26/2022

View: 691

갈라디아서 6장 6절-9절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

갈라디아서 6. 6-9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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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1/30/2021

View: 7831

다국어 성경 Holy-Bible

데살로니가후서 3:13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번역비교].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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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olybible.or.kr

Date Published: 10/1/2022

View: 7478

갈6:9~10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 … – 동산교회

갈6:9~10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 한자로 선 ( 善 )자를 풀이해 보면 양에게 풀을 먹이는 것입니다. 풀을 먹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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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edongsan.or.kr

Date Published: 12/25/2021

View: 4527

갈 6:1-10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 믿음의 싸움 / 한경직 목사

좋은 일을 하다가 맥이 풀리지 말라는 뜻입니다.『그리고 피곤하지 아니하면』이란 말은 사실 낙심하지 아니하면 하는 그 뜻이 좀더 있겠습니다.『낙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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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heologia.kr

Date Published: 1/12/2021

View: 6457

2015-10-23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 정필도목사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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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ildo.kr

Date Published: 3/24/2021

View: 8639

불기둥 주일 설교 – 19920405 낙심하지 말라 – 금란교회

13. 낙심하지 말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서양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www.kumnan.org

Date Published: 10/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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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2020.1.5. 신년주일)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본문: 시편 147:12-20; 갈라디아서 6:1-10 설교: 홍정호 목사 (2020.1.5. 성탄 후 제2주, 신년주일) [형제자매 여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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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bp.or.kr

Date Published: 6/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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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노인팅 예배캠프 2020] 16_선을 행하면서 (Official Lyr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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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선 을 행하되 낙심 하지 말지니

  • Author: AnointingMusic\u0026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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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7. 12.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B_0vyu-RCAY

갈라디아서 6:9-10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갈라디아서 6:9-10 KRV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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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6:9 ]

제 6 장

짐을 서로 지라

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너희가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또는 무거운 짐을

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할례와 그리스도의 십자가

11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13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 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갈라디아서 6장 6절-9절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 6-9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은 이 말씀에 대하여 어제 정리를 하려고 하였으나, 좀 더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 같아서 하루를 미루다 이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 이유는 6절의 말씀에 대한 해석을 놓고 그동안 천편일율적(千篇一律的)으로 말씀사역자에 대한 물질적이고 재정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기독교 전임사역자에 대한 생계는 분명 같은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는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이처럼 물질적이고 재정적인 것에 한정된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도는 6절에서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라고 한다. 여기서 “가르침을 받는 자”(κατηχούμενος)란 성도들을 말할 것이며, “가르치는 자”(κατηχοῦντι)란 목사 또는 교사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의문은 그 다음의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Κοινωνείτω…ἐν πᾶσιν ἀγαθοῖς)라는 문장이다. 통상적으로 그동안 여기서 말하는 “좋은 것”을 재정적인 지원, 즉 물질적인 후원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 이 당시 유대주의자들이 일부 신자들을 충동질하여 재정지원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 것에 대하여 경계로 한 말이라 본다. 특히 유대주의자들의 예물은 정해진 법칙에 따라 마치 세금을 내듯이 하는 것이지만, 이와 달리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연보를 한다는 것은 당시 매우 이례적이며 가히 유대주의자들이 볼 때 혁명적이라 볼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여기서 “좋은 것”이란 통상적인 접근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사도가 이와 같은 경우를 두고 말한 곳도 있기 때문이다(고전 9:7-17 참조).

그런데 “좋은 것”에 대하여 이 표현은 물질적인 보상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 문맥에서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가 말씀 안에서 서로 교제하는 가운데 그 말씀으로부터 얻는 영적·도적적으로 훌륭한 것을 가리킨다. 바울은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여 복음을 설명한 곳도 있다는 것이다(롬 10:5. 참고 히 9:11). 생각건대 6절의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우리 성경에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라고 할 때 여기서 말씀을 목적어로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본문은 τὸν λόγον이라 적고 있는데 이를 영어로 표현하면 “in the word”와 같은 의미에 가깝다. NIV 성경은 그래서 6절을 “Anyone who receives instruction in the word must share all good things with his instructor.”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것을 그대로 번역을 하면, “말씀 안에서 가르침을 받는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과 반드시 좋은 것을 나눠야 한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앞의 “나눈다”는 말을 Κοινωνείτω로 적고 있어 서로 좋은 물건들을 나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여기 Κοινωνείτω는 κοινωνία와 같은 의미도 내포하고 있어 여기서의 나눔이 꼭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기보다는 말씀 안에서 교제하는 의미가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어, 통상적인 전자의 해석보다는 후자의 해석을 지지하고자 한다.

이제 6절을 위와 같이 해석을 하면, 7절은 또한 같은 맥락에서 “사람이 심어야 할 것”은 통상적인 전자의 해석에 따르면 사역자에 대한 자발적이며 좋은 마음으로 물질적인 협력을 하는 것이 될 것이며, 후자의 해석에 따르면 도덕적이며 영적인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농사의 법칙에 따른 것으로 “심은 대로 거두는 원리”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즉, 물질적인 후원을 통하여 협력을 한 자에게는 그와 같은 것을 거두고, 도덕적이고 영적인 것을 서로 나누면 그와 같은 것을 거두게 된다는 원리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통상적인 해석이 아닌 후자를 택하였기 때문에, 말씀 안에서 거룩을 위해 힘쓰며 나눈 자들은 성령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주의할 것은 이 과정에 하나님을 “업신여김”(μυκτηρίζεται, 조롱, 비웃다, 흉내 내다)을 당하시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 업신여김을 이전 성경은 “만홀(漫忽)히 여김을 받다”라고 되어 있었다. 이것은 곧 경건을 가장한 위선과 외식적인 삶이 원인이 되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는 이와 같은 “스스로 속이는”(πλανᾶσθε) 일은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까지 두 견해를 비교하면서 왔는데, 이미 6절에서 본 것처럼 필자는 후자를 택하고 싶다는 말을 한 바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접근이 문맥적으로 더욱 상응적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여기 8절에서 보는 것 때문이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위해 심는 것, 즉 거룩한 주님의 백성으로서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육체를 위하여 썩어질(φθοράν)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는”(ἐκ τοῦ Πνεύματος θερίσει ζωὴν αἰώνιον) 것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처럼 성령의 역사를 따라 성령의 사람으로 영생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할 자들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발을 들이고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여러 가지 세상적인 가치관과 부딪히는 일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심을 해서는 안 된다. 사도 시대 역시 같은 상황이었음을 이 말씀을 통해 짐작이 간다. 당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복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그리 녹록한 것이 못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여러 차례 본 것과 같이 유대주의자들은 성도들을 현혹케 하고, 핍박을 가하고 있다는 시대상황에서 볼 때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사도가 추수의 원리를 말하듯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καιρῷ γὰρ ἰδίῳ, θερίσομεν)고 했으니, 여기에 성도들이 살아가야 할 소망과 방향성이 분명히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만의 문제이겠는가? 이는 우리 시대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말씀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더 살필 것은 “때”라는 단어이다. 여기서의 “때”는 καιρῷ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앞에서 우리가 “때가 차매”(τὸ πλήρωμα τοῦ χρόνου)라고 할 때의 “때”라는 χρόνου와 구별되는 개념이다. 여기서 말하는 “때”라는 단어는 χρόνου와 같은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때가 아니라 “의미적인 시간”을 말한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때는 종말과 심판, 그래서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의 때를 말할 수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삶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고 하셨던 것이다.(이하 계속/ 구모영씀)

갈6:9~10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윽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한자로 선 ( 善 )자를 풀이해 보면 양에게 풀을 먹이는 것입니다.

풀을 먹은 양은 절대로 감사의 표시를 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풀을 뜯고 즐거워할 따름이지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 속에 충만함을 얻는 것이 주님이 가르켜 주신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선을 행하며 메아리가 없다고 낙심하면 안 되겠습니다.

믿음의 가정은 주님께서 목자 되시는 양들이니 특별히 선을 베풀기를 아끼지 말아야겠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자유의 대헌장이라 부를 만큼 율법에 매어 선을 행하고 외식하며 그 메아리애 목말라 하는 것에 대하여 경계합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와 지되 그 자유가 육체의 그늘에 들어가지 않도록 힘써서 서로 사랑의 종노릇을 하라고 말씀하시지요.

양이 풀을 뜯는 모습을 보며 성령이 충만한 기쁨을 맛 보면 될 일입니다.

악( 惡)을 한자로 풀이해 보면 선 다음에 따르는 다른 마음입니다.

버금 아에 마음심이니

분명 선에 따르는 다른 마음이라고 풀이할 수 있겠지요.

이 마음은 메아리를 기대하는 마음이고 낙심하고 실족하는 마음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오늘도 낙심하지 말며 선하고 착한 마음으로 하루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2015-10-23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2015-10-23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admin 2015.11.11 14:16

1023 [오늘의 말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성구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살후 3:13)

묵상과 적용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에게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라고 권면했습니다. 이 말은 과격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평소에 열심히 일을 하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사람들은 이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쁨으로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게으름을 부리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일 것입니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깊이 생각하면서 자숙하면 좋겠는데, 속이 부글부글 끓으니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불평했습니다. 교회에는 늘 이렇게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 말씀에 이어서 다음과 같이 몇 가지 교훈하고 있습니다.

첫째, 사도 바울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13)”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믿음의 사람들은 낙심할 줄 몰라야 합니다. 사람들이 낙심하는 이유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또 선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높이 들어 쓰시며,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선을 행했다면, 그것은 예수님께 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가 오면 반드시 열매가 나타난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둘째, 사도 바울은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14)”고 말했습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순종을 잘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교역자들은 속이 상할 때가 많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7절에 보면,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쓸데없는 소리나 진리에 어긋나는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비록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종이 하라고 하면 복종해야 합니다. 물론 먼저 목회자들이 존경받은 만한 덕성을 갖춰야 되겠지만, 사실 부족한 주의 종의 말이라도 순종하면 목회자에게 격려가 되어 목회를 즐겁게 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가 바로 부흥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순종하지 않으면 목회자들이 근심하므로 교회에 유익하지 않습니다.

셋째, 사도 바울은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15)”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들을 회개시키는 데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합니다. 그런데 한 번의 실수로 인해 그 사람을 원수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인자한 마음으로 서로 서로 용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형제에게 권면하듯이 사랑으로 권면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사람은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면하는 사람입니다.

넷째, 사도 바울은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16)”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보다 원한 것은 평강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평강의 주님께서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축원했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생겨도 평강이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보다 더 귀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형편에 처해 있어도 마음에 평강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에 평강이 있을 때, 영적으로 가장 건강할 때입니다. 평강이 있을 때,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도

좋으신 하나님, 선을 행하도록 저희를 권고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가 선한 일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시고, 또한 낙심하지 않게 인도하옵소서. 아멘

출처 : 20080928 주일예배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데살로니가후서 3:13~18]

19920405 낙심하지 말라

13. 낙심하지 말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서양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마귀가 자기가 쓰던 모든 도구를 다 경매 처분한다고 광고를 내서 많은 구매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곳에 “이것은 팔지 않음”하고 써 부쳤는데 그것은 바로 “낙심”(discourage)이라는 도구였습니다. 그 이유인즉 다른 도구는 다 없어져도 좋지만 이것만은 결코 없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낙심”이란 도구만 가지면 마귀는 무슨 일이나 해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이 “낙심”만 집어넣으면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옳습니다. 낙심이라는 도구는 마귀가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는 도구이며 따라서 신앙생활 잘 하다가도 어떤 이유에서건 낙심한 사람은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경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면 거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낙심은 불신앙의 결과요, 마귀가 주는 마음입니다.

1. 선행의 결과가 없을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착하게 살고 믿음으로 살고 복 받게 산다고 하는데도 성공하지 못하고 고난과 역경이 계속될 때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연단이 오랠수록 그 다음에 오는 축복은 더 큰 것입니다. 복 받을 씨를 심으면 10년 후에건 20년 후에건 자식 대에 가서라도 반드시 그 열매를 거두는 때가 온다는 것을 믿고 길이 참고 나아가야 합니다. 반드시 심는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고 했고,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고 했습니다. 즉 우리가 기진맥진하여 좌절하여 쓰러지지만 않는다면 반드시 열매를 거두는 때가 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인내가 필요합니다. “참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으니 참지 못하고 낙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받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고전 15:58)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지 위함이라”(히10:35~36)고 했습니다. 담대함과 인내가 없이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과 상금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8~3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자에게 낙심은 절대 금물입니다.

한 목사님이 목회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낙심하고 있는데 밤에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큰 화강암 바위를 정을 가지고 쪼아 깨뜨리려고 하는데 아무리 두드려도 깨지기는커녕 두들긴 자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몇 시간 후에 “소용없는 일이다. 그만두자.”하고 망치를 놓으려 하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옆에 나타나더니“왜 맡겨진 일을 하지 않느냐, 왜 하던 일을 그만두려고 하느냐?”하자 그 목사는 “내 일은 결과가 없습니다. 이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니까 다시 엄숙히 말하기를 “그것은 너와 상관없는 일이다. 네 책임은 바위를 정으로 두들기는 것이다. 바위가 깨지든 안 깨지든 너는 일만 하면 된다. 결과는 다른 분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일을 계속해라.”하고 없어지더랍니다. 그 후에 새 힘을 얻고 다시 치니까 그 바위가 산산조각이 나며 깨어지더랍니다. 결과가 속히 눈에 안 보인다고 조급히 굴다가 낙심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2. 기도하다가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뜻에 위배된 것이 아닌 이상 믿고 끈질기게 계속 기도하면 언젠가는 응답이 옵니다.그런데 자기 생각처럼 쉽게 응답이 오지 않는다고 낙심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낙심은 절대 금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눅 18:1)고 하시면서 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가서 끈질기게 매어달리며 “원한을 풀어달라”고 했더니 귀찮고 번거로워서 그 원한을 들어 주었다고 하셨고,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기 아니하겠느냐”하시고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걱정하셨습니다. 강한 믿음이 없이는 끈질긴 기도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그렇게 능력 있는 불의 사자이며, 기도하면 비를 내려주시게끔 되어 있는 때도,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여 일곱 번이나 기도한 다음에야 손바닥만한 구름이 떠올랐습니다. 기도하다가 쉽게 집어치우는 사람은 하나님의 큰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는 되돌아온 소포가 많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낙심치 않고 조금만 더 기도하면 응답을 받을 터인데, 낙심하고 그만두기 때문에 응답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참된 기도란 저금통장에 저금해 두는 것보다 더 확실한 것입니다. 언제 찾느냐가 문제이지 언젠가는 찾게 됩니다.

제가 시골에서 목회할 때 교인도 많지 않고 심방할 데도 많지 않으니까 하루에 몇 시간씩 기도하고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도 하고 무척 기도하느라고 애썼지만, 내가 보기에 흡족할 만큼 응답이 오지 않았으나 먼 훗날 넘치도록 응답해 주시고 지금도 그 기도의 열매를 따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기도란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이 응답이 아닙니다. 섭리적인 응답도 있고 무응답의 응답이 있습니다. 응답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더 좋게 되도록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믿고 기도 한 것은 어떤 모양으로든, 언제이든 반드시 응답해 주시는 것을 믿고 계속해야지 결코 낙심해선 안 됩니다.기도 생활에 낙심은 금물입니다.

3. 악인이 흥하고 잘될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는 그런 대로 의롭게 살고 믿음으로 사느라고 하는데 되는 노릇이 없고 다른 사람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못된 짓을 하며 사는데 잘 사는 것을 볼 때 낙심하기 쉽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럴 수가 있을까 하고… 그러나 성경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투기하거나 분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잠시뿐이고 장래가 없다고 했습니다.“너는 행악 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잠 24:19)고 했습니다. 그것은 잠시뿐입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시 37:1~3). 그리고 이어서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시 37:4)라고 했습니다. 즉 남이야 어떻든, 믿음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37편 5~6절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 정오의 빛과 같이 빛나게 될 때가 온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 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시 37:7~10)라고 했습니다.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고 파죽지세로 세계를 정복해 들어갈 때, 도대체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런 행악자를 보고만 계실까 하고 회의를 가졌지만 때가 되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한 말씀 그대로 된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종교를 아편이라고 하며 교회를 다 파괴하고 크리스천들을 잡아 죽이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거의 세계의 절반이나 정복해 들어갈 때 과연 하나님의 계신가 하고 회의를 가지거나 낙심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산당의 종주국 소련이란 나라 자체가 없어지고 국기도 지상에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공산국가는 거의 다 비참하게 망했습니다. 북한도 건재하는 것 같지만 몰래 우리가 실어다 주는 “사랑의 쌀”을 먹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1,000만원을 냈습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근시안으로 판단하여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수레바퀴는 비록 천천히 돌기는 해도 반드시 골고루 부수고 깨트리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부활과 영원한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고 알기 때문에 결코 낙심해선 안됩니다. 정말 속상할 때는 “종점 가서 보자”하고 꿀꺽 참아야 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했습니다. 최후의 심판과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은 쉽게 낙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4. 이유 모를 고난이 올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 중에 욥기서가 세계 최대 걸작품 중의 하나라고 하여 욥을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가 저주 받을만한 일을 한 일이 없는데도 인간으로서는 최대의 재난과 고통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욕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데 있습니다.

당대의 의인 욥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살인죄나 간음죄나 도적질죄나 그 어느 죄도 범한 적이 없었습니다. 요사이로 말하면 주일성수도 잘하고 십일조 생활도 잘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 많던 재산이 다 도적맞고 불타버리고 해서 싹 다 없어졌습니다. 게다가 태풍이 불어와 집이 폭삭 무너지면서 7남 3녀의 자녀가 깔려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욥은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겠노라”(영어성경)까지 했습니다. 마침내 연단과 시련이 지난 후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유 모를 재난과 고통이 올지라도 낙심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더 큰 축복을 못 받습니다. 우리 신자들에게 고통과 시련이 오면 무조건 더 큰 축복을 주려는 징조로 믿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감사해야 됩니다. 끝까지 참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 5:7~8) 하셨고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 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약 5:10~11)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금방 죽을 것 같고 하나님이 버리신 것 같아도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심을 믿고 끝까지 참아야 합니다.

제가 전도사로 첫 목회할 때 하도 혼이 나고 당황했기 때문에 더 잊혀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산전을 부쳐 먹으면서도 예수 믿는 그 달부터 주일 성수하고 어김없이 십일조를 하고 첫 열매도 가져오고 새벽기도까지 꼭꼭 빠지지 않는 과부인데 복을 받아야 할 때에 홍수로 집이 다 떠내려가고 고추 몇 말 좁쌀 몇 가마가 다 떠내려갔습니다. “하나님, 이게 웬일입니까? 내가 한 설교는 무엇이 됩니까?”하고 기도했는데 도리어 그 홍수 피해 때문에 더 큰 집을 짓고 더 잘 살게 되었는데, 소학교도 못 나온 그 아들은 지금 장로가 되고 전자제품을 파는 사장이 되었습니다. 좋은 아파트에 자가용 자동차를 타고 다닙니다.

낙심은 절대 금물입니다. 낙심은 마귀가 사용하는 가장 큰 도구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하신 말씀을 믿고 끝까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1992년 4월 5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2020.1.5. 신년주일)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본문: 시편 147:12-20; 갈라디아서 6:1-10

설교: 홍정호 목사 (2020.1.5. 성탄 후 제2주, 신년주일)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 된 것처럼 생각하면, 그는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각 사람은 자기 일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자기에게는 자랑거리가 있더라도, 남에게까지 자랑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각각 자기 몫의 짐을 져야 합니다.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자기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자기 육체에다 심는 사람은 육체에서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에다 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에,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합시다.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합시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새해 첫 주일 아침에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빕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또 한 해를, 또 하루의 아침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처음 신학 공부를 할 무렵 성서비평을 배우면서 ‘기적은 없다’는 사실을 접하며 충격을 기억이 납니다. 거기서 공부를 그만뒀더라면 신자의 길을 떠나고 말았을 텐데,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큰 진실에 눈 떴습니다. 그것은,‘기적이 없는 게 아니라, 일상이 기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걷게 된 것(마 14:29)도 기적이지만, 그보다 더 큰 기적은 저와 여러분이 각자의 발로 땅을 딛고 오늘 여기에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인성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살리신 일(눅 7:11-17)만 기적이 아닙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한 순간도 쉼 없이 숨 쉬고 있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기적입니다. 그런 기적이 한두 번 사건에 그치지 않고, 작년 한 해 뿐만 아니라, 여러분과 저의 일평생에 이어져 오늘 새해 신년주일이 되었다는 이 사실만큼 기적적인 일이 또 있을까요?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에 눈 뜬 이들은 ‘오늘’이야말로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 은총의 선물이며, 더 없이 큰 기적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2.

일평생 그런 기적을 체험하며 산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사도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사도입니다. 나는 사도라고 불릴 만한 자격도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중략) 내가 이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전 15:9-10) 바울은 회심하기 전 교회를 박해하는 일에 앞장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난 그는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회심을 체험했습니다. 회심 이후 바울의 삶은 우리가 아는 그대로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복음을 유대인에게 한정된 약속의 말씀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의 기쁜 소식으로 전파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열두 사도는 아니었지만,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과도 같은 변화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랑할 만한 이력의 소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아 스스로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큰 인물로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나 그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 15:10a) 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심지어 그의 남다른 수고와 열정에 대한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 앞에서도 바울은 “이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c)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많은 시련 가운데에서도 자기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고 귀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비결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는 주님의 손에 붙들린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고백하고 범사에 그분을 인정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울의 삶이었습니다.

제 딸이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집에서 야구 놀이를 했습니다. 제가 투수를 하고, 큰 딸이 포수를 하고, 작은 딸이 타자를 했는데, 이 작은 딸이 위대한 4번 타자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공을 던지는 족족 잘 맞춰서 치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희가 다 칭찬을 하니까 재미있었는지 자꾸 하자고 해서 여름내 야구 놀이를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제 딸이 잘 친 걸까요, 제가 잘 던진 걸까요? 공을 다 받아치는 아이가 훌륭한 걸까요, 아니면 그렇게 하도록 배려하고 격려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은 어른이 훌륭한 걸까요? 제가 훌륭하다는 얘기를 들으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하시는 자녀인 저와 여러분에게 지금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를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때에,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자면, ‘던져’ 주시는 분이 은혜의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을 여러분에게 드립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인생에서 거둔 많은 보람의 결실에도 불구하고,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바울에게 역경과 도전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닙니다. 오히려 바울은 인간적으로 볼 때 참으로 어려운 갈등 상황에 끊임없이 직면했습니다. 오늘 갈라디아서의 말씀 또한 갈라디아 지역 교회의 갈등 상황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기독교 신자인 우리들은 ‘초대교회’를 교회의 원형이자 모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순수함과 열정을 회복하면 오늘날 교회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말입니다. 무슨 일이든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초심을 발전시켜 나가는 일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초대교회는 그리스도 교회의 초심이었다는 점에서 원형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에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초대교회 역시 오늘날 우리 교회들이 겪는 문제를 대부분 겪는, 갈등과 대립의 장소였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초대교회의 상황을 너무 낭만화하거나 부분적인 진실을 대면하는 데 그치고 맙니다.

사도 바울은 선교를 위한 모금과 직접 선교 활동을 하는 것 이외의 자신의 사역의 대부분의 시간을 공동체 간의 갈등과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조율하고, 이를 조화롭게 해결하는 데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갈등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갈등은 대개 자신을 공동체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갈등의 명분으로 내세운 주장들과 달리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갈등을 뿌리 깊게 만드는 근본 요인에 해당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열심 있고, 공동체를 사랑하고, 다른 이들보다 헌신적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그만큼 세워지는 데 있어 그들의 노력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왜 문제가 일어나는 걸까요? 그들이 주님을 위한 헌신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각자에게 주어진 직분과 역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위한 헌신과 열정에 대한 지나친 기대보상 심리로 인해 공동체 내부의 균형을 깨뜨리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의 편지는 이런 공동체를 향해 다시금 주님의 화해와 평화, 사랑과 자비의 말씀을 전하고, 교회 됨의 본질로 돌아갈 것을 가르치는 목회적 권면의 성격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4.

오늘 갈라디아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말씀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바울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하고 권면합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 된 것처럼 생각하면, 그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라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아주 중요한 메시지 하나를 갈라디아 교회에 전달합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에,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합시다.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합시다.”(갈 6:9-10)

낙심은 누가 합니까? 어떤 일에 관심이 적은 사람은 낙심할 일도 적습니다. 무슨 일이든 그 일을 잘 해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일수록 더 많이 낙심할 일이 생깁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선한 일을 하려고 애쓰는 이들이 낙심할 일도 더 많습니다. ‘이건 이렇게 되어야 한다’ 생각이 더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일이 ‘악한’ 일이 아니라, ‘선한’ 일인 경우에는 그 일이 자신의 뜻대로 성취되지 않는 데 대한 좌절감이 클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래서 선한 일에 힘쓰는 사람일수록, 역설적이지만, 낙심할 일도 많아지는 것입니다.

낙심이 무엇인가요? 마음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본래 있어야 할 그 자리에서 떨어져 깨지는 것이 낙심입니다. 신자인 우리의 마음이 본래 있어야 할 그 자리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우리의 마음도 있어야 하는데, 그 자리에서 마음이 떨어져 깨지면 낙심한 상태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장인이 빚어 만든 귀한 그릇이라도 떨어져 깨지는 순간 흉기가 됩니다. 떨어져 깨진 그릇은 본연의 아름다움을 잃고 다른 이에게 상처를 입히는 도구가 됩니다. 바울의 사역은 그렇게 떨어져 깨진 마음들, 주님의 마음으로부터 떨어져 깨진 공동체를 향해 본래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본질로 돌아갈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누구누구가 아니라 주님이 빛나시고,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교회로 다시금 세워져 가도록 권면하는 것이 바울의 사역이었습니다. 마음이 떨어져 깨진 이들과 더불어 주님의 일을 이룬다는 것이 인간적으로는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그 일을 자신에게 맡기신 주님의 일로 여기며, 날마다 새롭게 주시는 은총에 의지하여, 낙심을 이기고 주님의 교회를 위해 끝까지 헌신하는 위대한 사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5.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올 해 저는 여러분에게 사도 바울의 권면을 파송의 말씀을 대신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 각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선한 일에 힘쓸 때 가장 아름답고 귀한 모습이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선한 일을 통해 빛나기 때문입니다. 교회 역시 주님이 맡기신 선한 일에 힘쓸 때 가장 교회다운 모습이 됩니다.

그러나 선한 일에 힘쓰다 보면 낙심할 일도 그만큼 많이 있을 줄 압니다. 특별히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일들, 어떤 성취를 거두고자 애쓰는 일들,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관계일수록 낙심의 도전에 더 많이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우리는 바울의 권면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의 일은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맡기신 일에 충성하며 선을 행하면 그뿐입니다. 결과는 주님께 맡깁시다. 씨를 뿌리면서 나지 아니할까 염려하지 않고, 믿음으로 뿌리고, 믿음으로 거둡시다. 선을 행하되 낙심치 아니하며, 때가 이를 때에 기쁨의 열매를 거두는 저와 여러분의 올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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