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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장 주석 | [하루 한 장] 사도행전13장_안디옥 교회에 21911 명이 이 답변을 좋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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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7. 8 (수) [하루 한 장]“안디옥 교회에” (행13장)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사도행전 13장은 안디옥 교회에서
큰 부흥이 일어나고 이곳에서
이방인 선교사가 파송되는
역사적인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박해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수리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여 생긴 교회로
바나바가 파송을 받아 섬겼고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처음 들을 정도로 믿음 위에
바로 선 건강한 교회였습니다
또한 이곳은 바나바 외에도
흑인 시므온과 무명의 루기오,
지배계층 마나엔과 박해자였던
사울에 이르기까지 도저히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다섯 명의 사역자가 협력하는
“세워주는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 순종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이방을 향한
선교사로 파송한 안디옥 교회는
진정 “보내는 교회”였습니다
이젠 우리가 그 뒤를 이어갑시다.
====================================
* 부산 성민교회 : 부산시 사하구 승학로 201(괴정동).
http://sungminch.com/
성민교회 홈페이지에 오시면 더 많은 성민가족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홍융희 목사의 설교 mp3모음 USB구입은 교회 사무실로 전화 문의 바랍니다.
분홍목사의 사역 신청 문의도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051-204-0691 (담당 : 성민교회 박지선 간사)
*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성경말씀을 깨닫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하루 한 장]과 여러 영상들을 통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확인해 보세요.
http://www.youtube.com/c/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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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분홍목사 홍융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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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장 주석 – Daum 카페

사도행전 제 13장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 – 11:19-30예서 언급되었던 안디옥 교회가 새로 운 이야기의 장소적 배경으로 언급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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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5/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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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사도행전 13장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헬라어 사도행전 13장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굿윌러 2020. 10. 24.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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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ripol.tistory.com

Date Published: 1/28/2021

View: 8269

사도행전13장 주석 – 블로그

사도행전13장. ​. 사도행전 13, 14장은 제1차 선교 여행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사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출발했다. 안디옥은 오론테스강 상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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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naver.com

Date Published: 6/30/2022

View: 3541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13장 – HANGL CFC

행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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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fc.kr

Date Published: 3/7/2021

View: 4922

[사도행전 13 장 – 문제와 해설]

바울의 설교 요점은 무엇인가? 예수를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으라(39). 13. 바울이 자기의 말을 듣는 사람들을 가리켜 ‘이스라엘과 하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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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khong.org

Date Published: 7/1/2021

View: 4276

사도행전 13장 1-51절 말씀 묵상 – 복음뉴스

바울은 이 설교에서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 행하신 권능의 역사를 토대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까지는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인도하였고, 그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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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ogeumnews.com

Date Published: 1/30/2022

View: 5082

사도행전 13장. 영생 주시기로 작정한 자는 다 믿었다 – 벧샬롬교회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말씀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42). 많은 사람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고 두 사도가 그들에게 “항상 하나님의 은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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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schurch.net

Date Published: 2/13/2022

View: 3313

[이 주일의 설교] 우리가 꿈꾸는 교회(행 13:1~3) – 기독신문

사도행전 13장은 사도행전의 새로운 전환점입니다. … 그래서 역대하 16장 9절을 보면,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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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idok.com

Date Published: 3/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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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사도행전13장_안디옥 교회에
[하루 한 장] 사도행전13장_안디옥 교회에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사도행전 13장 주석

  • Author: 홍융희
  • Views: 조회수 6,72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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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7. 7.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_k0TxzISPhE

사도행전 13장 주석

사도행전 제 13장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 – 11:19-30예서 언급되었던 안디옥 교회가 새로

운 이야기의 장소적 배경으로 언급되고있다. 그리고 여기서 여러 명의 교사와 선지자

들이 언급되는 점으로 보아 안디옥 교회는 11:19에 언급될 당시보다 많은 성장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서 언급된 선지자들과 교사듸은 설립된 지 얼마되지 않은 안디

옥 교회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직분자들로 보인다. 한편 11:27에서 안디옥 교회에 선지

자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왔음이 언급되어 있으므로 본절에 언급된 선지자들에 예루살렘

에서온 선지자들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혹자는 여기서 언급된 선지자들은 아가

보와 같이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기능이 아니라 말씀을 가르치고 해석하는 목회적 직

분을 지녔으므로 예루살렘예서 왔던 선지자듸을 제외한 본래 안디옥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선지자들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Lenski). 그러나 이 주장을 취할 경우 선지자

들이 함께 언급되는 ‘교사들'(* , 디다스칼로이)과 엄격하게 구분

되지 않는다. 이와 달리 허비(A.C. Hervey)는, 선지자들을 당시 교회의 정규 전도요원

으로 생각하여 가르치는, 기능이 강조된 교사들과 구분시키고있다. 그리고 아사노 중

이찌는 선지자를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아 전하는 은사를 구비한 사람으로 이해하여

지적인 입장에서 신앙을 변증하며 성도들을 가르치는 교사와 구분하기도 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고전 12:28, 29와 엡 4:11에서 함께 언급되어 별 구분없이 비슷한 기

능을 가지고 교회 사역을 담당한 자들로 생각될수 있으나 선지자란 표현 자체가 예언

과 대언(代言)의 은사를 받은 자에 대해서만 적용될 수 있으므로 그 둘은 서로 구분되

어야 한다. 한편 누가는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 그룹 즉 신지자들과 교사들의 명단을

언급하면서 바나바를 맨 처음에 언급하고 사울을 맨 나중에 언급하고 있다. 아마도 안

디옥 교회에 있어서 중심 서열 내지 신앙의 연륜에 따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

서 바나바를 비롯하여 시므온, 루기오는 사울이 안디옥 교회에 오기 이전부터 직분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11:20). 그러나 누가 선지자인지 누가교사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따라서 혹자의 주장처럼 바나바와 시므온 그리고 루기오는 선지자로,

마나엔과 사울은 교사로 보는것은(Meyer, Longenecker, Hervey) 분명하지 않다.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 – 니게르라는 말이 검다는 뜻이라고 생각할 때 시므온은 아

프리카 출신으로 볼 수 있다(Alford, Longenecker, 아사노 중이찌). 그렇다면 이 사람

은 예수의 십자기를 졌던 구레네 시몬(눅 23:26)과 동일인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

나 만일 동일인이었다면 루기오를 구레네 사람으로 언급하면서 구레네 사람으로 더 잘

알려진 시몬을 굳이 니케레네 사람으로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동일인일 가능성이

희박하다.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 ‘젓동생’이란 같은 젖을 먹고 자란 것을 의미하는지 아니

면 친한 친구를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이 표현이 헤롯과 마나엔이 서로 매

우 친밀한 사이였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13:2

주를 섬겨 금식해때 – 27:9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금식(禁食)절기를 정해 놓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주를 섬겨’라는 단서를 달아 유대교적인 금식과 구별하고 있다. 여

기서 ‘섬기다’는 봉사한다는 의미와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 행위를 뜻하기도 한

다. 본절예서는 예배행위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공동번역은 본 구절을 ‘주님께

예배드리고 있을 때에’라고 번역했다.

성령이 가라사대 – 성령의 지시가 기도하는 무리들에게 임하였는데 성령의 음성을

들은 사람들은 앞절에서 언급한 바나바 외에 4명이다. 성령의 지시는 바나바와 사울을

이방선교를 위한 사역자들로 구별시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안디옥 교회는 이

방 선교를 위한 중심지가 되며 성령의 지시로 인해 사울은 사도로서 그 권위를 인정받

게 된다.

따로 세우라 – 름 1:1; 갈 1:15에서는 이 표현이 바울의 소명(召命)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특별히 사울이 이방인을 위한사도로 임명받은 것을 강조해 주고

있다.

=====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 여기서 언급되는 금식 기도가 2절에서 시작되었던 금식

기도와 동일한 것인지(Lenski) 아니면 2절의 금식기도가 끌난 다음 바나바와 사울을

파송하기 위하여 일종의 임명 예배를 다시 했다는 것인지(Alford, Haenchen, Hervey)

분명하지 않다. 두사람의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해 특별히 정해진 예배라고 보는 것이

문맥상 적절하다. 따라서 2절과 3절의 진술 사이에는 시간적 간격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안수하여 보내니라 – 바나바와 사울에게 안수(按手)를 베풀고 선교사로 파송한 주

체가 누구인지 본절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아마 1절에 언급된 시므온과 루기오 그리

고 마나엔 이 세 사람이 그들에게 안수했을 것이다. 그 세 사람이 그들에게 안수했다

고해서 안수받은 두사람보다 직책상 높은위치에 있었다고는 말할수 없다. 다만 그들은

성령의 지시로 두 사람을 안디옥 교회의 대표자로 혹은 사도로 인정하는 의식을 집행

했을 따름일 것이다.

=====13:4

실루기아에 내려가 – 바나바와 사울의 일행이 실루기아(Seleucia)로 내려간 것은

배를타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안디옥은 내륙에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실루기아를

외항(外港)으로 삼아야 했다. 실루기아는 안디옥 서쪽 약 26k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

고 있다. 이 도시는 B.C. 300년경 셀류시드(Seleucid) 왕조의 첫 왕 셀류쿠스

(Seleucus) 1세 니카토르(Nicator)에 의해 개항되었다.

구브로에 가서 – 이곳은 사울과 동행한 바나바의 고향이고(4:36) 안디옥 교회구성

원의 일부가 이곳 출신의 사람들이었다(11:20). 따라서 첫 선교지로 구브로(Cyprus)가

선택된 것은 바나바와 구브로 출신 안디옥 교회의 교인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3:5

살라미 – 구브로섬 동쪽에 위치한 해안도시이다. B.C. 58년 이후 로마의 지배를 받

으며 지중해를 통한 해상 무역으로 인해 상업 도시로 커갔다. 그러나 A.D. 116년 트라

야누스(Trajanus) 황제에 의해 파괴되었다.

유대인의 여러회당에서 전할새 – 살라미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하여 회당도 여

러 곳에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들은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있는 기회

를 포착했다. 비록 그들은 이방인들의 사도로 전도 여행을 떠났지만 실제적으로 전도

는 주로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유대인들도 그들의 전도 대상

에 포함되었음을 의미한다.

요한을 수종자로 – 요한은 12:25에서 언급된 마가 요한을 가리킨다. 그는 아마 두

사람을 대신해서 세례를 베푸는 일을 도왔을 가눙성이 있다(Alford). 왜냐하면 바울은

전도 여행시 몇 사람에게만 직접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이다(고전 1:14-17). 또한 요한

은 두사람의 여행 경비를 관리하는 등 전도 여행 중 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도왔을

것이다.

=====13: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 바나바와 사울의 일행은 살라미의 반대편 즉 구브

로섬의 서쪽 끝에 위치한 도시인 바보에 도착했다. 이 도시는 살라미로부터 약 180여

km의 거리에 있다. 본래 바보(Paphos)는 두 군데가 있었다. 즉 한 군데는 옛 베니게의

도시이고 여기서 언급된 바보는 이곳으로부터 서북쪽 약 11km의 거리에 있는 로마령

의 도시를 가리킨다.

바예수(* , 바르예수스) – ‘예수의 아들’ 혹은 ‘여호수아의 아

들’이라는 뜻을 가진 유대식이름이다. 바예수는 총독 관저에서 일하는 유대인으로 그

의 신분은 ‘거짓 선지자 박수’였다. 박수(* , 마고스)는 당시 마술적 또는

주술적 치료 행위릍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여기에 거짓 선지자라고 덧불여진 점으

로 보아 자칭 하늘의 계시자로 행세하면서 동시에 주술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치료한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인 그가 그같은 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활동을 지속

했다는 사실은 그곳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이 그의 행동에 미혹되었거나 아니면 총독이

그쁠 보호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경건한 유대인들이 그를 율법에 따라(레

20:6) 처벌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13:7

총독 서기오 바울 – 서기오 바울(* , 세르기오스 파울로

스)에 대해서 성경의 다른 곳에 언급되어 있지 않아 더이상 알 수 없다. 그가 글라우

디오 황제 때 티베르강 관리자로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F.F. Bruce)도 있지만 정확한

인물 고증(考證)이 어렵다. 다만 누가의 묘사로 보아 지혜있고 유력한 통치자로 추측

할 수 있다.

지혜있는 사람 – ‘지혜있다'(* , 쉬네토스)는 맡은 본래 신중하고 지

성적이며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 이 말은 총독의 통치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아마 누가는 총독으로서 서기오 바울이 공명 정대하

면서 분별력이 있는 정치를 한 것을 이 한단어로 묘사향것 같다.

=====13:8

엘루마 – 아람어 또는 아랍어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 단어는 6절에서 언급된

박수와 동의어다. 본래의 뜻은 요술장이 또는 마법사로 통한다. 그는 총독과 바나바

일행과의 만남을 방해하는 반(反)기독교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에 따라 총독

서기오 바울의 지혜는 더욱 돋보이게 된다. 즉 측근의 블경건한 술수를 물리치고 바나

바와 사울 일행을 만남으로써 지혜있다는 누가의 묘사가 증명되는 셈이다.

=====13: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 – 처음으로 바울(Paul)이라는 이름이 언급되었다. 이후로는

사울이 아니라 바울이라는 이름으로만 언급된다. 사울이라는 이름에서 바울이라는 이

름으로 바뀌게 된 이유에 대해서 사울이 회계한 이후부터 새사람된 표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보는 견해도있으나(Bengel, Olshausen, Meyer) 이는 주관적추측에 불과하

다. 오히려 바울이라는 이름을 본래부터 갖고 있었는데 서기오 바울을 만난 이후부터

저자가 사울을 로마식 이름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Zahn, Lightfoot,

Ramsay, Knowling, Vincent). 당시 유대인들 중에는 유대식 이름 외에 로마식 이름을

동시에 갖고있는 사람들이 있는데(1:23;12:25;13:1) 특히 사울은 나면서부터 로마 시

민권을 가졌던 사람이었으므로(22:28) 로마식 이름을 가졌을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누가가 바울이라는 사울의 로마식 이름을 이제야 언급하게 된 것은

아마도 이제 비로소 사울이 이방선교를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즉 이방 지역에서는 로마식 이름으로 언급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여질 것이고 설교에

도 도음이 되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성령이 충만하여 – 여기서 누가가 의도하는 바를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

다. (1) 모든 악령과의 싸움에서 승리로 이끄는 것은 성령의 역사임을 말한다. (2) 거

짓 선지자와 대결하는, 성령이 충만한 바울을 부각시킴으로써 이제까지 앞세웠던 바나

바로부터 이야기의 초점이 바울로 옮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3:10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 – 바울은 엘루마에 대한 일차적인 공격으로서 엘루

마의 정체를 폭로하고 있다. 여기서 언급된 ‘궤계’에 해당하는 혤라어 ‘돌로스'(*

)는 ‘미끼로 잡다’의 ‘델로'(* )에서 유래된 단어로 ‘교활’, ‘간교’, 또

는 ‘올무’, ‘미끼’ 등의뜻으로 사용된다. 한마디로 사기꾼이라는 말이될 수 있다. 6절

에서 ‘거짓 선지자’라고 언급된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악행’이

라는 말은 본래 경솔하거나 무절제한 행위를 의미한다(Robertson). 여기서는 부주의하

고 반(反)신앙적 행위로 인해 다른 사람들로하여금 실족케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귀의 지식 – 이와 같은 저주는 바리새인에 대한 예수의 저주와 같은 형식을 취하

고 있다(요 8:44). 이 말은 엘루마에 대한 저주이면서 그의 악한 행실에 대한 폭로이

다.

주의 바른깊을 굽게 하기를 – 엘루마의 행위가 ‘주님의 길을 훼방'(공동 번역)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총독 서기오 바울과 바나바와 바울 일행의 만남이 주님의 뜻

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13:11

주의 손…소경이 되어 – 저주 또는 축복에 대한 묘사로 주의 손이 본서에서 언급

되는데(11:21) 여기서는 성령의 일을 거스른 죄에대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함을 의미한

다. 진노가 임한 결과 엘루마는 소경이 되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형

태의 징벌은 구약성경에서 범죄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묘사되었다(신 28:28,

29).

안개와 어두움 – 눈이 멀어진 상태를 점층적 표현으로 묘사한 듯 하다. 즉 엘루마

의 눈은 안개처럼 희미하다가 어두움처럼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 엘루마가 완전히 실명(失明)하여 혼자 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음을 묘사하고 있다. 바울을 만나기 이전에는 자칭 선지자라 하여 다

른 사람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갈길을 지시해 주는 일을 했지만 지금은 혼자서 걸을 수

도 없어 인도자를 찾는 엘루마의 모습은 거짓 선지자의 상징적 모습이라 할 수 있다.

=====13:12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 본 구절은 총독 바울이 예수를 영접하게 된 결정적

인동기에 대한 설명이다. 엘루마가 소경된 사건이 총독 바울의 회심(回心)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렇다고 회심을 유발시킨 전체 동기는 아니다. 즉 기적적인 사건이 총

독 바울의 회심에 영향을 크게 준 것은 사실이나 그러나 여기에만 강조점을 둘 수 없

다. 왜냐하면 그가 엘루마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바울 일행을 만나고자 했다는점은 바

울의 가르침이나 그에 관한 이야기에 이미 호의적인 입장에서 관심을 두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엘루마가 소경된 사건은 그가 회심하는 데 외형적

동기 부여의 기능을 갖고 있다.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 – 여기서 ‘주의 가르치심’은 총독 바울이 엘루마

의 저주를 목격하면서 받은 교훈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주의 일을 훼방하고 사기

와 악행을 일삼아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거짓 선지자의 비참한 말로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함과 눙력을 체험하게 되었을 것이다.

=====13: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 – 박수 엘루마의 사건 이후 누가는 여기서부터 바울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누가의 관점에서, 바울이 엘루마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총독 서기오 바울을 기독교인으로 회심시킴으로써 선교 사역에 있

어서 지도자격으로 부상된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 – 구브로 섬을 떠나 바울 일행이 두번째로 찾은 밤빌리아는

지중해 북단에 있는 소아시아의 남쯤 해안에 접한 지역이다. 해안의 길이가 120km이며

내륙쪽으로 폭이 48km 정도의 이 지역은 동편에는 길리기아, 서쪽에는 루기아, 북쪽에

는 비시디아가 인접해 있다. 그리고 버가는 밤빌리아의 중심 도시로 해안에서 내륙쪽

으로 13km정도에 위치해 있다. 바울은 돌아오는 길에서 다시 이곳을 들르게 된다

(14:25). 이곳에서의 바울 일행의 선교 행적에 관한 언급은 없다. 아마 별다른 성과가

없었을 것이다.

요한은…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 예루살렘에서부터 바울과 바나바를 동행하여

(12:25) 그들을 도우며 따라왔던(5절) 마가 요한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만 누가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요한이 떠난 이유에 대해서 학자에

따라 다음과 같이 추측이 다양하다. (1) 사전에 구브로까지만 동행하기로 함. (2) 사

촌 바나바를 따라왔다가 바울이 선교의 주도권을 잡고 바나바가 소외된 데 대한 불만

(Alexander), (3) 향수병, (4) 용기 부족으로 여행을 포기함(Lenski), (5) 바울이 풍

토병에 걸려(고후12:7;갈 4:13, 14) 겁을 먹었음(Ramsay). 그러나 모두 다 설득력이

부족하다. 어쨌든 나중에 요한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지게 되는 점으로 보아 바

울은 요한의 귀향으로 크게 실망하고 상심한 듯하다(15:37-39).

=====13:14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 이곳은 안디옥 교회가 있는 수리아 안디옥과 구별되는

곳으로(11:27) 해발 약 100m에 달하는 고원지대이다. 오늘날의 터키 중남부 지방의 얄

바크(Yalvach) 근처의 폐허 지역을 말하며 당시에 이곳은 로마의 식민지였다. 바울은3

차전도 여행때에도 이곳을 들르게 된다(18:23).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 셀류쿠스 왕조 때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거주했으므로 유

대인들을 위한 회당이있었다. 따라서 바울 일행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거행되는 예배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구브로나 이곳에서도 바울 일행이 회당올 먼저 찾은것은 이방

땅에서 동족에 대한 친밀감을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방 선교 이전에 유대인에 대한 방문이 선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13: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 – 회당의 예배 순서 중 한 부분이 소개되고 있다.

여기서 율법서는 모세 오경을 가리키며 선지자의 글은 예언서를 말한다. 1세기경의 회

당 예배는 쉐마(신 6:4-9) 기도, 율법서와 예언서 낭독, 그리고 설교나 권면의 말씀과

축복의 순서로 진행되었던 것 같다. 성경이 회당에서 낭독되었던 전통은 바벧론 포로

기 이후에 시작되었으며 B.C. 163년부터는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가 율법서 낭독을 금지하여 예언서만 낭독되었으나 마카비 혁명 때에 다시

율법서가 낭독되었다. 회당에서 성경은 히브리어로 낭독된 다음 다시 아람어나 코이네

헬라어로 통역되었다(Robertson).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 예배순서상 권면의 말씀을 할 차례가 되었는데 회당장

은 바울에게 사람을 보내어 설교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당시 예배 중에

설교 또는 권면의 말씀을 담당할 대상을 회당장이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었다. 따라서

랍비나 방문자에게 설교를 요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회당장은 예배 전에 설교자를 선

정해야지 예배 도중에는 할 수 없었다(Haenchen, Robertson). 그러나 여기서는 예외로

회당장이 예배 도중 바울에게 설교를 요청하게 되는데 아마도 바울과 바나바의 일행이

예배 시작과 더불어 회당에 들어왔기 때문에 미리 설교를 부탁할 수 없었던 것으로 추

측할수 있다. 이를 통해서 블 때 회당장에 바울 일행에 관한 소문을 많이 듣고, 그들

에 관해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권할말이 있거든 말하라 – 바울에게 설교를 요청하는 본문의 어투는 ‘만일'(* ,

에이)이라는 단어로 시작되는 조건적 제안으로서 상대방에게 공손하게 요청하는 말이

다. 그래서 공동번역에서는 이러한 의미를 최대한 살려 “두 분께서 혹 격려할 말씀이

있거든 이 회중에 한 말씀 해주셨으며 좋겠습니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13: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 회당장의 제안에 대한 응답으로 바울은 곧바로 일어나

설교를 하기 시작한다. 본래 회당 안에서의 설교는 관습적으로 앉아서 하는데(눅

4:20) 바울은 일어서서 손짓까지 하면서 설교를 한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은 열정적인

웅변가로 보여지게 된다. 아마 누가는 바울을 헬라적인 연설가로 묘사하려 했을지도

모른다(Haenchen). 어쨌든 이러한 형태의 설교는 유대 회당의 전통과는 다른것이었음

에 틀림없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 여기서부터 바울의 설교가 시작된

다. 서두에서 누가는 설교를 듣는 청중이 누구인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다.

이에 대해 학자에 따라 다음 두 가지로 해석한다. (1) 이스라엘로 언급된 사람들은 유

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란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을

말하는 것이다(Lenski, Robertson). (2) 이스라엘 사람들은 출생에 의한 유대인 및 유

대교로 완전히 개종한 이방인들을 가리키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10:2의 ‘경건

한 사람’과 같은 의미로서 유대교로 개종하지는 않았으나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 이방

인을 가리킨다(Haenchen, Bruce, Neil). 유대교로 완전히 개종한 자들은 이스라엘 벡

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으므로 이스라엘 사람에 포함된다. 따라서 (2)의 견해가 더

타당하다.

=====13:17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 – 여기서부터 22절까지의 내용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요

약으로 신앙 고백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설교의 형태는 7장에서 소개된 스데반의

설교와 그형식이 비슷하다. 그러나 바울의 설교는 스데반보다는 간략하다. 바울이 이

스라엘을 구원시킨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라고 말한 것은

아마도 이방인 청중을 의식하여 언급한 듯하다(Lenski). 즉 이방인들이 생각하는 신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한 출애굽의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형태의 호칭은 당시 일반적인 것으로 보이며 70인역(LXX)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어투였다(Laenchen).

우리 조상들을…백성을 높여 – 본절에서 ‘조상들’과 ‘그 백성’이 같은 의미로 사

용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히브리인들

은 시문학에서는 병행 대구법(parallelism)을 사용해서 그 구절의 의미를 강조하거나

명확하게 하곤 했다. 만일 본절이 그러한 형식을 취했다면 두 용어는 같은 의미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두 용어가 다른 의미로 쓰여 역사적인 흐름을 차례로 설명하고

있다면 ‘조상들’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그리고 야곱의 12아들을 칭하는 의미이며

‘족장들’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스데반의 설교 내용과 본절의 바울 설교를 비교해

볼 때 ‘족장들’로 해석하는 편이 무난하다.

큰 권능으로 – 에굽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킨 하나님의 능력에 대

한 표현인 ‘큰 권능’은 70인역(LXX)역에서 영향받은 어투로(Robertson) 출 6:1, 6;신

5:15;시 136:12의 내용을 연상시킨다.

=====13:18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 본 구절은 광야 40년간의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관계

를 함축하고 있다. ‘참으시고’로 번역된 혤라어 본문은 사본에 따라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1) ‘에트로포포레센'(* ):공동번역 및 많은 영역

성경이 이 용어를 따라 ‘참으시고’로 번역했다. 이 용어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 많은 잘못을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참으신 사실을 부각시켜

준다. (2) ‘에트로포포레센'(* ):영역 성경 중 리빙 바이블

(Living Bible)이 번역을 취하며 몇몇 대문자 사본 및 소문자 사본, 그리고 번역본들

이 이 용어를 선택한다. 이는 ‘돌보다’는 의미로 신 1:31의 70인역(LXX)에 따른 것이

다. 몇몇 학자들이 (해석을 지지하지만(Holtzmann, Zahn, Bruce)어떤 학자들은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Haenchen, Marshall, 아사노 중이찌). 사본

상으로 ‘참으시고’가 더 많은 지지를 얻고 있으나 의미상으로는 ‘돌보시고’가 더 어울

리기에 어느 하나를 강조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신 1:31의 히브리어 본문은 70인

역의 ‘돌보시다’란 의미보다 ‘참으시다’의 의미에 더 가깝다. 따라서 본 구절에서는7

‘에트로포포래센'(* )이 더 적합하다.

=====13: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정착하게

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요약한 본문은 신 7:1과 연관이 있다. 신 7:1에서 그 일곱 족

속이 헷, 기르가스,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로 언급되어 있다.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 ‘기업으로 주다’에 사용된 동사 ‘카타클레로노메오'(*

)는 70인역(LXX)에서는 종종 나타나지만 신약성경에서는

본절에서만 언급된다. 그 뜻은 ‘몫을 따라 분배하다’란 의미로 유산 상속과도 관계가

있다. 본절에서 이 동사는 각 지파가 받을 분깃에 따라 가나안 땅을 분배받은 것에 대

해 적용되었다.

약 사백 오십 년간 – 여기서 450년이라는 기간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계산한 것

인지 이해하기가 매우 모호하다. 특히 사본에 따라 본 구절의 위치가 다르다. (1) 개

역성경처럼 20절에 언급되는 ‘그후’란 표현 앞에 본구절을둔다(* ,A,B,C). 이 경우450

년은 사사 시대 이전까지의 기간이다. (2) 20절의 ‘그후’ 다음에 450년을 둘 때 애굽

에서 탈출한 후 광야생활부터 사사 시대까지 포함하여 450년이 된다. 첫번째 견해를

취할 경우 애굽에서400년, 광야에서 40년, 가나안 정복 기간 10년을합친 450년을 뜻한

다(Bauernfeind, Lenski, Bruce, Knowling, Weiss, 아사노 중이찌). 그러나 실제로

광야 40년과 사사 시대는 사무엘 이전까지 약 370여 년간 지속되었다. 그리고 사무엘

이 사사로 앉으면서 활동한 기간이 다윗왕까지 이어지는 70여 년간으로 계산할 경우

450여년이 된다. 그런데 본문에서 450여 년은 이스라엘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정착하여 왕을 세우기까지의 기간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되므로 (2)를 따르는 편이

무난하다.

=====13:20

그 후에 – 앞절이 가나안 정복까지의 기간을 의미하므로 ‘그 후’란 가나안 정복 이

후 사사 시대를 뜻한다.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 가나안 땅에 입성한 이후 이스라엘을 이끌어 갔

던 지도자들을 요약하여 언급하고있다. 가나안 정복 후 사사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렸

다. 이 기간은 가나안 정복 전쟁(B.C. 1405)에서부터 사무엘이 그의 사역을 마치기까

지(B.C. 1017) 약 400여 년이다.

=====13:21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 사사 시대가 끌나고 왕정 국가 시대가 언급되고

있다. 왕정 국가의 시작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서 사무엘이 너무 늙

었다는 이유와 함께 다른 열방들의 왕권 통치에 대한 부러움예서 시작되었다(삼상

8:5). 사실 이러한 이스라엘백성들의 요구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거부하는 것이

며 신정 시대(神政時代)를 폐지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울을 사십년간 주셨다가 – 백성들의 요구를 하나님은 들어주셨으나 호 13:11에

의하면 하나님 자신이 분노하여 왕권을 허락했다고 언급되고 있다. 즉 왕권에 대한 요

구는 부당한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사울의 통치는 40년간(B.C. 1050-1010) 계속 되

었는데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함과 동시에 그와 그의 아들들이 죽음으로써 그의 통치

는 끝나게 된다(삼상 31:1-6). 본 구절에서 언급되는 사울의통치 기간 40년은 성경 어

느 곳에서도 언급되지 않으므로 다만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추측에 의존

한 것으로 보인다(Haenchen, Lenski).

=====13:22

폐(廢)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 바울은 사울의 죽음과 다윗의 등극을 하나

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묘사하고 있다. 즉 사울왕을 ‘폐하시고’라는 말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표현(호 13:11)임을 보여준다. 이는 왕정국가가 성립되었어도 하나님 개

입이 계속 되었음을 말해 준다. 아마도 바울은 18절의 표현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

순종과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참고 보살피시는 하나님을 묘사하려는 듯하다.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 삼상 13:14과 시 89:20을 인

용한 것으로 보이는 본문은 이스라엘의 왕정(王政)을 인정한다는 의미를 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점은 왕가(王家)

의 정통성을 신적인 권위로 세우고자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열망을 대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마음에 합한’이라는 표현은 다윗이 하나님에 의해 계획된 구속사에

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인물임을 부각시킨다.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 다윗에게 거는 하나님의 기대는 23절에서 언급되는 메

시야탄생의 씨앗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결국 다윗 선택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

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救贖史)에 속한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바울은 이스라

엘 역사 속에 나타난 구속사를 이스라엘 백성이 대망하던 메시야에게로 초점을 맞추어

진행시키고 있다.

=====13: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은 삼하 7:12에서 볼 수 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경우에서처럼 언약을 맺는 형식을(창 15:1-21) 취하지 않고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주어졌다. 그렇지만 언약 맺음에 있어서 수반되는 축복과 저주, 충성과

복종의 조항이 언급되므로 삼하 7장을 ‘다윗 언약의 장’이라 부른다. 아무튼 바울은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구속사를 설명하면서 다윗 언약을 상기시켜 메시야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왕통을 이어받았음을 증명하였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 이 말은 다윗에게 약속한 하나

님의 언약이 예수안에서 성취되었음에 대한 표현이다. 그런데 본 구절은 약간의 오해

가 발생될 수 있다. 즉 본절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여 온 인류를 위한 구원자로

서 예수를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소

명자로서의 바울과도 모순되는 것처럼 이해된다. 그러나 바울의 이러한 진술은 이스

라엘의 전통적인 메시야 사상에 입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유대인들은, 다윗에

게 약속한 메시야는 다윗 왕국을 강건하게 복원시키는 정치적 인물임을 믿었다(삼하

7:12-16). 그러나 구약성경에는 메시야에 대해 다앙한 예언이 있다. 즉 수난의 ‘종’

(사 42:1-7;49:1-7;50:4-9;52:13-53)또는 ‘인자'(단 7:13), ‘왕’으로서의 메시야와

‘대제사장’으로서의 메시야(슥 4:11-14) 등이 나타난다. 이처럼 구약성경은 한 메시야

에게 다양한 상(像)이 복합적으로 존재함을 말해주고 있으나 유대인들은 굳이 일부분

만을 취하여 메시야를 정치적인 즉 이스라엘에 국한된 메시야로 한정시켜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이 이방인의 구원을 말하면서도 예수를 이스라엘의 구주로 말한 것은 유대

인들의 배타적인 메시야 사상을 말하기보다는 예수가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해 예언

되었고 하나님에 의해 약속된 구주임을 권위있게 증언하고자 했을 것으로 보인다. 따

라서 본 구절은 예수를 이스라엘의 구주로 국한시키는 말로서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

다.

=====13:24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 바울은 예수의 메시야됨에 대한 권위를 강조하기 위

해 세례 요한을 언급하고 있다. 바울이 세례 요한을 예수의 권위를 보증하는 데 이용

한 것은 당시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믿고 있었으며 이러한 세례 요한의 회개

의 세례가 유대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18:25;눅 3:7-15). 따라서 바울은

세례 요한이 예수에 대해 증거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청중들에게 이러한 세례 요한의

활동을 회상시켜 그의 말에서 예수의 권위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예수가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아마 그는 이 사실이

예수의 권위를 높이는 데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13:25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 이 말은 딤후 4:7에서도 나오는데 헬라적 어투로서 바

울의 독특한 어법이다(Haenchen). 본 구절은 요한이 예수에 대한 증거 사역을 다하였

을 때를 의미한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 바울이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언급한 의도는 이 표현 속

에 함축되어 있다. 즉 요한 자신이 메시야임을 직접적으로 거부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본문은 눅 3:15, 16과 요 1:19-27의 내용으로 당시 세례 요한을 메시야로 믿었던 유대

인들이 많았음을 반증함과 동시에 요한이 대중들로부터 대단한 신뢰와 인기를 얻었음

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신뢰하는 요한이 직접 자신이 메시야가 아

니라 예수가 참 메시야이며 따라서 세례 요한 자신은 그 증언을 위한 사명자에 불과함

을 분명히 밝혔다고 주장함으로써 예수를 메시야로 확증하고자 한다.

=====13:26

형제들 – 청중들을 부르는 이 말은 회당 안에 모인 유대인들과 개종한 이방인들 및

회당 예배에 참석한 이방인들 모두를 포함하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바울은 청중을

다시 부름으로써 주위를 환기시키면서 자신의 설교를 본론으로 이끌었다.

아브라함의 후예 – 이 말은 혈통적인 유대인들을 제한적으로 지칭하는 표현이지만

여기서는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도 의미한다. 이 용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16절 주

석을 참조하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 본 구절은 개종하지는 않았으나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 이방인들로 이해된다. 이에 대해서도 16절 주석을 참조하라.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 본 구절을 헬라어 본문에 따라 직역하면

‘이 구원의 말쏨이 우리에개 보내졌거늘’이란 의미가 된다. 개역성경은 주어를 하나님

으로 전제해서 보내신 주체(主體)인 하나님을 강조했으나 헬라어 본문에는 ‘구원의 말

씀’이 강조되었다. 본절부터가 바울의 설교에 있어서’ 본론 부분에 해당하므로 당연히

‘구원의 말씀이 강조되어야 한다. 한편 ‘우리에게’란 표현은 어떤 사본에서는 ‘너희에

게’로 언급되어 있다. 본절의 구원의 말쏨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차별없이 주어

졌음을 볼 때 ‘우리에게’가 무난하다.

=====13: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 – 바울은 예수를 처형했던 주범을 언급하고있

는데 이것은 누가의 견해와 동일하다. 왜냐하면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를 처형

한 장본인들이 이스라엘 종교.정치 지도자들임을 진술하고 있기 때문이다(눅

23:1-25).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 15절에서 언급

한 바 있듯이 그들은 예배때마다 예언서를 읽지만 예언서의 올바른 뜻을 이해하지 못

하였기 때문에 예수를 구셰주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이 같은 바울의 지적은 유대 지도

자들의 무지함을 강조하며 또한 예수의 처형에 대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응하게 하였도다 – 결국 예수의 불법적인 처형도 선지자들의 예언에서 이미 제시된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밝히는 바울의 설교는 3:18에서 언급되는 베드로의 설교와 일치

되고있다. 이렇게 볼 때 베드로와 바울은 신학적으로 동일성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그렇지만 이 두 설교가 누가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누가 자신의 신학이라고 보

아도 무방할 것이다(Haenchen). 누가는 베드로의 설교에서나 바울의 설교에서 같은 내

용을 언급하여 초대 교회 시대에 있어서 케리그마가 어느 지역에서나 동일했음을 보여

준다.

=====13:28

죽일 죄를 하나도 채지 못하였으나 – 본 구절은 예수의 무죄함을 강조한다. 이는

눅 23:14, 15에서 언급된 빌라도의 무죄 선언을 연상하게 한다. 그런데 혹자는 본절의

무죄 선언과 눅 23:14, 15에서의 무죄 선언의 주체를 구분하고있다(Haenchen). 즉 그

는 눅 23:14, 15에서는 빌라도가 무죄를 선언한 것이고 본절에서는 유대인들이 예수의

무죄함을 입증한 것이라고 본다. 이처럼 죄가 없으신 예수에 대한 무죄 선언은 재판

과정에서나 신학적으로나 정당한 것으로 인정될 수밖에 없었다.

=====13:29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 바울은 예수의 재판과 처형을 이미 성경에 예언된

바의 성취로 이해하며 예수 사건을 전체 구속사의 핵심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을 재확인하면서 부

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즉 장사지내고 무덤에 돌어갔다는 점이 예수의 죽음을 분

명하게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바울은 믿는 듯하다. 여기서 ‘십자가’라는 말 대신 ‘나

무’라고 언급한 것은 신 21:23에서 언급된 예언과 일치시키려는 바울의 의도로 보여진

다. 한편 바울은 십자가 사건을 복음서처럼 자세하게 설명하지않았다. 이는 바울의 관

심이 예수의 완전한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의 구속사적 의의를 간략하게 설명하는 데 있

음을 보여준다.

=====13:30

하나님이…저를 살리신지라 – 부활신앙에 대한 고백은 초대 교회에서 이미 공통된

교리로 고정된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3:15;4:10). 그리고 예수를 부활하

게 한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정죄와 처형을 하나님께서

불법적이고 부당한 것으로 보증하셨음을 의미한다. 나아가서 예수의 말과 행동이 하나

님에게 정당한 것으로 용납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13: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 – 본 구절은 갈릴리에서부터 예수와

동행했던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복

음서에서도 증언하는 부활 목격자는 매우 다양하다. 즉 마태는 예수의 부활 현현(顯

現)의 장소를 갈릴리로 제한시켜 언급하고 있으며(마 28:7, 10, 16) 마가 역시 마태와

동일하다. 요한은 예루살렘과 갈릴리에 각각 부활 현현이 있었던 것으로 언급하고 있

다(요 20장;21:2, 14). 또한 누가는 엠마오 도상에서 두 제자가 예수의 부활 현현을

목격했으며(눅 24:18) 예루살렘에 있던 열 한사도와 그 외의 추종자들도 목격했다고

기록했다(눅 24:33). 이와 같이 각 복음서마다 부활 현현의 장소와 대상이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바울도 고전 15:6에서는 열 두사도와 500명이 넘는 사람

들이 예수의 부활을 목격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 전반에 걸친 부활 현현에

대한 증언을 토대로 할 때 본문의 의미는 불특정한 같릴리 출신인들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10:39-41에 나타난 베드로의 설교처럼 사도들을 지칭하는 것

으로 이해할 수 있다(Haenchen, Bruce). 그러나 본문에서 바울이 자신의 다메섹 경험

을(9:1-8) 언급하고 있지 않으며 고전 15:6에서 언급한 500명의 목격에 관한 언급도

없다는 점에서 본문의 내용은 저자인 누가의 관점에서 묘사된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이다. 그렇다면 누가복음에서 언급된 바처럼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

갈릴리 출신의 예수 추종자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러 날 – 여기서 언급한 부활 현현의 기간은 1:3에서 언급된 400일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Haenchen, Robertson, Beyer).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 부활한 예수를 목격한 사람들이 부활의 산증인임을 언

급하는데 바울 자신이 그 증언자에 포함되는 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

나 32절에서 본절의 증인들과 구분하여 ‘우리도’라고 바울 자신과 바나바를 언급한 점

으로 보아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 최초의 목격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한다

(10:39-41).

=====13:32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 – 이 약속은 23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약속을 의미한다. 바

울은 롬 4:13과 갈 3:16에서도 같은 형태의 진술을 하여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오셔서 사역했음을 밝혔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의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이단적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믿는 그 하나님의 약속이며 그 약속이 성취된 소식임을 강조

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오해와 무지를 벗겨주고자

노력했다.

=====13:33

우리 자녀들에게 – 몇몇 사본들에는(* ,A,B,C,D 등) 약속이 성취된 세대가 ‘우리

의자녀들’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다른 사본에서는(C,E,P 등) ‘그들의 자녀된 우리에

게’로 언급되었다. 본절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세대에 대한 것이므로 ‘우리 자녀

들에게’란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바울은 지금 예수께서 활동하시던 당대의 세대를 지

칭하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대부분의 영역처럼 ‘그들의 자녀된 우리에게’로 해석

되는 것이 무난하다.

너는 내 아들이라 – 시 2:7을 인용한 본문은 본래 이스라엘 사회에서 왕의 대관식

(戴冠式)때 사용되던 시로서 이스라엘 왕이 기름부음을 받을 때 그 왕이 하나님으로부

터 다시 태어나 하나님과 부자(父子)의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이다. 바울이 이 시편의말

씀을 예수에게 적용시킨 것은 바울의 독특한 인용이 아니다. 사실 복음서에서도(막

1:11; 눅 3:22) 예수가 메시야로서 성령의 능력을 받을때 본문과 갈은 내용을 인용하

고있다(Bruce). 그리고 히브리서에서도 시 2:7을 예수에 대해 적용시켜 인용하였다(히

1:5). 이는 시 2:7이 비록 왕의 대관식에서 많이 사용된 구절일지라도 유대인의 전통

에서 그 구절을 메시야와 연관시켰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초대 교회는 예수께서 다윗

의 가문에서 나온 왕권적인 권리를 가진 메시야로서 하나님께 세움을 받았다고 믿었던

것이다.

=====13:34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 – 바울은 예수가 죽어서 썩지 않고 부활할 것이라는

구약적 근거를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다윗의 가문에서 부활할 메시야가 나올 것이라는

구약적 증거로 칠십인(LXX)역의 이사야 55:3을 들고 있다. 이러한 신학적 의도는 베드

로의 설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2:27). 여기서 바울은 기독교를 유대교 전통과 분리된

이단이 아니라 유대교가 필연적으로 가야 할 길임을 강변하고있다. 즉 본절은 당시 전

통적인 유대교 앞에 소수종교로서 기독교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바울의 끈질긴 설

득이다.

=====13:35

또 다른 편에 – 이 말은 33절에서 언급한 들째 편(시 2:7)과 구분되는 시편을 뜻한

다. 여기서 바울은 시 16:10 근거로 구약적인 부활 사상을 다시 언급하여 예수의 부활

에 대한 증거를 더욱 심도있게 진술하고 있다.

=====13: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 바울은 22절에서 언급했던 다윗을

다시 언급하여 예수의 부활과 다윗의 죽음을 대조시켜 예수의 부활 사건을 강조했다.

먼저 바울은 육대인들이 갖고 있는 다윗에 대한 인상을 재확인하고있다. 즉 22절에서

는 다윗을,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세움을 받았으며 또한 하나님에게 용납된 자로서 하

나님의 뜻을 이루어 낼 사람으로 언급하였는데 여기서도 역시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던 인물임을 말하여 다윗을 높이고있다. 그렇지만 바울은 곧이어 다윗의 죽

움과 썩어짐을 예수의 부활과 대조시켜 썩지 않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계속 유효

했음을 강조한다. 한편 ‘섬기다’란 동사의 목적어로 사용된 ‘하나님의 뜻을 좇아’란

구절은 전치사 없이 여격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본 구절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라고 번역될 수 있다(Robertson, Alford, Haenchen). 이 해석을 취할 경우 본 구절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다윗이 그 시대에 자기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일을 수행했던 사

람’임을 의미한다. 여기서 바울은 다윗의 업적과 죽음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었음

을 22절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비록 다윗

은 하나님으로부터 썩음을당하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받았으며 하나님에의해 맡겨진 사

명을 잘 수행했을지라도 죽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주어진 약속은 성취의 여지를 남겨

두고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예수와 연관지어 35절에 이어 다시 한번 더 언급함으로써

예수가 구약에 약속된대로 부활하셨음을 강조했다.

=====13:37

하나님의 살리신 이 – 부활하신 예수를 가리키는 본 구절은 죽음으로부터 예수를

부활시킨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다윗의 유한한 생명과 예수의

영원한 생명을 대조시켜 하나님의 궁극적 뜻이 예수를 통해서 성취됨을 주장한다.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으나 – 이 말은 36절의 ‘썩음을 당하였으되’라는 말과 반대

되는 표현으로 다윗과 예수를 극명하게 구분시키는 것이다. 바울은 유대교 전통에 붙

잡혀 있는 유대인들에게 다윗보다 예수가 위대함을 논증해 보임으로써 예수에 대한 유

대인들의 선입관이나 잘못된 의식을 바꾸고자 했던 것같다.

=====13:38

이 사람을 힘 입어 – 이 말은 문자적으로 ‘이 사람으로 말미암아’를 의미하여 어떤

결과의 유래(由來)를 나타낸다. 그것은 ‘죄사함의 선언’을 한 이가 예수임을 의미한

다.

죄사함 – 바울이 예수의 부활을 ‘죄사함’과 곧바로 연결시킨 것은 약간 논리의 비

약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의 부활이 어떻게 해서 죄사함의 근거가 되

는 지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가가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것 같

다. 한편 바울이 ‘죄사함’을 복음의 핵심으로 선포한 것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정

죄’의 문제가 신앙의 억압적 요소로 크게 작용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유대인들은 장

로들의 유전(遺傳)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했으며 그 중 하나라도 범하게

되면 죄인으로 판명되므로 죄문제로 인해 항상 억압당하는 신앙 생활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의 예수에 의한 죄사함의 선포는 바리새인이었던 자신이 예수를 만남으로

써 체험했던 사실에 대한 것임과 동시에 초대교회의 교리의 핵심이었다.

=====13:39

모세의 율법으로…의롭다 하심을 – 본 구절은 바울 서신과 일치된 사상을 전달하

고 있으므로 본장에 언급된 바울의 설교를 본서의 저자인 누가의 작품으로 평가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본 설교가 누가의 필치에 의해 다듬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

으나 ‘부활’과 ‘의의선포’같은 내용은 바울의 독특한 신학을 형성하는 골격이 되므로

전체적인 내용은 분명히 설교자 바울의 것임에 틀림없다. 바울은 의롭게 되는일에 온

갖 정성을 다 바쳤던 유대인듸의 삶을 지적하면서 의롭게 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설교에는 (1) 사람이 율법으로는 결코 의롭게 될 수 없다는 사실

과 (2) 예수를 통해서만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강하게 암시되어 있다.

=====13:40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 바울은 자신의 설교를 마무리 지으면서 마지막 경고를

주기위해 41절에서 합 1:5를 인용하였다. 여기서 언급된 ‘삼가라’는 말은 41절의 인용

구절 중’멸시하는’과 연관되어 ‘멸시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의미를 지니

고 있는지 아니면 ‘놀라고 망하라’는 표현과 연관되어 ‘놀라고 망할까 조심하라’는 의

미로 해석되어야 할지 확정할 수 없다.

=====13:41

일렀으되 – 이 말은 앞절에서 언급했듯이 ‘선지자들’이 한 말을 다시 상기시키는

것으로 예언서에서 발췌된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 여기서 인용되는 구절은 합 1:5

로서 70인역을 약간 변형시켜 사용되었다. 히브리 본문에서 이 구절은 갈대아 사람의

등장에 대한 예언과 관련되어 있다(Haenchen). 그러나 바울은 이문구를 인용하여 유대

인들이 배타적으로 우월감에 빠진 선민의식(選民意識)으로 인해 버림받고 오히려 이방

인들이 구원의 길로 인도될 것임을 예고하였다.

=====13:42

저희가 나갈새 – 본 구절은 바울이 설교를 마치고 회당에서 퇴장하는 장면에 대한

묘사다. 문맥상 바울과 바나바가 설교 후 곧바로 퇴장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예배

도중에 바울과 바나바가 퇴장했을 가능성은 희밖하다. 바울과 바나바가 유대교 전통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예배를 마치기 전, 즉 자신의 설교만 마치고

퇴장한 것(Meyer, Knowling)이 아니라 예배를 마친 다음 다른 사람들과 함께 퇴장했으

나 누가가 그 과정을 생략하고 간결하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Haenchen).

사람들이 청하되 – 본 구절은 다음 두 가지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1) 47절부터

시작되는 다음 안식일의 설교가 있게 된 배경을 설명해 주고 있다. (2) 바울의 설교가

유대인들로부터 매우 고무적인 반응을 얻었음을 암시한다. 이는 유대교인들 중에서 기

독교로의 개종이 일어나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13:43

폐회한 후에 – 예배의 종료(終了)를 알리는 본문은 앞절에서 언급된 폐회의 암시와

부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즉 앞절에서 이미 예배의 종료가 함축적으로 언급되었다

면 또다시언급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절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퇴장할 때

가 예배 도중이었을것으로 추측될 수 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가 도중에 퇴장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에서(42절 주석) 본절은 예배 종료를 알리는 말이라기보다는

본절에서 언급되는 사건이 예배가 패회된 이후에 있었음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

다.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 – 16절주석 참조.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 본 구절은 42절에서 언급된 바울의 설교를 다시 듣기로

간청한 것과 맞물려 이방 지역의 유대인 공둥체에서 기독교의 새로은 공동체가 발생하

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13:44

온 성이 거의 다…모이니 – 이 같은 묘사는 바울의 설교가 성공적이었음을 강조하

기위한 극적인 표현이다. 왜냐하면 당시 온 성의 사람들이 거의 다 모일 수 있을 정도

의 회당이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가기 때문이다(Bauernfeind). 누가가 이처럼 과장

법을 사용한 것은 바울을 성공적인 설교가로 묘사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Haenchen). 하여튼 본절에서 누가가 진술하고자 하는 요지는 바울의 설교가 성공적이

어서 비시디아 안디옥 온 성이 떠들썩했으며 더욱 많은 무리가 바울의 설교를 듣기 위

해 회당으로 몰려왔다는 사실이다.

=====13:45

유대인들이 – 이들은 회당의 구성원들로 바리새파의 유전을 철저히 추종하는 유대

인들로 추정된다. 이들은 회당의 핵심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바울의 설교가 자기

공동체에 심각한 도전이 된다고 느꼈기 때문에 바울의 설교에 대해 무조건 비방하는

자세를 취했을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시기와 비방은 새로이 형성되는 기독교 공

동체가 유대교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있다.

=====13: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 유대인들의 비방에 대해 바울과 바나바가 응답함

에 있어서 누가는 바울과 바나바의 진술을 권위있게 묘사하기 위해 ‘담대히 말하여’라

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즉 이 말의 헬라어 ‘파르레시아사메노이(*

)는 ‘자유릅게 말하다’ 또는 ‘숨김없이 확신을 가지고 말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누가는 바울과 바나바의 대답이 매우 확신에 찬 것으로 청중을 설득

하는 호소력이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 이 말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겼

음을 의미한다. 이는 유대인들 자신이 자처(自處)한 것이므로 복음을 전해 받지 못하

는 책임이 그들 자신에게 있음을 가리킨다. 이러한 언급은 바울 자신도 유대인에게 복

음을 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서 그는

비방하는 자들이 자신을 반(反) 유대적인 교리를 전파하는 자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랬

을 것이다.

=====13:47

주께서…명하시되 – 바울은 다시 자신의 이방 선교의 정당성을 구약성경을 인용하

여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자신의 사역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임을 선포하여 그

사역의 신적권위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자신이 선포하는 내용도 인간의 지혜나 마

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그토록 섬기던 바로 그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으

므로 자신을 비방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자라는 암시를 주고 있다.

내가…구원하게 하리라 – 이 인용구는 사 42:6;49:6에서 발췌된 것이다. 이 이사

야서의 말씀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으로서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바울과 바나바예게

하신 말씀은 아니다. 하지만 바울에 대해 하나님께서 아나니아에게 예언하신 내용과

연관지어 볼 때(9:15) 이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에게 적절히 적용될

수 있다 하겠다. 즉 바울은 사 42:6;49:6에 예언된 내용을 전파하는 자로 자신들이 선

택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 구절을 인용했을 것이다.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 여기서 누가는 바울과 바나바의 설교를 들은 이방인들

의 기쁨을 강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45절에서 언급된 유대인들의 반응과는 매

우 대조되고있다. 본절은 이방인들이 바울과 바나바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였음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작정된 자 – ‘작정(作定)된’으로 번역된 ‘테탁메노이'(* )는 완

료 수동태 분사로서 ‘작정’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 이전에 이루어졌음을 암시한다. 왜

냐하면 과거 완료는 과거를 시점으로 어떤 사건이 그 과거 이전에 완료되어 그 시점까

지 영향을 미칠 때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작정은 과거의 한 사건으

로 끝나버리지않고 모든 세대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13:49

주위 말씀이 퍼지니라 – ‘퍼지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에페레토'(*

)는 미완료 과거로 ‘게속 퍼지고 있었다’를 의미한다. 이는 주의 말씀이 점점

널리 퍼져가는것을 묘사한다. 그런데 누가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믿게 된 자들의 부

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않고 있다. 아마 이 부류에는 유대인뿐 아니라 많은 이방인들

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13:50

경건한 귀부인들 – 유대인들은 바울과 바나바 일행의 설교가 육대교 회당 중심의

공동체에 위협을 주고 았다고 판단되자 그들을 추방하기 위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영

향력있는 인물들을 이용했다. 여기서 언급된 귀부인들은 유대교로 개종하지는 않았으

나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 이방 여인들로서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

로 짐작된다.

그 성내 유력자들 – 이들은 앞에 언급된 ‘경건한 귀부인들’의 남편(William Neil)

일 수 있으며 아니면 단순히 그 성읍에서 지도적인 인물로서 육대인들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일 것이다.

=====13:51

발에 티끌을 떨어버리고 – 추방당하는 바울과 바나바는 제자들에게 명령했던 예수

의말씀(마 10:14)을 그대로 실천했다. 이러한 풍속은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의 종교적

행위로서 이방인들의 지역으로부터 나올 때 행한다.

이고니온 –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으로부터 추방당하여 그곳에서 동쪽으로 약

120km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이고니온(Iconium)으로 떠나게 된다. 이 곳 역시 B.C. 25

년경 갈라디아가 로마의 한 도(道)로 복속될 때 로마에 합병되었다(F.F. Bruce).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 여기서 언급된 제자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전

도로 기독교인이 된 비시디아 안디옥의 거주자들을 가리킨다. 누가는 그들에게 ‘기쁨

과 성령이 충만’했다는 말로서 그 지역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들과 동일한 성령을 받

았음을 보여줌과 동시에(2:4;4:31;10:44) 기독교 공동체가 융성해 갔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헬라어 사도행전 13장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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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산 데 엔 안티오케이아 카타 텐 우산 엨클레시안 프로페타이 카이 디다스칼로이 호 테 바르나바스 카이 쉬메온 호 칼루메노스 니게르 카이 루키오스 호 퀴레나이오스 마나엔 테 헤로두 투 테트라아르쿠 쉰트로포스 카이 사울로스

개역개정,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새번역,1 안디옥 교회에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나바와 니게르라고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과 더불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마나엔과 사울이다. / ㉠그, ‘테트라아르케스(영토의 1/4 통치자)’

우리말성경,1 안디옥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나바, 니게르라고 하는 시므온, 구레네 사람 루기오,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었습니다.

가톨릭성경,1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 니게르라고 하는 시메온, 키레네 사람 루키오스, 헤로데 영주의 어린 시절 친구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었다.

영어NIV,1 In the church at Antioch there were prophets and teachers: Barnabas, Simeon called Niger, Lucius of Cyrene, Manaen (who had been brought up with Herod the tetrarch) and Saul.

영어NASB,1 Now there were at Antioch, in the church that was there, prophets and teachers: Barnabas, and Simeon who was called Niger, and Lucius of Cyrene, and Manaen who had been brought up with Herod the tetrarch, and Saul.

영어MSG,1 The congregation in Antioch was blessed with a number of prophet-preachers and teachers: Barnabas, Simon, nicknamed Niger, Lucius the Cyrenian, Manaen, an advisor to the ruler Herod, Saul.

영어NRSV,1 Now in the church at Antioch there were prophets and teachers: Barnabas, Simeon who was called Niger, Lucius of Cyrene, Manaen a member of the court of Herod the ruler, and Saul.

헬라어신약Stephanos,1 ησαν δε τινες εν αντιοχεια κατα την ουσαν εκκλησιαν προφηται και διδασκαλοι ο τε βαρναβας και συμεων ο καλουμενος νιγερ και λουκιος ο κυρηναιος μαναην τε ηρωδου του τετραρχου συντροφος και σαυλος

라틴어Vulgate,1 erant autem in ecclesia quae erat Antiochiae prophetae et doctores in quibus Barnabas et Symeon qui vocabatur Niger et Lucius Cyrenensis et Manaen qui erat Herodis tetrarchae conlactaneus et Saulus

히브리어Modern,1 ואנשים נביאים ומלמדים היו באנטיוכיא בקהלה אשר בה בר נבא ושמעון הנקרא ניגר ולוקיוס הקוריני ומנחם אשר גדל עם הורדוס שר הרבע ושאול׃

성 경: [행13:1]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바울과 바나바의 파송]

󰃨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 – 11:19-30예서 언급되었던 안디옥 교회가 새로운 이야기의 장소적 배경으로 언급되고있다. 그리고 여기서 여러 명의 교사와 선지자들이 언급되는 점으로 보아 안디옥 교회는 11:19에 언급될 당시보다 많은 성장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서 언급된 선지자들과 교사듸은 설립된 지 얼마되지 않은 안디옥 교회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직분자들로 보인다. 한편 11:27에서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왔음이 언급되어 있으므로 본절에 언급된 선지자들에 예루살렘에서온 선지자들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혹자는 여기서 언급된 선지자들은 아가보와 같이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기능이 아니라 말씀을 가르치고 해석하는 목회적 직분을 지녔으므로 예루살렘예서 왔던 선지자듸을 제외한 본래 안디옥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선지자들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Lenski). 그러나 이 주장을 취할 경우 선지자들이 함께 언급되는 ‘교사들'(*, 디다스칼로이)과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이와 달리 허비(A.C. Hervey)는, 선지자들을 당시 교회의 정규 전도요원으로 생각하여 가르치는, 기능이 강조된 교사들과 구분시키고있다. 그리고 아사노 중이찌는 선지자를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아 전하는 은사를 구비한 사람으로 이해하여 지적인 입장에서 신앙을 변증하며 성도들을 가르치는 교사와 구분하기도 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고전 12:28, 29와 엡 4:11에서 함께 언급되어 별 구분없이 비슷한 기능을 가지고 교회 사역을 담당한 자들로 생각될수 있으나 선지자란 표현 자체가 예언과 대언(代言)의 은사를 받은 자에 대해서만 적용될 수 있으므로 그 둘은 서로 구분되어야 한다. 한편 누가는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 그룹 즉 신지자들과 교사들의 명단을 언급하면서 바나바를 맨 처음에 언급하고 사울을 맨 나중에 언급하고 있다. 아마도 안디옥 교회에 있어서 중심 서열 내지 신앙의 연륜에 따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바나바를 비롯하여 시므온, 루기오는 사울이 안디옥 교회에 오기 이전부터 직분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11:20). 그러나 누가 선지자인지 누가교사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따라서 혹자의 주장처럼 바나바와 시므온 그리고 루기오는 선지자로, 마나엔과 사울은 교사로 보는 것은(Meyer, Longenecker, Hervey) 분명하지 않다.

󰃨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 – 니게르라는 말이 검다는 뜻이라고 생각할 때 시므온은 아프리카 출신으로 볼 수 있다(Alford, Longenecker, 아사노 중이찌). 그렇다면 이 사람은 예수의 십자기를 졌던 구레네 시몬(눅 23:26)과 동일인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동일인이었다면 루기오를 구레네 사람으로 언급하면서 구레네 사람으로 더 잘 알려진 시몬을 굳이 니케레네 사람으로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동일인일 가능성이 희박하다.

󰃨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 ‘젓동생’이란 같은 젖을 먹고 자란 것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친한 친구를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이 표현이 헤롯과 마나엔이 서로 매우 친밀한 사이였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레이투르군톤 데 아우톤 토 퀴리오 카이 네스튜온톤 에이펜 토 프뉴마 토 하기온 아포리사테 데 모이 톤 바르나반 카이 사울론 에이스 토 에르곤 호 프로스케클레마이 아우투스

개역개정,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새번역,2 그들이 주님께 예배하며 금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위해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내가 그들에게 맡기려 하는 일이 있다.”

우리말성경,2 그들이 주께 예배드리며 금식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내가 그들에게 맡긴 일을 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2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영어NIV,2 While they were worshiping the Lord and fasting, the Holy Spirit said, “Set apart for me Barnabas and Saul for the work to which I have called them.”

영어NASB,2 And while they were ministering to the Lord and fasting, the Holy Spirit said, “Set apart for Me Barnabas and Saul for the work to which I have called them.”

영어MSG,2 One day as they were worshiping God–they were also fasting as they waited for guidance–the Holy Spirit spoke: “Take Barnabas and Saul and commission them for the work I have called them to do.”

영어NRSV,2 While they were worshiping the Lord and fasting, the Holy Spirit said, “Set apart for me Barnabas and Saul for the work to which I have called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2 λειτουργουντων δε αυτων τω κυριω και νηστευοντων ειπεν το πνευμα το αγιον αφορισατε δη μοι τον τε βαρναβαν και τον σαυλον εις το εργον ο προσκεκλημαι αυτους

라틴어Vulgate,2 ministrantibus autem illis Domino et ieiunantibus dixit Spiritus Sanctus separate mihi Barnaban et Saulum in opus quod adsumpsi eos

히브리어Modern,2 ויהי בשרתם את יהוה ובצומם ויאמר רוח הקדש הבדילו לי את בר נבא ואת שאול למלאכה אשר קראתים לה׃

성 경: [행13:2]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바울과 바나바의 파송]

󰃨 주를 섬겨 금식해때 – 27:9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금식(禁食)절기를 정해 놓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주를 섬겨’라는 단서를 달아 유대교적인 금식과 구별하고 있다. 여기서 ‘섬기다’는 봉사한다는 의미와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 행위를 뜻하기도 한다. 본절예서는 예배행위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공동번역은 본 구절을 ‘주님께 예배드리고 있을 때에’라고 번역했다.

󰃨 성령이 가라사대 – 성령의 지시가 기도하는 무리들에게 임하였는데 성령의 음성을들은 사람들은 앞절에서 언급한 바나바 외에 4명이다. 성령의 지시는 바나바와 사울을 이방선교를 위한 사역자들로 구별시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안디옥 교회는 이방 선교를 위한 중심지가 되며 성령의 지시로 인해 사울은 사도로서 그 권위를 인정받게 된다.

󰃨 따로 세우라 – 름 1:1; 갈 1:15에서는 이 표현이 바울의 소명(召命)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특별히 사울이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임명받은 것을 강조해 주고 있다.

토테 네스튜산테스 카이 프로슠사메노이 카이 에피덴테스 타스 케이라스 아우토이스 아펠뤼산

개역개정,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새번역,3 그래서 그들은 금식하고 기도한 뒤에, 두 사람에게 안수를 하여 떠나보냈다.

우리말성경,3 그래서 그들은 금식하며 기도한 후 바나바와 사울에게 손을 얹고 그들을 보냈습니다.

가톨릭성경,3 그래서 그들은 단식하며 기도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나서 떠나보냈다.

영어NIV,3 So after they had fasted and prayed, they placed their hands on them and sent them off.

영어NASB,3 Then, when they had fasted and prayed and laid their hands on them, they sent them away.

영어MSG,3 So they commissioned them. In that circle of intensity and obedience, of fasting and praying, they laid hands on their heads and sent them off.

영어NRSV,3 Then after fasting and praying they laid their hands on them and sent them off.

헬라어신약Stephanos,3 τοτε νηστευσαντες και προσευξαμενοι και επιθεντες τας χειρας αυτοις απελυσαν

라틴어Vulgate,3 tunc ieiunantes et orantes inponentesque eis manus dimiserunt illos

히브리어Modern,3 ויצומו ויתפללו ויסמכו את ידיהם עליהם וישלחום׃

성 경: [행13:3]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바울과 바나바의 파송]

󰃨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 여기서 언급되는 금식 기도가 2절에서 시작되었던 금식기도와 동일한 것인지(Lenski) 아니면 2절의 금식기도가 끌난 다음 바나바와 사울을 파송하기 위하여 일종의 임명 예배를 다시 했다는 것인지(Alford, Haenchen, Hervey) 분명하지 않다. 두사람의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해 특별히 정해진 예배라고 보는 것이 문맥상 적절하다. 따라서 2절과 3절의 진술 사이에는 시간적 간격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 안수하여 보내니라 – 바나바와 사울에게 안수(按手)를 베풀고 선교사로 파송한 주체가 누구인지 본절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아마 1절에 언급된 시므온과 루기오 그리고 마나엔 이 세 사람이 그들에게 안수했을 것이다. 그 세 사람이 그들에게 안수했다고 해서 안수받은 두사람보다 직책상 높은 위치에 있었다고는 말할수 없다. 다만 그들은 성령의 지시로 두 사람을 안디옥 교회의 대표자로 혹은 사도로 인정하는 의식을 집행했을 따름일 것이다.

아우토이 멘 운 에크펨프덴테스 휘포 투 하기우 프뉴마토스 카텔돈 에이스 셀류케이안 에케이덴 테 아페플류산 에이스 큎론

개역개정,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새번역,4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이 가라고 보내시므로, 실루기아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건너갔다.

우리말성경,4 그 두 사람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로 내려갔다가 거기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가게 됐습니다.

가톨릭성경,4 성령께서 파견하신 바르나바와 사울은 셀레우키아로 내려간 다음, 거기에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건너갔다.

영어NIV,4 The two of them, sent on their way by the Holy Spirit, went down to Seleucia and sailed from there to Cyprus.

영어NASB,4 So, being sent out by the Holy Spirit, they went down to Seleucia and from there they sailed to Cyprus.

영어MSG,4 Sent off on their new assignment by the Holy Spirit, Barnabas and Saul went down to Seleucia and caught a ship for Cyprus.

영어NRSV,4 So, being sent out by the Holy Spirit, they went down to Seleucia; and from there they sailed to Cyprus.

헬라어신약Stephanos,4 ουτοι μεν ουν εκπεμφθεντες υπο του πνευματος του αγιου κατηλθον εις την σελευκειαν εκειθεν τε απεπλευσαν εις την κυπρον

라틴어Vulgate,4 et ipsi quidem missi ab Spiritu Sancto abierunt Seleuciam et inde navigaverunt Cyprum

히브리어Modern,4 והמה המשלחים על ידי רוח הקדש ירדו אל סלוקיא ומשם באו באניה אל קפרוס׃

성 경: [행13:4]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바울과 바나바의 파송]

󰃨 실루기아에 내려가 – 바나바와 사울의 일행이 실루기아(Seleucia)로 내려간 것은 배를 타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안디옥은 내륙에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실루기아를 외항(外港)으로 삼아야 했다. 실루기아는 안디옥 서쪽 약 26k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도시는 B.C. 300년경 셀류시드(Seleucid) 왕조의 첫 왕 셀류쿠스(Seleucus) 1세 니카토르(Nicator)에 의해 개항되었다.

󰃨 구브로에 가서 – 이곳은 사울과 동행한 바나바의 고향이고(4:36) 안디옥 교회구성원의 일부가 이곳 출신의 사람들이었다(11:20). 따라서 첫 선교지로 구브로(Cyprus)가 선택된 것은 바나바와 구브로 출신 안디옥 교회의 교인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카이 게노메노이 엔 살라미니 카뎅겔론 톤 로곤 투 데우 엔 타이스 쉬나고가이스 톤 유다이온 에이콘 데 카이 요안넨 휘페레텐

개역개정,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새번역,5 그들은 살라미에 이르러서,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그들은 요한도 또한 조수로 데리고 있었다.

우리말성경,5 그들이 살라미에 이르러서는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요한이 동행하며 그들을 도왔습니다.

가톨릭성경,5 그리고 살라미스에 이르러 유다인들의 여러 회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그들은 요한을 조수로 데리고 있었다.

영어NIV,5 When they arrived at Salamis, they proclaimed the word of God in the Jewish synagogues. John was with them as their helper.

영어NASB,5 And when they reached Salamis, they began to proclaim the word of God in the synagogues of the Jews; and they also had John as their helper.

영어MSG,5 The first thing they did when they put in at Salamis was preach God’s Word in the Jewish meeting places. They had John along to help out as needed.

영어NRSV,5 When they arrived at Salamis, they proclaimed the word of God in the synagogues of the Jews. And they had John also to assist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5 και γενομενοι εν σαλαμινι κατηγγελλον τον λογον του θεου εν ταις συναγωγαις των ιουδαιων ειχον δε και ιωαννην υπηρετην

라틴어Vulgate,5 et cum venissent Salamina praedicabant verbum Dei in synagogis Iudaeorum habebant autem et Iohannem in ministerio

히브리어Modern,5 ויבאו אל עיר סלמיס ויגידו את דבר האלהים בבתי הכנסיות אשר ליהודים ויהי להם גם יוחנן למשרת׃

성 경: [행13:5]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바울과 바나바의 파송]

󰃨 살라미 – 구브로섬 동쪽에 위치한 해안도시이다. B.C. 58년 이후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지중해를 통한 해상 무역으로 인해 상업 도시로 커갔다. 그러나 A.D. 116년 트라야누스(Trajanus) 황제에 의해 파괴되었다.

󰃨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 살라미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하여 회당도 여러 곳에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들은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있는 기회를 포착했다. 비록 그들은 이방인들의 사도로 전도 여행을 떠났지만 실제적으로 전도는 주로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유대인들도 그들의 전도 대상에 포함되었음을 의미한다.

󰃨 요한을 수종자로 – 요한은 12:25에서 언급된 마가 요한을 가리킨다. 그는 아마 두 사람을 대신해서 세례를 베푸는 일을 도왔을 가눙성이 있다(Alford). 왜냐하면 바울은 전도 여행시 몇 사람에게만 직접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이다(고전 1:14-17). 또한 요한은 두사람의 여행 경비를 관리하는 등 전도 여행 중 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도왔을 것이다.

디엘돈테스 데 홀렌 텐 네손 아크리 파푸 휴론 안드라 티나 마곤 프슈도프로페텐 유다이온 호 오노마 바리에수

개역개정,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새번역,6 그들은 온 섬을 가로질러 바보에 이르렀다. 거기서 그들은 어떤 마술사를 만났는데, 그는 거짓 예언자였으며 바예수라고 하는 유대인이었다.

우리말성경,6 그들이 그 섬을 가로질러 바보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바예수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유대 사람 마술사요, 거짓 예언자로서

가톨릭성경,6 그들이 온 섬을 가로질러 파포스에 다다랐을 때에 마술사 한 사람을 만났는데, 유다인으로서 바르예수라고 하는 거짓 예언자였다.

영어NIV,6 They traveled through the whole island until they came to Paphos. There they met a Jewish sorcerer and false prophet named Bar-Jesus,

영어NASB,6 And when they had gone through the whole island as far as Paphos, they found a certain magician, a Jewish false prophet whose name was Bar-jesus,

영어MSG,6 They traveled the length of the island, and at Paphos came upon a Jewish wizard

영어NRSV,6 When they had gone through the whole island as far as Paphos, they met a certain magician, a Jewish false prophet, named Bar-Jesus.

헬라어신약Stephanos,6 διελθοντες δε την νησον αχρι παφου ευρον τινα μαγον ψευδοπροφητην ιουδαιον ω ονομα βαριησους

라틴어Vulgate,6 et cum perambulassent universam insulam usque Paphum invenerunt quendam virum magum pseudoprophetam Iudaeum cui nomen erat Bariesu

히브리어Modern,6 ויעברו בכל האי עד פפוס וימצאו איש מגוש אחד נביא שקר איש יהודי ושמו בר ישוע׃

성 경: [행13:6]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제1차 전도 여행 시작-구브로 전도]

󰃨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 바나바와 사울의 일행은 살라미의 반대편 즉 구브로섬의 서쪽 끝에 위치한 도시인 바보에 도착했다. 이 도시는 살라미로부터 약 180여km의 거리에 있다. 본래 바보(Paphos)는 두 군데가 있었다. 즉 한 군데는 옛 베니게의 도시이고 여기서 언급된 바보는 이곳으로부터 서북쪽 약 11km의 거리에 있는 로마령의 도시를 가리킨다.

󰃨 바예수(*, 바르예수스) – ‘예수의 아들’ 혹은 ‘여호수아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유대식 이름이다. 바예수는 총독 관저에서 일하는 유대인으로 그의 신분은 ‘거짓 선지자 박수’였다. 박수(*, 마고스)는 당시 마술적 또는 주술적 치료 행위릍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여기에 거짓 선지자라고 덧불여진 점으로 보아 자칭 하늘의 계시자로 행세하면서 동시에 주술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치료한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인 그가 그같은 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활동을 지속했다는 사실은 그곳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이 그의 행동에 미혹되었거나 아니면 총독이 그를 보호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경건한 유대인들이 그를 율법에 따라(레 20:6) 처벌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호스 엔 쉰 톤 안뒤파토 세르기오 파울로 안드리 쉬네토 후토스 프로스칼레사메노스 바르나반 카이 사울론 에페제테센 아쿠사이 톤 로곤 투 데우

개역개정,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새번역,7 그는 총독 서기오 바울을 늘 곁에서 모시는 사람이었다. 이 총독은 총명한 사람이어서, 바나바와 사울을 청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였다.

우리말성경,7 총독 서기오 바울 곁에 함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지성적이었던 총독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바나바와 사울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가톨릭성경,7 그는 슬기로운 사람인 세르기우스 바오로 총독의 수행원 가운데 하나였다. 총독은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였다.

영어NIV,7 who was an attendant of the proconsul, Sergius Paulus. The proconsul, an intelligent man, sent for Barnabas and Saul because he wanted to hear the word of God.

영어NASB,7 who was with the proconsul, Sergius Paulus, a man of intelligence. This man summoned Barnabas and Saul and sought to hear the word of God.

영어MSG,7 who had worked himself into the confidence of the governor, Sergius Paulus, an intelligent man not easily taken in by charlatans. The wizard’s name was Bar-Jesus. He was as crooked as a corkscrew. The governor invited Barnabas and Saul in, wanting to hear God’s Word firsthand from them.

영어NRSV,7 He was with the proconsul, Sergius Paulus, an intelligent man, who summoned Barnabas and Saul and wanted to hear the word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7 ος ην συν τω ανθυπατω σεργιω παυλω ανδρι συνετω ουτος προσκαλεσαμενος βαρναβαν και σαυλον επεζητησεν ακουσαι τον λογον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7 qui erat cum proconsule Sergio Paulo viro prudente hic accitis Barnaba et Saulo desiderabat audire verbum Dei

히브리어Modern,7 אשר היה עם סרגיוס פולוס שר המדינה איש נבון והוא קרא אליו את בר נבא ואת שאול ויתאו לשמע את דבר האלהים׃

성 경: [행13:7]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제1차 전도 여행 시작-구브로 전도]

󰃨 총독 서기오 바울 – 서기오 바울(*, 세르기오스 파울로스)에 대해서 성경의 다른 곳에 언급되어 있지 않아 더이상 알 수 없다. 그가 글라우디오 황제 때 티베르강 관리자로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F.F. Bruce)도 있지만 정확한 인물 고증(考證)이 어렵다. 다만 누가의 묘사로 보아 지혜있고 유력한 통치자로 추측할 수 있다.

󰃨 지혜있는 사람 – ‘지혜있다'(*, 쉬네토스)는 맡은 본래 신중하고 지성적이며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 이 말은 총독의 통치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아마 누가는 총독으로서 서기오 바울이 공명 정대하면서 분별력이 있는 정치를 한 것을 이 한 단어로 묘사한 것 같다.

안디스타토 데 아우토이스 엘뤼마스 호 마고스 후토스 가르 메데르메뉴에타이 토 오노마 아우투 제톤 디아스트렢사이 톤 안뒤파톤 아포 테스 피스테오스

개역개정,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새번역,8 그런데 이름을 엘루마라고 번역해서 부르기도 하는 그 마술사가 그들을 방해하여, 총독으로 하여금 믿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

우리말성경,8 그러나 엘루마라고도 하는 이 마술사가 그들을 막으며 총독이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가톨릭성경,8 그러나 그리스 말로 마술사를 뜻하는 그 엘리마스는 총독이 믿지 못하게 막으려고 그들을 반대하고 나섰다.

영어NIV,8 But Elymas the sorcerer (for that is what his name means) opposed them and tried to turn the proconsul from the faith.

영어NASB,8 But Elymas the magician (for thus his name is translated) was opposing them, seeking to turn the proconsul away from the faith.

영어MSG,8 But Dr. Know-It-All (that’s the wizard’s name in plain English) stirred up a ruckus, trying to divert the governor from becoming a believer.

영어NRSV,8 But the magician Elymas (for that is the translation of his name) opposed them and tried to turn the proconsul away from the faith.

헬라어신약Stephanos,8 ανθιστατο δε αυτοις ελυμας ο μαγος ουτως γαρ μεθερμηνευεται το ονομα αυτου ζητων διαστρεψαι τον ανθυπατον απο της πιστεως

라틴어Vulgate,8 resistebat autem illis Elymas magus sic enim interpretatur nomen eius quaerens avertere proconsulem a fide

히브리어Modern,8 ויעמד לנגדם אלימא המגוש כי זה תרגום שמו ויבקש להטות את השר מן האמונה׃

성 경: [행13:8]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제1차 전도 여행 시작-구브로 전도]

󰃨 엘루마 – 아람어 또는 아랍어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 단어는 6절에서 언급된 박수와 동의어다. 본래의 뜻은 요술장이 또는 마법사로 통한다. 그는 총독과 바나바 일행과의 만남을 방해하는 반(反)기독교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에 따라 총독 서기오 바울의 지혜는 더욱 돋보이게 된다. 즉 측근의 불경건한 술수를 물리치고 바나바와 사울 일행을 만남으로써 지혜있다는 누가의 묘사가 증명되는 셈이다.

사울로스 데 호 카이 파울로스 플레스데이스 프뉴마토스 하기우 아테니사스 에이스 아우톤

개역개정,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새번역,9 그래서 바울이라고도 하는 사울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마술사를 노려보고 말하였다.

우리말성경,9 그러자 바울이라고도 하는 사울이 성령충만한 가운데 엘루마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가톨릭성경,9 그때에 바오로라고도 하는 사울이 성령으로 가득 차 그를 유심히 보며

영어NIV,9 Then Saul, who was also called Paul, filled with the Holy Spirit, looked straight at Elymas and said,

영어NASB,9 But Saul, who was also known as Paul, filled with the Holy Spirit, fixed his gaze upon him,

영어MSG,9 But Saul (or Paul), full of the Holy Spirit and looking him straight in the eye, said,

영어NRSV,9 But Saul, also known as Paul, filled with the Holy Spirit, looked intently at him

헬라어신약Stephanos,9 σαυλος δε ο και παυλος πλησθεις πνευματος αγιου και ατενισας εις αυτον

라틴어Vulgate,9 Saulus autem qui et Paulus repletus Spiritu Sancto intuens in eum

히브리어Modern,9 ושאול הנקרא גם פולוס מלא רוח הקדש ויסתכל בו׃

성 경: [행13:9]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제1차 전도 여행 시작-구브로 전도]

󰃨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 – 처음으로 바울(Paul)이라는 이름이 언급되었다. 이후로는 사울이 아니라 바울이라는 이름으로만 언급된다. 사울이라는 이름에서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 이유에 대해서 사울이 회계한 이후부터 새사람된 표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Bengel, Olshausen, Meyer) 이는 주관적 추측에 불과하다. 오히려 바울이라는 이름을 본래부터 갖고 있었는데 서기오 바울을 만난 이후부터 저자가 사울을 로마식 이름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Zahn, Lightfoot, Ramsay, Knowling, Vincent). 당시 유대인들 중에는 유대식 이름 외에 로마식 이름을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1:23;12:25;13:1) 특히 사울은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사람이었으므로(22:28) 로마식 이름을 가졌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가 바울이라는 사울의 로마식 이름을 이제야 언급하게 된 것은 아마도 이제 비로소 사울이 이방선교를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즉 이방 지역에서는 로마식 이름으로 언급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여질 것이고 설교에도 도음이 되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 성령이 충만하여 – 여기서 누가가 의도하는 바를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1) 모든 악령과의 싸움에서 승리로 이끄는 것은 성령의 역사임을 말한다. (2) 거짓 선지자와 대결하는, 성령이 충만한 바울을 부각시킴으로써 이제까지 앞세웠던 바나바로부터 이야기의 초점이 바울로 옮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에이폰 오 플레레스 판토스 돌루 카이 파세스 라디우르기아스 휘에 디아볼루 에크드레 파세스 디카이오쉬네스 우 파우세 디아스트레폰 타스 호두스 투 퀴리우 타스 유데이아스

개역개정,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새번역,10 “너, 속임수와 악행으로 가득 찬 악마의 자식아, 모든 정의의 원수야, 너는 주님의 바른 길을 굽게 하는 짓을 그치지 못하겠느냐?

우리말성경,10 “이 마귀의 자식아! 너는 모든 의의 원수로다! 너는 갖은 속임수와 거짓으로 가득 차 있구나. 주의 바른 길을 어지럽게 하는 일을 그치지 못하겠느냐?

가톨릭성경,10 말하였다. “온갖 사기와 온갖 기만으로 충만한 자, 악마의 자식, 모든 정의의 원수! 당신은 언제까지 주님의 바른길을 왜곡시킬 셈이오?

영어NIV,10 “You are a child of the devil and an enemy of everything that is right! You are full of all kinds of deceit and trickery. Will you never stop perverting the right ways of the Lord?

영어NASB,10 and said, “You who are full of all deceit and fraud, you son of the devil, you enemy of all righteousness, will you not cease to make crooked the straight ways of the Lord?

영어MSG,10 “You bag of wind, you parody of a devil–why, you stay up nights inventing schemes to cheat people out of God.

영어NRSV,10 and said, “You son of the devil, you enemy of all righteousness, full of all deceit and villainy, will you not stop making crooked the straight paths of the Lord?

헬라어신약Stephanos,10 ειπεν ω πληρης παντος δολου και πασης ραδιουργιας υιε διαβολου εχθρε πασης δικαιοσυνης ου παυση διαστρεφων τας οδους κυριου τας ευθειας

라틴어Vulgate,10 dixit o plene omni dolo et omni fallacia fili diaboli inimice omnis iustitiae non desinis subvertere vias Domini rectas

히브리어Modern,10 ויאמר אתה המלא כל מרמה וכל עולה בן בליעל ושונא כל צדק הלא תחדל לסלף את דרכי יהוה הישרים׃

성 경: [행13:10]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제1차 전도 여행 시작-구브로 전도]

󰃨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 – 바울은 엘루마에 대한 일차적인 공격으로서 엘루마의 정체를 폭로하고 있다. 여기서 언급된 ‘궤계’에 해당하는 혤라어 ‘돌로스'(*)는 ‘미끼로 잡다’의 ‘델로'(*)에서 유래된 단어로 ‘교활’, ‘간교’, 또는 ‘올무’, ‘미끼’ 등의뜻으로 사용된다. 한마디로 사기꾼이라는 말이될 수 있다. 6절에서 ‘거짓 선지자’라고 언급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악행’이라는 말은 본래 경솔하거나 무절제한 행위를 의미한다(Robertson). 여기서는 부주의하고 반(反)신앙적 행위로 인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실족케하는 것을 의미한다.

󰃨 마귀의 지식 – 이와 같은 저주는 바리새인에 대한 예수의 저주와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요 8:44). 이 말은 엘루마에 대한 저주이면서 그의 악한 행실에 대한 폭로이다.

󰃨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 엘루마의 행위가 ‘주님의 길을 훼방'(공동 번역)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총독 서기오 바울과 바나바와 바울 일행의 만남이 주님의 뜻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카이 뉜 이두 케이르 퀴리우 에피 세 카이 에세 튀플로스 메 블레폰 톤 헬리온 아크리 카이루 파라크레마 테 에페센 엪 아우톤 아클뤼스 카이 스코토스 카이 페리아곤 에제테이 케이라고구스

개역개정,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새번역,11 보아라, 이제 주님의 손이 너를 내리칠 것이니, 눈이 멀어서 얼마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곧 안개와 어둠이 그를 내리덮어서, 그는 앞을 더듬으면서, 손을 잡아 자기를 이끌어 줄 사람을 찾았다.

우리말성경,11 이제 주의 손이 너를 치심으로 네 눈이 멀어 얼마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쳤고 그는 이리저리 더듬으며 자기 손을 잡아 이끌어 줄 사람을 찾았습니다.

가톨릭성경,11 이제 보시오, 주님의 손이 당신 위에 놓여 있소. 당신은 눈이 멀어 한동안 해를 보지 못할 것이오.” 그러자 즉시 짙은 어둠이 그를 덮쳐, 그는 사방을 더듬으며 자기 손을 잡아 이끌어 줄 사람을 찾았다.

영어NIV,11 Now the hand of the Lord is against you. You are going to be blind, and for a time you will be unable to see the light of the sun.” Immediately mist and darkness came over him, and he groped about, seeking someone to lead him by the hand.

영어NASB,11 “And now, behold, the hand of the Lord is upon you, and you will be blind and not see the sun for a time.” And immediately a mist and a darkness fell upon him, and he went about seeking those who would lead him by the hand.

영어MSG,11 But now you’ve come up against God himself, and your game is up. You’re about to go blind–no sunlight for you for a good long stretch.” He was plunged immediately into a shadowy mist and stumbled around, begging people to take his hand and show him the way.

영어NRSV,11 And now listen–the hand of the Lord is against you, and you will be blind for a while, unable to see the sun.” Immediately mist and darkness came over him, and he went about groping for someone to lead him by the hand.

헬라어신약Stephanos,11 και νυν ιδου χειρ του κυριου επι σε και εση τυφλος μη βλεπων τον ηλιον αχρι καιρου παραχρημα δε επεπεσεν επ αυτον αχλυς και σκοτος και περιαγων εζητει χειραγωγους

라틴어Vulgate,11 et nunc ecce manus Domini super te et eris caecus non videns solem usque ad tempus et confestim cecidit in eum caligo et tenebrae et circumiens quaerebat qui ei manum daret

히브리어Modern,11 ועתה הנה יד יהוה בך והיית עור ולא תראה את השמש עד עת מועד ותפל עליו פתאם אפלה וחשכה ויפן הנה והנה ויבקש איש להוליכו בידו׃

성 경: [행13:11]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제1차 전도 여행 시작-구브로 전도]

󰃨 주의 손…소경이 되어 – 저주 또는 축복에 대한 묘사로 주의 손이 본서에서 언급되는데(11:21) 여기서는 성령의 일을 거스른 죄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함을 의미한다. 진노가 임한 결과 엘루마는 소경이 되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징벌은 구약성경에서 범죄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묘사되었다(신 28:28, 29).

󰃨 안개와 어두움 – 눈이 멀어진 상태를 점층적 표현으로 묘사한 듯 하다. 즉 엘루마의 눈은 안개처럼 희미하다가 어두움처럼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 엘루마가 완전히 실명(失明)하여 혼자 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음을 묘사하고 있다. 바울을 만나기 이전에는 자칭 선지자라 하여 다른 사람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갈길을 지시해 주는 일을 했지만 지금은 혼자서 걸을 수도 없어 인도자를 찾는 엘루마의 모습은 거짓 선지자의 상징적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토테 이돈 호 안뒤파토스 토 게고노스 에피스튜센 에플레쏘메노스 에피 테 디다케 투 퀴리우

개역개정,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새번역,12 총독은 그 일어난 일을 보고 주님을 믿게 되었고, 주님의 교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우리말성경,12 이 일을 보자 총독이 믿게 됐고 주에 관한 가르침에 그저 놀랄 뿐이었습니다.

가톨릭성경,12 그때에 그 광경을 본 총독은 주님의 가르침에 깊은 감동을 받아 믿게 되었다.

영어NIV,12 When the proconsul saw what had happened, he believed, for he was amazed at the teaching about the Lord.

영어NASB,12 Then the proconsul believed when he saw what had happened, being amazed at the teaching of the Lord.

영어MSG,12 When the governor saw what happened, he became a believer, full of enthusiasm over what they were saying about the Master.

영어NRSV,12 When the proconsul saw what had happened, he believed, for he was astonished at the teaching about the Lord.

헬라어신약Stephanos,12 τοτε ιδων ο ανθυπατος το γεγονος επιστευσεν εκπλησσομενος επι τη διδαχη του κυριου

라틴어Vulgate,12 tunc proconsul cum vidisset factum credidit admirans super doctrinam Domini

히브리어Modern,12 והשר כאשר ראה את המעשה האמין וישתומם על תורת האדון׃

성 경: [행13:12]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제1차 전도 여행 시작-구브로 전도]

󰃨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 본 구절은 총독 바울이 예수를 영접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에 대한 설명이다. 엘루마가 소경된 사건이 총독 바울의 회심(回心)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렇다고 회심을 유발시킨 전체 동기는 아니다. 즉 기적적인 사건이 총독 바울의 회심에 영향을 크게 준 것은 사실이나 그러나 여기에만 강조점을 둘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엘루마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바울 일행을 만나고자 했다는 점은 바울의 가르침이나 그에 관한 이야기에 이미 호의적인 입장에서 관심을 두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엘루마가 소경된 사건은 그가 회심하는 데 외형적 동기 부여의 기능을 갖고 있다.

󰃨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 – 여기서 ‘주의 가르치심’은 총독 바울이 엘루마의 저주를 목격하면서 받은 교훈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주의 일을 훼방하고 사기와 악행을 일삼아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거짓 선지자의 비참한 말로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함과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나크덴테스 데 아포 테스 파푸 호이 페리 파울론 엘돈 에이스 페르겐 테스 팜퓔리아스 요안네스 데 아포코레사스 앞 아우톤 휘페르트렢센 에이스 히에로솔뤼마

개역개정,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새번역,13 바울과 그 일행은 바보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로 건너갔다. 그런데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우리말성경,13 바울과 그 일행은 바보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에서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가톨릭성경,13 바오로 일행은 파포스에서 배를 타고 팜필리아의 페르게로 가고,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영어NIV,13 From Paphos, Paul and his companions sailed to Perga in Pamphylia, where John left them to return to Jerusalem.

영어NASB,13 Now Paul and his companions put out to sea from Paphos and came to Perga in Pamphylia; and John left them and returned to Jerusalem.

영어MSG,13 From Paphos, Paul and company put out to sea, sailing on to Perga in Pamphylia. That’s where John called it quits and went back to Jerusalem.

영어NRSV,13 Then Paul and his companions set sail from Paphos and came to Perga in Pamphylia. John, however, left them and returned to Jerusalem;

헬라어신약Stephanos,13 αναχθεντες δε απο της παφου οι περι τον παυλον ηλθον εις περγην της παμφυλιας ιωαννης δε αποχωρησας απ αυτων υπεστρεψεν εις ιεροσολυμα

라틴어Vulgate,13 et cum a Papho navigassent Paulus et qui cum eo venerunt Pergen Pamphiliae Iohannes autem discedens ab eis reversus est Hierosolymam

히브리어Modern,13 ויצאו פולוס והאנשים אשר אתו מפפוס וירדו באניה ויבאו אל פרגי אשר בפמפוליא ויעזב אתם יוחנן וישב ירושלים׃

성 경: [행13:13]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 – 박수 엘루마의 사건 이후 누가는 여기서부터 바울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누가의 관점에서, 바울이 엘루마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총독 서기오 바울을 기독교인으로 회심시킴으로써 선교 사역에 있어서 지도자격으로 부상된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 – 구브로 섬을 떠나 바울 일행이 두번째로 찾은 밤빌리아는 지중해 북단에 있는 소아시아의 남쯤 해안에 접한 지역이다. 해안의 길이가 120km이며 내륙쪽으로 폭이 48km 정도의 이 지역은 동편에는 길리기아, 서쪽에는 루기아, 북쪽에는 비시디아가 인접해 있다. 그리고 버가는 밤빌리아의 중심 도시로 해안에서 내륙쪽으로 13km정도에 위치해 있다. 바울은 돌아오는 길에서 다시 이곳을 들르게 된다(14:25). 이곳에서의 바울 일행의 선교 행적에 관한 언급은 없다. 아마 별다른 성과가 없었을 것이다.

󰃨 요한은…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 예루살렘에서부터 바울과 바나바를 동행하여(12:25) 그들을 도우며 따라왔던(5절) 마가 요한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만 누가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요한이 떠난 이유에 대해서 학자에 따라 다음과 같이 추측이 다양하다. (1) 사전에 구브로까지만 동행하기로 함. (2) 사촌 바나바를 따라왔다가 바울이 선교의 주도권을 잡고 바나바가 소외된 데 대한 불만(Alexander), (3) 향수병, (4) 용기 부족으로 여행을 포기함(Lenski), (5) 바울이 풍토병에 걸려(고후12:7;갈 4:13, 14) 겁을 먹었음(Ramsay). 그러나 모두 다 설득력이 부족하다. 어쨌든 나중에 요한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지게 되는 점으로 보아 바울은 요한의 귀향으로 크게 실망하고 상심한 듯하다(15:37-39).

아우토이 데 디엘돈테스 아포 테스 페르게스 파레게논토 에이스 안티오케이안 텐 피시디안 카이 에이셀돈테스 에이스 텐 쉬나고겐 테 헤메라 톤 사바톤 에카디산

개역개정,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새번역,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의 안디옥에 이르러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우리말성경,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돼 회당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가톨릭성경,14 그들은 페르게에서 더 나아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영어NIV,14 From Perga they went on to Pisidian Antioch. On the Sabbath they entered the synagogue and sat down.

영어NASB,14 But going on from Perga, they arrived at Pisidian Antioch, and on the Sabbath day they went into the synagogue and sat down.

영어MSG,14 From Perga the rest of them traveled on to Antioch in Pisidia. On the Sabbath they went to the meeting place and took their places.

영어NRSV,14 but they went on from Perga and came to Antioch in Pisidia. And on the sabbath day they went into the synagogue and sat down.

헬라어신약Stephanos,14 αυτοι δε διελθοντες απο της περγης παρεγενοντο εις αντιοχειαν της πισιδιας και εισελθοντες εις την συναγωγην τη ημερα των σαββατων εκαθισαν

라틴어Vulgate,14 illi vero pertranseuntes Pergen venerunt Antiochiam Pisidiae et ingressi synagogam die sabbatorum sederunt

히브리어Modern,14 והמה נסעו מפרגי ויבאו אל אנטיוכיא אשר בפיסדיא ויבאו אל בית הכנסת ביום השבת וישבו׃

성 경: [행13:14]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 이곳은 안디옥 교회가 있는 수리아 안디옥과 구별되는곳으로(11:27) 해발 약 100m에 달하는 고원지대이다. 오늘날의 터키 중남부 지방의 얄바크(Yalvach) 근처의 폐허 지역을 말하며 당시에 이곳은 로마의 식민지였다. 바울은3차전도 여행때에도 이곳을 들르게 된다(18:23).

󰃨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 셀류쿠스 왕조 때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거주했으므로 유대인들을 위한 회당이 있었다. 따라서 바울 일행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거행되는 예배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구브로나 이곳에서도 바울 일행이 회당올 먼저 찾은것은 이방땅에서 동족에 대한 친밀감을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방 선교 이전에 유대인에 대한 방문이 선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메타 데 텐 아나그노신 투 노무 카이 톤 프로페톤 아페스테일란 호이 아르키쉬나고고이 프로스 아우투스 레곤테스 안드레스 아델포이 에이 티스 에스틴 엔 휘민 로고스 파라클레세오스 프로스 톤 라온 레게테

개역개정,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새번역,15 율법서와 예언자의 글을 낭독한 뒤에, 회당장들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이여, 이 사람들에게 권면할 말씀이 있으면 해주시오” 하고 청하였다.

우리말성경,15 율법서와 예언자들의 글을 낭독한 뒤에 회당 지도자들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전갈을 보내 “형제들이여, 이 사람들에게 권면해 줄 말씀이 있으면 하시오”라고 했습니다.

가톨릭성경,15 율법과 예언서 봉독이 끝나자 회당장들이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이여, 백성을 격려할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영어NIV,15 After the reading from the Law and the Prophets, the synagogue rulers sent word to them, saying, “Brothers, if you have a message of encouragement for the people, please speak.”

영어NASB,15 And after the reading of the Law and the Prophets the synagogue officials sent to them, saying, “Brethren, if you have any word of exhortation for the people, say it.”

영어MSG,15 After the reading of the Scriptures–God’s Law and the Prophets–the president of the meeting asked them, “Friends, do you have anything you want to say? A word of encouragement, perhaps?”

영어NRSV,15 After the reading of the law and the prophets, the officials of the synagogue sent them a message, saying, “Brothers, if you have any word of exhortation for the people, give it.”

헬라어신약Stephanos,15 μετα δε την αναγνωσιν του νομου και των προφητων απεστειλαν οι αρχισυναγωγοι προς αυτους λεγοντες ανδρες αδελφοι ει εστιν λογος εν υμιν παρακλησεως προς τον λαον λεγετε

라틴어Vulgate,15 post lectionem autem legis et prophetarum miserunt principes synagogae ad eos dicentes viri fratres si quis est in vobis sermo exhortationis ad plebem dicite

히브리어Modern,15 ויהי אחר קריאת התורה והנביאים וישלחו אליהם ראשי הכנסת לאמר אנשים אחים אם יש לכם דבר מוסר לעם דברו׃

성 경: [행13:15]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 – 회당의 예배 순서 중 한 부분이 소개되고 있다. 여기서 율법서는 모세 오경을 가리키며 선지자의 글은 예언서를 말한다. 1세기경의 회당 예배는 쉐마(신 6:4-9) 기도, 율법서와 예언서 낭독, 그리고 설교나 권면의 말씀과 축복의 순서로 진행되었던 것 같다. 성경이 회당에서 낭독되었던 전통은 바벧론 포로기 이후에 시작되었으며 B.C. 163년부터는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가 율법서 낭독을 금지하여 예언서만 낭독되었으나 마카비 혁명 때에 다시 율법서가 낭독되었다. 회당에서 성경은 히브리어로 낭독된 다음 다시 아람어나 코이네 헬라어로 통역되었다(Robertson).

󰃨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 예배순서상 권면의 말씀을 할 차례가 되었는데 회당장은 바울에게 사람을 보내어 설교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당시 예배 중에 설교 또는 권면의 말씀을 담당할 대상을 회당장이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었다. 따라서 랍비나 방문자에게 설교를 요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회당장은 예배 전에 설교자를 선정해야지 예배 도중에는 할 수 없었다(Haenchen, Robertson). 그러나 여기서는 예외로 회당장이 예배 도중 바울에게 설교를 요청하게 되는데 아마도 바울과 바나바의 일행이 예배 시작과 더불어 회당에 들어왔기 때문에 미리 설교를 부탁할 수 없었던 것으로 추측할수 있다. 이를 통해서 볼 때 회당장에 바울 일행에 관한 소문을 많이 듣고, 그들에 관해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 바울에게 설교를 요청하는 본문의 어투는 ‘만일'(*, 에이)이라는 단어로 시작되는 조건적 제안으로서 상대방에게 공손하게 요청하는 말이다. 그래서 공동번역에서는 이러한 의미를 최대한 살려 “두 분께서 혹 격려할 말씀이 있거든 이 회중에 한 말씀 해주셨으며 좋겠습니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아나스타스 데 파출로스 카이 카타세이사스 테 케이리 에이펜 안드레스 이스라엘리타이 카이 호이 포부메노이 톤 데온 아쿠사테

개역개정,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새번역,16 그래서 바울은 일어나서, 손을 흔들고 말하였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여, 내 말을 들으십시오. / ㉡그, ‘이스라엘 남자들’

우리말성경,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또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 사람들이여, 내 말을 들으십시오.

가톨릭성경,16 그러자 바오로가 일어나 조용히 하라고 손짓한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영어NIV,16 Standing up, Paul motioned with his hand and said: “Men of Israel and you Gentiles who worship God, listen to me!

영어NASB,16 And Paul stood up, and motioning with his hand, he said, “Men of Israel, and you who fear God, listen:

영어MSG,16 Paul stood up, paused and took a deep breath, then said, “Fellow Israelites and friends of God, listen.

영어NRSV,16 So Paul stood up and with a gesture began to speak: “You Israelites, and others who fear God, listen.

헬라어신약Stephanos,16 αναστας δε παυλος και κατασεισας τη χειρι ειπεν ανδρες ισραηλιται και οι φοβουμενοι τον θεον ακουσατε

라틴어Vulgate,16 surgens autem Paulus et manu silentium indicens ait viri israhelitae et qui timetis Deum audite

히브리어Modern,16 ויקם פולוס וינף ידו ויאמר אנשי ישראל ויראי אלהים שמעו׃

성 경: [행13:16]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 회당장의 제안에 대한 응답으로 바울은 곧바로 일어나 설교를 하기 시작한다. 본래 회당 안에서의 설교는 관습적으로 앉아서 하는데(눅 4:20) 바울은 일어서서 손짓까지 하면서 설교를 한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은 열정적인 웅변가로 보여지게 된다. 아마 누가는 바울을 헬라적인 연설가로 묘사하려 했을지도 모른다(Haenchen). 어쨌든 이러한 형태의 설교는 유대 회당의 전통과는 다른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 여기서부터 바울의 설교가 시작된다. 서두에서 누가는 설교를 듣는 청중이 누구인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다. 이에 대해 학자에 따라 다음 두 가지로 해석한다. (1) 이스라엘로 언급된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란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을 말하는 것이다(Lenski, Robertson). (2) 이스라엘 사람들은 출생에 의한 유대인 및 유대교로 완전히 개종한 이방인들을 가리키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10:2의 ‘경건한 사람’과 같은 의미로서 유대교로 개종하지는 않았으나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 이방인을 가리킨다(Haenchen, Bruce, Neil). 유대교로 완전히 개종한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으므로 이스라엘 사람에 포함된다. 따라서 (2)의 견해가 더 타당하다.

호 데오스 투 라우 투투 이스라엘 엨셀렠사토 투스 파테라스 헤몬 카이 톤 라온 휲소센 엔 테 파로이키아 엔 게 아이귚투 카이 메타 브라키오노스 휲셀루 엨세가겐 아우투스 엨스 아우테스

개역개정,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새번역,17 이 백성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을 택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는 동안에, 이 백성을 높여 주시고, 권능의 팔로 그들을 거기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우리말성경,17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선택하셔서 이 민족이 이집트 땅에 사는 동안 큰 민족이 되게 하시고 큰 권능으로 그들을 그 나라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가톨릭성경,17 “이스라엘인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영어NIV,17 The God of the people of Israel chose our fathers; he made the people prosper during their stay in Egypt, with mighty power he led them out of that country,

영어NASB,17 “The God of this people Israel chose our fathers, and made the people great during their stay in the land of Egypt, and with an uplifted arm He led them out from it.

영어MSG,17 God took a special interest in our ancestors, pulled our people who were beaten down in Egyptian exile to their feet, and led them out of there in grand style.

영어NRSV,17 The God of this people Israel chose our ancestors and made the people great during their stay in the land of Egypt, and with uplifted arm he led them out of it.

헬라어신약Stephanos,17 ο θεος του λαου τουτου ισραηλ εξελεξατο τους πατερας ημων και τον λαον υψωσεν εν τη παροικια εν γη αιγυπτω και μετα βραχιονος υψηλου εξηγαγεν αυτους εξ αυτης

라틴어Vulgate,17 Deus plebis Israhel elegit patres nostros et plebem exaltavit cum essent incolae in terra Aegypti et in brachio excelso eduxit eos ex ea

히브리어Modern,17 אלהי העם הזה אלהי ישראל בחר באבותינו וירומם את העם בהיותם גרים בארץ מצרים ובזרוע רמה הוציאם משם׃

성 경: [행13:17]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 – 여기서부터 22절까지의 내용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요약으로 신앙 고백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설교의 형태는 7장에서 소개된 스데반의 설교와 그형식이 비슷하다. 그러나 바울의 설교는 스데반보다는 간략하다. 바울이 이스라엘을 구원시킨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라고 말한 것은 아마도 이방인 청중을 의식하여 언급한 듯하다(Lenski). 즉 이방인들이 생각하는 신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한 출애굽의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형태의 호칭은 당시 일반적인 것으로 보이며 70인역(LXX)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어투였다(Laenchen).

󰃨 우리 조상들을…백성을 높여 – 본절에서 ‘조상들’과 ‘그 백성’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히브리인들은 시문학에서는 병행 대구법(parallelism)을 사용해서 그 구절의 의미를 강조하거나 명확하게 하곤 했다. 만일 본절이 그러한 형식을 취했다면 두 용어는 같은 의미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두 용어가 다른 의미로 쓰여 역사적인 흐름을 차례로 설명하고 있다면 ‘조상들’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그리고 야곱의 12아들을 칭하는 의미이며 ‘족장들’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스데반의 설교 내용과 본절의 바울 설교를 비교해 볼 때 ‘족장들’로 해석하는 편이 무난하다.

󰃨 큰 권능으로 – 에굽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킨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표현인 ‘큰 권능’은 70인역(LXX)역에서 영향받은 어투로(Robertson) 출 6:1, 6;신 5:15;시 136:12의 내용을 연상시킨다.

카이 호스 테세라콘타에테 크로논 에트로포포레센 아우투스 엔 테 에레모

개역개정,18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새번역,18 광야에서는 사십 년 동안 ㉢그들에 대하여 참아 주시고,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그들을 돌보아 주시고’

우리말성경,18 광야에서 40년 동안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가톨릭성경,18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선택하시고,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살이할 때에 그들을 큰 백성으로 키워 주셨으며, 권능의 팔로 그들을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영어NIV,18 he endured their conduct for about forty years in the desert,

영어NASB,18 “And for a period of about forty years He put up with them in the wilderness.

영어MSG,18 He took good care of them for nearly forty years in that godforsaken wilderness

영어NRSV,18 For about forty years he put up with them in the wilderness.

헬라어신약Stephanos,18 και ως τεσσαρακονταετη χρονον ετροποφορησεν αυτους εν τη ερημω

라틴어Vulgate,18 et per quadraginta annorum tempus mores eorum sustinuit in deserto

히브리어Modern,18 וישא אתם ויכלכלם במדבר כארבעים שנה׃

성 경: [행13:18]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 본 구절은 광야 40년간의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관계를 함축하고 있다. ‘참으시고’로 번역된 혤라어 본문은 사본에 따라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1) ‘에트로포포레센'(*):공동번역 및 많은 영역 성경이 이 용어를 따라 ‘참으시고’로 번역했다. 이 용어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 많은 잘못을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참으신 사실을 부각시켜 준다. (2) ‘에트로포포레센'(*):영역 성경 중 리빙 바이블(Living Bible)이 번역을 취하며 몇몇 대문자 사본 및 소문자 사본, 그리고 번역본들이 이 용어를 선택한다. 이는 ‘돌보다’는 의미로 신 1:31의 70인역(LXX)에 따른 것이다. 몇몇 학자들이 (해석을 지지하지만(Holtzmann, Zahn, Bruce)어떤 학자들은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Haenchen, Marshall, 아사노 중이찌). 사본상으로 ‘참으시고’가 더 많은 지지를 얻고 있으나 의미상으로는 ‘돌보시고’가 더 어울리기에 어느 하나를 강조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신 1:31의 히브리어 본문은 70인역의 ‘돌보시다’란 의미보다 ‘참으시다’의 의미에 더 가깝다. 따라서 본 구절에서는7’에트로포포래센'(*)이 더 적합하다.

카이 카델론 에드네 헾타 엔 게 카나안 카테클레로노메센 텐 겐 아우톤

개역개정,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새번역,19 가나안 땅의 일곱 족속을 멸하셔서, 그 땅을 그들에게 유업으로 주시고,

우리말성경,19 가나안 땅의 일곱 민족을 멸하셔서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업으로 주셨습니다.

가톨릭성경,19 그리고 약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의 소행을 참아 주시고,

영어NIV,19 he overthrew seven nations in Canaan and gave their land to his people as their inheritance.

영어NASB,19 “And when He had destroyed seven nations in the land of Canaan, He distributed their land as an inheritance– all of which took about four hundred and fifty years.

영어MSG,19 and then, having wiped out seven enemies who stood in the way, gave them the land of Canaan for their very own–

영어NRSV,19 After he had destroyed seven nations in the land of Canaan, he gave them their land as an inheritance

헬라어신약Stephanos,19 και καθελων εθνη επτα εν γη χανααν κατεκληροδοτησεν αυτοις την γην αυτων

라틴어Vulgate,19 et destruens gentes septem in terra Chanaan sorte distribuit eis terram eorum

히브리어Modern,19 וישמד שבעה גוים בארץ כנען ויחלק את ארצם להם לנחלה׃

성 경: [행13:19]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정착하게 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요약한 본문은 신 7:1과 연관이 있다. 신 7:1에서 그 일곱 족속이 헷, 기르가스,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로 언급되어 있다.

󰃨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 ‘기업으로 주다’에 사용된 동사 ‘카타클레로노메오'(*)는 70인역(LXX)에서는 종종 나타나지만 신약성경에서는 본절에서만 언급된다. 그 뜻은 ‘몫을 따라 분배하다’란 의미로 유산 상속과도 관계가 있다. 본절에서 이 동사는 각 지파가 받을 분깃에 따라 가나안 땅을 분배받은 것에 대해 적용되었다.

󰃨 약 사백 오십 년간 – 여기서 450년이라는 기간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계산한 것인지 이해하기가 매우 모호하다. 특히 사본에 따라 본 구절의 위치가 다르다. (1) 개역성경처럼 20절에 언급되는 ‘그후’란 표현 앞에 본구절을둔다(*,A,B,C). 이 경우 450년은 사사 시대 이전까지의 기간이다. (2) 20절의 ‘그후’ 다음에 450년을 둘 때 애굽에서 탈출한 후 광야생활부터 사사 시대까지 포함하여 450년이 된다. 첫번째 견해를 취할 경우 애굽에서400년, 광야에서 40년, 가나안 정복 기간 10년을합친 450년을 뜻한다(Bauernfeind, Lenski, Bruce, Knowling, Weiss, 아사노 중이찌). 그러나 실제로 광야 40년과 사사 시대는 사무엘 이전까지 약 370여 년간 지속되었다. 그리고 사무엘이 사사로 앉으면서 활동한 기간이 다윗왕까지 이어지는 70여 년간으로 계산할 경우 450여년이 된다. 그런데 본문에서 450여 년은 이스라엘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정착하여 왕을 세우기까지의 기간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되므로 (2)를 따르는 편이 무난하다.

호스 에테신 테트라코시오이스 카이 펜테콘타 카이 메타 타우타 에도켄 크리타스 헤오스 사무엘 톤 프로페투

개역개정,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새번역,20 약 사백오십 년 동안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그 뒤에 예언자 사무엘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사사들을 보내주시고,

우리말성경,20 이 모든 일은 450여 년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그 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예언자 사무엘 시대까지 사사들을 세워 주셨습니다.

가톨릭성경,20 가나안 땅에서 일곱 민족을 멸하시어 그 땅을 그들의 상속 재산으로 주셨는데,

영어NIV,20 All this took about 450 years. “After this, God gave them judges until the time of Samuel the prophet.

영어NASB,20 “And after these things He gave them judges until Samuel the prophet.

영어MSG,20 a span in all of about four hundred fifty years. “Up to the time of Samuel the prophet, God provided judges to lead them.

영어NRSV,20 for about four hundred fifty years. After that he gave them judges until the time of the prophet Samuel.

헬라어신약Stephanos,20 και μετα ταυτα ως ετεσιν τετρακοσιοις και πεντηκοντα εδωκεν κριτας εως σαμουηλ του προφητου

라틴어Vulgate,20 quasi post quadringentos et quinquaginta annos et post haec dedit iudices usque ad Samuhel prophetam

히브리어Modern,20 ואחרי כן נתן להם שפטים כארבע מאות וחמשים שנה עד ימי שמואל הנביא׃

성 경: [행13:20]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그 후에 – 앞절이 가나안 정복까지의 기간을 의미하므로 ‘그 후’란 가나안 정복 이후 사사 시대를 뜻한다.

󰃨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 가나안 땅에 입성한 이후 이스라엘을 이끌어 갔던 지도자들을 요약하여 언급하고있다. 가나안 정복 후 사사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이 기간은 가나안 정복 전쟁(B.C. 1405)에서부터 사무엘이 그의 사역을 마치기까지(B.C. 1017) 약 400여 년이다.

카케이덴 에테산토 바실레아 카이 에도켄 아우토이스 호 데오스 톤 사울 휘온 키스 안드라 에크 퓔레스 베니아민 에테 테쎄라콘타

개역개정,21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새번역,21 그 뒤에 그들이 왕을 요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그들에게 왕으로 주셔서, 사십 년 동안 그를 왕으로 섬기게 하셨습니다.

우리말성경,21 그 후 이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자 하나님께서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주어 40년 동안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21 그때까지 약 사백오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 뒤에 사무엘 예언자 때까지 판관들을 세워 주시고,

영어NIV,21 Then the people asked for a king, and he gave them Saul son of Kish, of the tribe of Benjamin, who ruled forty years.

영어NASB,21 “And then they asked for a king, and God gave them Saul the son of Kish, a man of the tribe of Benjamin, for forty years.

영어MSG,21 But then they asked for a king, and God gave them Saul, son of Kish, out of the tribe of Benjamin. After Saul had ruled forty years,

영어NRSV,21 Then they asked for a king; and God gave them Saul son of Kish, a man of the tribe of Benjamin, who reigned for forty years.

헬라어신약Stephanos,21 κακειθεν ητησαντο βασιλεα και εδωκεν αυτοις ο θεος τον σαουλ υιον κις ανδρα εκ φυλης βενιαμιν ετη τεσσαρακοντα

라틴어Vulgate,21 et exinde postulaverunt regem et dedit illis Deus Saul filium Cis virum de tribu Beniamin annis quadraginta

히브리어Modern,21 וישאלו מלך ויתן להם אלהים את שאול בן קיש איש משבט בנימן ארבעים שנה׃

성 경: [행13:21]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 사사 시대가 끌나고 왕정 국가 시대가 언급되고 있다. 왕정 국가의 시작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서 사무엘이 너무 늙었다는 이유와 함께 다른 열방들의 왕권 통치에 대한 부러움예서 시작되었다(삼상 8:5). 사실 이러한 이스라엘백성들의 요구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거부하는 것이며 신정 시대(神政時代)를 폐지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사울을 사십년간 주셨다가 – 백성들의 요구를 하나님은 들어주셨으나 호 13:11에 의하면 하나님 자신이 분노하여 왕권을 허락했다고 언급되고 있다. 즉 왕권에 대한 요구는 부당한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사울의 통치는 40년간(B.C. 1050-1010) 계속 되었는데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함과 동시에 그와 그의 아들들이 죽음으로써 그의 통치는 끝나게 된다(삼상 31:1-6). 본 구절에서 언급되는 사울의 통치 기간 40년은 성경 어느 곳에서도 언급되지 않으므로 다만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추측에 의존한 것으로 보인다(Haenchen, Lenski).

카이 메타스테사스 아우톤 에게이렌 톤 다위드 아우토이스 에이스 바실레이아 호 카이 에이펜 마르튀레사스 휴론 다윋 톤 투 예싸이 안드라 카타 텐 카르디안 무 호스 포이에세이 판타 타 델레마타 무

개역개정,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새번역,22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물리치시고서, 다윗을 그들의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그가 내 뜻을 다 행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 ㉣삼상 13:14; 시 89:20

우리말성경,22 그리고 사울을 폐하신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그들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다윗에 대해 증언하시기를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보니 내 마음에 꼭 맞는 사람임을 알았다.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을 그가 이룰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삼상13:14;시89:20

가톨릭성경,22 그다음에 그들이 임금을 요구하자, 하느님께서는 벤야민 지파 사람으로서 키스의 아들인 사울을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임금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영어NIV,22 After removing Saul, he made David their king. He testified concerning him: ‘I have found David son of Jesse a man after my own heart; he will do everything I want him to do.’

영어NASB,22 “And after He had removed him, He raised up David to be their king, concerning whom He also testified and said, ‘I HAVE FOUND DAVID the son of Jesse, A MAN AFTER MY HEART, who will do all My will.’

영어MSG,22 God removed him from office and put King David in his place, with this commendation: ‘I’ve searched the land and found this David, son of Jesse. He’s a man whose heart beats to my heart, a man who will do what I tell him.’

영어NRSV,22 When he had removed him, he made David their king. In his testimony about him he said, ‘I have found David, son of Jesse, to be a man after my heart, who will carry out all my wishes.’

헬라어신약Stephanos,22 και μεταστησας αυτον ηγειρεν αυτοις τον δαβιδ εις βασιλεα ω και ειπεν μαρτυρησας ευρον δαβιδ τον του ιεσσαι ανδρα κατα την καρδιαν μου ος ποιησει παντα τα θεληματα μου

라틴어Vulgate,22 et amoto illo suscitavit illis David regem cui et testimonium perhibens dixit inveni David filium Iesse virum secundum cor meum qui faciet omnes voluntates meas

히브리어Modern,22 וכהסירו אותו ויקם את דוד למלך עליהם אשר גם העיד עליו לאמר מצאתי דוד את בן ישי איש כלבבי והוא יעשה את כל חפצי׃

성 경: [행13:22]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폐(廢)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 바울은 사울의 죽음과 다윗의 등극을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묘사하고 있다. 즉 사울왕을 ‘폐하시고’라는 말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표현(호 13:11)임을 보여준다. 이는 왕정국가가 성립되었어도 하나님 개입이 계속 되었음을 말해 준다. 아마도 바울은 18절의 표현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과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참고 보살피시는 하나님을 묘사하려는 듯하다.

󰃨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 삼상 13:14과 시 89:20을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 본문은 이스라엘의 왕정(王政)을 인정한다는 의미를 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점은 왕가(王家) 의 정통성을 신적인 권위로 세우고자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열망을 대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마음에 합한’이라는 표현은 다윗이 하나님에 의해 계획된 구속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인물임을 부각시킨다.

󰃨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 다윗에게 거는 하나님의 기대는 23절에서 언급되는 메시야 탄생의 씨앗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결국 다윗 선택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救贖史)에 속한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바울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 나타난 구속사를 이스라엘 백성이 대망하던 메시야에게로 초점을 맞추어 진행시키고 있다.

투투 호 데오스 아포 투 스페르마토스 캍 에팡겔리안 에가겐 토 이스라엘 소테라 예순

개역개정,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새번역,23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구주를 세워 이스라엘에게 보내셨으니, 그가 곧 예수입니다.

우리말성경,23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다윗의 자손 가운데 구세주를 이스라엘에게 보내 주셨는데 그 사람이 바로 예수입니다.

가톨릭성경,23 그러고 나서 그를 물리치시고 그들에게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영어NIV,23 “From this man’s descendants God has brought to Israel the Savior Jesus, as he promised.

영어NASB,23 “From the offspring of this man, according to promise, God has brought to Israel a Savior, Jesus,

영어MSG,23 “From out of David’s descendants God produced a Savior for Israel, Jesus, exactly as he promised–

영어NRSV,23 Of this man’s posterity God has brought to Israel a Savior, Jesus, as he promised;

헬라어신약Stephanos,23 τουτου ο θεος απο του σπερματος κατ επαγγελιαν ηγειρεν τω ισραηλ σωτηρα ιησουν

라틴어Vulgate,23 huius Deus ex semine secundum promissionem eduxit Israhel salvatorem Iesum

히브리어Modern,23 וזה הוא אשר מזרעו הקים האלהים כפי ההבטחה גואל לישראל את ישוע׃

성 경: [행13:23]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은 삼하 7:12에서 볼 수 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경우에서처럼 언약을 맺는 형식을(창 15:1-21) 취하지 않고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주어졌다. 그렇지만 언약 맺음에 있어서 수반되는 축복과 저주, 충성과 복종의 조항이 언급되므로 삼하 7장을 ‘다윗 언약의 장’이라 부른다. 아무튼 바울은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구속사를 설명하면서 다윗 언약을 상기시켜 메시야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왕통을 이어받았음을 증명하였다.

󰃨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 이 말은 다윗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언약이 예수안에서 성취되었음에 대한 표현이다. 그런데 본 구절은 약간의 오해가 발생될 수 있다. 즉 본절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여 온 인류를 위한 구원자로서 예수를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소명자로서의 바울과도 모순되는 것처럼 이해된다. 그러나 바울의 이러한 진술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메시야 사상에 입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유대인들은, 다윗에게 약속한 메시야는 다윗 왕국을 강건하게 복원시키는 정치적 인물임을 믿었다(삼하 7:12-16). 그러나 구약성경에는 메시야에 대해 다앙한 예언이 있다. 즉 수난의 ‘종'(사 42:1-7;49:1-7;50:4-9;52:13-53)또는 ‘인자'(단 7:13), ‘왕’으로서의 메시야와 ‘대제사장’으로서의 메시야(슥 4:11-14) 등이 나타난다. 이처럼 구약성경은 한 메시야에게 다양한 상(像)이 복합적으로 존재함을 말해주고 있으나 유대인들은 굳이 일부분만을 취하여 메시야를 정치적인 즉 이스라엘에 국한된 메시야로 한정시켜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이 이방인의 구원을 말하면서도 예수를 이스라엘의 구주로 말한 것은 유대인들의 배타적인 메시야 사상을 말하기보다는 예수가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해 예언되었고 하나님에 의해 약속된 구주임을 권위있게 증언하고자 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본 구절은 예수를 이스라엘의 구주로 국한시키는 말로서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프로케륔산토스 요안누 프로 프로소푸 테스 에이소두 아우투 밮티스마 메타노이아스 판티 토 라온 이스라엘

개역개정,24 그가 오시기에 앞서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새번역,24 그가 오시기 전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하였습니다. / ㉤또는 ‘침례’

우리말성경,24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는 요한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습니다.

가톨릭성경,24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영어NIV,24 Before the coming of Jesus, John preached repentance and baptism to all the people of Israel.

영어NASB,24 after John had proclaimed before His coming a baptism of repentance to all the people of Israel.

영어MSG,24 but only after John had thoroughly alerted the people to his arrival by preparing them for a total life-change.

영어NRSV,24 before his coming John had already proclaimed a baptism of repentance to all the people of Israel.

헬라어신약Stephanos,24 προκηρυξαντος ιωαννου προ προσωπου της εισοδου αυτου βαπτισμα μετανοιας παντι τω λαω ισραηλ

라틴어Vulgate,24 praedicante Iohanne ante faciem adventus eius baptismum paenitentiae omni populo Israhel

히브리어Modern,24 אשר לפני בואו קדם יוחנן לקרא את טבילת התשובה אל כל עם ישראל׃

성 경: [행13:24]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 바울은 예수의 메시야됨에 대한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세례 요한을 언급하고 있다. 바울이 세례 요한을 예수의 권위를 보증하는 데 이용한 것은 당시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믿고 있었으며 이러한 세례 요한의 회개의 세례가 유대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18:25;눅 3:7-15). 따라서 바울은 세례 요한이 예수에 대해 증거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청중들에게 이러한 세례 요한의 활동을 회상시켜 그의 말에서 예수의 권위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예수가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아마 그는 이 사실이 예수의 권위를 높이는 데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호스 데 에플레루 요안네스 톤 드로몬 엘레겐 티 에메 휘포노에이테 에이나이 우크 에이미 에고 알 이두 에르케타이 멭 에메 후 우크 에이미 앜시오스 토 휘포데마 톤 포돈 뤼사이

개역개정,25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새번역,25 요한이 자기의 달려갈 길을 거의 다 갔을 때에 말하기를 ‘여러분은 나를 누구로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는 내 뒤에 오실 터인데,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하였습니다.

우리말성경,25 그리고 요한은 자기 사역을 끝마칠 무렵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실 것인데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가톨릭성경,25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침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영어NIV,25 As John was completing his work, he said: ‘Who do you think I am? I am not that one. No, but he is coming after me, whose sandals I am not worthy to untie.’

영어NASB,25 “And while John was completing his course, he kept saying, ‘What do you suppose that I am? I am not He. But behold, one is coming after me the sandals of whose feet I am not worthy to untie.’

영어MSG,25 As John was finishing up his work, he said, ‘Did you think I was the One? No, I’m not the One. But the One you’ve been waiting for all these years is just around the corner, about to appear. And I’m about to disappear.’

영어NRSV,25 And as John was finishing his work, he said, ‘What do you suppose that I am? I am not he. No, but one is coming after me; I am not worthy to untie the thong of the sandals on his feet.’

헬라어신약Stephanos,25 ως δε επληρου ο ιωαννης τον δρομον ελεγεν τινα με υπονοειτε ειναι ουκ ειμι εγω αλλ ιδου ερχεται μετ εμε ου ουκ ειμι αξιος το υποδημα των ποδων λυσαι

라틴어Vulgate,25 cum impleret autem Iohannes cursum suum dicebat quem me arbitramini esse non sum ego sed ecce venit post me cuius non sum dignus calciamenta pedum solvere

히브리어Modern,25 ויהי ככלות יוחנן את מרוצתו ויאמר למי תחשבוני לא אני הוא כי הנה הוא בא אחרי ואני נקלתי מהתיר את נעלי רגליו׃

성 경: [행13:25]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 이 말은 딤후 4:7에서도 나오는데 헬라적 어투로서 바울의 독특한 어법이다(Haenchen). 본 구절은 요한이 예수에 대한 증거 사역을 다하였을 때를 의미한다.

󰃨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 바울이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언급한 의도는 이 표현 속에 함축되어 있다. 즉 요한 자신이 메시야임을 직접적으로 거부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본문은 눅 3:15, 16과 요 1:19-27의 내용으로 당시 세례 요한을 메시야로 믿었던 유대인들이 많았음을 반증함과 동시에 요한이 대중들로부터 대단한 신뢰와 인기를 얻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신뢰하는 요한이 직접 자신이 메시야가 아니라 예수가 참 메시야이며 따라서 세례 요한 자신은 그 증언을 위한 사명자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혔다고 주장함으로써 예수를 메시야로 확증하고자 한다.

안드레스 아델포이 휘오이 게누스 아브라암 카이 호이 엔 휘민 포부메노이 톤 데오 헤민 호 로고스 테스 소테리아스 타우테스 엨사페스탈레

개역개정,26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새번역,26 아브라함의 자손인 동포 여러분, 그리고 여러분 가운데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여, 하나님께서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여러분에게’

우리말성경,26 아브라함의 자손인 형제들이여!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 사람들이여! 하나님께서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가톨릭성경,26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영어NIV,26 “Brothers, children of Abraham, and you God-fearing Gentiles, it is to us that this message of salvation has been sent.

영어NASB,26 “Brethren, sons of Abraham’s family, and those among you who fear God, to us the word of this salvation is sent out.

영어MSG,26 “Dear brothers and sisters, children of Abraham, and friends of God, this message of salvation has been precisely targeted to you.

영어NRSV,26 “My brothers, you descendants of Abraham’s family, and others who fear God, to us the message of this salvation has been sent.

헬라어신약Stephanos,26 ανδρες αδελφοι υιοι γενους αβρααμ και οι εν υμιν φοβουμενοι τον θεον υμιν ο λογος της σωτηριας ταυτης απεσταλη

라틴어Vulgate,26 viri fratres filii generis Abraham et qui in vobis timent Deum vobis verbum salutis huius missum est

히브리어Modern,26 אנשים אחים בני משפחת אברהם ויראי אלהים אשר בקרבכם לכם שלוח דבר הישועה הזאת׃

성 경: [행13:26]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형제들 – 청중들을 부르는 이 말은 회당 안에 모인 유대인들과 개종한 이방인들 및 회당 예배에 참석한 이방인들 모두를 포함하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바울은 청중을 다시 부름으로써 주위를 환기시키면서 자신의 설교를 본론으로 이끌었다.

󰃨 아브라함의 후예 – 이 말은 혈통적인 유대인들을 제한적으로 지칭하는 표현이지만 여기서는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도 의미한다. 이 용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16절 주석을 참조하라.

󰃨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 본 구절은 개종하지는 않았으나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 이방인들로 이해된다. 이에 대해서도 16절 주석을 참조하라.

󰃨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 본 구절을 헬라어 본문에 따라 직역하면 ‘이 구원의 말쏨이 우리에개 보내졌거늘’이란 의미가 된다. 개역성경은 주어를 하나님으로 전제해서 보내신 주체(主體)인 하나님을 강조했으나 헬라어 본문에는 ‘구원의 말씀’이 강조되었다. 본절부터가 바울의 설교에 있어서’ 본론 부분에 해당하므로 당연히 ‘구원의 말씀이 강조되어야 한다. 한편 ‘우리에게’란 표현은 어떤 사본에서는 ‘너희에게’로 언급되어 있다. 본절의 구원의 말쏨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차별없이 주어졌음을 볼 때 ‘우리에게’가 무난하다.

호이 가르 카토이쿤테스 엔 예루살렘 카이 호이 바르콘테스 아우톤 투톤 아그노에산테스 카이 타스 포나스 톤 프로페톤 타스 카타 판 삽바톤 아나기노스코메나스 크리난테스 에플레로산

개역개정,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새번역,27 그런데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이 이 예수를 알지 못하고, 안식일마다 읽는 예언자들의 말도 깨닫지 못해서, 그를 정죄함으로써, 예언자들의 말을 그대로 이루었습니다.

우리말성경,27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과 그 지도자들은 예수를 알아보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를 정죄해 안식일마다 읽는 예언자들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었습니다.

가톨릭성경,27 그런데 예루살렘 주민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죄하여, 안식일마다 봉독되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영어NIV,27 The people of Jerusalem and their rulers did not recognize Jesus, yet in condemning him they fulfilled the words of the prophets that are read every Sabbath.

영어NASB,27 “For those who live in Jerusalem, and their rulers, recognizing neither Him nor the utterances of the prophets which are read every Sabbath, fulfilled these by condemning Him.

영어MSG,27 The citizens and rulers in Jerusalem didn’t recognize who he was and condemned him to death.

영어NRSV,27 Because the residents of Jerusalem and their leaders did not recognize him or understand the words of the prophets that are read every sabbath, they fulfilled those words by condemning him.

헬라어신약Stephanos,27 οι γαρ κατοικουντες εν ιερουσαλημ και οι αρχοντες αυτων τουτον αγνοησαντες και τας φωνας των προφητων τας κατα παν σαββατον αναγινωσκομενας κριναντες επληρωσαν

라틴어Vulgate,27 qui enim habitabant Hierusalem et principes eius hunc ignorantes et voces prophetarum quae per omne sabbatum leguntur iudicantes impleverunt

히브리어Modern,27 כי ישבי ירושלים וראשיהם יען אשר לא הכירהו מלאו במשפטם אשר שפטהו את דברי הנביאים הנקראים בכל שבת׃

성 경: [행13:27]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 – 바울은 예수를 처형했던 주범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누가의 견해와 동일하다. 왜냐하면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를 처형한 장본인들이 이스라엘 종교.정치 지도자들임을 진술하고 있기 때문이다(눅 23:1-25).

󰃨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 15절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그들은 예배때마다 예언서를 읽지만 예언서의 올바른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를 구셰주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이 같은 바울의 지적은 유대 지도자들의 무지함을 강조하며 또한 예수의 처형에 대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 응하게 하였도다 – 결국 예수의 불법적인 처형도 선지자들의 예언에서 이미 제시된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밝히는 바울의 설교는 3:18에서 언급되는 베드로의 설교와 일치되고있다. 이렇게 볼 때 베드로와 바울은 신학적으로 동일성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그렇지만 이 두 설교가 누가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누가 자신의 신학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Haenchen). 누가는 베드로의 설교에서나 바울의 설교에서 같은 내용을 언급하여 초대 교회 시대에 있어서 케리그마가 어느 지역에서나 동일했음을 보여준다.

카이 메데미안 아이티안 다나투 휴론테스 에테산토 필라톤 아나이레데나이 아우톤

개역개정,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새번역,28 그들은 예수를 죽일 만한 아무런 까닭도 찾지 못하였지만, 빌라도에게 강요하여 예수를 죽이게 하였습니다.

우리말성경,28 그들은 사형을 선고할 근거를 전혀 찾지 못했음에도 예수를 죽여 달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하고

가톨릭성경,28 그들은 사형에 처할 아무런 죄목도 찾아내지 못하였지만, 그분을 죽이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하였습니다.

영어NIV,28 Though they found no proper ground for a death sentence, they asked Pilate to have him executed.

영어NASB,28 “And though they found no ground for putting Him to death, they asked Pilate that He be executed.

영어MSG,28 They couldn’t find a good reason, but demanded that Pilate execute him anyway.

영어NRSV,28 Even though they found no cause for a sentence of death, they asked Pilate to have him killed.

헬라어신약Stephanos,28 και μηδεμιαν αιτιαν θανατου ευροντες ητησαντο πιλατον αναιρεθηναι αυτον

라틴어Vulgate,28 et nullam causam mortis invenientes in eum petierunt a Pilato ut interficerent eum

히브리어Modern,28 ואף כי לא מצאו בו משפט מות שאלו מאת פילטוס להמיתו׃

성 경: [행13:28]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죽일 죄를 하나도 채지 못하였으나 – 본 구절은 예수의 무죄함을 강조한다. 이는 눅 23:14, 15에서 언급된 빌라도의 무죄 선언을 연상하게 한다. 그런데 혹자는 본절의 무죄 선언과 눅 23:14, 15에서의 무죄 선언의 주체를 구분하고있다(Haenchen). 즉 그는 눅 23:14, 15에서는 빌라도가 무죄를 선언한 것이고 본절에서는 유대인들이 예수의 무죄함을 입증한 것이라고 본다. 이처럼 죄가 없으신 예수에 대한 무죄 선언은 재판 과정에서나 신학적으로나 정당한 것으로 인정될 수밖에 없었다.

호스 데 에텔레산 판타 타 페리 아우투 게그람메나 카델론테스 아포 투 크쉴루 에데칸 에이스 므네메이온

개역개정,29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새번역,29 이와 같이, 그를 가리켜 기록한 것을 다 행한 뒤에, 그들은 예수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습니다.

우리말성경,29 예수에 관해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대로 행한 뒤 예수를 나무에서 끌어내려 무덤에 묻었습니다.

가톨릭성경,29 그리하여 그분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그들이 그렇게 다 이행한 뒤, 사람들은 그분을 나무에서 내려 무덤에 모셨습니다.

영어NIV,29 When they had carried out all that was written about him, they took him down from the tree and laid him in a tomb.

영어NASB,29 “And when they had carried out all that was written concerning Him, they took Him down from the cross and laid Him in a tomb.

영어MSG,29 They did just what the prophets said they would do, but had no idea they were following to the letter the script of the prophets, even though those same prophets are read every Sabbath in their meeting places. “After they had done everything the prophets said they would do, they took him down from the cross and buried him.

영어NRSV,29 When they had carried out everything that was written about him, they took him down from the tree and laid him in a tomb.

헬라어신약Stephanos,29 ως δε ετελεσαν απαντα τα περι αυτου γεγραμμενα καθελοντες απο του ξυλου εθηκαν εις μνημειον

라틴어Vulgate,29 cumque consummassent omnia quae de eo scripta erant deponentes eum de ligno posuerunt in monumento

히브리어Modern,29 וכאשר השלימו את כל הדברים הכתובים עליו הורידו אותו מן העץ ויניחהו בקבר׃

성 경: [행13:29]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 바울은 예수의 재판과 처형을 이미 성경에 예언된 바의 성취로 이해하며 예수 사건을 전체 구속사의 핵심으로 바라보고 있다.

󰃨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을 재확인하면서 부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즉 장사지내고 무덤에 돌어갔다는 점이 예수의 죽음을 분명하게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바울은 믿는 듯하다. 여기서 ‘십자가’라는 말 대신 ‘나무’라고 언급한 것은 신 21:23에서 언급된 예언과 일치시키려는 바울의 의도로 보여진다. 한편 바울은 십자가 사건을 복음서처럼 자세하게 설명하지않았다. 이는 바울의 관심이 예수의 완전한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의 구속사적 의의를 간략하게 설명하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호 데 데오스 에게이렌 아우톤 에크 네크론

개역개정,30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새번역,30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말성경,30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를 살리셨습니다.

가톨릭성경,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영어NIV,30 But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영어NASB,30 “But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영어MSG,30 And then God raised him from death.

영어NRSV,30 But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헬라어신약Stephanos,30 ο δε θεος ηγειρεν αυτον εκ νεκρων

라틴어Vulgate,30 Deus vero suscitavit eum a mortuis qui visus est per dies multos his

히브리어Modern,30 אבל האלהים הקימו מן המתים׃

성 경: [행13:30]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하나님이…저를 살리신지라 – 부활신앙에 대한 고백은 초대 교회에서 이미 공통된 교리로 고정된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3:15;4:10). 그리고 예수를 부활하게 한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정죄와 처형을 하나님께서 불법적이고 부당한 것으로 보증하셨음을 의미한다. 나아가서 예수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에게 정당한 것으로 용납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호스 오프데 에피 헤메라스 플레이우스 토이스 쉬나나바신 아우토 아포 테스 갈릴라이아스 에이스 예루살렘 호이티네스 뉜 에이신 마르튀레스 아우투 프로스 톤 라온

개역개정,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

새번역,31 그래서 예수는 자기와 함께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금] 백성에게 예수의 증인입니다.

우리말성경,31 그 후 여러 날 동안 예수는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까지 자기와 동행했던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이 바로 지금 백성들에게 예수를 증거하는 사람들입니다.

가톨릭성경,31 그 뒤에 그분께서는 당신과 함께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이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분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영어NIV,31 and for many days he was seen by those who had traveled with him from Galilee to Jerusalem. They are now his witnesses to our people.

영어NASB,31 and for many days He appeared to those who came up with Him from Galilee to Jerusalem, the very ones who are now His witnesses to the people.

영어MSG,31 There is no disputing that–he appeared over and over again many times and places to those who had known him well in the Galilean years, and these same people continue to give witness that he is alive.

영어NRSV,31 and for many days he appeared to those who came up with him from Galilee to Jerusalem, and they are now his witnesses to the people.

헬라어신약Stephanos,31 ος ωφθη επι ημερας πλειους τοις συναναβασιν αυτω απο της γαλιλαιας εις ιερουσαλημ οιτινες εισιν μαρτυρες αυτου προς τον λαον

라틴어Vulgate,31 qui simul ascenderant cum eo de Galilaea in Hierusalem qui usque nunc sunt testes eius ad plebem

히브리어Modern,31 וירא ימים רבים אל העלים אתו מן הגליל ירושלימה והמה עתה עדיו אל העם׃

성 경: [행13:31]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 – 본 구절은 갈릴리에서부터 예수와 동행했던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복음서에서도 증언하는 부활 목격자는 매우 다양하다. 즉 마태는 예수의 부활 현현(顯現)의 장소를 갈릴리로 제한시켜 언급하고 있으며(마 28:7, 10, 16) 마가 역시 마태와 동일하다. 요한은 예루살렘과 갈릴리에 각각 부활 현현이 있었던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요 20장;21:2, 14). 또한 누가는 엠마오 도상에서 두 제자가 예수의 부활 현현을 목격했으며(눅 24:18) 예루살렘에 있던 열 한사도와 그 외의 추종자들도 목격했다고 기록했다(눅 24:33). 이와 같이 각 복음서마다 부활 현현의 장소와 대상이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바울도 고전 15:6에서는 열 두사도와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의 부활을 목격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 전반에 걸친 부활 현현에 대한 증언을 토대로 할 때 본문의 의미는 불특정한 같릴리 출신인들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10:39-41에 나타난 베드로의 설교처럼 사도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Haenchen, Bruce). 그러나 본문에서 바울이 자신의 다메섹 경험을(9:1-8) 언급하고 있지 않으며 고전 15:6에서 언급한 500명의 목격에 관한 언급도 없다는 점에서 본문의 내용은 저자인 누가의 관점에서 묘사된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복음에서 언급된 바처럼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 갈릴리 출신의 예수 추종자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 여러 날 – 여기서 언급한 부활 현현의 기간은 1:3에서 언급된 400일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Haenchen, Robertson, Beyer).

󰃨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 부활한 예수를 목격한 사람들이 부활의 산증인임을 언급하는데 바울 자신이 그 증언자에 포함되는 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32절에서 본절의 증인들과 구분하여 ‘우리도’라고 바울 자신과 바나바를 언급한 점으로 보아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 최초의 목격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10:39-41).

카이 헤메이스 휘마스 유앙겔리조메다 텐 프로스 투스 파테라스 에팡겔리안 게노메넨

개역개정,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새번역,32 우리는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하신 그 약속을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으로 전합니다.

우리말성경,32 우리도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좋은 소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가톨릭성경,32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영어NIV,32 “We tell you the good news: What God promised our fathers

영어NASB,32 “And we preach to you the good news of the promise made to the fathers,

영어MSG,32 “And we’re here today bringing you good news: the Message that what God promised the fathers

영어NRSV,32 And we bring you the good news that what God promised to our ancestors

헬라어신약Stephanos,32 και ημεις υμας ευαγγελιζομεθα την προς τους πατερας επαγγελιαν γενομενην οτι ταυτην ο θεος εκπεπληρωκεν τοις τεκνοις αυτων ημιν αναστησας ιησουν

라틴어Vulgate,32 et nos vobis adnuntiamus ea quae ad patres nostros repromissio facta est

히브리어Modern,32 ואנחנו מבשרים אתכם את בשורת ההבטחה אשר היתה לאבותינו כי אתה מלא האלהים לבנינו בהקימו את ישוע׃

성 경: [행13:32]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 – 이 약속은 23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약속을 의미한다. 바울은 롬 4:13과 갈 3:16에서도 같은 형태의 진술을 하여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오셔서 사역했음을 밝혔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의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이단적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믿는 그 하나님의 약속이며 그 약속이 성취된 소식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오해와 무지를 벗겨주고자 노력했다.

호티 타우텐 호 데오스 에크페플레로켄 토이스 테크노이스 아우톤 헤민 아나스테사스 예순 호스 카이 엔 토 프살모 게그랖타이 토 듀테로 휘오스 무 에이 쉬 에고 세메론 게겐네카 세

개역개정,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새번역,33 하나님께서 예수를 일으키셔서, [조상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그 약속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한 것과 같습니다. / ㉦시 2:7

우리말성경,33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살리심으로써 그들의 자손인 우리에게 그 약속이 이뤄지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시편 2편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시2:7

가톨릭성경,33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시편 제이편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너는 내 아들,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영어NIV,33 he has fulfilled for us, their children, by raising up Jesus. As it is written in the second Psalm: “‘You are my Son; today I have become your Father.’

영어NASB,33 that God has fulfilled this promise to our children in that He raised up Jesus, as it is also written in the second Psalm, ‘YOU ARE MY SON; TODAY I HAVE BEGOTTEN YOU.’

영어MSG,33 has come true for the children–for us! He raised Jesus, exactly as described in the second Psalm: My Son! My very own Son! Today I celebrate you!

영어NRSV,33 he has fulfilled for us, their children, by raising Jesus; as also it is written in the second psalm, ‘You are my Son; today I have begotten you.’

헬라어신약Stephanos,33 ως και εν τω ψαλμω τω δευτερω γεγραπται υιος μου ει συ εγω σημερον γεγεννηκα σε

라틴어Vulgate,33 quoniam hanc Deus adimplevit filiis nostris resuscitans Iesum sicut et in psalmo secundo scriptum est Filius meus es tu ego hodie genui te

히브리어Modern,33 ככתוב במזמור השני בני אתה היום ילדתיך׃

성 경: [행13:33]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우리 자녀들에게 – 몇몇 사본들에는(*,A,B,C,D 등) 약속이 성취된 세대가 ‘우리의 자녀들’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다른 사본에서는(C,E,P 등) ‘그들의 자녀된 우리에게’로 언급되었다. 본절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세대에 대한 것이므로 ‘우리 자녀들에게’란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바울은 지금 예수께서 활동하시던 당대의 세대를 지칭하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대부분의 영역처럼 ‘그들의 자녀된 우리에게’로 해석되는 것이 무난하다.

󰃨 너는 내 아들이라 – 시 2:7을 인용한 본문은 본래 이스라엘 사회에서 왕의 대관식(戴冠式)때 사용되던 시로서 이스라엘 왕이 기름부음을 받을 때 그 왕이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 하나님과 부자(父子)의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이다. 바울이 이 시편의말씀을 예수에게 적용시킨 것은 바울의 독특한 인용이 아니다. 사실 복음서에서도(막 1:11; 눅 3:22) 예수가 메시야로서 성령의 능력을 받을때 본문과 갈은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Bruce). 그리고 히브리서에서도 시 2:7을 예수에 대해 적용시켜 인용하였다(히 1:5). 이는 시 2:7이 비록 왕의 대관식에서 많이 사용된 구절일지라도 유대인의 전통에서 그 구절을 메시야와 연관시켰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초대 교회는 예수께서 다윗의 가문에서 나온 왕권적인 권리를 가진 메시야로서 하나님께 세움을 받았다고 믿었던 것이다.

호티 데 아네스테센 아우톤 에크 네크론 메케티 멜론타 휘포스트레페인 에이스 디아프도란 후토스 에이레켄 호티 도소 휘민 타 호시아 다윋 타 피스타

개역개정,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새번역,34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다시는 썩지 않게 하셨는데, 이렇게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에게 약속한 거룩하고 확실한 복을,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 ㉧사 55:3(칠십인역)

우리말성경,34 하나님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를 다시 살리시고 썩지 않게 하셨는데 이것은 ‘내가 다윗에게 약속한 거룩하고 확실한 복을 너희에게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사55:3

가톨릭성경,34 또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리시어 다시는 죽음의 나라로 돌아가지 않게 하신 것을, 이렇게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다윗에게 약속한 거룩하고 확실한 것들을 너희에게 주겠다.’

영어NIV,34 The fact that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never to decay, is stated in these words: “‘I will give you the holy and sure blessings promised to David.’

영어NASB,34 “And as for the fact that He raised Him up from the dead, no more to return to decay, He has spoken in this way: ‘I WILL GIVE YOU THE HOLY and SURE blessings OF DAVID.’

영어MSG,34 “When he raised him from the dead, he did it for good–no going back to that rot and decay for him. That’s why Isaiah said, ‘I’ll give to all of you David’s guaranteed blessings.’

영어NRSV,34 As to his raising him from the dead, no more to return to corruption, he has spoken in this way, ‘I will give you the holy promises made to David.’

헬라어신약Stephanos,34 οτι δε ανεστησεν αυτον εκ νεκρων μηκετι μελλοντα υποστρεφειν εις διαφθοραν ουτως ειρηκεν οτι δωσω υμιν τα οσια δαβιδ τα πιστα

라틴어Vulgate,34 quod autem suscitaverit eum a mortuis amplius iam non reversurum in corruptionem ita dixit quia dabo vobis sancta David fidelia

히브리어Modern,34 ועל אשר הקים אתו מן המתים לבלתי שוב עוד לשחת כה אמר אתן לכם חסדי דוד הנאמנים׃

성 경: [행13:34]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 – 바울은 예수가 죽어서 썩지 않고 부활할 것이라는 구약적 근거를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다윗의 가문에서 부활할 메시야가 나올 것이라는 구약적 증거로 칠십인(LXX)역의 이사야 55:3을 들고 있다. 이러한 신학적 의도는 베드로의 설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2:27). 여기서 바울은 기독교를 유대교 전통과 분리된 이단이 아니라 유대교가 필연적으로 가야 할 길임을 강변하고있다. 즉 본절은 당시 전통적인 유대교 앞에 소수종교로서 기독교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바울의 끈질긴 설득이다.

디오티 카이 엔 헤테로 레게이 우 도세이스 톤 호시온 수 이데인 디아프도란

개역개정,35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새번역,35 그러므로 다른 시편에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거룩한 분이 썩지 않게 하실 것이다.’ / ㉨시 16:10

우리말성경,35 또 다른 시편에도 기록돼 있습니다. ‘주께서는 주의 거룩하신 분을 썩게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시16:10

가톨릭성경,35 그래서 다른 시편에서는‘ 당신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이가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영어NIV,35 So it is stated elsewhere: “‘You will not let your Holy One see decay.’

영어NASB,35 “Therefore He also says in another Psalm, ‘YOU WILL NOT ALLOW YOUR HOLY ONE TO UNDERGO DECAY.’

영어MSG,35 So also the psalmist’s prayer: ‘You’ll never let your Holy One see death’s rot and decay.’

영어NRSV,35 Therefore he has also said in another psalm, ‘You will not let your Holy One experience corruption.’

헬라어신약Stephanos,35 διο και εν ετερω λεγει ου δωσεις τον οσιον σου ιδειν διαφθοραν

라틴어Vulgate,35 ideoque et alias dicit non dabis Sanctum tuum videre corruptionem

히브리어Modern,35 על כן הוא אמר גם במקום אחר לא תתן חסידך לראות שחת׃

성 경: [행13:35]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또 다른 편에 – 이 말은 33절에서 언급한 들째 편(시 2:7)과 구분되는 시편을 뜻한다. 여기서 바울은 시 16:10 근거로 구약적인 부활 사상을 다시 언급하여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거를 더욱 심도있게 진술하고 있다.

다윋 멘 가르 이디아 게네아 휘페레테사스 테 투 데우 불레 에코이메데 카이 프로세테데 프로스 투스 파테라스 아우투 카이 에이덴 디아프도란

개역개정,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새번역,36 다윗은 사는 동안,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고, ㉩잠들어서 조상들 곁에 묻혀 썩고 말았습니다. / ㉩또는 ‘죽어서’

우리말성경,36 다윗은 한평생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다 결국 잠들어 자기 조상들과 함께 묻혔고 그 시체는 썩고 말았습니다.

가톨릭성경,36 다윗은 일생 동안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고 나서 잠든 다음, 조상들 곁에 묻혀 죽음의 나라를 보았습니다.

영어NIV,36 “For when David had served God’s purpose in his own generation, he fell asleep; he was buried with his fathers and his body decayed.

영어NASB,36 “For David, after he had served the purpose of God in his own generation, fell asleep, and was laid among his fathers, and underwent decay;

영어MSG,36 “David, of course, having completed the work God set out for him, has been in the grave, dust and ashes, a long time now.

영어NRSV,36 For David, after he had served the purpose of God in his own generation, died, was laid beside his ancestors, and experienced corruption;

헬라어신약Stephanos,36 δαβιδ μεν γαρ ιδια γενεα υπηρετησας τη του θεου βουλη εκοιμηθη και προσετεθη προς τους πατερας αυτου και ειδεν διαφθοραν

라틴어Vulgate,36 David enim sua generatione cum administrasset voluntati Dei dormivit et adpositus est ad patres suos et vidit corruptionem

히브리어Modern,36 כי דוד גוע אחרי שרתו בדורו לעצת האלהים ויאסף אל אבותיו וירא את השחת׃

성 경: [행13:36]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 바울은 22절에서 언급했던 다윗을 다시 언급하여 예수의 부활과 다윗의 죽음을 대조시켜 예수의 부활 사건을 강조했다. 먼저 바울은 육대인들이 갖고 있는 다윗에 대한 인상을 재확인하고있다. 즉 22절에서는 다윗을,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세움을 받았으며 또한 하나님에게 용납된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낼 사람으로 언급하였는데 여기서도 역시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던 인물임을 말하여 다윗을 높이고있다. 그렇지만 바울은 곧이어 다윗의 죽움과 썩어짐을 예수의 부활과 대조시켜 썩지 않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계속 유효했음을 강조한다. 한편 ‘섬기다’란 동사의 목적어로 사용된 ‘하나님의 뜻을 좇아’란 구절은 전치사 없이 여격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본 구절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라고 번역될 수 있다(Robertson, Alford, Haenchen). 이 해석을 취할 경우 본 구절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다윗이 그 시대에 자기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일을 수행했던 사람’임을 의미한다. 여기서 바울은 다윗의 업적과 죽음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었음을 22절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비록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썩음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받았으며 하나님에 의해 맡겨진 사명을 잘 수행했을지라도 죽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주어진 약속은 성취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예수와 연관지어 35절에 이어 다시 한번 더 언급함으로써 예수가 구약에 약속된대로 부활하셨음을 강조했다.

혼 데 호 데오스 에게이렌 우크 에이덴 디아프도란

개역개정,37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새번역,37 그러나 하나님께서 살리신 분은 썩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말성경,37 그러나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은 썩지 않으셨습니다.

가톨릭성경,37 그러나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키신 그분께서는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으셨습니다.

영어NIV,37 But the one whom God raised from the dead did not see decay.

영어NASB,37 but He whom God raised did not undergo decay.

영어MSG,37 But the One God raised up–no dust and ashes for him!

영어NRSV,37 but he whom God raised up experienced no corruption.

헬라어신약Stephanos,37 ον δε ο θεος ηγειρεν ουκ ειδεν διαφθοραν

라틴어Vulgate,37 quem vero Deus suscitavit non vidit corruptionem

히브리어Modern,37 ואשר האלהים הקים אותו הוא לא ראה השחת׃

성 경: [행13:37]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하나님의 살리신 이 – 부활하신 예수를 가리키는 본 구절은 죽음으로부터 예수를 부활시킨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다윗의 유한한 생명과 예수의 영원한 생명을 대조시켜 하나님의 궁극적 뜻이 예수를 통해서 성취됨을 주장한다.

󰃨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으나 – 이 말은 36절의 ‘썩음을 당하였으되’라는 말과 반대되는 표현으로 다윗과 예수를 극명하게 구분시키는 것이다. 바울은 유대교 전통에 붙잡혀 있는 유대인들에게 다윗보다 예수가 위대함을 논증해 보임으로써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선입관이나 잘못된 의식을 바꾸고자 했던 것같다.

그노스톤 운 에스토 휘민 안드레스 아델포이 호티 디아 투투 휘민 아페시스 하마르티온 카탕겔레타이 카이 아포 판톤 혼 우크 에뒤네데테 엔 노모 모위세오스 디카이오데나이

개역개정,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새번역,38 그러므로 동포 여러분, 바로 이 예수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죄 용서가 선포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말성경,38 그러므로 내 형제들이여, 예수를 통해 죄 용서함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이 여러분에게 선포되고 있음을 알기 바랍니다.

가톨릭성경,38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죄의 용서가 선포됩니다. 모세의 율법으로는 여러분이 죄를 벗어나 의롭게 될 수 없었지만,

영어NIV,38 “Therefore, my brothers, I want you to know that through Jesus the forgiveness of sins is proclaimed to you.

영어NASB,38 “Therefore let it be known to you, brethren, that through Him forgiveness of sins is proclaimed to you,

영어MSG,38 I want you to know, my very dear friends, that it is on account of this resurrected Jesus that the forgiveness of your sins can be promised.

영어NRSV,38 Let it be known to you therefore, my brothers, that through this man forgiveness of sins is proclaimed to you;

헬라어신약Stephanos,38 γνωστον ουν εστω υμιν ανδρες αδελφοι οτι δια τουτου υμιν αφεσις αμαρτιων καταγγελλεται

라틴어Vulgate,38 notum igitur sit vobis viri fratres quia per hunc vobis remissio peccatorum adnuntiatur ab omnibus quibus non potuistis in lege Mosi iustificari

히브리어Modern,38 לכן אנשים אחים יודע לכם כי על ידי זה הגד לכם סליחת החטאים׃

성 경: [행13:38]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이 사람을 힘 입어 – 이 말은 문자적으로 ‘이 사람으로 말미암아’를 의미하여 어떤 결과의 유래(由來)를 나타낸다. 그것은 ‘죄사함의 선언’을 한 이가 예수임을 의미한다.

󰃨 죄사함 – 바울이 예수의 부활을 ‘죄사함’과 곧바로 연결시킨 것은 약간 논리의 비약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의 부활이 어떻게 해서 죄사함의 근거가 되는 지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가가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것 같다. 한편 바울이 ‘죄사함’을 복음의 핵심으로 선포한 것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정죄’의 문제가 신앙의 억압적 요소로 크게 작용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유전(遺傳)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했으며 그 중 하나라도 범하게 되면 죄인으로 판명되므로 죄문제로 인해 항상 억압당하는 신앙 생활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의 예수에 의한 죄사함의 선포는 바리새인이었던 자신이 예수를 만남으로써 체험했던 사실에 대한 것임과 동시에 초대교회의 교리의 핵심이었다.

엔 투토 파스 호 피스튜온 디카이우타이

개역개정,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새번역,39 여러분이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던 그 모든 일에서 풀려납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예수 안에서 의롭게 됩니다.

우리말성경,39 여러분이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었던 모든 것에서도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39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 안에서 모든 죄를 벗어나 의롭게 됩니다.

영어NIV,39 Through him everyone who believes is justified from everything you could not be justified from by the law of Moses.

영어NASB,39 and through Him everyone who believes is freed from all things, from which you could not be freed through the Law of Moses.

영어MSG,39 He accomplishes, in those who believe, everything that the Law of Moses could never make good on. But everyone who believes in this raised-up Jesus is declared good and right and whole before God.

영어NRSV,39 by this Jesus everyone who believes is set free from all those sins from which you could not be freed by the law of Moses.

헬라어신약Stephanos,39 και απο παντων ων ουκ ηδυνηθητε εν τω νομω μωσεως δικαιωθηναι εν τουτω πας ο πιστευων δικαιουται

라틴어Vulgate,39 in hoc omnis qui credit iustificatur

히브리어Modern,39 ובכל אשר לא יכלתם להצטדק בתורת משה כל המאמין יצדק על ידו׃

성 경: [행13:39]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모세의 율법으로…의롭다 하심을 – 본 구절은 바울 서신과 일치된 사상을 전달하고 있으므로 본장에 언급된 바울의 설교를 본서의 저자인 누가의 작품으로 평가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본 설교가 누가의 필치에 의해 다듬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부활’과 ‘의의 선포’같은 내용은 바울의 독특한 신학을 형성하는 골격이 되므로 전체적인 내용은 분명히 설교자 바울의 것임에 틀림없다. 바울은 의롭게 되는 일에 온갖 정성을 다 바쳤던 유대인들의 삶을 지적하면서 의롭게 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있다. 이러한 바울의 설교에는 (1) 사람이 율법으로는 결코 의롭게 될 수 없다는 사실과 (2) 예수를 통해서만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강하게 암시되어 있다.

블레페테 운 메 에펠데 토 에이레메논 엔 토이스 프로페타이스

개역개정,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새번역,40 그러므로 예언서에서 말한 일이 여러분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말성경,40 그러므로 예언자들이 말한 것이 여러분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가톨릭성경,40 그러니 예언서들에서 말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미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영어NIV,40 Take care that what the prophets have said does not happen to you:

영어NASB,40 “Take heed therefore, so that the thing spoken of in the Prophets may not come upon you:

영어MSG,40 “Don’t take this lightly. You don’t want the prophet’s sermon to describe you:

영어NRSV,40 Beware, therefore, that what the prophets said does not happen to you:

헬라어신약Stephanos,40 βλεπετε ουν μη επελθη εφ υμας το ειρημενον εν τοις προφηταις

라틴어Vulgate,40 videte ergo ne superveniat quod dictum est in prophetis

히브리어Modern,40 לכן השמרו לכם פן יבוא עליכם הנאמר בנביאים׃

성 경: [행13:40]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 바울은 자신의 설교를 마무리 지으면서 마지막 경고를 주기위해 41절에서 합 1:5를 인용하였다. 여기서 언급된 ‘삼가라’는 말은 41절의 인용 구절 중 ‘멸시하는’과 연관되어 ‘멸시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아니면 ‘놀라고 망하라’는 표현과 연관되어 ‘놀라고 망할까 조심하라’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지 확정할 수 없다.

이데테 호이 카타프로네타이 카이 다우마사테 카이 아파니스데테 호티 에르곤 에르가조마이 에고 엔 타이스 헤메라이스 휘몬 에르곤 호 우 메 피스튜세테 에안 티스 엨디에게타이 휘민

개역개정,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새번역,41 ㉪’보아라, 너희 비웃는 자들아, 놀라고 망하여라. 내가 너희 시대에 한 가지 일을 할 터인데, 그 일을 누가 너희에게 말하여 줄지라도 너희는 도무지 믿지 않을 것이다.'” / ㉪합 1:5(칠십인역)

우리말성경,41 ‘보라. 너희 비웃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시대에 한 가지 일을 행하겠다. 누군가 그 일을 너희에게 전해 준다 해도 너희가 믿지 않을 것이다.’” 합1:5

가톨릭성경,41 ‘ 보아라, 너희 비웃는 자들아! 놀라다 망해 버려라. 내가 너희 시대에 한 가지 일을 하리라.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어도 너희가 도무지 믿지 못할 그런 일이다.’ ”

영어NIV,41 “‘Look, you scoffers, wonder and perish, for I am going to do something in your days that you would never believe, even if someone told you.'”

영어NASB,41 ‘BEHOLD, YOU SCOFFERS, AND MARVEL, AND PERISH; FOR I AM ACCOMPLISHING A WORK IN YOUR DAYS, A WORK WHICH YOU WILL NEVER BELIEVE, THOUGH SOMEONE SHOULD DESCRIBE IT TO YOU.’ ”

영어MSG,41 Watch out, cynics; Look hard–watch your world fall to pieces. I’m doing something right before your eyes That you won’t believe, though it’s staring you in the face.”

영어NRSV,41 ‘Look, you scoffers! Be amazed and perish, for in your days I am doing a work, a work that you will never believe, even if someone tells you.'”

헬라어신약Stephanos,41 ιδετε οι καταφρονηται και θαυμασατε και αφανισθητε οτι εργον εγω εργαζομαι εν ταις ημεραις υμων εργον ω ου μη πιστευσητε εαν τις εκδιηγηται υμιν

라틴어Vulgate,41 videte contemptores et admiramini et disperdimini quia opus operor ego in diebus vestris opus quod non credetis si quis enarraverit vobis

히브리어Modern,41 ראו בגדים והתמהו ושמו כי פעל פעל אני בימיכם פעל אשר לא תאמינו כי יספר לכם׃

성 경: [행13:41]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 일렀으되 – 이 말은 앞절에서 언급했듯이 ‘선지자들’이 한 말을 다시 상기시키는 것으로 예언서에서 발췌된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 여기서 인용되는 구절은 합 1:5로서 70인역을 약간 변형시켜 사용되었다. 히브리 본문에서 이 구절은 갈대아 사람의 등장에 대한 예언과 관련되어 있다(Haenchen). 그러나 바울은 이 문구를 인용하여 유대인들이 배타적으로 우월감에 빠진 선민의식(選民意識)으로 인해 버림받고 오히려 이방인들이 구원의 길로 인도될 것임을 예고하였다.

엨시온톤 데 아우톤 파레칼룬 에이스 토 메탘쉬 삽바톤 랄레데나이 아우토이스 타 레마타 타우타

개역개정,42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새번역,42 ㉫그들이 회당에서 나올 때에, 사람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이러한 말씀을 해 달라고 청하였다. / ㉫바울과 바나바

우리말성경,42 바울과 바나바가 회당에서 나오는데 사람들이 그들에게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좀 더 해 달라며 부탁했습니다.

가톨릭성경,42 그들이 회당에서 나올 때, 사람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이러한 말씀을 해 달라고 청하였다.

영어NIV,42 As Paul and Barnabas were leaving the synagogue, the people invited them to speak further about these things on the next Sabbath.

영어NASB,42 And as Paul and Barnabas were going out, the people kept begging that these things might be spoken to them the next Sabbath.

영어MSG,42 When the service was over, Paul and Barnabas were invited back to preach again the next Sabbath.

영어NRSV,42 As Paul and Barnabas were going out, the people urged them to speak about these things again the next sabbath.

헬라어신약Stephanos,42 εξιοντων δε εκ της συναγωγης των ιουδαιων παρεκαλουν τα εθνη εις το μεταξυ σαββατον λαληθηναι αυτοις τα ρηματα ταυτα

라틴어Vulgate,42 exeuntibus autem illis rogabant ut sequenti sabbato loquerentur sibi verba haec

히브리어Modern,42 ובצאת היהודים מבית הכנסת בקשו מהם הגוים לדבר אליהם את הדברים האלה בשבת הבאה׃

성 경: [행13:42]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이방인 전도 및 유대인들의 핍박]

󰃨 저희가 나갈새 – 본 구절은 바울이 설교를 마치고 회당에서 퇴장하는 장면에 대한 묘사다. 문맥상 바울과 바나바가 설교 후 곧바로 퇴장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예배 도중에 바울과 바나바가 퇴장했을 가능성은 희밖하다. 바울과 바나바가 유대교 전통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예배를 마치기 전, 즉 자신의 설교만 마치고 퇴장한 것(Meyer, Knowling)이 아니라 예배를 마친 다음 다른 사람들과 함께 퇴장했으나 누가가 그 과정을 생략하고 간결하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Haenchen).

󰃨 사람들이 청하되 – 본 구절은 다음 두 가지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1) 47절부터 시작되는 다음 안식일의 설교가 있게 된 배경을 설명해 주고 있다. (2) 바울의 설교가 유대인들로부터 매우 고무적인 반응을 얻었음을 암시한다. 이는 유대교인들 중에서 기독교로의 개종이 일어나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뤼데이세스 데 테스 쉬나고게스 에콜루데산 폴로이 톤 유다이온 카이 톤 세보메논 프로셀뤼톤 토 파울로 카이 토 바르나바 호이티네스 프로스랄룬테스 아우토이스 에페이돈 아우투스 프로스메네인 테 카리티 투 데우

개역개정,43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새번역,43 회중이 흩어진 뒤에도, 유대 사람들과 경건한 개종자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많이 따랐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말을 걸면서, 늘 하나님의 은혜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하였다.

우리말성경,43 집회가 다 끝난 후 많은 유대 사람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경건한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왔습니다. 그들은 그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계속 머물러 있으라고 권했습니다.

가톨릭성경,43 회중이 흩어진 뒤에 많은 유다인과 유다교로 개종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이 따라오자,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들에게 이야기하며 하느님의 은총에 계속 충실하라고 권하였다.

영어NIV,43 When the congregation was dismissed, many of the Jews and devout converts to Judaism followed Paul and Barnabas, who talked with them and urged them to continue in the grace of God.

영어NASB,43 Now when the meeting of the synagogue had broken up, many of the Jews and of the God-fearing proselytes followed Paul and Barnabas, who, speaking to them, were urging them to continue in the grace of God.

영어MSG,43 As the meeting broke up, a good many Jews and converts to Judaism went along with Paul and Barnabas, who urged them in long conversations to stick with what they’d started, this living in and by God’s grace.

영어NRSV,43 When the meeting of the synagogue broke up, many Jews and devout converts to Judaism followed Paul and Barnabas, who spoke to them and urged them to continue in the grace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43 λυθεισης δε της συναγωγης ηκολουθησαν πολλοι των ιουδαιων και των σεβομενων προσηλυτων τω παυλω και τω βαρναβα οιτινες προσλαλουντες αυτοις επειθον αυτους επιμενειν τη χαριτι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43 cumque dimissa esset synagoga secuti sunt multi Iudaeorum et colentium advenarum Paulum et Barnaban qui loquentes suadebant eis ut permanerent in gratia Dei

히브리어Modern,43 ורבים מן היהודים ומגרי הצדק הלכו אחרי פולוס ובר נבא בהפרד הקהל והמה דברו על לבם ויזהירום לעמד בחסד האלהים׃

성 경: [행13:43]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이방인 전도 및 유대인들의 핍박]

󰃨 폐회한 후에 – 예배의 종료(終了)를 알리는 본문은 앞절에서 언급된 폐회의 암시와 부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즉 앞절에서 이미 예배의 종료가 함축적으로 언급되었다면 또다시 언급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절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퇴장할 때가 예배 도중이었을 것으로 추측될 수 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가 도중에 퇴장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에서(42절 주석) 본절은 예배 종료를 알리는 말이라기보다는 본절에서 언급되는 사건이 예배가 폐회된 이후에 있었음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 – 16절주석 참조.

󰃨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 본 구절은 42절에서 언급된 바울의 설교를 다시 듣기로 간청한 것과 맞물려 이방 지역의 유대인 공둥체에서 기독교의 새로은 공동체가 발생하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토 데 에르코메노 삽바토 스케돈 파사 헤 폴리스 쉬네크데 아쿠사이 톤 로곤 투 퀴리우

개역개정,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새번역,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동네 사람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주님의’

우리말성경,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그 도시의 사람들이 거의 다 주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가톨릭성경,44 그다음 안식일에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도시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들었다.

영어NIV,44 On the next Sabbath almost the whole city gathered to hear the word of the Lord.

영어NASB,44 And the next Sabbath nearly the whole city assembled to hear the word of God.

영어MSG,44 When the next Sabbath came around, practically the whole city showed up to hear the Word of God.

영어NRSV,44 The next sabbath almost the whole city gathered to hear the word of the Lord.

헬라어신약Stephanos,44 τω δε ερχομενω σαββατω σχεδον πασα η πολις συνηχθη ακουσαι τον λογον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44 sequenti vero sabbato paene universa civitas convenit audire verbum Domini

히브리어Modern,44 ובשבת השנית נקהלה כמעט כל העיר לשמע את דבר יהוה׃

성 경: [행13:44]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이방인 전도 및 유대인들의 핍박]

󰃨 온 성이 거의 다…모이니 – 이 같은 묘사는 바울의 설교가 성공적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극적인 표현이다. 왜냐하면 당시 온 성의 사람들이 거의 다 모일 수 있을 정도의 회당이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가기 때문이다(Bauernfeind). 누가가 이처럼 과장법을 사용한 것은 바울을 성공적인 설교가로 묘사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Haenchen). 하여튼 본절에서 누가가 진술하고자 하는 요지는 바울의 설교가 성공적이어서 비시디아 안디옥 온 성이 떠들썩했으며 더욱 많은 무리가 바울의 설교를 듣기 위해 회당으로 몰려왔다는 사실이다.

이돈테스 데 호이 유다이오이 투스 오클루스 에플레스데산 젤루 카이 안텔레곤 토이스 휘포 파울루 라루메노이스 블라스페문테스

개역개정,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새번역,45 유대 사람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심으로 가득 차서, 바울과 바나바가 한 말을 반박하고 비방하였다.

우리말성경,45 그 무리를 본 유대 사람들은 시기심으로 가득 차 바울이 말하는 것을 반대하며 모욕했습니다.

가톨릭성경,45 그 군중을 보고 유다인들은 시기심으로 가득 차 모독하는 말을 하며 바오로의 말을 반박하였다.

영어NIV,45 When the Jews saw the crowds, they were filled with jealousy and talked abusively against what Paul was saying.

영어NASB,45 But when the Jews saw the crowds, they were filled with jealousy, and began contradicting the things spoken by Paul, and were blaspheming.

영어MSG,45 Some of the Jews, seeing the crowds, went wild with jealousy and tore into Paul, contradicting everything he was saying, making an ugly scene.

영어NRSV,45 But when the Jews saw the crowds, they were filled with jealousy; and blaspheming, they contradicted what was spoken by Paul.

헬라어신약Stephanos,45 ιδοντες δε οι ιουδαιοι τους οχλους επλησθησαν ζηλου και αντελεγον τοις υπο του παυλου λεγομενοις αντιλεγοντες και βλασφημουντες

라틴어Vulgate,45 videntes autem turbas Iudaei repleti sunt zelo et contradicebant his quae a Paulo dicebantur blasphemantes

히브리어Modern,45 ויהי כראות היהודים את המון העם וימלאו קנאה ויכחישו את דברי פולוס הכחש וגדף׃

성 경: [행13:45]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이방인 전도 및 유대인들의 핍박]

󰃨 유대인들이 – 이들은 회당의 구성원들로 바리새파의 유전을 철저히 추종하는 유대인들로 추정된다. 이들은 회당의 핵심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바울의 설교가 자기 공동체에 심각한 도전이 된다고 느꼈기 때문에 바울의 설교에 대해 무조건 비방하는 자세를 취했을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시기와 비방은 새로이 형성되는 기독교 공동체가 유대교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있다.

파르레시아사메노이 테 호 파울로스 카이 호 바르나바스 에이판 휘민 엔 아낭카이온 프로톤 랄레데나이 톤 로곤 투 데우 에페이데 아포데이스데 아우톤 카이 우크 앜시우스 크리네테 헤아우투스 테스 아이오니우 조에스 이두 스트레포메다 에이스 타 에드네

개역개정,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새번역,46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담대하게 말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들에게 먼저 전해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들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합당하지 못한 사람으로 스스로 판정하므로, 우리는 이제 이방 사람들에게로 갑니다.

우리말성경,46 그때 바울과 바나바가 그들에게 담대하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먼저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그 말씀을 거절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합당치 못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이방 사람들에게 눈을 돌립니다.

가톨릭성경,46 그러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담대히 말하였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영어NIV,46 Then Paul and Barnabas answered them boldly: “We had to speak the word of God to you first. Since you reject it and do not consider yourselves worthy of eternal life, we now turn to the Gentiles.

영어NASB,46 And Paul and Barnabas spoke out boldly and said, “It was necessary that the word of God should be spoken to you first; since you repudiate it, and judge yourselves unworthy of eternal life, behold, we are turning to the Gentiles.

영어MSG,46 But Paul and Barnabas didn’t back down. Standing their ground they said, “It was required that God’s Word be spoken first of all to you, the Jews. But seeing that you want no part of it–you’ve made it quite clear that you have no taste or inclination for eternal life–the door is open to all the outsiders. And we’re on our way through it,

영어NRSV,46 Then both Paul and Barnabas spoke out boldly, saying, “It was necessary that the word of God should be spoken first to you. Since you reject it and judge yourselves to be unworthy of eternal life, we are now turning to the Gentiles.

헬라어신약Stephanos,46 παρρησιασαμενοι δε ο παυλος και ο βαρναβας ειπον υμιν ην αναγκαιον πρωτον λαληθηναι τον λογον του θεου επειδη δε απωθεισθε αυτον και ουκ αξιους κρινετε εαυτους της αιωνιου ζωης ιδου στρεφομεθα εις τα εθνη

라틴어Vulgate,46 tunc constanter Paulus et Barnabas dixerunt vobis oportebat primum loqui verbum Dei sed quoniam repellitis illud et indignos vos iudicastis aeternae vitae ecce convertimur ad gentes

히브리어Modern,46 אז הגידו פולוס ובר נבא על פניהם לאמר בדין היה להשמיע אתכם בראשונה את דבר האלהים ועתה אחרי אשר מאסתם אותו ואינכם זכים בעיניכם לחיי העולם לכן הננו פנים אל הגוים׃

성 경: [행13:46]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이방인 전도 및 유대인들의 핍박]

󰃨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 유대인들의 비방에 대해 바울과 바나바가 응답함에 있어서 누가는 바울과 바나바의 진술을 권위있게 묘사하기 위해 ‘담대히 말하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즉 이 말의 헬라어 ‘파르레시아사메노이(*)는 ‘자유롭게 말하다’ 또는 ‘숨김없이 확신을 가지고 말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누가는 바울과 바나바의 대답이 매우 확신에 찬 것으로 청중을 설득하는 호소력이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 이 말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겼음을 의미한다. 이는 유대인들 자신이 자처(自處)한 것이므로 복음을 전해 받지 못하는 책임이 그들 자신에게 있음을 가리킨다. 이러한 언급은 바울 자신도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서 그는 비방하는 자들이 자신을 반(反) 유대적인 교리를 전파하는 자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랬을 것이다.

후토스 가르 엔테탈타이 헤민 호 퀴리오스 테데이카 세 에이스 포스 에드논 투 에이나이 세 에이스 소테리안 헤오스 에스카투 테스 게스

개역개정,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새번역,47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내가 너를 뭇 민족의 빛으로 삼았으니, 그것은 네가 땅 끝까지 구원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 ㉭사 49:6

우리말성경,47 이것이 바로 주께서 우리에게 하신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이방 사람들의 빛으로 삼았으니 이는 네가 땅 끝까지 구원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다.’” 사49:6

가톨릭성경,47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 땅 끝까지 구원을 가져다주도록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 ”

영어NIV,47 For this is what the Lord has commanded us: “‘I have made you a light for the Gentiles, that you may bring salvation to the ends of the earth.'”

영어NASB,47 “For thus the Lord has commanded us, ‘I HAVE PLACED YOU AS A LIGHT FOR THE GENTILES, THAT YOU SHOULD BRING SALVATION TO THE END OF THE EARTH.'”

영어MSG,47 following orders, doing what God commanded when he said, I’ve set you up as light to all nations. You’ll proclaim salvation to the four winds and seven seas!”

영어NRSV,47 For so the Lord has commanded us, saying, ‘I have set you to be a light for the Gentiles, so that you may bring salvation to the ends of the earth.'”

헬라어신약Stephanos,47 ουτως γαρ εντεταλται ημιν ο κυριος τεθεικα σε εις φως εθνων του ειναι σε εις σωτηριαν εως εσχατου της γης

라틴어Vulgate,47 sic enim praecepit nobis Dominus posui te in lumen gentibus ut sis in salutem usque ad extremum terrae

히브리어Modern,47 כי כן צוה עלינו האדון נתתיך לאור גוים להיות ישועתי עד קצה הארץ׃

성 경: [행13:47]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이방인 전도 및 유대인들의 핍박]

󰃨 주께서…명하시되 – 바울은 다시 자신의 이방 선교의 정당성을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자신의 사역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임을 선포하여 그 사역의 신적권위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자신이 선포하는 내용도 인간의 지혜나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그토록 섬기던 바로 그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으므로 자신을 비방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자라는 암시를 주고 있다.

󰃨 내가…구원하게 하리라 – 이 인용구는 사 42:6;49:6에서 발췌된 것이다. 이 이사야서의 말씀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으로서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바울과 바나바예게 하신 말씀은 아니다. 하지만 바울에 대해 하나님께서 아나니아에게 예언하신 내용과 연관지어 볼 때(9:15) 이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에게 적절히 적용될 수 있다 하겠다. 즉 바울은 사 42:6;49:6에 예언된 내용을 전파하는 자로 자신들이 선택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 구절을 인용했을 것이다.

아쿠온타 데 타 에드네 에카이론 카이 에돜사존 톤 로곤 투 퀴리우 카이 에피스튜산 호소이 에산 테타그메노이 에이스 조엔 아이오니온

개역개정,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새번역,48 이방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였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하신 사람은 모두 믿게 되었다.

우리말성경,48 이 말을 들은 이방 사람들은 기뻐하며 주의 말씀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선택된 사람들은 모두 믿게 됐습니다.

가톨릭성경,48 다른 민족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들은 모두 믿게 되었다.

영어NIV,48 When the Gentiles heard this, they were glad and honored the word of the Lord; and all who were appointed for eternal life believed.

영어NASB,48 And when the Gentiles heard this, they began rejoicing and glorifying the word of the Lord; and as many as had been appointed to eternal life believed.

영어MSG,48 When the non-Jewish outsiders heard this, they could hardly believe their good fortune. All who were marked out for real life put their trust in God–they honored God’s Word by receiving that life.

영어NRSV,48 When the Gentiles heard this, they were glad and praised the word of the Lord; and as many as had been destined for eternal life became believers.

헬라어신약Stephanos,48 ακουοντα δε τα εθνη εχαιρον και εδοξαζον τον λογον του κυριου και επιστευσαν οσοι ησαν τεταγμενοι εις ζωην αιωνιον

라틴어Vulgate,48 audientes autem gentes gavisae sunt et glorificabant verbum Domini et crediderunt quotquot erant praeordinati ad vitam aeternam

히브리어Modern,48 וישמחו הגוים כשמעם ויהללו את דבר יהוה ויאמינו כל אשר היו מוכנים לחיי עולם׃

성 경: [행13:48]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이방인 전도 및 유대인들의 핍박]

󰃨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 여기서 누가는 바울과 바나바의 설교를 들은 이방인들의 기쁨을 강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45절에서 언급된 유대인들의 반응과는 매우 대조되고 있다. 본절은 이방인들이 바울과 바나바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음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작정된 자 – ‘작정(作定)된’으로 번역된 ‘테탁메노이'(*)는 완료 수동태 분사로서 ‘작정’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 이전에 이루어졌음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과거 완료는 과거를 시점으로 어떤 사건이 그 과거 이전에 완료되어 그 시점까지 영향을 미칠 때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작정은 과거의 한 사건으로 끝나버리지 않고 모든 세대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디에페레토 데 호 로고스 투 퀴리우 디 홀레스 테스 코라스

개역개정,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새번역,49 이렇게 해서 주님의 말씀이 그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우리말성경,49 그리하여 주의 말씀이 그 지방 전체에 두루 퍼졌습니다.

가톨릭성경,49 그리하여 주님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영어NIV,49 The word of the Lord spread through the whole region.

영어NASB,49 And the word of the Lord was being spread through the whole region.

영어MSG,49 And this Message of salvation spread like wildfire all through the region.

영어NRSV,49 Thus the word of the Lord spread throughout the region.

헬라어신약Stephanos,49 διεφερετο δε ο λογος του κυριου δι ολης της χωρας

라틴어Vulgate,49 disseminabatur autem verbum Domini per universam regionem

히브리어Modern,49 ויפרץ דבר יהוה בכל המקום׃

성 경: [행13:49]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이방인 전도 및 유대인들의 핍박]

󰃨 주의 말씀이 퍼지니라 – ‘퍼지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에페레토'(*)는 미완료 과거로 ‘게속 퍼지고 있었다’를 의미한다. 이는 주의 말씀이 점점 널리 퍼져가는 것을 묘사한다. 그런데 누가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믿게 된 자들의 부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않고 있다. 아마 이 부류에는 유대인뿐 아니라 많은 이방인들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호이 데 유다이오이 파로트뤼난 타스 세보메나스 귀나이카스 타스 유스케모나스 카이 투스 프로투스 테스 폴레오스 카이 에페게이란 디오그몬 에피 톤 파울론 카이 바르나반 카이 엨세발론 아우투스 아포 톤 호리온 아우톤

개역개정,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새번역,50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의 지도층 인사들을 선동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였고, 그들을 그 지방에서 내쫓았다.

우리말성경,50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도시의 지도자들을 선동해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게 했고 결국 그 지방에서 그들을 강제로 내쫓았습니다.

가톨릭성경,50 그러나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귀부인들과 그 도시의 유지들을 선동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박해하게 만들고 그 지방에서 그들을 내쫓았다.

영어NIV,50 But the Jews incited the God-fearing women of high standing and the leading men of the city. They stirred up persecution against Paul and Barnabas, and expelled them from their region.

영어NASB,50 But the Jews aroused the devout women of prominence and the leading men of the city, and instigated a persecution against Paul and Barnabas, and drove them out of their district.

영어MSG,50 Some of the Jews convinced the most respected women and leading men of the town that their precious way of life was about to be destroyed. Alarmed, they turned on Paul and Barnabas and forced them to leave.

영어NRSV,50 But the Jews incited the devout women of high standing and the leading men of the city, and stirred up persecution against Paul and Barnabas, and drove them out of their region.

헬라어신약Stephanos,50 οι δε ιουδαιοι παρωτρυναν τας σεβομενας γυναικας και τας ευσχημονας και τους πρωτους της πολεως και επηγειραν διωγμον επι τον παυλον και τον βαρναβαν και εξεβαλον αυτους απο των οριων αυτων

라틴어Vulgate,50 Iudaei autem concitaverunt religiosas mulieres et honestas et primos civitatis et excitaverunt persecutionem in Paulum et Barnaban et eiecerunt eos de finibus suis

히브리어Modern,50 אך היהודים הסיתו את הנשים החסידות והחשובות ואת אצילי העיר ויעוררו רדיפה על פולוס ובר נבא ויגרשום מגבולם׃

성 경: [행13:50]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이방인 전도 및 유대인들의 핍박]

󰃨 경건한 귀부인들 – 유대인들은 바울과 바나바 일행의 설교가 육대교 회당 중심의 공동체에 위협을 주고 았다고 판단되자 그들을 추방하기 위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영향력있는 인물들을 이용했다. 여기서 언급된 귀부인들은 유대교로 개종하지는 않았으나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 이방 여인들로서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로 짐작된다.

󰃨 그 성내 유력자들 – 이들은 앞에 언급된 ‘경건한 귀부인들’의 남편(William Neil) 일 수 있으며 아니면 단순히 그 성읍에서 지도적인 인물로서 육대인들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일 것이다.

호이 데 엨티낰사메노이 톤 코니오르톤 톤 포돈 엪 아우투스 엘돈 에이스 이코니온

개역개정,51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새번역,51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다.

우리말성경,51 그러자 바울과 바나바는 발에 붙어 있던 먼지를 그들을 향해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습니다.

가톨릭성경,51 그들은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나서 이코니온으로 갔다.

영어NIV,51 So they shook the dust from their feet in protest against them and went to Iconium.

영어NASB,51 But they shook off the dust of their feet in protest against them and went to Iconium.

영어MSG,51 Paul and Barnabas shrugged their shoulders and went on to the next town, Iconium,

영어NRSV,51 So they shook the dust off their feet in protest against them, and went to Iconium.

헬라어신약Stephanos,51 οι δε εκτιναξαμενοι τον κονιορτον των ποδων αυτων επ αυτους ηλθον εις ικονιον

라틴어Vulgate,51 at illi excusso pulvere pedum in eos venerunt Iconium

히브리어Modern,51 והמה נערו עליהם את העפר מעל רגליהם וילכו לאיקניון׃

성 경: [행13:51]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이방인 전도 및 유대인들의 핍박]

󰃨 발에 티끌을 떨어버리고 – 추방당하는 바울과 바나바는 제자들에게 명령했던 예수의 말씀(마 10:14)을 그대로 실천했다. 이러한 풍속은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의 종교적 행위로서 이방인들의 지역으로부터 나올 때 행한다.

󰃨 이고니온 –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으로부터 추방당하여 그곳에서 동쪽으로 약 120km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이고니온(Iconium)으로 떠나게 된다. 이 곳 역시 B.C. 25년경 갈라디아가 로마의 한 도(道)로 복속될 때 로마에 합병되었다(F.F. Bruce).

호이 데 마데타이 에플레룬토 카라스 카이 프뉴마토스 하기우

개역개정,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새번역,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말성경,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가톨릭성경,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영어NIV,52 And the disciples were filled with joy and with the Holy Spirit.

영어NASB,52 And the disciples were continually filled with joy and with the Holy Spirit.

영어MSG,52 brimming with joy and the Holy Spirit, two happy disciples.

영어NRSV,52 And the disciples were filled with joy and with the Holy Spirit.

헬라어신약Stephanos,52 οι δε μαθηται επληρουντο χαρας και πνευματος αγιου

라틴어Vulgate,52 discipuli quoque replebantur gaudio et Spiritu Sancto

히브리어Modern,52 והתלמידים מלאו שמחה ורוח הקדש׃

성 경: [행13:52]

주제1: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1)]

주제2: [이방인 전도 및 유대인들의 핍박]

󰃨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 여기서 언급된 제자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된 비시디아 안디옥의 거주자들을 가리킨다. 누가는 그들에게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다는 말로서 그 지역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들과 동일한 성령을 받았음을 보여줌과 동시에(2:4;4:31;10:44) 기독교 공동체가 융성해 갔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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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13장 주석

사도행전13장

사도행전 13, 14장은 제1차 선교 여행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사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출발했다. 안디옥은 오론테스강 상류 32㎞ 지점에 있으므로 실제로는 안디옥의 항구 실루기아 항에서 출항했다. 제1차 선교 여행의 경로는 다음과 같다. 그들은 실루기아항에서 출발하여 구부로에 갔다. 구브로에서 살라미아 바보에서 전도했고 바보에서 출항하여 밤빌리아의 버가에 내려서 내륙지방인 비시다아의 안디옥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박해로 인하여 그곳으로부터 144㎞ 떨어진 이고니온으로 갔다. 그곳에서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 더베로 갔고 더베로부터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을 거쳐 밤빌리아로 내려가서 버가에서 전도한 후 밤빌리아의 주 항구인 아달리아에서 배를 타고 실루기아로 가서 안디옥에 도착했다. 제1차 선교 여행은 약 3년이 걸렸다.

13:1-3.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안디옥 교회의 일군들 가운데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다.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위나 사역 또는 은사에 따라 특별한 명칭으로 불려졌다. 예를 들면 사도, 집사, 선지자들, 교사 등이다. 이런 명칭들은 초대교회의 구조에 대한 일면을 보여 준다. 초대교회는 사도적 권위에 기초하여 은사 중심의 사역으로 조직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 선지자들이란 어느 한 교회에 속한 자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전하는 순회전도자들이었고, 교사들은 한 교회에 속하여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다는 것은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교회는 은사 중심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본문은 안디옥교회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의 이름을 말하고 있다. 이 이름들은 불변화사 τε로 구분된 두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대에는 흔히 헬라어의 불변사 τε로서 쌍을 이루는 낱말을 동격의 절과 유사한 문장들을 연결시키는데 사용함으로서 한 조의 등위 어귀를 서로 구별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므로 처음 τε다음에 나오는 바나바와 시므온과 루기오를 선자자들로, 그리고 두 번째 τε다음에 나오는 마나엔과 사울을 교사들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엑스포지스터 성경 연구 주석, 사도행전에서).

또한 여기 언급된 이름들은 그들의 출신을 암시해 준다. 바나바는 이미 알려진 것처럼 구브로 출신의 유대인이고, 루기고는 북아프리카 구레네 사람이고, 시므온은 유대인이나 그의 다른 이름 니게르는 로마의 이름이다. 이것은 그가 로마인들 사이에서 살았음을 의미한다. 마나엔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으로 소개 되었고, 사울은 길리기아 다소 출신 유대인이며 교육받은 랍비였다. 이처럼 안디옥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은 서로 다른 출신으로 이미 세계성(世界性)을 띠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체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류는 하나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주님은 이미 세계성을 띠고 있던 안디옥 교회를 통하여 세계선교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 개인이나 공동체는 준비된 대로 쓰임 받는다는 것을 의미다. 예루살렘교회는 유대주의라는 민족의식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교회를 세울 수는 있었지만 선교의 주체는 될 수는 없었다.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함께 모여 금식하며 기도할 때 성령님으로부터 말씀이 임했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13:2)” 우리는 성령님으로부터 임한 말씀이 이들 가운데 어떤 형태로 임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성령님의 임하심에 대하여 낯설지 않았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도 성령님으로부터 말씀이 임했을 때 그것을 들을 수 있었고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다. 이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택하여 세우고 그들을 이방의 선교를 위하여 파송했다. 이처럼 초대교회는 셩령님의 인도하심을 들을 줄 알았기 때문에 능력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었다.

13:4-7.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항으로부터 160Km 떨어진 구브로에 이르렀다. 여기 안디옥교회가 파송한 바나바와 사울을 “성령의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가 그들을 파송했을지라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한 일이기 때문에 이 일은 성령님의 일이 되며 또한 파송 받은 그들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은 자가 되었다. 이처럼 세계선교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선교의 주체는 바로 성령님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들이 선교지로 택한 구브로는 지중해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며 크기는 제주도의 약 5배 정도이다. 이 섬은 로마 원로원의 속주이며 또한 바나바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섬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유대인의 회당도 있었다(13:5). 이런 조건들이 아마도 그 섬을 첫 번째 선교지로 택한 이유일 것이다.

바나바와 사울은 이 섬의 두 성읍, 살라미와 바보에서 복음을 전했다. 살라미는 안디옥에서 구브로에 이르는 첫 항구이며 또한 전설에 의하면 바나바의 살던 곳이었다고 한다. 살라미에는 유대인 회당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이후 그들은 이 섬의 또 다른 성읍인 바보로 갔다. 바보는 로마의 총독이 살고 있던 헬라인들의 도시였다. 바나바와 사울은 바보에 이르러 총독 서기오 사울에게 복음을 전했다. 이 일은 총독이 바나바와 사울을 초청하여 이루어졌는데 어쩌면 총독은 바나바와 사울이 그 지역에 정치적 혼란을 일으키는 자들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일부 웅변가들은 떠돌아다니면서 때로는 정치적인 선동을 일으켜 혼란을 야기시키기도 했는데 정치인이었던 총독은 사울과 바나바에 대하여 이런 우려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총독은 의외로 그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회심하였다. 총독이 회심을 결단하게 된 것은 박수 엘루마에게 일어난 일로 인해서였다. 당시에 이름 있는 사람들은 유명한 점성가들을 집에 고용하였다고 한다. 유대인의 거짓 선지자이며 점성가였던 박수 엘루마도 이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며 또한 총독에게 고용된 자였을 것이다.

13:8-12. “8 이 마술사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13:8-12)”

박수 엘루마는 총독으로 하여금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방해 했다. 이때 사울은 엘루마의 거짓된 정체를 밝혀내고 주의 이름으로 그에게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13:11)”라고 책망했다. 이로 인하여 그는 앞을 못 보게 되었고, 이 모습을 본 총독은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여기 중요한 교훈은 영적 역사가 일어나는 곳에는 악령도 역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영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만일 악령의 역사가 있을 때 사역자는 무엇보다 먼저 그 권세를 무너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인 역사가 방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울이 영을 분별하여 박수 엘루마를 통하여 역사하는 악령의 권세를 깨트리지 못했다면 총독은 회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울처럼 우리가 사역의 현장에서 악령의 세력과 싸워야 할 때도 있지만 이와 같은 싸움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악령의 권세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고 또한 이와 같은 싸움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능력을 증거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 복음의 진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선지자들과 싸워 승리함으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능하심을 증거 했을 때 이스라엘은 이 증거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회복할 수 있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왕상18:39)” 이 고백은 그들이 우상숭배에서 돌이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을 회복하였다는 것을 말해 준다.

구브로에서 선교팀은 두 가지 주목할 만한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 하나는 사울이 바울로 불린 것이다. 이후부터 사울은 한 번도 사울로 불린 적이 없고 바울로만 불렸다. 이것은 사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당시 대부분의 유대 사람들은 헬라식 이름과 유대식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사울은 유대인의 이름이고 바울은 헬라식 이름이다. 따라서 사울이 구브로에서부터 자신을 헬라 이름인 바울로 부른 것은 부르심에 따라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구브로에서의 또 다른 변화는 지도자의 교체다. 이곳에서부터 선교팀의 실제적인 지도자는 바나바로부터 바울로 교체 되었다. 지금까지는 바나바와 바울이 함께 언급될 때에는 언제나 바나바가 지도자로서 언급되었다. 그러나 구브로에서부터는 바울이 바나바보다 먼저 언급된다. 이것은 지도자의 교체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지도자의 교체는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교훈한다. 하나는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재능과 은사를 주시는 분으로서 각 사람을 사용하실 때 가장 합당하게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구브로에서 선교사역을 구체적으로 하기 전까지 준비해야 할 모든 일은 바나바가 지도자가 될 때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바나바를 지도자로 세워 주셨고 구브로 이후부터 구체적인 선교 사역을 위한 모든 일은 바울이 지도자가 될 때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구브로에서 자연스럽게 지도자를 교체하신 것이다. 영적인 지도자는 지배하는 자가 아니고 섬김의 직이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으로 섬길 수 있는 자가 지도자가 되어야하는 것이다. 지도자 교체가 주는 또 다른 교훈은 선교팀 모두가 이와 같은 지도자의 교체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바나바가 바울의 지도력을 인정했다는 것은 모든 시대 교회가 본받아야 할 일이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생각할 때 지금의 바울이 되기까지 바나바의 역할은 참으로 컸다. 그러므로 바울이 바나바를 대신하여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세상의 관점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바나바를 대신하여 지도자가 될 수 있었고 또한 바나바가 바울 지도자로 인정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지도자란 어떤 자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13-41.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18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21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24 그가 오시기에 앞서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25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26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29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30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35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그들은 구브로에서 선교 일정을 마치고 그곳으로부터 280Km 떨어진 소아시아의 본토에 이르는 첫 항 버가에 이르렀다. 버가는 밤빌리아 지방에 속하는 한 도시로서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아마도 복음 전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 듯하다. 그 일이 무엇인지 몇 가지 추측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버가에서 바울이 중병에 걸렸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갈4:13을 보면 바울이 갈라디아에 지방에 이르렀을 때 육체의 약함이 있었는데 이것은 아마도 갈라디아에 도착하기 전 버가에서 얻은 질병일 것이다. 왜냐하면 밤빌리아는 지중해와 산의 고원 지대 사이에 놓여 있는 지방으로서 이 지방의 기후 풍토는 건강에 좋지 않았고 특별히 말라리아가 성행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바울이 가지고 있는 육체의 가시는 이곳에서 얻게 된 말라리아로부터 오는 고통일 것이라고 일부학자들은 생각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추측은 요한 마가가 그들과 분리하여 고향으로 돌아간 일로 인해서였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에게 많은 아픔을 준 듯하다. 2차 전도여행 때에 요한 마가를 함께 데리고 가느냐의 문제로 사울과 바나바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었으며 그 일로 인하여 그들의 동역 관계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마가가 집으로 돌아간 것에 대하여 옛 주석가 중 한 사람은 그가 어리기 때문에 어머니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찌하든 그는 처음에 여행이라는 호기심을 가지고 출발하였으나 점점 그 여행의 어려움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 감당할 수 없어서 집으로 돌아간 듯하다. 이런 문제들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이 사건을 통하여 두 가지 교훈을 얻는다. 하나는 하나님의 일군들에게 이런 예상하지 못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을 대처할 만한 인내와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영적으로 미숙한 사람은 동역자로서 합당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군으로서 함께 동역 하려 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이 고난의 시험을 통과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사울과 바나바는 이 일을 잘 대처해 나갔다. 그들이 이런 어려움 가운데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안디옥으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예정대로 계속 선교지로 여행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선교를 위하여 계속 여행하는 것을 택했다. 불편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버가를 떠나 그곳으로 부터 160km 떨어진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른다. 참으로 그들이 비시디아 안디옥까지 이르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 길이었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면 그들의 결정이야말로 영웅적 결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길은 내륙의 고원을 향하여 가는 길로서 가파른 길이었다. 때로는 산골 개울을 건너야만 했는데 가물 때는 이 개울이 말랐지만 비가 오면 격류가 되어 통행을 불가능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이 길은 산적 떼들이 들끓는 곳이었다. 이 산적들은 적은 돈을 얻기 위해서도 사람을 죽이는 자들이었다.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이 선교 여행 중 어려움을 말하고 있는데 그 내용 중에는 여기서 말하고 있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위하여 싸웠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소아시아의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주전 300년경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 중의 한사람에 의하여 건설된 헬라인 도시이다. 이 도시에는 헬라인과 본토 브르기아인 그리고 다수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있어서 사울과 바나바는 회당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13:16).

바울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애굽에서의 종 됨과 출애굽의 역사, 광야에서의 거역, 가나안 정복의 시대와 사사시대의 역사 그리고 이스라엘이 왕을 구함으로 사울을 세운 일과 폐하심 그리고 사울을 대신하여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일 등을 말함으로 이스라엘의 거역과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사랑을 전했다(13:16-25). 특별히 바울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시고 그의 씨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자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는데 바로 이 분이 그리스도 예수라는 사실을 증거 했고, 또한 세례요한을 통하여 미리 그리스도의 오심을 증거 했음을 전했다.

계속하여 바울은 이스라엘이 구주로 오신 주님을 어떻게 대(對)하였는지 말했다(13:26-41). 그들은 안식일마다 선지자의 글을 읽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로 인하여 그 뜻을 알지 못하고 구주로 오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음을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시고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부활하심을 나타내 보이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이 일에 증인을 삼으셨음을 말했다. 그리고 자신들도 바로 이 일에 증인임을 말하며 그들을 향하여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13:38,39)”라고 복음을 전했다.

13:43-52.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51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바울과 바나바가 전한 복음은 비시디아 안디옥 사람들에게 대단한 영향을 주어 유대인들은 물론 그 성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말씀을 들기 원했다(13:42,43). 이곳에서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많은 사람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았다. 그러나 복음을 반대하는 자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비방했고 급기야는 그 지방의 행정관들을 충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그 지방에서 추방하기에 이르렀다. 한 개인이나 한 지방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때 어두움의 세력도 역사한다. 비록 그들이 그 지방에서 쫓겨났지만 그들을 통하여 뿌려진 복음의 씨는 죽지 않고 열매를 가져와서 그 곳에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어쩌면 바울이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4:8,9)”라고 고백한 것은 이런 삶의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 고백일 것이다. 주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반드시 열매를 가져온다. 우리가 주님께 위임받은 일을 행할 때 주님께서 그 일을 행하시고 우리는 다만 그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핍박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안디옥에서 추방되어 그 곳으로 부터 150Km 떨어진 이고니온으로 갔다.

2020. 11. 16. 서신교회 목사 양인국

박윤선 주석, 사도행전 13장

행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 “선지자”(*

)는 초자연적 교통에 의하여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은사(恩賜)의 소유자이

다. 그리고 “교사”(* )는 가르치는 재능을 가진 지도자를 의미한

다. “바나바”는 구브로 사람이고(4:36) 복음을 위하여 안디옥에서 많이 활동한 지도자

였다(11:22-30). “니게르”란 말(* )은 검은색을 의미하는 바 흑인종에 속한다

는 뜻이다. 안디옥 교회는 이렇게 인종 차별을 하지 않았다. “루기오”는 누가(사도행

전 저자)와 동일한 사람이라고 하나, 노울링(Knowling)은 그렇지 않다고 하였다. 그는

바울의 친척이다(롬 16:21).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이 사람이 헤롯 안디바

와 이런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귀족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왕국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게 되었으니 복되다. 벴겔(Bengel)은 마나엔이 “왕궁의 영광과 관

련된 시험거리에서 햅자되었으니(freed from the temptation of a court) 행복되다.”

고 까지 말하였다. “사울”은 이 때에 사도직을 가졌지만 아직 신진 일군인 것만큼 그

의 이름이 맨 나중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천국의 원리대로(마

20:16) 후에 그는 높아졌고, 그는 바나바를 선배로 섬긴 후배였으나 나중에 훨씬 앞섰

다. 그러나 그의 마음엔 아무런 경쟁심도 없었고, 자기는 다만 죄인의 “괴수”라는 겸

손을 소유하였을 뿐이었다(딤전 1:15).

안디옥 교회는 선교적 교회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단단히 뿌리 박였을 뿐만 아니

라 크게 확장해 나아갈 큰 힘이 갖추어져 있었다(B.Wielenga, Van Jerusalem Naar

Rome, Tweede Deel, 1928, p.8). 그뿐 아니라 거기에는 자격 있는 복음의 일군들이 준

비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곳 교회로 말미암아 이방 각국에 선교사들을 보내실 섭

리가 이 사실로 인해 뚜렷이 알려진다.

행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 그 때에 “금식”한 사람은 선지자들과 교사들만 아니고

그들과 함께 온 교회가 하였다. 그들의 행사는 교회와 달리 행동한 어떤 그룹 운동이

아니었다. “섬겨”란 말(* )은 하나님에게 대한 개인적인

영적 교제만 아니라 단체적인 예배 행위도 가리킨다. 그들의 금식은 물질 개악석(物質

皆惡設)에서 나온 고행주의 동기에서 한 것이 아니었고, 육적 쾌락을 거절하고 하나님

의 영적 감동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B.Wielenga). 이런 목적 때문에 그들이 전심 기도

하려고 금식하였다.

“성령이 가라사대.” 이 때에 성령의 음성을 안디옥 교회 선지자들중에 누가 들었을

것이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이란 것은 외국 선교 사업을 가리킨다. 바나바와 사울

은 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겼기에 외국 선교 사업을 위하여 동역할 수 있었다.

행 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본릴. – 금식 기도는 주님의 중대한

일을 위하여 하는 법이다. “안수”에 대하여는 6:6에 있는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라.

여기서 교회가 바나바와 사울에게만 안수한 목적이 무엇이었던가? 이것은 그들에게 사

도직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갈 1:1) 그들을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기 위한

것이었다(14:26).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한다고 함은 복음을 전하려고 이방에 들어가

는 그들을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은혜에 부탁함이다(J.A. Alexander). “보내니라.” 이

말의 헬라어(* )는 보냈다는 것이 아니고 놓아주었다(released)는 뜻이

다.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 교회를 부흥케 하는 요인(要人)들임에도 불구하고

(11:22-26), 교회는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여 그들을 선교사로 내어 놓았다.

행 13:4,5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종자로 두

었더라. –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것이 있으니, 곧 복음

서에서는 그리스도 자신께서 전도자를 보내셨으나(요 20:21) 여기서는 성령께서 그들

을 보내시는 이로 진술된 것이다(*

). 그는 보내라는 명령을 교회에 내리신 것 뿐 아니라 친히 보내

시는 인격적 권위자이시다. 아니 그보다도 그는 그 선교 도상의 모든 단계에 있어서

순간순간 보내는 이로 계셔주신 것이다. 그는 교회에 영원토록 계셔주신다(요

14:16)(B.Wielenga, Van Jerusalem Naar Rome, Tweede Deel, 1928, p.25).

바나바와 사울의 선교 운동은 그들 자신의 운동이 아니고 이렇게 성령의 운동이었

다. 그러니만큼 그것은 유망하였다. 사람들이 자진하여 하나님의 일을 시작함으로 성

사하는 것도 있으나(물론 주님을 의지하고 실행함). 성령님이 주동이 되시어서 시작된

일은 안될래야 않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또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

은 하나니미의 일에 있어서 성공이란 것은 양적(量的)으로 펴어가될 것이 아니고 질적

(質的)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루기아”는 안디옥의 해변에 있는 항구이고,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다

(4:36). 그가 고향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것을 급선무로 생각한 것은 자연스럽다.

“살라미”는 구브로의 동해안에 있다. “요한”은 마가 요한인데 바나바의 생질이다(골

4:10). 그 때에 마가의 하는 일은 무엇이었던가? 마가는 두 선교사(바나바와 사울)의

육신 생활에 필요한 수종도 하였겠지만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자로서 이방 전도와

인연을 맺은 처지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교회가 하는 일은 언제나 보편적 합작에 의하

여 완전을 이루는 법이다. 안디옥 교회가 실행하는 이방 선교는 마가 요한에 의하여

예루살렘 교회와 합작한 셈이다. 이 때에 그들이 예루살렘 사람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간 것은 의미 심장하다. 이것은 적어도 결과적으로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의 합

심과 협력의 의미를 가진다. 그 때의 교회 지도자들은 각 교회로 하여금 총화적(總和

的)으로 복음 사업에 참가하도록 함으로 교계의 화평을 힘썼다.

행 13: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나니. – “바보”는 구브로 섬의 서해안에 있다. “바예수”(* )는 예

수의 아들이란 뜻이다. 예수님이 땅에 계실 때에 이적을 많이 행하신 것만큼, 그가 예

수님을 모방한다는 의미에서 자기를 가리켜 예수의 아들이라고 하였다는 학설이 있다.

그러나 이 학설은 믿기 어렵다. “박수”(* )는 요술쟁이를 의미하는데 이 말이

무당을 의미한다는 학설이 있다.

행 13: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 그 때에 “서기오 바울”이 총독이었던 사

실은 근대에 발견된 조각문에서도 증명되어 있다(Lightfoot, Zockler, Ramsay,

Knakenbauer). 그는 지혜 있는 사람인 만큼 바예수를 맹종하지 않고 다른 이들(바나바

와 사울)의 말도 듣고자 한 것이다. 지혜 없는 자는 아부자들의 말만 듣다가 망한다.

행 13:8

이 박수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

하게 힘쓰니. – 언제든지 거짓된 자는 진리를 대적하는 법이다. “엘루마”란 말(*

)은 점치는 자란 뜻이다. 바예수란 “박수”는 자기 자신이 진리를 안믿을 뿐 아

니라 남들도 믿지 못하도록 유혹하기도 하며 방해하기도 하였다. 롬 1:32 참조. (1)

그는 초자연주의를 거짓되게 꾸며서 진정한 초자연주의(超自然主義)를 반대하였다. 그

가 그렇게 한 것은 돈을 탐한 까닭이었다. (2) 그러나 진정한 초자연주의자 바울은 하

나님과 및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 고로 성령의 충만함으로 말하였다(9절).

행 13: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 “바울”이란 말(*

)은 로마식 이름으로서 작다(小)는 뜻이다. 그가 바보에서 “서기오 바울”을 개

종시킨 때에 저자 누가는 사울의 이 이름(바울)을 흥미있게 기억시키는 듯하다. 바울

이 이 때에 “성령이 충만”하였으니, 그것은 그 때에(원수가 진리를 대적할 때에) 필요

한 은혜였다. 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 적당한 은혜를 주신다(히 4:16). 바울이 이렇게

충만한 은혜를 받았으므로 진리의 원수를 꾸짖을 수 있었을 것이다.

행 13:10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이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 굳은 옹이는 날 선 도끼로 찍어야 깨

어진다. 바예수는 거짓과 불의로 굳어진 거짓 선지자니만큼, 사도 바울의 강한 책망을

받음이 필요하였다. “궤계”, 곧 속이는 것은 마귀의 본질이다(요 8:44). 저놈이 아담

과 하와를 유혹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거짓말로 그 방법을 삼았었다(창

3:4-5). 거짓은 모든 악의 앞잡이요 그 보호자이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 바예수는

“마귀의 자식”이라는 악명도 받았다.

“모든 의의 원수.” 진리의 스승은 정의(正義).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하나님

의 의(義)를 가르쳐 준다(Bengel). 그러나 거짓 스승은 그것을 대적한다. “주의 바른

길.” 정진자과 단순성은 하나님의 도(道)의 특성이다(Bengel). “그치지 아니하겠느

냐.” 악을 회개할 줄 모르며 그치지 아니함은 마귀의 특성이다.

행 13: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

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 바울이

성령으로 충만하였으므로 그 영안(靈眼)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움직임을 깨닫게 되었

다. 그리하여 그가 바예수에게 예고한 대로 천벌이 임하였다. 이때에 바예수에게 임한

벌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임한 것보다는 가볍다. 그가 소경 된 것이 “얼마 동안”이

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진노 가운데서도 긍휼을 기억하신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준다

(합 3:2). 그것은 그로 하여금 회개케 하려는 징계였다.

행 13: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 – 구

브로 섬에서 바나바와 사울이 선교한 결과 “총독” 서기오 바울이 믿었다. 그들이 선교

도상에 있어서 “믿으며”란 말(* )이 처음 나왔으니만큼 서기오 바

울의 믿음은 결코 낮게 평가될 수 없는 희귀한 것이다.

행 13: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

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란 문

구(* )는 바울을 둘러 있는 자들이란 뜻이다. 이 문구를 보

아 그 때에 바나바보다 바울이 그 일행의 지도자였음이 알려진다(Werner De Boor, Die

Apostelgeschichte, 1965,s.243). 그런데 그 때에 요한(마가)이 선교단(宣敎團)에서

떠나 귀국한 것은 좋지 않은 사건이었다. 그가 외국에서 나그네 생활이 곤란해서 그리

했는지는 모르나, 어쨌든 바울은 그의 떠남을 좋지 않게 여겼다(15:38).

행 13:14,15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

라 율법과 선지자의 긁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가로되 혀어제들

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 “비시디아 안디옥”은 소아시아의 부

리기아(Phrygia) 동남쪽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수리아 안디옥과 구부누하기 위

하여 이와 같은 이름을 붙인 것이다. 고대의 조각문에 나타난 대로 이 도시에는 로마

사람들이 많이 살았꼬, 또한 수리아의 안디옥 대제(Antiochus the Great)는 유대인

2,000 세대를 이곳에 이민시켰다. “회당” 제도는 유대인들이 바벧론에 포로되었다가

돌아온 뒤부터 생긴 것이다. 이렇게 각처에 회당이 준비되었으므로 예수님과 사도 시

대에 복음 전하기에 편리하였다. 이렇게 된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 유대인들이 안식

일에 예배하는 순서는 율법에서 한 부분과 선지서에서 한 부분을 공동(公讀)하도록 되

어 있다.

행 13: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 “손짓함”은 간절한 마음으로 그의 할 말을 청중에게 주의 깊이 듣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이것은 이방인으로서 개종한 신자들을 가리킨

다.

행 13: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란 말은 그 하

나님이 독일무이(獨一無二)하신 참 하나님이신 사실을 역설(力說)한다.

바울의 이 설교도 스데반의 설교(7장)처럼 이스라엘 역사로써 예수님을 메시야(그

리스도)라고 강력히 증거한 것이다. 이것을 보아도 기독교는 어떤 철학이 아니며 사상

이 아니고, 역사적 사실로 전개된 하나님의 계시(啓示)라는 것이 드러난다. 기독교는

관념이 아니고 사건이며 사실이다.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바울은 여기서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主

權的役事), 곧 선택으로부터 말씀하기 시작한다. 디 부어(De Boor)가 말한 바와 같이

선택은 구원사(救援史)에 있어서 하나님의 기본적 해가동으로서 거기서 모든 제시 사

건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歷史)는 인간의 공로나 업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유로우신 선택의 은혜에 의하여 결정된 것이다(De

Apostelgeschichte, 1965, s.246).

이 설교에서 바울이 가르친 것은, (1) 구약의 선민 운동이 바로 그리스도를 이 세

상에 보내시기 위한 구원사적(救援史的) 의의를 가졌다는 것이다(17-23). “하나니미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광야에서 약 40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란 말은 언약의

원칙에서 택한 백성을 취급하시는 하나님의 행동 원리를 보여준다. (2) 또한 다윗까지

열거하고서는 이스라엘의 여거사를 더 말하지 않고 예수님에게 대하여 말하기 시작하

였다(22-23). 이것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메시아)이라는 언약 사상을 역설하기 위한

논조이다. (3) 그 다음에 많이 나오는 그 당시의 청중을 가리켜서 “아브라함의 후예”

(26절), 또는 “우리 자녀들”(33절)이라고 한 말이라든지,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살

아나심이 예언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다는 것이(27, 29, 33) 모두 언약 사상에 속하

는 표현들이다. (4) 인간들에게 죄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기어코 그 본래

의 언약대로 메시야를 보내셔서 구원 역사를 완성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니만큼, 죄인

들이 예수를 믿으면 어김 없이 그로 말미암아 의(義)롭다 함이 된다(38-39). 인간들이

칭의(稱義)를 얻는 것은 이렇게 그들의 완강한 대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언약 체제 때문이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사상이요 동시에 베드로의 사상이

다(3:13-15, 18-21).

행 13:18,19

광야에서 약 사십 년 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약 사백 오십 년 간). – 이스라엘 백성이 여러번 하나님을 시험

(의심)하며 원망하였고, 또 배반하였을지라도(금송아지 만든 것과 같은 일), 하나님께

서는 그 민족을 아주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긔까지 구원하셨다. 이것은 그가 저희의 열

조와 약속하신 것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신 9:5-6). 신 1:31 참조. “일곱 족속”의

이름은 신 7:1; 수 3:10; 느 9:8에 나온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들을 멸망시키신 것은

전자적(專姿的) 행위가 아니고, 다만 그들의 죄악이 가득찼기 때문에 내리신 공정한

심판 행위였다. 창 15:16 참조. 그리고 그가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업(基

業)으로 주신 것은 그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대로 이루신 그의 진실성이다(창

15:7).

“사백 오십 년 간”이란 말은 즈안(Theodere Zahn)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에서 고생하던 기간과 광야 여행 기간과 가나안 정복 기간을 종합한 연수라고 한다.

그러면 이 귀절의 의미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까지 450년이란 긴 세

월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렇게 장구한 세월을 지나서야 이루어지는 것도

많다.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을 신앙함에 있어서 조급한 악습을 버리고 오래 참으며

기다릴 줄 알아야 된다.

행 13: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 사사(士師)들은 하나님이 세우

신 자들인 만큼 좋은 지도자들이다. 이 말씀이 역시 택한 백성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지적한다. 사사기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삿 6:1, 10:6, 13:1). 그것은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자주 떠

났던 사실을 보여준다. 그들이 그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

시고 그 때마다 징계하셨으며, 그들이 부르짖으면 다시금 선한 지도자들(사사들)을 세

워주셔서 그들을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어 선히 다스리도록 하셨다. 이것을 보면, 하나

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택하신 사실 때문에 늘 구원하여 주셨고 버리지 않으셨다. 그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지라도 그는 언제나 어김어벗이 약속을 지

키신다(딤후 2:13). 디 부어(De Boor)는 말하기를, “이 모든 일에 간섭하시며 은혜 주

시는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하나님 중심한 신학자이다.”고 하였다

(In allem ist Gott der Handelendeund Gebende. Paulus hat eine theszentrische

Theologie, weil die Schrift die Gottheit Gottes so vor uns hinstellt.-Die

Apostelgeschichte, 1965, s.246).

행 13:21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

십 년 간 주셨다가. –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구한”것이 역시 그들의 잘못이었다(삼상

8:5, 7). 그들의 이 행동은 그들이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선한 정치를 배척함과

마찬가지의 죄악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왕을 세워주셨으므로 다윗

도 왕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하여 다윗의 왕통에서 그리스도가 나시게 되

었으며, 일찌기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하여 주신 약속이 성취되었다(창 49:10). 이스라

엘 백성이 왕을 청원한 것이 죄악이었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행 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

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 하나님께서 사

울왕을 “폐하신” 것은 그의 범죄를 인함이었다. 삼사가 13:13-14, 15:19, 22-23 참조.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

라.” 이 말씀은 다윗에게 대한 하나님의 증언인데, 삼상 13:14; 시 89:20-21 등의 혼

합 인용이다. 그가 다윗을 가리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신 것은 다윗은 전

연 무죄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다만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성취

하시는 데 잘 사용될 인물이라는 뜻 뿐이다. 그가 우리아의 아내를 취한 것과 우리아

를 사지(死地)에 빠뜨린 것은 극도로 악한 일이었다(삼하 11장). 그 죄악 때문에 그가

받은 벌도 컸다. 하나님은 그를 회개케 하셨으며, 끝까지 의(義)의 길을 사모하도록

하셨다(왕상 1:4, 15:5).

그보다도 (1)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적 표상으로(시 16편) 하나님이 다윗을 지정하

셨고, (2) 그리소도(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으로 이 세상에 오시도록 하나님께서 경륜

하신 뜻을 이루셨다. 이와 같은 두 가지 면에 있어서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거룩하신

뜻을 다 이루신 것이었다. 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벌써 다윗을 왕으로 세우심

으로도 현저히 준비되고 있었다.

행 13: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 구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고 미리 약속하신

대로 성취된 일이다(롬 1:2-3).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건의 성격은, 우리로 하여금 그

를 신앙하게 만들어준다. 약속한 대로 성취된 것은 왜 믿지 않으랴! 이렇게 약속하신

것이 마침내 계약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실존주의 신학자들이 잘못 말함과

같은 초절주의적(超絶主義的) 존재가 아니다. 그리스도 사건은 만인(萬人)이 읽도록

기록되었던 대로 만인이 체험하며 볼 수 있게 성취된 일반 역사상 사건이다. 다시 말

하면 그것은 과거가 증거하고, 현재가 체험하고, 미래의 확실한 소망을 가진 구체적

진리의 사실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소개하여 말함에 있어서 최가능한 한도에서 그리

스도의 일반 역사와의 관련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가 바로 역사적 인물,

곧 “예수”라고 지적하였다. 삼하 7:12에는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였으며,

사 11:1에는 “이 새의… 가지”, 겔 34:23에는 “다윗”이란 명칭 등으로 기록되어 있

다. “구주”는 하나님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자를 이름이다(마 1:21).

이 점에 있어서 윌렝가(B.Wielenga)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곧,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애굽의 비참하고 낮은 처지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높아졌다. 그러나 그것은 한

계가 있었고 지나갔다. 구약사의 역할은 ‘다윗의 자손'(메시야)의 높아짐을 그 열매로

맺고 끝났다.”고 하였다(Het oud verbond heeft zihn dienst gedaan. Het is gekomen

totzihn vrucht: de verkieing, de verhoohing van den grooten Davidzoon.-Van

Jeruzalem Naar Rome, Tweede Deel J.H.K., Kampen, 1928, p.60).

행 13:24,25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요

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

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하였

으니. – 예수님이 그리스도(메시야)이신 사실에 대하여는, 예수님 오시기 퍽 오래 전

옛날 선지자들만 증거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 당시의 선지자였던 세례 요한도 증거하였

다. 그에게 대한 증거는 이렇게 시간상으로도 원근(遠近)을 겸전한 확실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역사에 대하여 여기서 바울이 세례 요한의 증거로부터 시작함은 의

미 심장하다. 세례 요한의 회개의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사죄함 받도록 하

기 위한 사역이었다(마 3:3; 막 1:4; 요 1:6-7, 23). 그러므로 그의 사역은 자립적인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에게 부종하는 길닦이에 불과하였다. 여기 이른 바 “그 오시는

앞”이라는 말과(24절). “내 뒤에 오시는 이”란 말은(25절), 하나님의 아들로

서 하늘에서 오시는 그리스도(메시야)에 대한 특수한 표현이다. 말 3:1-2 참조.

행 13:26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 “아브라함의 후예”는 유대인들을 의미하고, “하나님을 경외하

는 사람들”은 이방인으로서 개종한 자들을 가리킨다. “이 구원의 말씀.”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전파된 복음이다.

행 13: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

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 이 귀절

은 예수님을 죽인 자들이 그를 정죄하게 된 원인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눈 앞에 모시고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 것과 안식일마다 외우는 선지서를 깨닫지 못한

사실에 있었다. 인간들은 비록 위대한 지도자라도 자기들에게 가까이 있으면 경멸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 뿐 아니라 하늘에서 온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그것이 그들에게 익숙

해지면 그것을 귀히 여기는 열심이 식어진다. 그리하여 그들이 그 말씀의 참 뜻을 깊

이 참고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눅 4:24 참조. 인간성의 이런 심리 경향은 죄악으로

인하여 어두워져 스스로 높아진 결과이다.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들 관원들”이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하고 해할 것을 하

나님은 미리 아시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하셨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예수

님을 정죄한 것도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한 것이 되었다(시 2:1-2; 사 53:1-12). 그

러므로 이 사건 역시 우리의 신앙을 일으킨다.

행 13:28-30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성경에 저를 가

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

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 여기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 어디까지나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곧,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여 그 시체를 무덤에 장사하였으나, 그와 반대로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살리셨다. 그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믿어 구원 받게 하시려는 것이

다. 이 점에 있어서 월렝가(B.Wielenga)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으니, 곧 예루살렘 사람

들은 예수를 죽였으나 하나님은 “살아나라”고 하셨다. 이 강한 대조 속에는 차원 높은

통일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죽임이 되지 않으셨더면 그 부활의 기적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두 가지 사건을 통하여 은혜를 준비하셨다(意譯)(Van

Jerusalem Naar Rome, Tweede Deel, J.H.Kok, Kampen, 1928, pp. 65-66). 사람들은 예

수님을 죽이는 죄를 범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

행 13:30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아파에 그의 증인이라. – 10:41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라. “갈릴리로부터 예루살

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최후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십자가에 목

박혀 죽으실 마지막 길)에 동행한 제자들을 말한다. 그들은 이 마지막 길에 동행한 것

만큼, 그와 생사(生死)를 같이 할 정도로 친밀하였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이 사

람들에게 나타나 보이신 것은 이유가 있다. 죽으시기 전의 예수님과 다시 살아나신 예

수님이심을 밝히 알아 볼 자들은 그들(예수님과 친밀히 지내던 제자들)밖에 없다. 일

반 세상 사람들은 죽으시기 전 예수님도 잘 몰랐으니 어떻게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그 본래의 예수님과 동일하신 분이라고 식별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다시 살아나신 예

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 보이실 필요는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와 생사(生死)

를 같이 하려고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함께 올라갔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가 “여러날” 나타나셨으니, 그 나타나심이 순간적으로 성립될 수 있는 환상 같은 것

은 아니었다. 그의 나타나심은 실제적 역사(歷史)로서 인간에게 구체적인 관찰과 연구

의 충분한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바울이 여기서 “여러날”이란 말(*

)을 사용할 때에 주님의 나타나심이 이런 신앙의 충분한 근거가 될 만할 것임

을 알게 한다. 1:3 참조.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여기 “이제”란 말은 청중의 신앙심을 일

으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사실을 본자들이 바로 그 청중들과 같은 시

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행 13: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 “우리”, 곧 바울과 바나바

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한다. 여기 “약속”이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예언 내용을 가리킨다. 그들의 선교는 결코 그 때 청중에게 모순되게 들릴 이상

한 교훈이 아니고, 옛날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그대로였다.

26:6-7, 22-23, 27 참조.

행 13: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함이라 시

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 바울은

여기서 “자녀”라고 할 때에 구원 계약에 참여한 영적 자녀들인 것을 잊지 않았다

(Grosheide). 그는 앞에 말한 “약속”이란 말이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하셨던 그대로 예

수님을 다시 살리신 내용임을 가르친다. 이 약속은 시 2:7에 있는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의 후손들(이들은 우선 바울과 그의 시대 사람들)을 위하여 성취되었다.

“오늘 너를 낳았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다가 고차원

적(高次元的) 생명으로 살아나신 것을 예언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무덤을 새

생명의 태(胎)로 삼으신 셈이다. 윌렝가(B.Wielenga)는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켜 메시

야의 두 번째 출생(tweede geboorte als messias)으로 간주하였으니, 일리 있는 해석

이다(Van Jerusalem Naar Rome, 1928, Tweede Deel, p. 68).

행 13: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

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이 말씀은 사 55:3의 인용이

다. 그 말씀의 뜻은 다윗에게 약속하신 “거룩하고 미쁜 은사”, 곧 그리스도의 부활로

실시될 영생의 은사를 모든 택한 백성에게 주시겠다는 뜻이다.

행 13:35-37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

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 여기 이

른 바 “다른 편”이란 시 16:10을 말한다. 베드로도 그리스도의 부활이 시 16편 말씀의

성취라고 증거한 바 있다(2:25-32). 이와 같은 공통성은 그 두사람(바울과 베드로)이

꼭 같이 예수님의 부활을 성경에 근거한 육체 부활로 확신한 결과이다. 사도들은 성경

을 절대적 진리로 믿는 데 있어서 같은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일치하게 된 것이다. 고

전 15:3-8 참조.

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구원사(救援史) 취급에 나타난

바울의 성경 해석 방법이다. 그는 구약의 말씀을 해석함에 있어서 역사적 사실을 정확

히 취급하였으며, 계시(啓示)의 역사적 현상에 기준하여 진리를 찾았다. 예를 들면 시

16편의 말씀이 다윗 자신을 가리킨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가리켰다는 진리를 증거하

기 위하여 그는 말하기를,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

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라고 하였다(36절). 그는 저렇게 다윗이 무덤에

서 “썩음을 당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에 기준하여 그 시편이 썩음을 당하지 않으신 그

리스도에게서만 이루어진 사실을 들어 결론하였다. 이 점으로 보아서 그의 역사 취급

이 근대의 실존주의와 다르며, 또한 그의 성경 해석이 실존조의 시가학자 바르트

(K.Barth)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르트는 계시의 진리를 역사적 사실 면에서 알뜰히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바르트

는 예수님의 부활(고전 15장)에 대한 강해에 있어서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진 사실을

그리 중대시 하지 않았다. 그는 말하기를, “소망이나 어두움이나 신앙도 무덤 앞에는

있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빈 무덤이 그의 부활을 증거하는 역사

적 증거품으로서는 별로 효과가 없다고 하는 그릇된 말이다. 이와 같은 의미로 그는

또 말하기를, “우리가 원한다면 신약 성경이 말하는 바를 다 안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신약 성경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증거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 바울

은 왜 이렇게 부활한 그리스도의 나타나신 기사를 가지게 되었는가? 그것은 부활의 역

사적 증거를 들기 위함이 아니다.”고 하였다(The Resurrection of the Dead,

translated by H.J.Stenning, p.13). 바르트(K.Barth)의 이 말을 보면 그는 확실히 계

시의 역사적 성격을 거의 부인한 것이다. 그것은 잘못이다. 고전 15:8-11을 보면, 바

울은 자기의 부족을 말하였고, 또 자기와 같이 악한 자에게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고, 그가 은혜로 자기를 사도로 세워주신 사실을 지적하였다. 즉, 큰 죄인이

변화하여 신앙에 들어오게 된 것은 그가 본 바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기 때

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바르트는 이에 대하여 말하기를, “진리는 보이는 역사적

모습에 취하지 않을 때에 오히려 유력하다. 진리는 그것이 인간의 이름을 취하거나 일

정한 슬로간에 의하여 학파나 운동으로 나타날 때는 죽었거나 혹은 치명적으로 병든

것이다.”고 하였다(The Resurrection of the Dead, translated by H.J.Stenning,

pp.145-146). 바르트의 이 말은 복음 진리에 대한 역사적 체계가 있을 수 없다는 그릇

된 사상이다.

행 13:38,39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

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 “이 사람을 힘입어”란 말(* )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힘입는 다는 뜻이니, 이는 예수님이 중보자(仲保者)이심을 가리킨 표현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죄처럼 불행한 것이 없는데 그것을 사함 받도록 중보하여 주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인간은 남을 정죄하기에 분망하나, 예수님은 그를 믿는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에 지체하시지 않는다. 바울은 이 복음만을 전한다. 그는 이 점에 있어서 인간이 자기 힘으로는 의(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義)를 얻을 수 없음을 역설(力說)하였으니, 곧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란 말씀이다. 여기 “모든”이란 말(* )은 요긴하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히 믿는 한, 무슨 죄든지 사함을 받고 또 의롭다 함이 되기까지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절대 완전하신 중보자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다(마 11:28).

행 13:40,41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 이 말씀은 합 1:5을 인용한

것인데, 이는 갈대아 군대가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것에 대한 예고이다. 그 때 선지자

의 예고를 멸시한 자들은 마침내 그 예고대로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와 같이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구원의 복음을 믿지 않는 자들

도 멸망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1) 누구든지

복음을 받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와 같다는 것. 히 2:3 참조. (2) 하나님

은 그 하실 일을 정하신 때에 반드시 하신다는 것. 전 3:1-11 참조. 심판은 하나님께

서 날마다 하시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때에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지 않

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이란 것은 없는 줄 안다. (3) 하나님께서 그의 하실 일을 보

통으로는 사람들에게 예고하시지만 그들이 믿지 않는다는 것. 창 19:14; 눅 17:27; 요

1:5 참조. 그들이 이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

행 13:42

저희가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 그들이

같은 설교를 또 듣기 원한 이유는 그들이 그 설교에서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부

분에 나타난 바울의 설교는 잠간 있다가 없어질 이 세상 것들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설교는 영원한 가치 있는 문제를 해결하였으니, 곧 하나님, 영생, 사죄에 관한

것이다.

행 13:43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

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 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음은 복음의 은혜를 사모하는 까닭이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

운데 있으라”는 권면은 초신자(初信者)들에게 적합한 것이다. 사람은 일시적으로 옳은

길을 가다가도 낙심하거나 중도에 물러가기 쉽다.

행 13:44,45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유대인들

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 하나님

의 말씀은 언제나 환영만 받는 것이 아니고 반대도 당한다. 이 때에 대중이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원하였으나 유대인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시기하여 비방하였다.

행 13:46,47

여기서는 바울이 이방 전도의 당연함을 두 가지 이유로 말한다. 곧, (1) 유대인들

이 복음 듣기를 거절한 까닭(46절)이라고 하며 (2) 성경적 근거로 보아서 당연한 까닭이라고 한다(47절). 사 49:6 참조.

행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진심으로 주님의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는 기쁨이 있는 법이다. “영생을 주

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이 말씀은 확실히 예정(豫定) 교리를 가르친다. 크로

솨이데(Grosheide)는 말하기를, “영생을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누구에게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이도 하나님이시다. 여기에 예정 교리가 있다.”고 하였다.

(Handelingen 1-4, p.446).

48절에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救援歷史)가 전적으로 은혜로 된다는 것이 알려져 있

다. (1) 유대인에게서 난 구원의 복음이(요 4:22)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이 그 복음을 받은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믿음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면, (2) 그들이 영생을 받기로 예정된 사실이 알려진다.

그들이 영원 전에 구원의 예정에 들게 된 것은 그들의 어떤 선한 행실 때문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이 베푸신 주권적(主權的) 은혜로 된 것이다. 롬 9:11 참조.

그러면,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그가 벌써 구원 받기로 예택(豫擇)된 증표이

다. 그러므로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예택의 거울은 그리스도라”고 하였다. 그 의

미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보면 그가 예택된 사실이 알려진다는 것이다.

행 13: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 이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자체의 자

동적 역사로 퍼지는 것처럼 진술되었다. 사실 이 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올바로

전파되었으니만큼 그것이 자체의 능력을 잘 발휘한 것이다.

행 13:50

이 때에 “유대인들”은 자기들만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할 뿐 아니라 남들을 “선동하

여” 저희의 핍박 행위에 가담하도록 만들었다.

행 13:51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버리고. – “발에 티끌을 떨어버린” 것은

그들이 그 핍박자들의 멸망함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는 뜻이다. 그들은 힘껏 복음을 증

거하였는데 유대인들은 믿지 않고 멸망을 자취한 것 뿐이다(마 10:14; 막 6:11; 눅

9:5).

행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바다하니라. – 여기 말한 “제자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를 듣고 믿은 신자들이니, 비시디아 안디옥 사람들이다(14절). 그들은 핍박 중에서도 기뻐하였다. 그 이유는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만족하였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3장 1-51절 말씀 묵상

사도행전 13:1-51 말씀 묵상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사도행전 13:2‭-‬3).

“While they were worshiping the Lord and fasting, the Holy Spirit said, “Set apart for me Barnabas and Saul for the work to which I have called them.” So after they had fasted and prayed, they placed their hands on them and sent them off.”(Acts 13:2‭-‬3).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 중에는 ‘선지자들과 교사들’ 즉 바나바와 시므온과 루기오와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 그들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안디옥 교회에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명하셨습니다. 즉 성령께서는 안디옥 교회로 하여금 선교사를 파송하도록 명하셨는데, 이는 주를 섬겨 금식할 때 일어난 일입니다(2-3). 이로써 안디옥 교회는 역사상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구브로에서의 사도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이 시작됩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오른테스 강 하구에 있는 안디옥 항구 실루기아 피에리아로 내려가 배를 타고 구브로 섬으로 향했습니다.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었습니다. 구브로의 살라미에 도착하여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섬 전체를 횡단 여행하며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4-5).

바나바와 사울은 바보에서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바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는 서기오 바울이 구브로 총독으로 있을 때 수행원이었는데, 총독이 복음 듣는 것을 방해하다가 바울의 저주를 받아 소경이 되었습니다(6).

바나바와 사울을 부른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한 바울이 한 일을 보고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7).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은 배를 타고 밤빌리아의 버가로 갑니다. 그러나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13).

비시디아 안디옥은 로마의 통상 요충지로 해발 900m나 되는 곳에 있었습니다(14). 그 곳에 도착한 바울 일행은 갈라디아의 여러 도시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관행대로 도착 후 첫 안식일 아침에 그 곳의 회당을 방문하였습니다. 개회 기도와 성경 낭독이 있은 후, 회당장이 이 두 방문객에게 혹시 예배자들에게 권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청했습니다. 바울은 그 부탁에 응했습니다(15).

바울은 이 설교에서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 행하신 권능의 역사를 토대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까지는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인도하였고, 그 후 사무엘 때까지 사사가 다스렸으며, 사무엘 이후에는 백성이 왕을 요구하여 베냐민 지파의 사울이 왕 위에 오르게 됩니다. 이렇게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 백성의 행위는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를 거부한 행위입니다. 결국 사울 왕은 이스라엘 백성이 구하여 선택한 왕이었고, 다윗 왕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 선택된 왕입니다. 또한 사울은 사십 년 후 폐위되었으나, 다윗은 그의 씨에서 구주가 탄생하는 큰 복을 받았습니다(20-22).

당시 많은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은 존경하면서도 그가 증거하는 예수님은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관계를 명확히 밝힘으로써 유대인들의 잘못과 편견을 깨우쳐 주고자 한 것입니다(24).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시고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구약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27-30).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나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38-39). 율법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합니다. 율법은 다만 죄를 깨닫게 하는 몽학 선생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행위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유대인들의 비방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유대인에게 먼저 전하지 못함은 그들이 복음을 거부했기 때문이며, 그래서 자신들이 이방인에게로 향하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 선교의 근거로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는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46-47).

유대인들에게서 쫓겨난 바울과 바나바은 발의 티끌을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습니다(51).

주께서 주신 오늘!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인류의 주인이요,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습니다.

사도행전 13장. 영생 주시기로 작정한 자는 다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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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내용

13장. 영생 주시기로 작정한 자는 다 믿었다. (찬 505)

1. 이제 사도행전의 무대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로, 베드로의 사역에서 바울의 사역으로 그 중심을 옮기게 된다. 그리고 바울 사도의 1차 전도여행이 시작된다. 어떻게 이방인 중에 복음이 확장되게 되었는가? 먼저 안디옥교회의 다섯 지도자의 이름이 소개된다(1). 바나바와 바울을 제외한다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지만 니게르는 그가 흑인임을 짐작하게 하고, 루기오의 고향 구레네는 북아프리카의 도시이며,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형제나 친구) 마나엔 등은 이들의 다양한 배경을 보여준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라는 말은 이 지도자들이 기도와 금식으로 교회를 섬겼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지도자들이 이렇게 섬기는 교회는 얼마나 복된가! 그들이 이렇게 섬길 때 성령님께서는 특정한 일을 위해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우라고 하셨다(2). 지도자들은 다시 금식하고 기도했고 성령님의 지시대로 두 사람을 안수하여 이방인의 전도자로 파송하였다(3).

2. 이렇게 이방인 전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어느 교회의 선교위원회나, 어떤 지도자가 시작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성령의 주도적인 역사였다.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데리고 1차 전도를 시작했다. 구브로 섬의 총독 서기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지만, 이를 방해하는 유대인 마술사요 거짓 선지자인 바예수를 바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책망하자 그의 눈이 멀고 총독은 된 일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겼다(12). 때때로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을 성령께서는 이렇게 무섭게 다르실 때가 있다(10). 그러나 이것은 언제나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통제 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3. 이후 일행이 밤빌리아의 버가에 이르렀을 때 마가 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불명예스러운 일이 일어났다(13).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른 바울과 바나바는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다. 유다의 멸망으로 오랜 세월 제국의 각지로 흩어진 유대인들의 신앙 중심지였던 회당은 내내 바울의 선교사역의 근거지 역할을 했다. 16절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고넬료에게도 붙여졌듯이,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회당에서 전한 바울의 설교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예수님께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역사(16~25),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증거(26~37)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사함과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회개와 믿음의 촉구(38~41)다. 이 설교는 구약 예언을 통해(시 2:7; 사 55:3; 시 16:10)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와 주되심을 증거하며 이신칭의의 복음을 잘 드러낸다.

4.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말씀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42). 많은 사람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고 두 사도가 그들에게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붙어있으라”고 권면한 것으로 보아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믿었던 것 같다(43). 그 다음 안식일에는 소문을 들은 거의 온 시민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는데(44) 이것은 유대인들의 시기심을 자극하여 바울을 반박하고 비방하게 하였고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에게 향하는 정당성을 선언하게 된다(45~46). 이방인들은 이 말을 기뻐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했고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자는 다 믿었고(48) 주의 말씀은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49). 다시 유대인의 선동으로 박해가 시작되자 두 사람은 주님의 말씀대로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고(눅 9:5) 이고니온으로 떠났다. 이 복음의 진리를 받고 주를 따르는 제자들의 마음은 기쁨과 성령으로 충만해졌다(52).

5. 주님의 승천 후 세계 복음화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복음의 사역은 언제나 극렬한 저항에 직면하지만 잘 전해진 말씀은 일정한 사람들에게서 열매를 맺는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는 말씀은 복음 전도를 약화시키기 보다 더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된다(48).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자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반대하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바울은 “너희가 그것을(하나님의 말씀)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라고 말했다(46). 두려운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는 것은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는 일’이다. 본문은 복음 전도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에서 그리스도인을 자유하게 한다. 또 복음 전도의 성공적 결과로부터 이를 수 있는 교만에서 우리를 지켜준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그리스도를 전할 뿐이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성경의 지식에 능하지 않다면 어떻게 복음을 전하겠는가? 성경에 무지한 우리 시대의 교회에 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6. “하나님 아버지, 성령님의 주도적 역사하심으로 복음이 유대인의 경계를 넘어 이방인에게로 확장되었듯이, 오늘날에도 복음이 온 세상 모든 족속과 모든 사회 계층에게로 확장되게 하옵시고, 교회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성경에 계시된 그리스도를 온전히 증거하게 하시며, 주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이 주 예수님을 믿는 복된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주일의 설교] 우리가 꿈꾸는 교회(행 13:1~3)

온 민족이 예배하게 선교해야 합니다

살아있는 예배로 영육이 깨끗하고 성령에 순종하는 교회돼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행 13:2)

사도행전 13장은 사도행전의 새로운 전환점입니다.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를 거쳐 땅 끝까지 뻗어가면서 복음의 센터가 새롭게 등장하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안디옥 교회입니다. 선교적 관점에서 보면 예루살렘 교회 중심의 사역이 안디옥 교회 중심으로 옮겨갑니다. 안디옥 교회는 우리가 꿈꾸는 교회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교회가 벤치마킹해야 할 모델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안디옥 교회를 사용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본격적인 이방선교에 나서지 못하는 내부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할례나 율법준수 등을 고집하는 유대성향이 교회 내부에 강하게 남아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주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선교의 바통은 수리아 안디옥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AD 70년 로마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자취를 감춥니다. 그때부터 이방 선교를 수행한 안디옥 교회가 초대교회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교회가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의 사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내부적 문제에만 관심과 역량을 집중시키려 할 때 교회는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교회의 본질적 사명은 주님의 선교적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 교회가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이방인 가운데 세워진 최초의 교회였습니다(행 11:20~21). 성도들이 이곳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았습니다(행 11:26). 예루살렘과 유대에 사는 교회 형제들이 흉년을 만났을 때, 기꺼이 도움을 주었던 교회입니다. 무엇보다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한 순종하는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모습 속에서 오늘 교회의 꼭 필요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방인의 전초기지로 삼으신 안디옥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1. 성령이 말씀하시는 교회

먼저 1절은 안디옥 교회의 핵심 멤버들을 소개합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행 13:1)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출신 성분도, 인종적인 배경도 달랐습니다. 권면의 은사로 소문난 바나바, 피부색이 검은 시므온, 아프리카 사람 루기오, 왕족인 헤롯왕의 젖동생인 마나엔, 학문과 신앙이 뛰어난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하나 되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교회였습니다. 예수의 오심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인종적, 문화적 장벽을 깨트리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또한 안디옥 교회를 교회되게 만든 것은 ‘예배’였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행 13:2) 여기 “주를 섬긴다”는 말은 예배를 드린다는 겁니다. 새번역 성경에서는 “주를 예배하며 금식하고 있을 때에”라고 했습니다. NIV 성경에는 ‘Worshipping’이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예배를 잘 드리는 교회였습니다. 예배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냥 예배드린 것이 아니라 금식하며 예배를 준비했습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예배에 목숨 걸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더 좋은 예배, 하나님이 만나주시는 예배에 대한 초대교회 성도들의 몸부림이었습니다.

이렇게 안디옥 교회가 금식하면서 집중하여 예배드릴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행 13:2) 즉 성령이 “하나님의 꿈 선교를 위하여 일꾼들을 세우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그렇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사람이 말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교회였습니다. 준비된 예배에는 이런 은혜가 주어집니다. 그래서 역대하 16장 9절을 보면,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예배가 살아나기 시작하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늘 듣던 말씀이 내게 새롭게 확신으로 다가옵니다. 살아있는 예배를 통해 모든 것이 새로워지고 성도의 영육이 깨끗함을 덧입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가 세움을 입어 구원받는 수가 더하므로 부흥합니다. 정말 귀한 것은 예배에 성공하면 사람이 변한다는 겁니다. 예배가 죽으면, 믿음이 죽습니다. 예배가 죽으면, 선교도 죽습니다. 예배가 죽으면, 교회도 죽습니다. 예배 때마다 성령의 음성을 듣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마다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복음에 목숨을 걸고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게 됩니다.

2.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교회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 따라 세우라’는 성령의 요청에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 13:3) 즉 살아있는 예배를 통해 깨달은 은혜를 순종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시 금식하며 기도한 겁니다. 그리고 기도를 끝내고 확신하며, 바나바와 바울을 세워 안수하여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과 바나바를 주축으로 하는 제1차 선교여행입니다(행 13:4~12).

안디옥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금식’과 ‘기도’를 교회운영의 중요한 방식으로 삼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 무엇보다 뜨겁고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시작된 일이라 해도 기도가 충분하지 않으면 장애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대적 사단은 할 수만 있으면 세계복음화를 방해하려고 악을 쓰고 덤벼듭니다. 그러기에 만약 안디옥 교회가 강수를 놓으며 금식하고 기도하지 않았다면 세계선교는 힘들었을 겁니다.

안디옥 교회 성장에 결정적인 요인은 바나바와 바울이 그 교회의 지도자였다는 겁니다. 그들은 초대교회를 대표할만한 최고의 지도자들이 아닙니까? 그와 같은 지도자가 있으면 교회는 당연히 부흥하고 발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안디옥 교회는 그들 스스로 그들의 영적 지도자인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은 안디옥 교회가 그 일을 놓고 논쟁을 한 일이 없다는 겁니다. 그것이 당연한 일인 줄 알았습니다. 보다 중요한 하나님의 교회와 선교를 위하여 가장 소중한 보물을 아낌없이 내어놓았습니다.

결론

사실 교회는 두 가지를 하는 곳입니다. 첫째, 구원받은 자들이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둘째, 예배시간에 받은 은혜와 감동으로 선교하는 곳입니다. 주일예배를 잘 드린 성도라면, 교회 밖에서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도는 세상에 파송된 선교사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여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시간과 은사, 물질을 드려 선교에 헌신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가장 큰 사명은 땅 끝까지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만으로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다 받으셨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 하나님이 이스라엘로부터만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 그들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온 세계가 다 하나님의 것이고 모든 민족이 다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온 세계의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때까지 쉬지 않고 선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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