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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행전 16 장 강해 | [하루 한 장] 사도행전16장_디모데라 하는 제자 28230 투표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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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7. 11 (토) [하루 한 장]“디모데라 하는 제자” (행16장)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사도행전 16장은 바울에게 있어서
아들과 다름없는 제자 디모데를
처음 만나 그를 얻는 장면입니다
그는 루스드라에 사는 믿는 어머니
유니게와 헬라인 아버지 사이에서
나서 다문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우리는 흔히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의 신앙전승만
중요하게 여기고 강조하지만
사실 이 가문에 믿음이 전해진 것은
중요한 별도의 계기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1차 전도여행 당시
루스드라에서 기적을 행했다가
유대인들의 이간질 때문에
억울하게 혼자만 돌에 맞고
죽을 뻔했던 위기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복음을 전했던
복음에 헌신된 삶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복음 사역은 어렵고 외롭고
때론 막막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사람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오늘도 우리 모두 힘을 냅시다.
====================================
* 부산 성민교회 : 부산시 사하구 승학로 201(괴정동).
http://sungminch.com/
성민교회 홈페이지에 오시면 더 많은 성민가족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홍융희 목사의 설교 mp3모음 USB구입은 교회 사무실로 전화 문의 바랍니다.
분홍목사의 사역 신청 문의도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051-204-0691 (담당 : 성민교회 박지선 간사)
*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성경말씀을 깨닫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하루 한 장]과 여러 영상들을 통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확인해 보세요.
http://www.youtube.com/c/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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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분홍목사 홍융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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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사도행전 16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헬라어 사도행전 16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굿윌러 2020. 10. 24.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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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ripol.tistory.com

Date Published: 6/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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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 장 – 문제와 해설]

사도행전 16 장. 1. 전도여행지의 이름이 제일 먼저 더베와 루스드라가 나온다. 1차 여행 때 갔던 곳이지만 순서가 조금 다르다(14:6). 2차 전도 여행을 구상하고 실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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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khong.org

Date Published: 7/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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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장 성경말씀] 바울의 새로운 동역자 디모데(행 16:1-5)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도행전 16장 성경말씀 중에서 바울의 새로운 동역자 디모데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바울이 데베와 루스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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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kh12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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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장. 사람이 아니라 성령님이 주도하신다 – 벧샬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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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schurch.net

Date Published: 9/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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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16-34 주석

계시록 12장에 등장하는 용을 떠올리다면 너무 과장일까요? 이 여종은 당장이라도 구원이 필요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종이 바울과 바울과 함께 있던 전도 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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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epreaching.org

Date Published: 3/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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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주석, 사도행전 16장

16: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 이 지명들은 14:6에도 등장하는데, 그때와는 다르게 지명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 이는 바울이 1차 전도여행때와는 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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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ocr.net

Date Published: 4/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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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헨리주석1033-사도행전 16장 – 네이버 블로그

사도행전 16장. Ⅰ. 바울의 디모데 선택 16:1-5. 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영적인 아들로서 디모데를 선택한 것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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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5/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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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사도행전16장_디모데라 하는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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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사도 행전 16 장 강해

  • Author: 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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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7. 10.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2hjuQylQPPo

헬라어 사도행전 16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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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텐테센 데 카이 에이스 데르벤 카이 에이스 뤼스트란 카이 이두 마데테스 티스 엔 에케이 오노마티 티모데오스 휘오스 귀나이코스 유다이아스 티스테스 파트로스 데 헬레노스

개역개정,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새번역,1 바울은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갔다. 거기에는 디모데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신앙이 돈독한 유대 여자이고, 아버지는 그리스 사람이었다.

우리말성경,1 바울은 더베에 갔다가 루스드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디모데라는 제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유대 사람으로서 믿는 사람이었지만 그 아버지는 그리스 사람이었습니다.

가톨릭성경,1 바오로는 데르베를 거쳐 리스트라에 당도하였다. 그곳에 티모테오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는 신자가 된 유다 여자와 그리스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서,

영어NIV,1 He came to Derbe and then to Lystra, where a disciple named Timothy lived, whose mother was a Jewess and a believer, but whose father was a Greek.

영어NASB,1 And he came also to Derbe and to Lystra. And behold, a certain disciple was there, named Timothy, the son of a Jewish woman who was a believer, but his father was a Greek,

영어MSG,1 Paul came first to Derbe, then Lystra. He found a disciple there by the name of Timothy, son of a devout Jewish mother and Greek father.

영어NRSV,1 Paul went on also to Derbe and to Lystra, where there was a disciple named Timothy, the son of a Jewish woman who was a believer; but his father was a Greek.

헬라어신약Stephanos,1 κατηντησεν δε εις δερβην και λυστραν και ιδου μαθητης τις ην εκει ονοματι τιμοθεος υιος γυναικος τινος ιουδαιας πιστης πατρος δε ελληνος

라틴어Vulgate,1 pervenit autem in Derben et Lystram et ecce discipulus quidam erat ibi nomine Timotheus filius mulieris iudaeae fidelis patre gentili

히브리어Modern,1 ויבא אל דרבי ואל לוסטרא והנה שם תלמיד אחד ושמו טימותיוס והוא בן אשה יהודית מאמנת ואביו יוני׃

성 경: [행16:1]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디모데를 합류시킴]

󰃨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 이 지명들은 14:6에도 등장하는데, 그때와는 다르게 지명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 이는 바울이 1차 전도여행때와는 달리 동쪽으로부터 전도를 하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 바울의 1차 전도여행시 개종한 것으로 알려지는 디모데가 채 1년도 안돼 시행된 2차 전도여행때에 벌써 ‘제자’라고 불리었다는 것은 디모데의 어릴 적 성장배경과(딤후3:15) 그 신앙의 열심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편 고전 4:17에서 디모데는 바울에 의해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이라고 불리운다. 바울이 그와 의기 투합한 다른 이들 모두에게 ‘내 아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걸로 보아,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호칭은 단순히 ‘뜻이 맞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여겨진다(Lenski).

󰃨 그 모친은…헬라인이라 –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인’ 곧 이방인이었다. 이를 볼 때 디모데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유대 신앙에 돈독(敦篤)하지 않았거나(Lenski) 혹은 소아시아 지역이 예루살렘보다 허약한 유대적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Neil). 이렇듯 유대적 전통에 철저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독교 복음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유대인의 법에서는 아이가 어머니의 종교를 따르도록 되어 있는데 디모데가 그때까지 할례조차 받지 않은 것은 유대 전통에 대한 그 어머니의 태도를 명백히 보여준다. 또한 3절의 미완료동사 ‘휘페르켄'(*, ‘그는…였다’)을 볼 때 이방인(헬라인)이었던 디모데의 아버지는 이미 사망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호스 에마르튀레이토 휘포 톤 엔 뤼스트로이스 카이 이코니오 아델폰

개역개정,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새번역,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신도들에게 호평받는 사람이었다. / ㉠그, ‘형제들’

우리말성경,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의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가톨릭성경,2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다.

영어NIV,2 The brothers at Lystra and Iconium spoke well of him.

영어NASB,2 and he was well spoken of by the brethren who were in Lystra and Iconium.

영어MSG,2 Friends in Lystra and Iconium all said what a fine young man he was.

영어NRSV,2 He was well spoken of by the believers in Lystra and Iconium.

헬라어신약Stephanos,2 ος εμαρτυρειτο υπο των εν λυστροις και ικονιω αδελφων

라틴어Vulgate,2 huic testimonium reddebant qui in Lystris erant et Iconii fratres

히브리어Modern,2 ויהי לו שם טוב בין האחים אשר בלוסטרא ובאיקניון׃

성 경: [행16:2]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디모데를 합류시킴]

󰃨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이라는 지명이 함께 거론된 것은, 루스드라와 더베, 이고니온 등이 서로 인접해 있어서(루스드라와 이고니온의 거리는 31km) 상업 등 정기적인 교류가 성행하였기 때문이다.

󰃨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니 – 부모의 이방 결혼이라는 외면적인 악조건 속에서도 좋은 평판을 얻었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이는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있어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1:22;6:3;딤전3:7). 실제로 교회의 지도자를 세울 때에 성도들의 평판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10:22;22:12). 눈에 보이는 부모에게 잘 대접하지 못하는 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어찌 잘 할 수 있겠느냐는 예수의 질타를 연상케 하는 구절이다(마15:4).

투톤 에델레센 호 파울로스 쉰 아우토 엨셀데인 카이 라본 페리에테멘 아우톤 디아 투스 유다이우스 투스 온타스 엔 토이스 토포이스 엨케이노이스 에데이산 가르 하판테스 호티 헬렌 호 파테르 아우투 휘페르켄

개역개정,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새번역,3 바울은 디모데가 자기와 함께 가기를 바랐다. 그래서 바울은 그 지방에 사는 유대 사람들을 생각해서,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였다. 그것은, 디모데의 아버지가 그리스 사람이라는 것을, 그들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3 바울은 전도여행에 그를 데려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에 사는 유대 사람들 때문에 그에게 할례를 주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가 그리스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들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3 바오로는 티모테오와 동행하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에 사는 유다인들을 생각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베풀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을 그들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NIV,3 Paul wanted to take him along on the journey, so he circumcised him because of the Jews who lived in that area, for they all knew that his father was a Greek.

영어NASB,3 Paul wanted this man to go with him; and he took him and circumcised him because of the Jews who were in those parts, for they all knew that his father was a Greek.

영어MSG,3 Paul wanted to recruit him for their mission, but first took him aside and circumcised him so he wouldn’t offend the Jews who lived in those parts. They all knew that his father was Greek.

영어NRSV,3 Paul wanted Timothy to accompany him; and he took him and had him circumcised because of the Jews who were in those places, for they all knew that his father was a Greek.

헬라어신약Stephanos,3 τουτον ηθελησεν ο παυλος συν αυτω εξελθειν και λαβων περιετεμεν αυτον δια τους ιουδαιους τους οντας εν τοις τοποις εκεινοις ηδεισαν γαρ απαντες τον πατερα αυτου οτι ελλην υπηρχεν

라틴어Vulgate,3 hunc voluit Paulus secum proficisci et adsumens circumcidit eum propter Iudaeos qui erant in illis locis sciebant enim omnes quod pater eius gentilis esset

히브리어Modern,3 בו בחר פולוס אשר יצא אתו ויקח וימל אתו בעבור היהודים אשר במקמות ההם כי כלם ידעו את אביו כי יוני הוא׃

성 경: [행16:3]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디모데를 합류시킴]

󰃨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 바울은 디모데를 그의 복음 사역에 있어 동료이자 조력자(助力者)로 삼고 싶어하였다. 즉, 바울은 1차 전도여행때 요한 마가가 담당했던 역할을 이제 디모데에게 담당시키고자 하는 것이다(13:5). 디모데는 이때부터 바울의 영원한 동반자가 되었다. 디모데라는 이름은 바울이라는 이름과 함께 고린두후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빌레몬서, 디모데전.후서 등의 서두에서 등장한다. 이때 디모데의 나이를 15세 혹은 18세로 추측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바울의 1,2차 전도여행의 간격이 채 1년도 안되었던 걸로 보아 이보다 많은 21세쯤으로 추청된다(Lenski).

󰃨 유대인을 인하여…할례를 행하니 – 예루살렘에서 디도에게 할례를 받지 못하도록 한 것과(갈2:3) 달리, 바울이 여기에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도록 했다 하여 문제삼는 자들이 있다. 고전 7:17-20을 쓴 바울이 이러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고(Haenchen) 그래서 이 부분이 나중에 편집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을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애썼던 것뿐이지, 무조건적으로 유대인의 전통을 모욕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고전9:20)라는 말씀은 바울의 이러한 선교적(宣敎的) 전략을 잘 대변한다. 바울은 그 자신이나 실라처럼 디모데도, 모든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이라고 비난받지 않고 순조롭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자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더구나 양친이 모두 이방인이었던 디도가 할례를 받지 않은 것은, 부친만이 이방인이었던 디모데의 경우와 다르다.

󰃨 이는…다 앎이러라 – 그 근처에 사는 유대인들은 디모데의 아버지가 헬라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그 양친의 혼합 결혼은 그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을 것이며 또한 여전히 그들의 비난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호스 데 디에포류온토 타스 폴레이스 파레디도산 아우토이스 퓔라쎄인 타 도그마타 타 케크리메나 휘포 톤 아포스톨론 카이 프레스뷔테론 톤 엔 히에로솔뤼모이스

개역개정,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새번역,4 바울 일행은 여러 도시를 두루 다니면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정한 규정들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어서 지키게 하였다.

우리말성경,4 그들은 여러 도시들을 다니며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장로들이 결정한 규정을 신자들에게 전하며 지키게 했습니다.

가톨릭성경,4 바오로 일행은 여러 고을을 두루 다니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이 정한 규정들을 신자들에게 전해 주며 지키게 하였다.

영어NIV,4 As they traveled from town to town, they delivered the decisions reached by the apostles and elders in Jerusalem for the people to obey.

영어NASB,4 Now while they were passing through the cities, they were delivering the decrees, which had been decided upon by the apostles and elders who were in Jerusalem, for them to observe.

영어MSG,4 As they traveled from town to town, they presented the simple guidelines the Jerusalem apostles and leaders had come up with.

영어NRSV,4 As they went from town to town, they delivered to them for observance the decisions that had been reached by the apostles and elders who were in Jerusalem.

헬라어신약Stephanos,4 ως δε διεπορευοντο τας πολεις παρεδιδουν αυτοις φυλασσειν τα δογματα τα κεκριμενα υπο των αποστολων και των πρεσβυτερων των εν ιερουσαλημ

라틴어Vulgate,4 cum autem pertransirent civitates tradebant eis custodire dogmata quae erant decreta ab apostolis et senioribus qui essent Hierosolymis

히브리어Modern,4 ויהי בעברם בערים וימסרו להם לשמר את הפקודים אשר גזרו השליחים והזקנים אשר בירושלים׃

성 경: [행16:4]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디모데를 합류시킴]

󰃨 여러 성으로 다녀갈 때에 – 1차 전도여행시 복음을 증거했던 곳 즉,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의 안디옥 등을 가리킨다.

󰃨 예루살렘에…지키게 하니 – 규례(the decisions)는 예루살렘 1차 총회에서 ‘결의된 내용'(15장)을 가리킨다. 할례 문제를 발단으로 하여 개최된 이 총회는 율법 엄수를 주장하는 자들의 폐쇄적인 태도를 멀리하고, 이방인들을 한 형제로 영접한다는 내용을 결정하여 안디옥과 수리아, 길리기아 등에(15:23) 전했다. 그러므로 남북 갈라디아 지역 교회들은 아직 그 ‘결의안’내용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작정한’의 헬라어 ‘타케크리메나'(*)는 야고보가 15:19에서 결의안을 표결에 부칠 때 사용한 ‘크리노'(*, ‘판단하다’)의 완료수동태형에 관사가 붙은 분사이다(reached, NIV, RSV;decided, LB;ordained, KJV). 개역성경의 ‘작정한 규례’는 이러한 원문의 의미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다소 불분명한 번역이다. 한편 ‘규례'(*, 도그마타)는 토의를 위해 모인 모임에서 결정된 것을 말할 때 사용되며, 이 단어의 동사와 여격은 항상 ‘결정되었다’의 뜻으로 사용되지 ‘명령한다’의 뜻이 아니다(Lenski).

하이 멘 운 엨클레시아이 에스테레운토 테 피스테이 카이 에페리쓔온 토 아리드모 칻 헤메란

개역개정,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새번역,5 교회들은, 그 믿음이 점점 더 튼튼해지고, 그 수가 나날이 늘어갔다.

우리말성경,5 이렇게 해서 교회들은 믿음 안에서 더욱 굳건해지고 그 수가 날마다 늘어났습니다.

가톨릭성경,5 그리하여 그곳 교회들은 믿음이 굳건해지고 신자들의 수도 나날이 늘어 갔다.

영어NIV,5 So the churches were strengthened in the faith and grew daily in numbers.

영어NASB,5 So the churches were being strengthened in the faith, and were increasing in number daily.

영어MSG,5 That turned out to be most helpful. Day after day the congregations became stronger in faith and larger in size.

영어NRSV,5 So the churches were strengthened in the faith and increased in numbers daily.

헬라어신약Stephanos,5 αι μεν ουν εκκλησιαι εστερεουντο τη πιστει και επερισσευον τω αριθμω καθ ημεραν

라틴어Vulgate,5 et ecclesiae quidem confirmabantur fide et abundabant numero cotidie

히브리어Modern,5 ותתחזקנה הקהלות באמונה וירב מספרן יום יום׃

성 경: [행16:5]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디모데를 합류시킴]

󰃨 이에 여러 교회가…날마다 더하니라 – 본절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는 ‘멘 운’ (*)은 누가가 즐겨 사용하는 용어로서, 4절에 대한 ‘결과’를 나타낸다. 즉, 여기서는 바울의 적극적인 증거, 교육사역과 예루살렘 결정 사항에 대한 긍정적인 응답의 결과로, 교회가 굳건하게 자라났음을 강조하고 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그리스도인 사이에 고대 율법의 문제가 효과적으로 해결되자 새로운 이방인들이 교회에 더 많이 들어오게 되었을 것이다. 한편 본절은 그때 그때마다 전후 문맥의 클라이막스를 이루고 있는 6:7;9:22; 12:24;19:20;28:31과 비교된다. 그리고 브루스(Bruce)는 본절을 누가의 이야기 중에 가장 중대한 결론(結論)이라고 말한다.

디엘돈 데 텐 프뤼기안 카이 갈라티켄 코란 콜뤼덴테스 휘포 투 하기우 프뉴마토스 랄레사이 톤 로곤 엔 테 아시아

개역개정,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새번역,6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성령이 막으시므로, 그들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거쳐가서,

우리말성경,6 성령께서 아시아 지방에 말씀 전하는 것을 막으셨기 때문에 바울과 그 일행은 부르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거쳐

가톨릭성경,6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그들은 프리기아와 갈라티아 지방을 가로질러 갔다.

영어NIV,6 Paul and his companions traveled throughout the region of Phrygia and Galatia, having been kept by the Holy Spirit from preaching the word in the province of Asia.

영어NASB,6 And they passed through the Phrygian and Galatian region, having been forbidden by the Holy Spirit to speak the word in Asia;

영어MSG,6 They went to Phrygia, and then on through the region of Galatia. Their plan was to turn west into Asia province, but the Holy Spirit blocked that route.

영어NRSV,6 They went through the region of Phrygia and Galatia, having been forbidden by the Holy Spirit to speak the word in Asia.

헬라어신약Stephanos,6 διελθοντες δε την φρυγιαν και την γαλατικην χωραν κωλυθεντες υπο του αγιου πνευματος λαλησαι τον λογον εν τη ασια

라틴어Vulgate,6 transeuntes autem Frygiam et Galatiae regionem vetati sunt a Sancto Spiritu loqui verbum in Asia

히브리어Modern,6 ויעברו בפרוגיא ובארץ גלטיא כי מנעם רוח הקדש מהשמיע את הדבר באסיא׃

성 경: [행16:6]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바울이 본 환상]

󰃨 성령이…못하게 하거늘 – 성령이 어떠한 방법으로 누구에게 뜻을 전했는지 언급되어 있지 않다. 누가의 관심은 그 사실 ‘자체’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환상을 보거나 꿈을 꾸었을 수도 있고(9절;23:11) 주변 환경(環境)의 영향때문에(예를들면 유대인의 반대) 계획을 변경했을 수도 있다(Neil).

󰃨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 – 이 지역에 대한 해석은 나중에 바울이 보낸 ‘갈라디아서’가 북갈라디아에 보내진 것인지의(남갈라디아설) 문제를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가 되기 때문에 아주 논란이 많은 구절이다. (1)이 구절은 헬라 문법상으로 살펴볼 때 ‘한 지역’을 의미한다는 주장이 있다. 즉 본문 ‘텐 프뤼기안 카이 갈라티겐 코란’ (*)중에서 ‘프뤼기안’과 ‘갈라티켄’을 형용사로 취급, 이들이 모두 ‘코란’에 걸린다는 것이다. 프뤼기안과 갈라티켄이 ‘카이'(‘그리고’)로 연결되어 있고 관사가 처음 낱말 앞에만 있는 걸로 보아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E.D.Burton). 남갈라디아설의 측면이 강한 이러한 주장은 행정구역상 갈라디아 주 전체가 아니라 갈라디아의 브루기아 지방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든지 일반적으로 브루기아 방언과 켈트 방언을 모두 들을 수 있는 로마의 갈라디아주 남쪽 내륙의 브루기아 지방에 인접한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이 켈트족이 거주하였던 갈라디아 지역에 들어갔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 않다. (2)이 구절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두 지역을 나타낸다는 주장도 있다(Lake, Haenchen). 바울 일행이 페시누스, 앙키라, 다비움에 이르는 북갈라디아 전역을 휩쓸면서 교회를 세웠으리라고 보며 그래서 나중에 그곳에 ‘갈라디아서’를 써 보내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지리학상으로 치명적인 결점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만일 그렇다면 누가가 그 광범위한 사역을 ‘디엘돈'(*, ‘그들이 다녀가다’)이라는 한 마디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누가의 서술만으로는 바울의 행적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울 듯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울 일행이 아시아의 본래 선교 목적지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갔다는 것이며 또한 그 여행이 아시아의 동쪽 경계선으로부터 소아시아의 북서쪽에 위치한 무시아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Marshall). 한편 본문에 이어 계속 언급되는 바, 소아시아로부터 드로아에 이르는 전도 여행 경로를 지도로 표시해 보면 아래와 같다.

엘돈테스 데 카타 텐 뮈시안 에페이라존 에이스 텐 비뒤니안 포류데나이 카이 우크 에이아센 아우투스 토 프뉴마 예수

개역개정,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새번역,7 무시아 가까이 이르러서, 비두니아로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예수의 영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우리말성경,7 무시아 지방 가까이 이르러 비두니아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가톨릭성경,7 그리고 미시아에 이르러 비티니아로 가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영어NIV,7 When they came to the border of Mysia, they tried to enter Bithynia, but the Spirit of Jesus would not allow them to.

영어NASB,7 and when they had come to Mysia, they were trying to go into Bithynia, and the Spirit of Jesus did not permit them;

영어MSG,7 So they went to Mysia and tried to go north to Bithynia, but the Spirit of Jesus wouldn’t let them go there either.

영어NRSV,7 When they had come opposite Mysia, they attempted to go into Bithynia, but the Spirit of Jesus did not allow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7 ελθοντες κατα την μυσιαν επειραζον κατα την βιθυνιαν πορευεσθαι και ουκ ειασεν αυτους το πνευμα

라틴어Vulgate,7 cum venissent autem in Mysiam temptabant ire Bithyniam et non permisit eos Spiritus Iesu

히브리어Modern,7 וכבאם אל מוסיא הואילו ללכת אל ביתוניא ולא הניח להם הרוח׃

성 경: [행16:7]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바울이 본 환상]

󰃨 무시아 앞에 이르러 – 무시아는 소아시아 서북부 지방으로 프로폰트(Propontis)해와 헬레스폰트(Hellespont) 해협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성경을 통해 보면 바울이 이곳에서 활동했다는 기록은 없는데 전승에 따르면 오네시보로(Onesiphorus)에 의해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 비두니아 – 소아시아의 북서부 지방. 흑해와 마르마라(Marmara)해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 6-10절을 통해 ‘성령’으로부터 ‘예수의 영’을 거쳐 ‘하나님’으로 용어가 조금씩 변화해 가고 있는 것은 단순한 표현방식의 변화라기보다는 초대교회의 원초적인 삼위일체(三位一體) 신앙이 무의식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성령을 통해 어떻게 복음의 진로를 안내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파렐돈테스 데 텐 뮈시안 카테베산 에이스 트로아다

개역개정,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새번역,8 그래서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서 드로아에 이르렀다.

우리말성경,8 그래서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가게 됐습니다.

가톨릭성경,8 그리하여 미시아를 지나 트로아스로 내려갔다.

영어NIV,8 So they passed by Mysia and went down to Troas.

영어NASB,8 and passing by Mysia, they came down to Troas.

영어MSG,8 Proceeding on through Mysia, they went down to the seaport Troas.

영어NRSV,8 so, passing by Mysia, they went down to Troas.

헬라어신약Stephanos,8 παρελθοντες δε την μυσιαν κατεβησαν εις τρωαδα

라틴어Vulgate,8 cum autem pertransissent Mysiam descenderunt Troadem

히브리어Modern,8 ויחלפו ממוסיא וירדו אל טרואס׃

성 경: [행16:8]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바울이 본 환상]

󰃨 무시아를 지나 – 무시아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드로아를 갈 수 없는데도 누가가 ‘디엘돈테스'(*, ‘통과했다’) 대신 ‘파렐돈테스'(*, ‘지나쳐 갔다’)라는 분사를 사용했다는 사실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가는 이러한 용어 선택을 통해 무시아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타내고자 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분사를 through(통하여)로 번역한 LB는 누가의 의도를 다소 무시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 드로아 – 에게해 연안에 있는 항구(港口)로서, 소아시아와 마게도니아를 잇는 배가 출입하던 곳이다.

카이 호라마 디아 테스 뉰토스 토 파울로 오프데 아네르 마케돈 티스 엔 헤스토스 카이 파라칼론 아우톤 카이 레곤 디아바스 에이스 마케도니안 보에데손 헤민

개역개정,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새번역,9 여기서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나타났는데,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우리말성경,9 한밤중에 바울은 마케도니아 사람이 서서 “마케도니아로 와서 우리를 도와주시오”라고 간청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가톨릭성경,9 그런데 어느 날 밤 바오로가 환시를 보았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오로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는 것이었다.

영어NIV,9 During the night Paul had a vision of a man of Macedonia standing and begging him, “Come over to Macedonia and help us.”

영어NASB,9 And a vision appeared to Paul in the night: a certain man of Macedonia was standing and appealing to him, and saying, “Come over to Macedonia and help us.”

영어MSG,9 That night Paul had a dream: A Macedonian stood on the far shore and called across the sea, “Come over to Macedonia and help us!”

영어NRSV,9 During the night Paul had a vision: there stood a man of Macedonia pleading with him and saying, “Come over to Macedonia and help us.”

헬라어신약Stephanos,9 και οραμα δια της νυκτος ωφθη τω παυλω ανηρ τις ην μακεδων εστως παρακαλων αυτον και λεγων διαβας εις μακεδονιαν βοηθησον ημιν

라틴어Vulgate,9 et visio per noctem Paulo ostensa est vir macedo quidam erat stans et deprecans eum et dicens transiens in Macedoniam adiuva nos

히브리어Modern,9 וחזון נראה אל פולוס בלילה והנה איש מוקדון נצב והוא מבקש ממנו לאמר עבר אל מקדוניא ועזרנו׃

성 경: [행16:9]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바울이 본 환상]

󰃨 밤에 환상이…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 꿈과 환상은 고대에 있어 하나님의 계시의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9:10,12;10:3,17;18:9;22:17). 이는 밤이든 낮이든(10:11) 상관없이 사용되었다. 여기에서는 밤중의 ‘어느 때’를 뜻하는 ‘디아 뉴토스'(*)가 사용된 걸로 보아 아마도 바울이 잠들었을 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나치게 ‘말씀’ 계시만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환상의 ‘시각적’요소를 배제하려는 자들도 있었다(Michaelis). 그러나 여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호라마'(*, ‘환상’)나, ‘오프데나이'(*, ‘나타나다’), ‘이데인'(*, ‘보다’)등의 단어는 이 환상의 시각적 명료함을 잘 보여준다(Haenchen). 결국 환상은 단순한 상상이나 추리에 의한 것이 아니고, 시각적인 것을 동반한 초자연적인 현상이었다. 한편 어떤 이들은 드로아에서 바울에게 도움을 구했던 마게도냐인이 바로 누가였다고 주장한다. 이는 누가가 마게도냐인 즉, 빌립보 출신이라는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 대화하는 가운데 이미 누가가 바울에게 마게도냐에 복음이 필요함을 깨닫게 하였을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이 만남이 환상 가운데 이용하셔서 바울 일행을 마게도냐로 가게 하셨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혹자는 드로아에서 바울이 실제로 마게도냐인들의 방문을 받은 바 있고, 이것이 심층 심리 속에서 작용하여 꿈으로 나타났으리라 추측하기도 한다(H.Marshall). 어쨌든 이 환상이 하나님이 보내신 초자연적인 환상임에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각양의 짐승들을 보이신 것처럼 바울에게도 환상 가운데서 마게도냐 사람을 보이신 것이다(Lenski). 그리고 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계시가 그 담지자에게 명확히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호스 데 토 호라마 에이덴 유데오스 에제테사멘 엨셀데인 에이스 마케도니안 쉼비바존테스 호티 프로스케클레타이 헤마스 호 데오스 유앙겔리사스다이 아우투스

개역개정,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새번역,10 그 환상을 바울이 본 뒤에,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건너가려고 하였다. 우리는,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부르셨다고 확신하고 즉시 마케도니아로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가톨릭성경,10 바오로가 그 환시를 보고 난 뒤,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떠날 방도를 찾았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영어NIV,10 After Paul had seen the vision, we got ready at once to leave for Macedonia, concluding that God had called us to preach the gospel to them.

영어NASB,10 And when he had seen the vision, immediately we sought to go into Macedonia, concluding that God had called us to preach the gospel to them.

영어MSG,10 The dream gave Paul his map. We went to work at once getting things ready to cross over to Macedonia. All the pieces had come together. We knew now for sure that God had called us to preach the good news to the Europeans.

영어NRSV,10 When he had seen the vision, we immediately tried to cross over to Macedonia, being convinced that God had called us to proclaim the good news to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10 ως δε το οραμα ειδεν ευθεως εζητησαμεν εξελθειν εις την μακεδονιαν συμβιβαζοντες οτι προσκεκληται ημας ο κυριος ευαγγελισασθαι αυτους

라틴어Vulgate,10 ut autem visum vidit statim quaesivimus proficisci in Macedoniam certi facti quia vocasset nos Deus evangelizare eis

히브리어Modern,10 וכראתו את המחזה מיד בקשנו ללכת אל מקדוניא בהביננו כי האלהים קראנו שמה לבשר אתם הבשורה׃

성 경: [행16:10]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바울이 본 환상]

󰃨 우리가 – 본서에서 ‘우리’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 드로아에서이다(10-17절). 이 ‘우리’라는 형식과 관련하여, 바울 일행이 빌립보로 갈 때에 동행한 빌립보 주민이 있었다는 점과 그 사람이 누가였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이 ‘우리’라는 표현이 빌립보에서의 사역에 관한 기사(11-40절) 이후에는 멈추어져 있다. (2)두번째 ‘우리’라는 부분(20:5-15)이 전도자들의 3차 전도여행 중, 빌립보를 재방문할 때 시작되어 있다. (3)본장에서 빌립보에서의 사역이 매우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한편 본문과 관련하여, 바울이 드로아에서 의사 누가와 상면하게 되었다고 추론하는 학자들이 많다(Ramsay, schlatter, Wei ). 그러나 이 주장은 근거없는 억측일 따름이다.

󰃨 곧 – 여기서는 다음날 아침을 뜻한다. 하나님 앞에서 바울의 순종하는 모습이 돋보이는 단어이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지녀야 할 으뜸가는 태도는 ‘순종’이다(삼상15:22;히5:9;11:8;13:17).

󰃨 인정함이러라 – 이의 헬라어 ‘쉼비바조'(*)는 원래 ‘결합시키다’는 뜻으로 9:22에서는 ‘증명하다’의 뜻으로 사용되었으며 여기서는 ‘결론내리다'(assuredly gathering, KJV;conclude, NIV, RSV)는 정도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아나크덴테스 데 아포 트로아도스 유뒤드로메사멘 에이스 사모드라켄 테 데 에피우세 에이스 네안 폴린

개역개정,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새번역,11 우리는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서,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갔고,

우리말성경,11 우리는 드로아에서 바다로 나와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로 곧장 갔다가 이튿날 네압볼리로 갔습니다.

가톨릭성경,11 우리는 배를 타고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트라케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폴리스로 갔다.

영어NIV,11 From Troas we put out to sea and sailed straight for Samothrace, and the next day on to Neapolis.

영어NASB,11 Therefore putting out to sea from Troas, we ran a straight course to Samothrace, and on the day following to Neapolis;

영어MSG,11 Putting out from the harbor at Troas, we made a straight run for Samothrace. The next day we tied up at New City

영어NRSV,11 We set sail from Troas and took a straight course to Samothrace, the following day to Neapolis,

헬라어신약Stephanos,11 αναχθεντες ουν απο της τρωαδος ευθυδρομησαμεν εις σαμοθρακην τη τε επιουση εις νεαπολιν

라틴어Vulgate,11 navigantes autem a Troade recto cursu venimus Samothraciam et sequenti die Neapolim

히브리어Modern,11 ונצא מן טרואס ונרד באניה ונבא דרך ישרה אל סמותרקיא וממחרת אל נפוליס׃

성 경: [행16:11]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루디아의 개종]

󰃨 사모드라게 – 드로아와 빌립보 사이, 에게해 북동쪽에 있는 섬이다. ‘물과 지진과 말(馬)’의 신인 포세이돈이 산으로 형성된 이 섬에서 고대 트로이 평야를 측량했다고 해서 포세이돈 섬이라고도 불리었다. 이 섬은 북에게해를 항해하는 선박들의 기항지(寄港地)가 되었는데, 추측컨대 바울 일행도 여기서 닻을 내렸을 것이다(Neil).

󰃨 직행하여 – 의사였던 누가는 의학 용어에 익숙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항해 술어도 정확하게 기록했다. ‘유뒤드로메오'(*)는 순풍을 받아 우와좌왕하지 않고 곧장 항해하였다는 것을 잘 드러내 주는 용어이다(Lenski). 당시의 화물선이나 여객선의 경우 바람을 잘 만나 순조롭게 항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육지나 바다의 바람과 해류를 잘 이용해야 했으며, 때로는 우회하는 항해도 감수해야 했다(18:21,22).

󰃨 네압볼리 – 사모드라게로부터 16km 내륙에 위치한 상업 중심지 빌립보의 외항으로, 아드리아해와 에게해를 연결하는 로마의 도로 ‘이그나티우스 대로'(the great Egnat- ian way)의 동부 지역 종착 지점이었다. 한편 여기서는 저자가 함께 배에 타고 있었기 때문에 거쳐간 항구이름과 소요(所要) 기간 등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이는 ‘우리’ 문장으로 기록된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이다(20:5,13-15;21:1-8;27:1-28).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빌립보에서 돌아올 때 닷새가 소요되었던 것(20:6)과 비교해 볼 때, 네압볼리까지 250km를 항해하는데 이틀밖에 걸리지 않은 것은 그 순풍의 정도를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카케이덴 에이스 필맆푸스 헤티스 에스틴 프로테 메리도스 테스 마케도니아스 폴리스 콜로니아 에멘 데 엔 타우테 테 폴레이 디아트리본테스 헤메라스 티나스

개역개정,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새번역,12 거기에서 빌립보에 이르렀다. 빌립보는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으뜸가는 도시요, 로마 식민지였다. 우리는 이 도시에서 며칠 동안 묵었는데, / ㉡또는 ‘첫째 도시’

우리말성경,12 그곳에서 우리는 로마의 식민지로서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첫째가는 도시인 빌립보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며칠을 머물렀습니다.

가톨릭성경,12 거기에서 또 필리피로 갔는데, 그곳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첫째가는 도시로 로마 식민시였다. 우리는 그 도시에서 며칠을 보냈는데,

영어NIV,12 From there we traveled to Philippi, a Roman colony and the leading city of that district of Macedonia. And we stayed there several days.

영어NASB,12 and from there to Philippi, which is a leading city of the district of Macedonia, a Roman colony; and we were staying in this city for some days.

영어MSG,12 and walked from there to Philippi, the main city in that part of Macedonia and, even more importantly, a Roman colony. We lingered there several days.

영어NRSV,12 and from there to Philippi, which is a leading city of the district of Macedonia and a Roman colony. We remained in this city for some days.

헬라어신약Stephanos,12 εκειθεν τε εις φιλιππους ητις εστιν πρωτη της μεριδος της μακεδονιας πολις κολωνια ημεν δε εν ταυτη τη πολει διατριβοντες ημερας τινας

라틴어Vulgate,12 et inde Philippis quae est prima partis Macedoniae civitas colonia eramus autem in hac urbe diebus aliquot conferentes

히브리어Modern,12 ומשם אל פילפי ראשית ערי הפלך של מקדוניא והיא בת חורין ונשב בעיר הזאת ימים אחדים׃

성 경: [행16:12]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루디아의 개종]

󰃨 빌립보에 이르니 – B.C.360년경 마게도냐의 필립 2세에 의해 이름이 크레니데스(‘샘’이라는 뜻)에서 빌립보로 바뀌었다. 이곳은 줄리어스 시이저를 살해했던 부루투스와 캐시우스가 B.C.42년 안토니아 옥타비안(나중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됨)에 의해 패퇴(敗退)당한 장소로 유명하다. 이 지역은 바로 그때 이후 승리의 기념으로 로마의 식민지로 지정되어 황제에게 직접 배속됨으로써 주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를 누렸으며 공물과 세금을 면제받기도 하였다. 또 이탈리아 도시의 시민들이 누렸던 것과 동일한 권리를 누렸다. 이곳은 바다와 육지 양쪽 통로상의 전략적인 위치에 있어서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특히 금광과 비옥한 평야로 유명하였다. 이밖에도 이곳에는 유명한 의학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었다. 마게도냐 지경 첫성 – 누가가 빌립보를 이렇게 표현한 사실에 대해 논란이 제기되곤 한다. 이에 대해서는 사본들 역시 차이를 보여 정확한 해석을 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시내 사본(Codex Sinaiticus).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 nus),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 등 대다수의 본문에 따르면 ‘프로테 메리도스 테스 마케도니아스 폴리스'(*, ‘마케도냐 지경의 첫성’)라고 되어 있으나, 실제 첫째가는 도시라 할만한 곳은 빌립보가 아니라 오히려 B.C.167-146년 사이에는 암비볼리였고 그 후에는 그 주의 수도 데살로니가였다. 그런하면 어떤 사본들에 ‘프로테'(*, ‘첫째’)대신 ‘프로테스'(*, ‘제1의’)로 되어 있어 빌립보가 ‘마게도냐 제1지구의 도시’였음을 가리켜 주고 있다. 즉, B.C.146년 전지역이 마게도냐주(州)로 개편되기 전 B.C.167년에 마게도냐가 로마인들에 의해 4개 행정규역으로 나누어졌는데, 그 중에서 제1지역의 도시였다는 말이다. 그런가하면 베자 사본(D)은 ‘ ‘(프로테)를 ‘케팔레'( ‘우두머리’, ‘수도’)로 이해하여 주(州) 수도로서의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이때의 수도가 실제로는 암비볼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쟈안(Zahn)은 여러나라들이 하나 이상의 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어 이 사본을 옹호한다. 그러나 ‘프로테’가 도시의 경칭(敬稱)으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빌립보와 같은 로마 식민지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았다(Haenchen)이러한 해석상의 여러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은 ‘마게도냐 지구의 첫째가는 도시’로 해석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the chief city of that part of Macedonia, KJV;the leading city of that district of Macedonia, NIV, RSV). 왜냐하면 행정상의 고려 외에 누가가 이 도시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테 테 헤메라 톤 삽바톤 엨셀도멘 엨소 테스 퓔레스 파라 포타몬 후 에노미조멘 프로슈켄 에이나이 카이 카디산테스 엘랄루멘 타이스 쉬넬두사이스 귀나잌신

개역개정,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새번역,13 안식일에 성문 밖 강가로 나가서, 유대 사람이 기도하는 처소가 있음직한 곳을 찾아갔다. 우리는 거기에 앉아서, 모여든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우리말성경,13 안식일에 우리는 혹 기도할 곳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성문 밖 강가로 나갔습니다. 우리는 그곳에 앉아서 거기 모여 있던 여인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가톨릭성경,13 안식일에는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영어NIV,13 On the Sabbath we went outside the city gate to the river, where we expected to find a place of prayer. We sat down and began to speak to the women who had gathered there.

영어NASB,13 And on the Sabbath day we went outside the gate to a riverside, where we were supposing that there would be a place of prayer; and we sat down and began speaking to the women who had assembled.

영어MSG,13 On the Sabbath, we left the city and went down along the river where we had heard there was to be a prayer meeting. We took our place with the women who had gathered there and talked with them.

영어NRSV,13 On the sabbath day we went outside the gate by the river, where we supposed there was a place of prayer; and we sat down and spoke to the women who had gathered there.

헬라어신약Stephanos,13 τη τε ημερα των σαββατων εξηλθομεν εξω της πολεως παρα ποταμον ου ενομιζετο προσευχη ειναι και καθισαντες ελαλουμεν ταις συνελθουσαις γυναιξιν

라틴어Vulgate,13 die autem sabbatorum egressi sumus foras portam iuxta flumen ubi videbatur oratio esse et sedentes loquebamur mulieribus quae convenerant

히브리어Modern,13 וביום השבת יצאנו אל מחוץ לעיר אל יד הנהר אשר שם מקום תפלה כמנהגם ונשב ונדבר אל הנשים הנקהלות שמה׃

성 경: [행16:13]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루디아의 개종]

󰃨 안식일에 – 새로운 도시를 방문할 때 도착한 후 첫 안식일에 지역 회당을 방문하여 가급적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바울의 일반적 관례(慣例)였다(13:5;14:1, F.F.Bruce).

󰃨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프로슈케'(*, ‘기도처’)는 거의 항상 ‘쉬나고게'(*, ‘회당’)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여기의 ‘기도처’가 실제 회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Schurer). 그러나 본절, 16절의 ‘기도처’는 회당이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여자들만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고 또 본서의 다른 곳에서 ‘회당’이라는 구체적 명칭이 자주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17:1,10,17). 유대인의 법에 따르면 하나의 회당에는 최소한 10명의 남자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여자들만 언급되는 점으로 보아 이곳의 ‘기도처’는 여자들이 관습적으로 모여 기도하던 곳으로 추측된다(MaRSHALL). 한편 이러한 기도처의 장소로는 주로 강변, 바다 근처 등이 선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는 유대의 정화 의식에 필요한 물을 구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견해도 있다(Marshall).

󰃨 문 밖 강가에 나가 – 여기서 ‘강가’는 갱가이트강(the Gangites) 아니면 크레니트(the Crenides) 강변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 여자들에게 – 남자가 한 사람도 참석하지 못한 이유 중에 하나는, 글라우디오(Cla- udius)가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할 때 그 식민지 도시인 빌립보도 그러한 전범을 따랐기 때문일 것이다(Lenski).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작은 모임도 무시하지 않았다. 말씀을 선포하는 자가 단순히 청중들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최선을 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다(마18:20).

카이 티스 귀네 오노마티 뤼디아 포르퓌로폴리스 폴레오스 뒤아테이론 세보메네 톤 데온 에쿠엔 헤스 호 퀴리오스 디에노잌센 텐 카르디안 프로세케인 토이스 랄루메노이스 휘포 투 파울루

개역개정,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새번역,14 그들 가운데 루디아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 옷감 장수로서, 두아디라 출신이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주님께서 그 여자의 마음을 여셨으므로, 그는 바울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우리말성경,14 말씀을 듣던 사람들 가운데 루디아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두아디라 도시에서 온 자주색 옷감 장수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에 귀 기울이게 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14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영어NIV,14 One of those listening was a woman named Lydia, a dealer in purple cloth from the city of Thyatira, who was a worshiper of God. The Lord opened her heart to respond to Paul’s message.

영어NASB,14 A woman named Lydia, from the city of Thyatira, a seller of purple fabrics, a worshiper of God, was listening; and the Lord opened her heart to respond to the things spoken by Paul.

영어MSG,14 One woman, Lydia, was from Thyatira and a dealer in expensive textiles, known to be a God-fearing woman. As she listened with intensity to what was being said, the Master gave her a trusting heart–and she believed!

영어NRSV,14 A certain woman named Lydia, a worshiper of God, was listening to us; she was from the city of Thyatira and a dealer in purple cloth. The Lord opened her heart to listen eagerly to what was said by Paul.

헬라어신약Stephanos,14 και τις γυνη ονοματι λυδια πορφυροπωλις πολεως θυατειρων σεβομενη τον θεον ηκουεν ης ο κυριος διηνοιξεν την καρδιαν προσεχειν τοις λαλουμενοις υπο του παυλου

라틴어Vulgate,14 et quaedam mulier nomine Lydia purpuraria civitatis Thyatirenorum colens Deum audivit cuius Dominus aperuit cor intendere his quae dicebantur a Paulo

히브리어Modern,14 ואשה יראת אליהם ושמה לודיא מכרת ארגמן מעיר תיאטירא שמעה ויפתח יהוה את לבה להקשיב אל דברי פולוס׃

성 경: [행16:14]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루디아의 개종]

󰃨 두아디라 성의…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 – ‘루디아’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다. 렌스키(Lenski)는 누가가 여격을 사용해 개인의 이름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의 루디아는 개인의 이름이 분명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많은 신학자들은(Bruce 등) ‘루디아’가 이름이 아니라 단지 고대 루디아 왕국의 영토였던 지방에 살던 사람 즉 ‘루디아(출신의) 여인’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생각한다. 당시 루아디라는 직조와 자색 염료 사용 기술로 유명했는데 루디아가 빌립보에 온 것은 계속 그 사업을 확장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한편 그녀는 두아디라에 있을 때 이미 회당에서 유대교의 가르침을 받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 들었는데 –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쿠엔'(*, ‘듣고 있었다’, ‘듣곤 했다’)은 미완료형으로서 반복되는 모임을 암시한다. 이 동사는 루디아가 바로 첫 안식일에 회심(回心)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Lenski).

󰃨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 바울의 말을 들을 때에 그녀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3:6,7)는 바울의 고백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한편 학자들 중에는 이 ‘루디아 여자’의 본명이 유오디아 또는 순두게(빌4:2)였으며 또한 회심한 간수 글레멘드(빌4:3)의 처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Zahn). 또한 바울이 언급한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빌4:3)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으며 혹자는 바울이 루디아와 결혼했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Renan). 그러나 이러한 추측들은 지지를 받지는 못한다.

호스 데 에밮티스데 카이 호 오이코스 아우테스 파레칼레센 레구사 에이 케크리카테 메 피스텐 토 퀴리오 에이나이 에이셀돈테스 에이스 톤 오이콘 무 메네테 카이 파레비아사토 헤마스

개역개정,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새번역,15 그 여자가 집안 식구와 함께 ㉢세례를 받고나서 “나를 주님의 신도로 여기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묵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우리를 강권해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 ㉢또는 ‘침례’

우리말성경,15 루디아는 그 집안 식구들과 함께 세례를 받고 “저를 참된 신자로 여기신다면 제 집에 오셔서 머물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면서 우리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가톨릭성경,15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침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영어NIV,15 When she and the members of her household were baptized, she invited us to her home. “If you consider me a believer in the Lord,” she said, “come and stay at my house.” And she persuaded us.

영어NASB,15 And when she and her household had been baptized, she urged us, saying, “If you have judged me to be faithful to the Lord, come into my house and stay.” And she prevailed upon us.

영어MSG,15 After she was baptized, along with everyone in her household, she said in a surge of hospitality, “If you’re confident that I’m in this with you and believe in the Master truly, come home with me and be my guests.” We hesitated, but she wouldn’t take no for an answer.

영어NRSV,15 When she and her household were baptized, she urged us, saying, “If you have judged me to be faithful to the Lord, come and stay at my home.” And she prevailed upon us.

헬라어신약Stephanos,15 ως δε εβαπτισθη και ο οικος αυτης παρεκαλεσεν λεγουσα ει κεκρικατε με πιστην τω κυριω ειναι εισελθοντες εις τον οικον μου μεινατε και παρεβιασατο ημας

라틴어Vulgate,15 cum autem baptizata esset et domus eius deprecata est dicens si iudicastis me fidelem Domino esse introite in domum meam et manete et coegit nos

히브리어Modern,15 ותטבל היא ובני ביתה ותבקש ממנו לאמר אם חשבתם אתי נאמנה לאדון באו נא אל ביתי ושבו בו ותפצר בנו׃

성 경: [행16:15]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루디아의 개종]

󰃨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 8:36에 등장하는 에디오피아인의 경우처럼, 루디아가 신앙을 고백한 후 곧바로 세례가 베풀어졌다. 루디아의 집 또한 고넬료의 집처럼 세례를 받았다(10:47,48;11:14). 한편 유아 세례를 옹호하는 자들은 이 구절을 포함, 이와 유사한 구절들을 통해(11:14;16:33;18:8;고전1:16) 이 집의 세례가 어린아이들도 포함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자들은 어린아이 특히 유아에 대한 언급이 여기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본장 주제 강해 ‘유아세례’ 참조). 어쨌든 이 ‘집’ 속에 장사를 돕는 하인이나 노예들이 포함된다면 어린아이라고 해서 꼭 배제(排除)될 이유도 없다(Lenski).

에게네토 데 포류오메논 헤몬 에이스 텐 프로슈켄 파이디스켄 티나 에쿠산 프뉴마 퓌도나 휘판테사이 헤민 헤티스 에르가시안 폴렌 파레이켄 토이스 퀴리오이스 아우테스 만튜오메네

개역개정,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새번역,16 어느 날 우리가 기도하는 곳으로 가다가, 귀신 들려 점을 치는 여종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점을 쳐서, 주인들에게 큰 돈벌이를 해주는 여자였다.

우리말성경,16 어느 날 우리가 기도하는 곳으로 가다가 귀신 들린 한 여종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 아이는 점을 쳐서 자기 주인들에게 아주 많은 돈을 벌어 주고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16 우리가 기도처로 갈 때에 점 귀신 들린 하녀 하나를 만났는데, 그는 점을 쳐서 주인들에게 큰 돈벌이를 해 주고 있었다.

영어NIV,16 Once when we were going to the place of prayer, we were met by a slave girl who had a spirit by which she predicted the future. She earned a great deal of money for her owners by fortune-telling.

영어NASB,16 And it happened that as we were going to the place of prayer, a certain slave-girl having a spirit of divination met us, who was bringing her masters much profit by fortunetelling.

영어MSG,16 One day, on our way to the place of prayer, a slave girl ran into us. She was a psychic and, with her fortunetelling, made a lot of money for the people who owned her.

영어NRSV,16 One day, as we were going to the place of prayer, we met a slave girl who had a spirit of divination and brought her owners a great deal of money by fortune-telling.

헬라어신약Stephanos,16 εγενετο δε πορευομενων ημων εις προσευχην παιδισκην τινα εχουσαν πνευμα πυθωνος απαντησαι ημιν ητις εργασιαν πολλην παρειχεν τοις κυριοις αυτης μαντευομενη

라틴어Vulgate,16 factum est autem euntibus nobis ad orationem puellam quandam habentem spiritum pythonem obviare nobis quae quaestum magnum praestabat dominis suis divinando

히브리어Modern,16 ויהי בלכתנו למקום התפלה ותפגע בנו שפחה בעלת אוב אשר עשתה הון רב לאדניה בקסמיה׃

성 경: [행16:16]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귀신들린 여종을 치유함]

󰃨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 – 누가는 거듭하여 우리에게, 기독교 복음이 싸워 나가야 했던 그리이스-로마의 미신적 배경을 상기시키고 있다(8:9;13:6). ‘귀신'(*, 프뉴마 휘도나)의 ‘퓌돈'(*)은 고린도만 북부 파르나소스산 남쪽 언덕에 위치한 아폴로 신전에서 신탁을 지키는 신화 속의 뱀 또는 용을 가리키는데 퓌돈은 결국 아폴로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퓌돈은 나중에 복화술사(腹話術師)까지도 의미하게 되었는데, 그 내부에는 퓌돈의 영이 들어있는 것으로 여겨졌다(Plutarch).

󰃨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 여종은 점을 쳐 사람들의 앞날을 알아 맞히고 많은 돈을 벌었으나, 수입금의 대부분은 주인들에 의해 착취되었다. 이러한 주인들의 태도는 약자들의 병을 치유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약함을 이용하여 이윤만을 챙기려는 불의한 정치인들과 악덕 기업주 그리고 적게는 이기주의에 젖어있는 우리의 태도와 다를 바 없다.

하우테 카타콜루두사 토 파울로 카이 헤민 에크라젠 레구사 후토이 호이 안드로포이 둘로이 투 데우 투 휲시스투 에이신 호이티네스 카탕겔루신 휘민 호돈 소테리아스

개역개정,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새번역,17 이 여자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오면서, 큰 소리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인데,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다” 하고 외쳤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우리에게’

우리말성경,17 이 아이는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로 당신들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다”라고 외쳤습니다.

가톨릭성경,17 그 여자가 바오로와 우리를 쫓아오면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종으로서 지금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영어NIV,17 This girl followed Paul and the rest of us, shouting, “These men are servants of the Most High God, who are telling you the way to be saved.”

영어NASB,17 Following after Paul and us, she kept crying out, saying, “These men are bond-servants of the Most High God, who are proclaiming to you the way of salvation.”

영어MSG,17 She started following Paul around, calling everyone’s attention to us by yelling out, “These men are working for the Most High God. They’re laying out the road of salvation for you!”

영어NRSV,17 While she followed Paul and us, she would cry out, “These men are slaves of the Most High God, who proclaim to you a way of salvation.”

헬라어신약Stephanos,17 αυτη κατακολουθησασα τω παυλω και ημιν εκραζεν λεγουσα ουτοι οι ανθρωποι δουλοι του θεου του υψιστου εισιν οιτινες καταγγελλουσιν ημιν οδον σωτηριας

라틴어Vulgate,17 haec subsecuta Paulum et nos clamabat dicens isti homines servi Dei excelsi sunt qui adnuntiant vobis viam salutis

히브리어Modern,17 ותלך אחרי פולוס ואחרינו הלוך וקרוא לאמר האנשים האלה עבדי אל עליון המה המודיעים אתנו ארח הישועה׃

성 경: [행16:17]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귀신들린 여종을 치유함]

󰃨 바울과 우리를 쫓아와서 – ‘바울’과 ‘우리’를 구분하여 표현함으로써, 누가는 스스로를 특별히 바울을 중심으로 한 선교팀의 일원으로서 묘사하고 있다. ‘우리’ 문장은 여기에서 끝나고, 빌립보성을 그리고 있는 20:5,6에서 다시 등장한다. 이러한 사실은 누가가 그곳에 교회을 세우기 위해 홀로 남았으며, 몇 년 뒤 바울 일행의 마지막 전도여행시 합류(合流)했다는 사실을 추측케 해준다(Neil).

󰃨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너희에게 전하는 자 – 예수의 사역중 귀신들이 소리지른 일을 상기시켜 준다(막1:24;3:11;5:7;눅4:34,41;8:28). 이 소녀의 외치는 내용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모두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말로 표현되었다. 여기서 헬라어 ‘호 데오스 호 휴시스토스'(*, ‘지극히 높은 하나님’)는 본래 뵈니게 사람들의 신(엘 헬루온)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히브리인들은 이 말로 야웨를 가리키고(민24:16;시78:35;사14:14;단3:26;4:32;5:18,21;에스드라상2:3) 헬라인들은 제우스를 가리키는데에 사용하였다(Roberts, Skeat, Nock). 한편 ‘소테리아'(*, ‘구원’) 또한 유대인들에게는 죄로부터 구원을 의미했으나 이방인들에게는 사람과 물질 세계를 다스리고 있는 권세로부터 해방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귀신들린 여종의 이 외침은 바울과 실라의 사역을 명쾌하게 드러내주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 복음의 사명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사43:10;딛2:15).

투토 데 에포이에이 에피 폴라스 헤메라스 디아포네데이스 데 파울로스 카이 에피스트렢사스 토 프뉴마티 에이펜 파랑겔로 소이 엔 오노마티 예수 크리스투 엨셀데인 앞 아우테스 카이 엨셀덴 아우테 테 호라

개역개정,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새번역,18 그 여자가 여러 날을 두고 이렇게 하므로, 바울이 귀찮게 여기고 돌아서서, 그 귀신에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하니, 이 여자에게서 나오라” 하고 말하니, 바로 그 순간에 귀신이 나왔다.

우리말성경,18 이 아이가 며칠 동안이나 이렇게 계속하자 참다못한 바울이 돌아서서 귀신에게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명한다. 그 아이에게서 당장 나오라!” 바로 그 순간 귀신이 그 아이에게서 나갔습니다.

가톨릭성경,18 여러 날을 두고 그렇게 하는 바람에 언짢아진 바오로가 돌아서서 그 귀신에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에게 명령하니 그 여자에게서 나가라.” 하고 일렀다. 그러자 그 순간에 귀신이 나갔다.

영어NIV,18 She kept this up for many days. Finally Paul became so troubled that he turned around and said to the spirit, “In the name of Jesus Christ I command you to come out of her!” At that moment the spirit left her.

영어NASB,18 And she continued doing this for many days. But Paul was greatly annoyed, and turned and said to the spirit, “I command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to come out of her!” And it came out at that very moment.

영어MSG,18 She did this for a number of days until Paul, finally fed up with her, turned and commanded the spirit that possessed her, “Out! In the name of Jesus Christ, get out of her!” And it was gone, just like that.

영어NRSV,18 She kept doing this for many days. But Paul, very much annoyed, turned and said to the spirit, “I order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to come out of her.” And it came out that very hour.

헬라어신약Stephanos,18 τουτο δε εποιει επι πολλας ημερας διαπονηθεις δε ο παυλος και επιστρεψας τω πνευματι ειπεν παραγγελλω σοι εν τω ονοματι ιησου χριστου εξελθειν απ αυτης και εξηλθεν αυτη τη ωρα

라틴어Vulgate,18 hoc autem faciebat multis diebus dolens autem Paulus et conversus spiritui dixit praecipio tibi in nomine Iesu Christi exire ab ea et exiit eadem hora

히브리어Modern,18 וכן עשתה ימים רבים וירע בעיני פולוס הדבר הזה ויפן ויאמר אל הרוח אנכי מצוך בשם ישוע המשיח לצאת ממנה ויצא בשעה ההיא׃

성 경: [행16:18]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귀신들린 여종을 치유함]

󰃨 여러 날을 하는지라 – 바울이 여러 날 동안 귀신을 쫓아내지 않은 것은 이 여종의 외치는 소리가 처음에는 그다지 위험스럽게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복음을 널리 알리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여러 날이 경과하는 동안 바울은 이 여인이 악한 영에 사로잡혀 있음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마침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축출(逐出)한 것이다(H.Marshall).

󰃨 바울이 심히 괴로와하여…즉시 나오니라 – 바울이 왜 ‘심히 괴로워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분명치 않다. 벤트(Wendt)는 거룩한 복음이 부정한 영에 의해 증거되는 것이 불쾌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아울러 그 소녀의 딱한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Lenski). 소녀의 외침으로 인해 전도자들은 외관상으로는 뜻하지 않았던 유명세를 받았을 것이고, 나중에는 복음의 선포보다 귀신의 말에 더 관심이 집중되었을 것이다. 한편 귀신을 쫓아내는 이러한 능력을 그리스도께서 복음 전도자들에게 주신 능력들 가운데 하나로, 그리스도께서 귀신들의 정복자임을 나타내는 표적이었다(마4:24;8:16;눅4:41). 구원받은 소녀의 회심에 대해 본문이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 소녀는 루디아와 그녀의 집안 사람들, 의사 누가, 직업 군인 간수 등과 함께 빌립보 초기 교회의 일원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돈테스 데 호이 퀴리오이 아우테스 호티 엨셀덴 헤 엘피스 테스 에르가시아스 아우톤 에필라보메노이 톤 파울론 카이 톤 실란 헤일퀴산 에이스 텐 아고란 에피 투스 아르콘타스

개역개정,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새번역,19 그 여자의 주인들은, 자기들의 돈벌이 희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서, 광장으로 관원들에게로 끌고 갔다.

우리말성경,19 그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들의 돈 벌 소망이 사라진 것을 알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시장에 있는 관리들에게 끌고 갔습니다.

가톨릭성경,19 그 여자의 주인들은 돈벌이할 희망이 사라진 것을 보고 바오로와 실라스를 붙잡아 광장으로 관리들에게 끌고 갔다.

영어NIV,19 When the owners of the slave girl realized that their hope of making money was gone, they seized Paul and Silas and dragged them into the marketplace to face the authorities.

영어NASB,19 But when her masters saw that their hope of profit was gone, they seized Paul and Silas and dragged them into the market place before the authorities,

영어MSG,19 When her owners saw that their lucrative little business was suddenly bankrupt, they went after Paul and Silas, roughed them up and dragged them into the market square. Then the police arrested them

영어NRSV,19 But when her owners saw that their hope of making money was gone, they seized Paul and Silas and dragged them into the marketplace before the authorities.

헬라어신약Stephanos,19 ιδοντες δε οι κυριοι αυτης οτι εξηλθεν η ελπις της εργασιας αυτων επιλαβομενοι τον παυλον και τον σιλαν ειλκυσαν εις την αγοραν επι τους αρχοντας

라틴어Vulgate,19 videntes autem domini eius quia exivit spes quaestus eorum adprehendentes Paulum et Silam perduxerunt in forum ad principes

히브리어Modern,19 ויראו אדניה כי אזלה תוחלת בצעם ויתפשו את פולוס ואת סילא ויסחבום אל הרחוב לפני זקני העיר׃

성 경: [행16:19]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바울과 실라의 투옥]

󰃨 종의 주인들 – 이들은 사업적인 연합체였거나 혹은 단순히 개인 주인이었을 수도 있다.

󰃨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 나중에 에베소에서도 그랬던 것처럼(19:23-27), 복음은 미신이나 악을 이용하여 이윤을 챙기는 자들의 사업을 파멸의 지경에 이르게 하였다. 누가는 18절과 19절에서 동일한 동사 ‘엑셀덴'(*, ‘나오니라’-18절;’끊어진’-19절)을 사용함으로써 흥미로운 언어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 바울과 실라를 잡아 – 이때 디모데와 누가는 왜 핍박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물론 디모데와 누가가 바울과 실라보다는 덜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었기 때문일 수 있으며, 또한 그 시각에 디모데와 누가가 다른 곳에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디모데가 반헬라인이고(half-Greek) 누가가 완전히 헬라인이었던 반면, 바울과 실라가 유대인이었다는 점이, 주요 공격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보인다(Bruce, Neil). 20절과 21절에서 죄목(罪目)을 이야기하며 민족적 차이를 드러내는 표현(‘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로마 사람인 우리가’)을 사용한 것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 저자 – 이곳에는 법정이나 감옥도 있었다.

카이 프로사가곤테스 아우투스 토이스 스트라테고이스 에이판 후토이 호이 안드로포이 엨타라쑤신 헤몬 텐 폴린 유다이오이 휘파르콘테스

개역개정,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새번역,20 그리고 그들을 치안관들 앞에 세워 놓고서 “이 사람들은 유대 사람들인데, 우리 도시를 소란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말성경,20 바울과 실라를 로마 관리들 앞에 데려다 놓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유대 사람으로서 우리 도시에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가톨릭성경,20 그리고 그들을 행정관들 앞에 데려다 놓고 말하였다. “이 사람들은 유다인인데 우리 도시에 소동을 일으키면서,

영어NIV,20 They brought them before the magistrates and said, “These men are Jews, and are throwing our city into an uproar

영어NASB,20 and when they had brought them to the chief magistrates, they said, “These men are throwing our city into confusion, being Jews,

영어MSG,20 and pulled them into a court with the accusation, “These men are disturbing the peace–dangerous Jewish agitators

영어NRSV,20 When they had brought them before the magistrates, they said, “These men are disturbing our city; they are Jews

헬라어신약Stephanos,20 και προσαγαγοντες αυτους τοις στρατηγοις ειπον ουτοι οι ανθρωποι εκταρασσουσιν ημων την πολιν ιουδαιοι υπαρχοντες

라틴어Vulgate,20 et offerentes eos magistratibus dixerunt hii homines conturbant civitatem nostram cum sint Iudaei

히브리어Modern,20 ויביאום אל השרים ויאמרו האנשים האלה עכרים את עירנו והם יהודים׃

성 경: [행16:20]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바울과 실라의 투옥]

󰃨 상관들 앞에…심히 요란케 하여 – 그들은 바울이 소녀로부터 귀신을 쫓아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하지 않고, 바울과 실라가 유대인이라는 점을 내세워 인종적 편견을 부추겼으며 또한 로마 제국내에 공공 평화를 해치고 폭동의 씨앗을 뿌리는 자들로 몰아붙였다(왕상18:17;19:40;24:5). 바로 1년 전에 황제 글라우디오가 로마로부터 유대인들을 축출하라는 칙령을 내렸었다(18:2). 이에따라 유대인들은 제국 전역, 그중에서도 특히 식민지역에서 좋지 않은 평판을 받았을 것이다(Neil). 또 ‘요란케 한다’는 말은 종교적인 의미로도 해석된다. 당시 유대교는 로마법에 따라 허용되었으나, 로마인이 유대인에 의해 개종되는 일은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카이 카탕겔루신 에데 하 우크 엨세스틴 헤민 파라데케스다이 우데 포이에인 로마이오이스 우신

개역개정,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새번역,21 이 사람들은 로마 시민인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도 없고 실천할 수도 없는, 부당한 풍속을 선전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우리말성경,21 우리 로마 사람들이 받아들이거나 실천할 수 없는 풍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성경,21 우리 로마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에도 지키기에도 부당한 관습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영어NIV,21 by advocating customs unlawful for us Romans to accept or practice.”

영어NASB,21 and are proclaiming customs which it is not lawful for us to accept or to observe, being Romans. ”

영어MSG,21 subverting our Roman law and order.”

영어NRSV,21 and are advocating customs that are not lawful for us as Romans to adopt or observe.”

헬라어신약Stephanos,21 και καταγγελλουσιν εθη α ουκ εξεστιν ημιν παραδεχεσθαι ουδε ποιειν ρωμαιοις ουσιν

라틴어Vulgate,21 et adnuntiant morem quem non licet nobis suscipere neque facere cum simus Romani

히브리어Modern,21 ומודיעים חקות אשר לא נכון לנו לקבלם ולעשתם כי רומיים אנחנו׃

성 경: [행16:21]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바울과 실라의 투옥]

󰃨 로마 사람인…전한다 하거늘 – 여기서 언급된 풍속에 대하여 혹자는 만찬때의 ‘거룩한 입맞춤'(*, 필레마 하기온)의 관습이 부도덕한 동양 제의(祭儀)의 모습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Haenchen). 그러나 송사자들의 관심은 풍속보다는 그들이 더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됐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래서 복수의 출구를 찾고 있던 송사자들은 바울과 실라가 유대인이라는 점을 알고, 무조건 그들을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 풍속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못했다. 이 사건은 아무런 근거가 없었고 사실상 악한 동기를 숨겨두고 있다는 점, 그리고 똑같이 로마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는 점 등을 살펴볼 때, 산헤드린이 빌라도 앞에서 예수를 송사한 일과 유사하다(요19:6).

카이 쉬네페스테 호 오클로스 캍 아우톤 카이 호이 스트라테고이 페리렠산테스 아우톤 타 히마티아 에켈류온 랍디제인

개역개정,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새번역,22 무리가 그들을 공격하는 데에 합세하였다. 그러자 치안관들은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그들을 매로 치라고 명령하였다.

우리말성경,22 모여 있던 사람들도 가세해 바울과 실라를 공격하자 로마 관리들은 그들의 옷을 벗기고 매질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가톨릭성경,22 군중도 합세하여 바오로와 실라스를 공격하자, 행정관들은 그 두 사람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지시하였다.

영어NIV,22 The crowd joined in the attack against Paul and Silas, and the magistrates ordered them to be stripped and beaten.

영어NASB,22 And the crowd rose up together against them, and the chief magistrates tore their robes off them, and proceeded to order them to be beaten with rods.

영어MSG,22 By this time the crowd had turned into a restless mob out for blood. The judges went along with the mob, had Paul and Silas’s clothes ripped off and ordered a public beating.

영어NRSV,22 The crowd joined in attacking them, and the magistrates had them stripped of their clothing and ordered them to be beaten with rods.

헬라어신약Stephanos,22 και συνεπεστη ο οχλος κατ αυτων και οι στρατηγοι περιρρηξαντες αυτων τα ιματια εκελευον ραβδιζειν

라틴어Vulgate,22 et concurrit plebs adversus eos et magistratus scissis tunicis eorum iusserunt virgis caedi

히브리어Modern,22 ויקם גם העם עליהם והשרים קרעו את בגדיהם מעליהם ויצוו להכותם בשוטים׃

성 경: [행16:22]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바울과 실라의 투옥]

󰃨 상관들이 – 로마의 식민지였던 빌립보는 데살로니가에 있는 주 정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치 정부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로마 식민지에는 ‘두움비리'(duu- mviri)라 하여 집정관이 두 사람씩 있었다. 그런데 일부 식민지에는 이들에게 ‘프래토레스'(praetores ; , 스트라테고이)라는 존칭이 적용되었는데(20,22,35, 36,38절), 이곳 빌립보에서도 그러하였다. 한편 이 집정관들 밑에는 두 사람의 ‘릭토르'(*, 랍두코이)가 있었는데, 이들의 임무는 집정관의 명령을 집행하는 것이었다.

󰃨 매로 치라 하여 – 바울은 이 태장(笞杖)에 대한 고후 11:25에서, 다른데에 기록이 없는 두 번의 태장과 함께 언급한다. 또한 그는 살전2:2에서 이곳 빌립보에서의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대접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매우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폴라스 테 에피덴테스 아우토이스 플레가스 에발론 에이스 퓔라켄 파랑게딜란테스 토 데스모퓔라키 아스팔로스 테레인 아우투스

개역개정,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새번역,23 그래서 이 명령을 받은 부하들이 그들에게 매질을 많이 한 뒤에, 감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그들을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우리말성경,23 관리들은 그들을 심하게 때린 뒤 감옥에 던져 넣고는 간수에게 그들을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했습니다.

가톨릭성경,23 그렇게 매질을 많이 하게 한 뒤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영어NIV,23 After they had been severely flogged, they were thrown into prison, and the jailer was commanded to guard them carefully.

영어NASB,23 And when they had inflicted many blows upon them, they threw them into prison, commanding the jailer to guard them securely;

영어MSG,23 After beating them black and blue, they threw them into jail, telling the jailkeeper to put them under heavy guard so there would be no chance of escape.

영어NRSV,23 After they had given them a severe flogging, they threw them into prison and ordered the jailer to keep them securely.

헬라어신약Stephanos,23 πολλας τε επιθεντες αυτοις πληγας εβαλον εις φυλακην παραγγειλαντες τω δεσμοφυλακι ασφαλως τηρειν αυτους

라틴어Vulgate,23 et cum multas plagas eis inposuissent miserunt eos in carcerem praecipientes custodi ut diligenter custodiret eos

히브리어Modern,23 ויהי אחרי הכות אתם מכה רבה וישליכום במשמר ויצוו את שומר האסורים לשמרם היטב׃

성 경: [행16:23]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바울과 실라의 투옥]

󰃨 많이 친 후에 – 22절의 미완료 동사 ‘에켈류온'(*, ‘매로 치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래 유대인들은 태형의 경우에 40대 이내의 매를 맞았다(신22:18;25:3). 그러나 릭토르들은 언제 매를 멈춰야 할지를 몰라서 상관의 신호를 기다리곤 했다. 그러면 상관들은 반복해서 매를 치도록 신호를 보냈다. 바로 이것이 미완료 동사가 의미하는 바이다(Lenski). 그러므로 ‘많이 쳤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바울과 실라는 선한 일을 하고도 정식 재판조차 받지 않은채 심한 고난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이 감수해야 할 고통인지도 모른다.

󰃨 든든히 지키라 – 이 말 속에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는 뜻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12:19에서 베드로를 지키던 간수는 베드로가 탈출하자 그 책임을 지고 목숨을 잃었다.

호스 파랑겔리안 토이아우텐 라본 에발렌 아우투스 에이스 텐 에소테란 퓔라켄 카이 투스 포다스 에스팔리사토 아우톤 에이스 토 크쉴론

개역개정,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새번역,24 간수는 이런 명령을 받고, 그들을 깊은 감방에 가두고서, 그들의 발에 차꼬를 단단히 채웠다.

우리말성경,24 이런 명령을 받은 간수는 그들을 깊숙한 감방에 가두고 발에는 쇠고랑을 채워 두었습니다.

가톨릭성경,24 이러한 명령을 받은 간수는 그들을 가장 깊은 감방에 가두고 그들의 발에 차꼬를 채웠다.

영어NIV,24 Upon receiving such orders, he put them in the inner cell and fastened their feet in the stocks.

영어NASB,24 and he, having received such a command, threw them into the inner prison, and fastened their feet in the stocks.

영어MSG,24 He did just that–threw them into the maximum security cell in the jail and clamped leg irons on them.

영어NRSV,24 Following these instructions, he put them in the innermost cell and fastened their feet in the stocks.

헬라어신약Stephanos,24 ος παραγγελιαν τοιαυτην ειληφως εβαλεν αυτους εις την εσωτεραν φυλακην και τους ποδας αυτων ησφαλισατο εις το ξυλον

라틴어Vulgate,24 qui cum tale praeceptum accepisset misit eos in interiorem carcerem et pedes eorum strinxit in ligno

히브리어Modern,24 והוא כאשר צוה כן השליכם בחדר המשמר הפנימי וישם את רגליהם בסד׃

성 경: [행16:24]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바울과 실라의 투옥]

󰃨 깊은 옥에 가두고 – 로마의 감옥은 보통 3종류로 분류된다. 즉, 죄수들이 햇빛을 쬐고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 보통 감옥(communiora)과 견고한 빗장을 치고 잠그는 내옥(interiora) 그리고 사형수들을 수감하는 지하옥(tullianum)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내옥에 가두었을 뿐만 아니라 양발에 착고를 채워 벽에 고정시키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되면 발이 벌려져서 고통스런 자세가 된다(Lenski). 사실 상관은 그들이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했었다는 소문을 듣고, 특별한 감시의 필요성을 느꼈을 수도 있다(Marshall). 한편 이러한 완벽한 수감(收監) 상태는, 나중 그들의 탈출 내용을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극적인 감동을 더해준다.

카타 데 토 메소뉰티온 파울로스 카이 실라스 프로슈코메노이 휨눈 톤 데온 에페크로온토 데 아우톤 호이 데스미오이

개역개정,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새번역,25 한밤쯤 되어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죄수들이 듣고 있었다.

우리말성경,25 한밤중쯤 됐을 때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며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자 다른 죄수들이 귀 기울여 듣고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25 자정 무렵에 바오로와 실라스는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하고, 다른 수인들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영어NIV,25 About midnight Paul and Silas were praying and singing hymns to God, and the other prisoners were listening to them.

영어NASB,25 But about midnight Paul and Silas were praying and singing hymns of praise to God, and the prisoners were listening to them;

영어MSG,25 Along about midnight, Paul and Silas were at prayer and singing a robust hymn to God. The other prisoners couldn’t believe their ears.

영어NRSV,25 About midnight Paul and Silas were praying and singing hymns to God, and the prisoners were listening to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25 κατα δε το μεσονυκτιον παυλος και σιλας προσευχομενοι υμνουν τον θεον επηκροωντο δε αυτων οι δεσμιοι

라틴어Vulgate,25 media autem nocte Paulus et Silas adorantes laudabant Deum et audiebant eos qui in custodia erant

히브리어Modern,25 ויהי כחצות הלילה ויתפללו פולוס וסילא ויזמרו לאלהים והאסורים מקשיבים אליהם׃

성 경: [행16:25]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이적적 출옥 및 간수의 회심]

󰃨 밤중쯤 되어…찬미하매 – 고난 중에 기뻐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극적으로 묘사되고 있다(롬5:3;약1:2;벧전5:6,7). 이 내용은 기적적인 구출을 바라는 간구보다는 고난에 대한 신앙의 승리를 보여주는 전형으로서 기록된 것이다(Neil).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적적인 방법으로 풀려나게 됨으로써, 간수들은 바울 일행의 찬송과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회개하기에 이른 것이다.

아프노 데 세이스모스 에게네토 메가스 호스테 살류데나이 타 데멜리아 투 데스모테리우 메네오크데산 데 파라크레마 하이 뒤라이 파사이 카이 판톤 타 데스마 아네데

개역개정,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새번역,26 그 때에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서, 감옥의 터전이 흔들렸다. 그리고 곧 문이 모두 열리고, 모든 죄수의 수갑이며 차꼬가 풀렸다.

우리말성경,26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이 기반부터 흔들렸습니다. 곧바로 감옥 문이 모두 열리고 죄수들을 묶고 있던 쇠사슬도 다 풀렸습니다.

가톨릭성경,26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렸다. 그리고 즉시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다.

영어NIV,26 Suddenly there was such a violent earthquake that the foundations of the prison were shaken. At once all the prison doors flew open, and everybody’s chains came loose.

영어NASB,26 and suddenly there came a great earthquake, so that the foundations of the prison house were shaken; and immediately all the doors were opened, and everyone’s chains were unfastened.

영어MSG,26 Then, without warning, a huge earthquake! The jailhouse tottered, every door flew open, all the prisoners were loose.

영어NRSV,26 Suddenly there was an earthquake, so violent that the foundations of the prison were shaken; and immediately all the doors were opened and everyone’s chains were unfastened.

헬라어신약Stephanos,26 αφνω δε σεισμος εγενετο μεγας ωστε σαλευθηναι τα θεμελια του δεσμωτηριου ανεωχθησαν τε παραχρημα αι θυραι πασαι και παντων τα δεσμα ανεθη

라틴어Vulgate,26 subito vero terraemotus factus est magnus ita ut moverentur fundamenta carceris et aperta sunt statim ostia omnia et universorum vincula soluta sunt

히브리어Modern,26 ופתאם היה רעש גדול עד אשר זעו מוסדות בית הכלא וכרגע נפתחו כל הדלתות ומוסרות כלם נתקו׃

성 경: [행16:26]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이적적 출옥 및 간수의 회심]

󰃨 이에 홀연히…다 벗어진지라 – 양식 비평은 옥문이 저절로 열려 기적적으로 옥에서 탈출하는 이야기가 고대 세계에서는 흔했다면서(5:19-24; 12:7-10;도마행전154) 35절의 이야기가 24절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주장한다. 즉, 양식 비평가들은 25-34절이 누가의 이야기가 아닌 삽입된 ‘전설’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가 그와 비숫한 다른 이야기와 유사하다는 이유 때문에 그 역사적 확실성을 훼손받아야 할 근거는 없다. 그리고 어떠한 이야기가 가운데를 뚝 떼어내고 보아도 의미가 잘 통한다고 해서, 그 중간 자료를 삽입된 ‘전설’로 생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불과하다. 이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섬세(纖細)하게 미쳤는가 하는 것은 ‘벗어졌다’는 의미의 ‘아네데'(*)가 제1단순과거 ‘수동형’이라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엨슆노스 데 게노메노스 호 데스모퓔랔스 카이 이돈 아네오그메나스 타스 뒤라스 테스 퓔라케스 스파사메노스 텐 마카이란 에멜렌 헤아우톤 아나이레인 노미존 엨페퓨게나이 투스 데스미우스

개역개정,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새번역,27 간수가 잠에서 깨어서,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는, 죄수들이 달아난 줄로 알고, 검을 빼어서 자결하려고 하였다.

우리말성경,27 간수가 잠깨어 일어나 감옥 문이 모두 열린 것을 보자 죄수들이 도망친 줄로 생각하고 칼을 뽑아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가톨릭성경,27 잠에서 깨어난 간수는 감옥 문들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하였다. 수인들이 달아났으려니 생각하였던 것이다.

영어NIV,27 The jailer woke up, and when he saw the prison doors open, he drew his sword and was about to kill himself because he thought the prisoners had escaped.

영어NASB,27 And when the jailer had been roused out of sleep and had seen the prison doors opened, he drew his sword and was about to kill himself, supposing that the prisoners had escaped.

영어MSG,27 Startled from sleep, the jailer saw all the doors swinging loose on their hinges. Assuming that all the prisoners had escaped, he pulled out his sword and was about to do himself in, figuring he was as good as dead anyway,

영어NRSV,27 When the jailer woke up and saw the prison doors wide open, he drew his sword and was about to kill himself, since he supposed that the prisoners had escaped.

헬라어신약Stephanos,27 εξυπνος δε γενομενος ο δεσμοφυλαξ και ιδων ανεωγμενας τας θυρας της φυλακης σπασαμενος μαχαιραν εμελλεν εαυτον αναιρειν νομιζων εκπεφευγεναι τους δεσμιους

라틴어Vulgate,27 expergefactus autem custos carceris et videns apertas ianuas carceris evaginato gladio volebat se interficere aestimans fugisse vinctos

히브리어Modern,27 ושומר האסורים נעור משנתו ויהי כראתו את דלתות המשמר נפתחות וישלף חרבו ויבקש לאבד את עצמו בחשבו כי ברחו האסורים׃

성 경: [행16:27]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이적적 출옥 및 간수의 회심]

󰃨 간수가 자다가…자결하려 하거늘 – 로마의 법에서 죄수를 도망하게 한 간수는 그 죄수가 받은 형량만큼 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죄수들이 도망간 걸로 생각하는 간수가 검(로마의 정규 무기)을 빼어든 것은, 별다른 죄도 없이 바울과 실라가 얼마나 심한 형벌을 받았는지 짐작케 해준다. 고난과 죽음의 위험 가운데서도 찬미할 줄 아는 사도들과 재난 중에 자살하려고 하는 이교 로마인 간수는 얼마나 서로 대조적인가! 한편 ‘그 간수는 자결하려 하기 전에 왜 좀더 감옥안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는가?’ 혹은 ‘설사 죄인들이 도망쳤다 하더라도 그것이 초자연적 힘에 의한 것이었을 때 간수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지 않는가?'(Clemen) 등의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미 바울의 초능력 소문을 들었던 간수는 직접 눈앞의 기적에 직면하여, 스스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막9:6;16:8, Marshall).

에포네센 데 메갈레 포네 호 파울로스 레곤 메덴 프랔세스 세아우토 카콘 하판테스 가르 에스멘 엔다데

개역개정,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새번역,28 그 때에 바울이 큰소리로 “그대는 스스로 몸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모두 그대로 있소” 하고 외쳤다.

우리말성경,28 그때 바울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당신 몸을 상하게 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 있소!”

가톨릭성경,28 그때에 바오로가 큰 소리로, “자신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에 있소.” 하고 말하였다.

영어NIV,28 But Paul shouted, “Don’t harm yourself! We are all here!”

영어NASB,28 But Paul cried out with a loud voice, saying, “Do yourself no harm, for we are all here!”

영어MSG,28 when Paul stopped him: “Don’t do that! We’re all still here! Nobody’s run away!”

영어NRSV,28 But Paul shouted in a loud voice, “Do not harm yourself, for we are all here.”

헬라어신약Stephanos,28 εφωνησεν δε φωνη μεγαλη ο παυλος λεγων μηδεν πραξης σεαυτω κακον απαντες γαρ εσμεν ενθαδε

라틴어Vulgate,28 clamavit autem Paulus magna voce dicens nihil feceris tibi mali universi enim hic sumus

히브리어Modern,28 ויקרא פולוס בקול גדול לאמר אל תעש לך מאומה רע כי פה אנחנו כלנו׃

성 경: [행16:28]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이적적 출옥 및 간수의 회심]

󰃨 바울이…다 여기 있노라 하니 – 본문에 대해 ‘바울이 어떻게 어두운데도 간수가 죽으려 했는지를 알았는가?’ 또한 ‘다른 죄수들이 하나도 도망치지 않았는가?’ 하는 등의 질문이 제기되곤 한다. 이에 대해 어떤 학자들은 감옥안에 희미한 빛조차도 없었겠느냐고 주장하면서, 다른 죄수들이 도망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도 ‘초능력을 목격한 죄수들의 발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H.Marshall, Lenski). 그러나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때때로 그러한 것처럼, 압축된 이야기에는 저자의 목적을 뒷받침하는 중요내용들만 부각(浮刻)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저자가 세목 하나하나를 논리적으로 꿰맞추지 않는 때도 있는 것이다(Marshall).

아이테사스 데 포타 에이세페데센 카이 엔트로모스 게노메노스 프로세페센 토 파울로 카이 토 실라

개역개정,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새번역,29 간수는 등불을 달라고 해서, 들고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다.

우리말성경,29 간수는 등불을 달라고 하더니 부리나케 달려 들어와 부들부들 떨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습니다.

가톨릭성경,29 그러자 간수가 횃불을 달라고 하여 안으로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오로와 실라스 앞에 엎드렸다.

영어NIV,29 The jailer called for lights, rushed in and fell trembling before Paul and Silas.

영어NASB,29 And he called for lights and rushed in and, trembling with fear, he fell down before Paul and Silas,

영어MSG,29 The jailer got a torch and ran inside. Badly shaken, he collapsed in front of Paul and Silas.

영어NRSV,29 The jailer called for lights, and rushing in, he fell down trembling before Paul and Silas.

헬라어신약Stephanos,29 αιτησας δε φωτα εισεπηδησεν και εντρομος γενομενος προσεπεσεν τω παυλω και τω σιλα

라틴어Vulgate,29 petitoque lumine introgressus est et tremefactus procidit Paulo et Silae

히브리어Modern,29 וישאל נרות וידלג פנימה והוא מרעיד ויפל לרגלי פולוס וסילא׃

성 경: [행16:29]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이적적 출옥 및 간수의 회심]

󰃨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 감옥을 이 간수 혼자서만 지키지는 않았을 것이며, 이 간수는 조수에게 등불을 달라고 했을 것이다.

󰃨 바울과…부복하고 – 간수는 자신이 착고에 채우며 고문했던 자들 앞에 이제 엎드렸다. 이제야 비로소 간수는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의 능력있는 사자임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이는 고넬료가 베드로 앞에 엎드려 존경의 뜻을 표했던 상황을 연상시킨다(10:25). ‘부복하고’의 헬라어 ‘프로세페센'(*)은 ‘앞으로 떨어졌다’, ‘맹렬히…에 돌진했다’는 뜻을 내포하는 바, 이 간수의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을 잘 나타내는 말이다.

카이 프로아가곤 아우투스 엨소 에페 퀴리오이 티 메 데이 포이에인 히나 소도

개역개정,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새번역,30 그리고 그들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서 물었다. “두 분 사도님,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우리말성경,30 그러고는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오면서 물었습니다. “선생님들, 제가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톨릭성경,30 그리고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영어NIV,30 He then brought them out and asked, “Sirs, what must I do to be saved?”

영어NASB,30 and after he brought them out, he said, “Sirs, what must I do to be saved?”

영어MSG,30 He led them out of the jail and asked, “Sirs, what do I have to do to be saved, to really live?”

영어NRSV,30 Then he brought them outside and said, “Sirs, what must I do to be saved?”

헬라어신약Stephanos,30 και προαγαγων αυτους εξω εφη κυριοι τι με δει ποιειν ινα σωθω

라틴어Vulgate,30 et producens eos foras ait domini quid me oportet facere ut salvus fiam

히브리어Modern,30 ויוציאם החוצה ויאמר אדני מה עלי לעשות למען אושע׃

성 경: [행16:30]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이적적 출옥 및 간수의 회심]

󰃨 저희를 데리고…하거늘 – 감옥 밖으로 데리고 나가 복음에 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듣다가 ‘구원’에 관해 물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순간에 간수는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17절)라고 외친 소녀의 말을 상기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 ‘구원’의 의미가 간수의 근무 소홀로 인한 지위 상실의 회복을 의미한다는 쟈안(Zahn)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죄수들은 한 명도 도망치지 않고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선생들아’라고 번역된 헬라어 ‘퀴리오이'(*, ‘주들이여’)는 존경의 어조를 내포하고 있다. 간수는 지진(地震)을 통해 자존심 따위는 모두 털어버렸다.

호이 데 에이판 피스튜손 에피 톤 퀴리온 예순 카이 소데세 쉬 카이 호 오이코스 수

개역개정,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새번역,31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리하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말성경,31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가톨릭성경,31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영어NIV,31 They replied, “Believe in the Lord Jesus, and you will be saved–you and your household.”

영어NASB,31 And they said, “Believe in the Lord Jesus, and you shall be saved, you and your household.”

영어MSG,31 They said, “Put your entire trust in the Master Jesus. Then you’ll live as you were meant to live–and everyone in your house included!”

영어NRSV,31 They answered, “Believe on the Lord Jesus, and you will be saved, you and your household.”

헬라어신약Stephanos,31 οι δε ειπον πιστευσον επι τον κυριον ιησουν χριστον και σωθηση συ και ο οικος σου

라틴어Vulgate,31 at illi dixerunt crede in Domino Iesu et salvus eris tu et domus tua

히브리어Modern,31 ויאמרו האמן באדון ישוע המשיח ותושע אתה וביתך׃

성 경: [행16:31]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이적적 출옥 및 간수의 회심]

󰃨 가로되…얻으리라 하고 – 본절은 초대 교회 복음 증거자들이 전한 메시지의 대주제였다(2:38,39;3:19-26;4:12;8:12;10:43;13:38,39). 동시에 이 말은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한 기독교 진리의 핵심이다. ‘피스튜손'(*, ‘믿다’)은 당연히 단순과거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진정한 믿음을 갖게 되는 그 순간, 구원은 그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항상 주 예수께 신뢰와 의탁을 두는 것을 뜻한다. ‘너와 네 집'(*, 수 카이 호 오이코스 수)에서 ‘너’라는 개념이 이미 동사 어미로 표현됐는데도 ‘쉬'(*, ‘너’)가 첨가된 것은 대명사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간수의 믿음이 자동적으로 아내나 아이들을 구원할 수는 없다. 그가 자기의 인격으로 믿어야 했던 것처럼 그 식구들도 각자의 인격으로 믿어야 하는 것이다.

카이 엘랄레산 아우토 톤 로곤 투 퀴리우 쉰 파신 토이스 엔 테 오이키아 아우투

개역개정,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새번역,32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간수와 그의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들려주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주님의’

우리말성경,32 그러고 나서 바울과 실라는 그와 그 온 집안 사람들에게 주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가톨릭성경,32 그리고 간수와 그 집의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영어NIV,32 Then they spoke the word of the Lord to him and to all the others in his house.

영어NASB,32 And they spoke the word of the Lord to him together with all who were in his house.

영어MSG,32 They went on to spell out in detail the story of the Master–the entire family got in on this part.

영어NRSV,32 They spoke the word of the Lord to him and to all who were in his house.

헬라어신약Stephanos,32 και ελαλησαν αυτω τον λογον του κυριου και πασιν τοις εν τη οικια αυτου

라틴어Vulgate,32 et locuti sunt ei verbum Domini cum omnibus qui erant in domo eius

히브리어Modern,32 ויגידו לו את דבר יהוה ולכל אשר בביתו׃

성 경: [행16:32]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이적적 출옥 및 간수의 회심]

󰃨 그 집에…전하더라 – 10:2;11:14;18:8;고전16:15 등에도 가장(家長)과 가족들의 개종에 대한 예증들이 보인다.

카이 파랄라본 아우투스 엔 에케이네 테 호라 테스 뉰토스 엘루센 아포 톤 플레곤 카이 에밮티스데 아우토스 카이 호이 아우투 판테스 파라크레마

개역개정,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새번역,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는 그들을 데려다가, 상처를 씻어 주었다. 그리고 그와 온 가족이 그 자리에서 ㉥세례를 받았다. / ㉥또는 ‘침례’

우리말성경,33 그날 밤 그 시간에 간수는 그들을 데려다가 상처 부위를 씻어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당장 그와 그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가톨릭성경,33 간수는 그날 밤 그 시간에 그들을 데리고 가서 상처를 씻어 주고,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침례를 받았다.

영어NIV,33 At that hour of the night the jailer took them and washed their wounds; then immediately he and all his family were baptized.

영어NASB,33 And he took them that very hour of the night and washed their wounds, and immediately he was baptized, he and all his household.

영어MSG,33 They never did get to bed that night. The jailer made them feel at home, dressed their wounds, and then–he couldn’t wait till morning!–was baptized, he and everyone in his family.

영어NRSV,33 At the same hour of the night he took them and washed their wounds; then he and his entire family were baptized without delay.

헬라어신약Stephanos,33 και παραλαβων αυτους εν εκεινη τη ωρα της νυκτος ελουσεν απο των πληγων και εβαπτισθη αυτος και οι αυτου παντες παραχρημα

라틴어Vulgate,33 et tollens eos in illa hora noctis lavit plagas eorum et baptizatus est ipse et omnes eius continuo

히브리어Modern,33 ויקחם בלילה בשעה ההיא וירחץ את חבורתיהם וימהר להטבל הוא וכל אשר לו׃

성 경: [행16:33]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이적적 출옥 및 간수의 회심]

󰃨 밤 그 시에…세례를 받은 후 – 여기서부터는 문법적으로 간수가 주체가 된다. 믿음의 첫 증거로서 간수는, 전날 매질한 것을 사죄하는 의미의 일을 했다(마25:36;히10:34). 그리고는 그와 그 가족들이 지체없이 세례를 받았다. 복음의 힘이 어떠한 지를 잘 보여주는 구절이다.

아나가곤 테 아우투스 에이스 톤 오이콘 파레데켄 트라페잔 카이 에갈리아사토 파노이케이 페피스튜코스 토 데오

개역개정,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새번역,34 간수는 그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을 온 가족과 함께 기뻐하였다.

우리말성경,34 간수는 그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그는 자신과 온 가족이 하나님을 믿게 된 것으로 인해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가톨릭성경,34 이어서 그들을 자기 집 안으로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하고,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을 온 집안과 더불어 기뻐하였다.

영어NIV,34 The jailer brought them into his house and set a meal before them; he was filled with joy because he had come to believe in God–he and his whole family.

영어NASB,34 And he brought them into his house and set food before them, and rejoiced greatly, having believed in God with his whole household.

영어MSG,34 There in his home, he had food set out for a festive meal. It was a night to remember: He and his entire family had put their trust in God; everyone in the house was in on the celebration.

영어NRSV,34 He brought them up into the house and set food before them; and he and his entire household rejoiced that he had become a believer in God.

헬라어신약Stephanos,34 αναγαγων τε αυτους εις τον οικον αυτου παρεθηκεν τραπεζαν και ηγαλλιασατο πανοικι πεπιστευκως τω θεω

라틴어Vulgate,34 cumque perduxisset eos in domum suam adposuit eis mensam et laetatus est cum omni domo sua credens Deo

히브리어Modern,34 ויעלם אל ביתו וישם שלחן לפניהם ויגל עם כל ביתו על היותו מאמין באלהים׃

성 경: [행16:34]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이적적 출옥 및 간수의 회심]

󰃨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 바울과 실라가 얼마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허기진 상태에 있었음을 암시한다. 마샬(Marshall)은 이 식사와 함께 성만찬이 베풀어졌을 수도 있다고 추정한다. ‘자기집에 올라가서’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서 간수의 집이 꼭 윗층에 있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마당에서 방으로, 그리고 식당으로 모시고 들어갔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Lenski).

󰃨 크게 기뻐하니라 – 간수와 식구들의 이러한 갑작스런 변화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절망적인 자살의 순간에 구원의 길로 들어선 간수의 심정을 헤아려 보라. 이는 바로 복음의 역사가 아닌가! 한편 누가는 불필요한 세목들을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추측컨대 바울과 실라는 이 일을 마치고 다시 감옥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헤메라스 데 게노메네스 아페스테일란 호이 스트라테고이 투스 랍두쿠스 레곤테스 아폴뤼손 투스 안드로푸스 에케이누스

개역개정,35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새번역,35 날이 새니, 치안관들은 부하들을 보내어, 그 두 사람을 놓아주라고 명령하였다.

우리말성경,35 날이 밝자 로마 관리들이 부하들을 보내 간수에게 명령했습니다. “그 사람들을 풀어 주라.”

가톨릭성경,35 날이 밝자 행정관들은 시종들을 보내어, “그 사람들을 풀어 주어라.” 하고 말하였다.

영어NIV,35 When it was daylight, the magistrates sent their officers to the jailer with the order: “Release those men.”

영어NASB,35 Now when day came, the chief magistrates sent their policemen, saying, “Release those men.”

영어MSG,35 At daybreak, the court judges sent officers with the instructions, “Release these men.”

영어NRSV,35 When morning came, the magistrates sent the police, saying, “Let those men go.”

헬라어신약Stephanos,35 ημερας δε γενομενης απεστειλαν οι στρατηγοι τους ραβδουχους λεγοντες απολυσον τους ανθρωπους εκεινους

라틴어Vulgate,35 et cum dies factus esset miserunt magistratus lictores dicentes dimitte homines illos

히브리어Modern,35 ובחית הבקר שלחו השרים את השוטרים לאמר שלח את האנשים ההם׃

성 경: [행16:35]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명예로운 석방]

󰃨 날이 새매…놓으라 하니 – 상관은 아전(lictor, 22절 주석을 보라)을 시켜 두 사람의 유대인을 풀어주도록 하였다. 갑작스런 상관들의 태도변화에 객관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이유에서인지 어떤 서방 사본은 이 부분을, 날이 새매 상관들은 시장의 광장으로 갔고, 지난 밤의 지진을 상기하면서 두려워하며 아전을 보냈다고 해석하고 있다. 닐(Neil)도 이러한 입장을 취한다. 누가는 직접적인 지식이 없을 때에는 가급적 사실 자체만을 기록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정확한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아마도 상관들은 공적인 태형과 하룻밤의 투옥으로 그들의 의도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던 듯하다(Lenski, Haenchen, Marsall). 혹은 그 상관들이 바울과 실라에 대한 송사가 거짓된 것임을 발견하고 그들을 석방하도록 명령했다고 해석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Lenski)

아펭게일렌 데 호 데스모퓔랔스 투스 로구스 투투스 프로스 톤 파울론 호티 아페스탈칸 호이 스트라테고이 히나 아폴뤼데데 뉜 운 엨셀돈테스 포류에스데 엔 에이레네

개역개정,36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새번역,36 그래서 간수는 이 말을 바울에게 전하였다. “치안관들이 사도님들을 놓아주라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러니 이제 나오셔서, 평안히 가십시오.”

우리말성경,36 그러자 간수가 바울에게 “저희 관리들이 당신과 실라를 풀어 주라고 전갈을 보냈으니 이제 나와 평안히 가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가톨릭성경,36 그래서 간수가 바오로에게 그 말을 전하였다. “행정관들이 여러분을 풀어 드리라고 시종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니 이제 나오셔서 평안히 가십시오.”

영어NIV,36 The jailer told Paul, “The magistrates have ordered that you and Silas be released. Now you can leave. Go in peace.”

영어NASB,36 And the jailer reported these words to Paul, saying, “The chief magistrates have sent to release you. Now therefore, come out and go in peace.”

영어MSG,36 The jailer gave Paul the message, “The judges sent word that you’re free to go on your way. Congratulations! Go in peace!”

영어NRSV,36 And the jailer reported the message to Paul, saying, “The magistrates sent word to let you go; therefore come out now and go in peace.”

헬라어신약Stephanos,36 απηγγειλεν δε ο δεσμοφυλαξ τους λογους τουτους προς τον παυλον οτι απεσταλκασιν οι στρατηγοι ινα απολυθητε νυν ουν εξελθοντες πορευεσθε εν ειρηνη

라틴어Vulgate,36 nuntiavit autem custos carceris verba haec Paulo quia miserunt magistratus ut dimittamini nunc igitur exeuntes ite in pace

히브리어Modern,36 ויגד שמר האסורים לפולוס את הדברים האלה לאמר שלחו השרים לפטר אתכם ועתה צאו ולכו בשלום׃

성 경: [행16:36]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명예로운 석방]

󰃨 평안히 가라 – 누가는 이 인사말을 통해 간수의 회심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이 인사말은 그리스도인들의 자주 사용하였던 유대식 인사인 것이다(눅8:48).

호 데 파울로스 에페 프로스 아우투스 데이란테스 헤마스 데모시아 아카타크리투스 안드로푸스 로마이우스 휘파르콘타스 에발란 에이스 퓔라켄 카이 뉜 라드라 헤마스 엨발루신 우 가르 알라 엘돈테스 아우토이 헤마스 엨사가게토산

개역개정,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새번역,37 바울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치안관들이 로마 시민인 우리를 유죄 판결도 내리지 않은 채 공공연히 때리고 감옥에 가두었다가, 이제 와서, 슬그머니 우리를 내놓겠다는 겁니까? 안됩니다. 그들이 직접 와서 우리를 석방해야 합니다.”

우리말성경,37 그러자 바울이 그 부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로마 시민임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재판도 없이 공개 석상에서 우리를 때리고 감옥에 처넣고는 이제 와서 우리를 몰래 내보내려 하시오? 그들이 직접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라고 하시오.”

가톨릭성경,37 그때에 바오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로마 시민인 우리를 재판도 하지 않은 채 공공연히 매질하고 감옥에 가두었다가 이제 슬그머니 내보내겠다는 말입니까? 안 됩니다. 그들이 직접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합니다.”

영어NIV,37 But Paul said to the officers: “They beat us publicly without a trial, even though we are Roman citizens, and threw us into prison. And now do they want to get rid of us quietly? No! Let them come themselves and escort us out.”

영어NASB,37 But Paul said to them, “They have beaten us in public without trial, men who are Romans, and have thrown us into prison; and now are they sending us away secretly? No indeed! But let them come themselves and bring us out.”

영어MSG,37 But Paul wouldn’t budge. He told the officers, “They beat us up in public and threw us in jail, Roman citizens in good standing! And now they want to get us out of the way on the sly without anyone knowing? Nothing doing! If they want us out of here, let them come themselves and lead us out in broad daylight.”

영어NRSV,37 But Paul replied, “They have beaten us in public, uncondemned, men who are Roman citizens, and have thrown us into prison; and now are they going to discharge us in secret? Certainly not! Let them come and take us out themselves.”

헬라어신약Stephanos,37 ο δε παυλος εφη προς αυτους δειραντες ημας δημοσια ακατακριτους ανθρωπους ρωμαιους υπαρχοντας εβαλον εις φυλακην και νυν λαθρα ημας εκβαλλουσιν ου γαρ αλλα ελθοντες αυτοι ημας εξαγαγετωσαν

라틴어Vulgate,37 Paulus autem dixit eis caesos nos publice indemnatos homines romanos miserunt in carcerem et nunc occulte nos eiciunt non ita sed veniant

히브리어Modern,37 ויאמר פולוס אליהם הכה הכונו נגד כל העם בלא דין ומשפט ואנחנו אנשים רומיים וישליכו אתנו במשמר ועתה נסתר יגרשונו אל נא כי אם יבאו המה ויוציאונו׃

성 경: [행16:37]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명예로운 석방]

󰃨 바울이 이르되…나가야 하리라 한대 – 당시 아구스도 칙령(Edicts of Augustus)에 의해 확정되고 발전된 발레리안과 포르시안법(Valerian and Porcian laws)에 따르면, 로마 시민은 로마의 보호 아래 로마 행정지역의 어느곳이나 여행하며, 본인의 동의하에서만 지방법률에 따라 재판을 받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뿐만아니라 곤란한 문제일 경우에는 지방 당국이 아닌 황제 자신에게 재판을 받기위해 호소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로마 시민의 항소권에 대해서는 22:25-29;25:9-12;26:32;28:16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때리고’의 헬라어 ‘데로'(*)는 ‘가죽을 벗는다’는 뜻으로서 태장의 정도가 어느정도인지 짐작케 해준다. 그리고 ‘아카타크리투스'(*,’죄도 정치 아니하고’)는 이곳과 22:25에만 등장하는데 이 단어의 뜻은 ‘재판에 붙여지지 않았다’이다. 상관들은 재판도 열지 않은 채 태장을 가하고 그들을 투옥함으로써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혹자는 바울 등이 왜 좀더 일찍 로마 시민권을 주장하지 않았는가에 대해 의아심을 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추측컨대, 그러한 주장은 군중의 소동과 함성(喊聲)의 분위기 속에서 묻혀버렸을 것으로 보인다.

아펭게일란 데 토이스 스트라테고이스 호이 랍두코이 타 헤마타 타우타 에포베데산 데 아쿠산테스 호티 로마이오이 에이신

개역개정,38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새번역,38 관리들이 이 말을 치안관들에게 전하니, 그들은 바울과 실라가 로마 시민이라는 말을 듣고서 두려워하였다.

우리말성경,38 부하들이 그대로 자기 관리들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실라가 로마 시민이라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가톨릭성경,38 그 시종들이 이 말을 전하자, 행정관들은 바오로와 실라스가 로마 시민이라는 말을 듣고 불안해하며,

영어NIV,38 The officers reported this to the magistrates, and when they heard that Paul and Silas were Roman citizens, they were alarmed.

영어NASB,38 And the policemen reported these words to the chief magistrates. And they were afraid when they heard that they were Romans,

영어MSG,38 When the officers reported this, the judges panicked. They had no idea that Paul and Silas were Roman citizens.

영어NRSV,38 The police reported these words to the magistrates, and they were afraid when they heard that they were Roman citizens;

헬라어신약Stephanos,38 ανηγγειλαν δε τοις στρατηγοις οι ραβδουχοι τα ρηματα ταυτα και εφοβηθησαν ακουσαντες οτι ρωμαιοι εισιν

라틴어Vulgate,38 et ipsi nos eiciant nuntiaverunt autem magistratibus lictores verba haec timueruntque audito quod Romani essent

히브리어Modern,38 ויגידו השטרים לשרים את הדברים האלה ויהי כשמעם כי רומיים הם וייראו׃

성 경: [행16:38]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명예로운 석방]

󰃨 로마 사람이라…두려워하여 – 어쨌든 상관들이 바울과 실라에게 취한 행위는 심각한 위법 행위였고, 이것이 상부 기관에 보고되면 충분한 문책 사유가 될 것이 분명했으므로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여기서 바울이 자신의 로마 시민권을 내세운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첫째는 새로 탄생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바울은 복음에 유익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도구로 사용할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빌1:18). 둘째는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물론 애매한 고난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위해 참으면 아름다운 일이 될 수 있겠지만(벧전2:19), 그 고난 자체가 즐거운 일일 수는 없는 것이다.

카이 엘돈테스 파레칼레산 아우투스 카이 엨사가곤테스 에로톤 아펠데인 아포 테스 폴레오스

개역개정,39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새번역,39 그래서 치안관들은 가서 그들을 위로하고, 데리고 나가서, 그 도시에서 떠나 달라고 청하였다.

우리말성경,39 그들은 직접 감옥까지 와서 사정사정하며 바울과 실라를 정중히 모시고는 그 도시를 떠나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가톨릭성경,39 그들에게 가서 사과하고는, 그들을 데리고 나가 그 도시에서 떠나 달라고 요청하였다.

영어NIV,39 They came to appease them and escorted them from the prison, requesting them to leave the city.

영어NASB,39 and they came and appealed to them, and when they had brought them out, they kept begging them to leave the city.

영어MSG,39 They hurried over and apologized, personally escorted them from the jail, and then asked them if they wouldn’t please leave the city.

영어NRSV,39 so they came and apologized to them. And they took them out and asked them to leave the city.

헬라어신약Stephanos,39 και ελθοντες παρεκαλεσαν αυτους και εξαγαγοντες ηρωτων εξελθειν της πολεως

라틴어Vulgate,39 et venientes deprecati sunt eos et educentes rogabant ut egrederentur urbem

히브리어Modern,39 ויבאו ויחלו פניהם ויוציאום וישאלו מהם לצאת מן העיר׃

성 경: [행16:39]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명예로운 석방]

󰃨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 헬라어 ‘에로톤'(*, ‘청하다’)의 미완료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상관들이 계속하여 떠나기를 청하였으나, 이에 대해 바울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Lenski). 상관들이 바울일행에게 빌립보를 떠나도록 요구한 이유는 머무를 경우 상관들의 범법 행위가 로마 식민지 도시 전체에 알려지게 돼, 자신들에게 화가 미칠 것을 우려한 까닭이었다. 둘째는 귀신들린 소녀의 주인들과 같은 사람들이 몰려와 계속적으로 바울과 실라의 처벌을 요구할 경우, 그들 자신이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엨셀돈테스 데 아포 테스 퓔라케스 에이셀돈 프로스 텐 뤼디안 카이 이돈테스 파레칼레산 투스 아델푸스 카이 엨셀단

개역개정,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새번역,40 두 사람은 감옥에서 나와서 루디아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신도들을 만나 그들을 격려하고 떠났다. / ㉦그, ‘형제들’

우리말성경,40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나온 뒤 루디아의 집으로 가 형제들을 만나 위로해 주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가톨릭성경,40 이렇게 그들은 감옥에서 나와, 리디아의 집으로 가서 형제들을 만나 격려해 주고 떠났다.

영어NIV,40 After Paul and Silas came out of the prison, they went to Lydia’s house, where they met with the brothers and encouraged them. Then they left.

영어NASB,40 And they went out of the prison and entered the house of Lydia, and when they saw the brethren, they encouraged them and departed.

영어MSG,40 Walking out of the jail, Paul and Silas went straight to Lydia’s house, saw their friends again, encouraged them in the faith, and only then went on their way.

영어NRSV,40 After leaving the prison they went to Lydia’s home; and when they had seen and encouraged the brothers and sisters there, they departed.

헬라어신약Stephanos,40 εξελθοντες δε εκ της φυλακης εισηλθον εις την λυδιαν και ιδοντες τους αδελφους παρεκαλεσαν αυτους και εξηλθον

라틴어Vulgate,40 exeuntes autem de carcere introierunt ad Lydiam et visis fratribus consolati sunt eos et profecti sunt

히브리어Modern,40 ויצאו מן המשמר ויבאו אל בית לודיא ויראו את האחים ויזהירום וילכו לדרכם׃

성 경: [행16:40]

주제1: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주제2: [명예로운 석방]

󰃨 두 사람이…위로하고 가니라 – ‘호이아델포이'(*, ‘형제들’)라는 용어를 보아 추측컨대, 이때 이미 루디아와 그의 가족들, 귀신들렸던 소녀 들을 중심으로 빌립보 교회가 구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교회는 누가의 지도하에(17절 주석 참조), 새로 탄생한 교회들 중 가장 훌륭한 교회로 성장하였다. 바울은 로마에서 구금생활을 하고 있을 때인 A.D.62년경 빌립보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그 교회의 ‘감독들’과 ‘집사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빌1:1) 상담과 권면의 내용을 적고 있다(빌2:25-30;4:10-19). 한편 상관들이 전도자들을 추방할 수 있는 어떠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바울 일행이 빌립보를 떠난 것은 꼭 상관들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그들은 빌립보에서의 사역을 완수하여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또한 다른 곳에서는 그들의 사역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Lenski). 그러나 누가는 빌립보에 남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10절에서 시작되었던 ‘우리’ 문장은 17절에서 끝났다가 20:5 빌립보에서 다시금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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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장 성경말씀] 바울의 새로운 동역자 디모데(행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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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도행전 16장 성경말씀 중에서 바울의 새로운 동역자 디모데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바울이 데베와 루스드라에 이르렀을 때 디모데를 만나게 됩니다. 디모데의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이며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습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서 칭찬받는 자였습니다. 바울은 새로운 동역자 디모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사람을 붙여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 사람을 붙이고 환경을 열어 주십니다.

바울의 새로운 동역자 디모데(행 16:1-5)

행16: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행16: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행16: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행16: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행16: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의 앞부분은 아주 간단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겨우 그들이 지나갔던 지명만 나열하고 있습니다. 15:41에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을 지나갔다는 것을 기록하고, 16:1에 더베와 루스드라 지방에 도착하였다고 기록합니다. 더베와 루스드라는 1차 전도여행 때에 지나갔던 지방입니다. 이렇게 짧은 기록으로 나오는 것에서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은 길리기아 지방을 경유하여서 갔다는 것입니다. 제1차 전도여행의 첫 번째 지역은 구브로입니다. 왜 전도여행의 첫 번째 지역을 구브로로 택하였는가를 설명할 때 제1차 전도여행의 리더인 바나바의 고향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바나바는 바울과 헤어져서 따로 전도여행을 갈 때에도 구브로를 목적지로 삼고 갔다는 것을 15:39에서 기록합니다.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을 출발하면서 첫 번째로 간 지역이 길리기아라고 되어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21:39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여기에서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라는 곳이 고향인 것을 알게 됩니다. 사도행전 11:25,26에도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컫음을 받게 되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바울은 길리가아 다소에서 태어나서 자라다가 성인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살았다고 생각됩니다. 그 후에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또 다시 고향 다소에 가서 얼마 동안을 조용히 지내다가 바나바를 통해서 안디옥교회에서 봉사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바울의 모습에서 고향이란 자랄 때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어려울 때, 힘든 때에 생각나는 곳이란 것을 알게 됩니다. 추석을 맞이하여서 수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서 고향이 참으로 중요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울은 그가 실질적인 전도여행의 리더가 되어서 제2차 전도여행을 출발할 때 제일 먼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간 것은 고향에 복된 소식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전반부에 지나간 지역은 아주 간단히 기록되어 있는 것과 비교적으로 함께 동행하게 된 인물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것을 우리는 관심 있게 보아야 합니다. 지난주에는 바울의 동역자 실라에 대하여 살펴보았고, 오늘은 디모데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난 디모데

디모데에 대하여 성경이 설명하는 첫 번째 내용이 오늘 본문입니다. 여기에서 디모데를 처음 소개하면서 16:1에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고 말합니다. 어머니는 유대인인데, 아버지는 헬라인이라는 사실을 제일 먼저 밝히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신명기 7:3-4를 보면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라고 기록하여서 유대인은 다른 민족과 결혼하는 것을 강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모데의 어머니는 헬라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짐작할 때에 디모데의 부모는 유대인의 그 전통을 잘 지켜오지를 못하였기에 유대인들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였으리라고 봅니다. 유대인은 태어난 지 팔일만에 할례를 행하는데도 디모데가 자랐을 때까지 할례 받지 못한 것은 디모데의 어린 시절이 그다지 좋은 환경이 못되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리고 디모데후서 1:5에 보면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라는 구절에서 디모데의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기록이 없습니다.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16:3에서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에서 동사가 과거로 되어있는 것을 볼 때 아마도 디모데의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추측합니다. 정리한다면 어머니의 혼합 결혼, 그로 말미암는 불완전한 유대인,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남으로 디모데의 자라난 환경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2. 그럼에도 칭찬받는 디모데

태어난 환경은 사람이 선택할 수 없지만, 살아가는 환경은 스스로 만들 수 있습니다. 디모데를 소개할 때 두 번째 설명하는 말은 16:2에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것은 그의 행동이 선하고 깨끗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공적으로 인정함을 받는 자라는 표입니다. 교회의 직분자가 선택될 때에 제일 먼저는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후에 사람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말할 때 내적 증거와 외적 증거라고 합니다. 내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신앙이 분명할 뿐 아니라, 외적으로는 믿는 형제들에게 인정을 받는 자라야 참된 일꾼입니다.

3.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는 디모데

6:4를 보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회의의 결과로 생긴 규례입니다. 이 규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이방인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하여 구원을 위해서는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을 제일 먼저 바울이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와 함께 디모데를 전도여행에 동행하고자 할 때에 6:3에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 행동을 어떻게 설명하여야 합니까? 어떻게 보면 바울의 행동이 일관성이 없는 행동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것은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고전 9:20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바울과 디모데는 어떻게 하든지 복음을 전해야 하겠다는 그 마음으로 수고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수고의 결과가 16:5에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겔 4장 히브리어 강해] 예루살렘에 닥칠 기근 예언(겔 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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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장. 사람이 아니라 성령님이 주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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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내용

16장. 사람이 아니라 성령님이 주도하신다. (찬 185)

1. 사도 바울과 디모데의 섭리적 만남이 기록되어 있다(1~5). 1차 전도여행 중 루스드라에서는 열매에 대한 언급은 없이 바울은 돌에 맞아 거의 죽을 뻔 했었지만(행 14:8~19), 하나님은 여기서 새로운 열매를 준비하셨다. 그 열매는 사도 바울의 삶과 사역에 가장 소중한 영적 아들 디모데였다. 아마 사도의 루스드라 방문 때 디모데의 경건한 유대인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가 바울의 설교를 들었을 것이고, 다시 루스드라를 방문한 바울에게 자신들의 손자요, 아들인 디모데를 맡기게 되었을 것이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거의 죽는 것을 본 디모데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디모데를 바울의 손에 맡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혈육을 복음의 사역을 위해 드리는 그들의 신앙을 바울은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기억했다(딤후 1:5). 디모데의 아버지가 헬라인이었기에 바울은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였다. 바울의 루스드라 사역은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가 생각하는 결과를 주시지 않을 때가 있지만 그때에도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나은 것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 이외에 바울 사도는 이방인의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사항을 전달했는데, 그 결과 교회들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믿는 자의 수도 날마다 더해지는 역사가 있었다(5). 이 말로써 누가는 아시아에서의 복음 사역을 정리하고 있다. 이제 그는 어떻게 복음이 유럽으로 확장되었는지 기록할 것이다.

2. 아시아에서 계속 복음을 전하려던 바울 사도의 계획은 성령님의 주도로 막히고, 바울은 유럽으로 이끌려가게 된다(6~10). 특별한 방식으로 성령님께서는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6). 아시아는 오늘날 터키 서부의 광대한 주(지역)를 가리킨다. 성령님께서 막으시는 것을 인식한 바울은 계속 다른 곳으로 가려고 시도해보지만,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셨다(7). 성령님은 예수의 영으로 불린다. 바울이 터키 서부의 항구도시 드로아에 이르자,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바다 건너 마게도냐 사람이 와서 도와달라고 부르짖는 환상을 보여주셨다.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인정했고 유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10). 복음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간 것은 성령님의 주도적 사역이었다.

3. 유럽 마게도냐(오늘날의 그리스)의 첫 도시 빌립보에 이르러 바울 일행이 한 일은 기도처를 찾는 일이었다. 이것은 당시 빌립보에 회당을 설립할만한 수의 유대인들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루디아는 이방인으로서 유대교로 개종한 여인(하나님을 섬기는)이었다(14). 그 와중에 바울은 강가에 모인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중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케 하셨다(14). 사람의 마음을 열어서 복음의 진리를 믿어 순종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이다! 이렇게 루디아의 집 모든 식구가 다 믿어 세례를 받고 유럽의 첫 열매가 되었다. 그들은 전도 계획을 모색하며 기도에 전념하는 사도 일행을 자기들의 집으로 영접하였다(15~16). 기도하러 가는 바울 일행을 좇아오면서 소리를 질러서 바울의 정체를 드러내는 귀신 들린 여종을 보던 바울은 참다 못하여 귀신을 쫓아내게 되는데, 이 사건은 귀신들린 여자를 이용하여 돈을 벌던 주인들로 하여금 바울 일행을 고소하게 만든다. 결국 잡혀서 매를 많이 맞고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그 고통 속에서도 계속 기도하며 찬송을 하는데 죄수들은 그것을 들었다(25). 그리고는 옥터가 흔들리는 지진이 일어나 문이 다 열리고 모든 죄수들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죄수들이 다 도망한 줄 알고 자결하려는 간수를 소리질러 말리자, 간수는 즉각적으로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물으며 사도 앞에 엎드렸다. 결국 간수와 모든 가족이 그 밤에 복음을 듣고 믿어 세례를 받게 됨으로써 하나님은 빌립보에서 두 번째 신자의 가족을 만들어주셨다. 물론 귀신들렸다가 귀신이 쫓겨나간 그 여종도 빌립보 교회의 첫 멤버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4. 이튿날 바울 일행을 석방하라는 결정이 내려지자, 바울은 자신의 로마시민권을 근거로 항의를 한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권리 주장이 아닌, 빌립보에 세워질 교회의 영예를 위한 행위로서, 바울 일행이 소동을 일으키는 불법한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려는 항의였다. 이렇게해서 유럽의 첫 성 빌립보에 유럽의 첫 교회가 설립되었다.

5. 복음의 역사는 인간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주도하신다. 오늘날도 그렇다. 성령님께서는 교회가 행하는 모든 전도와 선교를 주도하신다. 우리는 예민하게 그 인도하심을 알아차리고 순종해야 하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닐 수 있다. 순종은 평탄한 길을 보장하지 않는다. 빌립보로 인도한 분은 성령님이셨지만, 거기서 그들은 심한 매질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은 간수와 그 가족을 찾아가 구원하셨다. 또한 루디아처럼 성령님께서 마음을 열어 주시는 사람은 구원을 얻는다. 복음 사역 속에서 성령님은 이렇게 우리를 인도하신다.

6. “하나님 아버지, 성령님을 통하여 저희 평생에 많은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저희 눈에 아무 열매도 보이지 않을 때에는 성령님께서 더 좋은 열매를 만들고 계심을 알고, 인위적으로 열매를 만들려는 헛된 수고들로부터 저희를 지켜주시옵소서.”

Center for Excellence in Preaching

오늘 본문은 누가가 이야기 해 주는 땅 끝까지 전해지는 복음의 역사에서 느낌표와 같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 그렇게 먼 지평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우리를 그 곳에 데려다 줄 모든 주제들과 배역들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세상을 정복 할 그런 모든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구원 메시지가 오늘 본문과 앞에서 말한 정복 이야기의 중심이 됩니다. 오늘 이야기는 귀신 들린 여종의 이야기에서 출발하며, 성령으로 변화된 간수의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그 여종은 바울과 실라가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소리 지릅니다. 그리고 그 간수는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라까?”라고 묻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세상을 변화 시킬 대답을 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오늘 본문을 설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구원이 오늘 이야기의 핵심임을 밝히면서 이 이야기를 풀어 이야기 해주면 됩니다.

사도행전 16장에는 두 개의 구원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치 누가가 그 두 이야기의 느낌과 색채가 너무 달라서 그 두 이야기를 선택한 것처럼 보입니다. 루디아의 이야기는 달콤함과 빛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녀는 비록 헬라 사람이었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친절하고 관대하며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즐거이 복음을 마음으로 받아 들이고 그 복음 전도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 이야기는 노예와 귀신들, 착취와 반유대주의, 폭력과 감금 등 이교주의가 가지고 있는 어두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조차, 어둠의 땅에서 조차, 복음은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고대 사회를 주름 잡던 헬라-로마 문화 안으로 스며들어간 복음 이야기의 중요한 서곡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바울가 실라가 기도할 곳을 향해 가면서 시작됩니다. 그 곳은 유럽에서 가정 교회를 이끌던 첫 번째 여성 이방인인 루디아를 처음으로 만났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번에는 가는 길에 아주 다른 여성을 만납니다. 이 여성은 여종이었는데, 두 가지 방식으로 노예로 매여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인간 주인들에게 종으로 있었고, 두 번째는 더욱 심각하게도 그녀에게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을 준 귀신에게 붙들려 있었습니다.

이 귀신을 일컫는 헬라어 단어에는 아주 길고 어두운 역사가 있습니다. 그 단어는 ‘파이톤(python)’이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자신의 먹이로부터 생명을 쥐어짜는 커다란 뱀을 일컫는 영어 단어와 발음이 비슷합니다. 정확하게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뱀이나 심지어 용을 일컬을 수도 있습니다. 고대 신화에 보면 파이톤은 델파이 신전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고, 예언을 했던 전설적인 존재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불쌍한 여종은 인간적으로도 어둠에 살았고 귀신의 노예였던 것입니다. 계시록 12장에 등장하는 용을 떠올리다면 너무 과장일까요? 이 여종은 당장이라도 구원이 필요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종이 바울과 바울과 함께 있던 전도 팀에 대해서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바울은 그 여종으로 인해 몹시 괴로워하였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아마도 그 여종이 매일 매일 바울을 따라다니며 같은 소리를 반복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 여종이 말한 지극히 높은 하나님이라는 말이 바울이 믿는 하나님이 여러 신들 중에 하나라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복음의 메시지가 어둠에게 잡혀 있는 그 여종의 입으로 나오는 것을 바울이 좋아 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말했을 때 잠잠하라 하셨던 예수님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을 괴롭혔던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누구에게 묻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습니다. 그 여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그 귀신으로부터 구원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즉시로 그녀는 그녀를 사로잡고 있던 어둠으로부터 놓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여종은 그녀의 “은사”로부터 부를 취하고 있던 주인들의 탐욕스러운 손아귀에서는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 귀신 없이는 그 여종이 점을 칠 수 없었으므로 그녀의 주인들은 분노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그들의 수입원을 잃어버렸고 그 사실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 성난 주인들로 인해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사건은 잠시 후에 살펴보겠습니다. 그런데 이 여종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앞선 구원 받은 이야기에서, 루디아는 예수의 이름 앞에 대면하였고 그 결과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불쌍한 여종은 어떨까요? 그녀는 귀신으로부터는 구원 받았는데, 그녀의 영혼은 구원 받았을까요? 어떤 학자들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사건은 단지 이 복음 전도자들이 자신들의 그물을 더 넓힐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만 한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그 여종의 천한 신분이 그들이 극복하기에는 너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바울이 말한 “종도 아니요 자유인도 아닌”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나아감에 있어서는 상당한 진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을 “구원의 길을 전하는 자”라고 소개한 이 여종은 아마도 그 도를 듣고 믿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성령께서 그 예언하는 귀신을 대신하셨고 그녀의 마음을 여셔서,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루디아의 교회의 일원이 되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 일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바울과 실라에게 일어난 일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로마 사법체계에의해 묶여 버렸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들이 겪은 첫번째 일이이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가난해진 분노한 그 여종의 주인들은 바울과 실라를 장터로 로마 관원들에게 끌고 갔습니다. 처음에는 관리들에게 그 다음에게는 상관들에게 데려갔는데, 이는 로마의 지방 사법 체계를 이루는 두 계층의 사람들입니다.

몹시 화가 난 그 주인들은 바울과 실라를 고발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생계 수단이 빼았겼다는 혐의로 고발한 것이 아니라(그들 자신의 인상에 그림자를 드리울 만한 혐의였을 것입니다), 세 가지 다른 심각한 혐의들에 대해 고발했습니다. 첫번째는 반 유대주의적 공격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그 뿐 아니라, 그들이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평화를 교란한다고 고발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고 하면서 합당치 못한 종교를 퍼뜨리고 다닌다고 고발했습니다.

이 마지막 혐의로 말미암아 관원들과 듣고 있던 군중들은 폭동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에서 하지 말아야만 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로마 군인들에 의해 얻어지고 로마법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위대한 평화인 ‘팍스 로마나(Pax Romana)’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이제 큰 곤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그들을 구해줘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벗겨지고, 매 맞고, 감옥 가장 깊은 곳에 던져졌습니다. 그 곳에서 그들의 발은 차꼬에 채워져 독방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복음 역사에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로마가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려고 하는 이 용감한 사람들 앞에 그 발톱을 드러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이러한 폭동으로 인해 다시 한 번 복음 전도의 계기가 되었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바울 안에 계신 성령이 그 여종 안에 있는 귀신 보다 더 강한 분이었을 뿐 아니라, 바울이 섬기는 주님이 이 로마 사람들이 섬기던 시이저보다 더 강하셨던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이 사실을 알았기에, 그들은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송을 불렀고, 그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듣고 놀랐습니다. 그 때 주 예수께서 누가 진정으로 이 모든 일의 주관자이신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지진과 함께 주님께서는 감옥의 기초를 흔드셔서, 감옥 문들을 여시고, 모든 사람들의 차꼬를 풀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그 감옥의 간수는 놀라 깨어서 감옥으로 달려갔고, 감옥 문들이 열린 것을 보자 자살하려고 칼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제 그 간수야말로 구원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칼을 빼어 들자, 바울이 소리쳤습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그들은 왜 다 거기에 있었을까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로마의 사법 체계 안에서 죄인이 아닐 것 같은 또 다른 한 사람을 구원하심으로써 이 중요한 순간을 복음이 진전하는 계기로 삼으시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사도행전 10장에서 로마 군인 한 사람이 구원 받은 사건을 봤습니다.)

간수가 한 유명한 질문은 약간은 갑작스런 질문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단지 그가 자신의 직무 유기로 인해 상관들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 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로마의 형벌을 피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만 합니까?

그러나 여기에 좀 더 그럴듯한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빌립보 시민으로서 그는 이 여종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여종이 말하는 구원의 길에 대해 들어본 적도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그는, 소위 그들의 범죄가 너무 커서 감옥에 마땅히 갇혀야 할 이 사람들에 대해서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그는 바울과 실라가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가 묻고 있는 것은 아주 다른 종류의 구원, 궁극적인 구원을 묻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이 사람에 대해 확실히 이해하는 바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가 온 세상에 전하고 있던 바로 그 복음을 그에게 전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데 그것이 이 이야기의 끝은 아닙니다. 복음에는 그 몇 마디 말보다 더 많은 내용이 있기 때문이며, 회심에는 예수님을 믿겠다는 순간적인 결정보다 더 많은 것들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사도행전 2장과 4장에서 말씀하는 것과 같이 교회 생활에 대해 더 많은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세례 전에 좀 더 온전한 가르침은 필수였습니다. 간수는 자기 자신이 세례의 물로 씻겨지기 전에, 그는 전도자들의 상처를 씻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자신의 집에 데리고 와서 그들 앞에 음식을 베풀었습니다. 여기에 성찬식의 힌트가 있지 않을까요? 세례 후에 있는 성찬식?

다른 말로 하면, 이 이야기는 루디아의 집에서 있었던 일 처럼 뒤 이은 후한 접대와 큰 기쁨으로 끝이 납니다. 간수 뿐만 아니라, 온 집안이 회심했기 때문입니다. 그 간수의 집안에 대한 이러한 강조에는 하나님께서 항상 그의 백성들을 다루어 오시는 방식인 언약적 방식에 그 뿌리가 있습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창 17:7).”

더 나아가서 온 가족이 구원 받은 사실은 빌립보에 또 하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있어서 필수적입니다. 한 사람의 개인이 아니라, 온 가족이 구원 받았습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구원이 교회에 의해 선포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구원은 결국 교회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오늘 날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운동의 비극과 기형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빌립보 로마 간수의 가정에 새로운 가정 교회가 세워지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교회는, 후에 예수께서 만유의 주로 선포되어질 광대한 로마 제국의 사법 체계에도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화 아이디어

많은 설교자들이 성 프란시스(St. Francis of Assisi)의 말로 알고 인용하는 인용구가 있습니다. “항상 복음을 전하라. 필요하면 말(言)을 사용하라.” 그런데 불행하게도 프란시스(Francis)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더욱 불행한 일은, 이 인용구가 말로 하는 전도와 행위로 하는 전도가 서로 양립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이게 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오늘 이야기가 보여주고 있듯이, 말로 하는 전도를 위한 무대를 놓은 것은 선한 행동들입니다. 만일 바울과 실라가 자신들이 불공정하게 갇힌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양하지 않았다면, 지진 후에 감옥 문이 열렸을 때 감옥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용감하게 거절하지 않았다면, 그 간수가 보여줬던 것처럼 그렇게 그가 수용적이었을지는 의문입니다. 반면, 바울과 실라가 간수의 간절한 질문에 분명한 말로 대답하지 않았다면, 그 간수는 구원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선한 행위를 많이 한다고 어떤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행위들은 그 행위들을 하는 사람들의 선함을 증명해 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참된 말만 가지고 어떤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을 하는 전도자들이 자신들의 삶을 통하여 그 말들의 진실됨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 말들은 공허한 울림이 될 뿐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자신들이 감옥에 갇힌 사건에 대해 삶으로 반응함으로 예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고, 간절한 질문에 대해 대답함으로써 예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선언했던 것입니다.

호크마 주석, 사도행전 16장

=====16: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 이 지명들은 14:6에도 등장하는데, 그때와는 다르게 지명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 이는 바울이 1차 전도여행때와는 달리 동쪽으로부터 전도를 하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 바울의 1차 전도여행시 개종한 것으로 알려지는 디모데가 채 1년도 안돼 시행된 2차 전도여행때에 벌써 ‘제자’라고 불리었다는 것은 디모데의 어릴 적 성장배경과(딤후3:15) 그 신앙의 열심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편 고전 4:17에서 디모데는 바울에 의해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이라고 불리운다. 바울이 그와 의기 투합한 다른 이들 모두에게 ‘내 아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걸로 보아,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호칭은 단순히 ‘뜻이 맞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여겨진다(Lenski). 그 모친은…헬라인이라 –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인’ 곧 이방인이었다. 이를 볼 때 디모데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유대 신앙에 돈독(敦篤)하지 않았거나(Lenski) 혹은 소아시아 지역이 예루살렘보다 허약한 유대적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Neil). 이렇듯 유대적 전통에 철저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독교 복음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유대인의 법에서는 아이가 어머니의 종교를 따르도록 되어 있는데 디모데가 그때까지 할례조차 받지 않은 것은 유대 전통에 대한 그 어머니의 태도를 명백히 보여준다. 또한 3절의 미완료동사 ‘휘페르켄'(* , ‘그는…였다’)을 볼 때 이방인(헬라인)이었던 디모데의 아버지는 이미 사망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16:2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이라는 지명이 함께 거론된 것은, 루스드라와 더베, 이고니온 등이 서로 인접해 있어서(루스드라와 이고니온의 거리는 31km) 상업 등 정기적인 교류가 성행하였기 때문이다.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니 – 부모의 이방 결혼이라는 외면적인 악조건 속에서도 좋은 평판을 얻었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이는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있어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1:22;6:3;딤전3:7). 실제로 교회의 지도자를 세울 때에 성도들의 평판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10:22;22:12). 눈에 보이는 부모에게 잘 대접하지 못하는 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어찌 잘 할 수 있겠느냐는 예수의 질타를 연상케 하는 구절이다(마15:4).

=====16: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 바울은 디모데를 그의 복음 사역에 있어 동료이자 조력자(助力者)로 삼고 싶어하였다. 즉, 바울은 1차 전도여행때 요한 마가가 담당했던 역할을 이제 디모데에게 담당시키고자 하는 것이다(13:5). 디모데는 이때부터 바울의 영원한 동반자가 되었다. 디모데라는 이름은 바울이라는 이름과 함께 고린두후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빌레몬서, 디모데전.후서 등의 서두에서 등장한다. 이때 디모데의 나이를 15세 혹은 18세로 추측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바울의 1,2차 전도여행의 간격이 채 1년도 안되었던 걸로 보아 이보다 많은 21세쯤으로 추청된다(Lenski). 유대인을 인하여…할례를 행하니 – 예루살렘에서 디도에게 할례를 받지 못하도록 한 것과(갈2:3) 달리, 바울이 여기에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도록 했다 하여 문제삼는 자들이 있다. 고전 7:17-20을 쓴 바울이 이러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고(Haenchen) 그래서 이 부분이 나중에 편집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을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애썼던 것뿐이지, 무조건적으로 유대인의 전통을 모욕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고전9:20)라는 말씀은 바울의 이러한 선교적(宣敎的) 전략을 잘 대변한다. 바울은 그 자신이나 실라처럼 디모데도, 모든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이라고 비난받지 않고 순조롭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자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더구나 양친이 모두 이방인이었던 디도가 할례를 받지 않은 것은, 부친만이 이방인이었던 디모데의 경우와 다르다. 이는…다 앎이러라 – 그 근처에 사는 유대인들은 디모데의 아버지가 헬라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그 양친의 혼합 결혼은 그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을 것이며 또한 여전히 그들의 비난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16:4

여러 성으로 다녀갈 때에 – 1차 전도여행시 복음을 증거했던 곳 즉,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의 안디옥 등을 가리킨다. 예루살렘에…지키게 하니 – 규례(the decisions)는 예루살렘 1차 총회에서 ‘결의된 내용'(15장)을 가리킨다. 할례 문제를 발단으로 하여 개최된 이 총회는 율법 엄수를 주장하는 자들의 폐쇄적인 태도를 멀리하고, 이방인들을 한 형제로 영접한다는 내용을 결정하여 안디옥과 수리아, 길리기아 등에(15:23) 전했다. 그러므로 남북 갈라디아 지역 교회들은 아직 그 ‘결의안’내용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작정한’의 헬라어 ‘타케크리메나'(* )는 야고보가 15:19에서 결의안을 표결에 부칠 때 사용한 ‘크리노'(* , ‘판단하다’)의 완료수동태형에 관사가 붙은 분사이다(reached, NIV, RSV;decided, LB;ordained, KJV). 개역성경의 ‘작정한 규례’는 이러한 원문의 의미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다소 불분명한 번역이다. 한편 ‘규례'(* , 도그마타)는 토의를 위해 모인 모임에서 결정된 것을 말할 때 사용되며, 이 단어의 동사와 여격은 항상 ‘결정되었다’의 뜻으로 사용되지 ‘명령한다’의 뜻이 아니다(Lenski).

=====16:5

이에 여러 교회가…날마다 더하니라 – 본절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는 ‘멘 운’ (* )은 누가가 즐겨 사용하는 용어로서, 4절에 대한 ‘결과’를 나타낸다. 즉, 여기서는 바울의 적극적인 증거, 교육사역과 예루살렘 결정 사항에 대한 긍정적인 응답의 결과로, 교회가 굳건하게 자라났음을 강조하고 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그리스도인 사이에 고대 율법의 문제가 효과적으로 해결되자 새로운 이방인들이 교회에 더 많이 들어오게 되었을 것이다. 한편 본절은 그때 그때마다 전후 문맥의 클라이막스를 이루고 있는 6:7;9:22;12:24;19:20;28:31과 비교된다. 그리고 브루스(Bruce)는 본절을 누가의 이야기 중에 가장 중대한 결론(結論)이라고 말한다.

=====16:6

성령이…못하게 하거늘 – 성령이 어떠한 방법으로 누구에게 뜻을 전했는지 언급되어 있지 않다. 누가의 관심은 그 사실 ‘자체’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환상을 보거나 꿈을 꾸었을 수도 있고(9절;23:11) 주변 환경(環境)의 영향때문에(예를들면 유대인의 반대) 계획을 변경했을 수도 있다(Neil).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 – 이 지역에 대한 해석은 나중에 바울이 보낸 ‘갈라디아서’가 북갈라디아에 보내진 것인지의(남갈라디아설) 문제를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가 되기 때문에 아주 논란이 많은 구절이다. (1)이 구절은 헬라 문법상으로 살펴볼 때 ‘한 지역’을 의미한다는 주장이 있다. 즉 본문 ‘텐 프뤼기안 카이 갈라티겐 코란’ (* )중에서 ‘프뤼기안’과 ‘갈라티켄’을 형용사로 취급, 이들이 모두 ‘코란’에 걸린다는 것이다. 프뤼기안과 갈라티켄이 ‘카이'(‘그리고’)로 연결되어 있고 관사가 처음 낱말 앞에만 있는 걸로 보아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E.D.Burton). 남갈라디아설의 측면이 강한 이러한 주장은 행정구역상 갈라디아주 전체가 아니라 갈라디아의 브루기아 지방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든지 일반적으로 브루기아 방언과 켈트 방언을 모두 들을 수 있는 로마의 갈라디아주 남쪽 내륙의 브루기아 지방에 인접한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이 켈트족이 거주하였던 갈라디아 지역에 들어갔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 않다. (2)이 구절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두 지역을 나타낸다는 주장도 있다(Lake, Haenchen). 바울 일행이 페시누스, 앙키라, 다비움에 이르는 북갈라디아 전역을 휩쓸면서 교회를 세웠으리라고 보며 그래서 나중에 그곳에 ‘갈라디아서’를 써 보내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지리학상으로 치명적인 결점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만일 그렇다면 누가가 그 광범위한 사역을 ‘디엘돈'(* , ‘그들이 다녀가다’)이라는 한 마디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누가의 서술만으로는 바울의 행적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울 듯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울 일행이 아시아의 본래 선교 목적지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갔다는 것이며 또한 그 여행이 아시아의 동쪽 경계선으로부터 소아시아의 북서쪽에 위치한 무시아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Marshall). 한편 본문에 이어 계속 언급되는 바, 소아시아로부터 드로아에 이르는 전도 여행 경로를 지도로 표시해 보면 아래와 같다.

=====16:7

헬레스폰트(Hellespont) 해협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성경을 통해 보면 바울이 이곳에서 활동했다는 기록은 없는데 전승에 따르면 오네시보로(Onesiphorus)에 의해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비두니아 – 소아시아의 북서부 지방. 흑해와 마르마라(Marmara)해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 6-10절을 통해 ‘성령’으로부터 ‘예수의 영’을 거쳐 ‘하나님’으로 용어가 조금씩 변화해 가고 있는 것은 단순한 표현방식의 변화라기보다는 초대교회의 원초적인 삼위일체(三位一體) 신앙이 무의식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성령을 통해 어떻게 복음의 진로를 안내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16:8

무시아를 지나 – 무시아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드로아를 갈 수 없는데도 누가가 ‘디엘돈테스'(* , ‘통과했다’) 대신 ‘파렐돈테스'(* ,’지나쳐 갔다’)라는 분사를 사용했다는 사실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가는 이러한 용어 선택을 통해 무시아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타내고자 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분사를 through( 통하여)로 번역한 LB는 누가의 의도를 다소 무시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드로아 – 에게해 연안에 있는 항구(港口)로서, 소아시아와 마게도니아를 잇는 배가 출입하던 곳이다.

=====16:9

밤에 환상이…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 꿈과 환상은 고대에 있어 하나님의 계시의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9:10,12;10:3,17;18:9;22:17). 이는 밤이든 낮이든(10:11) 상관없이 사용되었다. 여기에서는 밤중의 ‘어느 때’를 뜻하는 ‘디아 뉴토스'(* )가 사용된 걸로 보아 아마도 바울이 잠들었을 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나치게 ‘말씀’ 계시만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환상의 ‘시각적’요소를 배제하려는 자들도 있었다(Michaelis). 그러나 여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호라마'(* , ‘환상’)나, ‘오프데나이'(* , ‘나타나다’), ‘이데인'(* , ‘보다’)등의 단어는 이 환상의 시각적 명료함을 잘 보여준다(Haenchen). 결국 환상은 단순한 상상이나 추리에 의한 것이 아니고, 시각적인 것을 동반한 초자연적인 현상이었다. 한편 어떤 이들은 드로아에서 바울에게 도움을 구했던 마게도냐인이 바로 누가였다고 주장한다. 이는 누가가 마게도냐인 즉, 빌립보 출신이라는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 대화하는 가운데 이미 누가가 바울에게 마게도냐에 복음이 필요함을 깨닫게 하였을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이 만남이 환상 가운데 이용하셔서 바울 일행을 마게도냐로 가게 하셨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혹자는 드로아에서 바울이 실제로 마게도냐인들의 방문을 받은 바 있고, 이것이 심층 심리 속에서 작용하여 꿈으로 나타났으리라 추측하기도 한다(H.Marshall). 어쨌든 이 환상이 하나님이 보내신 초자연적인 환상임에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각양의 짐승들을 보이신 것처럼 바울에게도 환상 가운데서 마게도냐 사람을 보이신 것이다(Lenski). 그리고 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계시가 그 담지자에게 명확히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16:10

우리가 – 본서에서 ‘우리’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 드로아에서이다(10-17절). 이 ‘우리’라는 형식과 관련하여, 바울 일행이 빌립보로 갈 때에 동행한 빌립보 주민이 있었다는 점과 그 사람이 누가였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이 ‘우리’라는 표현이 빌립보에서의 사역에 관한 기사(11-40절) 이후에는 멈추어져 있다. (2)두번째 ‘우리’라는 부분(20:5-15)이 전도자들의 3차 전도여행 중, 빌립보를 재방문할 때 시작되어 있다. (3)본장에서 빌립보에서의 사역이 매우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한편 본문과 관련하여, 바울이 드로아에서 의사 누가와 상면하게 되었다고 추론하는 학자들이 많다(Ramsay, schlatter, Wei ). 그러나 이 주장은 근거없는 억측일 따름이다. 곧 – 여기서는 다음날 아침을 뜻한다. 하나님 앞에서 바울의 순종하는 모습이 돋보이는 단어이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지녀야 할 으뜸가는 태도는 ‘순종’이다(삼상15:22;히5:9;11:8;13:17). 인정함이러라 – 이의 헬라어 ‘쉼비바조'(* )는 원래 ‘결합시키다’는 뜻으로 9:22에서는 ‘증명하다’의 뜻으로 사용되었으며 여기서는 ‘결론내리다'(assuredly gathering, KJV;conclude, NIV, RSV)는 정도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16:11

사모드라게 – 드로아와 빌립보 사이, 에게해 북동쪽에 있는 섬이다. ‘물과 지진과 말(馬)’의 신인 포세이돈이 산으로 형성된 이 섬에서 고대 트로이 평야를 측량했다고 해서 포세이돈 섬이라고도 불리었다. 이 섬은 북에게해를 항해하는 선박들의 기항지(寄港地)가 되었는데, 추측컨대 바울 일행도 여기서 닻을 내렸을 것이다(Neil). 직행하여 – 의사였던 누가는 의학 용어에 익숙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항해 술어도 정확하게 기록했다. ‘유뒤드로메오'(* )는 순풍을 받아 우와좌왕하지 않고 곧장 항해하였다는 것을 잘 드러내 주는 용어이다(Lenski). 당시의 화물선이나 여객선의 경우 바람을 잘 만나 순조롭게 항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육지나 바다의 바람과 해류를 잘 이용해야 했으며, 때로는 우회하는 항해도 감수해야 했다(18:21,22). 네압볼리 – 사모드라게로부터 16km 내륙에 위치한 상업 중심지 빌립보의 외항으로, 아드리아해와 에게해를 연결하는 로마의 도로 ‘이그나티우스 대로'(the great Egnat- ian way)의 동부 지역 종착 지점이었다. 한편 여기서는 저자가 함께 배에 타고 있었기 때문에 거쳐간 항구이름과 소요(所要) 기간 등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이는 ‘우리’ 문장으로 기록된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이다(20:5,13-15;21:1-8;27:1-28).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빌립보에서 돌아올 때 닷새가 소요되었던 것(20:6)과 비교해 볼 때, 네압볼리까지 250km를 항해하는데 이틀밖에 걸리지 않은 것은 그 순풍의 정도를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16:12

빌립보에 이르니 – B.C.360년경 마게도냐의 필립 2세에 의해 이름이 크레니데스(‘샘’이라는 뜻)에서 빌립보로 바뀌었다. 이곳은 줄리어스 시이저를 살해했던 부루투스와 캐시우스가 B.C.42년 안토니아 옥타비안(나중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됨)에 의해 패퇴(敗退)당한 장소로 유명하다. 이 지역은 바로 그때 이후 승리의 기념으로 로마의 식민지로 지정되어 황제에게 직접 배속됨으로써 주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를 누렸으며 공물과 세금을 면제받기도 하였다. 또 이탈리아 도시의 시민들이 누렸던 것과 동일한 권리를 누렸다. 이곳은 바다와 육지 양쪽 통로상의 전략적인 위치에 있어서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특히 금광과 비옥한 평야로 유명하였다. 이밖에도 이곳에는 유명한 의학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었다.

마게도냐 지경 첫성 – 누가가 빌립보를 이렇게 표현한 사실에 대해 논란이 제기되곤 한다. 이에 대해서는 사본들 역시 차이를 보여 정확한 해석을 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시내 사본(Codex Sinaiticus).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 nus),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 등 대다수의 본문에 따르면 ‘프로테 메리도스 테스 마케도니아스 폴리스'(* , ‘마케도냐 지경의 첫성’)라고 되어 있으나, 실제 첫째가는 도시라 할만한 곳은 빌립보가 아니라 오히려 B.C.167-146년 사이에는 암비볼리였고 그 후에는 그 주의 수도 데살로니가였다. 그런하면 어떤 사본들에 ‘프로테'(* , ‘첫째’)대신 ‘프로테스'(* , ‘제1의’)로 되어 있어 빌립보가 ‘마게도냐 제1지구의 도시’였음을 가리켜 주고 있다. 즉, B.C.146년 전지역이 마게도냐주(州)로 개편되기 전 B.C.167년에 마게도냐가 로마인들에 의해 4개 행정규역으로 나누어졌는데, 그 중에서 제1지역의 도시였다는 말이다. 그런가하면 베자 사본(D)은 ‘ ‘(프로테)를 ‘케팔레'(* , ‘우두머리’, ‘수도’)로 이해하여 주(州) 수도로서의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이때의 수도가 실제로는 암비볼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쟈안(Zahn)은 여러나라들이 하나 이상의 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어 이 사본을 옹호한다. 그러나 ‘프로테’가 도시의 경칭(敬稱)으로 이용되기도 했지만,빌립보와 같은 로마 식민지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았다(Haenchen) 이러한 해석상의 여러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은 ‘마게도냐 지구의 첫째가는 도시’로 해석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the chief city of that part of Macedonia, KJV;the leading city of that district of Macedonia, NIV, RSV). 왜냐하면 행정상의 고려 외에 누가가 이 도시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16:13

안식일에 – 새로운 도시를 방문할 때 도착한 후 첫 안식일에 지역 회당을 방문하여 가급적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바울의 일반적 관례(慣例)였다(13:5;14:1, F.F.Bruce).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프로슈케'(* , ‘기도처’)는 거의 항상 ‘쉬나고게'(* , ‘회당’)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여기의 ‘기도처’가 실제 회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Schurer). 그러나 본절, 16절의 ‘기도처’는 회당이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여자들만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고 또 본서의 다른 곳에서 ‘회당’이라는 구체적 명칭이 자주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17:1,10,17). 유대인의 법에 따르면 하나의 회당에는 최소한 10명의 남자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여자들만 언급되는 점으로 보아 이곳의 ‘기도처’는 여자들이 관습적으로 모여 기도하던 곳으로 추측된다(MaRSHALL). 한편 이러한 기도처의 장소로는 주로 강변, 바다 근처 등이 선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는 유대의 정화 의식에 필요한 물을 구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견해도 있다(Marshall). 문 밖 강가에 나가 – 여기서 ‘강가’는 갱가이트강(the Gangites) 아니면 크레니트(the Crenides) 강변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여자들에게 – 남자가 한 사람도 참석하지 못한 이유 중에 하나는, 글라우디오(Cla- udius)가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할 때 그 식민지 도시인 빌립보도 그러한 전범을 따랐기 때문일 것이다(Lenski).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작은 모임도 무시하지 않았다. 말씀을 선포하는 자가 단순히 청중들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최선을 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다(마18:20).

=====16:14

두아디라 성의…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 – ‘루디아’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다. 렌스키(Lenski)는 누가가 여격을 사용해 개인의 이름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의 루디아는 개인의 이름이 분명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많은 신학자들은(Bruce 등) ‘루디아’가 이름이 아니라 단지 고대 루디아 왕국의 영토였던 지방에 살던 사람 즉 ‘루디아(출신의) 여인’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생각한다. 당시 루아디라는 직조와 자색 염료 사용 기술로 유명했는데 루디아가 빌립보에 온 것은 계속 그 사업을 확장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한편 그녀는 두아디라에 있을 때 이미 회당에서 유대교의 가르침을 받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들었는데 –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쿠엔'(* , ‘듣고 있었다’, ‘듣곤 했다’)은 미완료형으로서 반복되는 모임을 암시한다. 이 동사는 루디아가 바로 첫 안식일에 회심(回心)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Lenski).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 바울의 말을 들을 때에 그녀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3:6,7)는 바울의 고백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한편 학자들 중에는 이 ‘루디아 여자’의 본명이 유오디아 또는 순두게(빌4:2)였으며 또한 회심한 간수 글레멘드(빌4:3)의 처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Zahn). 또한 바울이 언급한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빌4:3)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으며 혹자는 바울이 루디아와 결혼했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Renan). 그러나 이러한 추측들은 지지를 받지는 못한다.

=====16:15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 8:36에 등장하는 에디오피아인의 경우처럼, 루디아가 신앙을 고백한 후 곧바로 세례가 베풀어졌다. 루디아의 집 또한 고넬료의 집처럼 세례를 받았다(10:47,48;11:14). 한편 유아 세례를 옹호하는 자들은 이 구절을 포함, 이와 유사한 구절들을 통해(11:14;16:33;18:8;고전1:16) 이 집의 세례가 어린아이들도 포함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자들은 어린아이 특히 유아에 대한 언급이 여기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본장 주제 강해 ‘유아세례’ 참조). 어쨌든 이 ‘집’ 속에 장사를 돕는 하인이나 노예들이 포함된다면 어린아이라고 해서 꼭 배제(排除)될 이유도 없다(Lenski).

=====16:16

그리이스-로마의 미신적 배경을 상기시키고 있다(8:9;13:6). ‘귀신'(* ,프뉴마 휘도나)의 ‘퓌돈'(* )은 고린도만 북부 파르나소스산 남쪽 언덕에 위치한 아폴로 신전에서 신탁을 지키는 신화 속의 뱀 또는 용을 가리키는데 퓌돈은 결국 아폴로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퓌돈은 나중에 복화술사(腹話術師)까지도 의미하게 되었는데,그 내부에는 퓌돈의 영이 들어있는 것으로 여겨졌다(Plutarch).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 여종은 점을 쳐 사람들의 앞날을 알아 맞히고 많은 돈을 벌었으나, 수입금의 대부분은 주인들에 의해 착취되었다. 이러한 주인들의 태도는 약자들의 병을 치유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약함을 이용하여 이윤만을 챙기려는 불의한 정치인들과 악덕 기업주 그리고 적게는 이기주의에 젖어있는 우리의 태도와 다를 바 없다.

=====16:17

바울과 우리를 쫓아와서 – ‘바울’과 ‘우리’를 구분하여 표현함으로써, 누가는 스스로를 특별히 바울을 중심으로 한 선교팀의 일원으로서 묘사하고 있다. ‘우리’ 문장은 여기에서 끝나고, 빌립보성을 그리고 있는 20:5,6에서 다시 등장한다. 이러한 사실은 누가가 그곳에 교회을 세우기 위해 홀로 남았으며, 몇 년 뒤 바울 일행의 마지막 전도여행시 합류(合流)했다는 사실을 추측케 해준다(Neil).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너희에게 전하는 자 – 예수의 사역중 귀신들이 소리지른 일을 상기시켜 준다(막1:24;3:11;5:7;눅4:34,41;8:28). 이 소녀의 외치는 내용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모두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말로 표현되었다. 여기서 헬라어 ‘호 데오스 호 휴시스토스'(* , ‘지극히 높은 하나님’)는 본래 뵈니게 사람들의 신(엘 헬루온)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히브리인들은 이 말로 야웨를 가리키고(민24:16;시78:35;사14:14;단3:26;4:32;5:18,21;에스드라상2:3) 헬라인들은 제우스를 가리키는데에 사용하였다(Roberts, Skeat, Nock). 한편 ‘소테리아'(* , ‘구원’) 또한 유대인들에게는 죄로부터 구원을 의미했으나 이방인들에게는 사람과 물질 세계를 다스리고 있는 권세로부터 해방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귀시들린 여종의 이 외침은 바울과 실라의 사역을 명쾌하게 드러내주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 복음의 사명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사43:10;딛2:15).

=====16:18

여러 날을 하는지라 – 바울이 여러 날 동안 귀신을 쫓아내지 않은 것은 이 여종의 외치는 소리가 처음에는 그다지 위험스럽게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복음을 널리 알리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여러 날이 경과하는 동안 바울은 이 여인이 악한 영에 사로잡혀 있음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마침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축출(逐出)한 것이다(H.Marshall). 바울이 심히 괴로와하여…즉시 나오니라 – 바울이 왜 ‘심히 괴로워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분명치 않다. 벤트(Wendt)는 거룩한 복음이 부정한 영에 의해 증거되는 것이 불쾌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아울러 그 소녀의 딱한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Lenski). 소녀의 외침으로 인해 전도자들은 외관상으로는 뜻하지 않았던 유명세를 받았을 것이고, 나중에는 복음의 선포보다 귀신의 말에 더 관심이 집중되었을 것이다. 한편 귀신을 쫓아내는 이러한 능력을 그리스도께서 복음 전도자들에게 주신 능력들 가운데 하나로, 그리스도께서 귀신들의 정복자임을 나타내는 표적이었다(마4:24;8:16;눅4:41). 구원받은 소녀의 회심에 대해 본문이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 소녀는 루디아와 그녀의 집안 사람들, 의사 누가, 직업 군인 간수 등과 함께 빌립보 초기 교회의 일원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16:19

종의 주인들 – 이들은 사업적인 연합체였거나 혹은 단순히 개인 주인이었을 수도 있다.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 나중에 에베소에서도 그랬던 것처럼(19:23-27), 복음은 미신이나 악을 이용하여 이윤을 챙기는 자들의 사업을 파멸의 지경에 이르게 하였다. 누가는 18절과 19절에서 동일한 동사 ‘엑셀덴'(* , ‘나오니라’-18절;’끊어진’-19절)을 사용함으로써 흥미로운 언어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바울과 실라를 잡아 – 이때 디모데와 누가는 왜 핍박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물론 디모데와 누가가 바울과 실라보다는 덜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었기 때문일 수 있으며, 또한 그 시각에 디모데와 누가가 다른 곳에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디모데가 반헬라인이고(half-Greek) 누가가 완전히 헬라인이었던 반면, 바울과 실라가 유대인이었다는 점이, 주요 공격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보인다(Bruce, Neil). 20절과 21절에서 죄목(罪目)을 이야기하며 민족적 차이를 드러내는 표현(‘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로마 사람인 우리가’)을 사용한 것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저자 – 이곳에는 법정이나 감옥도 있었다.

=====16:20

상관들 앞에…심히 요란케 하여 – 그들은 바울이 소녀로부터 귀신을 쫓아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하지 않고, 바울과 실라가 유대인이라는 점을 내세워 인종적 편견을 부추겼으며 또한 로마 제국내에 공공 평화를 해치고 폭동의 씨앗을 뿌리는 자들로 몰아붙였다(왕상18:17;19:40;24:5). 바로 1년 전에 황제 글라우디오가 로마로부터 유대인들을 축출하라는 칙령을 내렸었다(18:2). 이에따라 유대인들은 제국 전역, 그중에서도 특히 식민지역에서 좋지 않은 평판을 받았을 것이다(Neil).또 ‘요란케 한다’는 말은 종교적인 의미로도 해석된다. 당시 유대교는 로마법에 따라 허용되었으나, 로마인이 유대인에 의해 개종되는 일은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16:21

로마 사람인…전한다 하거늘 – 여기서 언급된 풍속에 대하여 혹자는 만찬때의 ‘거룩한 입맞춤'(* , 필레마 하기온)의 관습이 부도덕한 동양 제의(祭儀)의 모습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Haenchen). 그러나 송사자들의 관심은 풍속보다는 그들이 더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됐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래서 복수의 출구를 찾고 있던 송사자들은 바울과 실라가 유대인이라는 점을 알고, 무조건 그들을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 풍속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못했다. 이 사건은 아무런 근거가 없었고 사실상 악한 동기를 숨겨두고 있다는 점, 그리고 똑같이 로마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는 점 등을 살펴볼 때, 산헤드린이 빌라도 앞에서 예수를 송사한 일과 유사하다(요19:6). =====16:22

상관들이 – 로마의 식민지였던 빌립보는 데살로니가에 있는 주 정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치 정부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로마 식민지에는 ‘두움비리'(duu- mviri)라 하여 집정관이 두 사람씩 있었다. 그런데 일부 식민지에는 이들에게 ‘프래토레스'(praetores ; , 스트라테고이)라는 존칭이 적용되었는데(20,22,35, 36,38절), 이곳 빌립보에서도 그러하였다. 한편 이 집정관들 밑에는 두 사람의 ‘릭토르'(* , 랍두코이)가 있었는데, 이들의 임무는 집정관의 명령을 집행하는 것이었다. 매로 치라 하여 – 바울은 이 태장(笞杖)에 대한 고후 11:25에서, 다른데에 기록이 없는 두 번의 태장과 함께 언급한다. 또한 그는 살전2:2에서 이곳 빌립보에서의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대접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매우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16:23

많이 친 후에 – 22절의 미완료 동사 ‘에켈류온'(* , ‘매로 치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래 유대인들은 태형의 경우에 40대 이내의 매를 맞았다(신22:18;25:3). 그러나 릭토르들은 언제 매를 멈춰야 할지를 몰라서 상관의 신호를 기다리곤 했다. 그러면 상관들은 반복해서 매를 치도록 신호를 보냈다. 바로 이것이 미완료 동사가 의미하는 바이다(Lenski). 그러므로 ‘많이 쳤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바울과 실라는 선한 일을 하고도 정식 재판조차 받지 않은채 심한 고난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이 감수해야 할 고통인지도 모른다. 든든히 지키라 – 이 말 속에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는 뜻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12:19에서 베드로를 지키던 간수는 베드로가 탈출하자 그 책임을 지고 목숨을 잃었다.

=====16:24

깊은 옥에 가두고 – 로마의 감옥은 보통 3종류로 분류된다. 즉, 죄수들이 햇빛을 쬐고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 보통 감옥(communiora)과 견고한 빗장을 치고 잠그는 내옥(interiora) 그리고 사형수들을 수감하는 지하옥(tullianum)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내옥에 가두었을 뿐만 아니라 양발에 착고를 채워 벽에 고정시키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되면 발이 벌려져서 고통스런 자세가 된다(Lenski). 사실 상관은 그들이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했었다는 소문을 듣고, 특별한 감시의 필요성을 느꼈을 수도 있다(Marshall). 한편 이러한 완벽한 수감(收監) 상태는, 나중 그들의 탈출 내용을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극적인 감동을 더해준다.

=====16:25

밤중쯤 되어…찬미하매 – 고난 중에 기뻐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극적으로 묘사되고 있다(롬5:3;약1:2;벧전5:6,7). 이 내용은 기적적인 구출을 바라는 간구보다는 고난에 대한 신앙의 승리를 보여주는 전형으로서 기록된 것이다(Neil).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적적인 방법으로 풀려나게 됨으로써, 간수들은 바울 일행의 찬송과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회개하기에 이른 것이다.

=====16:26

이에 홀연히…다 벗어진지라 – 양식 비평은 옥문이 저절로 열려 기적적으로 옥에서 탈출하는 이야기가 고대 세계에서는 흔했다면서(5:19-24;12:7-10;도마행전154) 35절의 이야기가 24절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주장한다. 즉, 양식 비평가들은 25-34절이 누가의 이야기가 아닌 삽입된 ‘전설’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가 그와 비숫한 다른 이야기와 유사하다는 이유 때문에 그 역사적 확실성을 훼손받아야 할 근거는 없다. 그리고 어떠한 이야기가 가운데를 뚝 떼어내고 보아도 의미가 잘 통한다고 해서, 그 중간 자료를 삽입된 ‘전설’로 생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불과하다. 이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섬세(纖細)하게 미쳤는가 하는 것은 ‘벗어졌다’는 의미의 ‘아네데'(* )가 제1단순과거 ‘수동형’이라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16:27

간수가 자다가…자결하려 하거늘 – 로마의 법에서 죄수를 도망하게 한 간수는 그 죄수가 받은 형량만큼 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죄수들이 도망간 걸로 생각하는 간수가 검(로마의 정규 무기)을 빼어든 것은, 별다른 죄도 없이 바울과 실라가 얼마나 심한 형벌을 받았는지 짐작케 해준다. 고난과 죽음의 위험 가운데서도 찬미할 줄 아는 사도들과 재난 중에 자살하려고 하는 이교 로마인 간수는 얼마나 서로 대조적인가! 한편 ‘그 간수는 자결하려 하기 전에 왜 좀더 감옥안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는가?’ 혹은 ‘설사 죄인들이 도망쳤다 하더라도 그것이 초자연적 힘에 의한 것이었을 때 간수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지 않는가?'(Clemen) 등의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미 바울의 초능력 소문을 들었던 간수는 직접 눈앞의 기적에 직면하여, 스스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막9:6;16:8,Marshall).

=====16:28

바울이…다 여기 있노라 하니 – 본문에 대해 ‘바울이 어떻게 어두운데도 간수가 죽으려 했는지를 알았는가?’ 또한 ‘다른 죄수들이 하나도 도망치지 않았는가?’ 하는 등의 질문이 제기되곤 한다. 이에 대해 어떤 학자들은 감옥안에 희미한 빛조차도 없었겠느냐고 주장하면서, 다른 죄수들이 도망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도 ‘초능력을 목격한 죄수들의 발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H.Marshall, Lenski). 그러나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때때로 그러한 것처럼, 압축된 이야기에는 저자의 목적을 뒷받침하는 중요내용들만 부각(浮刻)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저자가 세목 하나하나를 논리적으로 꿰맞추지 않는 때도 있는 것이다(Marshall).

=====16: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 감옥을 이 간수 혼자서만 지키지는 않았을 것이며, 이 간수는 조수에게 등불을 달라고 했을 것이다. 바울과…부복하고 – 간수는 자신이 착고에 채우며 고문했던 자들 앞에 이제 엎드렸다. 이제야 비로소 간수는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의 능력있는 사자임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이는 고넬료가 베드로 앞에 엎드려 존경의 뜻을 표했던 상황을 연상시킨다(10:25). ‘부복하고’의 헬라어 ‘프로세페센'(* )은 ‘앞으로 떨어졌다’, ‘맹렬히…에 돌진했다’는 뜻을 내포하는 바, 이 간수의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을 잘 나타내는 말이다.

=====16:30

저희를 데리고…하거늘 – 감옥 밖으로 데리고 나가 복음에 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듣다가 ‘구원’에 관해 물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순간에 간수는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17절)라고 외친 소녀의 말을 상기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 ‘구원’의 의미가 간수의 근무 소홀로 인한 지위 상실의 회복을 의미한다는 쟈안(Zahn)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죄수들은 한 명도 도망치지 않고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선생들아’라고 번역된 헬라어 ‘퀴리오이'(* , ‘주들이여’)는 존경의 어조를 내포하고 있다. 간수는 지진(地震)을 통해 자존심 따위는 모두 털어버렸다.

=====16:31

가로되…얻으리라 하고 – 본절은 초대 교회 복음 증거자들이 전한 메시지의 대주제였다(2:38,39;3:19-26;4:12;8:12;10:43;13:38,39). 동시에 이 말은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한 기독교 진리의 핵심이다. ‘피스튜손'(* , ‘믿다’)은 당연히 단순과거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진정한 믿음을 갖게 되는 그 순간, 구원은 그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항상 주 예수께 신뢰와 의탁을 두는 것을 뜻한다. ‘너와 네 집'(* , 수 카이 호 오이코스 수)에서 ‘너’라는 개념이 이미 동사 어미로 표현됐는데도 ‘쉬'(* , ‘너’)가 첨가된 것은 대명사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간수의 믿음이 자동적으로 아내나 아이들을 구원할 수는 없다. 그가 자기의 인격으로 믿어야 했던 것처럼 그 식구들도 각자의 인격으로 믿어야 하는 것이다.

=====16:32

그 집에…전하더라 – 10:2;11:14;18:8;고전16:15 등에도 가장(家長)과 가족들의 개종에 대한 예증들이 보인다.

=====16:33

밤 그 시에…세례를 받은 후 – 여기서부터는 문법적으로 간수가 주체가 된다. 믿음의 첫 증거로서 간수는, 전날 매질한 것을 사죄하는 의미의 일을 했다(마25:36;히10:34). 그리고는 그와 그 가족들이 지체없이 세례를 받았다. 복음의 힘이 어떠한 지를 잘 보여주는 구절이다.

=====16:34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 바울과 실라가 얼마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허기진 상태에 있었음을 암시한다. 마샬(Marshall)은 이 식사와 함께 성만찬이 베풀어졌을 수도 있다고 추정한다. ‘자기집에 올라가서’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서 간수의 집이 꼭 윗층에 있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마당에서 방으로, 그리고 식당으로 모시고 들어갔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Lenski). 크게 기뻐하니라 – 간수와 식구들의 이러한 갑작스런 변화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절망적인 자살의 순간에 구원의 길로 들어선 간수의 심정을 헤아려 보라. 이는 바로 복음의 역사가 아닌가! 한편 누가는 불필요한 세목들을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추측컨대 바울과 실라는 이 일을 마치고 다시 감옥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16:35

날이 새매…놓으라 하니 – 상관은 아전(lictor, 22절 주석을 보라)을 시켜 두 사람의 유대인을 풀어주도록 하였다. 갑작스런 상관들의 태도변화에 객관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이유에서인지 어떤 서방 사본은 이 부분을, 날이 새매 상관들은 시장의 광장으로 갔고, 지난 밤의 지진을 상기하면서 두려워하며 아전을 보냈다고 해석하고 있다. 닐(Neil)도 이러한 입장을 취한다. 누가는 직접적인 지식이 없을 때에는 가급적 사실 자체만을 기록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정확한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아마도 상관들은 공적인 태형과 하룻밤의 투옥으로 그들의 의도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던 듯하다(Lenski, Haenchen, Marsall). 혹은 그 상관들이 바울과 실라에 대한 송사가 거짓된 것임을 발견하고 그들을 석방하도록 명령했다고 해석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Lenski)>=====16:36

평안히 가라 – 누가는 이 인사말을 통해 간수의 회심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이 인사말은 그리스도인들의 자주 사용하였던 유대식 인사인 것이다(눅8:48).

=====16:37

바울이 이르되…나가야 하리라 한대 – 당시 아구스도 칙령(Edicts of Augustus)에 의해 확정되고 발전된 발레리안과 포르시안법(Valerian and Porcian laws)에 따르면, 로마 시민은 로마의 보호 아래 로마 행정지역의 어느곳이나 여행하며, 본인의 동의하에서만 지방법률에 따라 재판을 받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뿐만아니라 곤란한 문제일 경우에는 지방 당국이 아닌 황제 자신에게 재판을 받기위해 호소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로마 시민의 항소권에 대해서는 22:25-29;25:9-12;26:32;28:16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때리고’의 헬라어 ‘데로'(* )는 ‘가죽을 벗는다’는 뜻으로서 태장의 정도가 어느정도인지 짐작케 해준다. 그리고 ‘아카타크리투스'(* ,’죄도 정치 아니하고’)는 이곳과 22:25에만 등장하는데 이 단어의 뜻은 ‘재판에 붙여지지 않았다’이다. 상관들은 재판도 열지 않은 채 태장을 가하고 그들을 투옥함으로써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혹자는 바울 등이 왜 좀더 일찍 로마 시민권을 주장하지 않았는가에 대해 의아심을 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추측컨대, 그러한 주장은 군중의 소동과 함성(喊聲)의 분위기 속에서 묻혀버렸을 것으로 보인다.

=====16:38

로마 사람이라…두려워하여 – 어쨌든 상관들이 바울과 실라에게 취한 행위는 심각한 위법 행위였고, 이것이 상부 기관에 보고되면 충분한 문책 사유가 될 것이 분명했으므로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여기서 바울이 자신의 로마 시민권을 내세운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첫째는 새로 탄생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바울은 복음에 유익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도구로 사용할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빌1:18). 둘째는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물론 애매한 고난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위해 참으면 아름다운 일이 될 수 있겠지만(벧전2:19), 그 고난 자체가 즐거운 일일 수는 없는 것이다.

=====16:39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 헬라어 ‘에로톤'(* , ‘청하다’)의 미완료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상관들이 계속하여 떠나기를 청하였으나, 이에 대해 바울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Lenski). 상관들이 바울일행에게 빌립보를 떠나도록 요구한 이유는 머무를 경우 상관들의 범법 행위가 로마 식민지 도시 전체에 알려지게 돼, 자신들에게 화가 미칠 것을 우려한 까닭이었다. 둘째는 귀신들린 소녀의 주인들과 같은 사람들이 몰려와 계속적으로 바울과 실라의 처벌을 요구할 경우, 그들 자신이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16:40

두 사람이…위로하고 가니라 – ‘호이아델포이'(* , ‘형제들’)라는 용어를 보아 추측컨대, 이때 이미 루디아와 그의 가족들, 귀신들렸던 소녀 들을 중심으로 빌립보 교회가 구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교회는 누가의 지도하에(17절 주석 참조), 새로 탄생한 교회들 중 가장 훌륭한 교회로 성장하였다. 바울은 로마에서 구금생활을 하고 있을 때인 A.D.62년경 빌립보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그 교회의 ‘감독들’과 ‘집사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빌1:1) 상담과 권면의 내용을 적고 있다(빌2:25-30;4:10-19). 한편 상관들이 전도자들을 추방할 수 있는 어떠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바울 일행이 빌립보를 떠난 것은 꼭 상관들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그들은 빌립보에서의 사역을 완수하여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또한 다른 곳에서는 그들의 사역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Lenski). 그러나 누가는 빌립보에 남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10절에서 시작되었던 ‘우리’ 문장은 17절에서 끝났다가 20:5 빌립보에서 다시금 등장한다.

앞장에서 예루살렘 공의회가 이방 기독교의 승리로 종결되었거니와 본장에서는 기독

교가 이방 세계로 뻗어 나가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제1차 전도 여행이 성공리에 끝

나고 이제부터는 약3년간에 걸친 제2차 전도 여행으로 위대한 이방 선교사 바울의 활

동이 전개되고 있는 바, 복음은 소아시아를 떠나 지중해를 건너 유럽까지 진출하게 되

었다. 본장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주의깊게 고찰되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문맥상의 유의점. 앞장 후반부(15:36)에서부터 시작하여 18장까지 계속되는 바

울의 제2차 전도 여행은 그의 이방 선교 사역 중에서 가장 기 여정(旅程)으로서 기독

교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 뜻있는 여행이었다. 예루살렘 회의의 결

과로 지금까지 문제시되었던 교회 내부의 교리적 갈등이 일소(一掃)되었으니 이로써

복음의 이방 진출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이다.

스데반의 순교로 인하여 복음이 유대 땅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처럼(8:1) 예루살렘

공의회라는 어려운 고비를 넘김으로써 복음은 소아시아를 넘어서 유럽 땅으로 진출하

게 되었다. 참으로 유대주의와의 대결에서의 기독교 승리는 기독교로 하여금 복음의

내용을 확고히 정비(整備)하게 함으로써 민족주의적(民族主義的)를 극복하고 세계 종

교로 발돋움하는 밑거름을 제공해 준 것이다. 이제 온 인류를 구원하는 능력인 복음은

(롬 1:16) 소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그리고 마침내 당시 세계의 중심인 로마 제국에

까지 확산되어 나갈 것이었다.

(2) 하나님의 선교 계획. 본서 전체를 통하여 익히 알 수 있는 사실은 복음 사역이

인간의 계획에 따라 진행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것

이다. 즉 선교의 주체(主體)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의 유대인과 유대교의 귀의(歸依)한 헬라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

으나 하나님의 강권적인 지시에 의해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한 바 있었다(10

장). 본장에 수록된 마게도냐 환상 기사 역시 선교 사역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간섭과

계획을 잘 보여준다.

바울은 소아시아의 더베, 루수드라, 이고니온 등지의 여러 지역을 방문한 후 로마의

대로(大路)를 따라 중요한 해안 도시였던 에베소로 가려고 했으나 성령의 제지(制止)

를 받자 방향을 반대로 바꾸어 비두니아 지역으로 북상(北上)하려 하였다. 그러나 예

수의 영(靈)이 그것도 허락지 않으시고 마게도냐로 가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의 선교

계획은 바울이 아시아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유럽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

이었다. 바울은 그의 서신을 통하여 복음 전파의 행로(行路)를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육적 뜻을 따름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르는 것임을 고

백하고 있다(고후 11:16-22).

(2) 믿음의 증인들. 본서에는 복음 사역의 결실(結實)로서 믿음의 증인들이 등장한

다. 스데반과 빌립을 비롯한 초대 교회의 일곱 집사가(6:5) 있었으며, 베드로에 의해

회심(回心)하고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된 백부장 고넬료(10:44). 바울의 이적을 보고

그리스도를 믿게 된 총독 서기오 바울(13:12), 그리고 디모데와 루디아가 본장에 등장

한다.

이중에서 디모데는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시 복음을 받아들인 것으로 추측되는 바,

후에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증인으로서 그 사명을 장 감당하였던 자이다. 루디아도 바

울에 의해 복음을 받아들인 자로서 그녀는 빌립보 사역의 첫 열매였으며 바울의 빌립

보 사역을 전심전력(專心專力)으로 도와 주었다(빌 4:3).

또한 본장에는 바울의 실라의 투옥(投獄) 기사가 등장하거니와 간수들과 그의 가족

이 구원받는 사건이 수록되어 있다. 간수들 역시 믿음의 증인들로서 바울의 이방 사역

이 본격화되면서 맺은 전도의 결실들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다. 이들은 모두 초대 교회

의 믿음의 산 증인들이었으니 이들로 인하여 복음이 널리 확장되어 나갈 수 있었다.

저자 누가는 본장에서 이방 사역에 대한 중간 보고(報告)를 하고 있는 바, 여러 교회

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 하였다고 증언한 것은 이방 선교의 사역이 풍

성한 결실을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5절).

한편 본장의 내용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단락에는 바울이 그의 여행에 디모데

를 합류(合流)시키고 환상에 의해 마게도냐로 떠나는 장면이 나오며(1-10절), 둘째 단

락은 빌립보에서의 사역 중 루디아의 회심 이야기와 귀신들린 여종을 고친 이야기가

나오고(11-18절), 마지막 단락은 바울 일행의 투옥 기사와 이적적(異蹟的) 구출 이야

기가 수록되어 있다(19-40절). 참고적으로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 경로를 통해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1. 바울이 디모데를 택하여 마게도냐로 떠남(16:1-10)

본문은 소아시아의 더베와 루스드라에서 행한 바울의 사역에 관하여 간략하게 묘사

되고 있다. 여기에서 바울은 장차 복음 사역의 큰몫을 담당할 성실한 동역자 디모데를

선택하여 일행에 합류시켰다. 또한 본문에는 복음 전파 행로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마

게도냐 환상이 기록되어 있는 바, 바울의 일행은 아시아를 떠나 유럽으로 복음의 돛을

내리게 되었다. 본문에 부각되는 다음 사항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1) 바울의 선교 방침. 본문에는 바울이 신실한 제자 디모데를 택하여 그의 이방 사

역에 참여시키며 또한 그에게 할례를 행하는 장면이 등장하고 있거니와 여기에서 바울

의 두 가지 선교 방침을 찾아볼 수 있다.

(가) 바울은 이방 사역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여러 동역자들과 협력(協力)하였으

며 후계자를 양성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선배 바나바와 결별한 후 유능한 일꾼인 실라

를 택하였으며, 제2차 선교 여행시 드로아에서 의사 누가를 택하여 그의 사역에 동참

시켰으니(10절) 누가는 바울의 주치의(主治醫)로서의 역할을 하며 끝까지 바울의 사역

을 도왔고, 누가복음과 본서를 기록하는 역사적 업적을 남겼다. 본문에는 바울이 성숙

한 신앙을 소유하였던 디모데를 택하여 동역자로 삼는 장면이 나오는 바, 바울에 의해

발탁되어 훈련을 받은 디모데는 후에 에베소 교회의 영적 지도자로서 역량(力量)을 발

휘하게 되었다.

(나) 적절하게 상황을 이용하였다는 점이다. 바울은 디모데와 함께 전도 여행을

떠나기 전 그에게 할례를 행하였는데, 이는 유대인들에게 거치는 장애 요소를 제거하

고 그들에게 원활하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이방인의 할례와 율법 강요는

반대했으나 유대인에게는 금하지 않았으니 각자 그들이 물려받은 문화 양식을 유지하

면서 더욱 복음이 널리 전파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자신은 유대

인을 얻기 위하여 스스로 유대인같이 되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것이 바울의 두번째

선교 방침이었다.

(2) 성령의 인도하심. 본문에는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으나 성령께

서 그것을 막고 유럽 쪽으로 인도하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복음으로 아시아

를 정복하려는 욕망(慾望)이 간절하였는데 예수의 영(靈)은 그것을 허락지 아니하였으

니 유럽 전도가 더 시급하였기 때문이다.

이로써 복음은 아시아에 머물지 아니하고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었다. 본서에 나타난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인간의 뜻이나 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

지하여야 할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가 처음으로 성령을 체험한 이후부터 성자(聖子)

시대가 끝나고 성령(聖靈) 시대로 접어들었거니와 초대 교회는 오로지 성령의 인도하

심에 의하여 이룩되고 발전되어 온 것이다.

베드로가 삼천 명을 회개시킨 놀라운 사건(2:37-41)이나 그가 베푼 많은 표적과 기

사들(3:5;5:12-16)도 성령에 의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스데반의 순교로 인하

여 교회가 흩어진 것도 복음을 더욱 확장시키려는 성령의 강권적 역사하심에 기인한다

(8:4). 또한 핍박자 사울을 회심시켜 이방인을 위한 복음 증거자로 세우신 것도 성령

의 역사였고, 바울의 선교 사역에 함께 하사 능력을 베푸시고 방향을 제시하시며 인도

하신 분도 성령이었다. 이제 바울을 유럽으로 인도하신 성령께서는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로 인도하셔서 복음을 증거케 하실 것이었다(23:11).

(3) 복음 전파자의 소명. 복음 전파자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치 않았더라면 오

늘의 교회 역사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본문에는 자신의 소명을 확인하고 하나

님의 뜻에 순종하는 바울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호소

(呼訴)하는 환상(幻想)을 보고 지체치 아니하고 순종하였으니 복음 전파자로서의 불타

는 사명감을 지녔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신 것은 저들을 구원하기 위함이

라는 확실한 소명 의식이 바울로 하여금 환난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순교하기까지 진리

를 증거케 하였던 것이다. 바울은 주의 성령께서 이끄시는 곳이며 어디든지 순종하며

나아갔고 이로써 구원의 세계 전역(全域)에 거하는 이방 민족에게 임하게 되었거니와

복음 전파자의 태도는 확고한 소명 의식과 더불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유아 세례의 성경적 근거. 본문에는 루디아 집안 사람들과 간수(看守)의 모든 식

구들이 바울에게 세례받는 장면이 등장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당시 유아(乳兒)들도 세

례를 받았을 가능성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이에 본 주제 강해에서는 현재 복음주의 교

회에서 시행되고 있는 유아 세례의 성경적 근거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1) 구약성경의 근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언약의 표징으로

서 아브라함으로부터 대대로 집안의 남자들에 대해서는 생후 8일만에 할례를 시행할

것을 명하셨다(창 17:9-14). 그런데 사도 바울은 세례를 할례와 결부시키며 복음 아래

서는 세례가 할례를 대신한다고 가르치고 있다(골 2:12).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징표로서 어린 아이들이 생후 8일만에 할례를 받은

사실은 유아 세례에 대한 구약성경의 근거라 할 수 있겠다. 구약에서는 부모에게 내린

약속이 그들의 할례받은 자녀에게까지 해당되었던 바, 오순절에 베드로는 하나님의 언

약 백성의 징표로서 세례와 이에 따른 성령의 인치심에 대한 약속을 언급하면서 그 자

녀에게까지 이 약속이 적용됨을 밝히고 있다(2:38,39).

(2) 예수의 가르침. 예수께서 어린이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기록은 복음서에 나

타나 있지 않으나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셨으며 나아가 어

린 아이들을 천국에 들어갈 사람의 모형(模型)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신 바 있다(막

10:14-16).

(3) 사도들이 행한 유아 세례. 본서에는 베드로와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유

아 세례를 행했다는 흔적이 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안 모든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

었으며(10:44-48), 바울도 루디아와 빌립보 간수의 모든 식구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14,15,32-34절). 온 식구들 가운데 어린 아이가 배제(排除)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어

른들과 더불어 어린 아이들도 함께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남편이나 아내의 자녀들을 긴밀하게 결

합시켜 거룩하다고 부르고 있으며, 어린 아이들도 부모의 믿음을 통해 거룩한 상태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고전 7:14).

이상의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유아 세례는 충분한 성격적 근

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빌립보에서의 사역(16:11-18)

바울은 실라, 디모데, 누가 등으로 새롭게 전도단을 조직하여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마게도냐를 향하여 떠났다. 본문에는 바울 일행이 유럽으로 통하는 관문(關門)인 빌립

보에 도착하여 복음의 씨를 뿌리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으나 빌

립보에서의 사역은 그 성과가 뛰어난 든든한 교회의 기반을 이룩하였다(빌 1:3-5). 다

음 세 가지 항목을 통하여 본문을 숙고해 보기로 하자.

(1)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사도들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선포되었

으나 모두가 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복음을

받아들인 것으로 나타난다(17:32). 본문에는 빌립보 사역의 첫 열매로서 루디아의 회

심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루디아는 유대교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공경하는

여인으로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그

녀는 유럽 지역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최초의 사람이었으며 또한 본서에 등장하는 여자

중에 최초로 그리스도인이 된 자이다. 이후에 잇따른 여자들의 개종이 있게 된다

(17:4).

예수 시대에도 신실한 여인들이 끝까지 주를 따랐던 것처럼 루디아라는 여인 역시

복음을 받아들이고 바울과 빌립보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였던 사실을 볼 수 있다. 그녀

는 상인(商人)이었으며 독신(獨身)이나 미망인(未亡人)으로 추측되는 바, 하나님께서

는 비천한 여인을 들어 바울의 훌륭한 동역자로 귀하게 사용하신 것이다.

(2) 귀신 들린 여종과의 만남. 본문은 주로 바울과 여인들과의 만남을 기록하고 있

다. 루디아의 개종(改宗) 이후 바울은 귀신들린 한 여종을 만나게 되었으니 자신의 점

(占)치는 능력으로 인하여 주인에게 악용(惡用)당하고 있던 자였다. 그녀는 바울을 보

자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전하는 자임을 알아보고 큰 소리로 외

쳤다. 이 장면은 귀신들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고 소리지른 일들을 연상케

한다(막 1:24;3:11;5:7;눅 4:34,41;8:28).

바울은 그녀의 속에 사단이 역사하고 있음을 곧 알아차렸고 그녀가 무고(無故)하게

고통을 당하며 악인(惡人)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동정을 느꼈음이 분

명하다. 전도자의 눈은 비천한 여인의 눈과 또 한 번 마주치게 되었다. 주위에 모인

수많은 무리들의 시선은 바울과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3)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 이것은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자들에게 주신 능력들 가운

데 하나였다(막 16:17). 예수께서는 그의 공생애 기간 동안 많은 귀신들을 쫓아냄으로

써 예수 자신으로 인하여 사단의 권세가 정복당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음을 암시

하셨다. 또한 예수의 12제자들과 70인의 전도대는 예수께로부터 귀신을 꽃아내는 능력

과 권세를 부여받았다(마 10:1;막 6:7;16:17;눅 9:1;10:17). 축사(逐邪)의 표적이야말

로 하나님께서 만왕의 왕이심을 나타내 주는 증거였다.

본서에서도 예수의 사도들 역시 표적을 행하는 가운데 많은 귀신들을 쫓아내었을 것

이나 다 수록되지 않고 오직 본문의 사건만이 강조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방인의 사도

바울은 예수의 후계자(後繼者)로서 예수께서 행하신 축사의 이적을 이방 여인에게 행

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이방 민족에

게도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단의 권세로부터 자유케 된 이 비천한 이방

여인은 곧 그리스도의 증인(證人)이 되었을 것이며 루디아와 함께 빌립보 교회의 초대

교인이 되었을 것이다.

* 신약 시대의 여행과 통신. 본서에는 여행에 관한 기록이 많이 등장한다. 예수께서

전도 여행으로 3년간의 공생애를 보내셨듯이 바울도 전도 여행을 통하여 일생을 복음

전파에 전력하였다. 이에 본 주제 강해에서는 신약 시대의 여행이 어떻게 이루어졌으

며 어떠한 통신 수단이 존재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1) 여행. 여행의 목적과 방법. 그리고 여행 거리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하자.

(가) 여행의 목적. 신약 시대에는 여행이 보편화된 것이 아니었으며 소수의 사람

들만이 멀 곳으로 여행을 했을 뿐이다. 여행의 목적은 주로 사업을 위해, 혹은 멀리

떨어져 있는 친지들을 방문하기 위한 것이었고 유대인들의 경우에는 종교적 절기를 지

키기 위하여 순례여행을 하였던 것이다. 또한 운동 경기나 학문, 의료 시설의 중심 도

시들도 여행자들을 끌어들였다.

(나) 여행의 방법. 여행은 주로 육로(陸路)와 수로(水路)를 통하여 행해졌다.

(a) 육로. 로마의 도로는 매우 복잡한 양식으로 견고하게 만들어졌다. 훌륭한

도로와 다리의 건설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안전하게 여행을 하게 해주었다. 여리고에

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눅 10:30-37)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유명한 도로 가운데 하나

였다. 육로로 여행할 때에는 수레나 마차, 병거 그리고 짐을 싣는 동물들, 즉 낙타나

당나귀, 코끼리, 말 등의 수단을 이용하였다.

(b) 수로. 도로 이외에 많은 사람들은 수로를 이용하였으니 수세기에 걸쳐 선원

들은 강풍과 싸우며 지중해를 항해하였다. 로마로 가는 길에 지중해를 지나간 바울의

여행은 폭풍우 속을 항해한 극적인 사건이었으며(27장) 바울의 이 경험은 당시 여행자

들의 상황을 잘 말해준다.

(다) 시간과 거리. 여행에 소요되는 시간은 여행의 방법, 날씨, 여행자의 신체 조

건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도보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평균 24-32km 정도 걸을

수 있었다. 예수께서 다니신 최장 거리는 예루살렘이나 베들레헴에서 갈릴리 지경까지

의 길로서 약 130km 정도이다. 초대 교회의 복음 전도자들은 여행이 어려웠음에도 장

거리 여행을 통하여 곳곳에서 복음을 전했다. 특히 바울은 육로와 수로를 통하여 소아

시아 전역과 마게도냐 지방을 수차례 방문하였던 바 지중해 주변을 왕래한 그의 여행

은 복음 전도에 대한 그의 정열이 얼마나 강렬한 것이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

겠다.

(2) 통신. 로마 제국은 무역을 활성화시키고 광범위한 제국을 통치하기 위하여 몇

가지 형태의 통신 제도를 설치하였다. 최초의 우편 제도는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

(B.C.522-486)에 의해 만들어졌다. 정부 우편 제도는 공적인 일을 위해 사용되었으며

일반 시민의 우편물은 거의 취급하지 않았다. 개인 서신들은 보통 여행자들에 의해 전

달되었다.

교회와 신자들에게 보내진 초기의 편지들은 육로와 수로를 이용하는 전도자들에게

의핸 전달되었던 것이다. 로마인들은 속달 우편과 유사한 파발 제도를 갖고 있었으며

이를 위해 많은 정거장을 만들었고 이 정거장들은 여관으로도 사용되었다.

3 바울과 실라의 투옥(16:19-40)

앞문단에서 바울은 귀신들린 여종을 치유하였거니와 본문에는 그 여종의 주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고소하여 옥에 갇히게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까지 바울을 박해

한 자들은 동족(同族)인 유대인이었으나 본문의 핍박은 최초로 이방인들이 행한 것이

었다. 다음 항목들을 통하여 본문을 주의깊게 살펴보기로 하자.

(1) 고난받는 사람들. 본서에는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셨듯이 예수의 제자들도 복음

사역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숱한 고난을 받았다는 사실이 강조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그의 제자들에게 환난을 예고하셨고(요 16:33) 사도 바울도

고난을 전제(前提)로 하고 그의 이방 사역을 전개(展開)하였다(14:22). 시작부터 극심

한 반대를 받아오던 초대 교회는 스데반과 야고보를 비롯한 순교자들을 냈으며, 그밖

의 사도들은 안으로는 유대인과 밖으로는 이방인의 이중적 핍박을 받으며 복음을 증거

하였다. 감옥에 갇혀 매를 맞은 것은 비단 바울과 실라뿐 아니라 베드로도 당하였던

일로서(12:5-19)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그 당시의 고통스러웠던 상황을 회고하고 있다

(고후 11:23-27).

본장에서는 본격화된 이방 전도가 이방인들의 환영을 받으며 순탄하게 진행된 것이

아니라 고난과 더불어 어렵게 시작된 것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이방 전도자

바울에게는 종교적으로는 유대인들의 핍박과 정치적으로는 이방 민족의 핍박이라는 이

중적인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2) 찬미하는 사람들. 예수께서는 의(義)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하셨거니와(마 5:10) 바울과 실라는 자신들이 받는 고난이 결코 무익(無

益)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특별히 선택받은 종으로서

의 고난이라는 특권(特權)을 누리는 자들이었으니 비록 육적으로는 매를 맞고 투옥된

처지에 있었으나 영적으로는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었다(마 5:11,12). 바울은 지금

당하는 환난이 장차 주어질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에 비할 수 없는 것임을 기억하며

(고후 4:17;엡 3:1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게 된 사실에 감사하여 기도

하며 기쁨으로 찬미의 제사(祭祀)를 하나님께 드렸던 것이다.

본문은 이처럼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인정하며 순복(順服)하

는 자들에게 기적적 능력이 임함을 보여준다. 바울과 실라가 옥중(獄中)에서 찬미(讚

美)하자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며 모든 죄수들의 쇠사

슬이 다 벗겨졌으니 성령께서는 믿음의 분량대로 역사하셨던 것이다.

(3) 구원받은 사람들. 당시 로마법에는 간수가 죄수를 놓칠 경우 그 죄수의 형량 만

큼의 형을 간수가 대신 받도록 되어 있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는 퇴역 군인 출신이

었으므로 그가 지키던 바울 일행의 신상에 큰 변화가 일어나자 엄격한 책임감 때문에

자결(自決)하려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신 것은 바울과 실라는 구출

하기 위한 것뿐 아니라 간수를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였으니 바울은 위기의 순간에 그

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바울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며 그 자신뿐 아

니라 가족 모두가 세례를 받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체험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던 바, 바울과 실라의 환경을 초월한 믿음(롬 8:38,39;빌 4:4;히 3:6)이

빌립보의 간수와 그의 가정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본장에는 바울 일행이 유럽에서의 첫 사역지였던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루디아와 그의 가족,

귀신들린 여종, 간수와 그의 가족들로 미약하게 시작된 빌립보 교회는 점점 굳건하여

져서 훗날 유럽 교회의 발상지(發祥地)가 되었으며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빌립보 교회

의 여러 훌륭한 모습들을 격려하고 있다(빌 1:5,27-30;2:17,18;4:3,14,15).

* 명예로운 석방(釋放). 본문에서 간수(看守)를 회심시킨 바울과 실라는 로마 시민

권을 내세워 떳떳이 감옥문을 나서게 되었다. 그 상황과 저자의 기록 의도 등을 본 주

제 강해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빌립보에서의 사역은 루디아의 개종, 귀신들린 여종의 치유 등으로 매우 박진력(迫

眞力)있게 시작되었으나 바울 일행은 몰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최악의 상태에 직면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룻밤 사이에 놀라운 이적적 사건을 체험하고 바로다음

날 석방 명령을 받았다. 로마 당국은 공적인 타협과 하룻밤의 투옥으로 그들의 소요죄

(騷擾罪)를 용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바울과 실라는 로마 당국의 석방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조용히 빌립보를 떠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은 그렇게 매듭지어

지지 않았다.

바울은 사건이 그렇게 간단히 처리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지

닌 로마 시민의 권리를 내세웠다. 바울과 마찬가지로 실라도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

다. 그들은 상관들이 친히 와서 로마 시민에게 합당한 예의를 보여주고 그들이 호위

(護衛)하는 가운데 옥에서 데리고 나가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당시 로마법은 죄목이

드러나기 전에 로마 시민을 죽이거나 채찍으로 때러거나 고문하거나 감금(監禁)할 수

없었다. 또한 만일 형이 선고되었다면 그 판결에 승복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재판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울과 실라를 투옥한 것은 대단한 과오(過誤)였던 것이

다. 로마 당국은 바울의 말을 듣고 두려워하며 자신들의 불법적인 처사에 대해 공적으

로 사과하고 빌립보를 떠나 줄 것을 요청하였다.

바울의 빌립보 사역은 핍박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명예롭게 막을 내린다. 이 장면은 바울이 그의 이방 사역에 있어서 계속적으로 로마 당국의 호의와 배려를 받게 되는 바, 그 첫번째 사례(事例)가 된다 하겠다. 바울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로마의 보호 아래 위기를 모면하게 되는 장면이 앞으로 많이 등장하겠거니와 거기에는 저자 누가의 변증적이며 선교적인 의도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 본서 후반부에서 수차례 언급된 것이다.

매튜헨리주석1033-사도행전 16장

사도행전 16장

Ⅰ. 바울의 디모데 선택 16:1-5

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영적인 아들로서 디모데를 선택한 것을 보게 된다. 모든 점에서 바울은 현명하고 인자한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1. 바울이 디모데를 교육하고 친밀하게 대함(1-3)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1)디모데는 그리스도에 속해 있는 제자였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그를 택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양육시켰다. (2)디모데의 모친은 본래 유대인이었으나 나중에 그리스도를 믿었다. 그녀의 이름은 유니게였고 디모데의 외조모의 이름은 로이스였다. 바울은 두 사람 모두를 매우 존경하고 칭찬했으며, 특히 그들의 거짓없는 믿음(딤후 1:5)을 칭찬했다. (3)그의 부친은 헬라인으로 이방인이었다. 그의 부친이 헬라인이었으므로 디모데는 할례를 받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부친이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그가 할례 받기를 원치 않는 한 그에게는 할례에 대한 의무나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비록 그의 모친이 디모데가 어릴 때에 할례 받게 그에게 설득시킬 수는 없었지만 그의 모친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를 교육시켰다. 그러므로 비록 디모데가 그 계약의 징표를 받기 원했다 할지라도 그는 그 사실이 표면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4)디모데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매우 좋은 평판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즉 그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사는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그는 선한 사람들과 더불어 훌륭한 일들을 행함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5)바울은 디모데가 앞으로 그의 동반자가 되어줄 것을 원했다. 바울은 그를 매우 사랑하였다. (6)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베풀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바울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것을 극구 반대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베풀었다. 그것은 의식법을 지키도록 그에게 강요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 지역에 있는 많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그의 사역이 받아들여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불결한 사람으로 낙인찍어 배척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에게 할례를 베풀었던 것이다. 바울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할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는 반대 입장에 서 있었다. 그러므로 이처럼 그가 할례를 베푼 것은 율법의 문자적 해석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의 정신, 즉 유대인들에 대한 사랑의 정신에 따른 것이었다. 설사 디모데가 할례를 받지 않았다 해도, 바울이 그를 자신의 동반자로 삼는 데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만일 유대인들이 디모데가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베풀어줌으로써 유대인들의 비위를 만족시켰다.

2.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의 믿음을 돈독하게 함(4,5)

바울은 자신이 주님의 말씀을 전파했던 모든 도시들을 통과하였다. 바울의 일행은 예루살렘 회의의 훈령이 적힌 사본들을 그곳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모든 교회는 그 훈령에 깊은 관심이 있었으므로 그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 훈령은 그들에게 매우 흡족함을 안겨주었다. (1)교회들은 이 훈령은 통해서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5절). 교회들은 특히 이방인들에게 의식법을 강요하는 것을 반대하는 자신들의 입장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도들과 장로들은 물론 성령께서도 그것을 반대하신다는 증거를 보았을 때, 교회들은 확고하게 되었다. 진실에 대한 증언은 비록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확신케 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그것에 대하여 의심하고 있는 자들을 확고하게 하는 데에는 매우 유용한 것일 수 있다. 더구나 이 편지에 나타난 겸손의 정신은 사도와 장로들이 사랑이신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있었음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2)이방인 개종자들은 날마다 그 수가 증가했다. 그들에게 의식법의 멍에를 강요하는 것은 그들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율법의 노예로서 전락할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들은 쾌히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이처럼 교회는 날이 갈수록 그 수가 증가했다. 그러므로 그러한 증가를 보게 되는 것은 사람의 영혼이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자들에게 기쁨이 된다.

Ⅱ. 바울의 마게도냐 전도 여행 16:6-15

1. 복음 전파를 위한 바울의 여행(6-8)

(1)바울과 그의 동료인 실라는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통과하였다. (2)당시에 그들이 아시아 지방(그 지방이 그렇게 불리우는 것은 적절한 일이다)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이 당시 그리스도는 새로운 활동의 일환으로 바울을 사용하셨던 것이다. 즉 그것은 로마의 식민지인 빌립보 지방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바울이 이제까지 복음을 전한 이방인들은 헬라인이었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특히 다른 이방인들보다도 유대인들에 의해 미움을 받았다. 그들의 설교를 금지한 분은 바로 성령이었다. 사역자들의 이동은 성령의 인도와 지시 아래 특별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신약 성경 시대에 활동했던 이 사역자들은 한 곳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금지되었을 뿐 아니라, 반면에 그들을 더욱 필요로 하는 다른 곳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던 것이다. (3)그들은 비두니아로 옮기기 원했으나 허락 받지 못하였다.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7절). 그래서 그들은 무시아로 갔다. 애당초 그들의 판단과 계획은 비두니아로 향하려는 것이었지마는,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바꾸어야만 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야 한다. 따라서 만일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의 시도하려는 것을 저지한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따라야 하며 그것이 최선의 길임을 믿어야 한다. 예수의 영은 그들을 허락하지 않았다. 수많은 고대 사본들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주 예수의 종들은 항상 주 예수의 영의 지시와 안내를 받아야 한다. (4)그들은 무시아를 지나갔다. 우리는 그들이 지나가면서 좋은 씨를 뿌렸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그후 그들은 트로이(Troy)의 도시인 드로아에 당도하였다. 여기에 한 교회가 세워졌다. 우리는 이 사실을 사도행전 20:6,7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드로아에서 누가는 뜻밖에 바울을 만나 그의 동료들과 합세했다. 왜냐하면 이때부터 바울의 전도여행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누가는 바울의 수행원들 속에 자신을 포함시켜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10절).

2. 바울을 마게도냐로 특별히 부르심(9,10)

그는 21절에 나타난 대로 주로 로마인들이 거주하는 빌립보 지방으로 부르심을 받는다.

[1]바울이 본 환상(9절) : 한 천사가 바울에게 나타나서 그가 마게도냐로 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뜻임을 알려주었다. 비록 애당초 작정했던 곳으로 가지는 못했지만,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행할 일을 지시하신 곳으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바울이 목격했던 사람에 대해서 살펴보자. 그의 곁에는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 있었다. 그리스도는 바울에게 마게도냐로 가도록 지시하셨다. 그것은 사도들이 평소에 경험했던 것처럼 하늘에서 내려 온 사자(使者)가 바울을 그곳으로 보낸 것이 아니라, 마게도냐에서 온 사자가 그를 그곳으로 초대했던 것이다. 바울은 한 마게도냐 사람에 의해 그곳으로 오도록 초대를 받았고, 이 마게도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대변하여 그에게 말했던 것이다. 바울을 초대한 마게도냐 사람은 그 나라의 행정 장관도 승려도 아닌 그곳에 거주하는 평민이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바울을 억지로 끌고 가려거나 업신여기지 않고 매우 진지한 태도로 그의 도움을 간청하였다. 다음은 그들이 바울을 초대한 사실을 살펴보자. 바울을 초대한 이 정직한 마게도냐 사람은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청한다. 이말은 와서 우리를 위해 복음을 전파해달라는 것이다. “와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파해 주시오. 당신은 많은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 와서 우리를 도와주시오. 불쌍한 영혼들을 보살피는 것은 당신의 일이요 기쁨입니다. 그러니 와서 우리를 도와주시오. 우리 모두는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 속히 우리에게 와 주시오. 당신이 기도로만 우리를 도우려 하지는 마시오. 당신이 직접 와서 우리를 도와주시오.” 사람들은 그들의 영혼을 위해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그를 초대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다.

[2]그 환상에 대한 해석(10절) : 그들은 하나님이 거기에서 복음을 전파하도록 그들을 부르신 줄을 확신하게 되었다. 때로 사람의 요청은 하나님의 요청이 될 수도 있다. 비록 마게도냐 사람이 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고 했다 하더라도, 바울은 이것을 가서 그들을 도우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3. 바울의 마게도냐 항해(11,12)

바울은 하늘의 환상에 복종하였다. 즉 그는 자신의 어떤 계획과 의향대로 추진해 나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지시에 따랐다. 그곳을 향해 바울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10절). 그래서 바울은 그 사실을 동료들에게 전하고 그들 모두가 마게도냐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따랐듯이 그의 모든 동료들은 바울을 따랐으며, 더 나아가 그들은 바울과 함께 그리스도를 따랐던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즉각적으로 응해야 한다. 여러분은 오늘 이 순간 그의 부르심에 따름으로써 마음이 완고해지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그들은 즉시 마게도냐로 향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즉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설사 우리가 곧장 실행의 단계로 접어들어 갈 수는 없다 해도, 실행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있어야 하겠다. 이제 바울은 그곳으로 방향을 정했다. 그들은 드로아로 내려갔다. 그들은 직행하여 사모드라게로 올 때까지 순조롭게 항해하였으며, 다음날 네압볼리에 도착했고 마침내 빌립보에 이르렀다. 빌립보는 마게도냐 지구 첫성(12절) 혹은 첫째 가는 성(the first city)이었다. 그들이 ‘첫째가는 성’에서 전도 활동을 시작한 이유는 복음이 그곳에서 전파될 경우 그 나라의 모든 곳으로 복음이 보다 쉽게 퍼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식민지었으며 로마의 수비대가 있었고 로마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4.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 빌립보에서 받은 냉혹한 대접(13)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고 그곳으로 갔기 때문에 거기서 환영을 받게 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런데 전력을 다해 바울을 그곳으로 오도록 간청했던 그 마게도냐 사람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왜 그는 사람들을 충동하여 가서 바울을 만나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바울 일행의 마게도냐 도착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은 상당한 시간이 경과된 후였다. 이는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12절 후반)라는 말씀으로 알 수 있다. 그들은 그곳에 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서둘렀다. 그러니 이제 그곳에 왔지만, 그들은 전에 있었던 장소가 더 좋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한 장소가 더 좋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한 탁월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그같이 무시되고 천시 받는 세계 속에서 살기에는 부적합하다. 사역자들은 어떤 장소에 와 달라는 간곡한 초청을 받아 그곳에 막상 갔을 때 소홀이 여김을 당하더라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설교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13절). 거기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없었다. 그들은 선한 여인들의 작은 집회처를 발견했다. 이 모임의 장소는 그 도시의 외곽 지역이었다. 그곳은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장소였다.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참되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기 위해서 그곳에 모였다. 그들은 헤어져 있을 때에도 매일 기도했다. 이외에도 그들은 안식일날 함께 모였다. 비록 소수에 불과했으며 도시인들의 재가를 얻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엄숙한 예배의 모임을 안식일에 가졌다. 우리는 격식을 갖추어 모임을 가질 수 없을지라도 가능한 한 예배의 모임을 가져야 한다. 설사 회당이 없다고 하더라도, 가정집에서라도 예배를 드려야 하며 그렇게나마 할 수 있게 됨을 감사해야 한다. 이 장소는 강가로 전해지며, 묵상을 하기 위하여 택하여 진 듯싶다. 바울과 실라와 누가는 그곳에 가서 앉았다. 그들은 그곳에 모이는 여인들에게 말씀을 전파하였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가르쳤다.

5. 루이다의 회심(14,15)

이 사도행전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기록된 장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화된 사실과 특정 인물들의 회심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영혼이란 대단히 귀중한 것이므로 한 사람이 하나님에게 돌아오는 일은 대단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울처럼 기적을 통해 감명 받고 개종한 자들과 본문의 루디아처럼 평범한 은사를 받고 개종한 자들을 보게 된다.

[1]이 회심한 여인은 누구였나? 다음의 네 가지 사실들이 그녀에 관하여 기록되었다.

첫째, 그녀의 이름은 루디아였다. 그녀의 이름이 하나님의 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그녀에게 영예로운 일이었다. 우리는 것은 그녀에게 영예로운 일이었다. 우리는 자신의 이름을 성경책에 기록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여신다면, 우리는 생명의 책에 쓰여진 우리의 이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둘째, 그녀의 직업은 자주 장사였다. 역사가 누가는 그녀가 정직한 직업을 가졌다고 언급하면서 그녀를 높이 평가한다. 그 직업은 초라한 것이었다. 그녀는 몇 차례 언급된 자주빛 옷을 입은 사람이 아니라 자주 옷 장사였다. 그녀는 신경을 써야할 직업을 가졌으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가진 특정한 직업들은 우리의 신앙생활과 잘 조화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상점을 잘 관리하고 장사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고 영혼을 돌보는 일에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한 것이다.

셋째, 그녀의 거주지는 두아디라성으로 그곳은 빌립보에서 시작되는 국도상에 위치하였다. 하나님의 섭리가 루디아를 바울이 복음을 전파한 빌립보로 데려 왔으며, 거기서 그녀는 복음을 접하고 따르게 되었다.

넷째, 하나님에 대한 그녀의 신앙이 그녀의 마음을 열어 주었다. 그녀는 전에 알고 있던 방식대로 하나님을 예배했던 경건한 여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때로 하나님의 은혜는 회심 이전에 매우 사악하고 야비했던 사람들에게 임하기도 하며, 때로는 좋은 성품을 타고난 사람들에게도 임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로서 만족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그런 사람들에게 환영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도들의 말을 경청하였다. 기도가 드려졌던 이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실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겠는가? 빛의 언도에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은 더 밝은 빛을 추구해야 한다.

[2]그녀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역사 :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14절). 이 역사의 주재자는 곧 주님이셨다. 회심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서 일을 계획하시고 또 그 일을 행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이 말은 우리가 아무 것도 행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우리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구원받은 자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있음이 분명하다. 이 역사(役事)의 자리 즉, 변화가 일어난 장소는 마음속이다. 즉 회심의 역사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그 역사의 본질은 다음과 같다. 즉 그녀는 마음에 감동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되었다는 것이다. 폐쇄적인 영혼은 닫혀져서 그리스도와 적대관계에 있게 된다. 영혼을 다루시는 그리스도는 닫혀진 문을 두드리신다(계 3:20). 그러므로 죄인이 감화를 받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때, 영광의 왕이신 그리스도가 들어오실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3]이 역사가 그녀의 마음에 미친 영향 :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단한 주의력을 기울였다. 그녀는 바울이 전한 사실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문을 열었다. 또한 그녀는 바울이 전한 사실들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말씀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그 말씀이 우리에게 유익을 준다. 그녀는 자신의 전 존재를 그리스도에게 바쳤다. 그녀는 세례를 받았으며 그녀의 식구들도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사역자들을 극진히 대접했으며 그들의 더욱 많은 가르침을 받기 원했다.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15절). 이처럼 그녀는 자신에게 이 축복된 변화를 가져다 준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였던 그들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원했다. 그녀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여 열렸을 때, 그녀의 가정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사역자들을 받아들였다. 사역자들은 그녀의 집에서 환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는 지나칠 정도로 간청하여 그들을 그녀의 집에 머물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15절)는 말씀이 본문에 수록되어 있다. 이 말은 바울이 그녀의 집에 가기를 원치 않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루디아는 끝내 자기 고집을 고수하였다. 그녀는 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원했다. 루디아는 자기 집에서 그들로부터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질문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과 함께 매일 기도하며 그녀의 가족을 위해 축복해 줄 것을 요청했다.

Ⅲ. 악령 추방 16:16-24

이제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알려지기 시작했다.

[1]그들은 점치는 한 여종 때문에 알려지게 되었다.

1)이 여종에 대해 소개된 내용 : 그녀는 ‘신들린’자로서 델포스 신전에서 아폴로 신의 신탁을 받아 전달하였던 처녀였다. 그러한 무지와 우상 숭배의 시대에는 악령이 사람들을 자신의 뜻의 포로로 속박시켰다. 그러므로 만일 악령이 그들에게 신탁을 주는 것처럼 가장하지 않았다면, 악령은 그들로부터 받아왔던 그러한 숭배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여종은 점으로 자기 주인들을 많이 도와주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이 무녀의 점을 들으러 왔고, 신탁에 대한 보수를 지불하였던 것이다.

2)이 여종이 바울과 그의 동료들에게 한 증언 : 그들이 기도하러 가던 도중에 그녀를 길에서 만났다(16절). 그들은 공개적으로 그곳을 갔으므로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았다. 우리가 어떤 경건의 훈련을 쌓으려 할 때, 사단은 우리를 혼란시킬 기회를 포착하려고 교활한 꾀를 부린다. 또한 우리가 안정되기를 원할 때, 사단은 우리를 격분시킬 기회를 포착하려고 교활한 꾀를 부린다. 또한 우리가 안정되기를 원할 때, 사단은 우리를 격분시킬 기회를 포착하는 데에도 간교한 수작을 부린다. 그녀가 그들을 만났을 대, 그녀는 그들을 따르며 다음과 같이 외쳤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17절).

①이 증언은 진실이었다. 첫째, 그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들’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종으로써 하나님에 의해 고용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로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러 왔다. 이방인들이 숭배하는 신들은 보다 낮은 존재들이며 따라서 사실상 신이 아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섬기는 신은 모든 신들 위에 뛰어난 ‘지극히 높은 하나님’이다. 그들은 그의 종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만일 우리가 그들을 모욕한다면, 우리는 목숨이 위태롭게 될 것이다. 둘째, 그들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였다. 이방인들도 인간의 비참하고 고통스런 상황을 인식하고 있으며, 구원의 필요성도 인식한다. 그녀는 이제 이 사람들은 우리가 헛된 것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람들이다. 라고 말했다.

②어떻게 점치는 영혼을 소유한 사람의 입으로부터 이 증언이 나오게 되었는가? 사단이 스스로 분열을 일으켜 자신과 대적했단 말인가?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사실에서 그 이유를 찾아낼 수 있다. 첫째, 그녀에게 이러한 고백이 강요된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으로 복음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볼 수 있다. 즉 그것은 사단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막1:24)라고 고백한 경우와 같다. 진리는 때로 진리의 적대자들의 고백에 의해서 확대되기도 한다. 그러한 고백은 적대자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언이다. 반대로 이것은 복음을 손상시키기 위하여 악령에 의해 고안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가장 잘 받아들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이러한 점치는 영혼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으므로 이 증언에 의해 복음에 대하여도 편견을 갖게될 수 있다.

[2]그녀는 ‘여러 날을’ 계속해서 이같이 소란을 피웠다(18절). 바울은 그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말이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준다기보다 오히려 침해를 주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는 곧 그녀를 사로잡고 있는 악마를 추방시킴으로써 그녀를 잠잠케 했다. (1)바울은 괴로워했다. 그처럼 신을 모독하는 사람에게서 신성한 진리를 듣는다는 것은 그에게 괴로움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어떤 선한 진리가 거리에서 위선적인 말로 외쳐지고 있는 것을 들을 때 선한 사람의 마음이 괴롭듯이, 바울도 당연히 슬퍼했다. (2)바울은 악령이 그녀에게서 나올 것을 명령했다. 즉 ‘돌이켜 그 귀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명하였다. 이로써 바울은 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임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침묵은 그녀가 말하는 것보다 더욱 그들이 하나님의 종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권능의 말씀 앞에서 사단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귀신은 즉시 그녀에게서 나오게 되었다.

[3]그 여종이 무능하게 되었을 때, 그녀의 주인들은 사도들을 관원들 앞으로 끌고 가서 기소하였다.

1)주인들을 격분시킨 것은 그녀의 주인들이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았기 때문(19절)이었다. 여기서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근원임을 인식하라. 사단의 마수에서 그녀를 구출한 그리스도의 능력과 크신 사랑은 그로 인해 돈을 잃어야 함을 인식한 그 주인들에게 아무런 감명도 주지 못했다.

2)그 주인들이 바울의 일행을 상관들 앞에 끌고 가서 소란을 피운 과정은 아래와 같다. 그들은 바울의 일행을 붙잡아 저자로 끌고 갔으며 거기에서 공개재판이 집행되었다. 그들은 사도들을 치안 책임자이며 통치자들인 관원들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은 서둘러서 그들을 관원들로부터 그 성의 감독들인 상관 앞으로 데려갔다.

3)그들이 사도들을 고소한 내용은 사도들이 그 지역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20절). 그들은 사도들을 유대인으로 간주하였다. 사도들을 고발한 일반적인 내용은 그들이 그 성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즉 불화를 일으키고 공공의 평화를 해쳤다는 것이다. 만일 사도들이 그 성을 혼란스럽게 했다면, 그것은 천사가 벳새다 연못의 물을 치유를 위해 요동하게 한 것처럼 소요를 일으킨 것에 불과했다. 이 고소의 증언은 그들의 가르침이 로마의 식민지에 사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부적합한 풍습이었다는 것이었다(21절). 로마인들은 항상 종교의 개혁을 매우 싫어하였다. 그 종교가 옳거나 그르거나 간에 그들은 조상들이 전통으로 물려준 것은 그대로 고수하려 하였다. 그들은 이방인들의 신이나 신흥 종교의 신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4]사도들은 상관들을 통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상관들은 그들에 대한 핍박을 지지함으로써 그들을 타도하는 군중의 시위를 선동하였다.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22절). 하나님의 사역자들과 백성들을 제도를 파기하고 관습을 변화시키는 위험 인물이라 주장함으로써 그들을 몰아붙인 것은 사단의 획책이었다.

2)더 나아가 그들은 사도들은 가장 악한 죄인으로 묘사했다. 그들은 사도들을 채찍질하기 위해서 사도들의 옷을 찢었다. 이것은 바울이 로마의 관례에 의해 채찍을 맞은 세차례 사건 중 하나였다. 이 로마법에는 채찍 수가 마흔 번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유대법의 규정이 무시되었다. 그러므로 본문은 수없이 많은 채찍을 맞은 것으로 전하고 있다(23절). 우리는 이 정도면 그들의 잔인성이 충족되었으리라고 기대할 수도 있겠다. 즉, 바울의 일행은 채찍질을 당했으므로 분명히 석방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반대로 사도들은 감옥에 투옥되고 만 것이다. 재판관들은 그들이 위임받은 일들을 매우 가혹하게 처리하였다. 그들은 간수에게 그들을 든든히 지킬 것을 분부했다. 즉 그들은 사도들이 감옥을 부수고 탈출을 감행하거나 혹은 외부에 패거리가 있어 그들로부터 구출될 소지라도 있는 위험인물들 인양 그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를 하달했던 것이다. 간수는 사도들을 철저히 감시하였다.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24절). 상관들이 잔인할 때 그들 밑에 있는 관리들도 역시 잔인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사도들을 깊은 감옥에 가두었다. 그곳은 일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악질범들을 가두는 지하 감옥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하지 않은 양 간수는 그들의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다. 그들의 발에 착고를 채운 것은 하나님의 사자들로서 처음의 경우가 아니었다. 이전 시대에나 후대에도 얼마나 많은 곤경을 그들은 당했던가!

Ⅳ. 바울과 실라의 투옥 16:25-34

우리는 바울과 실라에 대한 박해자들의 계획이 좌절되고 무산되는 경우를 본문에서 보게 된다.

[1]박해자들은 복음 전파자들을 실망시키고 좌절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그들이 복음 전파에 대해 더욱 열심을 내게 됨을 보게 된다.

1)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용기를 내었다. 그들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살펴보자. 그들은 집정관들이 때린 채찍으로 인하여 온 몸이 쑤시고 아팠다. 따라서 그들은 불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 뿐 아니라, 다음에 그들을 참수형을 두려워해야 할 입장에 있었다. 그 동안 그들은 깊은 감옥에서 착고를 차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밤중에도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들은 함께 기도했다. 그들은 서로의 고통을 감싸주고 위로할 수 있기를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투옥과 채찍질이 복음 전파의 계기가 될 것을 기도했으며, 박해자들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것과 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했다. 이때는 기도를 드리는 시간이 아니라 한밤중이었다. 또한 그곳은 기도의 집이 아니라 지하 감옥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기도하기도 적합했으며 그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 것이다. 어떠한 고통과 슬픔도 우리의 기도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미했다. 만일 우리에게 하나님을 찬미하는 마음이 없다면, 찬미할 조건조차도 없을 것이다. 지하 감옥과 두 발에 채여진 착고들도 그들이 찬양하는 것을 막지 못했는데, 하물며 그 어떤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찬양심을 제거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을 뿐만 아니라 노래로 그를 찬양했다. 고통 중에서도 기도해야 하는 것은 우리 신자들의 규례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고통 중에서 기도했던 것이다. 또한 기쁨을 맞이한 자들이 찬미해야 한다는 것 역시 신자들의 규례이므로 그들은 고통 중에서도 기쁨으로 찬미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 주위의 죄수들이 그것을 들었다고 하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설사 죄수들이 그들의 기도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찬송하는 것은 들었을 것이다. 비록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그들은 그곳에 갇혀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힘차게 찬양했다. 우리는 마음을 다 바쳐 찬양해야 한다. 사도들은 다른 죄수들이 그들의 찬양을 들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주님을 믿는 떳떳한 자리로서 큰소리로 찬양하였다. 저속한 노래를 부르는 자들이 남들은 아랑곳없이 고성방가로 노래하고 있는데 반해, 신자들의 가정이 남들의 이목을 두려워하여 자신들의 의무를 생략한다면 그것은 변명될 수 있겠는가? 죄수들은 바울과 실라가 옥중에서 부르는 노래를 들었으며, 그들을 위하여 감옥 문이 열리게 되는 기적적인 은총을 볼 수 있었다.

2) 하나님은 사도들에게 징표를 보여주심으로써 그들을 놀랍게 격려하셨다(24절). 갑자기 커다란 지진이 발생하였다.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26절).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에게 행한 무례함에 대해 분노의 표시로서 이러한 지진을 일으키셨다. 감옥문은 열려졌고 죄수들의 착고가 풀어졌다.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26절). 후에 하나님은 바울에게 ‘그와 함께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을 주셨듯이'(행 27:24) 여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감옥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을 그에게 허락하셨다.

[2]박해자들은 복음전파를 중단시키려고 계획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감옥 속에서의 개종 사건과, 복음의 승리가 그곳에서 일어나 간수가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음을 목격하게 된다.

1)간수는 이러한 사건을 통해서 처형당할까봐 두려워했으나 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그를 안심시켰다(27,28절). 첫째, 간수는 잠에서 깨어났다. 지진의 충격과 어둠 속에서 자신들의 결박이 풀려진 것을 본 죄수들의 기쁨과 놀라움의 탄성들이 그를 깨운 것 같다. 간수는 죄수들로부터 가까운 곳에 있었으므로 쉽게 깨어날 수 있었다. 둘째, 그는 감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갔을 것으로 단정했다. 그러면 그는 어떻게 될까? 그는 이런 경우에 적용되는 로마법을 익히 알고 있었다. 셋째, 깜짝 놀란 그는 자신의 칼을 뽑아 자결하려고 했다. 그것은 더욱 비참한 죽음을 미리 방지하고 자기가 감시한 죄수가 도주한 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자살을 허락했다. 이 간수는 자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기독교는 생명 자체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입증하고 우리에게 창조의 법을 준수하도록 명하여 우리 자신의 삶에 충실할 것을 요구한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우리의 삶이 은혜 앞에서 기쁨을 누릴 것과 타락하지 않고 용기 있게 살아갈 것을 말한다. 넷째, 바울은 간수의 자살행위를 중지시켰다.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28절). 죄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경고의 말씀은 바로 이러한 성향을 지닌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즉 너의 몸을 해치지 말라. 그러면 아무도 너를 해칠 수 없을 것이다. 죄를 짓지 말라. 그러면 아무 것도 너를 해칠 수 없다는 뜻이다. 간수는 죄수들이 도망친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소환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감옥 문도 열려지고 그들의 결박도 풀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도망치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발을 풀어주시는 만큼이나 그들의 영혼을 사로잡으시는 그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2)간수는 목숨을 잃게 될까봐 두려워 했느냐, 바울은 그를 안심시킨다. 하나의 관심이 그 간수를 보다 엄청난 또 하나의 관심으로 이끌었다. 그는 죽음이 자신을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 또한 죽음 저편에서 자신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①이유야 어쨌든 간에 그는 상당히 당황하였다. 하나님의 영은 자신이 위로자 이심을 그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그를 공포에 몰아넣으셨다. 그는 등불을 갖고 감옥으로 뛰어 들어와 떨면서 바울과 실라에게로 왔다. 이 간수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자, 자신의 사정을 호소할 사람은 바울 밖에 없음을 알았다. 왜냐하면 바울이 한때 간수의 경우와 동일한 경험을 가졌었기 때문이었다. 즉 바울은 한때 선한 자들의 박해자로서 그들을 감옥에 가두었던 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바울을 그 간수에게 더욱 친밀하게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②이러한 당혹함 속에서 간수는 바울과 실라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사도들에게 매우 공손하고 존경하는 태도로 다음과 같이 행했다. 그는 등불을 요청했으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였다. 아마 그는 귀신들린 여종이 그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이며 구원의 길을 제시한 자들이다라고 말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행했던 무례함을 사죄 받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그들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그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존경의 칭호로 사도들을 선생님, 주님이라고 불렀다. 이때까지 사도들은 부랑자와 악한으로 취급되어 왔으나, 이제는 그 간수의 주인이 되었다. 회개의 은총은 사람들의 말투를 변화시킨다. 간수는 매우 심각하게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다. 첫째, 이전까지 그의 생각이 가장 외부에 놓여 있었던 자신의 구원에 대한 문제가 이제는 당면한 문제로서 최대의 관심사가 되었다. 둘째, 그는 다른 사람들이 아닌 자신에 관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던 것이다. 그의 관심의 대상은 바로 자신의 귀중한 영혼이었다. 셋째, 그는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행해야 함을 확신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나를 위하여 무엇을 해줄 것인가?”라고 묻지 않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던 것이다. 넷째, 그는 기꺼이 무슨 일이든 하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에게 말해 주십시오. 그러면 나는 그것을 행할 것입니다. 선생님, 나를 옳은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아무리 좁고 가시밭 길이며 어려운 길일지라도 나는 그곳으로 나아갈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자신들이 지은 죄를 철저히 인정하고 진정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어떠한 요구도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다섯째,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알고 싶어 했으며, 그것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얼굴을 시온산의 방향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그곳으로 가는 길을 물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는 그 길을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신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돕기 위해 그의 사역자들에게 명하사 간구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실 것과 약속하신다. 여섯째, 간수는 사도들을 데리고 나갔다. 그는 지하감옥에서 사도들을 데리고 나갔다. 그는 지하감옥에서 사도들을 데리고 나오면서 그들이 훨씬 더 나쁜 곳으로부터 자기를 끌어내 주기를 원했다.

③사도들은 간수에게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곧바로 가르쳤다(31절). 비록 춥고 아프고 졸음이 왔지만, 그들은 보다 편리한 시간과 장소를 찾기 위하여 지체하지 않았다. 쇠가 달아올랐을 때 두들기듯이, 그들은 간수가 선한 마음을 가진 이 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확신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였다. 이제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하였으므로 하나님의 동역자인 그들 또한 일을 시작할 때인 것이다. 그들은 그 간수를 절친한 친구로 대하고 그에게 기쁜 마음으로 하늘로 가는 길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한 것과 똑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지시를 그에게 하였다. 본문에서 은총의 계약인 모든 복음의 내용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몇 마디 말로 요약되어 있다. 행복에 대한 약속은 다음과 같다. 즉 “네가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축복에로 인도될 것이다. 설사 박해자일지라도 당신의 완고하고 억센 마음도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부드럽고 유쾌하게 될 것이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한가지 조건이 요구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중보자를 통해서 자신과 세상을 화해시키려는 방법을 인정해야 하며 우리에게 보냄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구원받는 유일하고 확실한 길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으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다. 또한 우리가 이 길을 선택한다면 우리의 기대에 어긋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를 믿는 자는 구원받을 것이다’라는 말씀은 모든 피조물에게 선포되어야 할 복음인 것이다. 이 말씀이 그의 가족에게까지 확대되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고 기록되었다. 아무리 그들의 숫자가 많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그들은 모두 구원받을 것이다.

④사도들은 계속해서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했다.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32절). 본문에 나타난 대로 그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예수가 누구이며 그를 왜 믿어야 하는지를 그에게 알려주는 것이 절실하였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그들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즉시 주님의 가르침을 전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그의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했다. 한 가정의 가장은 가족 모두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을 얻고 은총을 받게 되는 길에 참여하도록 돌보며,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전해지도록 보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가장 비천한 종들의 영혼들도 그들 주인의 영혼과 마찬가지로 고귀하며 똑같은 가치를 지닌 것이기 때문이다.

⑤간수와 그의 가족들은 즉시 세례를 받았다. 본문에는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이 즉시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되어있다. 은혜의 성령이 갑작스럽게 그들 속에서 그렇게 강한 신앙으로 역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논의가 필요없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임했음을 성령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⑥이로써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매우 존경하게 되었다. 그는 ‘그날 밤 즉시 그들을 데리고 나와’ 그들을 단 일분도 감옥 안에 있도록 하지 않았다. 그는 그들의 채찍 맞은 부위를 씻어 주었고 상처가 아물도록 냉찜질하여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들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환대하였다. 전에 그들을 가혹하게 대했던 그 간수의 입장에서는 현재의 극진한 대접도 만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그는 ‘그들에게 음식을 차려 주었고’ 그들은 식탁에 초대되었다. 그들은 그 간수와 그의 가족들에게 생명의 떡을 나누어주었다. 그는 그들로부터 영적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어떤 집에서 어떤 식탁을 대하든 간에 그것을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에게 봉사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⑦구원의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음성이 간수의 집을 가득 채웠다. 그들은 이전에 이처럼 즐거운 저녁을 맞이한 적이 없었다.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24절).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므로 그 간수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곧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었다. 따라서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도록 지시한다. 그의 신앙은 기쁨을 창출하였다. 그리스도의 신앙을 통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친 자들을 많은 기뻐할 만한 이유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즐거움을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기쁨을 맛 본 신자는 많은 사람들을 기쁨으로 인도해야 한다.

Ⅴ. 바울과 실라의 석방 16:35-40

1. 바울과 실라에 대한 석방 명령이 내려짐(35,36)

전날 사도들을 매우 학대했던 상관들은 날이 새자마자 그들이 방면을 탄원하기도 전에 즉시 명령을 내려 서둘러 그들을 석방시켰다. 상관들은 사도들을 채찍질하던 자들, 즉 아전들을 보내어 이 사람들을 석방시키라고 명령하였다. 간수는 그 소식을 그들에게 가져왔다(36절). 상관들이 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36절). 이 말은 간수가 사도들을 그의 손님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죄수들로서 떠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의 집에서 여전히 환영받을 것이지만, 간수는 사도들이 착고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을 기뻐했다.

2. 상관들이 자신의 특권을 침해한 죄를 범한 것에 대한 바울의 주장(37)

바울은 아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우리가 아무런 죄를 범하지도 않았는데도 마구 때리고 감옥에 가두는 행위는 불법이 아닌가? 이제 와서는 우리를 몰래 석방시키려 하는가? 절대로 그런 일은 용납할 수 없다. 그들이 직접 우리에게 와서 데리고 나가게 하라. 그리고 그들이 우리에게 잘못했음을 시인하게 하라.

[1]바울이 매를 맞기 이전에 이와 같이 탄원을 제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자기가 전한 진리 때문에 고통당하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인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바울은 고난 속에서 자신을 자유케 할 수 있는 이러한 특권보다 더욱 고귀한 것을 소유하였다.

[2]바울은 모든 모욕을 당한 후에 탄원을 제기했다. 그것은 그가 고통당한 이유를 명예롭게 하고 복음 전파자들이 후한 대접을 받아야 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함이었다. 또한 바울의 이러한 항변은 빌립보 교회의 교우들에 대한 상관들의 강경한 태도를 경감시키는 것과 그곳 사람들의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도록 하기 위해서 취해진 것이었다.

첫째, 바울은 그들이 얼마나 많은 범법행위를 자행하였는가를 그들에게 상기시켰다. 그들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바울의 일행을 구타하였다. 로마의 역사가들은 로마 시민들에게 무례하게 대함으로써 자신들의 자치권을 빼앗긴 도시들의 실례를 보여 주고 있다. 만일 바울의 일행이 그리스도의 사자들인 자신들을 구타했다고 그들에게 말했다면, 그것은 아무런 실효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신들을 학대했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리스도의 분노보다 로마의 황제의 분노가 더 큰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상관들은 유죄판결조차 내림이 없이 사도들을 구타하였다. 그들은 사도들에 대한 고소장을 심의하지도 않고 그들에게 발언권도 주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그들이 그들에게 제기된 소송에 대해 공정한 재판만 했었더라도, 그리스도의 종들은 그러한 학대는 받지 않았을 것이다. 사도들은 공개적으로 처벌한 것은 굴욕적인 처사였다. 그들은 처벌 이유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사도들을 감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이제는 사도들을 비밀리에 내어 보내려고 했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뻔뻔스러운 태도를 고수할 수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할만한 솔직함도 없었다.

둘째, 바울은 그 상관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공개석상에서 사도들의 무죄를 선포함으로써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그리고 우리가 채찍질을 당하거나 결박될 아무 일도 범하지 않았음을 증언하라고 주장하였다. 이 같은 바울의 완강한 주장은 자신의 명예가 아니라 정의를 위한 것이었다. 개인보다는 자신의 명분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3. 바울과 실라에 대한 판결의 보복(38,39)

상관들은 바울이 로마시민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깜짝 놀랐다. 박해자들의 소송은 종종 국가법의 차원에서 비합법적이고 자연법에 어긋나는 비인간적인 처사였으며, 하나님의 법에 위배되는 악한 것이었다. 상관들은 사도들에게 와서 그들에 대한 법적 소송을 취하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사도들이 투옥되었음을 인정하고 그들을 감옥에서 데리고 나왔으며, 사도들이 조용히 그 도시를 떠나가 주기를 청했다. 그러나 만일 이 상관들이 진심으로 회개하였다면, 그들은 사도들이 그 도시를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며 계속 그 도시에 남아 구원의 길을 자신들에게 가르쳐 주기를 간청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를 박해해서는 안 된다. 상관들은 마지못해 그리스도와 그의 종들을 존경했지만 결코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기 위해 나아가질 않았다.

4.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출발함(40)

사도들은 법적으로 석방되어 감옥을 나왔다. 사도들은 친구들과 작별했다. 사도들은 루리아의 집으로 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그들을 위로했다. 초심자들은 많은 위로의 말씀을 들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그들에게 커다란 힘이 될 것이 때문이다. 사도들은 떠나갔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로 향하도록 특별한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거기에 도달했을 때 노력의 결과가 거의 없음을 깨달았고 즉시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그들이 쓸데없이 온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빌립보 교회의 기초를 놓았다. 후에 그 교회는 빌립보서(참조, 행 1:1,4:15)에 나타났듯이 매우 유명해졌으며, 다른 어떤 교회들보다도 더 큰 관용을 바울에게 베풀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자신들이 수고한 노력의 결과를 당장 찾아 볼 수 없다해도 결코 실망해서는 안 된다. 뿌려진 씨앗은 흙 속에 파묻혀진 것으로 보일지라도, 때가 되면 싹이 나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1-5 Well may the church look for much service from youthful ministers who set out in the same spirit as Timothy.

But when men will submit in nothing, and oblige in nothing, the first elements of the Christian temper seem to be wanting; and there is great reason to believe that the doctrines and precepts of the gospel will not be successfully taught.

The design of the decree being to set aside the ceremonial law, and its carnal ordinances, believers were confirmed in the Christian faith, because it set up a spiritual way of serving God, as suited to the nature both of God and man.

Thus the church increased in numbers daily.

#6-15 The removals of ministers, and the dispensing the means of grace by them, are in particular under Divine conduct and direction.

We must follow Providence: and whatever we seek to do, if that suffer us not, we ought to submit and believe to be for the best.

People greatly need help for their souls, it is their duty to look out for it, and to invite those among them who can help them.

And God’s calls must be complied with readily.

A solemn assembly the worshippers of God must have, if possible, upon the sabbath day.

If we have not synagogues, we must be thankful for more private places, and resort to them; not forsaking the assembling together, as our opportunities are.

Among the hearers of Paul was a woman, named Lydia.

She had an honest calling, which the historian notices to her praise.

Yet though she had a calling to mind, she found time to improve advantages for her soul.

It will not excuse us from religious duties, to say, We have a trade to mind; for have not we also a God to serve, and souls to look after? Religion does not call us from our business in the world, but directs us in it.

Pride, prejudice, and sin shut out the truths of God, till his grace makes way for them into the understanding and affections; and the Lord alone can open the heart to receive and believe his word.

We must believe in Jesus Christ; there is no coming to God as a Father, but by the Son as Mediator.

#16-24 Satan, though the father of lies, will declare the most important truths, when he can thereby serve his purposes.

But much mischief is done to the real servants of Christ, by unholy and false preachers of the gospel, who are confounded with them by careless observers.

Those who do good by drawing men from sin, may expect to be reviled as troublers of the city.

While they teach men to fear God, to believe in Christ, to forsake sin, and to live godly lives, they will be accused of teaching bad customs.

#25-34 The consolations of God to his suffering servants are neither few nor small.

How much more happy are true Christians than their prosperous enemies! As in the dark, so out of the depths, we may cry unto God.

No place, no time is amiss for prayer, if the heart be lifted up to God.

No trouble, however grievous, should hinder us from praise.

Christianity proves itself to be of God, in that it obliges us to be just to our own lives.

Paul cried aloud to make the jailer hear, and to make him heed, saying, Do thyself no harm.

All the cautions of the word of God against sin, and all appearances of it, and approaches to it, have this tendency.

Man, woman, do not ruin thyself; hurt not thyself, and then none else can hurt thee; do not sin, for nothing but that can hurt thee.

Even as to the body, we are cautioned against the sins which do harm to that.

Converting grace changes people’s language of and to good people and good ministers.

How serious the jailer’s inquiry! His salvation becomes his great concern; that lies nearest his heart, which before was furthest from his thoughts.

It is his own precious soul that he is concerned about.

Those who are thoroughly convinced of sin, and truly concerned about their salvation, will give themselves up to Christ.

Here is the sum of the whole gospel, the covenant of grace in a few words; Believe in the Lord Jesus Christ, and thou shalt be saved, and thy house.

The Lord so blessed the word, that the jailer was at once softened and humbled.

He treated them with kindness and compassion, and, professing faith in Christ, was baptized in that name, with his family.

The Spirit of grace worked such a strong faith in them, as did away further doubt; and Paul and Silas knew by the Spirit, that a work of God was wrought in them.

When sinners are thus converted, they will love and honour those whom they before despised and hated, and will seek to lessen the suffering they before desired to increase.

When the fruits of faith begin to appear, terrors will be followed by confidence and joy in God.

#35-40 Paul, though willing to suffer for the cause of Christ, and without any desire to avenge himself, did not choose to depart under the charge of having deserved wrongful punishment, and therefore required to be dismissed in an honourable manner.

It was not a mere point of honour that the apostle stood upon, but justice, and not to himself so much as to his cause.

And when proper apology is made, Christians should never express personal anger, nor insist too strictly upon personal amends.

The Lord will make them more than conquerors in every conflict; instead of being cast down by their sufferings, they will become comforters of their breth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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