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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복음 17 장 | 누가복음 17장 답을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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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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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 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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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3/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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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누가복음 17장 – 한국컴퓨터선교회

이 말은 고대 헬라어에서 ‘어떤 병의 증상을 철저하게 관찰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병의 증상이 슬며시 찾아온 것처럼 주님이 오심도 바리새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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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cm.co.kr

Date Published: 1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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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누가복음 17 · 1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케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있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 2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찐대 차라리 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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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4/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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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17 – 다국어 성경 Holy-Bible

누가복음 17장 · 그 날에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자기 물건들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들을 꺼내려고 내려가지 말아라. ·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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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olybible.or.kr

Date Published: 7/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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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7(수) “누가복음 17:1-10” / 작성: 최정운

종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기주장을 하지 않으며, 겸손하게 자기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이 땅에 주님의 제자라고 하는 사람 중에, 복음 사역자들 중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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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3/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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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 성경 – 신약 성서 – Wordproject

장 1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케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있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 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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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wordproject.org

Date Published: 6/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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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장 본문 및 주석 정리, 실족함과 겨자씨 믿음, 나병 …

누가복음 17장, 개역개정성경 본문 및 주석 ·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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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otfreak.tistory.com

Date Published: 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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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Luke 17 KLB;NIV;KJV –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죄 짓게 하는 일 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지만 죄 짓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불행이 닥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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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3/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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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장 – 네이버 블로그

누가복음 17장 · 1. 옷을 찢고 머리를 풀어 슬픔과 애통을 표현해야 한다. · 2. 윗 입술을 가렸다. 이것은 자기 입술을 치는 행위로 극심한 자기 비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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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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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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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누가 복음 17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 Views: 조회수 13,4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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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2. 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XK3tiw3Oi6k

누가복음 17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1)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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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케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있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 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찐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리라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 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 뿐이라 할찌니라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020/05/27(수) “누가복음 17:1-10” / 작성: 최정운

본문 누가복음 17:1-10

찬송가 420장 ‘너 성결키 위해’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자신을 무너뜨릴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시면서 오랫동안 강론을 이어오셨습니다.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에는 바리새인들에게 경고하셨고,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책망조로 말씀하실 때는 부정적인 예를 드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이어지는 17장에서 예수님은 베레아 지역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하시며 주님의 제자들이 가져야 할 주요 덕목들을 다시 한 번 강조하십니다.

주님은 앞선 14장과 곳곳에서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자가 되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닐뿐더러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이라고까지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 시대에도 주님의 참 제자가 많지 않기에 교회가 올바로 서지 못하고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경험하면서 한국교회가 다시금 비판과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때에, 목회자와 성도들은 더욱 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가르쳐주신 교훈을 따라 제자의 삶을 온전히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닮아가며, 신실한 제자 공동체로 드려질 수 있을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주님은 제자 공동체를 향한 네 가지 교훈을 주시는데, 이는 먼저 우리가 속해 있는 구역공동체와, 봉사팀, 그리고 우리 교회, 나아가 이 사회 공동체 속의 모든 인간관계와 사역의 현장 속에서 실천해야 할 제자의 자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족하게 하는 것과 용서에 대한 교훈(1-4)

주님의 제자 공동체에 주시는 첫 번째 교훈은 실족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예를 들어 주신 것이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입니다. 부자의 모습에서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주위에 몰려든 세리들과 죄인들을 경멸하고 있었으며, 부자도 나사로를 이와 비슷하게 취급했습니다. 소외당하고 약한 자들은 이로 인해 쉽게 영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교훈을 제자들에게 주시며, 바리새인들처럼 하지 말라고, 피난처를 찾아 예수님께 나아온 영혼들을 실족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제자 공동체인 교회는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실족이라는 단어는 죄를 짓거나 믿음에서 멀어지는 것을 뜻하며, 다른 사람이 죄를 범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는 모든 장애물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위험에 가장 노출되어 있는 사람은 지도자, 곧 목회자와 공동체의 리더들일 수 있으며, 이후 사도행전으로 이어질 때에 열두 사도가 곧 당사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전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이미 죄가 만연해 있고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인이며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희가 조심하라’고 하시면서 그렇게 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주님께서 이런 과격한 표현을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만큼 실족하게 하는 것이 한 사람을 파괴적인 결과로 이끌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족하게 된 사람은 그보다 더 한 고통과 아픔을 겪을 수 있고, 믿음에서 떠나 멸망의 길로 갈 수 있기에, 실족하게 한 사람도 마땅히 그에 따른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무심결에 실수를 할 수 있고, 말과 행동으로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는 주님의 이 말씀을 늘 염두에 두고 항상 조심하여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실족하게 하는 일은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사에 주님의 말씀처럼 상대를 배려하고 먼저 이해하며 신중하게 행하고, 더욱이 약한 자들을 대할 때 더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제자 공동체에 주시는 두 번째 교훈은 끝까지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여기 ‘형제’라는 단어를 새번역에서는 믿음의 형제로 번역하고 있으며, 원어의 의미도 공동체 안에서의 형제를 의미합니다. 믿음의 지체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이어서 그가 회개하거든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경고는 회개를 위한 경고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한 지적과 책망이 아니라, 그가 잘 돌이키고 죄를 뉘우치고 다시는 저지르지 않도록 회개할 수 있는 경고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곧 그가 마음 상하지 않고, 잘 동의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경고일 것입니다. 혹시 그가 마음이 상하게 된다면, 오히려 앞 절에 나오는 실족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공동체에서는 아주 신중하게, 그리고 기도를 많이 하고 죄를 지적할 수 있어야합니다. 한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설 수 있도록 온 마음을 다해 그를 세워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진정 회개하는 자리로 이끌어 줄 것이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것입니다. 또한 공동체는 더 성결하게 되고,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혹시 공동체 안에서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십니까? 먼저 용서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에게서 사과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용기도 허락해 주시길 기도해야겠습니다. 나아가 부모 자녀 관계, 친구관계와 이웃관계, 직장에서도 용서가 필요한 상황에 있다면 주님의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용서를 구하고, 또한 용서를 베푸는 주님의 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이어서 용서의 조건과 기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주님은 제자들을 박해하는 자들에게는 무조건 용서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서 형제를 용서할 때는 조건이 붙습니다. 그가 회개할 때입니다. 회개하는 형제를 용서하되 일곱 번, 즉 완전수를 언급하시며 끝까지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일곱 번 반복해서 죄를 짓는다는 것은 동일한 피해를 계속 입힘으로 상대가 큰 상처를 입었을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도 과연 용서할 마음이 생길 수 있겠습니까? 이 때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해 주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는 이와 같이 끝까지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회개와 용서의 문화가 자연스러운 공동체가 되도록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스데반 역시 그렇게 했습니다. 때로 상대가 회개의 모습이 모이지 않고 있다 할지라도, 주님의 모습과 스데반의 예를 떠올리며 먼저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마음과 현장이 주님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믿음에 대한 교훈(5-6)

주님의 제자 공동체에 주시는 세 번째 교훈은 믿음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앞 맥락과 이어진다고 보면, 제자들이 용서를 위해 믿음을 구한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말씀하신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이 있다 할지라도 아무리 용서하기 힘든 사람까지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또한 새로운 주제로 넘어가는 것으로 보아도 크게 무리는 없습니다. 제자들이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그 배경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주님께 믿음을 더해 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향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제자들은 예수님이 믿음의 대상이시며, 근원이라는 것을 알고, 주님께 이 믿음을 구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더해 달라고 구했지만, 주님은 그것에 응하지 않으시고 너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뽕나무를 바다로 옮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제자들 속에 이 믿음이 있다는 것이고, 그 믿음을 이제는 실행해 옮기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자기 신념이나 의지가 아닙니다. 신뢰할만한 대상을 신뢰하고 관계를 맺는 것인데, 그 분명한 대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약속의 말씀의 성취로 오신 분,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으로 기도할 때 이와 같은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이 믿음을 가지고 수많은 사도행전의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적이고, 열매입니다. 우리 삶에서도, 또한 우리 공동체도 주님을 향한 이 믿음이 있을 때, 뿌리 깊은 뽕나무가 뽑혀 바다에 던져지는 듯한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무익한 종의 자세(7-10)

주님의 제자 공동체에 주시는 마지막 네 번째 교훈은 겸손한 종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7-9)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당시의 종은 바깥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집안일을 했습니다. 주인과 함께 겸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수종들고 이후에 자기 것을 먹는다는 것을 예로 들어 주십니다. 주님의 제자는 주님과 친구 관계이면서 동시에 주인과 종의 관계처럼 하나님 앞에 서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종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기주장을 하지 않으며, 겸손하게 자기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이 땅에 주님의 제자라고 하는 사람 중에, 복음 사역자들 중에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 자기의 업적을 기리는 사람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런 자들은 주님의 이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당시의 종들이 일을 하듯 주님의 제자는 철저한 봉사와 전적인 헌신이 요구된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역시 사역 가운데 흘리는 땀과 수고에 대한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기보다 겸손히 우리에게 맡겨진 주의 일을 충성되이 감당해야 할 주님의 종들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제자 공동체에서는 겸손히 먼저 섬기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또한 주님은 그냥 종이 아니라 무익한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한 일이 많아도, 그저 주인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며 조심스러워하는 겸손한 종의 자세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교만했고, 섬김을 받으려 했으며, 자신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오늘날 주님의 종이 이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 철저히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신 이와 같은 네 가지 교훈은 주님이 먼저 보여주신 모본을 따라 우리도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찾아와 주시고 끝까지 참아주십니다. 매일 죄를 지어도 주님의 십자가 앞에 가지고 나아가면 우리 죄를 사해 주시되,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회개하는 자를 끝까지 용서해 주십니다.

주님은 아버지와의 깊은 관계 속에서 마지막 사명을 감당하시기까지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 친히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의 본을 따라 가르쳐주신 이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며 지켜 행함으로, 오늘도 제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귀한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통해 교훈하시고 가르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이 땅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주님이 보여 주신 모본을 따라 약한 자를 대할 때 늘 조심하며 신중하고 배려함으로 상처주지 않고, 실족하지 않을 수 있도록 저희 입술과 행동을 지켜 주시옵소서. 주님이 용서하셨듯이 먼저 용서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예수님을 향한 올바른 믿음을 지켜갈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하고 무익한 종이라 고백할 수 있는 겸손히 그리고 끝까지 섬기는 인생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우리도 묵묵히 주님 손잡고 걸어가는 이 시대의 주님의 참 제자, 그리고 제자 공동체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주님의 제자는 스스로 조심하며 형제를 실족하게 하지 않도록 힘쓰라고 하십니다. 나로 인해 상처 받은 자가 있다면 용서를 구하고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2. 회개하는 형제는 끝까지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직까지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오늘 용기를 내어 용서의 손을 내밀어 봅시다.

3. 겨자씨 같은 믿음만 있어서 산을 옮긴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올바른 믿음이 있는지 돌아보고, 어떻게 믿음을 잘 실행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4. 여호와를 나의 힘으로 삼고, 끝까지 겸손한 섬김의 종으로 쓰임받기 위해서 오늘 하루 결단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작성: 최정운)

누가복음 17: 성경

장 1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케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있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 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리라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 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뿐이라 할지니라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궁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23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

24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25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지니라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30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31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 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것이니라

32 롯의 처를 생각하라

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3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5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36 (없 음)

37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7장 본문 및 주석 정리, 실족함과 겨자씨 믿음, 나병환자의 치유와 재림에 대한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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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장, 개역개정성경 본문 및 주석

그리스도께서 실족에 대해 가르치시다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실족하게 하다 :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와 같은 엄중한 심판에 대한 경고는, 거짓 가르침을 통하여 다른 이들을 배교하게 만드는 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특히 여기에서 나오는 맷돌은 콩과 같은 것을 분쇄하기 위해 사용하는 매우 무거운 돌을 의미합니다.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겨자씨 :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지고도 큰 일을 해 낼 수 있습니다. 검은색의 뽕나무 는 600년까지 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넓은 영역에 걸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뽑기가 거의 불가능한 나무입니다.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 열 명의 나병환자를 고치시다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사마리아와 갈릴리 :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여행하고 계신 상황이지만, 일반적이고도 빨리 가는 길로 가지 않으셨습니다.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4절 : 예수님께는 나병환자를 치료해 주셨지만, 제사장들에게 보내셔서 그들이 깨끗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누가복음 5장 14절에도 나타납니다.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5-18절 :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 경멸의 대상이었습니다(눅 9:52). 하지만 이 경멸의 대상이었던 사마리아인만이 자신이 회복되었음에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19절 :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7장 50절과 8장 50절에서 하셨던 것과 같이 믿음으로 인하여 치유되었음을 선언하셨습니다. 감사와 영광을 돌리던 사마리아인은 육신의 치유 이상의 것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에 대해 가르치시다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0절 : 고대 이스라엘에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열방들에게 다 보일 정도로 대단하고 우주적인 모습으로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대감은 하나님께서 오실 때 큰 징조와 놀라운 영광 가운데 오실 것이라고 기록된 여러 문헌 자료들로부터 기초하고 있습니다(욜 2:28-32 참조).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은 마지막 때에 대한 유대인들의 생각보다 더 포괄적인 것이었습니다.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너희 안에 : 이 말은 “너희들 가운데”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초림을 포함한 하나님 나라의 약속과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써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늘날 이 땅의 왕국들 가운데, 그리고 성도들 가운데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 왕국들을 포괄하게 될 것입니다(계 11:15 참조). 22절부터 33절까지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나라에는 두 단계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가르쳐 주십니다. 그 첫번째 단계는 지금이며 다음 단계는 다가올 미래에 임하게 됩니다. 땅위의 하나님 나라가 시작될 때, 하나님께서는 먼저 통치할 왕을 준비하시고, 그 다음에 통치할 백성들을 모으십니다. 그리고 통치자가 통치할 수 있는 영역을 허락하십니다.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일부분이지만 하나님나라는 교회와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제 지구상의 모든 왕국들과 함께 하면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낼 것입니다. 언젠가는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실 것이며, 예수님께서 주의 나라의 모든 규칙을 정하시고 주의 백성들과 함께 통치하실 것입니다(계 2:26-27, 5:9-10, 20:4-6).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23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24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번개 : 갑작스러우면서도 모든 사람들에게 보이는 현상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날도 모든 이들에게 보일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빠르고도 분명한 모습으로 오실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의심할 여지 없이 모두가 알 수 있도록 주의 재림이 있을 것입니다.

25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6절, 노아의 때 : 구약 성경에서 묘사한 노아의 때에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때였으며,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창 6:5-13 참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29절, 그들을 멸망시켰다 : 인자의 날은 노아의 때와 롯의 때 와 같이 모든 것이 심판을 받는 때가 될 것입니다(27절).

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31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32 롯의 처를 기억하라

32절, 롯의 아내 : 그녀는 이 세상에 여전히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들과 이 땅의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룻의 아내처럼, 이 땅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창 19:26 참조).

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33절, 목숨을 잃는 자는 살릴 것이다 : 고난과 죽음을 겪을 정도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며 충성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실 때 큰 특권과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마 5:10-12, 19:27-30, 딤후 2:12, 계 20:4-6 참조).

3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4절, 데려감 :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하여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을 끌고 갔을 때와 같은 심판의 말씀에 대한 표현입니다. 37절은 데려감을 당한 사람들은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36 (없음)

35-36절,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 : 최후의 날에 예수님께서는 심판 받게 되는 자들과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다스릴 자들로 나누실 것입니다. 또 다른 학자들은, 의인들은 하나님 나라로 데려감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어떤 설명이든,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의 영원한 운명이 다른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모두가 자신의 신앙의 결과로 영원한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홀로 서 있는 존재들입니다.

37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이르시되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37절 :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어디로 재림하실 것인지를 묻자, 예수님께서는 직접적으로 어느 장소라고 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독수리가 모여들 뿐이라고만 하셨습니다. 이 독수리들은 죽은 동물들 위에 모이는 독수리를 뜻합니다.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지게 되면, 죽음의 냄새를 맡은 독수리들이 곳곳에서 시체를 노리는 무서운 상황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의 장소를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독수리들의 존재가 바로 심판의 장소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을 준비하는 자세입니다.

NKJV STUDY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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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Luke 17 KLB;NIV;KJV

Copyright © 1985 by Biblica, Inc.® Used by permission. All rights reserved worldwide.

Holy Bible,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Copyright ©1973, 1978, 1984, 2011 by Biblica, Inc.® Used by permission. All rights reserved worldwide.

NIV Reverse Interlinear Bible: English to Hebrew and English to Greek. Copyright © 2019 by Zondervan.

누가복음 17장

【용서와 믿음, 겸손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어 나병환자 열명의 치유사건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징조들에 관한 말씀이다.】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17:1)

‘실족케 하는 것’의 헬라어 ‘스칸달론’은 ‘덫, 함정, 파놓은 함정’을 의미한다.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모든 행위를 가리킨다.

이것은 실수로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고의로 사람을 죄짓게 하는 것으로, 아마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인 것 같다.

‘화로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아이’의 뜻은 슬픔이나 불쾌함을 나타내는 감탄사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피할수 없는 심판의 선언으로 쓰였다. 여기서 ‘화’란 재난이나 죽음보다 더 무섭고 가혹한 영영히 타는 불 속에서 고통 당하는 것이다.

‘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17:2)

‘이 작은 자’는 어린이들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제자가 되기 위해 예수를 따르는 자들 중에서 초신자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연자 맷돌’은 맷돌에 비해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소나 말의 힘으로 돌린다. 이 맷돌에 매어 바다에 빠뜨리는 것은, 고대 로마, 그리스에서 시행되던 사형법이었다. 본절에서 ‘작은 자’라는 표현과 대비를 이루어 타인을 실족케 하는 죄가 얼마나 크고 심각한 것인가를 실감있게 나타낸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17:3)

‘스스로 조심하라’

이 말은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지 말며 또한 스스로도 실족되거나 당하지 말도록 조심하라는 의미이다.

‘경고하고’의 헬라어 ‘에피마타오’는 책망하거나 경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용서하라’는 ‘죄과를 모두 탕감해준다’는 뜻이다.

‘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17:4)

유대인들에게 숫자 7은 완전수이며 무한수이다. 무제한적 광용과 용서의 정신을 나타낸다.

당시 유대교에서는 세 번 용서하는 것을 최선의 수준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예 그러한 제한마저 철폐하신 것이다. 이러한 무제한적 용서의 정신은 인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목숨을 아낌없이 내어 놓으신 무한한 사랑에 근거한다.

‘회개하노라’는 마음을 고치다. 뉘우치다의 뜻이 있다.

문제는 하루에 일곱 번씩 죄를 짓고 일곱 번씩 회개한다고 했을 때, 그러한 회개가 참된 회개인가 하는 것이다. 참된 회개란 생활이 변화되어 그 삶 속에서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씀의 의미는 인간의 연약함과 인생의 이타적 사랑을 위해서는 무한한 인내의 용서가 필요함을 역설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17:5)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란 뜻으로 신약에서는 예수의 열 두 제자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믿음을 더하소서’

사도들은 끝없이 용서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실행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예수께 더 강한 믿음을 갖게 해주실 것을 부탁하고 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17:6)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겨자씨는 ‘가장 작은 것’을 대표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가장 작은 것이라 해도 그 속에는 분명히 생명이 살아 숨쉬고 있다. 예수께서 ‘겨자씨 만한 믿음’을 말씀하신 것은, 결코 믿음의 분량을 문제 삼으신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은 ‘진정한 믿음이 조금이나마 있었더며’의 의미가 될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께 믿음의 양을 요구했으나, 예수께서는 그 질적인 면에 강조점을 두신 것이다.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산이 옮기워지는 것이나 뽕나무가 뽑혀 바다에 심기워지는 것은 모두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상징한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어떤 기적을 행하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히11장의 믿음의 영웅들처럼 되라‘고 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 본성상 이기적이고 탐욕적일 수밖에 없는 인생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이적이라 할 수 있다.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17:7)

‘너희 중 어떤 사람에게 밭갈이나 양치는 일을 맡은 종이 있다고 하자. 그가 밭에서 돌아오면 ‘어서 이리 와서 앉아 먹어라.’ 할 주인이 있겠느냐 ?’- 현대인의 성경

사도들은 예수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종을 둔 농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17:8)

‘띠를 띠고’

띠를 띤다는 것은 옆에서 시중들기 위해 옷을 간편하게 차려입은 것을 의미한다.

‘띠’를 두른다는 거은 항상 예배하는 자세를 가리킨다.

‘먹고 마시라’는 주인이 식사한 후에 종이 간단히 식사하는 것을 나타낸다.

‘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17:9)

종의 시중은 마땅한 의무의 봉사이지, 의무를 초월한 그 이상의 것은 결코 될 수 없기 때문에 주인에게 부담을 지울 수 없다.

이를 성도와 하나님의 관계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성도는 평생을 분골쇄신 하는 봉사를 하더라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에 다 보답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17:10)

‘명령 받은 것’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성도들의 마땅한 의무를 암시한다.

‘무익한 종’은 자신의 봉사에 대해 전혀 사례를 받을 가치가 없다는 뜻의 겸손이 담긴 표현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17:11-12)

‘나병환자 열 명’이 함께 있는 것으로 보아 가까운 곳에 나병환자들의 거주지가 있었을 것이다.

‘멀리 서서’

나병으로 진단을 받으면 취해야 할 처신법이 레13:45-46에 있다.

1. 옷을 찢고 머리를 풀어 슬픔과 애통을 표현해야 한다.

2. 윗 입술을 가렸다. 이것은 자기 입술을 치는 행위로 극심한 자기 비하를 나타낸다.

3.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쳐야 했다. 소리를 쳐서 다른 사람의 접근을 막기 위함이었다.

4. 진 밖에 살아야 했다.

‘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17:13)

나병이 악화되면 소리지르는 일도 어렵다. 그러나 본절의 나병환자들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힘을 다해 주의 긍휼을 구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를 선생님이라 부를 정도로 예수에 대해 무지했지만, 분명한 사실은 예수께는 나병마저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믿었다는 것이다.

‘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17:14)

‘제사장들’

제사장은 나병 환자를 진단하고, 돌보고, 예방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또한 이 병이 치유되었을 때에는 제사장이 정결의식을 행하여 속죄제와 속건제를 드렸다.

‘너희 몸을 보이라’

예수께서는 병고침을 위해 손을 얹지도, 기도하지도 않으셨고 다만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무조건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을 들은 나병환자들은 복종하여 제사장에게 갔다.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라고 하신 명령은, 그 말씀에 복종하는 신앙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깨끗함을 받은 지라’

따라서 병이 아직 낫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라고 하는 말을 그대로 순종함으로써 병고침의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다.

‘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17:15)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러 가던 도중에 자신의 몸이 깨끗하게 된 것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예수가 계신 곳으로 돌아온다.

‘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17;16)

‘저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유대인들에게 천시받던 이 사마리아 사람은 다른 9명과는 달리 받은 바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았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17:17)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창3:9에서 하나님이 아담을 찾으시던 말씀과 똑같은 것으로, 사람이 자신이 서 있어야 하는 자리에 있지 못하고 이탈했을 때 물으시는 질문이다.

고침을 받은 열 명의 문둥병자가 있어야 할 자리는 바로 예수 앞이며, 그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마땅하고도 유일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아홉 사람은 제사장에게로 가서 병이 나았음을 증명하는 건강 진단서를 빨리 얻는 데에만 정신을 쏟고 있던 것 같다.

또한 그들은 제사장들이 예수를 싫어한다는 점을 알므로 예수께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으리라 짐작되기도 한다.

‘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17:18-19)

‘네 믿음’

사마리아인이 돌아와 예수께 엎드린 행위는 예수를 메시야로 생각하고 그에게 경배하는 행위였으며, 그의 사례의 말은 다름아닌 예수를 메시야로 고백하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그 사마리아인의 믿음을 칭찬하셨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구원하였느니라’

예수의 이 선언은 모든 인류의 대제사장 되시며 대속자되시는 예수께서 직ㅈ겁 문둥병에서 깨끗하을 받았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므로 이 사마리아인은 더 이상 성전의 제사장에게로 가서 몸을 보일 필요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 구원의 말씀은 그의 영혼도 죄와 불안의 억압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음을 동시에 선언하시는 말씀이다.

‘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17: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관해 질문한 이유는

1. 구약에 예언된 ‘주의 날’이 이미 도래했다는 소문이 당시에 한창 나돌던 무렵이라서,

이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였다.

2. 예수께서 과연 그같은 질문에 능히 답변하실 수 있는 메시야인가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바리새인들과 대다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될 정치적, 민족적 왕국으로 믿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성격에 관해서가 아니라 그 도래 시기에 묻고 있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었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우회적인 답변을 하신다.

‘볼 수 있게’

1.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 건설될 유토피아적인 왕국이 아니라 인간의 오감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2. 신령한 영의 눈을 뜨지 않고는 그 나라의 진행과정이 보이지 않는다.

‘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1)

‘너희 안에’

‘너희 안’은 ‘너희의 마음속’이라는 내면적이고 좁은 의미를 가리키기보다는 너희 중에’라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가리킨다고 본다.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어떤 마음 상태를 지칭하는 심리학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이며 동시에 초월적인 것이다. 특히 이 말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강조한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하신 것은, 곧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이 미치는 곳이면 어디나 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과거에 이미 임했고,현재 임하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역사 속에서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17:22)

‘인자의 날’

‘그리스도 재림의 날, 메시야 통치의 시대’를 가리키는 말이라 본다. 따라서 이날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역사를 주권적으로 간섭, 통치하실 ‘주의 날’이다.

‘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17:23)

실제로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여러 사람들이 ‘속히 오리라’는 예수의 말씀을 잉요하여 재림 예수와 선지자를 자처하며 무리들을 미혹하여 혼란에 빠뜨렸다고 한다. 이러한 거짓된 이단자들은 선량한 무리들을 꾀어 자신의 부와 명예를 충족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예수의 재림은 번개가 비췸같이 모든 사람들이 다 깜짝 놀라게 될 영광의 도래가 될 것이다.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메시야 출현에 대한 소문을 듣고 마음이 동요되어 제자들의 공동체로부터 떠나가지 말라고 하신다.

또한 거짓 메시야의 출현에 관한 소문을 듣고 뛰어나가지도 말며 그것에 대한 마음의 동요와 갈망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17:24)

제자들이 메시야로 자처하는 자들에게 미혹될 필요가 없는 명확한 이유가 제시된다.

‘번개가 하늘 앙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랠 저쪽까지 비침같이’

번개가 번쩍이면 땅 이편에서 저편까지 동시에 환히 밝아진다. 이처럼 메시야의 재림은 범우주적으로 누구나 동시에 볼 수 있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메시야가 여기있다 저기있다 떠들어대는 것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또는 번개가 비취면 단번에 천지가 환해지듯이 예수의 재림 또한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무에 메시야로 선전할 시간적 틈이 없다.

‘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17:25)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1. 예수께서 부활의 영광에 이르기 전에 고난과 죽음을 당하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2. 예수가 고난과 배척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메시야로서 또다시 도래하리라는 사실을 예언한다.

3. 종말에 앞서 있게 될 믿는 자들의 수난을 예시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세대에게’

예수께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 악한 세대’라 부른 동시대의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17:26-27)

‘노아의 때, 롯의 때’

물과 불에 의해 각각 멸망당한 이 두 구약의 사건은 악한 자들의 파멸과 경건한 자들의 구원을 예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 두 사건은 최후의 심판 때에 나타날 우주적 파국을 예시한 것이기도 하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 가더니’

여기에 언급된 일들은 인생들이 생존을 위해 추구하는 일상사이다. 따라서 이러한 일들 자체가 잘못인 것은 아니다. 다만 탐욕과 쾌락 주구의 비정상적인 삶의 형태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17:28-29)

‘롯의 때’는 소돔 사람들이 세상의 쾌락과 음행에 도취되어 모두 멸망 당한 것을 말한다.

‘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17:30)

‘인자의 나타나는 날’은 예수께서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재림하실 날을 가리킨다. 아 널애 사단에게 속한 악한 세력은 치명적인 파멸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17:31)

이 말씀은 1차적으로 A.D.70년의 예루살렘 멸망과 관련되나, 세상 마지막에 있을 인자의 재림과 직접적 연관을 갖는다.

본문의 강조점은 귀중한 물건을 챙길 겨를도 없는 다급하고 긴박한 상황에 있다.

‘세간’은 가치있는 소유물이나 애정의 대상물로 생각하는 ‘이 세상의 것’ 모두를 의미한다. 그토록 황급한 상황에서도 집 안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그가 물질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 세상을 나그네나 청지기 같은 심정으로 사는 성도는 오히려 주의 날을 대망하며

마지막날에 이르면 이 세상에 속한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주를 기쁘게 맞이하게 될 것이다.

‘ 롯의 처를 기억하라’(17:32)

뒤를 돌아본 것 때문에 목숨을 잃은 구체적인 사례이다.

그녀는 소돔성을 빠져나오는 도중 그곳을 다시 돌아보아 소금 기둥이 되었다.

뒤를 돌아 본 것은 미련이나 집착이 완전히 단절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억하라’

단순히 기억해낸다는 뜻보다는 ‘마음을 쓰다. 조심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한편 이러한 경고는 주의 재림의 날 당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매일의 삶과 직결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적이고 정욕적인 탐욕을 과감히 버리고 주의 뜻에 순종하려는 결단의 삶을 매일 살아가야 한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17:33)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

현재적 삶을 누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속성을 지적하는 말이다.

‘잃는 자는 살리리라’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확실히 보장된다는 의미이다.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17:34-35)

‘그 밤에’는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할 것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데려감’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재난으로부터 건져내어 구원과 영생의 자리로 인도하심을 의미한다.

‘버려둠’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회개치 않음으로써 종말의 재난을 당하도록 남겨지는 것을 의미한다.

(없음)(17:36)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이르시되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17:37)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독수리가 새겨진 로마 군기를 앞세우고 예루살렘을 파멸시킬 것을 암시하기도 하고,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독수리처럼 속히 임하실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말은 1차적으로 A.D.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는 것이며, 그와 동시에 우주적 종말에 앞서 도래한 대환난의 때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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