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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0장 주석 | [하루 한 장] 이사야60장_일어나 빛을 발하라 127 개의 자세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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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1 [하루 한 장]“일어나 빛을 발하라” (사60장)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이사야 60장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유명한 말씀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이 말씀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다시 시작할 힘을 줍니다
그러나 사실 이 말씀은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될 거라는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허락된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죄악으로 인해
어둠과 흑암 속에서 더듬으며
죽어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나
우리에게 구속자가 임하셔서
참 빛이신 예수님이
여호와의 영광을 구원의 빛으로
우리에게 비추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영광을 빛으로
세상을 밝히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우리에겐
소망이 없음을 다시 인정하고
하나님만 우리의 왕이심을
예수님만 참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는 선포인 것입니다
오직 주님, 오직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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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사야 60장 주석

이사야 60장 주석. =====60:1. 일어나라 – 52:1에도 유사한 표현이 나온다. 죄악에 따른 심판으로 말미암아 티끌. 과 폐허 위에 앉아 있던(3:26;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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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1 일어나라 – 52:1에도 유사한 표현이 나온다. 죄악에 따른 심판으로 말미암아 티끌과 폐허 위에 앉아 있던(3:26;52:2) 시온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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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사야 60:1-22 찬송가 42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일어나 빛을 발하라(1~9) 이사야 59장 말미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시온으로 돌아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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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0 : 1~22) 주석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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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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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0장 시온에 임할 영광과 새 날[사 60장 … – 디럭스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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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이사야60장_일어나 빛을 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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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이사야 60장 주석

  • Author: 홍융희
  • Views: 조회수 8,073회
  • Likes: 좋아요 176개
  • Date Published: 2019. 2. 28.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6k7S5NBTTOI

[스크랩] 이사야 60장 주석

이사야 60장 주석

=====60:1

일어나라 – 52:1에도 유사한 표현이 나온다. 죄악에 따른 심판으로 말미암아 티끌

과 폐허 위에 앉아 있던(3:26;52:2) 시온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이 전해진다. 1차적으

로 이는 포로 귀환을 겨냥한 것이지만, ‘치료하는 광선을’발하실 메시야를 통하 교회

의 탄생과 확장으 예언하는 내용이기도 하다(말 4:2;엡 5:14).

네 빛이 이러렀고 – 이제 시온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근거가 제시된다. 죄악으로

인해 황폐해졌던 시온 자체에는 빛이 있을 턱이 없었으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 자

체로부터 나오는 치유의 빛, 구원의 빛을 받음로 말미암아 새로이 거듭나게 되는 것이

다. 이런 맥락에서 이 ‘빛’또한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되어 온, 메시야를 통한 구원의

빛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60:2

본절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직전에 애굽에서 일어났던 흑암의 재앙 사건을 연상시킨

다(출 10:21-23). 이사야는 ‘어두움’과 ‘환난'(45:7), ‘불의'(45:19)를 상징하는 말

로도 사용하였다. 본절은 죄악과 그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온 땅이 캄캄

할 때 하나님의 구원의빛이 시온에 비춰질 것이라는 예언이다. 한편, 본절은 빛되신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실 때에 이스라엘 외의 세상 나라와 이스라엘 자체를

대비시키고 있다고도 이해된다.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실 때 세상 다른 곳은

여전히 어두운 상태에 있을 것이다. 물론 빛되신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도

그 빛을 깨닫지 못했다(요 1:9,10). 그러므로 본문은 구약의 예언을 따라 그리스도께

서 이스라엘 땅에 먼저 오셨다는 것을 뜻한다. 이후 온 땅은 이스라엘을 통해 그 빛

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9:2).

=====60:3

본절은 이스라엘에 임한 빛이 먼 나라 이방에게로 확장되며, 따라서 그들이 이 복

음의 축복에 참여케 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암시는 본장이 보여주려 하는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이다(2:3;11:10;49:22;54:3).

=====60:4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 여기 ‘무리’란 세계 각처로 흩어졌던 디아스포

라의 유대인들 몇 선택받은 이방인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제 그들은 뒤엉켜 한

무리를 짓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물을 바치기 위해 몰려올 것이다.

안기워 올 것이라 – 원문 직역은 ‘네 곁에 붙들어 매어질 것이라’이다. 이것은 근

동의 풍습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다. 근동 사회에서는 부모가 어린 자식을 데리고 다

닐 때 허리를 걸치듯 업곤 했다. 이같이 익숙한 풍습과 연관된 표현을 함으로써, 저

자는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내용에 애착을 느끼고 또한 반드시 성

취될 것을 기대케 하고 있다.

=====60:5

희색을 발하며 – 원문 직역은 ‘(함께)흐르며’이다. 이 동사는 ‘강’을 뜻하는 ‘네

하르'( )에서 왔는데 여기서 이 동사가 사용된 것은 강물이 넘실대며 넘쳐 흐르

는 이미지를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문맥에서 볼 때 그 이미지를 통해 나타내려는

바는 ‘넘치는 기쁨’이겠다.

네 마음이 놀라고 –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많은 이방인 회심자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어쩔줄 몰라하며 크게 감동받은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 여기 ‘바다의 풍부’는 ‘하몬 얌'( )인데,

‘하몬'( )은 ‘군중'(13:4;단 10:6), ‘많은 군대'(삿 4:7;단 11:11-13), ‘많은

물'(렘 10:13;51:16), ‘큰 재물'(시 37:16;전 5:9) 등을 뜻하며 ‘얌'( )은 바닷가

에 사는 백성들을 뜻하는데 바로이어지는 구절 ‘열방의 재물’이 본문의 동의적 병행구

임을 고려할 때 ‘하몬 얌'( )은 ‘이방인들의 재물’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

직하다. 이는 포로 귀환시 이방의 재물이 지원될 것을 시사함과 동시에(스 1:6) 메시

야의 통치가 시작되면 이방인의 소유물들이 시온, 곧 교회에게 바쳐짐을 예언한 것이

기도하다. 말하자면 땅의 재물이 기록한 용도에 사용되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60:6

에바 – 미디안의 장남으로(창 25:4) 아라비아 페트레아(Petrea)에 살았는데 그 이

름을 따서 그가 살던 지역을 에바라 불렸다. 사해 동부 해안이었던 그곳은 미디안 땅

의 일부이기도 했는데 이곳은 약대가 풍부했다.

젊은 약대 – 아라비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대의 일종으로 그 특징은 그 등에 낱

혹이 하나뿐이라는 사실이다(Webster). 먼저 언급된 ‘약대’는 등에 혹이 둘인 약대를

가리킨다.

스바 – 성경에서 이곳은 솔로몬에게 많은 예물을 가지고 왔던 이방 영왕의 나라로

알려진 곳(황상 10:1;대하 9:1), 금과 향이 풍부한 곳으로 언급되어 있다(렘 6:20;겔

27:22). 오늘날의 에디오피아 아비시니아라는 것이 학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60:7

게달 – 주로 아라비아 사막 남부 혹은 아리비아 페트레아 북부에 살았지만 그들은

거주지를 자주 옳겼으며 이러한 유목민에게 양이 풍서했으리라는 것은 얼마든지 상살

할 수있다(21:16,17;42:11).

느바욧 – 이스마엘 아들 중의 한(창 25:13;대상 1:29)로, 그 후손이 아리비아 페트

레아에 거주했으며 주로 약탈, 구역 그리고 가축 사육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들의

귀한 소유인 가축도 하나님께 바쳐질 것이다.

=====60:8

저 구름같이 – 이방인의 회심을 묘사함에 있어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본 이미지는

히브리서에서 읽을 수 있듯이 그 수의 많음에 갖오점이 있다 :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

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히 12:1). 그러나 동격으로 사용되고있는 ‘비둘기의

비행’은 수의 많음보다는 속도의 빠름에 그 강조점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Fausset).

이제 메시야의 통치가 시작 되면 많은 이방인들이 빠른 속도로 예루살렘, 곧 주의 교

회로 들어올 것이다.

=====60:9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 다시스의 배들, 곧 무역선은 가장 먼 지역에까지

무역을 하는 배로유명했는데 그 배들이 먼저 이른다는 말은, 먼 곳에 있던 자들(디아

스포라의 유대인들을 포함하여)조차 조속히 몰려들게 될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66:20).

이름에 드리려 하며 – ‘이름’이란 어떤 존재의 중요한 속성 혹은 그자체를 상징하

는 의미를 지닌다(창 25:19-26 주제 강해, ‘이름 짓기’ 참조). 여기서는 이방까지도

구원 대열에 포함시키신 구원의 하나님의 속성을 강조한다.

=====60:10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 이는 포로 귀환시 회심한 이방인들도 예루살

렘 성벽 재건 사역에 조력하게 될 것을 뜻함과 아울러 더 나아가서는 이방인들이 영적

예루살렘, 곧 교회를 섬기는 일에 협력할 것을,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특권

에 동참할 것을 뜻한다.

=====60:11

성문이 항상 열려 – 새로운 예물들과 개심자들을 영접하기 위하여 교회의 문은 항

상 열려 있다(26:2;행 14:27;계3:8). 평화의 왕 메시야의 완전한 통치가 실현되면 대

적들의 위협조차 전혀 없으므로 시온의 그 문에는 침이자를 막기 위한 문짓장도 없을

것이다 :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

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계 21:25, 26).

그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 원문 직역은 ‘그 왕들이 이끌려 올 것이라’이

다. 여기 동사 ‘네후김'( )은 수동태로서 어떤 영향력 따위의 당기는 힘

에 의하여 연약한 물체가 끌려가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동사이다. 아마도 이것

은 세상의 권세잡은 세력들도 결국에는 메시야의 강한 통치력에 굴복하고 말 것을 가

리키는 것 같다.

=====60:12

개역 성경에는 생략되었으나 본절 원문 서두에는 원인 접속사 ‘키'( )가 놓여

있다. 바로앞절에 서술된 세상 나라의 왕들과 그 백성들이 교회에 굽록하게 되는 까

닭은, 그렇지 않은 경우 저주받아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슥 14:17). 교회

가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할 때 명심해야 할 점들 중의 하나는, 믿지 않으면 저주받아

멸망하고 말 것을 외쳐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불행히도 이 땅에서 복 받고 잘산다

는 것이 복음 증거의 주용 골자인 양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복음

을 자랑한다고 선포한 후에 저주 아래 있는 인간의 상황을 서술함으로써 복음 선포는

믿지 않는 자들로 하여금 무서운 저주와 파멸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에 주요 목적이

있음을 강조한 바있다(롬 1:16,18).

=====60:13

레바논의 영광 … 아름답게 할 것이며 – 여기 열거된 나무들은 레바논 땅을 아름

답게 치장하는 대표적인 수목들이다(Fausset). 그 나무들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

로 알려진 거룩한 곳, 곧 성전을 아름답게 한다는 말은 구체적인 의미에서 그 나무들

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재목으로쓰인다는 말로이해할 수도 있다(Whybray). 그러나

메시야의 통치 이후 이방의 귀중한 물건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바쳐져서 성별되게 쓰일

것을 말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60:14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 철저한 복중의 자세를 취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보다는 영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하며 그 완전한 성취는 종말론적 관점

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메시야의 통치 이후 많은 이방의 선택받은 자들이 교회

로 몰려들 것이다. 그러나 교회를 거부하는, 곧 메시야의 통치를 거부하는 자들은 교

회의 역사 속에 계속 존재하게 될 것이며 주의 재림 때에 이르러서야 그 대적들이 사

라질 것이다. 한편 ‘시온’이 ‘여호와의 성읍’이라 불리운 것은, ‘여호와께서 다스리

시는 성읍’이라는 뜻을 내포하고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

이 곧 하나님 나라라는 중요한 개념을 유추해볼 수 있다.

=====60:15

네게로 지나는 자가 없었으나 – 바벧론의 침략으로 멸망하여 황폐화됨으로 말미암

아 팔레스틴 땅은 사막의 대상 심지어 나그네도 그리로 지나가지 않을 정도가 되고 말

았다.

=====60:16

열방의 젖을 빨며 – 앞에서 거듭 언급된 바 이방 세계의 물적 후원과 조력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J.Wstts).

네 구원자 … 알리라 – 이것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회심한 이방인 위에 임할 은

총은 메시야를 통한 구속 사역에 근거하게 될 것을 나타낸다.

=====60:17

내가 금을 … 돌을 대신하며 – 여기서 이사야가 비유로 들고 있는 물질적 풍요는

솔로몬 시대의 그것을 연상시킨다(왕상 10:21-27). 본 구절의 해석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으나 다음 두 가지가 무난하겠다. (1) 새로이 회복될 시온의 영적 아름다움

과 풍요로움을 물질적 번영과 아름다움에 비유한 것이다. (2) 다가올 메시야의 시대

에는 모든 것이 더 나은 것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교회 역사를 살

펴볼 때 구원의 복음이 들어간 지역은 대체로 정치, 경제, 문화, 그 외 모든 분야에

있어서 발전하고 복된 곳이 되었다.

=====60:18

성벽 –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를 나타내는 표상으로 사용되었으며(삼

상 25:16),

성문( . 솨아르) – 영광의 왕이 들어가는 문(시 24:7), 혹은 양의 문(요

10:7)이라는 이미지와 연관시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영광의 왕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양이 된 성도들뿐이다.

=====60:19,20

가장 밝은 발광체인 낮은 태양과 밤의 달이 그 백성에게 비췰 하나님 자신의 영광

의 월등함 때문에 오히려 가리워질 것을 묘사하고 있다(30:26;계 21:23;22:5).

=====60:22

그 작은 자가 천(千)을 이루겠고 – 본문은 다분히 종말론적 색채를 띠고 있다. 따

라서 우리는 이를 예수의 겨자씨 비유및 누룩 비유와 연관시켜 보아도 무방하겠다(마

13:31-33). 겨자씨와 누룩은 처음에는 보잘것없이 작게 보이나 나중에는 엄청나게 큰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메시야의 초림 때에는 그가 핍박을 받음르로 교회라른 존

재 자체의 존립성조차 위태한 듯이 보였으나, 성령을 통해 역사하시는 강력한 생명력

으로 말미암아 급속히 확장되어 간다는 것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 대우인력 김진규

메모 :

히브리어 이사야 60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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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미 오리 키 바 오레크 우베보드 아도나이 알라이크 자라흐

개역개정,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새번역,1 예루살렘아, 일어나서 빛을 비추어라. 구원의 빛이 너에게 비치었으며, 주님의 영광이 아침 해처럼 너의 위에 떠올랐다.

우리말성경,1 “일어나서 빛을 비추어라. 네 빛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가톨릭성경,1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영어NIV,1 “Arise, shine, for your light has come, and the glory of the LORD rises upon you.

영어NASB,1 “Arise, shine; for your light has come, And the glory of the LORD has risen upon you.

영어MSG,1 “Get out of bed, Jerusalem! Wake up. Put your face in the sunlight. GOD’s bright glory has risen for you.

영어NRSV,1 Arise, shine; for your light has come, and the glory of the LORD has risen upon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1 φωτιζου φωτιζου ιερουσαλημ ηκει γαρ σου το φως και η δοξα κυριου επι σε ανατεταλκεν

라틴어Vulgate,1 surge inluminare quia venit lumen tuum et gloria Domini super te orta est

히브리어구약BHS,1 קוּמִי אֹורִי כִּי בָא אֹורֵךְ וּכְבֹוד יְהוָה עָלַיִךְ זָרָח׃

성 경: [사60:1]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 일어나라 – 52:1에도 유사한 표현이 나온다. 죄악에 따른 심판으로 말미암아 티끌과 폐허 위에 앉아 있던(3:26;52:2) 시온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이 전해진다. 1차적으로 이는 포로 귀환을 겨냥한 것이지만, ‘치료하는 광선을’발하실 메시야를 통하 교회의 탄생과 확장으 예언하는 내용이기도 하다(말 4:2;엡 5:14).

󰃨 네 빛이 이르렀고 – 이제 시온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근거가 제시된다. 죄악으로 인해 황폐해졌던 시온 자체에는 빛이 있을 턱이 없었으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 자체로부터 나오는 치유의 빛, 구원의 빛을 받음로 말미암아 새로이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빛’또한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되어 온, 메시야를 통한 구원의 빛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키 힌네 하호쉐크 예캇세 에레츠 와아라펠 레움밈 웨알라이크 이즈라흐 아도나이 우케보도 알라이크 예라에

개역개정,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새번역,2 어둠이 땅을 덮으며, 짙은 어둠이 민족들을 덮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너의 위에는 주님께서 아침 해처럼 떠오르시며, 그의 영광이 너의 위에 나타날 것이다.

우리말성경,2 이제 보아라. 어둠이 땅을 덮고 먹구름이 뭇 백성 위에 있지만 여호와께서 네 위에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고 있다.

가톨릭성경,2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영어NIV,2 See, darkness covers the earth and thick darkness is over the peoples, but the LORD rises upon you and his glory appears over you.

영어NASB,2 “For behold, darkness will cover the earth, And deep darkness the peoples; But the LORD will rise upon you, And His glory will appear upon you.

영어MSG,2 The whole earth is wrapped in darkness, all people sunk in deep darkness, But GOD rises on you, his sunrise glory breaks over you.

영어NRSV,2 For darkness shall cover the earth, and thick darkness the peoples; but the LORD will arise upon you, and his glory will appear over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2 ιδου σκοτος και γνοφος καλυψει γην επ’ εθνη επι δε σε φανησεται κυριος και η δοξα αυτου επι σε οφθησεται

라틴어Vulgate,2 quia ecce tenebrae operient terram et caligo populos super te autem orietur Dominus et gloria eius in te videbitur

히브리어구약BHS,2 כִּי־הִנֵּה הַחֹשֶׁךְ יְכַסֶּה־אֶרֶץ וַעֲרָפֶל לְאֻמִּים וְעָלַיִךְ יִזְרַח יְהוָה וּכְבֹודֹו עָלַיִךְ יֵרָאֶה׃

성 경: [사60:2]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본절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직전에 애굽에서 일어났던 흑암의 재앙 사건을 연상시킨다(출 10:21-23). 이사야는 ‘어두움’과 ‘환난'(45:7), ‘불의'(45:19)를 상징하는 말로도 사용하였다. 본절은 죄악과 그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온 땅이 캄캄할 때 하나님의 구원의 빛이 시온에 비춰질 것이라는 예언이다. 한편, 본절은 빛되신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실 때에 이스라엘 외의 세상 나라와 이스라엘 자체를 대비시키고 있다고도 이해된다.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실 때 세상 다른 곳은 여전히 어두운 상태에 있을 것이다. 물론 빛되신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도 그 빛을 깨닫지 못했다(요 1:9,10). 그러므로 본문은 구약의 예언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먼저 오셨다는 것을 뜻한다. 이후 온 땅은 이스라엘을 통해 그 빛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9:2).

웨할레쿠 고임 레호레크 우메라킴 레노가흐 자르헤크

개역개정,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새번역,3 이방 나라들이 너의 빛을 보고 찾아오고, 뭇 왕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보고, 너에게로 올 것이다.

우리말성경,3 나라들이 네 빛을 보고 나오고 왕들이 네 떠오르는 광채를 보고 나오고 있다.

가톨릭성경,3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영어NIV,3 Nations will come to your light, and kings to the brightness of your dawn.

영어NASB,3 “And nations will come to your light, And kings to the brightness of your rising.

영어MSG,3 Nations will come to your light, kings to your sunburst brightness.

영어NRSV,3 Nations shall come to your light, and kings to the brightness of your dawn.

헬라어구약Septuagint,3 και πορευσονται βασιλεις τω φωτι σου και εθνη τη λαμπροτητι σου

라틴어Vulgate,3 et ambulabunt gentes in lumine tuo et reges in splendore ortus tui

히브리어구약BHS,3 וְהָלְכוּ גֹויִם לְאֹורֵךְ וּמְלָכִים לְנֹגַהּ זַרְחֵךְ׃

성 경: [사60:3]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본절은 이스라엘에 임한 빛이 먼 나라 이방에게로 확장되며, 따라서 그들이 이 복음의 축복에 참여케 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암시는 본장이 보여주려 하는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이다(2:3;11:10;49:22;54:3).

세이 사비브 에나이크 우레이 쿨람 니크베추 바우 라크 바나이크 메라호크 야보우 우베노타이크 알 차드 테아마나

개역개정,4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새번역,4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너에게로 오고 있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으로부터 오며,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서 올 것이다.

우리말성경,4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아라. 모두 모여서 네게로 오고 있다. 네 아들들이 멀리서 오고 네 딸들이 팔에 안겨 오고 있다.

가톨릭성경,4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로 온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 온다.

영어NIV,4 “Lift up your eyes and look about you: All assemble and come to you; your sons come from afar, and your daughters are carried on the arm.

영어NASB,4 “Lift up your eyes round about, and see; They all gather together, they come to you. Your sons will come from afar, And your daughters will be carried in the arms.

영어MSG,4 Look up! Look around! Watch as they gather, watch as they approach you: Your sons coming from great distances, your daughters carried by their nannies.

영어NRSV,4 Lift up your eyes and look around; they all gather together, they come to you; your sons shall come from far away, and your daughters shall be carried on their nurses’ arms.

헬라어구약Septuagint,4 αρον κυκλω τους οφθαλμους σου και ιδε συνηγμενα τα τεκνα σου ιδου ηκασιν παντες οι υιοι σου μακροθεν και αι θυγατερες σου επ’ ωμων αρθησονται

라틴어Vulgate,4 leva in circuitu oculos tuos et vide omnes isti congregati sunt venerunt tibi filii tui de longe venient et filiae tuae in latere sugent

히브리어구약BHS,4 שְׂאִי־סָבִיב עֵינַיִךְ וּרְאִי כֻּלָּם נִקְבְּצוּ בָאוּ־לָךְ בָּנַיִךְ מֵרָחֹוק יָבֹאוּ וּבְנֹתַיִךְ עַל־צַד תֵּאָמַנָה׃

성 경: [사60:4]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 여기 ‘무리’란 세계 각처로 흩어졌던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 몇 선택받은 이방인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제 그들은 뒤엉켜 한 무리를 짓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물을 바치기 위해 몰려올 것이다.

󰃨 안기워 올 것이라 – 원문 직역은 ‘네 곁에 붙들어 매어질 것이라’이다. 이것은 근동의 풍습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다. 근동 사회에서는 부모가 어린 자식을 데리고 다닐 때 허리를 걸치듯 업곤 했다. 이같이 익숙한 풍습과 연관된 표현을 함으로써, 저자는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내용에 애착을 느끼고 또한 반드시 성취될 것을 기대케 하고 있다.

아즈 티르이 웨나하르트 우파하드 웨라하브 레바베크 키 예하페크 알라이크 하몬 얌 헬 고임 야보우 라크

개역개정,5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새번역,5 그 때에 이것을 보는 너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치고, 흥분한 너의 가슴은 설레고, 기쁨에 벅찬 가슴은 터질 듯 할 것이다. 풍부한 재물이 뱃길로 너에게로 오며, 이방 나라의 재산이 너에게로 들어올 것이다.

우리말성경,5 그것을 보고서 네 얼굴이 상기돼 밝아지고 네 가슴은 두근두근 고동치며 벅차오를 것이다. 바다의 산물이 네게로 밀려오고 뭇 나라의 재물이 네게로 흘러올 것이다.

가톨릭성경,5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라. 바다의 보화가 너에게로 흘러들고 민족들의 재물이 너에게로 들어온다.

영어NIV,5 Then you will look and be radiant, your heart will throb and swell with joy; the wealth on the seas will be brought to you, to you the riches of the nations will come.

영어NASB,5 “Then you will see and be radiant, And your heart will thrill and rejoice; Because the abundance of the sea will be turned to you, The wealth of the nations will come to you.

영어MSG,5 When you see them coming you’ll smile–big smiles! Your heart will swell and, yes, burst! All those people returning by sea for the reunion, a rich harvest of exiles gathered in from the nations!

영어NRSV,5 Then you shall see and be radiant; your heart shall thrill and rejoice, because the abundance of the sea shall be brought to you, the wealth of the nations shall come to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5 τοτε οψη και φοβηθηση και εκστηση τη καρδια οτι μεταβαλει εις σε πλουτος θαλασσης και εθνων και λαων και ηξουσιν σοι

라틴어Vulgate,5 tunc videbis et afflues et mirabitur et dilatabitur cor tuum quando conversa fuerit ad te multitudo maris fortitudo gentium venerit tibi

히브리어구약BHS,5 אָז תִּרְאִי וְנָהַרְתְּ וּפָחַד וְרָחַב לְבָבֵךְ כִּי־יֵהָפֵךְ עָלַיִךְ הֲמֹון יָם חֵיל גֹּויִם יָבֹאוּ לָךְ׃

성 경: [사60:5]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 희색을 발하며 – 원문 직역은 ‘(함께)흐르며’이다. 이 동사는 ‘강’을 뜻하는 ‘네하르'(*)에서 왔는데 여기서 이 동사가 사용된 것은 강물이 넘실대며 넘쳐 흐르는 이미지를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문맥에서 볼 때 그 이미지를 통해 나타내려는 바는 ‘넘치는 기쁨’이겠다.

󰃨 네 마음이 놀라고 –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많은 이방인 회심자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어쩔줄 몰라하며 크게 감동받은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 여기 ‘바다의 풍부’는 ‘하몬 얌'(*)인데, ‘하몬'(*)은 ‘군중'(13:4;단 10:6), ‘많은 군대'(삿 4:7;단 11:11-13), ‘많은 물'(렘 10:13;51:16), ‘큰 재물'(시 37:16;전 5:9) 등을 뜻하며 ‘얌'(*)은 바닷가에 사는 백성들을 뜻하는데 바로 이어지는 구절 ‘열방의 재물’이 본문의 동의적 병행구임을 고려할 때 ‘하몬 얌'(*)은 ‘이방인들의 재물’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포로 귀환시 이방의 재물이 지원될 것을 시사함과 동시에(스 1:6) 메시야의 통치가 시작되면 이방인의 소유물들이 시온, 곧 교회에게 바쳐짐을 예언한 것이기도하다. 말하자면 땅의 재물이 기록한 용도에 사용되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쉬페아트 게말림 테캇세크 비크레 미드얀 웨에파 쿨람 미쉬바 야보우 자합 우레보나 잇사우 우테힐로트 아도나이 예밧세루

개역개정,6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새번역,6 많은 낙타들이 너의 땅을 덮을 것이며,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너의 땅을 뒤덮을 것이다. 스바의 모든 사람이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주님께서 하신 일을 찬양할 것이다.

우리말성경,6 낙타 떼가 네 땅을 덮고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들이 네 땅을 채울 것이다. 모든 스바 사람이 금과 향품을 들고 여호와를 찬양하면서 나아올 것이다.

가톨릭성경,6 낙타 무리가 너를 덮고 미디안과 에파의 수낙타들이 너를 덮으리라.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

영어NIV,6 Herds of camels will cover your land, young camels of Midian and Ephah. And all from Sheba will come, bearing gold and incense and proclaiming the praise of the LORD.

영어NASB,6 “A multitude of camels will cover you, The young camels of Midian and Ephah; All those from Sheba will come; They will bring gold and frankincense, And will bear good news of the praises of the LORD.

영어MSG,6 And then streams of camel caravans as far as the eye can see, young camels of nomads in Midian and Ephah, Pouring in from the south from Sheba, loaded with gold and frankincense, preaching the praises of GOD.

영어NRSV,6 A multitude of camels shall cover you, the young camels of Midian and Ephah; all those from Sheba shall come. They shall bring gold and frankincense, and shall proclaim the praise of the LORD.

헬라어구약Septuagint,6 αγελαι καμηλων και καλυψουσιν σε καμηλοι μαδιαμ και γαιφα παντες εκ σαβα ηξουσιν φεροντες χρυσιον και λιβανον οισουσιν και το σωτηριον κυριου ευαγγελιουνται

라틴어Vulgate,6 inundatio camelorum operiet te dromedariae Madian et Efa omnes de Saba venient aurum et tus deferentes et laudem Domino adnuntiantes

히브리어구약BHS,6 שִׁפְעַת גְּמַלִּים תְּכַסֵּךְ בִּכְרֵי מִדְיָן וְעֵיפָה כֻּלָּם מִשְּׁבָא יָבֹאוּ זָהָב וּלְבֹונָה יִשָּׂאוּ וּתְהִלֹּת יְהוָה יְבַשֵּׂרוּ׃

성 경: [사60:6]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 에바 – 미디안의 장남으로(창 25:4) 아라비아 페트레아(Petrea)에 살았는데 그 이름을 따서 그가 살던 지역을 에바라 불렸다. 사해 동부 해안이었던 그곳은 미디안 땅의 일부이기도 했는데 이곳은 약대가 풍부했다.

󰃨 젊은 약대 – 아라비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대의 일종으로 그 특징은 그 등에 낱 혹이 하나뿐이라는 사실이다(Webster). 먼저 언급된 ‘약대’는 등에 혹이 둘인 약대를 가리킨다.

󰃨 스바 – 성경에서 이곳은 솔로몬에게 많은 예물을 가지고 왔던 이방 영왕의 나라로 알려진 곳(황상 10:1;대하 9:1), 금과 향이 풍부한 곳으로 언급되어 있다(렘 6:20;겔 27:22). 오늘날의 에디오피아 아비시니아라는 것이 학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콜 촌 케다르 잌카베추 라크 에레 네바요트 예솨르투네크 야아루 알 라촌 미즈베히 우베트 티프아르티 아페에르

개역개정,7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일 것이요 느바욧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제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새번역,7 게달의 모든 양 떼가 다 너에게로 모여들며, 네가 느바욧의 숫양들을 제물로 쓸 것이다. “내가 내 성전을 이전보다 더욱 영화롭게 할 때에, 이것들이 내 제단 위에 합당한 제물로 오를 것이다.”

우리말성경,7 게달의 모든 양 떼가 네게로 모이며 느바욧의 숫양들을 네가 제물로 쓸 것이다. 나는 그것들을 내 제단 위에서 제물로 기쁘게 받을 것이니 내가 내 성전을 영화롭게 하겠다.

가톨릭성경,7 케다르의 양 떼가 모두 너에게로 모여들리라. 느바욧의 숫양들이 너에게서 제물로 쓰여 그것들이 내 제단에서 합당한 제물로 바쳐지고 나는 내 영화로운 집을 더욱 영화롭게 하리라.

영어NIV,7 All Kedar’s flocks will be gathered to you, the rams of Nebaioth will serve you; they will be accepted as offerings on my altar, and I will adorn my glorious temple.

영어NASB,7 “All the flocks of Kedar will be gathered together to you, The rams of Nebaioth will minister to you; They will go up with acceptance on My altar, And I shall glorify My glorious house.

영어MSG,7 And yes, a great roundup of flocks from the nomads in Kedar and Nebaioth, Welcome gifts for worship at my altar as I bathe my glorious Temple in splendor.

영어NRSV,7 All the flocks of Kedar shall be gathered to you, the rams of Nebaioth shall minister to you; they shall be acceptable on my altar, and I will glorify my glorious house.

헬라어구약Septuagint,7 και παντα τα προβατα κηδαρ συναχθησονται σοι και κριοι ναβαιωθ ηξουσιν σοι και ανενεχθησεται δεκτα επι το θυσιαστηριον μου και ο οικος της προσευχης μου δοξασθησεται

라틴어Vulgate,7 omne pecus Cedar congregabitur tibi arietes Nabaioth ministrabunt tibi offerentur super placabili altari meo et domum maiestatis meae glorificabo

히브리어구약BHS,7 כָּל־צֹאן קֵדָר יִקָּבְצוּ לָךְ אֵילֵי נְבָיֹות יְשָׁרְתוּנֶךְ יַעֲלוּ עַל־רָצֹון מִזְבְּחִי וּבֵית תִּפְאַרְתִּי אֲפָאֵר׃

성 경: [사60:7]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 게달 – 주로 아라비아 사막 남부 혹은 아리비아 페트레아 북부에 살았지만 그들은 거주지를 자주 옮겼으며 이러한 유목민에게 양이 풍성했으리라는 것은 얼마든지 상상할 수있다(21:16,17;42:11).

󰃨 느바욧 – 이스마엘 아들 중의 한(창 25:13;대상 1:29)로, 그 후손이 아리비아 페트레아에 거주했으며 주로 약탈, 구역 그리고 가축 사육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들의 귀한 소유인 가축도 하나님께 바쳐질 것이다.

미 엘레 카아브 테우페나 웨카요님 엘 아루보테헴

개역개정,8 저 구름 같이, 비둘기들이 그 보금자리로 날아가는 것 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냐

새번역,8 저기, 구름 떼처럼 몰려오는 저 사람들이 누구냐? 제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비둘기처럼 날아오는 저 사람들이 누구냐?

우리말성경,8 저기 구름처럼 둥실거리며 몰려오는 저 사람들이 누구냐? 둥지로 돌아오는 비둘기처럼 날아오는 저 사람들이 누구냐?

가톨릭성경,8 구름처럼 날아드는 저들, 제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비둘기처럼 날아드는 저들은 누구냐?

영어NIV,8 “Who are these that fly along like clouds, like doves to their nests?

영어NASB,8 “Who are these who fly like a cloud, And like the doves to their lattices?

영어MSG,8 “What’s that we see in the distance, a cloud on the horizon, like doves darkening the sky?

영어NRSV,8 Who are these that fly like a cloud, and like doves to their windows?

헬라어구약Septuagint,8 τινες οιδε ως νεφελαι πετανται και ως περιστεραι συν νεοσσοις

라틴어Vulgate,8 qui sunt isti qui ut nubes volant et quasi columbae ad fenestras suas

히브리어구약BHS,8 מִי־אֵלֶּה כָּעָב תְּעוּפֶינָה וְכַיֹּונִים אֶל־אֲרֻבֹּתֵיהֶם׃

성 경: [사60:8]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 저 구름같이 – 이방인의 회심을 묘사함에 있어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본 이미지는 히브리서에서 읽을 수 있듯이 그 수의 많음에 갖오점이 있다 :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히 12:1). 그러나 동격으로 사용되고있는 ‘비둘기의 비행’은 수의 많음보다는 속도의 빠름에 그 강조점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Fausset). 이제 메시야의 통치가 시작 되면 많은 이방인들이 빠른 속도로 예루살렘, 곧 주의 교회로 들어올 것이다.

키 리 이임 예카우우 와오니요트 타르쉬쉬 바리쇼나 레하비 바나이크 메라호크 카스팜 우즈하밤 잍탐 레쉠 아도나이 엘로하이크 웨리크도쉬 이스라엘 키 페아라크

개역개정,9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먼 곳에서 네 자손과 그들의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라

새번역,9 너의 자녀들이 온다. 섬들이 나를 사모하며, 다시스의 배들이 맨 먼저 먼 곳에 있는 너의 자녀들을 데리고 온다. 그들이, 주 너의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려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리려고, 은과 금을 함께 싣고 온다. 주님께서 너를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9 보아라. 섬들이 나를 바라보며 다시스의 배들이 앞장서서 멀리서 내 자녀를 데려오는구나. 은과 금도 함께 싣고 오는구나. 여호와 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너를 영화롭게 하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높이려고 오는구나.

가톨릭성경,9 정녕 섬들이 나를 기다리고 타르시스의 배들이 앞장서서 먼 곳에서 너의 아들들을 데려오는데 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위하여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을 위하여 은과 금을 함께 싣고 오니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기 때문이다.

영어NIV,9 Surely the islands look to me; in the lead are the ships of Tarshish, bringing your sons from afar, with their silver and gold, to the honor of the LORD your God, the Holy One of Israel, for he has endowed you with splendor.

영어NASB,9 “Surely the coastlands will wait for Me; And the ships of Tarshish will come first, To bring your sons from afar, Their silver and their gold with them, For the name of the LORD your God, And for the Holy One of Israel because He has glorified you.

영어MSG,9 It’s ships from the distant islands, the famous Tarshish ships Returning your children from faraway places, loaded with riches, with silver and gold, And backed by the name of your GOD, The Holy of Israel, showering you with splendor.

영어NRSV,9 For the coastlands shall wait for me, the ships of Tarshish first, to bring your children from far away, their silver and gold with them, for the name of the LORD your God, and for the Holy One of Israel, because he has glorified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9 εμε νησοι υπεμειναν και πλοια θαρσις εν πρωτοις αγαγειν τα τεκνα σου μακροθεν και τον αργυρον και τον χρυσον μετ’ αυτων δια το ονομα κυριου το αγιον και δια το τον αγιον του ισραηλ ενδοξον ειναι

라틴어Vulgate,9 me enim insulae expectant et naves maris in principio ut adducam filios tuos de longe argentum eorum et aurum eorum cum eis nomini Domini Dei tui et Sancto Israhel quia glorificavit te

히브리어구약BHS,9 כִּי־לִי אִיִּים יְקַוּוּ וָאֳנִיֹּות תַּרְשִׁישׁ בָּרִאשֹׁנָה לְהָבִיא בָנַיִךְ מֵרָחֹוק כַּסְפָּם וּזְהָבָם אִתָּם לְשֵׁם יְהוָה אֱלֹהַיִךְ וְלִקְדֹושׁ יִשְׂרָאֵל כִּי פֵאֲרָךְ׃

성 경: [사60:9]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빛과 풍요함]

󰃨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 다시스의 배들, 곧 무역선은 가장 먼 지역에까지 무역을 하는 배로 유명했는데 그 배들이 먼저 이른다는 말은, 먼 곳에 있던 자들(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을 포함하여)조차 조속히 몰려들게 될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66:20).

󰃨 이름에 드리려 하며 – ‘이름’이란 어떤 존재의 중요한 속성 혹은 그자체를 상징하는 의미를 지닌다(창 25:19-26 주제 강해, ‘이름 짓기’ 참조). 여기서는 이방까지도 구원 대열에 포함시키신 구원의 하나님의 속성을 강조한다.

우바누 베네이 네카르 호모타이크 우말케헴 예솨르투네크 키 비키츠피 힠키티크 우비르초니 리하므티크

개역개정,10 내가 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는 나의 은혜로 너를 불쌍히 여겼은즉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그들의 왕들이 너를 섬길 것이며

새번역,10 이방 자손이 너의 성벽을 쌓으며, 그들의 왕들이 너를 섬길 것이다. “비록 내가 진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 내가 은혜를 베풀어서 너를 불쌍히 여기겠다.”

우리말성경,10 이방 사람이 네 성벽을 다시 쌓고 그들의 왕들이 너를 섬길 것이다. 내가 비록 노여움에 너를 쳤지만 이제는 은혜를 베풀어서 너를 불쌍히 여기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10 이방인들이 너의 성벽을 쌓고 그들의 임금들이 너에게 시중들리니 내가 진노하여 너를 쳤지만 내 호의로 너를 가엾이 여겼기 때문이다.

영어NIV,10 “Foreigners will rebuild your walls, and their kings will serve you. Though in anger I struck you, in favor I will show you compassion.

영어NASB,10 “And foreigners will build up your walls, And their kings will minister to you; For in My wrath I struck you, And in My favor I have had compassion on you.

영어MSG,10 Foreigners will rebuild your walls, and their kings assist you in the conduct of worship. When I was angry I hit you hard. It’s my desire now to be tender.

영어NRSV,10 Foreigners shall build up your walls, and their kings shall minister to you; for in my wrath I struck you down, but in my favor I have had mercy on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10 και οικοδομησουσιν αλλογενεις τα τειχη σου και οι βασιλεις αυτων παραστησονται σοι δια γαρ οργην μου επαταξα σε και δια ελεον ηγαπησα σε

라틴어Vulgate,10 et aedificabunt filii peregrinorum muros tuos et reges eorum ministrabunt tibi in indignatione enim mea percussi te et in reconciliatione mea misertus sum tui

히브리어구약BHS,10 וּבָנוּ בְנֵי־נֵכָר חֹמֹתַיִךְ וּמַלְכֵיהֶם יְשָׁרְתוּנֶךְ כִּי בְקִצְפִּי הִכִּיתִיךְ וּבִרְצֹונִי רִחַמְתִּיךְ׃

성 경: [사60:10]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 이는 포로 귀환시 회심한 이방인들도 예루살렘 성벽 재건 사역에 조력하게 될 것을 뜻함과 아울러 더 나아가서는 이방인들이 영적 예루살렘, 곧 교회를 섬기는 일에 협력할 것을,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특권에 동참할 것을 뜻한다.

우피테후 쉐아라이크 타미드 요맘 와라일라 로 잇사게루 레하비 엘라잌 헬 고임 우말케헴 네후김

개역개정,11 네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들이 네게로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가져오며 그들의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새번역,11 너의 성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서, 밤낮으로 닫히지 않을 것이다. 이방 나라의 재물이 이 문을 지나 너에게로 오며, 이방 왕들이 사로잡혀서 너에게로 끌려올 것이다.

우리말성경,11 네 성문은 밤낮으로 닫히지 않고 언제나 열려 있어서 사람들이 네게 여러 나라의 재물을 가져오고 여러 나라의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오게 하겠다.

가톨릭성경,11 너의 성문들은 늘 열려 있는 채 낮에도 밤에도 닫히지 않으리니 임금들의 인도 아래 민족들의 재물을 들여오기 위함이다.

영어NIV,11 Your gates will always stand open, they will never be shut, day or night, so that men may bring you the wealth of the nations–their kings led in triumphal procession.

영어NASB,11 “And your gates will be open continually; They will not be closed day or night, So that men may bring to you the wealth of the nations, With their kings led in procession.

영어MSG,11 Your Jerusalem gates will always be open –open house day and night!– Receiving deliveries of wealth from all nations, and their kings, the delivery boys!

영어NRSV,11 Your gates shall always be open; day and night they shall not be shut, so that nations shall bring you their wealth, with their kings led in procession.

헬라어구약Septuagint,11 και ανοιχθησονται αι πυλαι σου δια παντος ημερας και νυκτος ου κλεισθησονται εισαγαγειν προς σε δυναμιν εθνων και βασιλεις αγομενους

라틴어Vulgate,11 et aperientur portae tuae iugiter die et nocte non claudentur ut adferatur ad te fortitudo gentium et reges earum adducantur

히브리어구약BHS,11 וּפִתְּחוּ שְׁעָרַיִךְ תָּמִיד יֹוםָם וָלַיְלָה לֹא יִסָּגֵרוּ* לְהָבִיא אֵלַיִךְ חֵיל גֹּויִם וּמַלְכֵיהֶם נְהוּגִים׃

성 경: [사60:11]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 성문이 항상 열려 – 새로운 예물들과 개심자들을 영접하기 위하여 교회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26:2;행 14:27;계3:8). 평화의 왕 메시야의 완전한 통치가 실현되면 대적들의 위협조차 전혀 없으므로 시온의 그 문에는 침입자를 막기 위한 문빗장도 없을 것이다 :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계 21:25, 26).

󰃨 그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 원문 직역은 ‘그 왕들이 이끌려 올 것이라’이다. 여기 동사 ‘네후김'(*)은 수동태로서 어떤 영향력 따위의 당기는 힘에 의하여 연약한 물체가 끌려가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동사이다. 아마도 이것은 세상의 권세잡은 세력들도 결국에는 메시야의 강한 통치력에 굴복하고 말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키 학고이 웨함마믈라카 아쉘 로 야아베두크 요베두 웨학고임 하롭 예헤라부

개역개정,12 너를 섬기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파멸하리니 그 백성들은 반드시 진멸되리라

새번역,12 너를 섬기지 않는 민족과 나라는 망하고, 그런 이방 나라들은 반드시 황폐해질 것이다.

우리말성경,12 너를 섬기지 않는 민족이나 나라는 사라질 것이다. 그 나라들은 완전히 말라 버릴 것이다.

가톨릭성경,12 너를 섬기지 않는 민족과 나라는 망하리라. 그런 민족들은 완전히 멸망하리라.

영어NIV,12 For the nation or kingdom that will not serve you will perish; it will be utterly ruined.

영어NASB,12 “For the nation and the kingdom which will not serve you will perish, And the nations will be utterly ruined.

영어MSG,12 Any nation or kingdom that doesn’t deliver will perish; those nations will be totally wasted.

영어NRSV,12 For the nation and kingdom that will not serve you shall perish; those nations shall be utterly laid waste.

헬라어구약Septuagint,12 τα γαρ εθνη και οι βασιλεις οιτινες ου δουλευσουσιν σοι απολουνται και τα εθνη ερημια ερημωθησονται

라틴어Vulgate,12 gens enim et regnum quod non servierit tibi peribit et gentes solitudine vastabuntur

히브리어구약BHS,12 כִּי־הַגֹּוי וְהַמַּמְלָכָה אֲשֶׁר לֹא־יַעַבְדוּךְ יֹאבֵדוּ וְהַגֹּויִם חָרֹב יֶחֱרָבוּ׃

성 경: [사60:12]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개역 성경에는 생략되었으나 본절 원문 서두에는 원인 접속사 ‘키'(*)가 놓여 있다. 바로 앞절에 서술된 세상 나라의 왕들과 그 백성들이 교회에 굴복하게 되는 까닭은, 그렇지 않은 경우 저주받아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슥 14:17). 교회가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할 때 명심해야 할 점들 중의 하나는, 믿지 않으면 저주받아 멸망하고 말 것을 외쳐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불행히도 이 땅에서 복 받고 잘산다는 것이 복음 증거의 주요 골자인 양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복음을 자랑한다고 선포한 후에 저주 아래 있는 인간의 상황을 서술함으로써 복음 선포는 믿지 않는 자들로 하여금 무서운 저주와 파멸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에 주요 목적이 있음을 강조한 바있다(롬 1:16,18).

케보드 할레바논 엘라잌 야보 베로쉬 티드하르 우테앗슈르 야흐다우 레파에르 메콤 미크다쉬 우메콤 라글라이 아카베드

개역개정,13 레바논의 영광 곧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이 함께 네게 이르러 내 거룩한 곳을 아름답게 할 것이며 내가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새번역,13 “레바논의 자랑인 잣나무와 소나무와 회양목이 함께 너에게로 올 것이다. 그 나무가 나의 성전 터를 아름답게 꾸밀 것이니, 이렇게 하여서 내가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하겠다.”

우리말성경,13 레바논이 자랑하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회양목이 함께 네게로 올 것이다. 나는 그것으로 내 성전 터를 꾸며서 내 발이 쉬는 곳을 아름답게 만들겠다.

가톨릭성경,13 레바논의 영광이, 방백나무와 사철가막살나무와 젓나무가 다 함께 너에게 와서 내 성전 터를 영화롭게 하고 나는 내 발이 놓여 있는 곳을 영광스럽게 하리라.

영어NIV,13 “The glory of Lebanon will come to you, the pine, the fir and the cypress together, to adorn the place of my sanctuary; and I will glorify the place of my feet.

영어NASB,13 “The glory of Lebanon will come to you, The juniper, the box tree, and the cypress together, To beautify the place of My sanctuary; And I shall make the place of My feet glorious.

영어MSG,13 The rich woods of Lebanon will be delivered –all that cypress and oak and pine– To give a splendid elegance to my Sanctuary, as I make my footstool glorious.

영어NRSV,13 The glory of Lebanon shall come to you, the cypress, the plane, and the pine, to beautify the place of my sanctuary; and I will glorify where my feet rest.

헬라어구약Septuagint,13 και η δοξα του λιβανου προς σε ηξει εν κυπαρισσω και πευκη και κεδρω αμα δοξασαι τον τοπον τον αγιον μου

라틴어Vulgate,13 gloria Libani ad te veniet abies et buxus et pinus simul ad ornandum locum sanctificationis meae et locum pedum meorum glorificabo

히브리어구약BHS,13 כְּבֹוד הַלְּבָנֹון אֵלַיִךְ יָבֹוא בְּרֹושׁ תִּדְהָר וּתְאַשּׁוּר יַחְדָּו לְפָאֵר מְקֹום מִקְדָּשִׁי וּמְקֹום רַגְלַי אֲכַבֵּד׃

성 경: [사60:13]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 레바논의 영광 … 아름답게 할 것이며 – 여기 열거된 나무들은 레바논 땅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대표적인 수목들이다(Fausset). 그 나무들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알려진 거룩한 곳, 곧 성전을 아름답게 한다는 말은 구체적인 의미에서 그 나무들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재목으로 쓰인다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Whybray). 그러나 메시야의 통치 이후 이방의 귀중한 물건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바쳐져서 성별되게 쓰일 것을 말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웨할레쿠 엘라잌 쉐호아흐 베네이 메안나이크 웨히쉬타하우 알 카포트 라글라이크 콜 메나아차이크 웨카레우 라크 이르 아도나이 치욘 케도쉬 이스라엘

개역개정,14 너를 괴롭히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에 엎드려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의 시온이라 하리라

새번역,14 너를 괴롭히던 자들의 자손이 몸을 굽히고 너에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자들이 모두 너의 발 아래에 엎드려서, 너를 ‘주님의 도성’이라고 부르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시온’ 이라고 부를 것이다.

우리말성경,14 너를 짓누르던 사람들의 자손이 네게 절하며 나아오고 너를 멸시하던 사람들은 모두 네 발 아래 엎드려서 너를 ‘여호와의 성읍’,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의 시온’이라고 부를 것이다.

가톨릭성경,14 너를 억누르던 자들의 자손들이 몸을 굽혀 너에게 오고 너를 멸시하던 자들이 모두 너의 발아래 엎드려 너를 ‘ 주님의 도성’ ‘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시온’이라 부르리라.

영어NIV,14 The sons of your oppressors will come bowing before you; all who despise you will bow down at your feet and will call you the City of the LORD, Zion of the Holy One of Israel.

영어NASB,14 “And the sons of those who afflicted you will come bowing to you, And all those who despised you will bow themselves at the soles of your feet; And they will call you the city of the LORD, The Zion of the Holy One of Israel.

영어MSG,14 The descendants of your oppressor will come bowing and scraping to you. All who looked down at you in contempt will lick your boots. They’ll confer a title on you: City of GOD, Zion of The Holy of Israel.

영어NRSV,14 The descendants of those who oppressed you shall come bending low to you, and all who despised you shall bow down at your feet; they shall call you the City of the LORD, the Zion of the Holy One of Israel.

헬라어구약Septuagint,14 και πορευσονται προς σε δεδοικοτες υιοι ταπεινωσαντων σε και παροξυναντων σε και κληθηση πολις κυριου σιων αγιου ισραηλ

라틴어Vulgate,14 et venient ad te curvi filii eorum qui humiliaverunt te et adorabunt vestigia pedum tuorum omnes qui detrahebant tibi et vocabunt te civitatem Domini Sion Sancti Israhel

히브리어구약BHS,14 וְהָלְכוּ אֵלַיִךְ שְׁחֹוחַ בְּנֵי מְעַנַּיִךְ וְהִשְׁתַּחֲווּ עַל־כַּפֹּות רַגְלַיִךְ כָּל־מְנַאֲצָיִךְ וְקָרְאוּ לָךְ עִיר יְהוָה צִיֹּון קְדֹושׁ יִשְׂרָאֵל׃

성 경: [사60:14]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 철저한 복중의 자세를 취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보다는 영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하며 그 완전한 성취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메시야의 통치 이후 많은 이방의 선택받은 자들이 교회로 몰려들 것이다. 그러나 교회를 거부하는, 곧 메시야의 통치를 거부하는 자들은 교회의 역사 속에 계속 존재하게 될 것이며 주의 재림 때에 이르러서야 그 대적들이 사라질 것이다. 한편 ‘시온’이 ‘여호와의 성읍’이라 불리운 것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는 성읍’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 곧 하나님 나라라는 중요한 개념을 유추해볼 수 있다.

타하트 헤요테크 아주바 우세누아 웨엔 오벨 웨사므티크 리게욘 올람 메소스 돌 와도르

개역개정,15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새번역,15 “비록 네가 전에는 버림을 받고 미움을 받아서, 너의 옆으로 오는 사람이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길이길이 너를 높이고, 너를 오고오는 세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게 하겠다.

우리말성경,15 전에는 네가 버림을 받고 미움을 받아서 아무도 네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지만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히 높여서 대대로 기쁨이 되게 하겠다.

가톨릭성경,15 네가 버림받고 미움 받아 지나는 사람조차 없었던 대신 이제 내가 너를 영원한 영예로, 대대의 기쁨으로 만들리라.

영어NIV,15 “Although you have been forsaken and hated, with no one traveling through, I will make you the everlasting pride and the joy of all generations.

영어NASB,15 “Whereas you have been forsaken and hated With no one passing through, I will make you an everlasting pride, A joy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영어MSG,15 Not long ago you were despised refuse– out-of-the-way, unvisited, ignored. But now I’ve put you on your feet, towering and grand forever, a joy to look at!

영어NRSV,15 Whereas you have been forsaken and hated, with no one passing through, I will make you majestic forever, a joy from age to age.

헬라어구약Septuagint,15 δια το γεγενησθαι σε εγκαταλελειμμενην και μεμισημενην και ουκ ην ο βοηθων και θησω σε αγαλλιαμα αιωνιον ευφροσυνην γενεων γενεαις

라틴어Vulgate,15 pro eo quod fuisti derelicta et odio habita et non erat qui per te transiret ponam te in superbiam saeculorum gaudium in generationem et generationem

히브리어구약BHS,15 תַּחַת הֱיֹותֵךְ עֲזוּבָה וּשְׂנוּאָה וְאֵין עֹובֵר וְשַׂמְתִּיךְ לִגְאֹון עֹולָם מְשֹׂושׂ דֹּור וָדֹור׃

성 경: [사60:15]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 네게로 지나는 자가 없었으나 – 바벨론의 침략으로 멸망하여 황폐화됨으로 말미암아 팔레스틴 땅은 사막의 대상 심지어 나그네도 그리로 지나가지 않을 정도가 되고 말았다.

웨야나케트 할레브 고임 웨쇼드 멜라킴 티나키 웨야다아트 키 아니 아도나이 모쉬에크 웨고알레크 아비르 야아콥

개역개정,16 네가 이방 나라들의 젖을 빨며 뭇 왕의 젖을 빨고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새번역,16 네가 이방 나라들의 젖을 빨며, 뭇 왕의 젖을 빨아먹을 것이니, 이것으로써, 너는 나 주가 너의 구원자이며, 너의 속량자요, 야곱의 전능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말성경,16 너는 뭇 나라의 젖을 빨고 왕실의 젖을 빨아먹을 것이다. 이것으로 너는 나 여호와가 네 구원자, 네 속량자, 야곱의 강한 분임을 알게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16 너는 민족들의 젖을 빨고 뭇 임금들의 젖을 빨리라. 그래서 너는 나 주님이 너를 구해 주는 이요 너의 구원자가 야곱의 장사임을 알게 되리라.

영어NIV,16 You will drink the milk of nations and be nursed at royal breasts. Then you will know that I, the LORD, am your Savior, your Redeemer, the Mighty One of Jacob.

영어NASB,16 “You will also suck the milk of nations, And will suck the breast of kings; Then you will know that I, the LORD, am your Savior, And your Redeemer, the Mighty One of Jacob.

영어MSG,16 When you suck the milk of nations and the breasts of royalty, You’ll know that I, GOD, am your Savior, your Redeemer, Champion of Jacob.

영어NRSV,16 You shall suck the milk of nations, you shall suck the breasts of kings; and you shall know that I, the LORD, am your Savior and your Redeemer, the Mighty One of Jacob.

헬라어구약Septuagint,16 και θηλασεις γαλα εθνων και πλουτον βασιλεων φαγεσαι και γνωση οτι εγω κυριος ο σωζων σε και εξαιρουμενος σε θεος ισραηλ

라틴어Vulgate,16 et suges lac gentium et mamilla regum lactaberis et scies quia ego Dominus salvans te et redemptor tuus Fortis Iacob

히브리어구약BHS,16 וְיָנַקְתְּ חֲלֵב גֹּויִם וְשֹׁד מְלָכִים תִּינָקִי וְיָדַעַתְּ כִּי אֲנִי יְהוָה מֹושִׁיעֵךְ וְגֹאֲלֵךְ אֲבִיר יַעֲקֹב׃

성 경: [사60:16]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 열방의 젖을 빨며 – 앞에서 거듭 언급된 바 이방 세계의 물적 후원과 조력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J.Wstts).

󰃨 네 구원자 … 알리라 – 이것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회심한 이방인 위에 임할 은총은 메시야를 통한 구속 사역에 근거하게 될 것을 나타낸다.

타하트 한네호쉩 아비 자합 웨타하트 하발젤 아비 케세프 웨타하트 하에침 네호쉐트 웨타하트 하아바님 바르젤 웨삼티 페쿠다테크 솰롬 웨노게사이크 체다카

개역개정,17 내가 금을 가지고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지고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철로 돌을 대신하며 화평을 세워 관원으로 삼으며 공의를 세워 감독으로 삼으리니

새번역,17 내가 놋쇠 대신 금을 가져 오며, 철 대신 은을 가져 오며, 나무 대신 놋쇠를 가져 오며, 돌 대신 철을 가져 오겠다. “내가 평화를 너의 감독자로 세우며, 의를 너의 지배자로 세우겠다.”

우리말성경,17 내가 청동 대신 네게 금을 주고 철 대신 은을 가져다주며, 나무 대신 청동을, 돌 대신에 철을 가져다주겠다. 내가 평화를 네 통치자로 세우고 정의를 네 지배자로 삼겠다.

가톨릭성경,17 내가 구리 대신 금을 들여오고 쇠 대신 은을 들여오리라. 나무 대신 구리를, 돌 대신 쇠를 들여오리라. 또 평화를 너의 감독자로, 정의를 너의 지배자로 세우리라.

영어NIV,17 Instead of bronze I will bring you gold, and silver in place of iron. Instead of wood I will bring you bronze, and iron in place of stones. I will make peace your governor and righteousness your ruler.

영어NASB,17 “Instead of bronze I will bring gold, And instead of iron I will bring silver, And instead of wood, bronze, And instead of stones, iron. And I will make peace your administrators, And righteousness your overseers.

영어MSG,17 I’ll give you only the best–no more hand-me-downs! Gold instead of bronze, silver instead of iron, bronze instead of wood, iron instead of stones. I’ll install Peace to run your country, make Righteousness your boss.

영어NRSV,17 Instead of bronze I will bring gold, instead of iron I will bring silver; instead of wood, bronze, instead of stones, iron. I will appoint Peace as your overseer and Righteousness as your taskmaster.

헬라어구약Septuagint,17 και αντι χαλκου οισω σοι χρυσιον αντι δε σιδηρου οισω σοι αργυριον αντι δε ξυλων οισω σοι χαλκον αντι δε λιθων σιδηρον και δωσω τους αρχοντας σου εν ειρηνη και τους επισκοπους σου εν δικαιοσυνη

라틴어Vulgate,17 pro aere adferam aurum et pro ferro adferam argentum et pro lignis aes et pro lapidibus ferrum et ponam visitationem tuam pacem et praepositos tuos iustitiam

히브리어구약BHS,17 תַּחַת הַנְּחֹשֶׁת אָבִיא זָהָב וְתַחַת הַבַּרְזֶל אָבִיא כֶסֶף וְתַחַת הָעֵצִים נְחֹשֶׁת וְתַחַת הָאֲבָנִים בַּרְזֶל וְשַׂמְתִּי פְקֻדָּתֵךְ שָׁלֹום וְנֹגְשַׂיִךְ צְדָקָה׃

성 경: [사60:17]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 내가 금을 … 돌을 대신하며 – 여기서 이사야가 비유로 들고 있는 물질적 풍요는 솔로몬 시대의 그것을 연상시킨다(왕상 10:21-27). 본 구절의 해석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으나 다음 두 가지가 무난하겠다. (1) 새로이 회복될 시온의 영적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물질적 번영과 아름다움에 비유한 것이다. (2) 다가올 메시야의 시대에는 모든 것이 더 나은 것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교회 역사를 살펴볼 때 구원의 복음이 들어간 지역은 대체로 정치, 경제, 문화, 그 외 모든 분야에 있어서 발전하고 복된 곳이 되었다.

로 잇솨마 오드 하마스 베아르체크 쇼드 와쉐베르 비게불라이크 웨카라트 예슈아 호모타이크 우쉬아라이크 테힐라

개역개정,18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국경 안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부를 것이라

새번역,18 다시는 너의 땅에서 폭행 소문이 들려 오지 않을 것이며, 너의 국경 안에서는 황폐와 파괴 소문이 들려오지 않을 것이다. 너는 너의 성벽을 ‘구원’이라고 부르고, 너의 성문을 ‘찬송’이라고 부를 것이다.

우리말성경,18 그 어떤 폭행의 소문도 네 땅에서는 들리지 않을 것이고 유린이나 파괴의 소식도 네 국경 안에서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너는 네 성벽을 ‘구원’이라 부르고 네 성문을 ‘찬양’이라 부를 것이다.

가톨릭성경,18 다시는 너의 땅 안에서 폭력이라는 말이, 너의 영토 안에서 파멸과 파괴라는 말이 들리지 않으리라. 너는 너의 성벽을 ‘ 구원’이라, 너의 성문을 ‘ 찬미’라 부르리라.

영어NIV,18 No longer will violence be heard in your land, nor ruin or destruction within your borders, but you will call your walls Salvation and your gates Praise.

영어NASB,18 “Violence will not be heard again in your land, Nor devastation or destruction within your borders; But you will call your walls salvation, and your gates praise.

영어MSG,18 There’ll be no more stories of crime in your land, no more robberies, no more vandalism. You’ll name your main street Salvation Way, and install Praise Park at the center of town.

영어NRSV,18 Violence shall no more be heard in your land, devastation or destruction within your borders; you shall call your walls Salvation, and your gates Praise.

헬라어구약Septuagint,18 και ουκ ακουσθησεται ετι αδικια εν τη γη σου ουδε συντριμμα ουδε ταλαιπωρια εν τοις οριοις σου αλλα κληθησεται σωτηριον τα τειχη σου και αι πυλαι σου γλυμμα

라틴어Vulgate,18 non audietur ultra iniquitas in terra tua vastitas et contritio in terminis tuis et occupabit salus muros tuos et portas tuas laudatio

히브리어구약BHS,18 לֹא־יִשָּׁמַע עֹוד חָמָס בְּאַרְצֵךְ שֹׁד וָשֶׁבֶר בִּגְבוּלָיִךְ וְקָרָאת יְשׁוּעָה חֹומֹתַיִךְ וּשְׁעָרַיִךְ תְּהִלָּה׃

성 경: [사60:18]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 성벽 –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를 나타내는 표상으로 사용되었으며(삼상 25:16),

󰃨 성문(*, 솨아르) – 영광의 왕이 들어가는 문(시 24:7), 혹은 양의 문(요 10:7)이라는 이미지와 연관시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영광의 왕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양이 된 성도들뿐이다.

로 이흐예 라크 오드 핫쉐메쉬 레오르 요맘 우레노가흐 하야레아흐 로 야이르 라크 웨하야 라크 아도나이 레오르 올람 웨로하이크 레히프아르테크

개역개정,19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새번역,19 해는 더 이상 낮을 밝히는 빛이 아니며, 달도 더 이상 ㉠밤을 밝히는 빛이 아닐 것이다. 오직 주님께서 너의 영원한 빛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너의 영광이 되실 것이다. / ㉠사해 사본과 칠십인역과 고대 라틴어역과 타르굼을 따름. 마소라 본문에는 ‘밤을’이 없음

우리말성경,19 낮에는 해가 더 이상 너를 비출 필요가 없고 달도 네게 빛을 비출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네 영원한 빛이 되시고 네 하나님께서 네 영광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19 해는 너에게 더 이상 낮을 밝히는 빛이 아니고 달도 밤의 광채로 너에게 비추지 않으리라. 주님께서 너에게 영원한 빛이 되어 주시고 너의 하느님께서 너의 영광이 되어 주시리라.

영어NIV,19 The sun will no more be your light by day, nor will the brightness of the moon shine on you, for the LORD will be your everlasting light, and your God will be your glory.

영어NASB,19 “No longer will you have the sun for light by day, Nor for brightness will the moon give you light; But you will have the LORD for an everlasting light, And your God for your glory.

영어MSG,19 You’ll have no more need of the sun by day nor the brightness of the moon at night. GOD will be your eternal light, your God will bathe you in splendor.

영어NRSV,19 The sun shall no longer be your light by day, nor for brightness shall the moon give light to you by night; but the LORD will be your everlasting light, and your God will be your glory.

헬라어구약Septuagint,19 και ουκ εσται σοι ο ηλιος εις φως ημερας ουδε ανατολη σεληνης φωτιει σοι την νυκτα αλλ’ εσται σοι κυριος φως αιωνιον και ο θεος δοξα σου

라틴어Vulgate,19 non erit tibi amplius sol ad lucendum per diem nec splendor lunae inluminabit te sed erit tibi Dominus in lucem sempiternam et Deus tuus in gloriam tuam

히브리어구약BHS,19 לֹא־יִהְיֶה־לָּךְ עֹוד הַשֶּׁמֶשׁ לְאֹור יֹוםָם וּלְנֹגַהּ הַיָּרֵחַ לֹא־יָאִיר לָךְ וְהָיָה־לָךְ יְהוָה לְאֹור עֹולָם וֵאלֹהַיִךְ לְתִפְאַרְתֵּךְ׃

성 경: [사60:19,20]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가장 밝은 발광체인 낮은 태양과 밤의 달이 그 백성에게 비췰 하나님 자신의 영광의 월등함 때문에 오히려 가리워질 것을 묘사하고 있다(30:26;계 21:23;22:5).

로 야보 오드 쉬므쉐크 웨레헤크 로 예아셒 키 아도나이 이흐예 라크 레오르 올람 웨솰무 예메 에블레크

개역개정,20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새번역,20 주님께서 몸소 너의 영원한 빛이 되시며, 네가 곡하는 날도 끝이 날 것이므로, 다시는 너의 해가 지지 않으며, 다시는 너의 달이 이지러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말성경,20 네 해가 다시는 지지 않을 것이며 네 달은 더 이상 기울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네 영원한 빛이 되실 것이니 네 슬픔의 날도 끝날 것이다.

가톨릭성경,20 다시는 너의 해가 지지 않고 너의 달이 사라지지 않으리니 주님께서 너에게 영원한 빛이 되어 주시고 이제 네 애도의 날들이 다하였기 때문이다.

영어NIV,20 Your sun will never set again, and your moon will wane no more; the LORD will be your everlasting light, and your days of sorrow will end.

영어NASB,20 “Your sun will set no more, Neither will your moon wane; For you will have the LORD for an everlasting light, And the days of your mourning will be finished.

영어MSG,20 Your sun will never go down, your moon will never fade. I will be your eternal light. Your days of grieving are over.

영어NRSV,20 Your sun shall no more go down, or your moon withdraw itself; for the LORD will be your everlasting light, and your days of mourning shall be ended.

헬라어구약Septuagint,20 ου γαρ δυσεται ο ηλιος σοι και η σεληνη σοι ουκ εκλειψει εσται γαρ κυριος σοι φως αιωνιον και αναπληρωθησονται αι ημεραι του πενθους σου

라틴어Vulgate,20 non occidet ultra sol tuus et luna tua non minuetur quia Dominus erit in lucem sempiternam et conplebuntur dies luctus tui

히브리어구약BHS,20 לֹא־יָבֹוא עֹוד שִׁמְשֵׁךְ וִירֵחֵךְ לֹא יֵאָסֵף כִּי יְהוָה יִהְיֶה־לָּךְ לְאֹור עֹולָם וְשָׁלְמוּ יְמֵי אֶבְלֵךְ׃

웨암메크 쿨람 찯디킴 레올람 이레슈 아레츠 네체르 맡타오 맡타아우 마아세 야다이 헤히트파엘

개역개정,21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새번역,21 너의 백성이 모두 시민권을 얻고, 땅을 영원히 차지할 것이다. 그들은 주님께서 심으신 나무다.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라고 만든 주님의 작품이다.

우리말성경,21 그때 네 백성은 모두 올바르게 살아서 영원히 그 땅을 차지할 것이다. 그들은 내가 심은 싹이다. 내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내 손으로 만든 작품이다.

가톨릭성경,21 너의 백성은 모두 의인들로서 영원히 이 땅을 차지하리라. 그들은 나를 영화롭게 하려고 내가 심은 나무의 햇순이며 내 손의 작품이다.

영어NIV,21 Then will all your people be righteous and they will possess the land forever. They are the shoot I have planted, the work of my hands, for the display of my splendor.

영어NASB,21 “Then all your people will be righteous; They will possess the land forever, The branch of My planting, The work of My hands, That I may be glorified.

영어MSG,21 All your people will live right and well, in permanent possession of the land. They’re the green shoot that I planted, planted with my own hands to display my glory.

영어NRSV,21 Your people shall all be righteous; they shall possess the land forever. They are the shoot that I planted, the work of my hands, so that I might be glorified.

헬라어구약Septuagint,21 και ο λαος σου πας δικαιος και δι’ αιωνος κληρονομησουσιν την γην φυλασσων το φυτευμα εργα χειρων αυτου εις δοξαν

라틴어Vulgate,21 populus autem tuus omnes iusti in perpetuum hereditabunt terram germen plantationis meae opus manus meae ad glorificandum

히브리어구약BHS,21 וְעַמֵּךְ כֻּלָּם צַדִּיקִים לְעֹולָם יִירְשׁוּ אָרֶץ נֵצֶר [כ= מַטָּעֹו] [ק= מַטָּעַי] מַעֲשֵׂה יָדַי לְהִתְפָּאֵר׃

핰카톤 이흐예 라엘렢 웨핯차일 레고이 아춤 아니 아도나이 베잍타흐 아히쉔나

개역개정,22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새번역,22 그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이라도 한 족속의 조상이 될 것이며, 가장 약한 이가 강한 나라를 이룰 것이다. “때가 되면, 나 주가 이 일을 지체없이 이루겠다.”

우리말성경,22 가장 작은 사람이 1,000명으로 불어나고 가장 약한 사람이 강한 민족이 될 것이다.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서둘러 이루겠다.”

가톨릭성경,22 그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이가 한 부족을 이루고 그들 가운데 가장 하잘것없는 이가 강대한 민족이 되리라. 나는 주님이다. 때가 되면 내가 이 일을 서둘러 이루리라.

영어NIV,22 The least of you will become a thousand, the smallest a mighty nation. I am the LORD; in its time I will do this swiftly.”

영어NASB,22 “The smallest one will become a clan, And the least one a mighty nation. I, the LORD, will hasten it in its time.”

영어MSG,22 The runt will become a great tribe, the weakling become a strong nation. I am GOD. At the right time I’ll make it happen.”

영어NRSV,22 The least of them shall become a clan, and the smallest one a mighty nation; I am the LORD; in its time I will accomplish it quickly.

헬라어구약Septuagint,22 ο ολιγοστος εσται εις χιλιαδας και ο ελαχιστος εις εθνος μεγα εγω κυριος κατα καιρον συναξω αυτους

라틴어Vulgate,22 minimus erit in mille et parvulus in gentem fortissimam ego Dominus in tempore eius subito faciam istud

히브리어구약BHS,22 הַקָּטֹן יִהְיֶה לָאֶלֶף וְהַצָּעִיר לְגֹוי עָצוּם אֲנִי יְהוָה בְּעִתָּהּ אֲחִישֶׁנָּה׃ ס

성 경: [사60:22]

주제1: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

주제2: [시온의 회복과 영광]

󰃨 그 작은 자가 천(千)을 이루겠고 – 본문은 다분히 종말론적 색채를 띠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예수의 겨자씨 비유및 누룩 비유와 연관시켜 보아도 무방하겠다(마 13:31-33). 겨자씨와 누룩은 처음에는 보잘것없이 작게 보이나 나중에는 엄청나게 큰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메시야의 초림 때에는 그가 핍박을 받음으로 교회라는 존재 자체의 존립성조차 위태한 듯이 보였으나, 성령을 통해 역사하시는 강력한 생명력으로 말미암아 급속히 확장되어 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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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주석, 이사야 60장

=====60:1

일어나라 – 52:1에도 유사한 표현이 나온다. 죄악에 따른 심판으로 말미암아 티끌과 폐허 위에 앉아 있던(3:26;52:2) 시온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이 전해진다. 1차적으로 이는 포로 귀환을 겨냥한 것이지만, ‘치료하는 광선을’발하실 메시야를 통하 교회의 탄생과 확장으 예언하는 내용이기도 하다(말 4:2;엡 5:14).

네 빛이 이러렀고 – 이제 시온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근거가 제시된다. 죄악으로 인해 황폐해졌던 시온 자체에는 빛이 있을 턱이 없었으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 자체로부터 나오는 치유의 빛, 구원의 빛을 받음로 말미암아 새로이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빛’또한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되어 온, 메시야를 통한 구원의 빛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60:2

본절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직전에 애굽에서 일어났던 흑암의 재앙 사건을 연상시킨다(출 10:21-23). 이사야는 ‘어두움’과 ‘환난'(45:7), ‘불의'(45:19)를 상징하는 말로도 사용하였다. 본절은 죄악과 그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온 땅이 캄캄할 때 하나님의 구원의빛이 시온에 비춰질 것이라는 예언이다. 한편, 본절은 빛되신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실 때에 이스라엘 외의 세상 나라와 이스라엘 자체를 대비시키고 있다고도 이해된다.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실 때 세상 다른 곳은 여전히 어두운 상태에 있을 것이다. 물론 빛되신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도 그 빛을 깨닫지 못했다(요 1:9,10). 그러므로 본문은 구약의 예언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먼저 오셨다는 것을 뜻한다. 이후 온 땅은 이스라엘을 통해 그 빛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9:2).

=====60:3

본절은 이스라엘에 임한 빛이 먼 나라 이방에게로 확장되며, 따라서 그들이 이 복음의 축복에 참여케 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암시는 본장이 보여주려 하는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이다(2:3;11:10;49:22;54:3).

=====60:4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 여기 ‘무리’란 세계 각처로 흩어졌던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 몇 선택받은 이방인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제 그들은 뒤엉켜 한 무리를 짓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물을 바치기 위해 몰려올 것이다.

안기워 올 것이라 – 원문 직역은 ‘네 곁에 붙들어 매어질 것이라’이다. 이것은 근동의 풍습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다. 근동 사회에서는 부모가 어린 자식을 데리고 다닐 때 허리를 걸치듯 업곤 했다. 이같이 익숙한 풍습과 연관된 표현을 함으로써, 저자는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내용에 애착을 느끼고 또한 반드시 성취될 것을 기대케 하고 있다.

=====60:5

희색을 발하며 – 원문 직역은 ‘(함께)흐르며’이다. 이 동사는 ‘강’을 뜻하는 ‘네하르'( )에서 왔는데 여기서 이 동사가 사용된 것은 강물이 넘실대며 넘쳐 흐르는 이미지를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문맥에서 볼 때 그 이미지를 통해 나타내려는 바는 ‘넘치는 기쁨’이겠다.

네 마음이 놀라고 –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많은 이방인 회심자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어쩔줄 몰라하며 크게 감동받은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 여기 ‘바다의 풍부’는 ‘하몬 얌'( )인데, ‘하몬'( )은 ‘군중'(13:4;단 10:6), ‘많은 군대'(삿 4:7;단 11:11-13), ‘많은 물'(렘 10:13;51:16), ‘큰 재물'(시 37:16;전 5:9) 등을 뜻하며 ‘얌'( )은 바닷가에 사는 백성들을 뜻하는데 바로이어지는 구절 ‘열방의 재물’이 본문의 동의적 병행구임을 고려할 때 ‘하몬 얌'( )은 ‘이방인들의 재물’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포로 귀환시 이방의 재물이 지원될 것을 시사함과 동시에(스 1:6) 메시야의 통치가 시작되면 이방인의 소유물들이 시온, 곧 교회에게 바쳐짐을 예언한 것이기도하다. 말하자면 땅의 재물이 기록한 용도에 사용되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60:6

에바 – 미디안의 장남으로(창 25:4) 아라비아 페트레아(Petrea)에 살았는데 그 이름을 따서 그가 살던 지역을 에바라 불렸다. 사해 동부 해안이었던 그곳은 미디안 땅의 일부이기도 했는데 이곳은 약대가 풍부했다.

젊은 약대 – 아라비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대의 일종으로 그 특징은 그 등에 낱 혹이 하나뿐이라는 사실이다(Webster). 먼저 언급된 ‘약대’는 등에 혹이 둘인 약대를 가리킨다.

스바 – 성경에서 이곳은 솔로몬에게 많은 예물을 가지고 왔던 이방 영왕의 나라로 알려진 곳(황상 10:1;대하 9:1), 금과 향이 풍부한 곳으로 언급되어 있다(렘 6:20;겔 27:22). 오늘날의 에디오피아 아비시니아라는 것이 학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60:7

게달 – 주로 아라비아 사막 남부 혹은 아리비아 페트레아 북부에 살았지만 그들은 거주지를 자주 옳겼으며 이러한 유목민에게 양이 풍서했으리라는 것은 얼마든지 상살할 수있다(21:16,17;42:11).

느바욧 – 이스마엘 아들 중의 한(창 25:13;대상 1:29)로, 그 후손이 아리비아 페트레아에 거주했으며 주로 약탈, 구역 그리고 가축 사육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들의 귀한 소유인 가축도 하나님께 바쳐질 것이다.

=====60:8

저 구름같이 – 이방인의 회심을 묘사함에 있어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본 이미지는 히브리서에서 읽을 수 있듯이 그 수의 많음에 갖오점이 있다 :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히 12:1). 그러나 동격으로 사용되고있는 ‘비둘기의 비행’은 수의 많음보다는 속도의 빠름에 그 강조점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Fausset). 이제 메시야의 통치가 시작 되면 많은 이방인들이 빠른 속도로 예루살렘, 곧 주의 교회로 들어올 것이다.

=====60:9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 다시스의 배들, 곧 무역선은 가장 먼 지역에까지 무역을 하는 배로유명했는데 그 배들이 먼저 이른다는 말은, 먼 곳에 있던 자들(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을 포함하여)조차 조속히 몰려들게 될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66:20).

이름에 드리려 하며 – ‘이름’이란 어떤 존재의 중요한 속성 혹은 그자체를 상징하는 의미를 지닌다(창 25:19-26 주제 강해, ‘이름 짓기’ 참조). 여기서는 이방까지도 구원 대열에 포함시키신 구원의 하나님의 속성을 강조한다.

=====60:10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 이는 포로 귀환시 회심한 이방인들도 예루살렘 성벽 재건 사역에 조력하게 될 것을 뜻함과 아울러 더 나아가서는 이방인들이 영적 예루살렘, 곧 교회를 섬기는 일에 협력할 것을,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특권에 동참할 것을 뜻한다.

=====60:11

성문이 항상 열려 – 새로운 예물들과 개심자들을 영접하기 위하여 교회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26:2;행 14:27;계3:8). 평화의 왕 메시야의 완전한 통치가 실현되면 대적들의 위협조차 전혀 없으므로 시온의 그 문에는 침이자를 막기 위한 문짓장도 없을 것이다 :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계 21:25, 26).

그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 원문 직역은 ‘그 왕들이 이끌려 올 것이라’이다. 여기 동사 ‘네후김'( )은 수동태로서 어떤 영향력 따위의 당기는 힘에 의하여 연약한 물체가 끌려가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동사이다. 아마도 이것은 세상의 권세잡은 세력들도 결국에는 메시야의 강한 통치력에 굴복하고 말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60:12

개역 성경에는 생략되었으나 본절 원문 서두에는 원인 접속사 ‘키'( )가 놓여 있다. 바로앞절에 서술된 세상 나라의 왕들과 그 백성들이 교회에 굽록하게 되는 까닭은, 그렇지 않은 경우 저주받아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슥 14:17). 교회가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할 때 명심해야 할 점들 중의 하나는, 믿지 않으면 저주받아 멸망하고 말 것을 외쳐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불행히도 이 땅에서 복 받고 잘산다는 것이 복음 증거의 주용 골자인 양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복음을 자랑한다고 선포한 후에 저주 아래 있는 인간의 상황을 서술함으로써 복음 선포는 믿지 않는 자들로 하여금 무서운 저주와 파멸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에 주요 목적이 있음을 강조한 바있다(롬 1:16,18).

=====60:13

레바논의 영광 … 아름답게 할 것이며 – 여기 열거된 나무들은 레바논 땅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대표적인 수목들이다(Fausset). 그 나무들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알려진 거룩한 곳, 곧 성전을 아름답게 한다는 말은 구체적인 의미에서 그 나무들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재목으로쓰인다는 말로이해할 수도 있다(Whybray). 그러나 메시야의 통치 이후 이방의 귀중한 물건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바쳐져서 성별되게 쓰일 것을 말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60:14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 철저한 복중의 자세를 취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보다는 영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하며 그 완전한 성취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메시야의 통치 이후 많은 이방의 선택받은 자들이 교회로 몰려들 것이다. 그러나 교회를 거부하는, 곧 메시야의 통치를 거부하는 자들은 교회의 역사 속에 계속 존재하게 될 것이며 주의 재림 때에 이르러서야 그 대적들이 사라질 것이다. 한편 ‘시온’이 ‘여호와의 성읍’이라 불리운 것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는 성읍’이라는 뜻을 내포하고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 곧 하나님 나라라는 중요한 개념을 유추해볼 수 있다.

=====60:15

네게로 지나는 자가 없었으나 – 바벨론의 침략으로 멸망하여 황폐화됨으로 말미암아 팔레스틴 땅은 사막의 대상 심지어 나그네도 그리로 지나가지 않을 정도가 되고 말았다.

=====60:16

열방의 젖을 빨며 – 앞에서 거듭 언급된 바 이방 세계의 물적 후원과 조력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J.Wstts). 네 구원자 … 알리라 – 이것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회심한 이방인 위에 임할 은총은 메시야를 통한 구속 사역에 근거하게 될 것을 나타낸다.

=====60:17

내가 금을 … 돌을 대신하며 – 여기서 이사야가 비유로 들고 있는 물질적 풍요는 솔로몬 시대의 그것을 연상시킨다(왕상 10:21-27). 본 구절의 해석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으나 다음 두 가지가 무난하겠다. (1) 새로이 회복될 시온의 영적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물질적 번영과 아름다움에 비유한 것이다. (2) 다가올 메시야의 시대에는 모든 것이 더 나은 것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교회 역사를 살펴볼 때 구원의 복음이 들어간 지역은 대체로 정치, 경제, 문화, 그 외 모든 분야에 있어서 발전하고 복된 곳이 되었다.

=====60:18

성벽 –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를 나타내는 표상으로 사용되었으며(삼상 25:16), 성문( .

솨아르) – 영광의 왕이 들어가는 문(시 24:7), 혹은 양의 문(요 10:7)이라는 이미지와 연관시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영광의 왕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양이 된 성도들뿐이다.

=====60:19,20

가장 밝은 발광체인 낮은 태양과 밤의 달이 그 백성에게 비췰 하나님 자신의 영광의 월등함 때문에 오히려 가리워질 것을 묘사하고 있다(30:26;계 21:23;22:5).

=====60:22

그 작은 자가 천(千)을 이루겠고 – 본문은 다분히 종말론적 색채를 띠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예수의 겨자씨 비유및 누룩 비유와 연관시켜 보아도 무방하겠다(마 13:31-33). 겨자씨와 누룩은 처음에는 보잘것없이 작게 보이나 나중에는 엄청나게 큰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메시야의 초림 때에는 그가 핍박을 받음르로 교회라른 존재 자체의 존립성조차 위태한 듯이 보였으나, 성령을 통해 역사하시는 강력한 생명력으로 말미암아 급속히 확장되어 간다는 것이다.

앞에서(56:9-59:15) 저자는 우울하고 절망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스라엘의 죄에 대

해 매우 신랄하게 책망했다. 그런데 본장에서는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의 승리와 영광을

높이고 있다. 지금은 비록 바벧론의 포로로서 고통 중에 있을지라도 머지않은 장래에

해방되어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기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언은 단순히 역사적

구출의 범주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으로 임할 최후의 영광을 예표적으로

보여준다.

이와같이 시온의 찬란한 미래의 영광을 기록하고 있는 본장은 (1) 이방이 모여들어

예배드릴 시온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전반부(1-9절), (2) 이방의 섬김을 박을 시온을

묘사하는 중반부(10-14절), (3) 든든히 설 시온을 묘사하는 후반부(15-22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구성을 통하여 죄악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

는 메시야의 사역을 소개하고, 나아가 종말론적 희망을 소유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한편, 본장은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명령어로 서두를 시작하고 있으며(1절),

거의 매절마다 2인칭 주어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동일한 용어, 즉 ‘빛'(1, 3, 19, 20

절) ‘영광'(1, 2, 19절) 등과 같은 단어를 적절히 사용하여 새로운 이상과 세계의 도

래를 사실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상징적인 언어들을 사용하면서도 실제성을 강

조하기 위해 점층법을 이용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방의 다가옴->이방이 시온을

섬김->시온이 든든하게 됨’이라는 구도 속에서 진술한 내용이 역사 속에서 분명히 실

현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특징을 소유하고 있는 본장은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통해 완성될 시온

의 미래를 중점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저자는 메시야의 수난과 승귀에 이어 시온과

열방의 구원을 언급함으로써 죄악으로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56:9-59:15) 존재가 메시

야를 통해 죄사함을 받을 수 있음을 알려준다.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어두움의 세력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세계에 참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만민이 함께 하나님을 찬

양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이다.

이제 본장을 몇 단락으로 나누어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방인들의 구원과 시온의 회복(60:1-9)

이스라엘의 사회적 죄악상을 고발하고(59:1-15a) 이어서 구속자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한(59:15b-21) 이사야는 이제 본 단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이방인들이

시온으로 묘여들게됨을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바벧론 포로 상태에서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찬란한 미래상을 제시함으로써 위로

하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이방이 시온으로 돌아오는 이유(1-3절), (2) 이방이

돌아오는 광경(4-7절), (3) 원방의 이스라엘도 귀환함(8, 9절) 등으로 구분할 수 있

다. 이제 본문의 핵심적인 내용을 몇 가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온의 영광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에 기인한다:52:1, 2에서 하나님은 시온에

게 일어나 보좌에 앉으라고 명령하신 바 있다. 이제 본 단락에서는 ‘빛을 발하라’고

명령하고 계시다. 그런데 시온 자체는 빛을 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시온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어두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온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

님으로부터 온 빛을 반사하는 것이다. 저자는 시온의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마음에 받

아 열방에 나누어 주도록 강력히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고후 4:4-6).

둘째, 하나님이 비추는 빛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다:저자는 온 열방을 끌어들일

능력의 빛이 바로 구속 사역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밝힌

다. 계 21:22에서도 어린 양과 하나님의 영광을 연관지으면서 만국이 어린 양을 향해

모여들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유일하게 열방을 구원할 수 있는

필요충분 조건이다.

셋째, 이방인들은 먼 미래에 예물을 가지고 시온으로 나아올 것이다(4-7절):저자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가까이 혹은 멀리 거주하던 이방 백성들이 각각의 진귀한 예물들

을 가지고 시온으로 나아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런데 이 예언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비로소 성취될 것이다. 그때 온 열방은 주의 통치하에 온전히 복속되며 구원에 도

달하게 된다. 특히 저자는 먼 미래에 성취될 세계 복음화의 비전을 마치 당장 성취될

일처럼 권고함으로써 고통 중에 있는 이스라엘을 위로하고 있다.

넷째, 시온의 백성들은 가까운 미래에 돌아올 것이다:저자는 열방이 돌아온다는 사

실 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환할 것을 묘사하고 있다(4, 8, 9절). 마치 집을 떠난

새가 그 보금자리로 다시 돌아오듯이 원근이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국으로 귀

향할 것이다. 이 예언은 저자가 본 예언을 마친 뒤 얼마 되지 않아 바사 왕 고레스가

이스라엘 포로 귀황령을 내림으로써 성취되었다(B.C 538년). 하나님의 말씀은 조금의

오차도 없이 반드시 성취된다.

2. 이방의 섬김을 받는 시온(60:10-14)

여호와의 영광을 임재에 따라 이방이 시온으로 몰려움을 노래한 전 단락(1-9절)에

이어지는 본 단락은 이방이 시온을 섬기는 모습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사실 열방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공격하며 괴롭혔던 존재였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이

방 국가들이 시온을 섬기게 된다는 점은 여호와의 임재로 출발된 시온의 영광을 단적

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시온을 섬기는 이방인들(10절), (2) 열

왕들의 굴복 및 동반된 예물(11, 12절), (3) 소롤몬 시대의 재현(13, 14절) 등으로 나

눌 수 있다. 이제 본문의 핵심적인 몇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저자는 대력 세력이었던 이방인들이 오히려 시온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10절). 시온은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열방의 침략을 당하게 되었다. 그 대적중 바벧론은 최초로 예루살렘 성의 벽을 파괴하

였고, 그후 로마는 더욱 철저히 파멸시켰다. 그런데 이사야는 이러한 불행이 반전되어

이방인들이 도리어 성벽을 재건하고 시온을 섬기게 된다고 예언한다(스 1:1-4). 그런

데 이러한 회복은 결코 시온의 의로움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

혜와 긍휼에 기인한다.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사랑이 음탕한 고멜(호 1:3)과 같은 시온

을 온전하게 보호하려는 것이다(40:1-11;애 3:22;고전 15:10).

둘째, 저자는 회복될 시온의 영광을 과거 솔로몬 시대의 영광과 비교하여 기술한다

(13, 14절). 과거 솔로몬 성전을 건축할 때 레바논의 무수한 나무들이 예루살렘으로

운반되어져 왔다(왕상 5장). 그런데 레바논의 자랑이었던 나무들이 베어져 예루살렘으

로 운반되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레바논의 굴복과 복종을 의미하였다. 이와같이

메시야가 통치하는 시기가 도래하게 되면 시온은 ‘하나님의 거룩한 곳'(13절), ‘거룩

한 자의 시온’, ‘여호와의 성읍'(14절)으로서 세상이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과 기쁨이

영역으로 등장하여 찬미를 받게 될 것이다.

3. 시온을 향한 축복의 약속(60:15-22)

이방의 섬김을 받게 되는 존귀한 신분이 될 이스라엘의 미래를 묘사한 전 단락

(10-14절)에 이어 본 단락은 내적으로 든든히 설 시온의 미래를 노래하고 있다. 특히

이방이 이스라엘로 모여들게 됨을 언급함으로써 분위기를 고조시킨 본장은 내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든든히 설 이스라엘의 모습을 기술함으로써 포로 상태에 놓여 있는 이

스라엘을 위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본 단락은 (1) 시온의 구속자 여호와(15, 16절), (2)

화평과 의로 든든히 서는 시온(17, 18절), (3) 시온의 빛이신 여호와(19. 20절), (4)

번성해 갈 시온(21, 22절)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제 본 단락의 핵심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저자는 하나님께서 시온을 통치하시는 두 가지 원리를 제시한다(17, 18

절):(1) 하나님은 ‘화평’을 기준으로 하여 시온을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

이 시온을 다스리는 궁극적인 목적은 진정한 화평을 조성하려는 의도이다. 이론 관점

에서 바울도 화평을 잃어버린 고린도 교회를 향해 하나님께서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

니라 화평의 하나님을 선포하면서 질서 있는 신앙 생활을 촉구하였던 것이다. (2)하나

님은 ‘의’를 통하여 지배되는 나라를 원하신다. 결국 하나님은 시온을 ‘의’와 ‘화평’

이 지배하는 영역으로 통치하실 것이다(54:13, 14). 그때 죄와 슬픔과 영적 황폐가 사

라질 것이다.

둘째, 저자는 하나님께서 시온을 영광스럽게 하신다고 말한다(19, 20절):땅을 비추

기 위해 하나님이 만든 등불과 같은 물체에 불과한 태양과 달 대신 하나님께서 친히

시온의 빛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런데 이 예언의 현재적 성취에 대한 기대는 금물이다. 지금 이 땅을 비추는 것은 태양, 달, 별 등일 뿐이다. 이 예언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질 것을 예표한다. 사도 요한도 환상 가운데 본서 저자가 바라본 것처럼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 성의 빛되신 영광스러운 장면을 목도하였다(계 21:23-25;22:5).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반영하여 새 예루살렘을 완전한 이상적인 나라로 만드실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포로 상태에 처해 있는 시온의 영광스러운 미래를 살펴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고 보잘것 없는 시온을 구원하시고 세계 만방의 경계를 받도록 하셨다. 이와같이 오늘날의 교회는 비록 부족한 부분이 많을지라도 장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하나님의 나라의 지상적 대행 기관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장차 실현될 최후 영광을 기억하며 더욱 성결한 모습을 간직하고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이다.

이사야 60장 강해

◈(새)예루살렘의 영광 이사야60장 10.11.14.출처1 출처2

*예루살렘: 포로에서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뜻하며,

궁극적으로는 신약의 교회를 뜻함

이제 이사야서는 60~66장까지 종말론적인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언서의 대부분은, 마지막에 종말론적인 말씀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예언서를 기록함 목적은, 마지막 때에 종말에 대해서

깊이 깨닫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여러분!

하나님은 자신의 택하신 자들에게 소망을 주고 계십니다.

세상의 흉흉한 소식에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22)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사60:1-3

▶1절,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일어나라’

52:1에도 유사한 표현이 나옵니다.

죄악에 따른 심판으로 말미암아 티끌과 폐허 위에 앉아 있던(3:26, 52:2) 시온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이 전해집니다.

1차적으로 이는 포로 귀환을 겨냥한 것이지만,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실 메시야를 통한

교회의 탄생과 확장을 예언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말4:2, 엡5:14).

‘네 빛이 이르렀고’

이제 시온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근거가 제시됩니다.

죄악으로 인해 황폐해졌던 시온 자체에는 빛이 있을 턱이 없었으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 자체로부터 나오는 치유의 빛, 구원의 빛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이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 ‘빛’ 또한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되어 온, 메시야를 통한 구원의 빛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 받은 자들이, 마지막 종말 때에 해야 할 일은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택한 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빛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12:36)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이 빛은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절에,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네게 임할 때, 나는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직 예수의 신앙을 가질 때, 내가 예수의 빛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안에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는 말씀은 <오직 예수> 안에서

오직 예수 신앙으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2절에서 답을 주고 있습니다.

▶2절,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본절은, 죄악과 그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온 땅이 캄캄할 때

하나님의 구원의 빛이, 시온에 비춰질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실 때에도,

세상 다른 곳은 여전히 어두운 상태에 있었습니다.

빛 되신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그 빛을 깨닫지 못했습니다.(요1:9, 10)

그러므로 본문은 구약의 예언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실 것을 뜻합니다.

이후 온 땅은, 이스라엘을 통해, 그 빛을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9:2)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자연의 현상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때에 영적으로

세상이 암흑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어디를 보아도 온통 캄캄한 영적 세계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암흑의 시대에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해같이 임할 것입니다.

▶3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본절은 이스라엘에 임한 빛이 먼 나라 이방에게로 확장되며,

따라서 그들이 이 복음의 축복에 참여케 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암시는 본장이 보여주려 하는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2:3, 11:10, 49:22, 54:3)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땅으로 오심으로 이루어진 말씀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도,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진 교회들이, 세상의 빛이 될 것입니다.

계시록은 사도요한이 보고 들은 것을, 일곱 교회로 편지로 써서 보내라고 하신 내용입니다. (계1:11)

일곱 교회는 초대 교회 당시에 교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상 끝날 때까지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들은

성경의 마지막 예언서인 계시록에 대해서, 깊이 알아야 하고, 전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국한된 계시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계12:1절의 “해sun를 입은 여자”는

해와 같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옷 입듯) 입은 여자, 즉 교회를 가리킵니다.

교회가, 빛을 발한다는 뜻입니다.

예수의 빛을 입은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진 교회들은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다시 오실 예수를 알리기 위해, 일어나 빛을 발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속히 이루실 것입니다.

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만 보더라도

초대 교회들은 예수로 뜨겁게 시작하였지만, 잘못된 교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일곱 교회 중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에만 책망이 없었습니다.

2천년 교회 역사를 돌아볼 때, 칭찬보다도, 책망 받은 교회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 시대 예수로 시작된 교회들이 마지막 때에

“해를 입은 여자” 신령한 교회가 되지 못하면

세상과 타협하고 마는 거짓된 교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마지막 때에 자신의 영광을 입은

즉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은 교회를 통해, 마지막 때의 큰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 큰 일에 동참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사60:4-9

▶4절,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안기워 올 것이라’

원문 직역은 ‘네 곁에 붙들어 매어질 것이라’입니다.

이것은 근동의 풍습을 연상케 하는 표현입니다.

근동 사회에서는 부모가 어린 자식을 데리고 다닐 때, 허리에 걸치듯 업곤 했습니다.

이같이 익숙한 풍습과 연관된 표현을 함으로써, 저자는,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예언의 내용에 애착을 느끼고, 또한 반드시 성취될 것을 기대케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AD 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이 이끄는 4개 군단에 의해 멸망 받고

유대 민족은 전 세계로 디아스포라가 되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본절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를 끝내고 돌아오는 그 날을 예언하고 있기도 하지만

예언서는 이중/ 삼중적 계시가 있으므로

본문에 기록된 말씀은

마지막 때에 신실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지고

신령한 “해 입은 여자” 교회로서, 돌아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에게 독립의 기쁨을 주었고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돌아올 때

그들은 그동안 모은 수많은 재물들을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본문은, 이 사건을 예언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넓게, 아주 포괄적으로 보면, 1차적으로 그런 뜻은 아니지만,

4차적인 해석으로,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 봅니다.

1차적으로는 ‘신약 교회’를 뜻하며

2차적으로는 ‘바벨론 포로 귀환’을 뜻하며

3차적으로는 마지막 때, 교회의 선교적 확장을 뜻하며

4차적으로 (가장 덜 중요한 해석으로서)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을 뜻한다고 봅니다.

▶5절, 그 때에 네가 보고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옴이라

이 말씀도 긍극적으로 이루어지는 날은, 마지막 때 예수님 재림 직전에

신령한 교회 “해의 영광을 입은 여자”인 교회에 주어지는 영광이라고 봅니다.

‘네 마음이 놀라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많은 이방인 회심자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며, 크게 감동받은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바다의 풍부는, ‘이방인들의 재물’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는 포로 귀환시, 이방의 재물이 지원될 것을 시사함과 동시에(스 1:6)

메시야의 통치가 시작되면, 이방인의 소유물들이 시온,

곧 교회에게 바쳐짐을 예언한 것이기도합니다.

말하자면 땅의 재물이, 거룩한 용도에 사용되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6절, 허다한 약대, 미디안과 에바의 젊은 약대가 네 가운데 편만할 것이며

스바의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에바의 약대’

미디안의 장남으로(창25:4) 아라비아 페트레아(Petrea)에 살았는데

그 이름을 따서 그가 살던 지역이 에바라 불렸습니다.

사해 동부 해안이었던 그곳은, 미디안 땅의 일부이기도 했는데

이곳은 약대가 풍부했습니다.

‘젊은 약대’

아라비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대의 일종으로 그 특징은 그 등에 혹이 하나뿐입니다.

먼저 언급된 ‘약대’는 등에 혹이 둘인 약대를 가리킵니다.

‘스바’

성경에서 이곳은 솔로몬에게 많은 예물을 가지고 왔던 이방여왕의 나라입니다. (왕상10:1, 대하9:1)

금과 유향이 풍부한 곳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렘6:20, 겔27:22)

오늘날의 에티오피아 아비시니아라는 것이 학자들의 일치된 의견입니다.

이방도, 열방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영광’에 반했기 때문입니다.

말세에 나타날, 교회의 영광, 예루살렘의 영광입니다.

▶7절,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여지고, 느바욧의 수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게달’

주로 아라비아 사막 남부 혹은 아라비아 페트레아 북부에 살았지만

그들은 거주지를 자주 옮겼으며, 이러한 유목민에게 양이 풍성했으리라는 것은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21:16, 17, 42:11)

‘느바욧’

이스마엘 아들 중의 한 명으로(창25:13, 대상1:29),

그 후손이 아라비아 페트레아에 거주했으며

주로 약탈과 목축업으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들의 귀한 소유인 가축도 하나님께 바쳐질 것입니다.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해 입은 여자”인 교회를, 스스로 영화롭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신실한 자들을 모으실 것입니다.

마치 노아 홍수 때에 짐승들을 노아 방주로 모으셨던 것처럼 모으실 것입니다.

그 모습을 8-9절에서 구름과 비둘기로 섬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8절, 저 구름 같이,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오는 것 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뇨

‘저 구름같이’

이방인의 회심을 묘사함에 있어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본 이미지는

히브리서에서 읽을 수 있듯이 그 수의 많음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히12:1).

그러나 동격으로 사용되고 있는 ‘비둘기’는, 본문에 나온 그대로,

보금자리로 날아오는 것 같이,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이제 메시야의 통치가 시작 되면

많은 이방인들이 빠른 속도로 예루살렘, 곧 주의 교회로 들어올 것입니다.

▶9절,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원방에서 네 자손과 그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니라.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다시스의 배들, 곧 무역선은.. 가장 먼 지역에까지 무역을 하는 배로 유명했는데,

그 배들이 먼저 이른다는 말은, 먼 곳에 있던 자들이(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포함하여)

조속히 몰려들게 될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66:20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름은 곧 존재를 가리킵니다.

여기서는 이방까지도 구원 대열에 포함시키신 구원의 하나님의 속성을 강조합니다.

그들이 오는 것은 자신들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9절에 “드리려 한다”는 말씀이 두 번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나 하나님께 자신과 물질을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즉 빛이 임한자만이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라”

하나님의 영광은, 곧 교회의 영광입니다.

이사야서는 60~66장까지 종말론적인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서두인 60장은 ‘교회의 영광, (새)예루살렘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의 이방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선교적 부흥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큰 흐름을 탈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흐름을 거슬러 가는, 성도와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시작과 끝이시며 처음과 나중이시며

알파와 오메가 되심을 깊이 깨닫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과 구원이 예수로 시작되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세월이 갈수록 예수는 점점 작아지고, 나만 더 커지는 것입니까?

9절 끝에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니라” 말씀을 주목하시고

그 영화롭게 하시는 근거는, 오직 예수를 통해서 이루어진 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예수님과 더불어, 영광(고난, 십자가, 희생) 가운데 신앙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너를 섬기지 아니하는 자는 파멸되리라. 사60:10-14

이 말씀도 포로에서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마지막 때에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진 주의 종들에 대한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때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살았지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부르심을 받아 주의 종이 된 자들에게

이방인들과 권세자들이, 구원사역에 동참하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10절, 내가 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는 나의 은혜로 너를 긍휼히 여겼은즉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그 왕들이 너를 봉사할 것이며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이는 포로 귀환시 회심한 이방인들도 예루살렘 성벽 재건 사역에

조력하게 될 것을 뜻함과 아울러

더 나아가서는 이방인들이 영적예루살렘, 곧 교회를 섬기는 일에 협력할 것을,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특권에 동참할 것을 뜻합니다.

▶11절, 네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들이 네게로 열방의 재물을 가져오며 그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성문이 항상 열려’

새로운 예물들과 개심자들을 영접하기 위하여 교회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26:2, 행14:27, 계3:8).

평화의 왕 메시야의 완전한 통치가 실현되면, 대적들의 위협조차 전혀 없으므로

시온의 문에는 침입자를 막기 위한 문빗장도 없을 것입니다.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계21:25, 26)

‘그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아마도 이것은 세상의 권세 잡은 세력들도

결국에는 메시야의 강한 통치력에 굴복하고 말 것을 가리킵니다.

11절에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라고 하였는데

마지막 때에는 교단과 교리 초월하여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진 자들은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목해야 할 말씀은 12절과 14절의 말씀입니다.

▶12절, 너를 섬기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파멸하리니 그 백성들은 반드시 진멸되리라

개역에는 생략되었으나 본절 원문 서두에는 원인 접속사 ‘키’(왜냐하면)가 있습니다.

바로 앞절에 서술된 세상 나라의 왕들과 그 백성들이 교회에 굴복하게 되는 까닭은,

그렇지 않은 경우 저주받아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슥14:17).

교회가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할 때 명심해야 할 점들 중의 하나는,

믿지 않으면 저주받아 멸망하고 만다는 것을 경고로 외쳐야 합니다.

오늘날 불행히도 이 땅에서 복 받고 잘산다는 것이 복음 증거의 주용 골자인 양

왜곡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복음을 자랑한다고 선포한 후에

저주 아래 있는 인간의 상황을 서술함으로써

복음 선포는, 믿지 않는 자들로 하여금,

무서운 저주와 파멸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에 주요 목적이 있음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롬1:16, 18)

예수님은 우리에게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였는데

본문에서는 신약교회를 섬기지 아니하면, 반드시 진멸될 것이고,

신약교회를 괴롭히던 자들은, 발 아래 굴복된다는 사실입니다. :14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 해답이 13절에 있습니다.

▶13절, 레바논의 영광 곧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이 함께 네게 이르러

내 거룩한 곳을 아름답게 할 것이며, 내가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여기 열거된 나무들은 레바논 땅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대표적인 수목들입니다.

그 나무들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알려진 거룩한 곳, 곧 성전을 아름답게 합니다.

이 말은, 구체적인 의미에서, 그 나무들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재목으로 쓰인다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메시야의 통치 이후 이방의 귀중한 물건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바쳐져서 성별되게 쓰일 것을 말하고 있다고 이해해도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레바논의 나무들로 건축 되었듯이

신약교회는, 거룩함으로 자신들의 몸을 거룩한 성전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 거룩한 심령에 하나님이 영화롭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교회를 섬기고

그들 앞에 굴복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입니다.

▶14절, 너를 괴롭게 하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 엎드리어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시온이라 하리라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철저한 복중의 자세를 취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보다는 영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하며

그 완전한 성취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메시야의 통치 이후. 많은 이방의 선택받은 자들이 교회로 몰려들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거부하는, 곧 메시야의 통치를 거부하는 자들은

교회의 역사 속에 계속 존재하게 될 것이며,

주의 재림 때에 이르러서야 그 대적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한편 ‘시온’이 ‘여호와의 성읍’이라 불리운 것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는 성읍’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 곧 하나님 나라라는

중요한 개념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예수를 높이고 영접한 것은

나귀 새끼를 보고 소리 지른 것이 아니라, 예수를 보고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높임을 받고 존경을 받는 다 할지라도

그것은 내가 아니고 내 안에 계신 예수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 나귀 새끼가 영광을 받으며 살아가는 자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귀신들이 다 웃을 것입니다.

세상 끝 날에 하나님은 ‘두 증인’들에게 이러한 영광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두 증인(신약교회)의 권세에 대해 계11: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창세 이래로 하나님의 종들에게 이런 권세를 주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능력으로 하게 될 것입니다.

두 증인(신약교회, 전도자)의 거룩함은 계14:4-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주1)

◑4. 말세때, 교회의 영광 사60:15-22

“영영한” 이라는 말씀이 15절, 19절, 20절, 21절에서 4번 언급되고 있습니다.

즉 영원히 빛이 되어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영원한 약속이 어떤 것인지 5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영원한 아름다움과 기쁨이 될 것입니다. (15절)

▶15절, 전에는 네가 버림을 입으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지나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로 영영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네게로 지나는 자가 없었으나’

바벨론의 침략으로 멸망하여 황폐화됨으로 말미암아

팔레스틴 땅은 사막의 대상 심지어 나그네도 그리로 지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진 자들을 무시하고 미워하고 천대와 멸시를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 영원한 아름다움과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들은 이러한 약속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고난과 환난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고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전9:25)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롬8:18)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가 천국에서 받을 상급이 없다면,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겠습니까?

(계3: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어떤 멸시와 천대가 있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약속된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구원자이신줄 알게 될 것입니다. (16절)

▶16절, 네가 열방의 젖을 빨며 열왕의 유방을 빨고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열방의 젖을 빨며’

앞에서 거듭 언급된 바 이방 세계의 물적 후원과 조력에 대한 은유적 표현입니다.

‘네 구원자 … 알리라’

이것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회심한 이방인 위에 임할 은총은

메시야를 통한 구속 사역에 근거하게 될 것을 나타냅니다.

마지막 때에 온 세상은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구원자인줄 알게 될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모든 세상들이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 굴복할 것을

본문에서는 ‘열방의 젖을 빨며 유방을 빨 것’이라고 비유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교회가, 하나님의 화려한 성전에 거할 약속입니다. (17-18절)

▶17절, 내가 금을 가져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져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철로 돌을 대신하며 화평을 세워 관원을 삼으며 의를 세워 감독을 삼으리니

‘내가 금을 … 돌을 대신하며’

여기서 이사야가 비유로 들고 있는 물질적 풍요는

솔로몬 시대의 그것을 연상시킵니다. (왕상10:21~27)

본 구절의 해석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으나 다음 두 가지가 무난합니다.

(1)새로이 회복될 시온의 영적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물질적 번영과 아름다움에 비유한 것입니다.

(2)다가올 메시야의 시대에는, 모든 것이 더 나은 것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 역사를 살펴볼 때, 구원의 복음이 들어간 지역은

대체로 정치, 경제, 문화, 그 외 모든 분야에 있어서, 발전하고 복된 곳이 되었습니다.

▶18절,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경내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칭할 것이라

‘성벽’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를 나타내는 표상으로 사용되었으며(삼상25:16),

‘성문’

영광의 왕이 들어가는 문(시24:7),

혹은 양의 문(요10:7)이라는 이미지와 연관시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영광의 왕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양이 된 성도들뿐입니다.

계시록 21장 10-21에 보면 하늘 예루살렘은 각종 보석으로 꾸며졌습니다.

본문에서도 놋 대신에 금을,

철 대신에 은을,

나무 대신에 놋을,

돌 대신에 철을 사용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러한 성전을 감독하는 것이 의이고, 화평이 관원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그곳에는 화평과 의가 충만한 곳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다시는 강포한 일이 없을 것이며 황폐와 파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벽이 구원이고 성문이 찬송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원 받은자 들만이 그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천국에서 영원토록 하나님께 찬양 드리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넷째로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한 빛이 되실 것입니다.(19-20절)

▶19절,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취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20)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영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마칠 것임이니라.

가장 밝은 발광체인 낮은 태양과 밤의 달이

그 백성에게 비췰 하나님 자신의 영광의 월등함 때문에

오히려 가리워질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30:26, 계21:23, 22:5)

“영영한 빛이” 19절 20절에 두 번 반복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계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얼마나 강한지

태양도 달도 빛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 곳에는 슬픔이 없는 곳이 될 것입니다.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 갔음이러라”

여러분!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절대로 천국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떤 고난이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믿음으로 이겨서

천국에서 모두 만나서 영원토록 함께 사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섯째로 의로운 자만이 영원히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21-22절)

▶21절,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22)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그 작은 자가 천(千)을 이루겠고’

본문은 다분히 종말론적 색채를 띠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예수의 겨자씨 비유및 누룩 비유와 연관시켜 볼 수도 있습니다. (마13:31~33).

겨자씨와 누룩은 처음에는 보잘것없이 작게 보이나

나중에는 엄청나게 큰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처럼 메시야의 초림 때에는 그가 핍박을 받음으로

교회라는 존재 자체의 존립성조차 위태한 듯이 보였으나,

성령을 통해 역사하시는 강력한 생명력으로 말미암아, 급속히 확장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의롭게 되는 것은 내 스스로 무엇을 해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하나님은 예수의 피로 의로운 자들에게 3가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자이요,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21

의로운 자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3가지 말씀입니다.

첫째 나는 연약한 가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 받은 자들은 날마다 깨달아야 할 사실이 “나는 연약한 가지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를 떠나서 내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의로운 자는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자라는 사실을

매 순간 의식하고 고백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반대로 이러한 마음이 사라질 때 인간 속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의가 소멸되어 간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날마다 잊지 말고 살아야 의로운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64:8)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나는 왜 이렇게 지어졌는지?” 불평 원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의 처한 환경에서 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고 볼 줄 안다면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불평, 원망 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그분이 우리를 못 본체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디 있던지 하나님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 모두를

보고 계시고, 듣고 계십니다. (시139:1-8)

이 놀라운 사실을 인정하면서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님의 임재를 매 순간 느끼며 살아가기를 원할 때

우리는 의로운 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아갈 때 의로운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인데

인간들은 오히려 그 영광을 가로채고 있으니

어떻게 하나님의 의가 그들에게 임할 수 있겠습니까?

(고전10:31)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인간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얼마나 나타내며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이 다음에 천국에서 받는 상급은 “내가 얼마나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았느냐” 는 것으로 상급이 주어질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며 인간 스스로가 그 영광을 받고 있는데

이런 자들에게는 절대로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2절에서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작은 자” “약한 자” 라고 하였습니다.

(22)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그러나 천국에서는 이러한 작은 자, 약한 자가

천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때를 하나님이 속히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속에서 높은 자, 강한 자 되기를 거부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때가 그렇게 멀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진실로 믿는다면

하나님이 신속하게 자신의 때를 이루실 것을 믿고 살아가는

소망 찬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영광으로 시작해서 영광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1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였다고 말씀하셨고

21절에서는 그 영광을 나타낼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이 나타내고 싶다고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어떤 자에게 임할 때

그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만 되는 것입니다.

(행12: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오늘날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챌 때

헤롯이 충이 먹어 죽는 것처럼 영적으로 죽은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영광을 입은 자들입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는 이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 영광이 나에게 임하신 것은 이 영광을 세상 속에 나타내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내가 있는 그 곳에서 일어나서 빛을 나타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 때문에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고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곧 다시 이 세상에 오실 것이라” 고 전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의 의가 내 안에 임하게 될 것이고

그 의가 나를 거룩하게 하여 주고 세상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행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제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지만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때는 속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반드시 속히 이루어지실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는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마시고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오시는 그 날까지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지고 담대하고 강하게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주1)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은 거룩함에서 시작됩니다.

거룩하지 않는데도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은 곧 사탄의 능력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거룩함이 없는데 능력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거룩함 속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마지막 때에 거룩하지 않는 자들에게서 등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거룩하지 못한 자들과 자주 접속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더러워지고 마는 것이 영적 세계입니다.

연탄 공장에 10분 있으면 내 옷이 시커멓게 되고,

참기름 집에 10분 있으면 내 옷에 참기름 냄새가 베듯이

악한 자들과 더러운 행동과 더러운 입들을 가진 자하고는 멀리하며 사는 것이

나의 거룩함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히13: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우리를 거룩케 하시려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온 몸의 물과 피를 흘리시고

6시간 동안 매달리셨습니다. 이 세상에 모든 인간들은 더럽습니다.

더럽기 때문에 예수의 피로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히9:22)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한 번이 아니라 기도할 때마다 예수의 피로 내 죄를 고하고 사함 받을 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11:45)

지금은 예수 믿고 회개한 자가 천국에 갈 수 있지만

마지막 때에는 거룩한 자만이 무서운 7년 대환난을 이기고 휴거가 될 것입니다.

(살전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여러분! 내 영과 혼과 육이 흠 없이 보전된다는 것은 곧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날마다 나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의 피로 사함 받아 거룩한 심령을 가지고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사야 60장 1절-22절, 매일성경큐티와 새벽설교를 위한 본문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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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0장과 61장, 그리고 62장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지게 되는 넘치는 자신감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특히 이사야 60장은 59장 17절-21절에서 약속된 구원자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오실 때, 주님의 영광이 그들 가운데 솟구쳐 오르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오신 결과, 이 백성들은 평화로운 왕국의 선민들이 될 것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60장 속에서 주께서는, 쓰러져 있는 예루살렘 즉 시온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하십니다(1-7절). 그리고 예루살렘이 일어난 후에는, 모든 귀환자들과 국가들이 모이는 영광스러운 곳이 될 것입니다.

또 이사야 60장의 두 번째 부분에서는 새로운 예루살렘과 그 속에서 형성될 새로운 공동체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8-22절). 마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새로운 예루살렘과도 같이, 예루살렘은 거룩한 신부로 준비됩니다(계 21:2).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시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나누고 공유하는 지구 상의 모든 민족들에게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매일성경큐티에서는, “하나님은 시온(예루살렘)을 ‘너’라고 부르시며, 멸망다하여 조롱거리가 되었던 ‘너’에게 하나님의 빛을 담아주시고 일으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2021년 8월 9일 월요일 본문에서)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빛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는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통독하면서 말씀묵상하고 본문주석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사야 60장 1절-22절, 현대인의 성경

1 예루살렘아, 일어나서 태양처럼 빛나라.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비치고 있다.

2 세상의 모든 민족이 어두움에 덮여도 너에게는 여호와의 영광이 비칠 것이니

3 모든 나라가 네 빛으로 나아오고 세상의 모든 왕들이 네게서 비치는 여호와의 영광을 보려고 올 것이다.

4 눈을 들어 살펴보아라! 이방 민족들이 너에게 몰려들 것이며 멀리서 네 자녀들도 모여들 것이다.

5 그때 너는 이것을 보고 희색이 만면하여, 너무 기쁜 나머지 흥분하여 가슴이 두근거릴 것이다. 이것은 바다의 부와 모든 민족의 재물이 너에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6 미디안과 에바의 낙타들이 네 땅을 덮을 것이며 스바 사람들이 다 금과 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을 찬양할 것이다.

7 게달의 양떼와 느바욧의 수양이 너에게 끌려와 여호와의 제단에 바쳐질 것이며 그는 자기 성전을 더욱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8 구름처럼, 보금자리를 찾아드는 비둘기처럼, 미끄러지듯이 달려오는 것들이 다 무엇인가?

9 그것은 먼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태우고 오는 배들이니 그들은 금과 은을 싣고 와서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며 그의 백성을 영화롭게 하신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께 그것을 드리려고 하는 자들이다.

10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말씀하신다. `외국 사람들이 네 성벽을 재건할 것이며 그들의 왕들이 너를 섬길 것이다. 비록 내가 분노하여 너를 벌하였으나 이제는 내가 너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풀겠다.

11 이방 민족들이 가져오는 재물을 받기 위해 네 성문은 항상 열려 밤낮 닫히지 않을 것이며 세상의 왕들이 너를 섬길 것이다.

12 그러나 너를 섬기지 않는 나라는 아주 패망하고 말 것이다.

13 레바논의 아름다운 소나무와 잣나무와 회양목이 너에게 운송되어 너를 재건하고 내 성전을 아름답게 하는 데 사용될 것이니 내 성소가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14 너를 괴롭히던 자들의 자손들이 너에게 와서 허리를 굽히며 너를 멸시하던 자들이 다 네 발 앞에 엎드려 너를 `여호와의 성’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의 성, 시온’이라 부를 것이다.

15 비록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고 미움을 받아 아무도 네 앞을 지나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자랑거리와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겠다.

16 세계의 열강들과 왕들이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돌보듯이 너를 보살필 것이며 그때 너는 나 여호와가 너를 구원하고 이스라엘의 전능한 하나님이 너를 자유롭게 하는 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17 내가 금으로 너의 놋을 대신하고 은으로 너의 철을, 놋으로 너의 나무를, 철로 너의 돌을 대신할 것이며 평화를 너의 관리로, 의를 너의 감독으로 세울 것이다.

18 다시는 네 땅에 폭군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며 황폐와 파멸이 없을 것이니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부르며 네 성문을 `찬송’이라 부를 것이다.

19 더 이상 낮의 해가 네 빛이 되지 않을 것이며 밤의 달도 네 빛이 되지 않고 나 여호와가 너의 영원한 빛이 되며 너의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될 것이다.

20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않고 네 달이 이지러지지 않을 것이다. 나 여호와가 너의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들이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21 네 백성들이 다 의롭게 되어 자기들의 땅을 영원히 소유할 것이다. 그들은 내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내가 손으로 심은 작은 가지와 같은 자들이다.

22 그들의 가장 작은 가족이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보잘 것 없는 집단이 강국을 이룰 것이다.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속히 이룰 것이다.’

60장 1절-22절 영원한 빛, 본문주석

주의 빛이 일어나다, 60장 1절-7절

60장 1절-5절, 주의 영광이 나타나다 60장 6절-7절, 만민들이 나아오다

주님의 도시, 60장 8절-22절

60장 8절-12절, 성벽과 문들 60장 13절-14절, 성소 60장 15절-18절, 구원의 벽과 찬양의 문들 60장 19절-22절, 영원한 빛

60장 1절 – 62장 12절,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60-62장은 이사야 56-66장 가운데서 가장 서정적이고 가장 웅변적인 예언시로 분류됩니다. 이 장들은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희망을 가장 강력하게 피력하는데 서정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사야 40-55장과 공통점이 가장 많은 장들입니다.

60장은 희망을 갖도록 설득하는 위대한 소환의 장면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9장 2절과 평행구를 이루 는 이 장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복이 놀랄 만한 경제적인 부흥의 형식으로 올 것이며 이내 참혹한 궁핍, 절망 그리고 공동체의 여러 병적 징후들을 대체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뒤따라 나오는 장들에서 저자는 열방의 부가 이스라엘에게로 흘러 들어 BC 10세기에 솔로몬 시절에 잠시 그러했던 것처럼 예루살렘이 다시금 고대 근동의 경제적 중심지가 되는 앞날을 그립니다. 상업의 부흥은 하나 님이 주신 복의 구체적인 형식이 될 것입니다. 창조주는 창조의 다른 영역에서도 선물을 주시지만 경제적인 영역에서도 복을 주십니다.

60장 1절-7절, 주의 빛이 일어나다

60장의 첫 부분은 짧지만 무너진 시온에 떠오르는 주의 빛가 그 빛에 다가오는 만민들과 열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전반부에서 주님의 영광이 일어나는 시온에 만민들이 몰려 오고 있습니다(1-5절).

60장 6절-11절, 허다한 낙타… 어린 낙타…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6절은 예루살렘의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 줄 상품들을 가득 실은 낙타들의 큰 행렬을 그리고 있습니다. 스바에 대한 언급은 솔로몬 시대의 번영을 적절하게 상기시키고 있습니다(왕상 10:1-13). 하지만 경제적으로 소생한 그 도시에 도착하는, 귀한 상품들의 대표가 되는 황금과 유향에 대한 언급이 더 흥미롭습니다. 이 귀중한 보물들의 이미지는 동방박사들이 그리스도를 알현하는 마태복음의 이야기에서 다시 채택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동방박사들은 아기 왕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황금, 유향, 몰약’을 가지고 옵니다(마 2:11). 게다가 이 장면과 마찬가지로 마태복음에서도 이 물품들이 유다. 인이 중심이 되는 세계를 더욱 실감나게 하기 위하여 이방인들에 의하여 바쳐지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라. 또한 여기서 기대되고 있는 예루살렘의 엄청난 경제 부흥은 ‘다시스의 배들의 활동’과 관련되어 있습니다(9절). 다시스의 배들은 대규모 해상 무역을 대표하는 선단들을 가리킵니다. 더 나아가서 예루살렘은 많은 물류 수송 때문에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상업 활동에 몰두하고 있습니다(11절). 이 큰 경제적인 부흥은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는데, 그것은 당시 유대교가 자아낸 침울한 상황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변혁적인 개입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60장 8절-22절, 주님의 도시

무너진 시온의 위로 주님의 영광이 솟아오른다고 60장의 첫 부분에서 노래하며, 마지막에 가서는 찬란하게 빛나는 새로운 도시가 탄생합니다. 무너진 도시를 다시 세울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하는 부분입니다.

60장 19절-22절, 영원한 빛

60장은 빛으로 시작하여 빛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구절들 중에 첫 부분(19절)에서는, 해와 달이 더이상 새로운 도시에 빛을 비추지 않습니다. 그대신에 시온은 주님의 영원한 빛이 온 도시에 빛을 비추는 천국의 도시로 변화하게 됩니다.

두 번째 부분(20절)에서는, 태양과 달의 역할이 약해집니다. 천국의 도시에서는, 더이상 슬픔이 없으며 눈물이 끝이 나게 됩니다. 새로운 도시에서는 오직 주님의 영광만이 있으며 기쁨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같은 곳에서 ‘주께서 심으신 가지'(네쩨르 마아세, נֵ֧צֶר מַעֲשֵׂ֥ה)가 될 것입니다. 시온의 근본은 이처럼 주께서 주시는 생명에 의해 유지되고 있으며, 시온은 생명의 근원되신 주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세 번째 부분인 22절에서는, 가장 작고 약했던 민족이 이제는 강대한 민족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마침내 성취될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회복된 시온에서는 능력의 근원이 되시는 주께서 함께 하시기에 찬양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60장 21절, 네 백성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이 서정시적인 미래에 대한 전망의 끝에, 창세기의 땅에 대한 약속들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이는 땅을 잃고 포로로 잡혀갔던 당시의 유다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에 따른 귀향은 이 장에서 발견되는 경제적 부흥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선결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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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5(월) “이사야 60:1-22” / 작성: 이창호A

본문 이사야 60:1-22

찬송가 42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일어나 빛을 발하라(1~9)

이사야 59장 말미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시온으로 돌아올 것임을 선언하셨습니다(59:20). 하나님은 의인화된 시온을 향하여 장차 있게 될 영광을 생생하게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먼저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명령합니다. 이 빛은 이스라엘 스스로 내는 빛이 아니라 하나님의 빛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빛으로 임재하여, 이 빛을 받은 이스라엘이 빛나는 존재가 됨과 동시에 이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반사”시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영광스러운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면할 수 없는 우리는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영광을, 사람이 알 수 있는 물리적인 방법으로 표현하십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타지 않는 “불”로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솔로몬이 성전낙성식을 행할 때는, 성전에 구름이 가득차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에스겔은 큰 구름 속에서 번쩍번쩍하는 빛(겔1:4)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백성들은 빛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캄캄합니다. 앞을 식별할 수 없는 암흑 속에서, 시온만 환하게 빛이 있습니다. 어찌할 줄 모르는 만민은 유일한 빛을 내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나아올 것입니다.

(사60:2~3)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시라

빛을 내는 존재로 살라는 하나님의 초청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부르심을 상기시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b) 말씀해주셨고, 이후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제사장 나라”(출19:6)의 비전을 주신 바 있습니다. 수가 많고, 강성해서가 아니라 작고 보잘것없어도 제사장 나라로서 모든 민족과 열방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이스라엘에게 맡기셨습니다. 이 부르심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말씀을 읽는 우리들 또한 일어나 주님으로부터 받은 진리의 빛으로, 어두움을 물리치고 주변을 환하게 밝혀야 합니다.

현실은 늘 어둡습니다. 그 어둠을 밝힐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늘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진한 절망감을 호소하지만, 하나님의 빛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일어서야 합니다. 어두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우리가 일어나 빛을 밝혀야 합니다. 말씀의 사람, 진리의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으로 이집트를 치셨을 때, 아홉번째 재앙은 흑암의 재앙이었습니다. 그때를 묘사한 출애굽기를 보면, 묘한 대비가 나옵니다.

(출10:22~23)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하나님이 돌보시고, 함께하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빛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어둡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굽어살피시고, 돌보시며, 우리 위에 환한 빛을 비추어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빛을 받은 사람으로서 주변을 밝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마땅히 내가 받은 구원의 빛이 나를 통해 비추어져야 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어디이겠습니까? 그곳이 어디이든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진리의 빛이 나를 통해 밝게 빛나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일어나 빛을 비출 때, 여러 이방에 흩어졌던 자손들이 각기 그 나라의 재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서쪽 지중해의 바다의 부가 돌아오며, 미디안과 스바와 같은 남방의 나라들도 많은 낙타와 고대 중동에서 최상의 예물로 꼽히는 금과 유향을 가지고 오게 됩니다. 이스마엘의 자손 유목민들은 양과 숫양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열방이 나아오는 것은 오직 찬란한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이름 때문입니다.

(사60:9)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먼 곳에서 네 자손과 그들의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놀라운 비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아무런 상관 없이 사는 열방이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여듭니다. 경제적 번영으로 표현된 이스라엘의 영화는 모두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말씀에 충실히 반응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입니다. 주변이 아무리 어둡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를 다하게 될 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세상을 움직이는 새로운 질서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시온으로 몰려드는 여러 나라들(10~22)

이사야가 활동하던 당시, 유다는 이집트와 아시리아, 신흥 강국이었던 바빌로니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습니다. 유다가 힘이 있었다면, 자력으로 나라를 지키고 굴종하지 않아도 되었겠지만 유다는 약하고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진정한 종으로 살게 된 후로는, 이런 굴욕적인 관계 속에서 신음하는 일은 더이상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감내해야 했던 굴종을 다른 나라들에게 되갚아주는 제국의 방식, 파괴적인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이후에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들의 감사의 행렬을 계속해서 받게 될 것입니다. 이방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때문에 문이 닫히지 않을 것입니다(11절).

(사60:11) 네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들이 네게로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가져오며 그들의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열방은 예루살렘으로 나아와 예루살렘을 영화롭게 할 것이며, 예루살렘은 만민이 나아와 예배할 거룩한 곳,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곳으로 구별될 것입니다. 모든 나라들이 이 일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나라는 이스라엘의 구원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성읍임을 알고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사 60:14) 너를 괴롭히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에 엎드려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의 시온이라 하리라

실로 놀라운 반전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시오니즘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그들의 삶의 관습, 세상 나라들이 추구하는 질서들을 상대화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과 공동체를 이뤄가기 위해 애써야 함을 우리에게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를 따라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바깥 세계와 단절된 채 살아갈 수 없는 우리들이 과연 외부적인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해결 방안들을 사용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가진 힘을 의지하고, 재물을 의지하고,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대로만 살아간다면 아무도 우리를 주목하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살아 우리들의 삶으로 체화된 진리를 드러낼 때에야 비로소 세상이 우리를 주목하고, 관심을 갖고, 우리들의 삶의 방식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사람의 진정한 삶에 대해 성찰하고 다시 한 번 우리들의 믿음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삶의 방식이 재편될 것입니다. 종국에는 창세기에서 약속되었던 땅에 대한 약속이 되풀이 되며 성취될 것입니다.

(사60:21)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이런 아름다운 삶이, 능력 있는 삶이 우리 힘만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우리 주님의 은혜로 가능한 삶이며, 오늘도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이룰 수 있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조금도 세상과 구별되이 살아갈 수 없고, 그들을 놀라게 할 만한 경이로운 일을 할 수도 없습니다.

사순절 셋째주간을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를 하나님의 영광을 빛으로 밝히 비추이는 경이로운 삶의 현장으로 바꿔나가시는 순교자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부르신 그 부르심을 잊어버리고, 세파가 거칠다는 핑계로 이리저리 떠밀리며 살아온 인생은 아닌지 되돌아봅니다. 오늘의 말씀처럼 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면서 진리의 빛으로 우리 주변을 밝히는 순교자의 삶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고난 당하심과 십자가 지심과 부활하심이, 바로 이 때문임을 인식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주어진 백색 순교자의 길을 잘 걸어가게 하옵소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세상과 다르게 하시며, 세상으로 하여금 경이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래서 우리의 삶을 주목하여 보게 만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주님 닮은 삶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여호와의 영광이 빛으로 임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린 명령은 무엇이었습니까? (1) 그리고 이 명령은 구체적인 삶의 언어로 치환하면 어떻게 바꿀 수 있겠습니까?

2. 시온의 경제적인 번영(5~9)을 말씀을 보면서 정리해보고, 이 경제적인 번영이 오늘날에는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도 생각해보세요.

3. 세상 모든 나라들이 멸시하던 이스라엘이 존중을 받게 되는 큰 변화가 일어나는 이유를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까? (13)

4.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성취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21)

(작성: 이창호A)

이사야 60장 주석

이사야 (60 : 1~22) 주석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ㅇ일어나라 – 52:1에도 유사한 표현이 나온다. 죄악에 따른 심판으로 말미암아 티끌과 폐허 위에 앉아 있던(3:26;52:2) 시온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이 전해진다. 1차적으로 이는 포로 귀환을 겨냥한 것이지만, ‘치료하는 광선을’발하실 메시야를 통하 교회의 탄생과 확장으 예언하는 내용이기도 하다(말 4:2;엡 5:14).

ㅇ네 빛이 이러렀고 – 이제 시온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근거가 제시된다. 죄악으로 인해 황폐해졌던 시온 자체에는 빛이 있을 턱이 없었으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 자체로부터 나오는 치유의 빛, 구원의 빛을 받음로 말미암아 새로이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빛’또한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되어 온, 메시야를 통한 구원의 빛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2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ㅇ본절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직전에 애굽에서 일어났던 흑암의 재앙 사건을 연상시킨다(출 10:21-23). 이사야는 ‘어두움’과 ‘환난'(45:7), ‘불의'(45:19)를 상징하는 말로도 사용하였다. 본절은 죄악과 그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온 땅이 캄캄할 때 하나님의 구원의빛이 시온에 비춰질 것이라는 예언이다. 한편, 본절은 빛되신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실 때에 이스라엘 외의 세상 나라와 이스라엘 자체를 대비시키고 있다고도 이해된다.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실 때 세상 다른 곳은 여전히 어두운 상태에 있을 것이다. 물론 빛되신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도 그 빛을 깨닫지 못했다(요 1:9,10). 그러므로 본문은 구약의 예언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먼저 오셨다는 것을 뜻한다. 이후 온 땅은 이스라엘을 통해 그 빛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9:2).

3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ㅇ본절은 이스라엘에 임한 빛이 먼 나라 이방에게로 확장되며, 따라서 그들이 이 복음의 축복에 참여케 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암시는 본장이 보여주려 하는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이다(2:3;11:10;49:22;54:3).

4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ㅇ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 여기 ‘무리’란 세계 각처로 흩어졌던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 몇 선택받은 이방인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제 그들은 뒤엉켜 한 무리를 짓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물을 바치기 위해 몰려올 것이다.

ㅇ안기워 올 것이라 – 원문 직역은 ‘네 곁에 붙들어 매어질 것이라’이다. 이것은 근동의 풍습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다. 근동 사회에서는 부모가 어린 자식을 데리고 다닐 때 허리를 걸치듯 업곤 했다. 이같이 익숙한 풍습과 연관된 표현을 함으로써, 저자는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내용에 애착을 느끼고 또한 반드시 성취될 것을 기대케 하고 있다.

5 그 때에 네가 보고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옴이라

ㅇ희색을 발하며 – 원문 직역은 ‘(함께)흐르며’이다. 이 동사는 ‘강’을 뜻하는 ‘네하르’에서 왔는데 여기서 이 동사가 사용된 것은 강물이 넘실대며 넘쳐 흐르는 이미지를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문맥에서 볼 때 그 이미지를 통해 나타내려는 바는 ‘넘치는 기쁨’이겠다.

ㅇ네 마음이 놀라고 –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많은 이방인 회심자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어쩔줄 몰라하며 크게 감동받은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ㅇ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 여기 ‘바다의 풍부’는 ‘하몬 얌’인데, ‘하몬’은 ‘군중'(13:4;단 10:6), ‘많은 군대'(삿 4:7;단 11:11-13), ‘많은 물'(렘 10:13;51:16), ‘큰 재물'(시 37:16;전 5:9) 등을 뜻하며 ‘얌’은 바닷가에 사는 백성들을 뜻하는데 바로이어지는 구절 ‘열방의 재물’이 본문의 동의적 병행구임을 고려할 때 ‘하몬 얌’은 ‘이방인들의 재물’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포로 귀환시 이방의 재물이 지원될 것을 시사함과 동시에(스 1:6) 메시야의 통치가 시작되면 이방인의 소유물들이 시온, 곧 교회에게 바쳐짐을 예언한 것이 기도하다. 말하자면 땅의 재물이 기록한 용도에 사용되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6 허다한 약대, 미디안과 에바의 젊은 약대가 네 가운데 편만할 것이며 스바의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ㅇ에바 – 미디안의 장남으로(창 25:4) 아라비아 페트레아(Petrea)에 살았는데 그 이름을 따서 그가 살던 지역을 에바라 불렸다. 사해 동부 해안이었던 그곳은 미디안 땅의 일부이기도 했는데 이곳은 약대가 풍부했다.

ㅇ젊은 약대 – 아라비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대의 일종으로 그 특징은 그 등에 낱혹이 하나뿐이라는 사실이다(Webster). 먼저 언급된 ‘약대’는 등에 혹이 둘인 약대를 가리킨다.

ㅇ스바 – 성경에서 이곳은 솔로몬에게 많은 예물을 가지고 왔던 이방 영왕의 나라로 알려진 곳(황상 10:1;대하 9:1), 금과 향이 풍부한 곳으로 언급되어 있다(렘 6:20;겔 27:22). 오늘날의 에디오피아 아비시니아라는 것이 학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7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여지고 느바욧의 수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ㅇ게달 – 주로 아라비아 사막 남부 혹은 아리비아 페트레아 북부에 살았지만 그들은 거주지를 자주 옳겼으며 이러한 유목민에게 양이 풍서했으리라는 것은 얼마든지 상상할 수있다(21:16,17;42:11).

ㅇ느바욧 – 이스마엘 아들 중의 한(창 25:13;대상 1:29)로, 그 후손이 아리비아 페트레아에 거주했으며 주로 약탈, 구역 그리고 가축 사육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들의 귀한 소유인 가축도 하나님께 바쳐질 것이다.

8 저 구름 같이,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 오는 것 같이 날아 오는 자들이 누구뇨

ㅇ저 구름같이 – 이방인의 회심을 묘사함에 있어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본 이미지는 히브리서에서 읽을 수 있듯이 그 수의 많음에 갖오점이 있다 :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히 12:1). 그러나 동격으로 사용되고있는 ‘비둘기의 비행’은 수의 많음보다는 속도의 빠름에 그 강조점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Fausset). 이제 메시야의 통치가 시작 되면 많은 이방인들이 빠른 속도로 예루살렘, 곧 주의 교회로 들어올 것이다.

9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원방에서 네 자손과 그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니라

ㅇ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 다시스의 배들, 곧 무역선은 가장 먼 지역에까지 무역을 하는 배로유명했는데 그 배들이 먼저 이른다는 말은, 먼 곳에 있던 자들(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을 포함하여)조차 조속히 몰려들게 될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66:20).

ㅇ이름에 드리려 하며 – ‘이름’이란 어떤 존재의 중요한 속성 혹은 그자체를 상징하는 의미를 지닌다(창 25:19-26 주제 강해, ‘이름 짓기’ 참조). 여기서는 이방까지도 구원 대열에 포함시키신 구원의 하나님의 속성을 강조한다.

10 내가 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는 나의 은혜로 너를 긍휼히 여겼은즉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그 왕들이 너를 봉사할 것이며

ㅇ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 이는 포로 귀환시 회심한 이방인들도 예루살렘 성벽 재건 사역에 조력하게 될 것을 뜻함과 아울러 더 나아가서는 이방인들이 영적 예루살렘, 곧 교회를 섬기는 일에 협력할 것을,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특권에 동참할 것을 뜻한다.

11 네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들이 네게로 열방의 재물을 가져오며 그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ㅇ성문이 항상 열려 – 새로운 예물들과 개심자들을 영접하기 위하여 교회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26:2;행 14:27;계3:8). 평화의 왕 메시야의 완전한 통치가 실현되면 대적들의 위협조차 전혀 없으므로 시온의 그 문에는 침이자를 막기 위한 문짓장도 없을 것이다 :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계 21:25, 26).

ㅇ그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 원문 직역은 ‘그 왕들이 이끌려 올 것이라’이다. 여기 동사 ‘네후김’은 수동태로서 어떤 영향력 따위의 당기는 힘에 의하여 연약한 물체가 끌려가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동사이다. 아마도 이것은 세상의 권세잡은 세력들도 결국에는 메시야의 강한 통치력에 굴복하고 말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12 너를 섬기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파멸하리니 그 백성들은 반드시 진멸되리라

ㅇ개역 성경에는 생략되었으나 본절 원문 서두에는 원인 접속사 ‘키’가 놓여 있다. 바로앞절에 서술된 세상 나라의 왕들과 그 백성들이 교회에 굽록하게 되는 까닭은, 그렇지 않은 경우 저주받아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슥 14:17). 교회가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할 때 명심해야 할 점들 중의 하나는, 믿지 않으면 저주받아 멸망하고 말 것을 외쳐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불행히도 이 땅에서 복 받고 잘산다는 것이 복음 증거의 주용 골자인 양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복음을 자랑한다고 선포한 후에 저주 아래 있는 인간의 상황을 서술함으로써 복음 선포는 믿지 않는 자들로 하여금 무서운 저주와 파멸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에 주요 목적이 있음을 강조한 바있다(롬 1:16,18).

13 레바논의 영광 곧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이 함께 네게 이르러 내 거룩한 곳을 아름답게 할 것이며 내가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ㅇ레바논의 영광 … 아름답게 할 것이며 – 여기 열거된 나무들은 레바논 땅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대표적인 수목들이다(Fausset). 그 나무들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알려진 거룩한 곳, 곧 성전을 아름답게 한다는 말은 구체적인 의미에서 그 나무들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재목으로쓰인다는 말로이해할 수도 있다(Whybray). 그러나 메시야의 통치 이후 이방의 귀중한 물건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바쳐져서 성별되게 쓰일 것을 말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14 너를 괴롭게 하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 엎드리어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시온이라 하리라

ㅇ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 철저한 복중의 자세를 취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보다는 영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하며 그 완전한 성취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메시야의 통치 이후 많은 이방의 선택받은 자들이 교회로 몰려들 것이다. 그러나 교회를 거부하는, 곧 메시야의 통치를 거부하는 자들은 교회의 역사 속에 계속 존재하게 될 것이며 주의 재림 때에 이르러서야 그 대적들이 사라질 것이다. 한편 ‘시온’이 ‘여호와의 성읍’이라 불리운 것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는 성읍’이라는 뜻을 내포하고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 곧 하나님 나라라는 중요한 개념을 유추해볼 수 있다.

15 전에는 네가 버림을 입으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지나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로 영영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ㅇ네게로 지나는 자가 없었으나 – 바벧론의 침략으로 멸망하여 황폐화됨으로 말미암아 팔레스틴 땅은 사막의 대상 심지어 나그네도 그리로 지나가지 않을 정도가 되고 말았다.

16 네가 열방의 젖을 빨며 열왕의 유방을 빨고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ㅇ열방의 젖을 빨며 – 앞에서 거듭 언급된 바 이방 세계의 물적 후원과 조력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J.Wstts).

ㅇ네 구원자 … 알리라 – 이것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회심한 이방인 위에 임할 은총은 메시야를 통한 구속 사역에 근거하게 될 것을 나타낸다.

17 내가 금을 가져 놋을 대신 하며 은을 가져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철로 돌을 대신하며 화평을 세워 관원을 삼으며 의를 세워 감독을 삼으리니

ㅇ내가 금을 … 돌을 대신하며 – 여기서 이사야가 비유로 들고 있는 물질적 풍요는 솔로몬 시대의 그것을 연상시킨다(왕상 10:21-27). 본 구절의 해석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으나 다음 두 가지가 무난하겠다. (1) 새로이 회복될 시온의 영적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물질적 번영과 아름다움에 비유한 것이다. (2) 다가올 메시야의 시대에는 모든 것이 더 나은 것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교회 역사를 살펴볼 때 구원의 복음이 들어간 지역은 대체로 정치, 경제, 문화, 그 외 모든 분야에 있어서 발전하고 복된 곳이 되었다.

18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경내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칭할 것이라

ㅇ성벽 –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를 나타내는 표상으로 사용되었으며(삼상 25:16),

ㅇ성문(솨아르) – 영광의 왕이 들어가는 문(시 24:7), 혹은 양의 문(요 10:7)이라는 이미지와 연관시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영광의 왕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양이 된 성도들뿐이다.

19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취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20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영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마칠 것임이니라

ㅇ가장 밝은 발광체인 낮은 태양과 밤의 달이 그 백성에게 비췰 하나님 자신의 영광의 월등함 때문에 오히려 가리워질 것을 묘사하고 있다(30:26;계 21:23;22:5).

21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22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ㅇ그 작은 자가 천(千)을 이루겠고 – 본문은 다분히 종말론적 색채를 띠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예수의 겨자씨 비유및 누룩 비유와 연관시켜 보아도 무방하겠다(마 13:31-33). 겨자씨와 누룩은 처음에는 보잘것없이 작게 보이나 나중에는 엄청나게 큰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메시야의 초림 때에는 그가 핍박을 받음르로 교회라른 존재 자체의 존립성조차 위태한 듯이 보였으나, 성령을 통해 역사하시는 강력한 생명력으로 말미암아 급속히 확장되어 간다는 것이다.

<호학의 지혜연구소>

이사야 60~66장 주해와 적용

예루살렘의 영광된 미래

최 만 수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

이사야 60~66장은 이사야서의 세 번째 부분의 핵심을 이루는 장들이다. 이곳에서는 예루살렘/이스라엘의 영광된 미래를 보여 준다.

배경과 상황

1. 배경

이사야 60~66장은 바벨론 포로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이스라엘의 구원의 날에 대하여 들려준다.

기원전 701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입으로 예루살렘 성만 남은 비참한 역사적 상황을 경험한(참고 왕하 18:23)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불경건과 배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 올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적 은혜로 구원을 받으며, 종국적으로 하나님의 제사장의 나라가 될 것임을 선포한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기원전 586년에 패망하고 바벨론에서 포로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538년 바사의 고레스 왕의 칙령(대하 36:22~23; 스 1:1~4; 6:3~5)으로 5만에 이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미래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선포되었다.

2. 본문의 상황

한편 이사야 60~66장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현실은 어렵지만 반대로 미래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놀라운 시대일 것임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 백성이 기원전 536년에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예루살렘은 황폐하였고 성전은 무너져 있었다. 그런 여건 속에서 이스라엘은 고레스 왕이 내어 준 성전기물과 각종 예물들로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하였으나(스 3장) 주변의 시기(스 4장)와 경제적 어려운 여건들(학 1장)로 공사는 14년 동안 중단되었다.

그러나 521년 다리오 왕 때 학개와 스가랴를 통한 하나님의 독려하심으로 516년에 성전이 완공되었다(스 5:6~6:18). 하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 재건이 이루어졌음에도 여전히 이스라엘의 삶은 변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미리 바라본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에게 임하실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며, 그들의 미래를 하나님으로 인하여 바꾸어 놓길 기대하고 있음을 본문을 통해 보게 된다.

구조와 전개

이사야 60~66장은 이사야서 전체에서 마지막인 세 번째 부분에 속한다. 이사야서는 역사적인 상황의 변화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부분인 1~39장까지는 유다 왕 웃시야부터 시작하여 히스기야까지의 시대 곧 기원전 8세기를 묘사한다. 이 시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과 세상의 권력을 섬겼고 이로써 하나님의 징계/심판이 선언된다.

둘째 부분인 40~55장까지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바벨론 포로로 사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의 약속 곧 예루살렘 귀환이 선포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부분인 56~66장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사야 56~66장에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은 이제 모든 나라와 왕들을 향한 빛의 사명을 부여받게 된다. 이는 60~62장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A 이스라엘의 복에 동참하는 이방인들(56:1~8)

B 윤리적 의의 필요성(56:9~59:15상)

C 신적인 전사(59:15하~21)

D 세상의 빛으로서 예루살렘(60~62장)

C′ 신적인 전사(63:1~6)

B′ 윤리적 의의 필요성(63:7~64:12)

A′ 새 이스라엘(새 하늘과 새 땅)을 통한 이방인들 구원(65~66장)

그리고 60~66장은 D>C′>B′>A′의 계단식 전개를 통해 세상의 빛으로서 예루살렘/이스라엘의 새로운 미래/사명을 제시한다.

주해와 적용

1. 세상의 빛으로서 예루살렘(60~62장)

이사야 60~62장은 세상의 빛으로서 예루살렘 곧 새 예루살렘을 보여 준다. 이때 새 예루살렘은 어떤 모습일까?

선지자는 새 예루살렘을 먼저 순종적인 이방인들의 구심점이며 윤리적인 의를 실현하는 곳으로, 그리고 신적인 전사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선포한다. 그런 만큼 회복될 예루살렘(새 예루살렘)은 선지자가 바라보고 있는 예루살렘과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이는 그 구조(A-B-C)에서 잘 나타난다.

A 하나님의 빛의 임재(60장)

B 거룩한(즐거움과 기쁨) 도성으로서 변화(61장)

C 영광스러운 미래 혹은 새 이름 부여(62장)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루살렘의 미래는 하나님의 빛의 임재가 있고(A) 그 빛으로 인하여 즐거움과 기쁨으로 변화되며(B) 최종적으로 그에 걸맞은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될 것이다(C). 이는 마치 계단식으로 하나하나 차례로 이루어져서 그 최종적인 모습을 그리도록 하고 있다.

1) 예루살렘 미래의 영광(60장)

(1) 배경과 구조

예루살렘의 미래의 영광에 대한 서술이다. 이는 회복될 예루살렘과 함께 하는 것이 살 길임을 분명히 하는 동시에 하나님이 예루살렘에서 우주적인 통치를 하고 계심을 보여 준다. 60장은 예루살렘에 대한 회복/영광을 강조하는 교차 대구 구조다.

시적인 서론: 시온에서 빛(1~3절)

시온이 열방을 인도하다(4~9절)

예루살렘의 영광(10~12절)

열방이 시온을 찬양하다(13~14절)

여호와, 시온의 빛(15~22절)

(2) 본문 주해

① 시적인 서론(1~3절)

본문에서 빛을 강조하는 것은 56~59장(특히 59:9~10)에서의 어둠과 대조를 이룬다. 이전의 완전한 어두움만 있던 곳에서 이제는 빛이 비취는 변화가 있다. 이 빛은 시온에게 주어진다. 또한 그 빛은 여호와의 영광을 반영한다. 이전에 여호와의 종은 ‘이방의 빛’이었다(42:6; 49:6). 그리고 열방이 그 종이 높이 들림을 볼 것이다(52:13).

여기서 빛은 하나님의 현현이다. 이는 59:20에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와 연결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구속자로서 시온/예루살렘에 임하고 그리고 시온/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빛을 가지게 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1절에서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고 여호와의 말씀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2절에서 열방은 어두움에서 살아가고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을 발한다. 어둠은 이사야에서 억압과 죄를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참고 9:1 이하). 여기서 그 빛이 나타남으로 어둠이 갑작스럽게 사라지고 있다. 마치 태양이 떠오를 때 갑자기 어둠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이는 40:1~11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시작이 어떤 것임을 알린다.1

3절에서는 예루살렘이여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의 실천적 결과를 자세히 묘사한다. 이는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기 19:5~6의 시내 산 언약의 성취가 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가 됨을 선포한다. 3절에서 나라들과 왕들은 이스라엘/시온에 임한 하나님의 빛과 광명으로 나아올 것이다. 여기서 빛과 광명은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것이다. 이미 이사야 2:2~5에서 이사야가 바라본 것처럼, 모든 나라와 왕들이 시온/예루살렘에게로 밀물처럼 밀려올 것이다.

시온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고 온 땅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그러므로 시온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시온에 있음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빛과 광명이 온 땅에까지 퍼지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거룩한 빛과 광명을 본 자들이 어떻게 시온/예루살렘으로 나아오는가? 그리고 와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② 열방이 나아옴(4~9절)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힘이 되고 난 후에 열방들이 그리로 몰려온다. 그리고 그 열방의 몰려옴은 그의 제물을 바치는 것과 같다. 이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출애굽할 때 저들로부터 재물을 받아 나아오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4절은 49:18을 연상하게 한다.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이스라엘이 포로 후에 다시 돌아오는 장면을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돌아오는 장소가 원방으로 지적되어 전 세계적으로 돌아옴을 보여 준다. 이는 ‘예루살렘의 신적 변화’2의 시작이다.

5절에서 이스라엘의 돌아옴이 단순히 그들만의 잔치가 아님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의 돌아옴은 기쁜 일일 뿐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과 같다. 그에 대한 묘사는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에서처럼 믿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수준의 일이다. 그 이유는 열방의 부가 그들에게 함께 오기 때문이다.

“바다의 풍부” 즉 열방의 재물은 이사야 13~23장에서 두로와 시돈에서처럼 해양 무역을 통하여 부를 축적한 재물이 이스라엘에게 들어옴을 보여 준다. 그리고 열방의 재물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 그들 나라의 재물을 함께 가져올 것을 의미한다.

그뿐만 아니라 6절에서 남방으로 미디안과 에바에서 약대와 심지어 구애굽인 스바의 금과 유향까지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7절에서 게달의 양, 느바욧의 수양이 예루살렘으로 나아온다. 이는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와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가 연결되고 있다. 즉 열방이 예루살렘으로 나아오는 현상을 온 땅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여호와 하나님의 예배에 참석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예물을 하나님의 전에 드릴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으로서 최종적인 예배 장면이다.3

8~9절은 이방이 예루살렘으로 몰려옴을 계속해서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치 구름이 몰려오는 것과 같이 그리고 새가 보금자리로 날아가는 것과 같이 열방들이 예루살렘으로 나아옴을 표현한다. 이는 4절에서 네 아들들과 네 딸들과 함께 나아오면서 하나님께 은금으로 예물을 올리는 다시스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을 말한다.4

③ 예루살렘의 영광(10~12절)

열방이 예루살렘으로 나아오는 이유를 알게 된다. 1~3절에서 본 ‘하나님의 빛으로 변화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열방이 살 길이 없다.

10절에서 이방의 나라가 예루살렘의 성벽을 쌓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바사(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Artaxerxer I)의 칙령에 의하여 느헤미야가 성벽을 쌓기 시작하였음을 알려 준다. 11절에서 주야로 문을 닫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려와, 더 이상 성을 지켜야만 하는 군사적인 필요가 없어진다. 이는 하절에서 열방의 재물이 계속해서 들어오며 그리고 열왕들이 포로로 오는 상황과 연결된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 21:22~26에서 이런 이스라엘/예루살렘의 모습을 한 새 예루살렘을 알려 준다. 마지막으로 12절에서는 왜 열국이 재물을 가지고 나아오며, 왜 열왕들이 항복을 하러 오는가라는 물음에 답을 주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을 섬기지 않는 나라는 파멸하고 그 백성은 진멸 당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빛과 함께하면 생명과 연결되고, 그 빛에 거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를 맺게 된다는 사실이다.

④ 열방이 시온을 찬양하다(13~14절)

13~14절은 10~12절 이후에 주어지는 것으로 4~9절의 내용 즉 열방이 예루살렘에 나아옴을 설명한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중심인 예루살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나아온다. 13절에서 새로워진 성으로 보내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은 마치 솔로몬이 두로 왕 히람에게 레바논의 백향목을 요구하여 가지고 오는 것과 비교된다(왕상 5:10). 이로써 새로이 짓는 예루살렘 성이 이전의 성보다 나음을 보여 준다.

게다가 14절에 그곳으로 나아오는 자들이 모두 한결같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시온이라 하리라”고 찬양한다. 이는 1:26의 ‘의의 성읍, 신실한 성읍’이라고 칭함 받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될 것을 나타낸다.

⑤ 여호와, 시온의 빛(15~22절)

1~3절이 예루살렘에 임한 여호와의 빛을 묘사하였다면 15~22절은 여호와가 바로 시온의 빛임을 증거한다. 이 부분에서 여호와는 계속적으로 1인칭 대명사로 언급된다. 이 본문은 4개의 문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문단은 주제를 가지고 그에 대한 답변을 한다. 그 구조는 A-B-A′-B′의 평행을 이룬다.

A 여호와, 구원자(15~16절)

B 네 성벽이 구원이라 네 성문이 찬송이라(17~18절)

A′ 여호와가 네 빛이라(19~20절)

B′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다(21~22절)

먼저 15~16절(A)에서는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심을 나타내고 있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영영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될 것이다. ‘미움을 받던’ 그리고 ‘황량하던’ 땅이 ‘아름다움’과 ‘기쁨’이 충만한 곳으로 변화되는데,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시작된다(15절). 그리고 그 변화는 이스라엘에게 “열방의 젖을 빨며 열왕의 유방을 빨” 정도의 위치를 갖게 한다(16절). 이는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구원자’이기에 가능하다. 그 하나님의 복으로 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 풍성하게 될 것이다(신 33:19). 17~18절(B)에서는 여호와를 구원자로 모신 이스라엘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 “금을 가져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져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할 정도로 이전의 예루살렘의 영광을 회복하고 있다(17절).

열왕기상 10:21, 27에서 솔로몬은 예루살렘에서 금과 은이 넘쳐나는 부의 상징이었다. 그의 회복이 이루어질 것임을 보인다. 그리고 강포한 일이 횡행하고 황폐와 파멸의 현장이 되어 버렸던 도시가 구원이 이루어지고 찬송이 들리는 장소로 탈바꿈한다(18절).

19~20절(A′)은 여호와가 이스라엘/예루살렘의 빛임을 분명히 선언한다. 이는 15~16절과 평행을 이루어 ‘여호와가 구원자이신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라는 물음에 답한다. 그런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아니 그런 예루살렘은 어떤 곳일까? 먼저 그런 곳은 세상의 빛 곧 해와 달의 빛으로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빛’(오르)으로 살아가는 곳이다. 이를 이사야는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곳이다.5 이는 요한계시록에서 하늘의 예루살렘은 자연의 혹은 인공적인 그 어떠한 빛도 필요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빛으로 가득한 것과 같다(계 21:23, 25).

다른 말로 정리하면, 영원히 밤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즉 인생에서 슬픔의 날이 존재하지 않는 날이 도래함을 의미한다(20절).

21~22절(B′)에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천상의 존재와 같은 예루살렘은 어떤 곳일까?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일까?

17~18절에서 분명 그곳은 하나님의 구원과 찬송이 넘치는 곳이다. 그렇기에 21절에 그곳에 있는 백성을 모두 의로운 사람들이라고 선포한다. 그리고 그들이 비록 무리가 작다 할지라도 큰 무리를 그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것이 21절에서 “나의 손”이 상징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고 22절에 하나님의 (정한) 때에 이루어질 것임을 시사한다.

(3) 설교를 위한 적용

첫째, 변화된 예루살렘에게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빛이었다(1~3, 15~22절).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종류가 아닌 하나님에게서 주어지는 빛이어야 한다. 그 빛은 이미 예루살렘에 와 있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 구원 그리고 영광이 예루살렘을 변하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도하여야 할 것은 영적인 예루살렘/이스라엘로서 우리 안에 주어진 주의 빛을 발할 수 있길 기도해야 한다.

둘째, 열방/온 땅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주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4~9, 13~14절).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빛은 우리에게만 유익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듣기 원하는 자들에게 비추도록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열방을 구원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오늘날 우리를 회복하신다.

셋째, 하나님의 자녀는 복의 통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10~12절). 하나님의 빛, 영광을 가진 예루살렘에는 고통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을 체험하는 시간만이 남게 된다. 비록 그 힘든 과정이 여전히 현실적으로 남아 있다 할지라도, 그 자체가 은혜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은혜의 시간에 동참하는 자에게도 예루살렘에 임한 동일한 복이 주어지는 역사가 일어난다.

2) 즐거움과 기쁨의 도성으로서 예루살렘(61장)

(1) 배경과 구조

이사야 60장이 회복될 예루살렘에 임한 ‘하나님의 빛’을 나타내는 것이 주제였다면, 61장은 그 하나님의 빛을 발하는 예루살렘이 즐거움과 기쁨으로 변할 것임을 보여 준다.

그러면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할까? 어떻게 전개될까? 이는 단계적으로 계단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A 여호와의 은혜의 해가 선포됨(1~3절)

B 즐거움과 기쁨의 회복(4~9절)

C 여호와를 찬양함(10~11절)

즉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은혜의 해가 선포된다(A). 그리고 그 성읍에서 사라진 즐거움과 기쁨이 회복된다(B). 이와 같은 역사를 체험한 예루살렘 성읍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C).

이와 같은 구조의 이사야 61장을 하나의 단락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1절과 11절에서 “주 여호와”(아도나이 엘로힘) 표현의 사용을 통해 양괄식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본문 주해

①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선포(1~3절)

1~3절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고 있다. 이때 선포하는 주체/화자가 누구인가? 이는 40~55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종과 동일 인물로 보아진다.6 그는 자신을 1인칭으로 사용하여 나타내고 있으며, 다른 종의 노래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자신의 소명이 여호와에게서 부여 받은 것임을 알린다. 그리고 그의 소명은 다른 종의 노래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것(1절), 재 대신 화관을, 슬픔 대신 희락을, 근심 대신 찬송을 주시는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이는 10~11절에서 찬양의 노래가 따르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이 여호와의 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기 사역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누가복음 4:16~19은 회당에서 이사야의 이 본문(1~2상절)을 읽는 예수의 모습을 보여 준다. 여호와의 종은 자신에게 “주 여호와의 신(성령)”이 기름 부음을 받았음을 알린다.7

기름 부음은 소명을 위하여 구별되는 것과 또한 그 소명을 위하여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알리는 의식이다. 그래서 종은 기름 부음을 통해서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소명이 있음을 보여 준다(1절). 여기서 아름다운 소식은 무엇인가?

아름다운 소식 곧 종이 선포하여야 하는 것은 여호와의 은혜의 해였다

(2절). ‘은혜의 해’에는 마음이 상한 자가 고침을, 포로 된 자가 자유함을, 갇힌 자가 놓임을 받는다(레 25:10; 렘 34:8, 15, 17, 참고 겔 46:17). 게다가 이 해는 슬픈 자들에게 주어지는 신원의 해와 같다. 3절에서 이는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여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여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하는 사람을) 대신하시고 의의 나무”로 변하게 하는 역사가 일어난다. 이는 ‘가난’과 ‘슬픔’에 빠진 이스라엘/예루살렘을 향한 메시아의 사역과 같은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일 곧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볼 것이다.8

② 즐거움과 기쁨의 회복(4~9절)

종-메시아로 인한 은혜의 해가 선포되고 난 후에 예루살렘/이스라엘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이는 은혜의 해이면서 동시에 신원의 해가 될 것을 보여 준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대차 대조의 구조(A-A′ >B-B′ >C)를 통하여 나타난다.

A 이스라엘/예루살렘이 재건됨(4~5절)

B 여호와의 제사장/하나님의 봉사자로 불림(6절)

C 영영한 기쁨을 얻음(7절)

B′ 여호와의 영원한 언약이 세워짐(8절)

A′ 여호와의 복 받은 자손으로 인정됨(9절)

먼저 종-메시아가 선포한 은혜의 해는 예루살렘의 재건에 관한 것이다(A-A′). 포로로 인하여 버려졌던 황폐한 곳을 다시금 쌓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새 예루살렘 창조의 시작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다시금 거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이방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종이 될 것이다(5절). 그렇다면 재건된 예루살렘/이스라엘이 왜 은혜일까? 9절에서 설명한다. 재건됨은 잃어버렸던 혹은 잊혀져 버린 이름을 다시 찾음이었다. 이스라엘은 열방과 만민 가운데서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고 불리기 시작할 것이다.

이제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재건되고 여호와의 복 받은 자손이라 불리는 것은 아브라함의 언약(창 12:2~3)의 성취임을 보여 준다(B-B′).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봉사자’라고 일컫게 된다(6상절). 이는 열방과 만민이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에 들어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호와를 “우리의 하나님”으로 부르며 새 예루살렘/이스라엘의 영적인 권위를 인정할 것이다.9 그리고 저들은 여호와의 제사장과 하나님의 봉사자들을 자신의 재물과 영광으로 섬길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은 신실한 하나님의 언약의 결과로 주어질 것이다(8절). 분명 하나님은 공의를 사랑하고 불의의 강탈을 미워한다고 선언하신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이 제사장으로서 혹은 봉사자로서 열방의 재물과 영광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보상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전리품을 얻는 것’같이 그리고 ‘폭력적인 불의한 방법’을 동원하여 얻는 것이 아니다. 대신 하나님의 ‘영영한 언약’을 따라 얻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새 예루살렘은 즐거움과 기쁨에 넘치게 된다(C). 재건/회복 그리고 언약을 통하여 이제 이스라엘은 지난날의 바벨론 포로의 수치에 대한 두 배의 보상을 땅(고토)의 분깃과 “즐거움”으로 받게 된다(비교 40:2). 여기서 ‘땅의 분깃’은 예루살렘의 얻음을 지칭한다. 이때 두 배의 배상은 단순히 땅을 잃었다가 찾음만이 아니라 그 기쁨의 배가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③ 여호와를 찬양함(10~11절)

이제 종은 여호와를 찬양할 일만 남았다. 여호와를 찬양함은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신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은 왜 여호와를 찬양할 수밖에 없는가?

10절에서 새 예루살렘은 크게 기뻐한다. 이는 마치 구원과 의로 단장한 신랑과 신부와 같은 즐거움이 언약의 하나님 앞에 선 자신의 모습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결과인 하나님의 의가 주어지기(11절) 때문이다. 땅과 동산이 싹을 움트게 하여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같이 하나님의 의는 구원, 즉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역사를 이룰 것이다.10 그리고 열방은 그 일의 증인이 될 것이다.

(3) 설교를 위한 적용

첫째,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자.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은혜의 해를 선포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어두움에서 빛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나아왔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역시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선포하여야 할 것인가?

둘째, 여호와의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봉사자가 되자. 출애굽기 19:5, 6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열방의 제사장으로 부르셨다. 본문은 우리의 이웃들인 열방과 만민들까지 우리를 여호와의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봉사자로 높일 것이라고 말한다. 갈라디아서 2:20에 바울은 우리 안에 사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언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인가?

셋째, 영영한 기쁨이 되시는 예수를 기대하자. 회복된 예루살렘/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기쁨을 주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금 세움을 입을 때, 삶의 현장에서 받은 고통과 고난에 대한 ‘갑절의 보상’을 약속받았다. 하나님의 약속인 ‘갑절의 보상’이 우리를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이끌어 간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은 무엇일까? 예수 그 이름이 아닐까?

3) 새 예루살렘, 새 이름과 영광스러운 미래(62장)

(1) 배경과 구조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빛의 사명을 받은 이스라엘/예루살렘에게 영광스러운 미래가 펼쳐진다.

주전 586년에 완전히 파괴되고 뿌리째 뽑혀진 예루살렘이 다시금 회복되고 재건된 후 ‘다가올 미래’는 어떨까에 대하여 62장은 말한다. 이는 다음의 평행 구조(A>B-A′>B)를 통해 명확히 나타난다.

A (여호와가) 예루살렘/시온에게 새 이름(헵시바와 라)을 부여하심(1~5절)

B (사람들이) 예루살렘/시온을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의 구속한 자라 부름(10~12절)

A′ (여호와가) 예루살렘/시온을 위해 파수꾼을 세움(6~9절)

B (사람들이) 예루살렘/시온을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의 구속한 자라 부름(10~12절)

먼저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예루살렘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실 것이다(A). 그리고 그 새 이름에 걸맞은 보장/안전을 약속하여 주신다(A′). 여기서 A와 A′는 모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게 행하시는 주체로 나타난다.

그러고 난 후 B는 하나님의 행동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이스라엘을 부르는 형식(calling-form)이다. 특히 10~12절(B)의 역할이 단순히 6~9절 이후에 연이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1~5절(A)과 6~9절(B) 모두에게 그 결과로서 주어진다고 볼 수 있다.

(2) 본문 주해

① 여호와가 예루살렘에게 새 이름을 부여하심(1~5절)

하나님은 예루살렘/시온에게 의와 공의를 세우실 것을 선포하신다(1절). 하나님은 예루살렘/시온의 영광스러운 날을 위하여 잠잠히 있을 수가 없다.11 하나님의 계획은 공개적으로 그리고 확실히 열방과 열왕이 보는 앞에서 이루어질 것이다(2절). 이는 예루살렘/시온의 새로워짐을 드러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부르실(“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에서 최종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그 새 이름은 “헵시바”와 “ 라”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름은 이미 여호사밧의 어머니 “이수바”(왕상 22:42)와 므낫세의 어머니 “헵시바”(왕하 22:1)에게 사용되었다.

사실 이미 북왕국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이혼한 상태와 같았고 남왕국 유다는 잠시지만 분리된(헤어진) 상태와 같았다. 이제 예루살렘/시온의 새 이름 ‘헵시바/

라’를 통하여 하나님과 결혼한 상태와 같아지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와 공의로 주어질 예루살렘/시온의 새 이름은 왜 중요한가? 새 이름 ‘헵시바/ 라’를 부여 받은 예루살렘/시온은 여호와의 손의 면류관이요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된다(3절). 이는 하나님의 권위를 부여 받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바벨론 포로 시대에 경험한 “버리운 자”의 지위와 “황무지”와 같은 존재에서 새로운 영광의 시대를 열어 가는 표식이 된다(4상절).또한 하나님의 신부와 같은 존재가 된다(5절). 이는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과 같이 하나님이 자신이 지은 예루살렘을 신부로 맞이하기에 가능하다. 특히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한다”에서 네 아들들은 ‘네 지은 자’로 번역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의 신부로 맞이함을 알 수 있다.

② 여호와의 맹세하심, 파수꾼을 세우심(6~9절)

하나님은 결혼식에서 그의 신부인 예루살렘/시온에 대한 자신의 맹세를 하여야 한다.

6절에서 여호와는 파수꾼을 세움으로 그의 맹세를 시작한다. 1절에서 하나님은 신랑으로서 잠잠히 있지 못하시는 것같이, 이번에는 파수꾼이 잠잠하지 못하게 하신다. 이는 파수꾼으로 하여금 잠을 자지 않고 지키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8절에서 그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다.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식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너의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으로 마시지 않게 할” 것이라는 맹세를 지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파수꾼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에서 예루살렘/시온이 찬송을 받을 때까지 일해야 한다(7절).

이것은 9절에서 놀랍게도 추수한 자 예루살렘/시온이 여호와를 찬송하는 시간이며, 이때는 포도주를 가지고 하나님의 성소에서 마실 수 있는, 즉 예배를 드리는 때까지다.

이는 이미 예루살렘/시온이 열방의 제사장으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시온에서 드리는 예배는 온 세상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과 연결되기에 그렇다.

③ 열방과 만민이 예루살렘/시온을 거룩한 자, 하나님의 구속한 자라 부름

(10~12절)

열방과 만민이 예루살렘/시온을 인정하게 된다. 출애굽기 19:5~6의 모세를 통해 주어진 언약의 성취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마치 예레미야에게 새 언약이 주어지는 것과 같다. 1~5절에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입에서 직접 주어지는 새 이름을 갖게 되고 하나님의 신부로서 새롭게 조명을 받게 된다. 열방이 예루살렘/시온을 인정하며 따라가게 된다. 이를 위하여 먼저 예루살렘/시온은 열방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길을 만든다(10절).

‘성문으로 나아가라’, ‘백성의 길을 예비하라’는 40:3과 57:14의 주어지는 길을 만들어 가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열방의 백성까지 포함하는 모두를 위한’ 길을 의미한다. 열방의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나부끼는 기를 보고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도성으로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방이 예루살렘에 올라오면, 하나님은 온 땅에 예루살렘에 임한 구원을 선포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반포하시되”(11절). 그리고 하나님의 반포/선포하심을 들어야 하는 대상은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의 입으로 하나님의 선포/반포가 행하여진다.

이때 반포의 내용은 예루살렘에게 하나님의 구원 즉 상급과 보응이 주어지고 있음이다. 2:2~4의 내용이 여기서 이루어지고 있다.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도가 흘러나오고 있음이다.

최종적으로 예루살렘/시온으로 올라오는 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루살렘의 정체성이 확인된다(12절). 예루살렘/시온은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의 구속하신 자”라고 칭송을 받게 된다. 이는 열방들이 ‘하나님의 찾은 바’ 된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공유하기 때문이다.12

(3) 설교를 위한 적용

첫째, 자신의 소중한 존재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신부된 자다. 하나님은 자신의 신부를 위하여 결코 쉬지 않으신다. 그리고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 게다가 이전의 잘못을 기억하시는 것이 아니라 장래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새 이름으로 불러 주신다.

둘째, 하나님의 파수꾼 되심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의 안전을 위해서 그리고 평화를 위해서 파수꾼을 세우셨다. 그 파수꾼은 잠을 자지 않고 소리를 높여서 원수가 다가오는 것을 경계하도록 돕는다. 그의 사역은 마치 하나님이 그의 신부를 위하여 일하는 것과 같다.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신다고 하셨다. 성령은 우리의 약함을 돕고 항상 깨어 있도록 돕는다. 마치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사랑하고 지키시는 것같이 성령 역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

셋째,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자. 거룩한 백성이란 헌신하는 백성이다. 주의 백성들이 돌아오도록 위험을 무릅쓰고 길을 만들고 하나님의 깃발을 들고 있는 모습은 헌신의 모범을 보여 준다(10절). 또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백성이 거룩한 백성이다. 지난 시간에 대한 보응은 하나님이 결정하신다.

마지막으로 겸손한 백성이 되자. 열방이 예루살렘을 높인다.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의 구속하신 자라.” 단지 이스라엘은 그 소리를 들을 뿐 말이 없다. 이제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는 이름이 우리의 평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2. 신적인 전사(63:1~6)

1) 배경과 구조

이사야 선지자는 60~62장에서 세상의 빛으로 거듭날 예루살렘/이스라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새롭게 나아갈 이스라엘/예루살렘을 이끌어 갈 거룩한/신적인 용사가 나타날 것을 알려 준다. 사실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의를 행할 능력이 없음이 56~59장에서 지적되었다.

그리고 59:15하~21에서 하나님만이 ‘의’를 행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선포했다. 그리고 60~62장에서 하나님의 인도로 예루살렘/이스라엘이 새롭게 되어 열방에게 하나님의 의의 빛을 비추게 되었다. 그렇다면 누가 이렇게 이스라엘을 인도할 것인가? 곧 신적인 용사가 그 일을 행할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용사가 나타나면 어두움의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게 된다. 그래서 신적 용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빛을 발하는 예루살렘/이스라엘에 참여하지 않는 자들에게 강력한 경고가 주어진다.

이스라엘의 대적을 상징하고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백성들을 상징하는 것은 ‘에돔’이다. 일차적으로 에돔은 이스라엘의 피로 맺은 형제였다(신 2:4; 23:7~8). 에돔의 조상인 에서는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의 형제였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에돔에 대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기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갔다(렘 49:7~22; 암 1:11~12; 옵 1~21; 말 1:2~5).13 에돔과 관련하여 이사야서에서 주어지는 예언은 네 번에 걸쳐서 나타난다(11:14; 21:11~12; 34:1~17; 63:1~6). 그리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점점 더 강력해진다.14

신적 전사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답(1~3절)

부가적인 설명(4~6절)

2) 본문 주해

(1) 신적 전사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답(1~3절)

1~3절에서는 신적 전사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답이 주어진다. 질문은 이사야를 통하여 두 번(1, 2절)에 걸쳐 묻는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여호와로부터 직접 두 번에 걸쳐(1하, 3절) 주어진다.

첫 번째 질문은 에돔에서 올라오는 신적 전사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다. “에돔에서 오며 홍의를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자가 누구뇨?” 이에 대한 답은 바로 그 올라오는 자의 입에서 나온다. ‘그는 내다’ 즉 의를 말하는 자요 자신의 능력으로 구원할 수 있는 자라고 한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의와 능력을 가진 자임을 보여 준다.

두 번째 질문은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으뇨?”로 그 전사의 의복이 붉게 물들었음에 대한 질문이다.

3절에서 그가 직접 심판을 행한 결과로 답변한다. 그의 심판은 ‘포도즙을 밟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런 심판은 요엘 3:13과 예례미야애가 1:15에서도 나타난다. 그 심판의 결과는 “그들의 선혈” 자국에서 분명히 지적된다. 그렇다면 전상의 심판 행위는 언제, 누가, 그리고 누구에게 행하여진 것인가?

(2) 신적 전사의 심판에 대한 부연 설명(4~6절)

신적 전사의 의복이 붉게 물들게 된 배경에 대한 부연 설명이 세 가지로 주어진다. 첫째, 신적 전사의 심판은 “원수 갚는 날”에 행하여졌다는 것이다(4절). 둘째, 아무도 도와주는 자가 없었기에 홀로 심판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심판은 스스로의 구원과 의를 행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이다(5절). 분명한 것은 그의 분이 그를 붙들었기에 1절에 나타난 그의 의가 행하여진 것이다. 셋째, 그의 심판의 진노는 만민 위에 이루어졌고 그들의 피가 땅에 쏟아지는 과정에서 의복이 붉게 물들었다고 한다.

3) 설교를 위한 적용: 주의 날을 대비하자

하나님의 사자 – 전사는 세상에 대한 분명한 심판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는 결코 불신의 세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아도 첫째, 그의 심판의 날은 다가온다. 둘째, 심판이 이루어지는 날에는 그 분이 직접 하실 것이다. 셋째, 그 심판의 날에는 결코 인정이나 사정을 보아 주는 것이 없이 철저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주의 심판의 날이 다가옴을 기억하여 주 앞에서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겠다.

3. 윤리적 의의 필요성(63:7~66:17)

1) 배경과 구조

63:1~6에서 새 예루살렘을 따르지 않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분명히 선포했다. 그리고 이제 63:7~66:17까지 이스라엘/예루살렘의 변화된 모습, 즉 윤리적인 의의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A 찬양과 기도(63:7~64:12)

B 심판과 구원(65:1~16)

C 새 하늘과 새 땅(65:17~65:25)

B′ 심판과 희망(66:1~17)

[A′ 찬양과 기도(63:7~64:11)]

63:7~66:17에서 윤리적인 의의 필요성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새 예루살렘/이스라엘에게 주어질 새로운 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의가 실천되는 것이다. 먼저 이사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찬양한다(A). 그 후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주어진 것을 환기시킨다(B-B′). 그런 다음 하나님의 의가 실천되는 나라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

2) 본문 주해

(1) 찬양과 (탄식)기도(63:7~64:12)

63:7~64:12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찬양함(63:7~14)과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하심을 구함(63:15~64:12)으로 대별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버지셨다(63:16; 64:8).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계속 주어졌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지난 시간 속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행하여졌던 죄를 기억하고 탄식한다. 예루살렘/이스라엘은 반복적으로 하나님에게 반역하였다.

이와 같은 이유들로 이사야는 시편 44편과 74편에서도 사용된 ‘공동체 탄식’을 사용한다.

특별히 “(우리의) 죄를 영영히 기억지 마옵소서”(64:9)라는 시구는 공동체 탄식시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2)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찬양(63:7~14)

7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제까지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의 집’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언약적 은혜를 찬양한다. 8절에서 그 이유가 하나님이 언약을 베푸시고 구원자가 되셨기 때문임을 밝힌다. 이것은 모든 환난에 함께 하신 이가 하나님이셨고, 또한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 그가 구원하셨기 때문이다(9절).

하지만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반역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셨다고 아파한다(10절).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이 과거에 모세와 함께 하심과 같이 현재의 이스라엘에게도 여전히 있었음(11~13절)과 여호와의 성령이 동행함으로 구원된 것을 찬양한다(14절).

(3) 은혜와 용서를 탄원함(63:15~64:12)

반면에 이사야는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하심을 탄원하고 있다. 여기서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께 직접적으로 간청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리고 그 탄원시 형식에 따라서 불평/탄식(63:15~19)-간청(64:1~4)-죄 고백(64:5~7)-재간청(64:8~12)으로 구성되어 있다.15

① 불평/탄식(63:15~19)

이사야 선지자는 먼저 하나님을 향한 불평(cry)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실 수 있고 알 수 있는 ‘하늘’이라는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 계신데도 이스라엘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토로한다(15절). 이렇게 이사야가 불평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사야가 불평하는 이유는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16절). ‘아버지’는 구속자의 다른 이름이라고 본다. 구약에서는 ‘신적 아버지’로서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사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의 아들로 세우심을 확신한다(1:1~2; 43:6; 45:11; 63:16; 64:8).16

그러면 무엇을 아버지이신 하나님에게 불평/탄식하고 있는가? 그 불평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길을 떠나게 하셨다(17절).

둘째, 주의 거룩한 성소가 대적에 의하여 유린당했다(18절).

셋째,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19절).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것은 주의 이름을 칭하지 못하는 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의 자격을 잃고 이방인과 같이 지내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히브리어 번역본).17

② 간청(64:1~4)

과거의 처량한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을 향하여 탄식하던 이사야/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여 달라고 간청(petition)한다. 이는 과거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당시와 비슷한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경험할 수 있도록 간청하는 것이다.18 이스라엘의 간구는 하나님께서 직접적인 나타나심을 통해 이스라엘의 문제에 개입하시길 원하는 것이다(1~4절). 마치 숨어 계신 것 같은 하나님에게 그만 나오셔서 그들을 도와 달라고 간구한다(1절).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길 기대하는가?

A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셔서(1절)

B 주의 앞에서 (대적들을) 진동하게 하소서(2절)

A′ 주께서 강림하사(3상절)

B′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게 하소서(3하절)

C 주께서 자기를 앙망한 자를 위하여 일하심을 알리소서(4절)

이들의 간구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원하는 것이다(A-A′). 하늘에 숨어 계신 것같이 있지 마시고 이제 그만 하늘이란 커튼을 열어젖히고 나오소서라고 부르짖었다(1, 3절). 그리고 그 부르짖음은 현재와 과거에 있는 그들의 대적들 곧 주의 대적-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니 그들의 대적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것이다-이 완전히 무너짐을 요청하는 것이었다(2, 3하절). 그리고 이와 같은 일의 결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임과 주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일하심을 열방들이 알게 하도록 하라고 간청하고 있다.

③ 죄 고백(64:5~7)

탄식과 간구를 올리고 난 후에 이사야/이스라엘은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64:1~4까지 주체인 하나님을 2인칭(개역한글에는 ‘주’)으로 사용하였지만, 이곳에서는 1인칭 복수(우리)가 그 주체에 연합하는 모습이다. 이는 이스라엘(공동체)이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는 내용임을 알게 한다.19 죄의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에게 간구하는 것이 모순된 모습이란 것을 알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런 죄의 고백이 6절의 “우리는 다”라는 표현의 반복을 통하여 여호와의 종의 고백과 연결되고 있다(53:6).

이사야가 말하는 공동체의 죄 고백은 무엇에 대한 것인가? 이는 이사야와 그의 백성들의 제의적 부정함이었다.

6절에서 히브리어 ‘타메’는 의식적/제의적 부정함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참고 레 10~16장). 좀 더 정확히 7절에서 예배를 드리지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더구나 기도를 하지만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라는 표현이 이를 잘 나타낸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얼굴을 숨기는 방법밖에는 없을 정도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멀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더 이상 그들에게는 구원자가 아닌 ‘숨은 자’이고 ‘없는 존재’와 같은 자다.20

④ 재간청(64:8~12)

이제 이사야는 다시 한 번 이스라엘을 향하여 구원/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왜 이사야는 하나님에게 다시금 간구하는가?

첫째, 이사야는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라고 한다(8상절). 진흙과 토기장이 비유를 통하여 지금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지으신 결과임을 기억해 달라고 간청한다(8하절).

둘째,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그렇다고 한다(9절). 분명 현재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음을 받을 때는 “거룩한 성읍들”이었지만, 지금은 황폐한 상태로 전락하였음을 알리고 있다(10~11절). 게다가 우리라는 1인칭 복수 형태를 사용하여 더욱 분명히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전” 그리고 “우리의 즐거워하던 곳”을 지정하여 과거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거룩함이 지금은 사라진 상태를 강조한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간구는 63:15로 다시금 돌아가고 있다. 즉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 보옵소서.”

그리고 64:1에서처럼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소서’의 표현으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과 역사하심을 간청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는 마지막에 ‘주께서 억제하지 마시고 침묵하지 마소서’라고 한다(12절).

3) 설교를 위한 적용

첫째,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찬양하자(63:7~14). 항상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때가 오게 마련이다. 비록 돌아보면, 아픈 시간도 있고 괴로운 시간도 있겠지만, 주의 구원하심과 인도하심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주의 뜻은 지금의 시간에 지난날을 돌아보며 찬양하는 기쁨이 있길 원하시는 것이 아닐까?

둘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하심이라는 사실이다. 인생의 문제는 결코 우리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 우리가 행하는 것은 죄뿐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기억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님에게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자.

4. 새 하늘과 새 땅(65~66장)

1) 배경과 구조

이사야 65~66장은 선지자 이사야가 그의 비전 속에서 바라본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결과를 나타내는 장소다.21 이는 하나님의 심판(1~39장)과 구원(40~55장) 그리고 그 후의 삶(56~66장)으로 단계적으로 이루어져 가는 비전 중에서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한 65~66장은 실제적으로 40~66장까지의 회복의 메시지 안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56~66장의 내용은 회복의 메시지(40~55장)가 선포된 이후의 회복적인 삶에 대한 메시지로 이해될 수 있다. 분명 이와 같은 형태는 회복과 삶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 이후에 이루어질 삶을 묘사함으로써 선지자 이사야의 비전 속에서 바라볼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최종적으로 성취될 것을 알려 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이곳에서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물로서, 그리고 새로운 출애굽을 경험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예루살렘)의 모습이 어떠하여야 하는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22

게다가 이사야 56~66장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65~66장은 마치 전체 이사야서의 축소판처럼 심판과 회복이란 주제로 시작되는 다음과 같은 오중 구조(A-B-C-B′-A′)를 볼 수 있다.23

A 심판과 회복(65:1~7)

B 배교하는 종과 신실한 종(65:8~16)

C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65:17~25)

B′ 악인과 의인(66:1~14)

A′ 심판과 회복(66:15~24)

A-A′에서 전체 이사야서의 주제인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이란 주제가 전개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저버린 이스라엘의 심판과(이방의) 회복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의 결과다. B-B′는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 안에서 하나님을 배교하는 종으로서, 악인과 하나님을 섬기는 종으로서 의인의 결말이 드러난다. 그런 후에 C(65:17~25)는 A-A′와 B-B′의 이중적 샌드위치 구조에서 65~66장의 핵심을 이룬다.

다른 말로 설명을 한다면, 전체적으로는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결과이며, 하나님을 배교하는 악인에게 심판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한 종에게 회복으로서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고,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로서 ‘새 예루살렘’의 시대가 열릴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2) 본문 주해

(1) 심판과 회복(65:1~7)

앞 장에서 나온 선지자의 탄식에 대한 여호와의 답이 주어진다. 여호와는 악인을 심판하고 그를 섬기기는 백성은 구원하실 것이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자신을 부르는 자들에게 즉각적으로 응답하실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린다(1절). 64:7에서 ‘주께서 얼굴을 숨기셨기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다고 탄식하던 것에 대한 답이다. 심지어 주님은 자신을 부르지 않은 자에게까지도 자신을 보이셨다고 주장하신다. 문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있다. 2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들”이라고 이름 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패역한 백성이라고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이 우상숭배하며 희생을 드리는 행위를 하고 있었다(3절).

“동산에서 제사하며”는 1:29과 66:17에서 언급되는 것으로 우상숭배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벽돌 위에서 분향하며”는 하나님의 법에 따른 제단이 아닌 우상의 제단에서 예배하는 행위를 보여 준다.24

둘째, 가증한 행위를 행하고 있었다(4절). 그들의 가증한 행위는 죽은 자를 기념하는 것, 즉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밤을 지내’(얄리누)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제사에서는 금하는 돼지고기를 먹고 가증한-정결하지 못한-음식을 그릇에 담아 놓은 모습은 죽은 자를 위한 행위를 나타내며 이것은 모세의 율법에서 금하는 것이다(레 7:18).

셋째, 스스로 거룩하다고 교만히 행하였다(5절).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네 자리에 섰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면서 자신을 스스로 거룩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패역한 모습과 죄에 대하여 보응하겠다고 분명히 한다. 3절에서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고 정의하신다. 그리고 6절에서 ‘반드시 보응하겠다’고 하신다. 심지어 7절에 그들의 죄악과 열조의 죄악까지 보응할 것을 다짐하

신다.

(2) 배교하는 종과 신실한 종(65:8~16)

하나님의 백성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을 ‘배교하는 자들’ 속에서 구분하실 것이다.

그리고 주의 종들은 복을 받을 것이고 반역하는 자들에게는 저주가 주어질 것이다.

A 하나님의 종, 남은 자들(8절)

B 남은 자, 하나님의 종들에게 주어질 하나님의 복(9~10절)

A′ 배교하는 종들(11~12절)

B′ 배교하는 종들에게 주어질 운명(13~15절)

C 진리의 하나님을 찾으라(16절)

8절에서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도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있다. 화자인 여호와 하나님은 포도원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종들은 포도즙을 내는 좋은 포도송이에 비유한다.25 그들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리면서 심판의 멸망에서 살아남은 ‘남은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주시는 땅에서 거룩한 씨가 될 것이다(9절). 게다가 그들에게 주어진 땅의 경계는 가나안 땅 전체(샤론이라는 서쪽 해변의 풍요로운 평지에서부터 동쪽 여리고와 연결되는 아골의 메마른 골짜기까지)가 될 것이다.26

반면에 하나님을 배교하는 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

11~12절에서 남은 자들과 다른 자들의 존재가 분명히 언급된다. 그들은 여호와를 버린 배교한 자들로서27 하나님 대신에 ‘갓’과 ‘므나’ 같은 우상에게 음식과 포도주를 제물로 올리는 자들이다.28 또한 그들은 하나님을 고의적으로 찾지 않았음이 분명한다(12절). 이는 ‘내가 너를 불러도 너희가 대답하지 않았다’에서 잘 드러난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칼을 붙일 것” 같은 심판을 받을 자들

이다.

하나님을 배교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심판은 어떤 것인가? 이는 하나님의 종들 곧 남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복과 비교되어 주어진다(13~15절). 배교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종들과 반대의 삶을 살아간다.

첫째, 외적인 삶의 곤고함, 즉 먹을 것이 없는 흉년의 고통을 받을 것이다.

둘째, 마실 물이 없을 것이고 수치를 당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13절).

셋째, 내적으로 고통을 받아 마음이 상하여 울며 심령이 상하는 아픔을 가질 것이다(14절).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죽음이 다가올 것이다(15절).

결과적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을 16절에서 주고 있다.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사실이다. 분명 하나님을 찾는 자는 우상에게 예배하면서 자기 스스로에게 복을 구하는 자(15절)와는 다르다. 복은 우상이 아니라 진리의 하나님에게서 주어지고 복 있는 자의 맹세 역시 그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여야 한다. 그 이유는(16하절) 무엇인가? 왜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가? 바로 새로운 세상 곧 하나님이 이전의 죄를 다 용서하신 새로운 구원이 주어졌기 때문이다.29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앞에 숨겨졌음이니라.”

(3) 새 하늘과 새 땅(65:17~25)

이사야 56~66장의 핵심으로 65:17~25은 이사야 선지자의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을 보여 준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나타나고(17~23절), 하나님의 의가 실현되는 곳이다(24~25절).

1인칭 단수를 사용함으로써 본문의 주체가 여호와 하나님인 사실을 알 수 있다(A-A′). 결국 하나님의 창조하심은 하나님의 대답하심과 들으심으로 정리가 된다. 그리고 B(20~23절)와 B′(25절)에서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결과를 보여 준다. B와 B′에서는 인칭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사역의 결과로 주어진(주어질) 존재들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B에서 새로운 이스라엘 곧 하나님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존재로서 예루살렘을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루살렘은 25절에서 하나님의 성산으로 표현된다. 성산에서는 진정한 평화가 있다. 그곳의 동물들은 모두 난폭과 이기적인 모습에서 하나님 앞에서의 모습으로, 마치 창세기의 에덴의 생활로 돌아온 것과 같다.

A 새 하늘과 새 땅(17~19절)

B 새 예루살렘(20~23절)

A′ 하나님의 대답하심과 들으심(24절)

B′ 나(하나님)의 성산(25절)

① 하나님의 절대 주권(17~23절)

이사야 65:17~23은 하나님의 종들(남은 자)이 살아갈 곳에 세워질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이 강조된다. 여호와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직접 창조하셨고, 그와 같은 새 창조를 통하여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 그리고 그곳에 거하는 백성을 기쁨으로 만드셨다(17~19절). 그리고 이어지는 20~23절에서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기적적인 창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전개된다.

17~19절은 하나님의 유다와 예루살렘의 신적-왕적 통치를 잘 보여 준다. 이 부분은 하나님의 왕적 선포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17상)는 18절과 평행을 이루어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 그리고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는 일임을 알 수 있다. 하늘과 땅은 마음에서 기억되거나 생각나지 않아야 할 정도의 존재다(17하, 19하절). 게다가 “기쁨”과는 정반대되는 우는 소리와 (고통에서) 부르짖는 소리가 가득한 곳으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새 하늘과 새 땅’ 곧 새 예루살렘의 창조가 가져올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기뻐하고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곳이 되었다는 것이다(18상, 19하절). 17하절에서 옛적 하늘과 땅의 모습은 하나님의 새 창조에서는 다시는 기억되지 않는다.

게다가 19하절에서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제 예루살렘이 기쁨과 즐거움의 모습으로 변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새롭게 하는 기적적인 창조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65:20~23에서 이는 육체적인 회복(20절)과 땅의 회복(21~23절)으로 이루어질 것을 보여 준다. 20절에서 이사야는 미래/종말에 주어질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현재의 상처투성이인 육체가 치유되는 것을 묘사한다.30 그곳에서는 백 세까지 생명의 복을 누리는 일이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다.

비록 그곳에서 죽음이 존재할지라도 이제는 그 죽음이 왕 노릇하는 일이 없어진 생명의 평화가 넘친다. 이에 대하여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즉 “백 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 세 못 되어 죽는 자는 저주를 받은 것이리라.”31

반면에 65:21~23에서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약속의) 땅의 회복을 분명히 알리고 있다. 그곳에서는 일차적으로 다시는 전쟁이 없을 것임을 알린다. 평화가 정착/구축이 되어서 모두가 건축한다. 그리고 그들의 포도원을 다시금 재배하기 시작한다(21~22절). 이는 21절에서 건축한 가옥이 그대로 남아 있고 외국인(타인)이 건축한 집을 빼앗는 일도 없는 평화다. 그리고 자신이 지은 농작물인 포도원을 그대로 타인이 먹지 않고(재난으로 인한) 재배자인 자신이 먹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 이스라엘이 다시금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리/위치를 잡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주어진다.

22하~23하절에서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들(이스라엘)이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려질 것이며(내 백성, 내 택한 자), 그들이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으로 다시금 그들의 모습(정체성)을 찾게 되고 더불어 자자손손이 그와 같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지켜 갈 것이다.

②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24~25절)

하지만 24~25절에서는 하나님의 통치(응답하심과 들으심)가 하나님의 성산에서 이루어질 땅의 평화 곧 새로운 땅의 모습을 보여 준다. 24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소리를 들으시겠다고 선포한다. 이 들으심과 대답하심은 하나님의 신적 왕적 통치를 보여 준다. 특히 “부르기 전에” 그리고 “말을 마치기 전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실제적인 왕적 사역을 보여 준다.

그리고 25절에서 이스라엘의 삶의 자리 곧 그들이 하나님에게 부르짖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통치의 실현은 일차적으로 평화를 나타낸다. 동물들 사이의 평화는 하나의 은유로 전체 인간 세상에 놀라운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게다가 이와 같은 통치의 장소는 하나님의 거룩한 산(성산) 곧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질 것임을 알 수 있다(66:20).이와 같은 기적적인 하나님 자신의 임하심/통치하심이 24상절에 묘사되어 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24상절).

여기서 기억할 것은 하나님의 통치/임하심이 하나님 백성의 부르짖음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결정이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보좌인 하늘에서 직접적으로 이스라엘에 개입하심을 의미한다. 이는 이스라엘과의 사이에서 무너진 언약의 회복과 함께 그의 신적-왕적 통치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새로운 (메시아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분명 역대하 7:14에 다윗 계통의 왕의 통치에서는 하나님의 인간사 개입(응답하심)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겸비한 모습으로 서고 그리고 그들의 문제를 두고 부르짖음이 있을 때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메시아-신적 왕적 통치 안에서는 그의 백성들이 먼저 겸비할 조건과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어야 할 조건이 필요 없는 이상적인 세상 곧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의 문제를 미리 아시고 해결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응답으로서 나타날 메시아-신적 왕적 통치는 어떤 모습으로 시작될까(나타날까)? 이를 24절에서 설명한다. 공의와 성실 자체가 되어 버린 하나님(메시아)의 나라는 24절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백성은 말하고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말을 듣는다. 즉 하나님의 들으심은 하나님에게 드리는 그들의 예배에 임재(좌정)하고 계심을 의미한다(구원의 실재가 이루어졌음을 나타낸다).32 1:10 이하에서 묘사되는 이스라엘의 예배 행위-하나님을 향하여 올리는 말 곧 기도-는 하나님에게 열납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그 ‘말하는’ 백성의 신적-왕이심을 선포하신다. 이는 하나님 자신을 표현하는 1인칭 ‘내가’를 사용하는 데서 더욱 분명해진다. 그리고 그는 백성들의 말을 들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백성의 탄원이나 소원의 기도가 하나님의 들으심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가족으로서) 땅 위에서 ‘탄식과 소원’이 있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이끌림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33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신적-왕(메시아)적 통치의 결과가 25절에서 설명된다. 하나님의 통치(메시아의 통치)는 종말론적인/우주적인 그리고 완전한 평화의 시절이 다가옴을 알린다. 이전의 시대와 완전히 구별되는 새로운 시대다. 그리고 에덴의 회복이라고 볼 수 있다.34 이는 25절에서 그 바라봄의 ‘성취’를 강조한다. 결국 24~25절은 하나님의 통치 현장이 ‘의로운 메시아’ 왕국이며 그곳에서 메시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평화가 실현되는 것임을 재차 확인하고

있다.

(4) 악인과 의인(66:1~14)

65:8~16에서 배교하는 종과 신실한 종을 구분하였던 것같이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신다.

악인: 외식하는 자들-제의주의자들에 대한 책망(1~6절)

의인: 다시금 태어날 이스라엘(7~14절)

새 하늘과 새 땅-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예루살렘-에 최종적으로 들어갈 사람은 누구일까? 본문은 학개와 스가랴와 같은 선지자에서 나타나는 하나님 성전의 건축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비록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축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그의 신앙 공동체에 집중된다. 이사야 선지자는 바로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에 있는 외식하는 자에 대한 책망과 의인으로 구성될 장래의 이스라엘에 대하여 알려 준다.

① 악인: 제의주의자들에 대한 책망(1~6절)

이사야는 회복될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외식하는 자들-제의지상주의자들-에 대하여 책망한다. 이사야 1장에서 이스라엘의 죄는 외식이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신의 안녕과 번영을 위하여 우상을 섬겼던 자세는 이제 다시금 회복될 이스라엘에게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이에 대한 책망은 어떤 것인가?

가장 엄한 책망은 1~2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이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질 건물로서 성전에 머무는 신이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이는 솔로몬이 예루살렘을 위한 봉헌 기도(왕상 8:27)를 할 때 이미 인식되었고 신약 시대에 스데반 역시 이것을 선언하였다(행 7:48). 특히 2절에서 하나님은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다’고 역설적으로 선언하신다.

두 번째 책망은 하나님께서는 마음 없는 제물을 받지 않는다고 선언하신 것이다(3~4절). 마음이 따르지 않는 제물 드림을 살인, 개의 목을 꺾음, 돼지 피를 드림, 우상을 찬송함에 비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눈에는 가증한 것들이다. 이런 제물을 드리는 예배는 거짓 예배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자신의 방법에 따라서 행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4절).

세 번째 책망은 하나님이 제의주의자-외식하는 자-들을 “대적”이라고 부른 것에서 나타난다(5~6절). 사실 “여호와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과 “대적”이라고 부르는 자들을 하나님은 구분하신다. 둘 다 하나님의 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자로 나타난다.

왜 하나님은 책망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대적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떠는 자들”을 “미워하고,” “쫓아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대적”을 향하여 성전에서 예배하는 순간부터 진노/전쟁의 소리를 높이신다.

“훤화하는 소리가 … 성전에서부터 들리니”(6절).

② 의인: 다시금 태어날 이스라엘(7~14절)

그렇다면 누가 진정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의인인가? 그들은 어머니 예루살렘(7~9절)과 그녀를 사랑하는 자들이다(10~14절).

어머니 예루살렘은 풍요와 복된 존재다.35 예루살렘은 여인으로 의인화되어 나타난다. 이 여인은 임산부로서 해산의 진통이 오기도 전에 사내아기를 낳는 기이한 일을 행한다(7절).

분명 54:1에서 예루살렘을 잉태하지 못하고 해산의 진통을 경험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런 수치의 예루살렘이 갑자기 아이를 분만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선택해서, 그녀로 하여금 임신하게 하고 해산하게 하셨기 때문이다(9절).

게다가 여호와는 “네 하나님”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자신을 예루살렘의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어머니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녀와 함께 하나님의 기쁨과 평화/안전에 동참하는 존재다. 하나님으로부터 예루살렘의 기쁨을 함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자들은(“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10절) 이전에 예루살렘의 황폐함을 함께 슬퍼하였던 자들이다(시 137:5~6; 애 1:16; 2:11).

또한 그들은 어머니 예루살렘의 젖을 먹고, 그 품에서 지내며, 그녀에게서 위로를 얻는 자녀와 같은 모습이었고, 그녀의 영광의 풍성함을 즐거워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11~13절).36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연한 풀의 무성함과 같이 강하여지고, 여호와의 능력의 손을 체험하는 종들로 부름 받게 하셨다(14절).

(5) 심판과 회복(66:15~24)

패역자들(악인들)을 심판하심(15~17절)

열국에서 남은 자를 모으심(18~19절)

열방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제의공동체(20~22)

모든 혈육이 내 앞에서 경배하리라(23절)

패역자들을 심판하심(24절)

66:15~24은 전체 이사야서의 결론으로 그리고 65~66장의 결론으로서, 심판과 회복이라는 주제를 요약적으로 제시한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 곧 새 하늘과 새 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이는 크게 15~17, 24절에서 하나님에게 반역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18~23절에서 예루살렘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회복/구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15~17, 24절

하나님 앞에서 반역을 행한 자들은 먼저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의 상징인 불과 함께 강림하심을 보여 준다(15절).37

또한 그의 모습은 강한 능력을 지닌 신적 전사처럼 회오리바람과 같은 모양을 지닌 수레를 타고 칼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의 오심은 “혁혁한 위세”와 “맹렬한 화염”과 같아서(15절) 모든 혈육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이때 그의 대적은 17절에서 “스스로 거룩히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케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있는 자” 곧 우상을 숭배하는 자와 성경에서 금하는 “돼지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일을 하여 악을 행하는 자들이다(레 11:7, 29).

24절에서 그들은 죽임을 당하고 불에 태워진다.

② 18~23절

반면에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길 원하는 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제의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은혜가 주어진다. 마지막 때가 되면(“때가 이르면”) 하나님은 열방과 열족들 중에서 그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그의 선택받은 사람들을 모으신다(18절).

그리고 그들 중에서 그의 영광을 전하는 사신이 되게 한다(19절). 이는 매 월삭과 매 안식일에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기 위함이다(23절).

열방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 공동체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세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모든 열방이 하나님에게 예물을 드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20절). 주의 성산 시온에게까지 이제 나아올 수 있음을 알게 된다(2:1~4).

둘째, 열방들이 하나님의 제사장와 레위인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 곧 구원받는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21절).

그리고 셋째, 열방이 하나님의 주권과 의로운 통치가 행하여지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참여하게 되며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는 사실이다(22절).

3) 설교를 위한 적용

(1) 탕자의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65:1~7)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은 탕자의 아버지와 같은 모습을 보이신다. 그는 분명 자기 자녀의 모습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우상 숭배, 가증한 행위 그리고 교만한 모습까지 살피신다.

하지만 그들을 먼저 돌아보시고 그들에게 다가가신다. 탕자가 돌아오기만을 매일 밤이 맞도록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이제 우리의 어리석음과 위선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가자.

(2) 진리의 하나님을 찾자(65:8~16)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길 소망한다면, 진리의 하나님을 찾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 것의 화려함과 풍요로움에 정신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그와 같은 것들이 구원받은 자로서 우리의 삶에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때 복을 구하는 것과 맹세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시험하고 혹은 하나님을 조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오직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진리의 하나님을 만나고 또 그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3) 여호와 하나님의 왕적 통치를 선포하자(65:17~25)

선지자 이사야는 자신이 살던 주전 8세기의 예루살렘 상황에서-우상숭배와 불의가 행해지던 상황-하나님이 통치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꿈꾸고 있다.

이는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실현되는 나라다.

둘째, 하나님의 의가 모든 곳에서 실천되는 곳이다. 선지자의 꿈은 그의 선포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오늘도 이사야와 같은 주의 종들이 일어나서 주의 나라가 임하심과 하나님의 왕적 통치를 선포하자.

그리고 이사야가 그 말씀에 의지하여 살아간 것처럼 우리의 삶과 모습도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순종하며 살아가자.

그와 같이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왕적 통치와 의의 실현을 시작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4)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자(66:1~14)

진정과 신령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자.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자이시고 구원자이시다. 그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멋진 예배당 혹은 큰 예배당에서만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온 몸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향해 무릎을 꿇는 모든 장소에서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훌륭한 그리고 값진 예물이나 헌금보다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을 더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자.

(5) 주의 재림을 기대하자(66:15~24)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오실 것이다(히 9:28). 그때가 되면 하나님 앞에서 우상숭배와 거짓된/가증한 일을 행한 자들이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우리도 그날을 바라보고 항상 깨어서 스스로 삼가 조심하고 기도하는 생활을 증진하자.

또한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주의 재림을 같이 기뻐하며, 함께 주를 예배하는 날이 속히 오도록 힘쓰자.

최 만 수 고신대학교 신학과(B.A.), 백석대학교 기독신학대학원(M.Div), 호주 퀸즐랜드대학교(M.A., Ph.D.)에서 공부했으며, 지금은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로 있다.

1. Brevard S. Childs, Isaiah, The Old Testament Library (Louisville; London; Leiden: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1), 496.

2. 앞의 책, 496.

3. Allan Harman, Isaiah: A Covenant to be kept for the Sake of the Church, Focus on the Bible (Scotland: Christian Focus, 2005), 396.

4. 앞의 책, 395.

5. G. W. Grogan, “Isaiah” in Expositor’s Bible Commentary, vol. 6(12) (Grand Rapid: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86), 331은 해와 달의 빛과 하나님의 빛을 대조적으로 사용된 것에 주의하면서 이는 구원이 하나님의 창조물인 해와 달에게서가 아니라(창 1:14~19) 창조주 자신에게서 이루어질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본다.

6. 61:1~3의 화자의 정체에 대하여 많은 주장이 있어 왔다. 40~55장에 묘사된 ‘여호와의 종’ 혹은 포로 후기의 익명의 선지자 ‘제3의 이사야’ 혹은 에스라와 같은 사람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대하여는 John D. W. Watts, Isaiah 34~66, Word Biblical Commentary, vol. 25 (Waco; Texas: Word Books, 1987), 301~302을 참고하라. John N. Oswalt, Isaiah, The New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Zondervan, 2003), 649는 화자를 메시아의 사역과 연결하여 이해하기도 한다.

7. Barry G. Webb, The Message of Isaiah: On eargles’s wings, The Bible Speaks Today (Leicester, England; Downers Grove, Illinois: Inter Varsity Press, 1996), 233~234는 성령이 임한 것을 통하여 화자가 42:1에 나타나는 종의 모습과 11:1에 나타나는 메시아의 모습을 동시에 지닌 존재로 이해한다.

8. Oswalt, Isaiah, 650.

9. Jan L. Koole, Isaiah III/3: Isaiah 56~66, trans. Antont P. Runia, HCOT (Kampen, The Netherlands: Kok Pharos Publishing House, 1997), 283; J. Alec Motyer, The Prophecy of Isaiah: An Introduction & Commentary (Downers Grove, Illinois: InterVarsity Press, 1993), 505.

10. J. Alec Motyer, The Prophecy of Isaiah: An Introduction & Commentary (Downers Grove, Illinois: InterVarsity Press, 1993), 505.

11. 62:1의 ‘나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하는 문제는 전통적으로 ‘하나님’이라고 본다. 하지만 최근에는 ‘선지자’ 자신이라고 보기도 한다. Claus Westermann, Isaiah 40~66, Old Testament Library (London: SCM Press Ltd, 1969), 374. 하지만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반응-그들의 탄식과 아픔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결과로서 62장이 전개되고 있음을 기억한다면 이는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말인 것이 분명하다.

12. Oswalt, Isaiah, 657.

13. 앞의 책, 661.

14. Harman, Isaiah: A Covenant to be kept for the Sake of the Church, Focus on the Bible, 407.

15. Oswalt, Isaiah, 669~672.

16. 최만수, 「이사야의 하나님-우리의 하나님」(서울: 그리심, 2005), 106~121.

17. 히브리어 본문의 번역은 단순하지 않다. 영역본들에서는 이를 다르게 번역한다.

NIV “We are yours from of old; but you have not ruled over them.”

NAS “We have become like those over whom Thou has never ruled, like those who were not called by Thy name.”

NRS “We have long been like those whom you do not rule, like those not called by your name.”

18. Harman, Isaiah: A Covenant to be kept for the Sake of the Church, Focus on the Bible, 414.

19. Oswalt, Isaiah, 672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도와주심을 간구하지만 죄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상 그들이 하나님에게 간구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이는 모순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탄식시에서 하나님에게 간구한 후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은 일반적인 기도자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Christopher R. Seitz, “The Book of Isaiah 40~66,” in The New Interpreter’s Bible, vol. 6(12) (Nashville: Abingdon Press, 2001), 529.

20. Seitz, “The Book of Isaiah 40~66,” 530.

21. 이사야 65~66장을 이사야서의 결론 부분으로 볼 수 있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이사야서는 1장과 65~66장을 중심으로 하는 양괄식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연구는 이사야 1장과 65~66장이 양괄식 형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런 연구는 L. J. Liebreich “The Compilation of the Book of Isaiah”, JQR 46(1955~1956): 276~77; JQR 47(1956~1957): 126~127에서 시도되었다. 그리고 Marvin A. Sweeney, “Prophetic Exegesis in Isaiah 65~66”, in Writing and Reading the Scroll of Isaiah, Eds., C. C. Broyles & C. A. Evans (Leiden: Brill, 1997), 455~474와 David M. Carr, “Reading Isaiah from Beginning (Isaiah 1) to End (Isaiah 65~66): Multiple Modern Possibilities,” in New Vision of Isaiah, Eds., Roy F. Melugin & Marvin A. Sweeney, JSOT Sup 214 (Sheffield: JSOT Press, 1996), 188~218에서 잘 정리되어 있다.

22. 이는 향후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 도달할 때까지 하나님의 왕권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삶에 나타나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고 하겠다.

23. 이사야 65~66장을 소단락으로 나눌 때 가장 큰 어려움은 66장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Childs, Isaiah, 533~534가 정리한 것같이, 5~17절에 대한 편집 비평가들의 편집층에 대한 가정(설)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보수(복음주의) 학자들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여 준다. Young, The Book of Isaiah, Vol. III, 518~537은 1~4, 5~9, 10~14, 15~24절로 나누고, Oswalt, Isaiah, 694은 1~6, 7~14, 15~24절로, 그리고 Motyer, The Prophecy of Isaiah, 522~523은 1~4, 5~14, 15~17, 18~21, 22~24절로 나누어 생각한다.

24. “벽돌 위에서 분향”은 율법에 따른 제단이 아님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모세는 돌로 제단(분향단)을 쌓았다. 그러나 주전 2세기 전 바벨론에서는 벽돌로 건축하는 양식이 유행하여서 그런 말이 나온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Harman, Isaiah: A Covenant to be kept for the Sake of the Church, 418, n. 13.

25. 이사야 5:2, 4, 7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이스라엘을 나쁜 포도 열매에 비유하였다.

26. John N. Oswalt, The Book of Isaiah: Chapters 40~66,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chigan; Cambridge, U.K.: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8), 647.

27. Childs, Isaiah, 536. ‘하나님을 버린 자’(히브리어)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린 경우에 나타나는 표현으로 신명기 29:25(24); 예레미야 2:13, 17, 19; 다니엘 11:30 등에서 사용되었다.

28. 갓과 므나가 어떤 종류의 우상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갓과 므나라는 단어는 창세기 30:11과 여기에서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정체성을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본문에서 그들이 음식과 포도주와 관련 있는 우상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29. Koole, Isaiah III/3, 444.

30. Motyer, The Prophecy of Isaiah, 530은 이 구절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현재의 삶에 대한 느낌을 만들어 내고 있다(present life to create impressions of the life that is yet to come)고 본다. 칼뱅은 이 구절을 모든 아이들과 어른이 성숙한 나이에 이르기까지 이르게 될 것으로 해석을 시도한다. 그곳에서는 정말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자신의 생명을 충족시키는 정도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아무런 장애가 없음을 알 수 있다. Westermann, Isaiah 40~66, 409은 여기서 생명이란 충만하게 채워진(생명이 가득한) 생명으로 이해한다.

31. ESV에서는 “for the young man shall die a hundred years old, and the sinner a hundred years old shall be accused”라고 번역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Motyer의 주장처럼 하나의 모티브로 사용되어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존재하지도 않을(할 수도 없는) 죽음과 죄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32. Westermann, Isaiah 40~66, 410.

33. Koole, Isaiah III/3, 464.

34. Motyer, The Prophecy of Isaiah, 531.

35. Oswalt, The Book of Isaiah: Chapters 40~66, 674.

36. 이사야 60:16에서 이스라엘은 “열방의 젖을 빨며 열왕의 유방을 빨고,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고 하였지만 66:11에서는 그 관계가 역전되어 있다.

37. 구약에서 불은 나답과 아비후(레 10:1~2) 그리고 고라의 아들들(신 16:1~35)의 경우에서처럼 신적 심판을 상징한다.

[이사야 60장 강해 설교문] “빛을 발하는 신앙”(사6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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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사야 60장 강해 설교문 중에서 빛을 발하는 신앙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빛을 발하는 신앙”(사60:1-9)

♣명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발할 때 영육의 축복이 몰려온다.

♣목적: 내 안에 빛이 있을 때 세상을 밝히고 복이 몰려오게 된다.

하나님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밝혀줄 광명을 만드시기 전에 빛이 먼저 있었습니다. 빛이 있으라고 하셨을 때 빛이 생겼습니다. 이 빛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너무나 좋았습니다. 빛이 있기 전에는 모두가 어둠이었습니다. 빛이 생겨나고 낮과 밤이 구분되게 되었습니다.

(창 1:3-4)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하셨을 때에 빛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빛을 보시고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셨습니다. 빛을 낮이라고 하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이 빛을 창조하셨을 때는 첫째 날이었습니다. 그럼 이 빛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광명 체를 만들기 전에 빛이 있었습니다. 이 빛에 따라 낮의 사람들과 어둠의 사람들이 나누어지게 된 것입니다. 낮을 주관하는 태양과 밤을 주관하게 하는 달은 넷째 날에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광명체가 있기 전에 있었던 빛은 예수그리스도의 빛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 1:4-5)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함께 하셨던 분입니다. 이미 빛으로 예수님은 오셨으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빛이 어둠에 비치게 되었지만 어둠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빛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낮과 밤이 나뉘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있기 때문에 구원받은 백성들과 어둠의 백성들이 나뉘게 되는 것입니다.

(살전 5:4-6)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았기 때문에 어둠에 있지 않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도 도둑같이 임하지 않습니다. 나는 빛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빛과 어둠이 갈라졌습니다. 우리는 낮의 아들입니다. 어둠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잠을 자고 있으면 안 됩니다. 잠은 밤에 자는 것이지 낮에는 활동을 해야 합니다.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빛으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에 낮의 아들입니다. 열심히 활동하고 주님을 소망하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제 움츠리고 있었던 것을 일어나 어깨를 활짝 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나의 신앙이 육신의 일로 고민하면서 움츠리고 있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다시 소망을 갖고 일어나는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새해에 빛을 발하는 신앙이 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먼저는 빛을 발생하려면 내가 빛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빛이 없으면 무슨 빛이 발생되겠습니까? 매일같이 어둠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는 예수그리스도의 빛으로 충만해지시기 바랍니다.

(사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먼저는 일어나고 빛을 내라고 하십니다. 네 빛이 이르렀다고 말씀하시면서 여호와의 영광이 우리의 위에 임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빛을 발하라’ אור(오르 215 동사, 칼, 명령법, 여성, 2인칭, 단수) 밝아지다, 광채 나다, 영화롭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일어나는 것도 명령법을 써서 일어나라고 하셨는데 빛을 발하는 것도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빛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빛이 있는 자가 세상을 밝힐 수 있고 광채가 나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어둠으로 가득합니다. 이 세상을 밝힐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빛 밖에는 없습니다. 세례 요한도 이 빛을 증거 하러 이 땅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올해는 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증거 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어둠이 몰려올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빛을 주시고 임하시는 것입니다.

‘임하였느니라’ זרח(자라흐 2224 동사, 칼,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임하다, 비치다, 떠오르다, 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이미 내 위에 임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빛이 이미 내 안에 비쳤습니다. 이제 나는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세상으로 나가면 됩니다. 내 영혼과 육신에 여호와의 영광이 차고 넘쳤습니다. 세상을 새롭게 밝혀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빛을 가지고 세상을 밝힐 때에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사 60: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하나님께서 나에게 빛이 이미 임하여 준비시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완전하게 빛을 거부하고 타락의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은 나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빛을 통해 선택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세상이 캄캄함으로 변할 때에는 주님의 재림이 임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안에 주님의 빛이 임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덮을 것이며’ כסה(카사 3680 동사, 피엘,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덮다, 위장하다, 속이다, 숨기다, 라는 뜻입니다. 세상은 어둠으로 가득해지는데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숨기고 빛을 거부한 것들을 위장하여 믿는 것처럼 하지만 속에는 절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거짓을 아무리 덮으려고 해도 숨겨지지 않는 날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수치를 감추려고 애를 쓰지만 모두가 빛 가운데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계속해서 남을 속이고 위장하여 하나님도 거부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께 택함 받지 못한 백성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지금은 잘 살고 육적으로 풍성한 것 같지만 결국 마지막은 심판대 앞에 서서 지옥의 불 못의 판결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나타나리니’ ראה(라아 7200 동사, 닢알,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택하다, 주목하다, 나타내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어둠으로 가득할 때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에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 영광은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여 주신 영광입니다. 만세전에 나를 택하여 주목하시고 이 땅에서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도록 빛을 비추어 주심으로 세상에 나타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밤에 어둠이 짙게 깔릴 때에 빛이 더 밝아지는 것처럼 세상의 어둠이 짙을 때에 주님의 빛은 더욱더 진가를 나타내는 법입니다. 내 안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이 있기 때문에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에게 임하게 되는 것은 나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여호와의 영광의 빛이 나타나라고 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으로 나에게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영광은 한 번 임하고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나에게 있으며 세상에 나가 빛을 발할 수 있는 능력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나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이 임하여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세상에 나가면 빛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복음의 빛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세상의 재물이 빛을 보고 오게 됩니다.

어둠에 빛이 있으면 이 빛을 보고 오게 되어 있습니다. 바다에 배가 갈 길을 모르고 헤맬 때에 등대의 불빛을 보고 항구로 돌아오는 것처럼 세상의 어둠에 갈 길을 모르고 허둥대는 자들이 복음의 빛을 보고 주님 곁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이스라엘의 땅에 빛이 임하니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재물을 가지고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사 60:5)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재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몰려오는 것처럼 복음의 빛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도 이와 같이 재물의 복을 누리고 영적인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기쁜 빛을 내며’ נהר(나하르 5102 동사, 칼, 완료, 여성, 2인칭, 단수) 빛을 발하다, 비추다, 모여들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빛을 내는 자들에게 이방의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나에게 빛이 있으면 세상을 밝힐 수가 있습니다. 이 빛을 향해 사람들이 몰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재물을 가지고 온다고 했습니다. 재물은 육신의 복을 말하는 것도 있지만 힘과 능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들이 십자가 복음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둠에 있는 자들이 나에게 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능력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의 빛을 보고 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재물의 복을 받는 것도 내 능력이 있어서 아닙니다. 내 안에 이미 영광으로 임하신 주님의 보혈 때문에 재물의 복을 받고 세상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권세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내 안에 살아계시는 주님만을 높이고 영광을 돌리면 됩니다.

(사 60:6-7)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일 것이요 느바욧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제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올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성전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나올 것을 말씀합니다. 이 사람들이 빛으로 나올 때에 금과 유향과 제물을 가지고 나오게 됩니다.

‘네 가운데 가득할 것이며’ כסה(카사 3680 동사, 피엘, 미완료, 여성, 3인칭, 단수) 가득하다, 살이 찌다, 덮이다, 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가지고 온 낙타로 인해 여호와의 집이 가득 채워지는 것입니다. 이들이 가지고 온 제물을 통해 구약에서 제물로 살았던 제사장들이 복을 누린 것처럼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들이 복을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재물들로 가득 채워져서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덮이게 됩니다. 복음의 빛이 있는 자들은 세상의 재물로 육체가 살이 찌듯이 복을 누리고 영혼은 복음의 말씀으로 살이 찌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의 사람들이 재물을 가지고 오는데 너무나 많이 가지고 와서 낙타들이 온 예루살렘을 뒤덮듯이 많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은 한 번으로 끝나는 복이 아니라 계속해서 일어나게 됩니다. 제사장들은 제물을 바치는 자들이 끊어지지 않는 한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함으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것을 소홀히 할 때부터 제사장들도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먹고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제물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제사장들은 결국 인간적인 방법으로 제사를 드리게 되고 결국 제사장들도 재물에 눈이 밝아져 제사에는 관심 없고 제물에만 욕심을 부렸던 것입니다. 우리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제사장들입니다. 세상이 어둠으로 덮일 때에 많은 사람들은 제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러 모이게 됩니다. 바로 복음의 제사장으로서 이방인들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 이들이 가지고 온 제물을 하나님께서 주심으로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전파할 것이며’ בשר(바사르 1319 동사, 피엘, 미완료, 남성, 3인칭, 복수) 선포하다, 전파하다, 기쁜 소식으로 즐겁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방인들이 복음의 빛을 보고 몰려와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게 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파하고 선포하여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받은 자들은 함께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기쁜 소식은 자신이 왔던 온 세상으로 돌아가서 구석구석 전하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소식이 전파되는 것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증거 되고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들도 복음의 빛을 받았기 때문에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십자가 복음의 빛을 전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안에 십자가의 빛을 비추어 주기만 하면 많은 어둠에 있는 자들이 이 빛을 보고 주님께로 돌아와 십자가 복음의 빛을 받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롭게 하리라’ פאר(파아르 6286 동사, 피엘, 미완료, 공성, 1인칭, 단수) 영화롭게 하다, 영광을 나타내다, 아름답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복음의 빛을 보고 와서 여호와의 제단에 제물을 드리고 여호와의 성소를 영화롭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주님을 섬기지 못했던 자들이 십자가 복음의 빛을 보고 달려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성호를 부르며 자신들의 죄를 고백함으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아름답게 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신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영광을 돌리는데 절대 할 수 없는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몰려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할 수 없는 중에 달려 나온 자들입니다. 이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이며 자신들이 여호와의 성전에 온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오게 하셨습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성전에 온 것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성전에서 몰려와 여호와 하나님께 찬송과 경배를 올려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나를 통해 세상에 있던 사람들이 빛을 보고 교회로 달려와 주님을 경배하며 예배드리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빛을 세상에 비추기만 했더니 이 빛을 보고 하나님께서 몰려오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예배를 통해 올 한 해는 빛을 전파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빛을 전하여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자들이 몰려올 때에 나도 하나님께 능력과 재물과 영혼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빛을 나타내는 자는 하나님의 영화로움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안에 빛을 주심으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통해 교회로 몰려오게 하는 이유는 내 안에 이미 주님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빛이 있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영화로운 복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 60:9)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먼 곳에서 네 자손과 그들의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금과 은을 싣고 와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드리게 됩니다. 이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나의 전도를 통해 주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이들은 교회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영화롭게 하였음이라’ פאר(파아르 6286 동사, 피엘,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꾸미다, 장식하다, 살피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은 나의 영혼을 추악한 죄악 가운데서 건져내시고 생명으로 나오게 하셔서 새롭게 꾸며주셨습니다.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도 깔끔하게 장식하게 함으로 삶의 질을 높여주시고 낙심된 마음에 새 힘을 부어주심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항상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살펴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나를 통해 주님을 깨닫고 올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나를 먼저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셔서 나를 영화롭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고아가 아닙니다. 나에게는 든든한 하나님 아버지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계획을 세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계획을 세웠다고 해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지금 이 시작점에서 주님과 함께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먼저 내 안에 십자가의 복음의 빛을 간직하셔야 합니다. 이 빛이 소멸된다면 아무리 많은 계획을 세웠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빛이 임하였으니 일어나 발하라고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을 발하는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머릿속에 계획만 있고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 안에 빛이 있으니 이제는 일어나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의 원죄는 모두 해결되었으니 이제는 일어나 주님을 닮은 행동을 세상에 보여주어 많은 사람들이 나의 행동을 보고 주님께로 몰려오게 하면 나의 모든 문제들은 해결되는 것입니다. 올 한 해의 고민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고민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확장될까 고민을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반드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당장부터 세상에 빛을 발하는 신앙이 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룻기 1장 원어성경 복음 말씀]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룻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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