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Home » 에스겔 9장 강해 | [하루 한 장] 에스겔9장_이마에 표를 그리라 모든 답변

에스겔 9장 강해 | [하루 한 장] 에스겔9장_이마에 표를 그리라 모든 답변

당신은 주제를 찾고 있습니까 “에스겔 9장 강해 – [하루 한 장] 에스겔9장_이마에 표를 그리라“? 다음 카테고리의 웹사이트 ro.taphoamini.com 에서 귀하의 모든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https://ro.taphoamini.com/wiki. 바로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 홍융희 이(가) 작성한 기사에는 조회수 5,525회 및 좋아요 131개 개의 좋아요가 있습니다.

Table of Contents

에스겔 9장 강해 주제에 대한 동영상 보기

여기에서 이 주제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하십시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읽고 있는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세요!

d여기에서 [하루 한 장] 에스겔9장_이마에 표를 그리라 – 에스겔 9장 강해 주제에 대한 세부정보를 참조하세요

2019. 6. 26 (수) [하루 한 장]“이마에 표를 그리라” (겔9장)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에스겔 9장은 본격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심판이
선포되고 시작되는 장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만큼은
끝까지 건재할 것이라 믿었지만
하나님은 그 믿음까지도 철저히
부수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명백히 보여주십니다
건물은, 물건은, 장소는 결코
믿음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성전에만 있으면 거룩하다는
잘못된 믿음은 고착입니다
내 믿음이 정말 순수하게
하나님만 바라는가 그것이
끝 날에 받을 이마의 표입니다
심판의 순간에도 예수님은
믿음으로 탄식하는 자들에게
이마의 표를 주시고
심판하는 천사들이 그들을
손도 못 대게 하십니다
이 사랑을 바라봅시다
그 사랑을 품고 믿음으로 서서
주님만 기쁘시게 하는 삶을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에스겔 9장 강해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2019/07/03(수) “에스겔 9:1-11”/ 작성: 김대인

아무리 그래도 사랑의 하나님이 너무 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8장에서 이스라엘은 참혹하고 부끄러울 만큼 우상숭배에 빠져 …

+ 여기를 클릭

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5/3/2021

View: 8026

[스크랩] 에스겔 9장 주석

에스겔 9장 주석. =====9:1. 그가 또 큰 소리로…가라사대 – 이스라엘 백성의 가증한 우상 숭배와 강포에 대한. 내용에 이어 그들의 죄악상을 지적 …

+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Source: antiochministry.tistory.com

Date Published: 10/15/2021

View: 3316

히브리어 에스겔 9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히브리어 에스겔 9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와이크라 베오즈나이 콜 가돌 레모르 카레부 페쿠도트 하이르 웨이쉬 켈리 마쉬헤토 베야도 · 개역개정,1 …

+ 더 읽기

Source: tripol.tistory.com

Date Published: 4/1/2021

View: 8936

(에스겔9장)(겔9장1-11절)교회와 성도의 책임(에스겔 강해설교)

(겔9장1-11절)교회와 성도의 책임(에스겔 강해). ​. 우리는 저번시간 에스겔 8장에서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범죄들에 대한 하나님의 …

+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6/16/2021

View: 6009

[에스겔 9장 설교문] “이마에 표를 그리라”(겔9:1-8) – 복음 빵집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에스겔 9장 설교문 주에서 본문을 가지고 이마에 표를 그리라는 말씀을 올려보겠습니다.

+ 더 읽기

Source: cdk153.tistory.com

Date Published: 2/21/2022

View: 8572

말씀이 힘이다. 9월6일(금) 에스겔9장 – 주님의 은혜교회

9월6일(금) 에스겔9장. 1. 예루살렘을 심판하시고 남은자를 두시는 하나님. 1)에스겔은 환상에서 예루살렘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을 본다.

+ 더 읽기

Source: lordsgrace.co.kr

Date Published: 1/23/2022

View: 3021

에스겔 9장 강해 탄식하며 우는 자 – 천안UBF

에스겔 9장 강해 탄식하여 우는 자 에스겔 9장 1-에스겔 9장 11 요절 에스겔 9장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

+ 여기를 클릭

Source: cnubf.co.kr

Date Published: 1/4/2022

View: 8718

에스겔 9장. 성전에서부터 시작되는 긍휼이 없는 심판 – 벧샬롬교회

에스겔 9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7-09-06 … 에스겔은 환상에서 예루살렘을 관할하는 자들 즉, 성전을 지키는 보호자들(guardians)을 본다(1).

+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Source: www.bschurch.net

Date Published: 6/27/2021

View: 2697

에스겔 9:1-11 이마에 표하라

에스겔 8장에서는 성전 안에 우상숭배가 가득함을 보았습니다. … 듣지 아니하리라” 이런 우상숭배로 심판이 집행되는 장면이 에스겔서 9장입니다.

+ 여기에 표시

Source: evergreen17.80port.net

Date Published: 6/13/2021

View: 9733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에스겔 9장 강해

주제와 관련된 더 많은 사진을 참조하십시오 [하루 한 장] 에스겔9장_이마에 표를 그리라. 댓글에서 더 많은 관련 이미지를 보거나 필요한 경우 더 많은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하루 한 장] 에스겔9장_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루 한 장] 에스겔9장_이마에 표를 그리라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에스겔 9장 강해

  • Author: 홍융희
  • Views: 조회수 5,525회
  • Likes: 좋아요 131개
  • Date Published: 2019. 6. 25.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ao8yqlHEvq0

2019/07/03(수) “에스겔 9:1-11”/ 작성: 김대인

본문 : 에스겔 9:1-11

찬송 :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1~6)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벌하심은 가혹하다 생각했고, 이 현실의 어려움이 정말 억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랑의 하나님이 너무 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8장에서 이스라엘은 참혹하고 부끄러울 만큼 우상숭배에 빠져있었습니다. 백성의 장로들도, 성전의 제사장들도, 성문 어귀의 여인들도 모두 저마다의 우상숭배에 흠뻑 젖어있었습니다. 가증하고 악한 일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행하던 이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는 마땅했습니다. 자비도, 불쌍히 여김도 없이 철저하게 내리시는 분노의 하나님 음성은 죄악을 향하여 달려가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절규이기도 합니다.

1절 또 그가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이르시되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이 각기 죽이는 무기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섯 사람이 손에 무기를 잡고 하나님의 심판을 집결하는 이로 서게 됩니다. 각기 손에는 죽이는 무기를 든 파괴의 천사들입니다. 이들은 조직폭력배들처럼 몽둥이나 망치를 드는 수준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파멸할 정도의 강력한 무기를 든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거부당한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발생한 하나님의 분노, 슬픔, 좌절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는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습니다.

2절 내가 보니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부터 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죽이는 무기를 잡았고 그 중의 한 사람은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본문의 ‘그 중에’로 번역된 히브리어 ‘빼토캄’은 문자적인 의미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정확한 번역은 심판자 6명과 1명의 먹 그릇을 찬 사람으로 총 7명으로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가는 베옷은 가늘고 고운 흰색의 세마포를 의미하면서, 제사장의 의복이기도 합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이 먹 그릇을 찬 존재를 예수 그리스도로 보기도 하며, 탈무드는 가브리엘 천사로 보기도 합니다.

먹 그릇을 찬 존재를 예수 그리스도로 보는 이유는 그가 담당하는 사역에 있습니다. 살려야 할 사람들에게는 이마에 표를 그리게 했는데, 히브리어 알파벳의 가장 마지막인 22번째 글자 ‘타우’를 그렸습니다. 이 글자는 십자가를 의미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소유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먹 그릇을 든 이에게 내려진 명령은 탄식하며 울고 있는, 반드시 살아야만 하는 이들의 이마에 십자가 표시, 하나님의 소유라는 표시를 하라는 것입니다.

4~6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그들에 대하여 내 귀에 이르시되 너희는 그를 따라 성읍 중에 다니며 불쌍히 여기지 말며 긍휼을 베풀지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신실한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마에 표식을 그려주시며, 심판하는 천사들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표식을 받지 못한 이들은 예외 없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상 숭배자들, 부정하고 더러워진 사람들, 죄악에 둔감하고, 교만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 됨을 거부하고 늘 분열하고 갈등하는 이들, 예배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경멸하는 이들, 어지러운 세상을 바라보고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차디차게 굳어버린 마음의 사람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처럼 완악해져 가는 세상과 교회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구원을 베풀어주신다는 약속의 환상이기도 합니다.

가슴 아파하는 이들의 이마에 그려진 표식은 유월절 당시 어린 양의 피로 문설주와 인방에 그려 죽음의 사자가 넘어간 사건(출12:22-28)을 연상시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 심판 때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을 맞은 십사만 사천 명을 연상(계7:1-8;14:1)하게 합니다.

중보기도자 에스겔(7~11)

심판자들에게 내려진 두 번째 명령은 이마에 표식이 없음으로 심판받아 죽은 시신들을 우상숭배가 가득했던 성전에 채우라는 것입니다. 이미 8장에서부터 묘사되는 성전에서의 가증스러운 우상숭배는 더 이상 성전이 성전 될 수 없던 상황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금 유다가 멸망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모두 깨지고 어긋나버린 이상 성전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신앙은 무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심판하심으로 유다의 안일한 신앙에 경종을 울리게 하십니다. 잔혹한 학살, 하나님의 강한 진노와 심판이 내려지자 누구 하나 살아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에스겔의 기도가 시작됩니다.

8절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었는지라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아하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유다의 멸망을 바라보던 선지자 에스겔은 홀로 섰습니다. 죄악을 바라볼 때에도,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는 이때에도 선지자는 심적인 고독함과 절망감에 있습니다. 엎드려 부르짖었다는 의미는 얼굴을 떨어뜨릴 정도로 급속히 땅에 이마를 대고 무릎을 꿇었다는 말입니다. 인류 역사상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이들은 언제나 소수였습니다. 그 소수의 사람은 극심한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오직 말씀만을 붙들었고, 엎드려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세상이 타락해가는 속도는 너무도 빠르고, 나 하나로는 세상과 맞서기에 미약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선지자는 기도를 멈출 수 없습니다. 중보기도는 선지자들이 역사 속에서 감당해왔던 사명입니다. 아브라함도 멸망 받을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 중보기도함으로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창18). 아모스도 이스라엘에게 임할 재앙을 보자 그 재앙을 거둬달라고 중보기도 하였습니다(암7:1-6).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그는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이처럼 중보기도하는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이미 심판을 거두기엔 때가 너무 늦었다고 말씀하십니다.

9-10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나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여호와께서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들의 행위대로 그들의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

회개가 없는 사람과 민족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 죄는 너무나 무겁고 커서 이미 극에 달했습니다. 더 이상 차오를 수 없어 폭발해버린 것입니다. 땅은 피가 가득하였고, 성읍은 불법이 가득 찼습니다. 법과 규정은 무시되었고, 정의는 왜곡되었으며, 악이 득세하는 곳에서는 어떤 희망도 피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세상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마약과 성범죄 사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다는 소식들, 누가 누구를 죽이고 해치며, 회사와 조직을 이용해 공금을 횡령하며, 환경을 파괴하고, 전쟁을 일으키며, 갑질을 행하고, 사람과 짐승을 학대하는 일들은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의 죄가 이미 우리에게 심판이 되었습니다. 이 심판은 하나님이 무관심하시거나, 우리에게 무정하심으로 온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유다, 그리고 우리가 행한 대로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빛이 필요합니다. 오직 주님의 손길만이 우리의 굽은 허리를 펴주실 수 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담아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듯이, 그 말씀이 굽어진 우리 삶을 온전케 하셨듯이, 우리 역시 우리의 이웃과 우리의 주변에 하나님의 마음으로 손 내밀고 자유케 하는 율법 위에서 함께 새로워져야 합니다. 빛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적어도 이 땅에서 일어나는 참상을 보며 가슴 아픈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적정믿음입니다. 우리의 눈물을 보시고 하나님의 구원의 표가 우리의 이마에 새겨지게 될 것입니다. 이 아침이 하나님 외에 우상으로 군림하던 모든 것을 과감하게 버리며 잃었던 눈물을 회복하는 거룩하고 복된 아침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예루살렘 성전의 참상이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상 나의 내면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의지하였고, 사람을 더 신뢰하였으며, 내 이름 석 자 남기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악해져 가는 세상을 향해 혀는 찼었지만 가슴은 아프지 않았고, 세상의 아픔과 상처를 보며 아무런 공감 없이 내 배 채우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뜨겁던 눈물은 사라지고, 신앙의 기쁨도 없어진지 오래되어버린 나를 발견합니다. 주여, 나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말라버린 우리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을 허락하옵시고, 굳어진 내 심령에 하나님의 마음 심어주옵소서. 무너져가는 교회를 바라보며 기도하게 하옵시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바라보며 부르짖는 적정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성전안에서 일어나던 참혹한 우상숭배를 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 어떻게 우상으로 가득해지게 되었는지 묵상해봅시다.

2. 하나님의 분노, 슬픔, 좌절의 표상인 무기 든 여섯 사람을 보며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할지 상상해봅시다.

3. 탄식하며 우는 자들의 이마에 구원의 표를 주시는 주님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죄악에 물든 세상의 회복이 어디에서 시작되어야하는지 묵상해봅시다.

4. 중보기도자 에스겔처럼 우리도 중보기도자가 되어 기도제목들을 기록하고 오늘 하루 중보기도자로 살아갑시다.

(작성: 김대인)

[스크랩] 에스겔 9장 주석

에스겔 9장 주석

=====9:1

그가 또 큰 소리로…가라사대 – 이스라엘 백성의 가증한 우상 숭배와 강포에 대한

내용에 이어 그들의 죄악상을 지적하시는 장면이 본장에서도 주어진다. 다만 본 구절

에서는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 것이 이전 모습과 다르다. 히찌히(Hitzig)는 이를 하

나님의 ‘격렬하신 감정’을 뜻하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로 – ‘관할하는 자들'(* , 페쿠도트)이란 ‘파카

드'(* , 방문하다, 보살피다, 감독하다)란 동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는 사 10:3

에서는 ‘벌하시는’으로, 렘 11:23에서는 ‘벌할’로, 왕하 11:18에서는 ‘관리들’로, 본

서 44:11에서는 ‘맡을 것이며’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었다. 본 구절에서 이들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의 성읍인(시 48:1;87:3)

예루살렘 성읍을 맡아 감독하고 관할하는 천사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천사들의

이와 같은 임무 수행은 성도 각 사람들을 맡아 돌보는 장면에서(마 18:10;히 1:14)와

땅 네 모퉁이를 담당하고 있는 모습에서도(계 7:1-4) 엿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들

을 부르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읍의 악한 자들을 징벌하기 위하심이다. 하

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해서 불의한 자들을 징벌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압박하는

애굽인들을 멸망케 할 때(출 12:23, 29;시 78:49), 불의를 행한 다윗 왕을 징계하실

때(삼하 24:10-17), 유다 왕국을 침입한 앗수르 군대를 멸할 때(왕하 19:35-37), 세상

마지막 날 불의한 불신자들을 멸할 때(마 13:40-42) 등에 나타난다.

각기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 ‘살륙하는'(* , 마쉬헤토)은 문자적으

로 ‘파괴하는’, ‘부수는’의 뜻이다. 렘 51:20에서 이 말의 파생어가 ‘철퇴’로 번역되

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천사들이 가지고 있는 기계는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아니라 철저히 진멸시키는 도구임을 알 수 있다.

=====9:2

여섯 사람이…그 중에 한 사람은 – 이들은 외형적으로는 사람의 형상을 가졌으나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천사들로서 초자연적인 존재들이다(Cooke). 여

기서 문제시 되는 것은 한글 개역 성경처럼 베옷 입은 사람이 여섯 사람에 포함된 것

인지 또 다른 한 사람인지 본절 자체로는 판단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칼빈(Calvin)

은 여섯 사람으로 인정하고 본절을 주석했으나 NIV, RSV와 같은 영역 성경과 여러 학

자들은 일곱 사람으로 해석하고 있다(Plumtre, Bruce). 이는 ‘그들 중에’로 번역된 히

브리어 ‘베토캄'(* )이 ‘그들 중에’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로도 해석될 수

있는 데서 유추된 것이다. 또한 슥 4:10;계 1:16, 20;15:6 등을 근거로 볼 때 본 구절

에 언급된 천사는 일곱일 가능성이 크다. 일곱이 당시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완전수

를 뜻하는 바(창 2:2, 3;출 12:15), 이들이 온전한 자들로서 하나님의 임무를 수행하

는 자들로 왔음을 암시한다. 천사들이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하여 사람의 형상으

로 이 땅에 온 대표적인 실례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위하여 온 때이다(창

18:1-19:22).

북향한 윗문 길 – 이는 8:14에 언급된 ‘북문’의 길로서 8:3, 5에 언급된 것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이 길로 오는 것은 이곳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를 하

여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시켰던 사실과 연관이 있다.

가는 베옷을 입고 – ‘베옷’이란 고대 근동 지방에서 아마에서 짜낸 실로 만든 흰

천의 옷이다. 고대 애굽에서 그 천의 가공 기술이 발달해 많이 보급되었고 히브리인들

에게도 중요한 옷들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레 13:48, 52;삼하 6:14;잠 31:24). 특히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 이 옷은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이 만들어 입는 옷

이기도 하였다(출 28:39, 42). 이때 옷의 흰색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순결성, 무죄

의 뜻을 상징적으로 암시한다. 본 구절에서 한 사람이 베옷을 입은 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고 거룩한 존재로서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하는 자임을 암시한다. 이는

말세에 천사들이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일곱 대접의 재앙을 땅에 쏟거나 주님의 재림

시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주님을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계

15:6-16:1;19:14).

먹 그릇 – 이는 구약 성경 중 본장에서만 나오는 단어로(3, 11절) 애굽에서 유래된

외래어로 보인다(Wycliffe, Brownlee, Cooke). 이는 갈대 펜에 사용되는 잉크를 담기

위한 용기(容器)이다.

=====9:3

그룹에 머물러 있던…하나님의 영광이 – ‘그룹'(* , 케루브)이란 그 어원이

나 뜻이 불분명하다. 이는 아카디아어의 ‘중재하다’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기도

하며, ‘붙잡다’, ‘빈틈없이 지키다’의 뜻을 지닌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성경에서

이는 창 3:24에서부터 시작하여 많은 곳에서 언급되어 하나님의 영광, 보좌, 그분의

뜻의 수행 등과 관련하여 언급된다(삼하 22:11;시 99:1;사 37:16). 본서에서는 생물들

로도 표현된다(10:15, 20). 그리고 이는 구약 율법에서 하나님의 장막이나 성전의 지

성소에서 하나님의 임재 장소인 속죄소를 덮고 그 얼굴을 속죄소로 향하는 존재로 언

급되고 있다(출 25:17-22;왕상 6:29). 한편 본 구절에서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

광을 하나님 자체와 동일시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아름다우신 영광

으로 표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1:28).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 ‘성전 무지방’을 혹자는 백성의 뜰(바깥 뜰)로 들어가는

바깥 입구로 생각하나(Lange), 이는 성전 중앙 성소의 입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10:18, 19). 하나님의 영광 곧 하나님께서 친히 이곳에 임하신 것은 천사들로 하여금

우상 숭배하는 모든 가증한 자들을 징벌하도록 하시기 위해서일 뿐 아니라 당신께서

우상 숭배로 더렵혀진 이곳 성전을 떠나신다는 뜻을 분명히 나타내 보이시기 위함인

듯하다(10:18, 19:11:23, 24).

=====9:4

탄식하며 우는 자…표하라 – 이는 예루살렘 성읍에서 가증한 우상 숭배를 하는 일

반 사람들과는 달리 그 가증한 일을 애통해 하며 마음에 괴로움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표를 하라는 뜻이다. 그들이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표를 받을 수 있었던 것

은 예루살렘에서 다른 사람에 의해 행해지는 가증한 죄에 동참하지 않고 같은 이스라

엘 족속으로서 애통해 하며 통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표’

(* , 타우)란 히브리어 알파벱의 마지막 글자인 ‘타우'(* )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것은 고대에서 십자가와 같은 기호를 나타내는 낱말로도 사용되었는데 아마 이런 형태

의 표가 영적으로 인친것을 뜻하는 듯하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인치시는 것은 가인

의 생명을 보호하시기 위해 표하신 것(창 4:15)과 출애굽 전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이스라엘 백성의 문설주에 발라 죽음의 사자(천사)가 그 집을 넘어가 멸망치 않도록

한 것(출 12:13, 21-29), 말세에 하나님께서 다신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시므로 열

방에서 구원하시는 것(계 7:1-8) 등과 유사하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을 치시는 사건

은 하나님께서 항상 당신의 심판 속에서도 당신의 긍휼에 의해 보존된 자들을 지키시

고 보호하심을 엿보게 한다(6:8).

=====9:5

너희는 그 뒤를 좇아…쳐서 –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시는 순서가 구체적으로 묘

사되고 있다. 즉 하나님은 구원받을 백성들에게 인을 쳐서 심판을 면할 방도를 마련하

신 후에야 비로소 엄한 심판을 시행하신다. 이런 심판의 방법은 신약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마 24:29-31).

=====9:6

늙은 자와 젊은 자와…다 죽이되 – 이는 예루살렘 성읍의 남녀 노소를 가릴 것 없

이 다 무자비하게 죽이라는 뜻이다. 특히 ‘늙은 자’나 ‘처녀’, ‘어린 아이’등은 일반

적으로 연약한 자로 분류되어 긍휼과 도움을 받을 자들로 지칭되나 이들도 무자비한

죽음에 포함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가 어느 정도에 다다렸는지를 짐작케 한다.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 하나님의 성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

요하고 거룩하며 중심적인 곳이었다(민 2:2-34;5:3). 피의 보수를 당할 처지에 있는

자가 이곳에 도피할 경우 그가 이 곳에 있는 동안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왕상

1:50-53).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곳에서부터 살육을 시작할 것을 명하셨다. 이것은

가장 거룩하고 신성시되어야 할 이곳 성소에서 이스라엘 족속들이 우상을 만들어 놓고

숭배하였기 때문이다(8:3-16).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소를 떠나시고(8:6) 이

곳에서부터 살육이 자행되도록 허락하심으로 가장 불경하게 우상 숭배 죄를 범한 자부

터 징벌하셨다.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 이들은 8:16에 언급된 자들, 즉 ‘여호와의 전

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태양을 숭배하던 ‘이십 오 인’을 가리키는 것 같다

(Brownlee, Cooke). 이들이 가장 먼저 살육의 대상이 된 것은 이들이 이스라엘 사회의

높은 지위에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이고 선도(先導)해야 할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성소의 중심적인 위치 곧 성소의 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불경스럽게도 우상을 숭배하였기 때문이다.

=====9:7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처소 성전을

더럽히도록 허락하신 것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에서 우상 숭배함으로 그곳을

더럽혔으므로 그곳을 떠나시기로 결정하셨음을 강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8:3-16;10:18, 19). 특히 구약 율법 중 의식(儀式) 법에서 시체는 부정한 존재로 간

주되어졌다. 이것은 시체가 ‘죄의 삯’인 ‘사망'(롬 6:23)에 의한 결과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구약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임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은 죽은 다른 사

람의 시체로 더럽혀지지 않도록 주의가 요구되었다(레 21:1). 더욱이 대제사장은 부모

의 시체로도 더럽혀지지 않도록 해야만 했었다(레 21:11). 그런데 하나님께서 시체를

성전의 뜰에 채우게 하신 것은 이미 그곳을 버리시고 떠나실 것을 결정하신 것을 잘

반영해준다.

=====9:8

엎드리어 부르짖어…멸하려 하시나이까 – 본 구절은 에스겔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

성을 위해 중보 기도하는 모습이다. 본래 선지자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사역자로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이다. 이런 사명을 지닌 선지자는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보살피시는 그의 백성에 대해서 사랑과 돌봄의 자세도 가지고 있어야 한

다. 본절의 에스겔 선지자도 이런 마음 자세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이스라엘 백

성이 모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을 경우 남은 자까지 멸망받을 것을 염려하며 하

나님께 부르짖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에스겔의 중보 기도 자세는 롯을 위한 아

브라함의 중보 기도(창 18:22-33),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모세의 중보 기도(출

32:11-14, 31-33) 등을 생각케 한다. 한편 ‘남은 자’에 대해서는 5:3;6:8을 참조하라.

=====9:9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 ‘피’는 사람의 생명을 대표하는 것이다(레 17:11). 노아

시대에는 이 생명되는 피를 먹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이 피를 흘리게 하는 자는 하나님

이 대신 그 사람에게서 피를 흘리게 하심으로 보응하신다는 것이 규정되었다(창

9:4-6). 또한 구약 율법에서도 이 생명과 일체되는 피를 먹는 것이 의식법으로 금지되

었다(레 17:10-14).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본 구절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남을

해하는 불의가 편만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7:23;8:17).

그 성읍에 불법이 찼나니 – ‘불법'(* , 무테)이란 ‘뻗치다’ 또는 ‘굽다’를 뜻

하는 히브리어 동사 ‘나타'(* )에서 유래된 말로 ‘왜곡’, ‘그릇됨’ 등의 뜻을 갖

는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한 죄인으로서 하나님을 떠난 결과 그들의 타락

한 본성대로 불의한 일을 멋대로 행함을 보여준다.

여호와께서…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 8:12 주석을 참조하라.

=====9:10

내가 그들을 아껴 보지 아니하며…아니하고 – 5:11;7:4을 참조하라.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 이는 문자적으로는 ‘내가 그들의 행위를 그들

머리 위에 둘 것이다'(I will bring their conduct upon their heads, NASB)의 뜻이

다. 이는 7:3, 4의 경우처럼 사람이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죄에 대해 보응하

심으로 심판하신다는 히브리인들의 사고 방식에서 기인한다. 즉 본 구절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그대로 방치해 두시지 않고 그대로 그들 머리 위에

돌려 보내사 나타나게 하심으로 그 죄악대로 심판하신다는 뜻이다.

=====9:11

주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하였나이다 하더라 – 하나님의 사명을 위임받은 자가

그에게 부과된 명령에 따라 순종하여 일을 처리했음을 하나님께 보고하는 내용이다.

하나님의 사역자에게 있어서 순종은 중요한 실천 강령 중 하나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邪神)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삼상 15:22, 23)

고 말씀하셨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 대우인력 김진규

메모 :

히브리어 에스겔 9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반응형

와이크라 베오즈나이 콜 가돌 레모르 카레부 페쿠도트 하이르 웨이쉬 켈리 마쉬헤토 베야도

개역개정,1 또 그가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이르시되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이 각기 죽이는 무기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새번역,1 또 그가 큰소리로 외치시는데 그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렸다. “이 성읍을 벌할 사람들아, 각자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손에 들고, 가까이 나오너라.”

우리말성경,1 그리고 그분이 내가 듣는 데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손에 살상 무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아, 이 성읍에 대한 처벌이 다가오고 있다.”

가톨릭성경,1 그러고 나서 그분께서는 내가 듣는 앞에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이 도성의 징벌이 다가왔다. 저마다 파멸의 무기를 손에 들고 나와라.”

영어NIV,1 Then I heard him call out in a loud voice, “Bring the guards of the city here, each with a weapon in his hand.”

영어NASB,1 Then He cried out in my hearing with a loud voice saying, “Draw near, O executioners of the city, each with his destroying weapon in his hand.”

영어MSG,1 Then I heard him call out loudly, “Executioners, come! And bring your deadly weapons with you.”

영어NRSV,1 Then he cried in my hearing with a loud voice, saying, “Draw near, you executioners of the city, each with his destroying weapon in his hand.”

헬라어구약Septuagint,1 και ανεκραγεν εις τα ωτα μου φωνη μεγαλη λεγων ηγγικεν η εκδικησις της πολεως και εκαστος ειχεν τα σκευη της εξολεθρευσεως εν χειρι αυτου

라틴어Vulgate,1 et clamavit in auribus meis voce magna dicens adpropinquaverunt visitationes urbis et unusquisque vas interfectionis habet in manu sua

히브리어구약BHS,1 וַיִּקְרָא בְאָזְנַי קֹול גָּדֹול לֵאמֹר קָרְבוּ פְּקֻדֹּות הָעִיר וְאִישׁ כְּלִי מַשְׁחֵתֹו בְּיָדֹו׃

성 경: [겔9:1]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주제2: [예루살렘 거민의 학살]

󰃨 그가 또 큰 소리로…가라사대 – 이스라엘 백성의 가증한 우상 숭배와 강포에 대한 내용에 이어 그들의 죄악상을 지적하시는 장면이 본장에서도 주어진다. 다만 본 구절에서는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 것이 이전 모습과 다르다. 히찌히(Hitzig)는 이를 하나님의 ‘격렬하신 감정’을 뜻하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로 – ‘관할하는 자들'(*, 페쿠도트)이란 ‘파카드'(*, 방문하다, 보살피다, 감독하다)란 동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는 사 10:3에서는 ‘벌하시는’으로, 렘 11:23에서는 ‘벌할’로, 왕하 11:18에서는 ‘관리들’로, 본서 44:11에서는 ‘맡을 것이며’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었다. 본 구절에서 이들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의 성읍인(시 48:1;87:3) 예루살렘 성읍을 맡아 감독하고 관할하는 천사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천사들의 이와 같은 임무 수행은 성도 각 사람들을 맡아 돌보는 장면에서(마 18:10;히 1:14)와 땅 네 모퉁이를 담당하고 있는 모습에서도(계 7:1-4) 엿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부르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읍의 악한 자들을 징벌하기 위하심이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해서 불의한 자들을 징벌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압박하는 애굽인들을 멸망케 할 때(출 12:23, 29;시 78:49), 불의를 행한 다윗 왕을 징계하실 때(삼하 24:10-17), 유다 왕국을 침입한 앗수르 군대를 멸할 때(왕하 19:35-37), 세상 마지막 날 불의한 불신자들을 멸할 때(마 13:40-42) 등에 나타난다.

󰃨 각기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 ‘살륙하는'(*, 마쉬헤토)은 문자적으로 ‘파괴하는’, ‘부수는’의 뜻이다. 렘 51:20에서 이 말의 파생어가 ‘철퇴’로 번역되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천사들이 가지고 있는 기계는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아니라 철저히 진멸시키는 도구임을 알 수 있다.

웨힌네 쉿솨 아나쉼 바임 믿데레크 솨알 하엘욘 아쉘 마페네 차포나 웨이쉬 켈리 맢파초 베야도 웨이쉬 에하드 베토캄 라부쉬 받딤 웨케세트 핫소페르 베모트나우 와야보우 와야암두 에첼 미즈바 한네호쉐트

개역개정,2 내가 보니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부터 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죽이는 무기를 잡았고 그 중의 한 사람은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새번역,2 그러자 여섯 사람이 북쪽으로 향한 윗문 길에서 오는데, 각자가 부수는 연장을 손에 들고 있었으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모시 옷을 입고, 허리에는 서기관의 먹통을 차고 있었다. 그들이 들어와서 놋으로 만든 제단 곁에 섰다.

우리말성경,2 그런데 북쪽을 향해 있는 윗문 방향에서 여섯 사람이 각각 자기의 손에 자기의 살상 무기를 들고 오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베옷을 입었고 옆구리에는 필기구를 갖고 있었다. 그들이 들어와서 청동제단 옆에 섰다.

가톨릭성경,2 그러자 북쪽으로 난 윗대문 쪽에서 여섯 사람이 오는데, 저마다 파괴의 무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아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는 서기관 필갑을 차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와서 구리 제단 곁에 섰다.

영어NIV,2 And I saw six men coming from the direction of the upper gate, which faces north, each with a deadly weapon in his hand. With them was a man clothed in linen who had a writing kit at his side. They came in and stood beside the bronze altar.

영어NASB,2 And behold, six men came from the direction of the upper gate which faces north, each with his shattering weapon in his hand; and among them was a certain man clothed in linen with a writing case at his loins. And they went in and stood beside the bronze altar.

영어MSG,2 Six men came down the road from the upper gate that faces north, each carrying his lethal weapon. With them was a man dressed in linen with a writing case slung from his shoulder. They entered and stood by the bronze altar.

영어NRSV,2 And six men came from the direction of the upper gate, which faces north, each with his weapon for slaughter in his hand; among them was a man clothed in linen, with a writing case at his side. They went in and stood beside the bronze altar.

헬라어구약Septuagint,2 και ιδου εξ ανδρες ηρχοντο απο της οδου της πυλης της υψηλης της βλεπουσης προς βορραν και εκαστου πελυξ εν τη χειρι αυτου και εις ανηρ εν μεσω αυτων ενδεδυκως ποδηρη και ζωνη σαπφειρου επι της οσφυος αυτου και εισηλθοσαν και εστησαν εχομενοι του θυσιαστηριου του χαλκου

라틴어Vulgate,2 et ecce sex viri veniebant de via portae superioris quae respicit ad aquilonem et uniuscuiusque vas interitus in manu eius vir quoque unus in medio eorum vestitus lineis et atramentarium scriptoris ad renes eius et ingressi sunt et steterunt iuxta altare aereum

히브리어구약BHS,2 וְהִנֵּה שִׁשָּׁה אֲנָשִׁים בָּאִים מִדֶּרֶךְ־שַׁעַר הָעֶלְיֹון אֲשֶׁר מָפְנֶה צָפֹונָה וְאִישׁ כְּלִי מַפָּצֹו בְּיָדֹו וְאִישׁ־אֶחָד בְּתֹוכָם לָבֻשׁ בַּדִּים וְקֶסֶת הַסֹּפֵר בְּמָתְנָיו וַיָּבֹאוּ וַיַּעַמְדוּ אֵצֶל מִזְבַּח הַנְּחֹשֶׁת׃

성 경: [겔9:2]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주제2: [예루살렘 거민의 학살]

󰃨 여섯 사람이…그 중에 한 사람은 – 이들은 외형적으로는 사람의 형상을 가졌으나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천사들로서 초자연적인 존재들이다(Cooke). 여기서 문제시 되는 것은 한글 개역 성경처럼 베옷 입은 사람이 여섯 사람에 포함된 것인지 또 다른 한 사람인지 본절 자체로는 판단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칼빈(Calvin)은 여섯 사람으로 인정하고 본절을 주석했으나 NIV, RSV와 같은 영역 성경과 여러 학자들은 일곱 사람으로 해석하고 있다(Plumtre, Bruce). 이는 ‘그들 중에’로 번역된 히브리어 ‘베토캄'(*)이 ‘그들 중에’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로도 해석될 수 있는 데서 유추된 것이다. 또한 슥 4:10;계 1:16, 20;15:6 등을 근거로 볼 때 본 구절에 언급된 천사는 일곱일 가능성이 크다. 일곱이 당시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완전수를 뜻하는 바(창 2:2, 3;출 12:15), 이들이 온전한 자들로서 하나님의 임무를 수행하는 자들로 왔음을 암시한다. 천사들이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하여 사람의 형상으로 이 땅에 온 대표적인 실례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위하여 온 때이다(창 18:1-19:22).

󰃨 북향한 윗문 길 – 이는 8:14에 언급된 ‘북문’의 길로서 8:3, 5에 언급된 것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이 길로 오는 것은 이곳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를 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시켰던 사실과 연관이 있다.

󰃨 가는 베옷을 입고 – ‘베옷’이란 고대 근동 지방에서 아마에서 짜낸 실로 만든 흰 천의 옷이다. 고대 애굽에서 그 천의 가공 기술이 발달해 많이 보급되었고 히브리인들에게도 중요한 옷들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레 13:48, 52;삼하 6:14;잠 31:24). 특히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 이 옷은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이 만들어 입는 옷이기도 하였다(출 28:39, 42). 이때 옷의 흰색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순결성, 무죄의 뜻을 상징적으로 암시한다. 본 구절에서 한 사람이 베옷을 입은 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고 거룩한 존재로서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하는 자임을 암시한다. 이는 말세에 천사들이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일곱 대접의 재앙을 땅에 쏟거나 주님의 재림시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주님을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계 15:6-16:1;19:14).

󰃨 먹 그릇 – 이는 구약 성경 중 본장에서만 나오는 단어로(3, 11절) 애굽에서 유래된 외래어로 보인다(Wycliffe, Brownlee, Cooke). 이는 갈대 펜에 사용되는 잉크를 담기 위한 용기(容器)이다.

우케보드 엘로헤 이스라엘 나알라 메알 핰케룹 아쉘 하야 알라우 엘 미프탄 합바이트 와이크라 엘 하이쉬 할라부쉬 합바딤 아쉘 케세트 핫소페르 베마테나우

개역개정,3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 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새번역,3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이제까지 머물러 있던 그룹에서 떠올라 성전 문지방으로 옮겨갔다. 그는 모시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통을 찬 그 사람을 부르셨다.

우리말성경,3 그러자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이제까지 머물러 있던 그룹에서 위로 올라와 성전의 문턱으로 옮겨갔다. 그분은 베옷을 입고 옆구리에 필기구를 갖고 있는 사람을 부르셨다.

가톨릭성경,3 그러자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그때까지 자리 잡고 있던 커룹들 위에서 떠올라 주님의 집 문지방으로 옮겨 갔다. 주님께서는 아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 필갑을 찬 사람을 부르셨다.

영어NIV,3 Now the glory of the God of Israel went up from above the cherubim, where it had been, and moved to the threshold of the temple. Then the LORD called to the man clothed in linen who had the writing kit at his side

영어NASB,3 Then the glory of the God of Israel went up from the cherub on which it had been, to the threshold of the temple. And He called to the man clothed in linen at whose loins was the writing case.

영어MSG,3 The Glory of the God of Israel ascended from his usual place above the cherubim-angels, moved to the threshold of the Temple, and called to the man with the writing case who was dressed in linen:

영어NRSV,3 Now the glory of the God of Israel had gone up from the cherub on which it rested to the threshold of the house. The LORD called to the man clothed in linen, who had the writing case at his side;

헬라어구약Septuagint,3 και δοξα θεου του ισραηλ ανεβη απο των χερουβιν η ουσα επ’ αυτων εις το αιθριον του οικου και εκαλεσεν τον ανδρα τον ενδεδυκοτα τον ποδηρη ος ειχεν επι της οσφυος αυτου την ζωνην

라틴어Vulgate,3 et gloria Domini Israhel adsumpta est de cherub quae erat super eum ad limen domus et vocavit virum qui indutus erat lineis et atramentarium scriptoris habebat in lumbis suis

히브리어구약BHS,3 וּכְבֹוד אֱלֹהֵי יִשְׂרָאֵל נַעֲלָה מֵעַל הַכְּרוּב אֲשֶׁר הָיָה עָלָיו אֶל מִפְתַּן הַבָּיִת וַיִּקְרָא אֶל־הָאִישׁ הַלָּבֻשׁ הַבַּדִּים אֲשֶׁר קֶסֶת הַסֹּפֵר בְּמָתְנָיו׃ ס

성 경: [겔9:3]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주제2: [예루살렘 거민의 학살]

󰃨 그룹에 머물러 있던…하나님의 영광이 – ‘그룹'(*, 케루브)이란 그 어원이나 뜻이 불분명하다. 이는 아카디아어의 ‘중재하다’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기도 하며, ‘붙잡다’, ‘빈틈없이 지키다’의 뜻을 지닌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성경에서 이는 창 3:24에서부터 시작하여 많은 곳에서 언급되어 하나님의 영광, 보좌, 그분의 뜻의 수행 등과 관련하여 언급된다(삼하 22:11;시 99:1;사 37:16). 본서에서는 생물들로도 표현된다(10:15, 20). 그리고 이는 구약 율법에서 하나님의 장막이나 성전의 지성소에서 하나님의 임재 장소인 속죄소를 덮고 그 얼굴을 속죄소로 향하는 존재로 언급되고 있다(출 25:17-22;왕상 6:29). 한편 본 구절에서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 자체와 동일시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아름다우신 영광으로 표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1:28).

󰃨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 ‘성전 무지방’을 혹자는 백성의 뜰(바깥 뜰)로 들어가는 바깥 입구로 생각하나(Lange), 이는 성전 중앙 성소의 입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10:18, 19). 하나님의 영광 곧 하나님께서 친히 이곳에 임하신 것은 천사들로 하여금 우상 숭배하는 모든 가증한 자들을 징벌하도록 하시기 위해서일 뿐 아니라 당신께서 우상 숭배로 더렵혀진 이곳 성전을 떠나신다는 뜻을 분명히 나타내 보이시기 위함인 듯하다(10:18, 19:11:23, 24).

와요멜 아도나이 엘로 알라우 아볼 베토크 하이르 베토크 예루솰람 웨히트위타 타우 알 미츠호트 하아나쉼 한네에나힘 웨한네에나킴 알 콜 하토에보트 한나아소트 베토카흐

개역개정,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새번역,4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저 성읍 가운데로 곧 예루살렘으로 두루 돌아다니면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겨운 일 때문에 슬퍼하고 신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그려 놓아라.”

우리말성경,4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예루살렘 성읍을 돌아다니며 그 가운데서 행해지고 있는 모든 혐오스러운 일들에 대해 한숨짓고 탄식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시를 하여라.”

가톨릭성경,4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저 도성 가운데로, 예루살렘 가운데로 돌아다니면서, 그 안에서 저질러지는 그 모든 역겨운 짓 때문에 탄식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해 놓아라.”

영어NIV,4 and said to him, “Go throughout the city of Jerusalem and put a mark on the foreheads of those who grieve and lament over all the detestable things that are done in it.”

영어NASB,4 And the LORD said to him, “Go through the midst of the city, even through the midst of Jerusalem, and put a mark on the foreheads of the men who sigh and groan over all the abominations which are being committed in its midst.”

영어MSG,4 “Go through the streets of Jerusalem and put a mark on the forehead of everyone who is in anguish over the outrageous obscenities being done in the city.”

영어NRSV,4 and said to him, “Go through the city, through Jerusalem, and put a mark on the foreheads of those who sigh and groan over all the abominations that are committed in it.”

헬라어구약Septuagint,4 και ειπεν προς αυτον διελθε μεσην την ιερουσαλημ και δος το σημειον επι τα μετωπα των ανδρων των καταστεναζοντων και των κατωδυνωμενων επι πασαις ταις ανομιαις ταις γινομεναις εν μεσω αυτης

라틴어Vulgate,4 et dixit Dominus ad eum transi per mediam civitatem in medio Hierusalem et signa thau super frontes virorum gementium et dolentium super cunctis abominationibus quae fiunt in medio eius

히브리어구약BHS,4 וַיֹּאמֶר יְהוָה [כ= אֵלֹו] [ק= אֵלָיו] עֲבֹר בְּתֹוךְ הָעִיר בְּתֹוךְ יְרוּשָׁלִָם וְהִתְוִיתָ תָּו עַל־מִצְחֹות הָאֲנָשִׁים הַנֶּאֱנָחִים וְהַנֶּאֱנָקִים עַל כָּל־הַתֹּועֵבֹות הַנַּעֲשֹׂות בְּתֹוכָהּ׃

성 경: [겔9:4]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주제2: [예루살렘 거민의 학살]

󰃨 탄식하며 우는 자…표하라 – 이는 예루살렘 성읍에서 가증한 우상 숭배를 하는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그 가증한 일을 애통해 하며 마음에 괴로움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표를 하라는 뜻이다. 그들이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예루살렘에서 다른 사람에 의해 행해지는 가증한 죄에 동참하지 않고 같은 이스라엘 족속으로서 애통해 하며 통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표’ (*, 타우)란 히브리어 알파벱의 마지막 글자인 ‘타우'(*)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것은 고대에서 십자가와 같은 기호를 나타내는 낱말로도 사용되었는데 아마 이런 형태의 표가 영적으로 인친것을 뜻하는 듯하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인치시는 것은 가인의 생명을 보호하시기 위해 표하신 것(창 4:15)과 출애굽 전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이스라엘 백성의 문설주에 발라 죽음의 사자(천사)가 그 집을 넘어가 멸망치 않도록 한 것(출 12:13, 21-29), 말세에 하나님께서 다신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시므로 열방에서 구원하시는 것(계 7:1-8) 등과 유사하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을 치시는 사건은 하나님께서 항상 당신의 심판 속에서도 당신의 긍휼에 의해 보존된 자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엿보게 한다(6:8).

우레엘레 아마르 베오즈나이 입베루 바이르 아하라우 웨핰쿠 알 알 타호스 에네켐 에네켐 웨알 타흐몰루

개역개정,5 그들에 대하여 내 귀에 이르시되 너희는 그를 따라 성읍 중에 다니며 불쌍히 여기지 말며 긍휼을 베풀지 말고 쳐서

새번역,5 또 그는, 내가 듣는 앞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저 사람의 뒤를 따라 성읍 가운데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쳐서 죽여라.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가엾게 여기지도 말아라.

우리말성경,5 내가 듣는 데서 그분이 나머지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를 따라 성읍을 두루 돌아다니며 쳐 죽여라. 너희 눈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그들에게 인정을 베풀지도 말라.

가톨릭성경,5 그분께서는 또 내가 듣는 앞에서 다른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저 사람의 뒤를 따라 도성을 돌아다니며 쳐 죽여라. 동정하지도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마라.

영어NIV,5 As I listened, he said to the others, “Follow him through the city and kill, without showing pity or compassion.

영어NASB,5 But to the others He said in my hearing, “Go through the city after him and strike; do not let your eye have pity, and do not spare.

영어MSG,5 I listened as he went on to address the executioners: “Follow him through the city and kill. Feel sorry for no one. Show no compassion.

영어NRSV,5 To the others he said in my hearing, “Pass through the city after him, and kill; your eye shall not spare, and you shall show no pity.

헬라어구약Septuagint,5 και τουτοις ειπεν ακουοντος μου πορευεσθε οπισω αυτου εις την πολιν και κοπτετε και μη φειδεσθε τοις οφθαλμοις υμων και μη ελεησητε

라틴어Vulgate,5 et illis dixit audiente me transite per civitatem sequentes eum et percutite non parcat oculus vester neque misereamini

히브리어구약BHS,5 וּלְאֵלֶּה אָמַר בְּאָזְנַי עִבְרוּ בָעִיר אַחֲרָיו וְהַכּוּ [כ= עַל] [ק= אַל]־תָּחֹס [כ= עֵינֵיכֶם] [ק= עֵינְכֶם] וְאַל־תַּחְמֹלוּ׃

성 경: [겔9:5]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주제2: [예루살렘 거민의 학살]

󰃨 너희는 그 뒤를 좇아…쳐서 –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시는 순서가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즉 하나님은 구원받을 백성들에게 인을 쳐서 심판을 면할 방도를 마련하신 후에야 비로소 엄한 심판을 시행하신다. 이런 심판의 방법은 신약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마 24:29-31).

자켄 바후르 우베툴라 웨타프 웨나쉼 타하레구 레마쉬히트 웨알 콜 이쉬 아쉘 알라우 핱타우 알 틱가슈 우밈미케다쉬 타헬루 와야헬루 바아나쉼 핮제케님 아쉘 레페네 합바이트

개역개정,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새번역,6 노인과 젊은이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들을 다 죽여 없애라. 그러나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에게는 손을 대지 말아라. 너희는 이제 내 성소에서부터 시작하여라.” 그러자 그들은 성전 앞에 서 있던 장로들부터 죽이기 시작하였다.

우리말성경,6 늙은이, 젊은이, 처녀들과 아이들과 여자들을 학살해 폐허가 되게 하라. 그러나 표시가 있는 사람 어느 누구에게도 가까이 가지 말라. 내 성소에서부터 시작하라.” 그러자 그들이 성전 앞에 있던 장로들부터 시작했다.

가톨릭성경,6 늙은이도 젊은이도, 처녀도 어린아이도 아낙네도 다 죽여 없애라. 그러나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건드리지 마라. 내 성전에서부터 시작하여라.” 그러자 그들은 주님의 집 앞에 있는 원로들부터 죽이기 시작하였다.

영어NIV,6 Slaughter old men, young men and maidens, women and children, but do not touch anyone who has the mark. Begin at my sanctuary.” So they began with the elders who were in front of the temple.

영어NASB,6 “Utterly slay old men, young men, maidens, little children, and women, but do not touch any man on whom is the mark; and you shall start from My sanctuary.” So they started with the elders who were before the temple.

영어MSG,6 Kill old men and women, young men and women, mothers and children. But don’t lay a hand on anyone with the mark. Start at my Temple.” They started with the leaders in front of the Temple.

영어NRSV,6 Cut down old men, young men and young women, little children and women, but touch no one who has the mark. And begin at my sanctuary.” So they began with the elders who were in front of the house.

헬라어구약Septuagint,6 πρεσβυτερον και νεανισκον και παρθενον και νηπια και γυναικας αποκτεινατε εις εξαλειψιν επι δε παντας εφ’ ους εστιν το σημειον μη εγγισητε και απο των αγιων μου αρξασθε και ηρξαντο απο των ανδρων των πρεσβυτερων οι ησαν εσω εν τω οικω

라틴어Vulgate,6 senem adulescentulum et virginem parvulum et mulieres interficite usque ad internicionem omnem autem super quem videritis thau ne occidatis et a sanctuario meo incipite coeperunt ergo a viris senioribus qui erant ante faciem domus

히브리어구약BHS,6 זָקֵן בָּחוּר וּבְתוּלָה וְטַף וְנָשִׁים תַּהַרְגוּ לְמַשְׁחִית וְעַל־כָּל־אִישׁ אֲשֶׁר־עָלָיו הַתָּו אַל־תִּגַּשׁוּ וּמִמִּקְדָּשִׁי תָּחֵלּוּ וַיָּחֵלּוּ בָּאֲנָשִׁים הַזְּקֵנִים אֲשֶׁר לִפְנֵי הַבָּיִת׃

성 경: [겔9:6]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주제2: [예루살렘 거민의 학살]

󰃨 늙은 자와 젊은 자와…다 죽이되 – 이는 예루살렘 성읍의 남녀 노소를 가릴 것 없이 다 무자비하게 죽이라는 뜻이다. 특히 ‘늙은 자’나 ‘처녀’, ‘어린 아이’등은 일반적으로 연약한 자로 분류되어 긍휼과 도움을 받을 자들로 지칭되나 이들도 무자비한 죽음에 포함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가 어느 정도에 다다렸는지를 짐작케 한다.

󰃨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 하나님의 성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거룩하며 중심적인 곳이었다(민 2:2-34;5:3). 피의 보수를 당할 처지에 있는 자가 이곳에 도피할 경우 그가 이 곳에 있는 동안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왕상 1:50-53).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곳에서부터 살육을 시작할 것을 명하셨다. 이것은 가장 거룩하고 신성시되어야 할 이곳 성소에서 이스라엘 족속들이 우상을 만들어 놓고 숭배하였기 때문이다(8:3-16).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소를 떠나시고(8:6) 이곳에서부터 살육이 자행되도록 허락하심으로 가장 불경하게 우상 숭배 죄를 범한 자부터 징벌하셨다.

󰃨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 이들은 8:16에 언급된 자들, 즉 ‘여호와의 전 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태양을 숭배하던 ‘이십 오 인’을 가리키는 것 같다(Brownlee, Cooke). 이들이 가장 먼저 살육의 대상이 된 것은 이들이 이스라엘 사회의 높은 지위에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이고 선도(先導)해야 할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성소의 중심적인 위치 곧 성소의 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불경스럽게도 우상을 숭배하였기 때문이다.

와요멜 알레헴 팀메우 엩 합바이트 우말레우 엩 하하체로트 할랄림 체우 웨야체우 웨힠쿠 바이르

개역개정,7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새번역,7 그가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라. 모든 뜰을 시체로 가득 채워라. 이제 나가 보아라.” 그러자 그들이 성읍 가운데로 나가서, 사람들을 죽였다.

우리말성경,7 그분이 그들에게 또 말씀하셨다. “성전을 더럽히고 그 뜰을 학살당한 사람들로 가득 채우라. 나아가라!” 그러자 그들이 나아가 성읍 안에서 쳐 죽였다.

가톨릭성경,7 그분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집을 부정하게 만들어라. 그 뜰들을 살해된 자들로 채워라. 가거라.” 그러자 그들은 도성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쳐 죽였다.

영어NIV,7 Then he said to them, “Defile the temple and fill the courts with the slain. Go!” So they went out and began killing throughout the city.

영어NASB,7 And He said to them, “Defile the temple and fill the courts with the slain. Go out!” Thus they went out and struck down the people in the city.

영어MSG,7 He told the executioners, “Desecrate the Temple. Fill it with corpses. Then go out and continue the killing.”

영어NRSV,7 Then he said to them, “Defile the house, and fill the courts with the slain. Go!” So they went out and killed in the city.

헬라어구약Septuagint,7 και ειπεν προς αυτους μιανατε τον οικον και πλησατε τας οδους νεκρων εκπορευομενοι και κοπτετε

라틴어Vulgate,7 et dixit ad eos contaminate domum et implete atria interfectis egredimini et egressi sunt et percutiebant eos qui erant in civitate

히브리어구약BHS,7 וַיֹּאמֶר אֲלֵיהֶם טַמְּאוּ אֶת־הַבַּיִת וּמַלְאוּ אֶת־הַחֲצֵרֹות חֲלָלִים צֵאוּ וְיָצְאוּ וְהִכּוּ בָעִיר׃

성 경: [겔9:7]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주제2: [예루살렘 거민의 학살]

󰃨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처소 성전을 더럽히도록 허락하신 것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에서 우상 숭배함으로 그곳을 더럽혔으므로 그곳을 떠나시기로 결정하셨음을 강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8:3-16;10:18, 19). 특히 구약 율법 중 의식(儀式) 법에서 시체는 부정한 존재로 간주되어졌다. 이것은 시체가 ‘죄의 삯’인 ‘사망'(롬 6:23)에 의한 결과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구약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임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은 죽은 다른 사람의 시체로 더럽혀지지 않도록 주의가 요구되었다(레 21:1). 더욱이 대제사장은 부모의 시체로도 더럽혀지지 않도록 해야만 했었다(레 21:11). 그런데 하나님께서 시체를 성전의 뜰에 채우게 하신 것은 이미 그곳을 버리시고 떠나실 것을 결정하신 것을 잘 반영해준다.

와예히 케핰코탐 웨네솨아르 아니 와엪펠라 알 파나이 와에즈아크 와오말 아하흐 아도나이 아도나이 하마쉬히트 앝타 엩 콜 쉐에리트 이스라엘 베솨프케카 엩 하마테카 알 예루솰라임

개역개정,8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었는지라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아하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새번역,8 살육이 계속되는 동안, 나는 혼자 거기에 있었다. 나는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부르짖으며 아뢰었다. “주 하나님, 예루살렘에다가 이렇듯 주님의 진노를 쏟으시다니, 이스라엘의 남은 사람들을 주님께서 친히 다 멸하실 작정입니까?”

우리말성경,8 그들이 쳐 죽이고 있을 때 나는 혼자 남겨져 있었다. 나는 얼굴을 땅에 대고 울부짖으며 말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는 예루살렘에 주의 노여움을 퍼부으셔서 이스라엘의 남은 사람을 모두 죽이려고 하십니까?”

가톨릭성경,8 그들이 사람들을 쳐 죽이는 동안, 홀로 남은 나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부르짖었다. “아, 주 하느님! 예루살렘에다 이렇듯 화를 쏟으시어,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모두 파멸시키실 작정이십니까?”

영어NIV,8 While they were killing and I was left alone, I fell facedown, crying out, “Ah, Sovereign LORD! Are you going to destroy the entire remnant of Israel in this outpouring of your wrath on Jerusalem?”

영어NASB,8 Then it came about as they were striking and I alone was left, that I fell on my face and cried out saying, “Alas, Lord GOD! Are You destroying the whole remnant of Israel by pouring out Your wrath on Jerusalem?”

영어MSG,8 So they went out and struck the city. While the massacre went forward, I was left alone. I fell on my face in prayer: “Oh, oh, GOD, my Master! Are you going to kill everyone left in Israel in this pouring out of your anger on Jerusalem?”

영어NRSV,8 While they were killing, and I was left alone, I fell prostrate on my face and cried out, “Ah Lord GOD! will you destroy all who remain of Israel as you pour out your wrath upon Jerusalem?”

헬라어구약Septuagint,8 και εγενετο εν τω κοπτειν αυτους και πιπτω επι προσωπον μου και ανεβοησα και ειπα οιμμοι κυριε εξαλειφεις συ τους καταλοιπους του ισραηλ εν τω εκχεαι σε τον θυμον σου επι ιερουσαλημ

라틴어Vulgate,8 et caede conpleta remansi ego ruique super faciem meam et clamans aio heu heu heu Domine Deus ergone disperdes omnes reliquias Israhel effundens furorem tuum super Hierusalem

히브리어구약BHS,8 וַיְהִי כְּהַכֹּותָם וְנֵאשֲׁאַר אָנִי וָאֶפְּלָה עַל־פָּנַי וָאֶזְעַק וָאֹמַר אֲהָהּ אֲדֹנָי יְהוִה הֲמַשְׁחִית אַתָּה אֵת כָּל־שְׁאֵרִית יִשְׂרָאֵל בְּשָׁפְךְּךָ אֶת־חֲמָתְךָ עַל־יְרוּשָׁלִָם׃

성 경: [겔9:8]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주제2: [예루살렘 거민의 학살]

󰃨 엎드리어 부르짖어…멸하려 하시나이까 – 본 구절은 에스겔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중보 기도하는 모습이다. 본래 선지자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사역자로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이다. 이런 사명을 지닌 선지자는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보살피시는 그의 백성에 대해서 사랑과 돌봄의 자세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본절의 에스겔 선지자도 이런 마음 자세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을 경우 남은 자까지 멸망받을 것을 염려하며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에스겔의 중보 기도 자세는 롯을 위한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창 18:22-33),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모세의 중보 기도(출 32:11-14, 31-33) 등을 생각케 한다. 한편 ‘남은 자’에 대해서는 5:3;6:8을 참조하라.

와요멜 엘라이 아욘 베이트 이스라엘 위후다 가돌 빔오드 메오드 와팀말레 하아레츠 다밈 웨하일 말레아 뭍테 키 아메루 아자브 아도나이 엩 하아레츠 웨엔 아도나이 로에

개역개정,9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나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여호와께서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새번역,9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너무나 크고, 땅은 피로 가득 차 있고, 이 성읍은 불법으로 꽉 차 있다. 그들은 ‘내가 이 땅을 버렸으며,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말이나 하고 있다.

우리말성경,9 그러자 그분이 내게 대답하셨다.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너무나 크다. 이 땅이 피로 가득 차고 이 성읍은 불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다. 여호와께서 보지 않고 계신다’라고 말한다.

가톨릭성경,9 그러자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과 유다 집안의 죄가 너무나 크다. 이 땅은 피로 가득하고 이 도성은 불법으로 가득하다. 그러면서 저들은 ‘주님께서는 이 땅을 버리셨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보고 계시지 않는다.’ 하고 말한다.

영어NIV,9 He answered me, “The sin of the house of Israel and Judah is exceedingly great; the land is full of bloodshed and the city is full of injustice. They say, ‘The LORD has forsaken the land; the LORD does not see.’

영어NASB,9 Then He said to me, “The iniquity of the house of Israel and Judah is very, very great, and the land is filled with blood, and the city is full of perversion; for they say, ‘The LORD has forsaken the land, and the LORD does not see!’

영어MSG,9 He said, “The guilt of Israel and Judah is enormous. The land is swollen with murder. The city is bloated with injustice. They all say, ‘GOD has forsaken the country. He doesn’t see anything we do.’

영어NRSV,9 He said to me, “The guilt of the house of Israel and Judah is exceedingly great; the land is full of bloodshed and the city full of perversity; for they say, ‘The LORD has forsaken the land, and the LORD does not see.’

헬라어구약Septuagint,9 και ειπεν προς με αδικια του οικου ισραηλ και ιουδα μεμεγαλυνται σφοδρα σφοδρα οτι επλησθη η γη λαων πολλων και η πολις επλησθη αδικιας και ακαθαρσιας οτι ειπαν εγκαταλελοιπεν κυριος την γην ουκ εφορα ο κυριος

라틴어Vulgate,9 et dixit ad me iniquitas domus Israhel et Iuda magna est nimis valde et repleta est terra sanguinibus et civitas repleta est aversione dixerunt enim dereliquit Dominus terram et Dominus non videt

히브리어구약BHS,9 וַיֹּאמֶר אֵלַי עֲוֹן בֵּית־יִשְׂרָאֵל וִיהוּדָה גָּדֹול בִּמְאֹד מְאֹד וַתִּמָּלֵא הָאָרֶץ דָּמִים וְהָעִיר מָלְאָה מֻטֶּה כִּי אָמְרוּ עָזַב יְהוָה אֶת־הָאָרֶץ וְאֵין יְהוָה רֹאֶה׃

성 경: [겔9:9]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주제2: [예루살렘 거민의 학살]

󰃨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 ‘피’는 사람의 생명을 대표하는 것이다(레 17:11). 노아 시대에는 이 생명되는 피를 먹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이 피를 흘리게 하는 자는 하나님이 대신 그 사람에게서 피를 흘리게 하심으로 보응하신다는 것이 규정되었다(창 9:4-6). 또한 구약 율법에서도 이 생명과 일체되는 피를 먹는 것이 의식법으로 금지되었다(레 17:10-14).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본 구절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남을 해하는 불의가 편만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7:23;8:17).

󰃨 그 성읍에 불법이 찼나니 – ‘불법'(*, 무테)이란 ‘뻗치다’ 또는 ‘굽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동사 ‘나타'(*)에서 유래된 말로 ‘왜곡’, ‘그릇됨’ 등의 뜻을 갖는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한 죄인으로서 하나님을 떠난 결과 그들의 타락한 본성대로 불의한 일을 멋대로 행함을 보여준다.

󰃨 여호와께서…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 8:12 주석을 참조하라.

웨감 아니 로 타호스 에니 웨로 에흐몰 다르캄 베로솸 나탙티

개역개정,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들의 행위대로 그들의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

새번역,10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며, 가엾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행실을 따라서, 그들의 머리 위에 그대로 갚아 줄 뿐이다.”

우리말성경,10 그러니 내 눈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내가 인정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행동을 그들의 머리에 그대로 갚아 줄 것이다.”

가톨릭성경,10 그래서 나도 동정하지도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그들이 걸어온 길을 그들 머리 위로 되갚는 것이다.”

영어NIV,10 So I will not look on them with pity or spare them, but I will bring down on their own heads what they have done.”

영어NASB,10 “But as for Me, My eye will have no pity nor shall I spare, but I shall bring their conduct upon their heads.”

영어MSG,10 Well, I do see, and I’m not feeling sorry for any of them. They’re going to pay for what they’ve done.”

영어NRSV,10 As for me, my eye will not spare, nor will I have pity, but I will bring down their deeds upon their heads.”

헬라어구약Septuagint,10 και ου φεισεται μου ο οφθαλμος ουδε μη ελεησω τας οδους αυτων εις κεφαλας αυτων δεδωκα

라틴어Vulgate,10 igitur et meus non parcet oculus neque miserebor viam eorum super caput eorum reddam

히브리어구약BHS,10 וְגַם־אֲנִי לֹא־תָחֹוס עֵינִי וְלֹא אֶחְמֹל דַּרְכָּם בְּרֹאשָׁם נָתָתִּי׃

성 경: [겔9:10]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주제2: [예루살렘 거민의 학살]

󰃨 내가 그들을 아껴 보지 아니하며…아니하고 – 5:11;7:4을 참조하라.

󰃨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 이는 문자적으로는 ‘내가 그들의 행위를 그들 머리 위에 둘 것이다'(I will bring their conduct upon their heads, NASB)의 뜻이다. 이는 7:3, 4의 경우처럼 사람이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죄에 대해 보응하심으로 심판하신다는 히브리인들의 사고 방식에서 기인한다. 즉 본 구절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그대로 방치해 두시지 않고 그대로 그들 머리 위에 돌려 보내사 나타나게 하심으로 그 죄악대로 심판하신다는 뜻이다.

웨힌네 하이쉬 레부쉬 합바딤 아쉘 핰케세트 베모트나우 메쉽 다발 레모르 아시티 카아쉘 케콜 아쉘 치위타니

개역개정,11 보라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먹 그릇을 찬 사람이 복명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 하더라

새번역,11 그런데 모시 옷을 입고 허리에 먹통을 찬 사람이 와서 보고하였다. “주님께서 저에게 명하신 대로, 제가 다 수행하였습니다.”

우리말성경,11 베옷을 입고 옆구리에 필기구를 갖고 있는 사람이 보고했다.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모든 것대로 내가 했습니다.”

가톨릭성경,11 그러는데 아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 필갑을 찬 사람이 와서, “명령하신 대로 하였습니다.” 하고 보고하였다.

영어NIV,11 Then the man in linen with the writing kit at his side brought back word, saying, “I have done as you commanded.”

영어NASB,11 Then behold, the man clothed in linen at whose loins was the writing case reported, saying, “I have done just as You have commanded me.”

영어MSG,11 Just then, the man dressed in linen and carrying the writing case came back and reported, “I’ve done what you told me.”

영어NRSV,11 Then the man clothed in linen, with the writing case at his side, brought back word, saying, “I have done as you commanded me.”

헬라어구약Septuagint,11 και ιδου ο ανηρ ο ενδεδυκως τον ποδηρη και εζωσμενος τη ζωνη την οσφυν αυτου και απεκρινατο λεγων πεποιηκα καθως ενετειλω μοι

라틴어Vulgate,11 et ecce vir qui indutus erat lineis qui habebat atramentarium in dorso suo respondit verbum dicens feci sicut praecepisti mihi

히브리어구약BHS,11 וְהִנֵּה הָאִישׁ לְבֻשׁ הַבַּדִּים אֲשֶׁר הַקֶּסֶת בְּמָתְנָיו מֵשִׁיב דָּבָר לֵאמֹר עָשִׂיתִי [כ= כַאֲשֶׁר] [ק= כְּכֹל*] [ק= אֲשֶׁר] צִוִּיתָנִי׃ ס

성 경: [겔9:11]

주제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주제2: [예루살렘 거민의 학살]

󰃨 주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하였나이다 하더라 – 하나님의 사명을 위임받은 자가 그에게 부과된 명령에 따라 순종하여 일을 처리했음을 하나님께 보고하는 내용이다. 하나님의 사역자에게 있어서 순종은 중요한 실천 강령 중 하나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邪神)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삼상 15:22, 23)고 말씀하셨다.

728×90

반응형

(에스겔9장)(겔9장1-11절)교회와 성도의 책임(에스겔 강해설교)

(겔9장1-11절)교회와 성도의 책임(에스겔 강해)

우리는 저번시간 에스겔 8장에서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범죄들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체가 하나님을 떠나는 범죄에 빠져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해야할 예루살렘 성전안에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과 우상들이 경배되어지고 예배되어 지는 가증스러운 범죄가 자행되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에스겔8장에서 이러한 범죄를 지적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남쪽 유다나라를 심판하시겠다라고 선포하시면서, 무엇보다 이러한 가증한 범죄가 시작된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을 먼저 심판하고 징계하시겠다라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본문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 그가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이르시되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이 각기 죽이는 무기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본문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이 심판에 있어서 하나님이 천사를 동원하셨다라는 것입니다. 1절에 보면 하나님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을 불러 그들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을 심판하시게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서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은 천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각 도시마다, 각 성마다 그 곳을 지키고 다스리는 천사를 두셨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도시와 성뿐만 아니라 각 교회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천사를 두셨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의 기도를 하나님 앞에 천사들이 가지고 오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이것을 보아 어찌 보면 각 가정마다, 각 개인마다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이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천사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하고, 또한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는 일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시행하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계시록(계8:1-7절)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천사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내용들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성을 심판하실 때 천사들을 통하여 심판하시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본문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보니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부터 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죽이는 무기를 잡았고 그 중의 한 사람은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2절에서 나오는 사람은 천사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섯 명의 천사가 예루살렘을 심판하기 위해서 동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천사의 모습을 보면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서기관은 오늘날의 글을 기록하는 사람들로서 어떤 명령을 전달할 때 붓으로 먹을 찍어 글씨를 쓰곤 했습니다.

여기에서의 서기관 역할을 맞은 천사는 먹으로 예루살렘 백성들이 무엇 때문에 심판을 받아야 하는지를 기록하기 위한 메시지를 남긴다라는 상징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마치 범죄자가 재판을 받을 때 판사 앞에서 검사가 그의 범죄내용과 기록을 적어서 보고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깐 이 천사들은 하나님께 고용된 일종의 검사들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예루살렘 사람들의 범죄를 기록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그들을 심판하려고 준비되어진 존재들인 것입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남유다와 예루살렘 성을 멸망하게 한 것은 바벨론이라 나라였습니다.

아마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공부하면서 바벨론에 의해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성이 멸망했다고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 이면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과 섭리가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보이는 겉에는 바벨론이라는 인간적인 나라가 있지만, 심판 이면에는 하나님이 바벨론이라는 나라를 움직이고, 또한 하나님의 천사들을 부리고 동원하셔서 이 심판을 집행하셨다는 사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는 일을 했지만, 표면적으로 나타난 역사적 사건의 배후에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천사같은 영적인 존재들을 통해서, 때로는 바벨론 같은 육적인 존재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심판을 내리십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심판의 주인 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천사나 영적인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지식적으로 알 필요는 있지만, 그것에 크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천사를 통해서 일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저인 세력이 뒷편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초점을 바르게 해야하는 것이 주용합니다.)

이것이 본문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이 심판의 주이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깨달은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의 전철을 따라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우리는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배워야할 교훈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선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의 특징들을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이 특징들을 살펴보고,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조심해야하고, 또한 어떻게 이러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가운데서 은혜를 입고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배워보는 시간을 가져볼 것입니다. 무엇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교훈 삶아야할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심판의 특징들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심판이 집행되는 순간, 하나님의 영광이 먼저 떠나갑니다.

본문3절 앞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하나님의 성전안에 들어가면 성소와 지성소가 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커튼 같은 휘장이 있고, 성소에서 이 휘장을 열고 들어가면 지성소가 있습니다, 이 지성소 안에는 언약궤가 언약궤의 양옆은 천사들의 날개모양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것을 흔히 그룹이라고 말합니다. 이곳에 일년에 한번, 대제사장만이 이곳에 들어가 나라와 민족의 죄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니깐 지성소 그룹에 머물러 있던 하나님의 영광이 문지방에 이른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지성소를 빠져나오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9장 에는 자세히 안나오지만 에스겔서 나중에 보시면 하나님의 영광이 지성소에서 나와 문지방으로 나가고, 성전 밖으로 나가고 마침내 예루살렘을 아예 떠나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언약궤과 더불어 지성소 안에, 성전 안에 있던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로 인해서 서서히 빠져 나가는 모습이 표현되어 나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빠져나가고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5절부터 보면 천사들이 심판할 자들을 골라내고, 징계내릴 자들을 찾아다니는 장면이 나오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떠날 때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다는 말씀은 매우 두려운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멀리 했기 때문에 이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작정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간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주님의 백성들에게 최대의 저주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다는 선언입니다. 우리의 직장에, 우리의 가정에,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러 있는지, 아니면 떠나 있는지에 따라서 우리에게도 동일한 심판이 임할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개인에게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 속에 임재 하시던 하나님의 영광이 떠날 수 있습니다. 혹은 우리 교회에 가득했던 하나님의 영광이 어느 날 떠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이런 사실을 명심하면서, 우리의 범죄함으로 인하여, 우리의 가증함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지 않기를 기도해야하고,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남은 자를 이 심판에서 제외시키고 구별하십니다.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면서 하나님의 심판이 천사들을 통해서 시작됩니다.그러나 다행인 것은 죄악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죄악 때문에 참회하며 애통했던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가증한 범죄에 동참하지 않고, 이 범죄를 안타까워 하고 탄식한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 이마에 표시를 하라고 명하십니다.

5절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에 대하여 내 귀에 이르시되 너희는 그를 따라 성읍 중에 다니며 불쌍히 여기지 말며 긍휼을 베풀지 말고 쳐서” 하나님이 이마에 인친 의로운 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징계하고 심판의 칼로 치라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마에 표시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손대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은 심판가운데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을 기억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도 보면 (계7:1)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들을 인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마지막 진노를 퍼 부으실 때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제외시키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의 사역에서도 무조건 심판 을 집행하시지 않고 주의 백성들을 먼저 구별하십니다.

인류 역사의 말기에 사람들의 이마에는 두 가지 표시 중 어느 한 가지 표시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 표시가 있든지 아니면 짐승의 표가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표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이 받게 되는 표시이고, 짐승의 표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거절한 자들이 받게 되는 표입니다. (계14:9)십자가의 인치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심판의 면죄와 영원한 안식이 약속되어지지만,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에게는 밤낮 쉼을 얻지 못하고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세상과 시대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을 남겨두십니다.(표시는 눈에 보이는 것이기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영접한 믿음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에스겔의 시대에도 우상화나 세속화를 거부하고 우리 주님의 순결한 말씀 안에 머물러 살았던 남은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느 대열에 속해 있습니까? 하나님의 남은 자에 속해 있으십니까? 아니면 세상에 속해 있으십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점점 이 신앙을 떠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점점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도 저와 여러분은 남은 자의 대열에 속할 수 있습니까?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시면서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은 심판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로 남은자의 자리에 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심판은 성전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저번시간 에스겔서 8장에서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행해지는 우상숭배와 각종 죄악들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일반 백성들 까지 전부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고, 우상을 향해서 경배를 하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이를 말리고 바로 잡아야할 하나님의 제사장들 까지도 하나님 보다 세상의 다른 신을 더욱 의지하고 믿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이처럼 가장 깨끗해야할 하나님의 성전이 죄악으로 관영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의 성전에서부터 심파을 시작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본문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십시오.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하나님의 전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전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하라고 명하십니다. 이 명령을 하실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하나님은 원래 이 성전에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찬양을 받고, 기도를 받고, 예배를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성전이 더렵혀졌을 때 하나님은 “내 성소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하라”고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은 성전이라고 해서, 혹은 특별한 무엇이라고 해서 죄악을 그대로 간과하시지 않습니다.

이 원리는 지금도 계속될 수 있는 원리입니다. ‘내가 교회 열심히 다니는데, 내가 직분을 가졌는데, 우리 가족이 믿음의 집안인데..’이러한 타이틀은 하나님 앞에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애국가 1절에 가사에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교회가 많이 있어서, 성도가 많아서 결코 우리나라는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도 하나님이 심판하셨습니다. 그 위대했던 솔로몬의 성전도 하나님이 헐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악 가운데 빠졌을 때, 친히 그분의 백성들과, 그분의 성전까지도 예외없이 심판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역시 자만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늘 기도하고 회개해야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 을 다해야 할 이유를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 안에서부터, 교회에서부터 시작될 수가 있습니다. 그럼으로 교회와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나라와 민족, 사회가운데 최후의 소망입니다.

결과적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하나님의 백성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역대하 36장에 보면 예루살렘의 최후의 모습이 나옵니다. (대하36:17-20) 성 전체가 불타오르고, 성전은 무너져 내립니다. 오늘 말씀처럼 어린아이에서부터 남녀,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칼로 죽임을 당하거나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18-20절).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은 모두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꼭 생각해봐야 할 것, 우리가 생명을 걸고 지켜야 활 것은 ‘교회와 성도의 순결’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 이외에 다른 우상들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주님 앞에 우리의 순결한 사랑을 바쳐야 합니다.

주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죄악들을 제거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순결한 사랑을 드릴 때, 우리는 이 시대가운데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할 수 있을 것이고, 심판을 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늘 어떠한 모습가운데 서 있으십니까? 세상이 죄악으로 물들어갈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 달려갑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조차도 부패하고 세속화되어갑니다. 그때 저와 여러분, 우리 섬김의 교회는 어떠한 모습으로 있어야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세상과 동화되어 하나님의 백성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그러한 자리에 서있으면 안될 것입니다. 우리 섬김의 교회에 예루살렘 성전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 는 비극이 없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섬김의 교회 성도님의 가정은 어둡고 죄악이 관영한 세상가운데서 세상과 짝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그러한 자리에 서 있는 거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 언제나 하나님 앞에 믿음의 순결함을 지키고 빛과 소금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자리에 설수 있기를 바랍니다.

[에스겔 9장 설교문] “이마에 표를 그리라”(겔9:1-8)

반응형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에스겔 9장 설교문 주에서 본문을 가지고 이마에 표를 그리라는 말씀을 올려보겠습니다.

“이마에 표를 그리라”(겔9:1-8)

● 명제 : 여호와 하나님은 이마에 표를 그리라고 명령하셨다.

● 목적 :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만 이마에 표를 받게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광을 받기 위해서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택받은 자들에게 예배를 통해서 영광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들의 뜻대로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아서 나라가 두 동강이가 났는데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있는 자들에게 분노를 내시고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때가 되면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것을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에서는 태양에게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서는 여인들이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교회가 복음이 사라지고 세상의 우상으로 가득 채워져 태양과 담무스와 같은 세상의 권력과, 재물에 예배를 드리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에스겔과 같은 깨어 있는 자들에게 말씀으로 심판하시겠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들은 예루살렘이 멸망당하고 심판당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 종말의 때가 가까이 왔음을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깨닫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가까이 왔음을 기억하시고 내 이마에 예수 그리스도의 표가 있어야 함을 깨닫기 바랍니다.

겔9:1 또 그가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이르시되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이 각기 죽이는 무기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예루살렘에 있는 자들이 타락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우상에게 예배하니 하나님은 심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것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외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예루살렘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이 각자 죽이는 무기를 손에 들고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시작되었음을 말합니다. 마지막 때에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때에도 이와 같은 심판이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없는 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겔9:2 내가 보니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부터 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죽이는 무기를 잡았고 그 중의 한 사람은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에스겔이 현재 보고 있는데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부터 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는 죽이는 무기를 잡았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습니다. 이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성전에 들어와 놋 제단 곁에 섰습니다.

‘북향한’ (פנה파나 6437 동사, 호팔, 분사수동, 남성, 단수) 돌리다, 돌이키다, 향하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여섯 사람이 북쪽으로 향한 윗문 길로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죽이는 무기를 손에 들고 예루살렘의 성읍에 있는 자들을 죽이려고 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곳을 향하다가 하나님의 심판 명령을 받고 이곳으로 돌아서서 오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호팔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북향으로 향한 윗문을 통해서 성읍의 사람들을 죽이는 자들이 반드시 오겠다는 의미입니다. 이곳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고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 날에도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됩니다. 주님은 구름 타고 이 땅에 오셔서 심판하십니다.

‘먹 그릇을 찼더라’ (קסת케쎄트 7083) 먹통, 먹 그릇, 이라는 뜻이며 (קשה카사 7184) 주전자, 항아리, 병,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심판하러 오는 여섯 명 중에 한 명은 베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습니다. 먹통을 차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무엇을 하게 됩니까?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는 자들의 이마에 표시를 하는 임무를 수여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하는 것은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들에게 기름을 부어 예수 그리스도의 표를 이마에 박게 하는 임무를 받았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출25:29 너는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만들되 순금으로 만들며

하나님이 성막의 기구들을 만들라고 하셨는데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순금으로 만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병’이라는 단어가 (קשה카사)입니다. 이 병은 제사장에게 기름을 부을 때에 사용하는 올리브기름이나, 유향을 담아두었던 용기입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먹 그릇을 가지고 다니는 자에게 명령하셔서 선택받은 자의 이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표식을 주십니다. 성령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오직 믿음으로 만이 구원이 있다는 사상을 이마에 심어주십니다.

겔9: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여호와 하나님은 먹 그릇을 차고 있는 자에게 말씀하셔서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고 하셨습니다.

‘가증한 일로’ (תועבה토에바 8441) 혐오스러운 것, 가증스러운 것, 이라는 뜻입니다. 현재 모든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읍의 성소 앞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러운 담무스와 태양신에게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토해버릴 수밖에 없는 혐오스러운 짓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원죄를 상징해 줍니다. 아담 이후에 온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서 혐오스럽고 가증스러운 죄가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따르지 않고 거짓 우상을 따라가서 결국은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 시간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혐오스러운 우상을 섬기고 있었다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가증스럽게 겉으로는 깨끗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더러운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우상을 섬기는 이런 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표를’ (תו타브 8420) 표, 기호, 표시,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혐오스러운 죄 때문에 탄식하고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내서 기호를 삼으라고 했습니다. ‘타브’라는 글자는 히브리어 마지막 글자로서 십자가라는 상형에서 왔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들은 자신의 혐오스러운 죄를 회개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회개하고 싶어서 회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회개하게 됩니다.

이런 자들의 이마에 표식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지막 심판 때에 원죄에 빠졌던 죄인이 성령의 기름부음의 역사로 인하여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탄식함으로 회개하여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받은 자의 이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름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마지막 날에 절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계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사도 요한이 보고 있는데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습니다.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택받은 자들의 이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표식을 하여 오직 어린 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을 써주셨습니다. 이것이 먹 그릇을 가진 자가 예루살렘에 있어 탄식하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주는 예표입니다.

겔9:5 그들에 대하여 내 귀에 이르시되 너희는 그를 따라 성읍 중에 다니며 불쌍히 여기지 말며 긍휼을 베풀지 말고 쳐서

하나님은 먼저 선택받은 자들을 모두 구원하신 후에 심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심판하는 자들에게 명령하여 성읍 중에 다니며 불쌍히 여기지 말고 긍휼을 베풀지 말고 쳐서 죽이라고 말씀합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습니다. 이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표식이 없으면 하나님은 모두 죽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주의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마지막 날에 죽습니다. 자신의 행위를 주장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은 모두 인정사정 보지 않고 죽입니다. 심판하는 자들은 오직 이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표식만을 보고 심판하게 됩니다.

겔9: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하나님은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서 심판이 먼저 시작됩니다. 심판자들은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늙은 자’ (זקן자켄 2205) 나이 먹은, 노년의 장로,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표를 이마에 받지 못한 늙은 자는 영적으로 누구를 의미합니까? 자신이 나이를 먹으면서 지혜롭다고 생각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버리고 자신의 지식과 학문과 지혜를 더 의지하여 신앙생활했던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은 것 같지만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신앙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은 마지막 때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장로라고 교만할 것도 없고, 많은 학식과 견문을 가지고 있다고 오만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표식이 내 이마에 있어야 합니다.

‘젊은 자와’ (בחור바후르 970) 젊은이, 청년, 이라는 뜻이며 (בחר바하르 977) 선택하다, 결정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마지막 때에 젊은 자와 같이 신앙생활을 한 사람은 자신이 힘이 있다고 자신의 육체의 믿음만을 의지하고 살았던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고 선택하여 자신이 믿은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교만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내가 성경을 알면 얼마나 압니까? 제대로 알지 못하는 지식을 가지고 자신이 깨달은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한 것을 절대 굳히지 않는 이런 신앙이 젊은 자와 같은 신앙입니다. 이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표식이 없이 자신의 젊은 힘과 지식과 학문이 최고라고 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도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아 죽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가 최고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처녀와’ (בתולה베툴라 1330) 처녀, 소녀, 라는 뜻이며 (בתל바탈) 분리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처녀와 같이 신앙생활을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처녀는 시집을 가야할 때입니다. 이런 때에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주님과 분리되어 세상의 우상을 따라가서 시집간 자들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했지만 이것을 버리고 세상의 재물과, 권력과, 능력이 더 좋아서 이들과 결혼한 자들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랑과 분리되어 한창나이에 세상과 결혼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 생활을 하다가 이마에 주님의 십자가 표를 받지 못하고 결국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신랑 되신 주님과 결혼해야 합니다. 처녀인지라 많은 남자들이 유혹하게 됩니다. 우상의 신랑들이 유혹할지라도 나는 주님과 정혼한 사이기 때문에 오직 주님과 결혼을 해야 합니다.

‘어린이와’ (טף타프 2945) 어린아이들, 이라는 뜻이며 (טפף타파프 2952) 아기작거리며 걷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어린이와 같은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믿음이 성숙되지 못하고 아직도 젖만 먹는 신앙으로서 보채거나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구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을 주지 않으면 빈정대면서 아기작거리며 걸으면서 하나님을 분노하게 만드는 자들입니다. 집안에서 어린 아들이 부모 앞에서 아기작거리면서 빈정대면 부모는 화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표식이 이마에는 없으면서 율법의 삶에 빠져 아직도 하나님의 의를 경험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도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아 죽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어린아이의 신앙을 버리고 젖을 먹는 신앙에서 단단한 음식을 먹는 신앙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이런 자들이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여자를’ (אשה이샤 802) 여자, 부인,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결혼한 유부녀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여자와 같이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은 했다고 하면서 우상과 바람을 피워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욕되게 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신랑으로부터 쫓김을 당해 이혼당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만났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속에는 다른 남자를 품고 있는 자들이며 실제로 세상의 우상과 바람나서 집을 나간 자들입니다. 한 번 그리스도의 빛을 보기는 했지만 결국 버림받게 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들도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아 죽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 외에 이마에 예수 그리스도의 표식이 있는 자들에게는 가까이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여호와의 이름이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나는 내 이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표식이 있음을 깨닫고 감사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 표식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서 살면 하나님은 나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세상부터가 아니고 성소에서부터 시작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성전 앞마당부터 척량하시고 바깥마당을 척량하게 됩니다.

겔9:7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심판하는 자들에게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고 합니다. 너희는 나가서 성읍에서 치라고 허락을 받으니 심판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미 예루살렘의 성전은 거짓 우상을 섬김으로 더럽혀졌습니다. 이곳에 우상을 섬기던 자들의 시체로 더럽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우상의 소굴로 만들면 안 됩니다. 지금은 돈이 우상이 된 시대입니다. 교회도 물질에 사로잡혀 복음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건물이 우상이 된지도 오래입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건물과 인원으로 판단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곳에 시체로 채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교회에 거짓 우상을 예배하고 인간의 주권을 주장하면 안 됩니다.

겔9:8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었는지라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아하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에스겔 선지자는 예루살렘을 심판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때에 에스겔은 하나님께 엎드려 부르짖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고 하십니까? 라면서 통곡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를 반드시 구원해 주십니다. 이미 이마에 남은 자들에게는 십자가 표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하나님은 남은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을 이마에 새겨주셨습니다. 이 이름이 내 이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내 이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주님의 이름을 새겨주셨습니다. 이것은 내가 만세전에 선택받았다는 것을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이 땅에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일어나게 되면 한 명도 살아날 수 없습니다. 오직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방법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주님을 높이는 사상이 내 이마에 있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세상으로 나가면서 내 이마에 십자가 표식이 있음으로 보호함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반응형

천안UBF

에스겔 9장 강해 탄식하며 우는 자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2-11-26 00:00:00 조회수 : 3,422

에스겔 9장 강해 탄식하여 우는 자

에스겔 9장 1-에스겔 9장 11

요절 에스겔 9장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성전은 구원의 방주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전에서부터 하나님의 심판을 시작하시고 성전에 있는자들부터 심판을 시작하십니다. 8장에서 보듯이 성전이 우상의 소굴이기 때문입니다 소련이 공산화될 때 러시아 정교회부터 심판을 시작하였고 북한이 공산화될 때 교회부터 심판을 시작하였습니다. 러시아 정교회는 교회전체를 우상의 소굴로 만들었고, 북한의 기독교는 교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심판 중에서도 남은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심판자 예수님)

“1. 또 그가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이르시되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이 각기 죽이는 무기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2. 내가 보니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부터 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죽이는 무기를 잡았고 그 중의 한 사람은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또 하나님이 큰소리로 외치시는데 그 소리가 에스겔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하나님은 이 성읍을 벌할 사람들에게 각자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손에 들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섯 사람이 북쪽으로 향한 윗문 길에서 오는데, 각자가 부수는 연장을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내리실 때에도 천사 하나만 보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는 불과 유황을 보낼 때에는 천사 둘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때에는 천사 여섯을 보냈습니다. 이만큼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죄를 중하게 여기시고, 하나님의 진노가 컸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여섯의 천사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합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모시 옷을 입고, 허리에는 서기관의 먹통을 차고 있었습니다. 한 천사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른 천사의 지휘자 위치에 있습니다. 청교도 설교자인 토마스 보스톤 목사는 이 천사를 가리켜서 성육신하기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석했습니다. 가는 베옷을 입었다고 하는 것은 제사장의 직분을 말합니다. 또 서기관의 먹그릇을 찼다는 것은 선지자의 직분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여섯 천사의 우두머리요 지휘하는 입장에 있었다는 것은 정사와 권세와 보좌를 지배하는 왕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대부분 성서 주석가들은 가는 베옷을 입은 천사가 성육신하기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이심에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9장과 동일한 비전을 기록한 것이 요한계시록 7장입니다. 한 다른 천사가 나와서 14만 4천 명의 이마에 인을 치고, 인 맞은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14만 4천에 이마에 인치는 다른 한 천사는 누구입니까? 요한계시록 7장 10절에 보면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사람이 찬송하는 것으로 보아서 이 다른 한 천사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스겔 9장의 예수님은 구원자이시지만 예루살렘을 심판하는 심판자의 우두머리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요한복음 5장 22절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사람, 나라, 세상을 심판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들이 들어와서 놋으로 만든 번제단 곁에 섰습니다

(우는 자의 머리에 인을 치라)

“3.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 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이제까지 머물러 있던 그룹에서 떠올라 성전 문지방으로 옮겨갔습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떠나기 시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는 모시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통을 찬 그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너는 저 성읍 가운데로, 곧 예루살렘으로 두루 돌아다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겨운 일 때문에 슬퍼하고 신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그려 놓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하는 역겨운 일로 인하여 분노하였습니다. 그들로 인하여 슬퍼하고 신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에 동참한 자들을 찾아서 구원의 표를 하라고 하십니다. 에스겔 시대에 사람들이 종교심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장로들도 성전에 와서 우상을 열심히 섬겼고, 제사장들도 동방태양을 섬겼고, 여자들도 담부스를 위해 애곡했습니다. 왕들도 다메섹의 우상을 데려다가 섬겼습니다. 종교적인 열심은 있었지만, 대상이 잘못되었습니다. 백성도 우상 숭배를 광범위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상을 만들지 말고 섬기지 말라고 제이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들 가운데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참된 신앙이 아니라고 이들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어찌 이렇게 되었습니까라고 하며 그들의 죄에 대해서 탄식하며 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이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들을 다 보고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참된 신앙을 가진 자를 다 아시고 이들의 이마에 인치시고 심판이 임하지 않게 하십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참된 백성은 그 당시에 정치적인 환경을 바꿀 힘은 없었습니다. 종교적인 분위기를 바꿀 능력이 없었습니다. 우상 숭배와 배교를 어떻게 뒤엎어볼 능력이 없었습니다. 단지 그들은 예루살렘의 가증한 죄로 인하여 탄식하며 울 수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현재 정치적인 환경, 종교적인 분위기를 바꿀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탄식하며 울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긍휼없는 하나님의 심판)

“5. 그들에 대하여 내 귀에 이르시되 너희는 그를 따라 성읍 중에 다니며 불쌍히 여기지 말며 긍휼을 베풀지 말고 쳐서 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또 하나님은 에스겔이 듣는 앞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너희는 저 사람의 뒤를 따라 성읍 가운데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쳐서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가엾게 여기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노인과 젊은이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들을 다 죽여 없애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겨운 일 때문에 슬퍼하고 신음하는 사람들 곧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에게는 손을 대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마에 두는 표는 히브리어의 마지막 알파벳 타우입니다. 왜 이마에 타우를 찍었을까요?

(십자가의 인친자)

첫째, 구약의 주석가들이 말하는데 히브리어의 타우는 영어로 T에 해당되며 십자가의 모양입니다. 십자가를 떠나서는 가는 베옷 입은 천사가 치는 인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 타우는 그리스도 십자가의 인입니다. 믿음의 인입니다. 우리의 인은 피를 믿는 자들에게 성령이 우리 마음에 인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속죄함을 받았다는 진리를 확고히 믿는 사람은 성령의 인치심이 있는 사람이요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않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출애굽기 12장에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는 재앙이 임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사망의 천사를 보냈지만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 놓은 집은 심판하지 않고 넘어갔다 해서 그 절기를 유월절이라고 부릅니다.

(최종적이고 완전한 인침)

둘째, 히브리어의 마지막 알파벳이라는 사실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한번 인치신 것은 최종적이고 완전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현재 일이든 장래 일이든 높음이든 깊음이든 아무 피조물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인처 놓은 인을 지울 자가 없고 빼앗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 성도들은 지옥 가면 어떡하나라고 걱정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대신에 참되게 믿어야 합니다. 이 사람은 죽어도 천국 간다라고 인쳐 놓고 이 인은 최종적이고 완전한 것이고 이제는 다른 인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성소에서부터 멸하기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성전에서 시작되듯이 심판도 성전에서 시작됩니다. 성전에 있는 주의 종들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들은 성전 앞에 서 있던 장로들부터 죽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성전을 더럽히라)

“7.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여호와가 또 심판을 수행하는 자들에게 너희는 성전을 더럽히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뜰에 시체로 가득 채우라고 하십니다. 이제 나가 심판을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그들이 성읍 가운데로 나가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성전은 시체로 더렵혀졌습니다. 하나님이 이제 성전을 심판하십니다.

(긍휼을 위한 기도)

“8.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었는지라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아하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살육이 계속되는 동안, 에스겔은 혼자 거기에 있었습니다. 에스겔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부르짖으며 주 하나님, 예루살렘에다가 이렇듯 주의 진노를 쏟으시냐고 아뢰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사람들을 주께서 친히 다 멸하실 작정이냐고 여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겨달라고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심히 중한 유다 족속의 죄)

“9.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나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여호와께서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들의 행위대로 그들의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 여호와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너무나 크고, 땅은 피로 가득 차 있고, 이 성읍은 불법으로 꽉 차 있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여호와가가 이 땅을 버렸으며,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말이나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불신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며, 가엾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행실을 따라서, 그들의 머리 위에 그대로 갚아 줄 뿐입니다.

(순종한 천사)

“ 11. 보라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먹 그릇을 찬 사람이 복명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 하더라” 그런데 모시 옷을 입고 허리에 먹통을 찬 사람이 와서 주님께서 저에게 명하신 대로, 제가 다 수행하였다고 보고하였습니다. 그는 말씀대로 순종하여 죄를 인하여 애통하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하였습니다.

(애통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

마태복음 5장 4절에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죄로 인하여 애통하는 사람이 여기 예수 그리스도의 인치심을 받고 위로를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과 세상의 죄를 애통해하고 우는 그 믿음을 귀히 보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혼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들어 있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천국의 인,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인치심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에스겔 9장 강해 탄식하여 우는 자

에스겔 9장 1-에스겔 9장 11

요절 에스겔 9장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에스겔 9장 강해 끝입니다.

에스겔 9장. 성전에서부터 시작되는 긍휼이 없는 심판

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 audio element.

말씀내용

9장. 성전에서부터 시작되는 긍휼이 없는 심판 (찬 494)

1. 에스겔은 환상에서 예루살렘을 관할하는 자들 즉, 성전을 지키는 보호자들(guardians)을 본다(1). 살상 무기를 가진 사형집행인(executioner)의 모습을 한 그들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어버린 예루살렘 거민을 심판할 것이다. 그들 6명 중 한 사람은 죽이는 무기 대신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그릇 즉 필기구를 가지고 있었다(2). 그들은 성전 안으로 들어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상징하는 놋제단 앞에 섰다(2).

2. 그가 주목하는 더 무서운 장면은 그룹들 사이에 계신 하나님께서 일어나 성전 문지방으로 옮겨가시는 모습이다(3). 모든 가증한 죄악이 은밀하게 행해지는 성전에 하나님은 더 이상 계실 수 없으셨다(8:6). 그는 곧 하나님께서 성전을 완전히 떠나 예루살렘 동편 산에 이르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11:23). 하나님께서는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 사람에게, 예루살렘 거리를 다니며 거기서 자행되는 모든 가증한 범죄로 인해 탄식하고 우는 자들의 이마에 표시를 하라고 명하셨다(4). 이것은 문자적으로 히브리 알파벳의 마지막 자인 ‘타우’(t)표시를 이마에 하라는 것인데, 이는 임박한 심판에서 그들이 하나님께 속해있음을 사형집행인들에게 알게 하여 심판을 면하게 하는 표다. 바벨론의 1차 침공(주전 597년) 전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거리에서 의인을 하나도 찾을 수 없었지만(렘 5:1), 침공 후에 소수의 각성된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범죄를 인해 탄식하고 기도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며 ‘애통하는 자들’이며(마 5:4,6) 회개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의인과 악인이 아니라 회개하는 자와 회개치 않는 자가 구분된다. 먹그릇을 찬 자가 회개한 자들의 이마에 한 표시를 따라 사형집행인들은 심판을 행하는데 결코 그들은 먹그릇 찬 자를 앞서 행하지 못한다(5).

3. 긍휼이 없는 심판은(5) 성전에서 시작된다(6). 경건의 책임을 지닌 늙은 자(장로)들부터 시작하여 남녀노소 모두에게 이를 것이다(6). 하나님의 분노 앞에서 에스겔은 엎드리고 부르짖을 뿐이다(8). 에스겔은 남은 자 모두를 멸하시면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을 온 세계 모든 열방에게 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와 목적이 그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은 8:18에서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아끼거나 긍휼히 여기지 않고 심판하실 것이다(10).

4.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라고 썼다(벧전 4:17). 하나님의 심판은 세상에만 임하지 않는다. 심판은 교회에서 시작되며 교회의 사람들, 특히 지도자들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것은 긍휼이 없고 아끼지 않으시고 분노를 쏟으시는 심판이 될 것이다. 인자와 긍휼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죄악의 댓가는 얼마나 큰 것인가? 그러나 이 생각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도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진노를 쏟으셨고 심판을 행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성자를 향하여 “내가 너를 아껴보지 아니하고 긍휼을 베풀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실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조금의 긍휼함도 없이 아들에게 부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그 보혈을 인하여 용서받았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났다.

5.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십자가 은혜로만 저희가 하나님의 심판날에 견딜 수 있음을 알며,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도록 성령의 은사를 더하여 주옵소서.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들을 정결하고 거룩하게 하사,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러 온 세상을 향하여 비추는 교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에스겔 9:1-11 이마에 표하라

[동영상 설교]

에스겔 9:1-11 이마에 표하라 2012. 1. 11

1 또 그가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이르시되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이 각기 죽이는 무기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2 내가 보니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부터 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죽이는 무기를 잡았고 그 중의 한 사람은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3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 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5 그들에 대하여 내 귀에 이르시되 너희는 그를 따라 성읍 중에 다니며 불쌍히 여기지 말며 긍휼을 베풀지 말고 쳐서 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7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8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었는지라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아하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9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나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여호와께서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들의 행위대로 그들의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 11 보라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먹 그릇을 찬 사람이 복명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 하더라

에스겔 8장에서는 성전 안에 우상숭배가 가득함을 보았습니다. 여인들과 장로들과 제사장들조차 성전에서 여호와를 등지고 태양신과 담무스를 위하여 경배하였습니다. 이런 우상숭배는 여호와께서 성전을 떠나시도록 하는 반역이었습니다. 이러한 예루살렘의 성전에 대하여 하나님은 심판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에스겔 8:18절입니다.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이런 우상숭배로 심판이 집행되는 장면이 에스겔서 9장입니다.

9:1-2절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되는데 각기 죽일 무기를 든 여섯 사람이 북향한 문에서 옵니다. 이들은 성을 관할하는 자들인데 이제는 성을 심판하는 자로 세워집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천사들로 봅니다. 출애굽 때에 10번째 재앙에서 어린 양의 피를 바르지 아니한 집의 장자를 치던 그런 모습입니다. 또 이사야 시대에 산헤립의 군대를 치던 그런 모습입니다. 그리고 다른 모습의 한 사람은 서기관의 먹 그릇을 허리에 차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이 예루살렘의 적을 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치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3-4절입니다. 그룹에 머물러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이르러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 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서 이릅니다. 예루살렘의 성읍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집행 직전에 심판에서 제외될 사람들을 표시하라고 합니다. 이 표시는 히브리어 철자의 제일 마지막 철자인 타우라는 철자로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마에 표시조차 마지막이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5-7절입니다. 이마에 표가 없는 자들은 불쌍히 여기지 말고 긍휼을 베풀지 말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죽이라고 합니다. 그 심판의 집행은 여호와의 성소에서부터 시작하라고 합니다. 성전의 늙은 자들부터 심판이 집행이 됩니다. 늙은 자란 백성의 대표인 장로들을 말합니다. 이들이 여호와를 배반하는 일에 앞장선 자들입니다. 그리하여 그 시체를 성전에 채우라고 합니다. 성전은 시체로 더럽히면 안 되는 곳인데 시체로 채우라고 하는 것은 이제 성전도 버림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8절입니다. 심판이 집행 될 때에 에스겔 홀로 있었습니다. 그때 에스겔이 여호와께 엎드려 부르짖습니다.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이러한 중보적인 간구에 대하여 하나님은 언급이 없습니다. 선지자는 심판의 일방적인 선포만 전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미리보고서 중보의 역할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에스겔의 간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심판만 선언하시고 집행하십니다. 북 이스라엘의 아모스도 심판의 소식에 중보 하지만 결국은 심판이 일어납니다.

아모스 7:1-9절을 봅니다. “봉독“ 아모스 선지자는 북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한 선지자입니다. 아모스가 여호와께서 보여주시는 심판을 환상으로 보게 됩니다. 그 첫째가 메뚜기 재앙입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설수 있느냐며 있느냐에 중보 할 때에 심판을 연기하십니다. 두 번째 환상은 불입니다. 역시 아모스가 간구하자 뜻을 돌이키십니다. 그러나 마지막 다림줄의 심판에서는 더 이상 중보가 없습니다. 이제는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북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도 우상숭배로 인한 것입니다.

본문 9-10절입니다. 에스겔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은 집행이 됩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고 돌보지 아니하신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언약을 배반하고서는 하나님을 탓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돌보시지 않으시기에 자기들이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고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고 하십니다.

11절입니다.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먹 그릇을 찬 사람이 주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다고 합니다. 주께서 명령하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 성읍에서 일어나는 가증한 일을 보고서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시하는 일을 마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마에 표를 받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여인들과 백성의 장로들과 제사장과 대제사장까지 다 여호와를 등지고 태양신과 온갖 우상에게 절하는 그 예루살렘에 과연 몇 사람이 이마에 표를 받았겠습니까?

예레미야 5:1절을 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예루살렘 성읍에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과 함께 비추어보면 이마에 표를 받을 자가 거의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미 여호와를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배불리 먹였더니 그 힘으로 우상숭배하고 간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찌 이런 나라를 심판하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이 멸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이유는 예레미야와 에스겔 두 곳의 말씀을 보면 아주 분명합니다. 예루살렘의 일어나는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들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롯이 구원받은 것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도 있었지만 롯이 그 성읍에서 일어나는 일로 인하여 마음이 상하였다고 합니다. 베드로후서 2:6-7절입니다.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롯이 비록 소돔과 고모라에 살았지만 그의 심령이 상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탄식과 마음의 상함이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한번 봅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몸이 성전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성전인데 우리의 마음에 도대체 무엇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까? 예레미야와 에스겔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 안에 우상이 가득하듯이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평소에 탄식하며 우는 것은 무엇 때문에 탄식하며 울고 있습니까?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이 없다고 탄식하십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랑하지 아니함에 대하여 탄식하십니까?

제가 어제 극동방송 녹음을 하고 오는 중에 라디오 설교를 들었습니다. 어느 유명한 부흥사인데 창원에도 몇 몇 큰 교회에서 부흥회를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십분 강의에서 모세 언약을 말하면서 왜 인간이 율법적인 행위로 복을 받을 수가 없고 의에 이를 수가 없는지를 증거 하면서 아브라함이 행위로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라고 녹음을 하고 오는 중에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말하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부자가 되고 자녀가 번성하고 엄청난 복을 받은 것은 아브라함이 예배를 잘 드렸고 십일조를 하였고 순종하여서 그렇게 복을 받았다고 하면서 온갖 세상의 복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설교를 들으면서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인데 하는 탄식과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주일 낮에 갈라디아서를 보면서 아브라함의 복이 무엇이라고 보았습니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이방인인 우리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복입니다. 그런데 예배 잘 드리고 십일조 잘하고 순종을 잘하여 복을 받자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세 가지 잘해서 복을 받을 수가 결코 없습니다. 모든 율법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말을 듣고서 열심히 노력하여 자신이 받아낼 수 있는 복을 말하는 것은 아브라함 언약도 모세 언약도 모르고 거저 내 잘 되고 내 집안 잘되자는 것입니다. 이런 설교를 들으면서 우리는 이 땅의 교회의 현실을 보면서 탄식하여 울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런 설교를 은근히 좋아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하고 그것도 열심히 하기만 하면 온갖 세상의 복을 다 준다고 하니 그렇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설교를 듣고 그 말을 따라 열심히 해 보니 병이 고침을 받고, 부자가 되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간혹 있는 간증을 자꾸 내세우니 많은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은 왜 그런 복을 받지 못하느냐고 물어보면 아직 충성과 헌신의 잔이 채워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말에 목을 매면서 달려가는 사람들은 주님을 사랑해서입니까? 그렇게 함으로 나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것입니까? 거의 다 후자일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12-19절을 봅니다. “봉독” 예수 믿고 세상의 복을 받는 것으로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재림하실 때에 그의 영원한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때에 이 세상의 영광이라는 것들은 다 불살라 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성도라면 무엇을 즐거워해야 합니까? 세상에 대하여 부요한 자들은 울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고난 받는 자는 즐거워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살아가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 영광을 받으시고서 보내신 영이 영광의 영입니다. 그 영광의 영이 어디에 계십니까? 14절을 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는 자 위에 함께 하시는 것이 영광의 영입니다. 세상의 악행으로 고난을 받지 말고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심판받을 세상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꾸어 섬기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와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우리의 모습과 우리 교회의 모습과 이 땅의 교회를 보면서 우리는 탄식하며 울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17-18절을 봅니다.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에스겔서에서 이마에 표 받은 자 외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진멸을 당하는데 어디서 누구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성전에서 장로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도 심판이 어디에서 시작이 됩니까? 하나님의 집이라는 교회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에스겔서에서 인치는 작업이 끝났다고 합니다. 이미 하늘나라에서는 인치는 작업이 마쳤습니다. 그러면 인침을 받은 자가 누구겠습니까? 내 안에, 가정 안에, 교회 안에 가증한 일을 보면서 탄식하며 우는 자들입니다. 이것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마에 표를 받은 자는 이런 말씀에 동의가 되면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 땅의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탄식하며 울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키워드에 대한 정보 에스겔 9장 강해

다음은 Bing에서 에스겔 9장 강해 주제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필요한 경우 더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의 다양한 출처에서 편집되었습니다. 이 기사가 유용했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하루 한 장] 에스겔9장_이마에 표를 그리라

  • 홍융희
  • 홍융희목사
  • 성민교회
  • 부산성민교회
  • 하루한장
  • 분홍목사
  • 에스겔 9장
  • 에스겔 강해
  • 에스겔 설교
[하루 #한 #장] #에스겔9장_이마에 #표를 #그리라


YouTube에서 에스겔 9장 강해 주제의 다른 동영상 보기

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 한 장] 에스겔9장_이마에 표를 그리라 | 에스겔 9장 강해,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See also  루마퓨전 노이즈 제거 | 진짜 쉽게 아이폰 아이패드로 동영상 합성을 하자! 크로마키 배경 합성 방법 With 루마퓨전 Ipad Chroma Key 145 개의 베스트 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