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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장 강해 | [하루 한 장] 에스겔1장_하나님의 모습이 보이니 294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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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17 (월) [하루 한 장]“하나님의 모습이 보이니” (겔1장)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에스겔 1장은 에스겔의 소명이
언제 어떻게 임했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유다가 망해가던 때
여호야긴 왕과 같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간 포로 가운데 있던
제사장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이사야의 거룩함이나
예레미야의 간절함, 다니엘의
번듯한 성공스토리는 없었지만
나라를 잃은 절망의 시대에
하나님의 분명한 임재와 영광을
환상가운데 보고 그대로 선포한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바라본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의 지혜와 사자의 용맹함,
소의 성실과 독수리의 민첩함으로
그 백성을 지키시며 함께하시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셨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영광을
놓치지 말고 붙잡읍시다
그것을 누리며 전하며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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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1장 강해 – 네이버 블로그

에스겔 1장 강해. <여호와의 권능이 임하여>. 본문/ 겔 1:1-14. 오늘 본문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던 에스겔이라는 사람에게 여호와의 권능이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1/29/2021

View: 4036

에스겔서 1장 주석 – 다음블로그

에스겔서 1장 주석 겔1:1~28 출처 △1: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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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0/22/2021

View: 8166

2019/06/24(월) “에스겔 1:1-28” / 작성: 김소리

본문 에스겔 1:1-28 찬송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에스겔은 주전 6세기의 선지자 이름이자, 그를 통한 말씀 선포를 기록한 책의 제목입니다.

+ 여기에 보기

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12/9/2022

View: 9642

[에스겔 1장 – 교사용]

에스겔 1장. 1. 여호야긴 왕이 누구며 누구에게 사로잡혔는가? 그 결과는? 이스라엘의 실질적 마지막 왕(그 후에 꼭두각시 왕 시드기야가 있긴 하지만), 바벨론의 2차 …

+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Source: www.skhong.org

Date Published: 12/18/2022

View: 8080

히브리어 에스겔 1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 보기에 심히 두려우며 – 이는 궁창이 맑고 투명하며 어떤 흠이나 부정들을 배격하는 온전한 상태이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게 한다는 의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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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ripol.tistory.com

Date Published: 4/10/2021

View: 6336

예스겔 강해 – 옛신앙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진술대로(1:8), 우리는 성경의 원본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 에스겔 40장부터 48장까지에 계시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대한 예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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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oldfaith.net

Date Published: 8/18/2022

View: 1012

에스겔강해(01)(첫회) 에스겔이 본 네 생물들과 하나님의 보좌의 …

그 중에서도 오늘은 에스겔서 강해 첫시간인 만큼 에스겔서가 과연 어떤 … 전반부(겔1~32장)는 심판에 관한 예언이요, 후반부(겔33~48장)는 회복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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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ongtanms.kr

Date Published: 9/22/2021

View: 2919

매일묵상 – 하늘에 나타난 움직이는 하나님의 보좌 (에스겔 1장)

계시록 1:18에서 주석 같이 빛난 분,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룹 천사가 날개를 위로 ( 민-러-마알라, 11,22절)하면서 두 날개로 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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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reformedjr.com

Date Published: 4/27/2021

View: 4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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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에스겔 1장 강해

  • Author: 홍융희
  • Views: 조회수 11,461회
  • Likes: 좋아요 252개
  • Date Published: 2019. 6. 1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i7b5ZruHVbM

에스겔1장 강해

에스겔 1장 강해

<여호와의 권능이 임하여>

본문/ 겔 1:1-14

오늘 본문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던 에스겔이라는 사람에게 여호와의 권능이 임하여 천사로 여겨지는 특이한 네 생물을 보고 그것을 묘사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여호와의 권능이 임하는 것에 대해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1.장소 문제가 아님

에스겔은 혈통이 제사장 가문입니다. 에스겔은 포로로 잡혀 온지 4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가 성전봉사 나이인 30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거룩한 성전에서 봉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성전은 저 멀리 이스라엘에 있습니다. 그는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습니다. 그는 매우 괴로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포로로 잡혀 온 바벨론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말씀에 합당한 사람으로 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임하셨습니다.그를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사용하셨습니다.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시는 그 시간 예루살렘의 성전에는 많은 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지는 않았습니다. 예레미야의 이야기에서 알다시피 그 때 거짓 제사장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을 통해 볼 때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는 것은 장소 문제가 아닌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 필요합니다. 권능이 임하지 않을 때 장소를 포함한 환경적인 어떤 다른 것을 탓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권능이 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십시오. 에스겔의 이름의 뜻이며, 에스겔 성경의 주제이기도 한 “하나님이 우리를 강하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강하게 하시는데 다른 어떤 것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오직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권능릉 힘입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기도 하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때로 우리가 하나님의 강력한 권능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힘으로만 가능한 일이 있을 때 그 때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권능으로 가능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어떤 상황이든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2.영광스런 존재

하나님께서는 먼저 에스겔에게 영광스러운 것을 보게 합니다. 폭풍과 큰 구름 가운데 빛나는 쇠같은 것이 나타나고 그 속에 특이한 형상의 네 생물을 봅니다. 그리고 그 네 생물 가운데 불과 번개 같은 모양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현상을 봅니다. 그러한 형상들을 에스겔이 보게 되어을 때 그의 머리속에는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올랐을까요? 황홀함과 영광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가 보고 있는 영광스러운 모습은 본래 영광의 지극히 작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모습에도 에스겔의 마음은 영광과 경외감으로 가득하였을 것입니다.

에스겔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을 때 그는 무엇을 생각하며 살았을까요? 아마 “힘들다” “우리 나라는 왜 이리 약하여 이렇게 되었나” “이 나라의 운명이 너무 슬프다” 그런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으나 환경에 의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밖에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영광스러운 존재인 천사의 모습과 하나님의 임재현상을 보여 주심으로 에스겔의 마음에 영광을 심어 주고 계십니다. 에스겔은 그런 형상을 보면서 순식간에 영광의 마음으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영광의 마음을 회복하십시오. 꼭 영광스러운 존재를 보아야만 영광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영광스러운 하나님께서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를. 독생자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그 하나만 깊이 묵상해도 세상의 일들에 찌들리고 상처받았던 마음이 눈녹듯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합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합니다.

에스겔에게 여호와의 권능이 임하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임하였습니다. 그에게 임한 권능은 포로생활에서 힘없고 소망없던 그들에게 다시 소망을 갖게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고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러해야 합니다. 그래서 혹여나 우리의 생활에 힘이 없고 소망이 없었다면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권능이 임하여 어둠은 물러가고 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지극히 크신 영광>

본문/ 겔 1:15-28

오늘 본문은 어제의 이야기에 이어 에스겔이 본 네 생물과 그 위의 보좌의 형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지극히 크신 영광에 대해 함께 말씀을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1.주관하시는 영광

오늘 본문을 보면 네 생물 밑에 있는 바퀴에 대해 많이 이야기합니다. 이 바퀴를 칼빈은 변화무쌍한 세상의 일로 말합니다. 세상의 역사이지요.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생물들도 영이 가려 하는 곳으로 가고 바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영이 그 바퀴들 가운데에 있음이니라. 그들이 가면 이들도 가고 그들이 서면 이들도 서고 그들이 땅에서 딜릴 때에는 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영이 그 바퀴들 가운데에 있음이더라”(20-21절) 세상은 변합니다. 세상은 복잡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으니 그 세상의 통치자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지극히 크신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 뜻을 가지고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천사와 세상은 각각 다르고 완전히 별개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 천사도 그리고 바퀴도 움직입니다. 세상이 제멋대로 돌아가고, 사람의 죄는 세상을 더욱더 이상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그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에 의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등한히 하는 사람이 있어 왜 그러냐고 물으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말이 맞는 말인지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주인을 세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더욱더 영광의 하나님을 더 잘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세상에서 더 잘사는 비결이 됩니다.

역사 속에서 살면서 우리는 역사만 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권능의 손으로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십시오.

2.영광 앞에

에스겔은 자기 앞에 나타난 그 영광스러운 존재에 대해 자세히 묘사한 후 최종적으로 어떻게 합니까? 엎드립니다.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28절) 영광을 알고 그 영광 앞에 서면 영광스럽고 기쁘기도 하지만 그러나 또한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엎드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잊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잊어버림으로 자기 멋대로 행동합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자기 멋대로 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앞에서 엎드리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본적인 두려움의 마음을 갖지 않고 하나님을 대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많이 놓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설수록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회복하십시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며 포근한 마음도 갖아야 하지만 두려워하는 마음이 더 기본적인 마음입니다. 영광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영광이 에스겔에게 임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에스겔은 그 앞에 꿇어 엎드렸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임을 우리의 마음으로 더욱더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생을 살면 살수록 하나님 앞에 경외하는 마음으로 꿇어 엎드리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가운데

겔 1:1-21

하나님은 그의 백성과 항상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그 영광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영광을 안고 살고 있습니까?

에스겔에게 임한 하나님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3절) 에스겔서의 저자인 에스겔은 유다가 망하기 10년 전(B.C. 597)쯤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포로로 잡혀 온지 5년 지난 후(B.C. 593년)에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가 시작되어 에스겔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 본국은 여전히 주변 열강에 의해 풍전등화와 같은 처지에 있었고,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왔던 1차 포로 때와 에스겔이 포로로 잡혀온 2차 포로 때의 인원을 합쳐 약 5000여명의 유대인 포로들은 불신앙 가운데 있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은 그발 강 가에서 집단 주거지를 형성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이방 나라에서 살고 있는 그 암담한 현실 속에 있을 때 에스겔은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 당시 에스겔은 30세였습니다. 에스겔은 제사장 집안의 사람이었습니다. 본래 제사장은 30세가 되면 공식적으로 일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30세가 되어서도 섬겨야 할 성전이 없는 이방나라에서 에스겔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에스겔서를 보면 에스겔은 포로로 잡혀와서도 여전히 말씀에 따라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이 그랬던 것처럼 에스겔도 이방 나라 바벨론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고 있었기에 제사장인 에스겔이 섬길 성전이 없다는 것이 더욱더 서글펐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히 임하셨습니다.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보게되었습니다. 에스겔이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본 곳은 유대 땅이 아니라 바벨론이었습니다. 성전이 아니라 이방문화가 꽃피웠던 땅 그발 강가였습니다. 그리고 제사장 옷을 입고 있는 에스겔이 아니라 울고 있는 에스겔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곳에 임하셨습니다.

영광스러움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3절) 에스겔은 여호와의 권능이 그에게 임하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권능이었습니다. 커다란 권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위대하기에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에스겔이 있는 곳이 비록 이방나라였고, 에스겔이 포로로 있는 처지라 하여도 하나님의 권능은 바로 그곳에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절대권능의 특징입니다. 절대 권능은 그 무엇에도 제한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임할 때 세상 모든 것은 그 앞에 꿇어 엎드릴 것입니다.

“내가 보니 북방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 번쩍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4절) 여호와의 권능이 에스겔에게 임할 때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커다란 폭풍과 시꺼먼 구름이 몰려왔습니다. 그 속에 아주 강렬한 불빛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묘사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적 존재에 대한 것입니다. 그 형상이 참으로 영광스러워 에스겔은 그 형상을 묘사하지만 제대로 다 묘사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각 사면이 사람, 사자, 독수리, 소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생물의 모양은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서는 번개가 나며 그 생물의 왕래가 번개 같이 빠르더라”(13-14절) 또한 불의 형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빠르기가 번개 같았습니다. 하나님을 시중하는 천사가 이렇게 표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신비하고 영광스러웠습니다.

이러한 영광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하늘이 열리며’ 보였습니다. 에스겔이 있는 그곳에서 하늘이 열리자 그에게 그러한 영광이 보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비록 포로생활을 하고 있었고, 희망이 없어 보였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여전히 함께 계셨습니다. 그들 위에 있는 하늘은 언제나 영광스러운 하나님께서 큰 영광으로 그들과 함께 계십니다. 포로로 잡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그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어디에 있든 우리가 눈을 들어 우리 바로 위에 있는 하늘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이 열려’ 우리가 진실을 보게 되면 우리가 얼마나 큰 영광 가운데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큰 영광을 그들의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도 우리가 어디에 있든 바로 이러한 거룩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을 아십니까? 참으로 놀랍고 참으로 위대한 영광입니다. 성경은 믿음을 가진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이 계시다고 말합니다. 그 영광은 참으로 큰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 그리고 바로 우리 위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영광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슴에 안고 힘있게 사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각주> 3절 단 쇠 열로 시뻘겋게 된 쇠

하나님 앞에 설 때

겔 1:22-28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어떻게 서 있어야 합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서 우리는 너무 어리석은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드라마 사극을 보면 왕 앞에 서면 두려워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한 인간 앞에 설 때도 그렇게 두려워하면서 정작 하나님 앞에 설 때는 두려운지를 모르고 설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어떤 자세로 서야 할까요?

두려움으로

“그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펴 있어 보기에 심히 두려우며”(22절) 영광스러운 생물의 형상 위로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펴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이곳을 에스겔이 보았을 때 그 거룩함(수정 같이 맑음)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을 보는 것만으로도 에스겔이 두려워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크고 거룩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궁창 밑에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향하여 펴 있는데 이 생물들은 두 날개로 몸을 가렸고 저 생물도 두 날개로 몸을 가렸으며”(23절) 천사들은 자신들의 몸을 날개로 가리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고 있을까요?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감히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하나님만이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사람이 보기에 크고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만이 크고 위대한 분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감추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하나님 앞에 서는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 자신을 드러내면서 서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감추고(낮추고) 하나님께 나갑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며 두려움을 갖습니까? 두려움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지 못하였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설 때 너무 잘났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너무 자신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갈 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더불어 높고 높은 분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여전히 죄 된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고 있으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참으로 낮은 자임을 기억하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나가야 합니다.

엎드리어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이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리어 그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들으니라”(26-28절) 에스겔이 하나님의 형상을 간접적으로 보았을 때 그는 두려움으로 바로 엎드리었습니다. 고개를 땅에 박고 오직 음성만을 들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곳에 있었으면 하나님의 형상이 어떠하실지 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은 아직도 하나님 앞에 서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실재로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 앞에 선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엎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적으로 본자는 죽습니다. 그 영광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설 때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엎드리는 것밖에 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도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경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영광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그 하나님을 고백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은 오늘 에스겔이 하나님을 특별히 만나는 것과는 다소 다르지만 그러나 여전히 그 분이 하나님이신 것만은 동일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의 우리 삶도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야 합니다. 영광의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리어 하나님을 높이며 그 분을 경배해야 합니다. 특별히 예배시간은 더욱더 그렇습니다. 예배는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뛰어 넘어 하나님께서 특별히 임하시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있습니까? 엎드리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높고 높으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리어 있으십시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 엎드리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잘 서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르기는 하지만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 낸 하나님만 부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 하나님이 앞에서 두려움으로 떨어야 합니다. 그 앞에서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두려워하는 마음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마음입니다.

[출처] 에스겔 1장|작성자 하늘기쁨

냉수 한 그릇

출처 ◈에스겔서 1장 주석 겔1:1~28

▲1: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제 삼십 년’ – 어느 때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 구약에 제 사장들이 삼십 세에 그의 직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볼 때(민 4:23, 30, 39, 43)

선지 자요 제사장인 에스겔이 소명받은 나이를 가리킨다 .

2) 희년에서 삼십 년이 지난 때를 가리킨다.

3) 요 시야의 종교 개혁이 시행된 즉위 18년부터(왕하 22:3-23:23) 삼십 년이 지난 때

(B.C. 593년)를 가리킨다.

특히 칼빈(Calvin)은 요시야 왕 18 년에 유월절 의식이 실행되어진 점으로 미루어(왕하 23:23)

이때가 희년으로 추정된다 고 언급하면서 이를 지지한다.

4) 바벨론 제국이 세워진 후 삼십 년이 지난 때를 말 한다.

5) 본서가 편집된 후 삼십 년이 지난 때를 가리킨다

4), 5)는 거의 타당성이 희박하며

1) 또는 3)이 가능하다 하겠다.

‘넷째 달’ – 바벧론식 이름으로는 담무스(Tammuze) 월로서 오늘날 태양력의 6, 7월에 해당.

‘그발 강가’ – 일반적으로 이는 유프라테스 강에서 흘러나와 닙불(Nippur)을 남동쪽

으로 거쳐 다시 에렉(Erech)이라는 도시 근방에서 유프라테스 강에 합류하는 거대한

운하로 본다.

‘하늘이 열리며’ – 마 3:16;요 1:51;행 7:56;10:11;계 4:1 등에도 나오는 이 표현은,

하나님이 성도의 영적 눈을 밝히사 천사의 비밀에 속한 초월적 사실을 특별히

보게 하 시는 것을 나타낸다(Calvin).

‘하나님의 이상’ – 비전인데, 하나님 의 여러 계시의 수단 중 하나를 가리키는 말이다.

(단 2:19;슥 1:18-21 등)

▲1: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여호야긴 왕의 사로잡힌 지 오 년 – 바벧론의 2차 침입(B.C. 597년, 왕하 24:6-17)

이 있은 지 오 년째 되는 해인 B.C. 593년을 말한다.

▲1:3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갈대아 땅’ – 바사 만에서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있는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이다(창 11:31;느 9:7). 이는 바벧론 왕 나보폴라살과 그의 아들 느부갓네살

에 의해 바벧론 제국의 중심 지역으로 자리잡았다.

‘여호와의 말씀이…특별히 임하고’

‘에스겔’이란 뜻은 ‘하나님이 강하게 하시다’,

‘하나님께서 단련시키시다’의 뜻이다.

이는 포로 기간 중에 유다의 죄악성과 심판, 예 루살렘의 파괴 및 회복 등을 전한

그의 사역적 특성과 잘 어울린다.

한편 에스겔처럼 제사장 가문 출신이면서 선지자 사역을 감당한 자는 구약에서

사무엘(삼상 2:35;3:20;7:9;16:2-13), 예레미야(렘 1:1), 스가랴(느 12:16;슥 1:1;7:3) 등이 있다.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권능'(야드)이란 원어상 ‘손'(the hand, NASB)을 가리키는 말로서

하나님의 권능, 능력을 나타내는 신인동형동성론(神人 同形同性論)적인 표현이다.

(3:22, 8:1, 33:22, 37:1)

▲1:4 내가 보니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북방에서부터’ – 이에 대해서는 그 의견이 분분하며 어느 것 하나를 단정적으로 지 지하기 힘들다.

1) 렘 1:13, 14와 같이 북쪽의 바벧론 제국이 이스라엘을 침략해 오 는 것을 암시한다.

2) 흔히 북쪽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묘사되 어진다는 점에서(욥 37:22;시 48:2;사 14:13),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것을 암시한다.

3) 이는 단순히 하나님의 초월성을 암시한다.

‘폭풍과 큰 구름’ – 이에 관해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암시한다는 견해와,

단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현상으로 보는 견해로 나뉜다.

(출 19:9, 16, 18;삿 5:4;왕상 19:11;시 18:10;슥 9:14)

‘그 속에서 불이…비취며’ – 이는 27절과 연관되는 구절로서 하나님의 임재,

특히 ‘소멸하는 불'(히 12:29)이신 하나님의 임재의 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단 쇠’ – 일반적으로 금과 은의 혼합물 또는 분광성(分光性)

금속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표현한 말이다.

▲1:5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사람의 형상이 있더라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 ‘네 생물’이란 9:3, 10:1, 3 이하에 나타나는

‘그룹 들’과 동일한 존재들이다.

‘넷’이란 숫자는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 혹은 피조물의 완전수를 가리킨다.

(14:21;창 2:10;계 7:1, 4).

본 구절은 하나님의 온전한 피조물로서 네 생물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수종, 보좌하고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함께 나타난 것을 암시한다.

▲1:6 그들에게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각각 네 얼굴’ – 계 4:7, 8에 언급된 네 생물들이 각기 하나님의 얼굴로 묘사된 것 과는 달리

한 생물이 네 개의 얼굴 모습을 지닌 것을 나타낸다.

이는 곧 존재의 특성 을 나타내준다(10절 참조).

‘네 날개가 있고’ – 사 6:2의 ‘스랍’이나 계 4:8의 ‘네 생물’이 여섯 날개를 가진 것 과 비교된다.

▲1:7 그들의 다리는 곧은 다리요 그들의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광낸 구리 같이 빛나며

‘마광한 구리같이 빛나며’ – 이는 주 예수님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계 1:15)

라고 한 말씀과 유사하며, 네 생물들이 불로 연단된 구리처럼 흠과 부정함이 없는 존재로

하나님 앞에 서 있고 행하는 자들임을 암시한다.

▲1:8 그 사방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 그 네 생물의 얼굴과 날개가 이러하니

‘그 사면 날개 밑에는…손이 있더라’ – 이는 네 생물이 하나님의 뜻을 성실히 수행 하고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1:9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갈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 네 생물들이 상호 연합함으로써 독자적으로 행하지 않고

서로 일치하며 동역함을 나타낸다.

‘돌이키지 아니하고…곧게 행하며’ – 이들이 하나님의 뜻과 일을 수행할 때 다른 길 로 가거나

서로 분열하지 않고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사역을 숭행할 때에 서로 일치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을 보여준다.

(수 1:7, 행 1:14)

▲1:10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여기서 ‘사람’이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자로서

영적, 인격적 존재임을 암시하면서(창 1:26, 27)

특히 지혜를 사용하는 총명한 존재임을 나타낸다.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 사자는 짐승 중 가장 강인하고 사나운 존재로서

힘 과 권능, 또는 왕의 주권을 상징한다(창 49:9;잠 30:30).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 소는 열심히 일하는 짐승으로서 충성 또는 봉사를 상 징한다.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 독수리는 하늘 높이 힘있게 비상하는 존재로서

민 첩함 또는 고상함을 상징한다.

▲1:11 그 얼굴은 그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렸으며

‘둘은 몸을 가리웠으며’ – 이는 네 생물들이 거룩하고 위엄있으신 하나님을 수종들고

섬기는 자들로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연약함과 제한됨을 겸손히 인정함을 암시한 다(사 6:2).

▲1:12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그 생물들도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영이 어느 편으로 가려면’ – ‘영'(루아흐)은 원어상 ‘바람’, ‘호흡’, ‘영’ (Spirit)을 뜻하는 말로서,

네 생물의 영을 뜻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그 보다는 이들을 통제하고 주권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이 ‘신’은 에스겔을 인도하시는 분으로도 자주 언 급되고 있다(2:2;3:12, 24;11:24).

▲1:13 또 생물들의 모양은 타는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에서는 번개가 나며

‘또 생물의 모양은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 ‘숯불’과 ‘횃불’이란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 내리락하는 ‘불’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외적 현상으로서,

불이 붙었으나 사그러 지지 않는 호렙 산의 ‘떨기나무'(출 3:1-4)의 현상과 유사하다.

그리고 본 구절은 네 생물들이 위엄과 권위로서, 소멸하시는 불(히 12:29)로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존재임을 암시한다.

‘그 불이…번개가 나며’ – 소멸하시는 불로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암시한다.

특히 ‘번개’란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 나타나는 것으 로,

이것 역시 불의와 부정을 소멸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표현해준다.

(출 19:16;단 10:6;계 4:5;8:5)

▲1:14 그 생물들은 번개 모양 같이 왕래하더라

‘그 생물의 왕래가…빠르더라’ – 네 생물들이 하나님을 수종하고 그분의 뜻을 수행 함에 있어서

신속하고 민첩함을 암시한다. 한편 예수께서는 당신의 재림이 번개처럼

순식간에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마 24:27).

▲1:15 내가 그 생물들을 보니 그 생물들 곁에 있는 땅 위에는 바퀴가 있는데

그 네 얼굴을 따라 하나씩 있고

‘그 생물 곁 땅 위에 바퀴가 있는데’ – ‘바퀴’란 네 생물들이 활동할 때 신속하고 수 월하게 행하도록

도와주는 존재 또는 그 네 새물의 일부분인 것으로 보인다(20 절, 10:9, 12).

혹자는 이 ‘바퀴’를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언약궤

를 받치어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단(platform)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또 다른 사람은 이를 세상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변화를 암시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Calvin).

▲1:16 그 바퀴의 모양과 그 구조는 황옥 같이 보이는데 그 넷은 똑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모양과 구조는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넷이 한결같은데’ –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일치와 상호 조화와 중요성을 암시한다(9절 주석 참조).

‘황옥’ – 이것은 단 10:6에서는 주님의 몸을 묘사하는 색으로 언 급되는데

이는 주님의 고귀함, 신성의 영광스러움을 암시한다.

본 구절에서도 이 바퀴 가 그 위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신성의 영광을 나타낸다 하겠다.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 일반적으로 이는 바퀴 안에 또 다른 바퀴가

직 각으로 교차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바퀴 구조는

1) 하나님의 섭리의 다양성,

2) 세상사와 하나님의 섭리 간의 긴밀한 연관성,

3) 수종드는 자의 철저한 순 종 등을 상징한다는 견해들이 있다.

▲1:17 그들이 갈 때에는 사방으로 향한 대로 돌이키지 아니하고 가며

‘행할 때에는…돌이키지 않고 행하며’ – 바퀴가 각 생물의 ‘네 얼굴을 따라 하나씩’ (15절)

사방으로 있으나 행할 때는 한 방향으로, 돌이킴이 없이 곧바로 나아간다는 뜻 (9, 12절 참조).

▲1:18 그 둘레는 높고 무서우며 그 네 둘레로 돌아가면서 눈이 가득하며

‘그 네 둘레로 돌아가면서 눈이 가득하며’ – 이는 슥 3:9, 4:10, 계 4:6의 말씀과 유사 한 표현으로서

바퀴의 눈이 세상의 모든 것(일)을 감찰하되 온전히 빠짐없이 통찰함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온 천지를 감찰하시고 모든 것을 아신다는 전지 성(全知性)을

상징적으로 암시한다(대하 16:9. 시 139:1-12).

▲1:19 그 생물들이 갈 때에 바퀴들도 그 곁에서 가고 그 생물들이 땅에서 들릴 때에 바퀴들도 들려서

‘생물이 행할 때에…바퀴도 들려서’

생물들과 바퀴들이 일치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수행하며 그 뜻을 좇음을 뜻한다.

▲1:20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생물들도 영이 가려 하는 곳으로 가고 바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영이 그 바퀴들 가운데에 있음이니라

‘이는 생물의 신이 그 바퀴 가운데 있음이라’ – ‘생물의 신’이란 12절에 언급된 ‘ 신’,

즉 하나님의 성령을 가리키며, 이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 생물들의 생명과 힘의 근원,

그리고 주관자가 되심을 나타낸다.

이와 같은 사실은 신약의 관점에서 볼 때 성 도들이 ‘생명’되시는(요 14:6)

그리스도를 믿을 때 ‘생명의 성령’으로 거듭나고(요 3:6)

그 ‘생명의 성령’에 의해 살아감을 엿보게 한다(롬 8:2;갈 5:25).

▲1:21 그들이 가면 이들도 가고 그들이 서면 이들도 서고 그들이 땅에서 들릴 때에는

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영이 그 바퀴들 가운데에 있음이더라

‘저들이 행하면.. 그 바퀴 가운데 있음이더라’

이는 19, 20절의 반복이다. 이같은 반복은 생물과 바퀴가 상호 연관되어

그 신의 지배를 받고 그의 뜻대로 움직인다는 사 실을 강조하면서

본 단락의 대미(大尾)를 장식하고 새로운 단락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인 듯하다.

▲1:22 그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있어 보기에 두려운데

그들의 머리 위에 펼쳐져 있고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펴 있어’ – ‘수정’의 히브리어 ‘코라흐’의 원래 의미는 ‘얼음’이다(욥6:16, 37:10).

따라서 ‘수정 같은 궁창’이란 얼음처럼 맑고 막힘 이 없는 듯한 투명한 궁창을 뜻한다.

그리고 ‘궁창’이란 창 1:6-8에서 쓰인 말과 같 다.

이로 볼 때 선지자가 본 것은 생물들의 머리 위에 있는 맑고 투명한 창공과 같은 곳이었으며,

곧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다(26절).

이는 죄와 부정을 티 끌만치도 용납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순결성을 엿보게 한다.

‘보기에 심히 두려우며’ – 이는 궁창이 맑고 투명하며 어떤 흠이나 부정들을 배격하 는

온전한 상태이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게 한다는 의미이다.

▲1:23 그 궁창 밑에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향하여 펴 있는데

이 생물은 두 날개로 몸을 가렸고 저 생물도 두 날개로 몸을 가렸더라

‘그 궁창 밑에…서로 향하여 펴 있는데’ – 궁창 위에 계시는 영광과 위엄의 하나님 앞에서

그 영광을 보좌하는 생물(그룹)들이 날개를 펴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모습은 지성소 내의 그룹들이 그 날개를 펴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속죄소 위를

감 싸 덮고 있는 모습을 상기시킨다(출 25:18-20).

▲1:24 생물들이 갈 때에 내가 그 날개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으며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으며 떠드는 소리 곧 군대의 소리와도 같더니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내렸더라

‘많은 물 소리와도 같으며’ – 이는 네 생물들의 날개 소리가 미세하거나 연약하지 않 고

장엄하며 웅장함을 나타낸다. 아울러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암시하는 표현 이다.

(43:2, 시 29:3, 4, 계 1:15)

전능자의 음성 – 성경에서는 종종 하나님의 음성을 우뢰 소리로 비유한다.

(욥 37:4, 5, 40:9, 시 18:13, 29:3, 104:7)

그 날개를 드리우더라 – 활동하던 날개를 접어두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거하는 자 세이다.

이는 곧 하나님의 다음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스스로의 행동을 멈추고 대기한 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1:25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서부터 음성이 나더라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내렸더라

‘궁창 위에서부터 음성이 나더라’ – 궁창 위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발하여짐을 뜻한다(26절).

▲1:26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 ‘보좌’란 하나님이 좌정하시어 만왕의 왕, 만주의 주(계 19:16)로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주권적 통치자 이심을 시사한다.

하나님의 보좌는 의와 공의를 그 기초로 삼고(시 89:14;97:2) 영광으로 충만해 있다(사 6:1-3).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 ‘남보석’이란 일반적으 로 푸른 빛과 자주 빛의 중간의 빛을 띠는

보석으로서 대제사장의 흉패 둘째 줄에 박 혀있는 것이기도 하다(출 28:10, 39:11).

여기서는 하나님 보좌가 신성한 것임을 암시 한다(출 24:10 참조).

‘사람의 모양 같더라’ – 이는 인간 형상의 근원이 되시는(창 1:27) 하나님을 엿보게 한다.

▲1:27 내가 보니 그 허리 위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 같고

내가 보니 그 허리 아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방으로 광채가 나며

‘내가 본즉…광채가 나며’ – 4절 주석을 참조하라.

특히 본절의 ‘불 같고’, ‘불 같 아서’란 표현은 심판주로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위엄을 암시한다.

▲1:28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무지개 같으니’

색색이 어우러져 비추는 영롱한 무지개 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찬연하고 아름다움을 뜻한다.

한편 무지개는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성을 입증하기 위한 언약의 증표로서

노아에게 나타났고(창 9:12-14),

하나님께서 좌정하시는 보좌 주위에 영롱하게 둘려지기도 한다(계 4:3).

‘여호와의 영광’ – ‘영광'(카보드)이란 원래 ‘무거움’, ‘풍부함’이란 뜻이 며,

하나님께 대하여 사용될 경우 하나님의 위엄과 거룩하심의 외적 표현 혹은 그러한 속성을 나타낸다.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 위엄있으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경배의 태 도를 뜻한다.

(창 17:3, 17, 24:52, 출 34:8, 수 5:14, 대하 7:3)

2019/06/24(월) “에스겔 1:1-28” / 작성: 김소리

본문 에스겔 1:1-28

찬송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에스겔은 주전 6세기의 선지자 이름이자, 그를 통한 말씀 선포를 기록한 책의 제목입니다. 에스겔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신다’라는 뜻으로 타협하지 않는 심판의 메시지와 이후 회복의 메시지를 선포하도록 부르심 받은 선지자에게 적절한 이름입니다. 에스겔은 고향에서 강제로 끌려 온 공동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의 죄를 폭로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이스라엘과 모든 열방 위에 드러내는 직무를 감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자신의 언약 안에 두신 이스라엘은 수 세기에 걸쳐 불순종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했습니다. 신명기 29-31장에서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열국을 사용한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궤적은 이미 주어졌습니다. 또한 이스라엘과 유다를 정복한 이방 나라들 역시 하나님 앞에서 무죄한 것은 아니며 자신들의 죄악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을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지키실 것이며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심으로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에스겔서는 삼중구조로서 1-24장은 예루살렘에 임한 파멸, 25-32장은 열방에 임하게 될 심판, 33-48장은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을 알려줍니다. 오늘 1장의 내용은 에스겔 선지자를 부르신 하나님의 영광과 그를 보좌하는 네 생물과 네 바퀴에 대한 환상입니다.

에스겔의 소명(1-3)

(1-3)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에스겔은 주전 597년 겨우 세 달 동안 왕위에 있었던 유다의 왕 여호야긴과 함께 바벨론으로 잡혀온 예루살렘 사회의 상류 계층에 속한 제사장이었습니다. 1절의 서른째 해가 어떤 연대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에스겔의 나이로 보는 견해가 가장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레위인 제사장으로서 회막의 일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가 30세부터 50세까지인데(민 4:3), 에스겔이 첫 환상을 봤을 때 서른 살이었다면, 그가 50세가 되었을 때인 바벨론 유수가 있은 지 25년 째, 새로워진 이스라엘을 위한 새로운 체제를 자세히 설명하는 두 번째 성전 환상을 소개하며 그의 사역은 마쳐집니다(겔 40:1). 포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 의식에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제사장으로 일한 기간이 되었을 시기와 일치합니다. 성전 제사장으로 공직을 시작하는 대신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 그는 선지자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서에는 선지자와 제사장의 흥미로운 조합을 접하게 됩니다. 그발 강가에 서 있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난 것은 마치 서른 살에 그리스도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실 때를 떠올리게 합니다. 성령님께서 예수님 위에 내려와 머무시고 사역 내내 성령 충만하셨던 것처럼, 에스겔에게도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였습니다. 이렇게 그가 계시를 받은 연대를 이중으로 밝히고 장소를 설명하는 것은, 계시 받은 사건의 역사성을 이야기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여기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는 언제나 성령의 힘을 받아 사역했음을 볼 때, 우리 역시 성령을 통해서 말씀에 순종할 능력을 갖출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네 생물과 네 바퀴 환상(4-21)

(4-5) 내가 보니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사람의 형상이 있더라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을 동반한 하나님의 현현입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은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는 높은 보좌 위에 계신 여호와의 환상 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사 6장), 모세는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신 18장). 그러나 에스겔에게 새로운 것이 있다면 하나님 영광의 현현이 정적이지 않고 포로들의 땅에서 움직임이 가득 찬 “폭풍” 가운데 계신 여호와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활동하시며 움직이고 계십니다. 다만, 그의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백성과 싸우기 위해서 오고 있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즉,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하여 열방을 심판하실 것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런 하나님을 수종하는 임무를 가진 폭풍과 구름 속에 있는 네 생물과 네 바퀴의 환상이 드러납니다.

(10-11)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그 얼굴은 그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렸으며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그 생물들도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를 인간의 언어를 통해서 표현하고 있기에 생물에 대한 이런 상징적인 묘사 하나하나를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려면 혼란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선지자는 나중에 네 생물의 정체가 그룹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겔 10:15). 그래서 이 생물은 하나님을 수종하는 특별한 임무를 가진 천사들로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놀라운 환상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위대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네 생물에 대하여 신약의 네 복음서를 나타낸다고 보는 해석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 생애의 다양한 측면을 나타내는 해석도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와 주의 종 된 우리에게 주는 교훈으로 관련지어 볼 수도 있는데 그런 관점으로 보면, 날개로 몸을 가렸다는 말씀은 이들의 겸손을 나타냅니다. 이사야서에 등장한 그룹도 여섯 날개 가운데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었습니다. 또한 이 생물이 갈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기뻐하며 뒤로 물러나지 않습니다(히 10:38). 이는 하나님의 명령을 시행하는 데 있어서 늦장을 부리지 않으며 신속한 민첩성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말씀을 대하는 자세를 돌이켜 볼 수 있습니다. 겸손하고, 나의 욕심을 따라 돌이키지 않고 곧게 행하며, 신속히 순종합니다.

(19-21) 그 생물들이 갈 때에 바퀴들도 그 곁에서 가고 그 생물들이 땅에서 들릴 때에 바퀴들도 들려서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생물들도 영이 가려 하는 곳으로 가고 바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영이 그 바퀴들 가운데에 있음이니라 그들이 가면 이들도 가고 그들이 서면 이들도 서고 그들이 땅에서 들릴 때에는 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영이 그 바퀴들 가운데에 있음이더라

바퀴에 대한 언급은 다니엘서에도 나타나는데,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단 7:9)라고 합니다. 바퀴는 보좌가 이동을 할 때 필요한 장치입니다.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여 행하였나니”(삼하 7: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성전과 다르게 회막은 간편하게 이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애굽을 나올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백성 앞에서 행진하시는 왕이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으로 인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계시던 하나님께서 바벨론으로 행차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퀴는 하나님의 섭리를 비유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과 계획을 모든 피조물들의 활동으로 만들어지는 사건 위에서 천사들을 통해 주관하고 움직이십니다. 어디든지 영이 가려 하는 곳에 생물도 가고, 바퀴도 그 곁에서 들려 그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의 종 된 우리는 생물처럼, 바퀴처럼 성령을 따라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보좌 위의 사람 같은 이(22-28)

(22-23) 그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있어 보기에 두려운데 그들의 머리 위에 펼쳐져 있고 그 궁창 밑에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향하여 펴 있는데 이 생물은 두 날개로 몸을 가렸고 저 생물도 두 날개로 몸을 가렸더라

에스겔은 이제 땅을 벗어나 하늘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환상으로 봅니다. 창세기에서 나타난 궁창은 하늘의 지붕을 형성하는 반면 여기서는 생물들의 날개로 지탱되며 그 너머로 환상의 절정이 나타나는 경계선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자 앞으로 곧게 행하며 번개 모양같이 왕래하고 돌이키지 않던 그룹들이 궁창 밑에서 몸을 가리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생물들이 자신들의 날개를 내려 몸을 가리게 했겠습니까?

(26-28)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내가 보니 그 허리 위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 같고 내가 보니 그 허리 아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방으로 광채가 나며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

그 중심은 “보좌 위의 사람 같은 이”에 있습니다. 하늘을 뜻하는 궁창 위에 보좌가 있는데, 비어 있지 않고 사람의 모양 같은 분이 계십니다. 에스겔은 궁창에서 나는 음성을 들었을 때에 요한이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올려다보았으며, 그 때에 인자 같은 이를 보았습니다(계 1:12-13). 천사들의 머리 위에 있는 궁창이 그의 발아래에 있습니다. 사람의 모양을 한 이가 왕으로서 보좌 위에 나타나셨지만 인간의 영광보다 더 큰 영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단 쇠 같은 모습, 즉 그 속과 주위가 불같으며 사방의 광채가 나는 모습은 마치 빛을 옷으로 입으신 것 같습니다. 그 분에 대한 묘사를 볼 때 금세 이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본래 볼 수 없는 하나님께서 볼 수 있도록 나타나셨다면, 이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고,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신, 성육신하시기 이전의 그리스도임을 알게 됩니다. 28절에서 이는 여호와이셨다고 말하지 않고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이었고, 이 영광의 형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영광스러운 존재로 나타내시기 기뻐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낯선 땅에서 포로로 살아가는 에스겔이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시고 자신을 영광 가운데 계시하셨습니다. 이것은 죄악 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우리의 영적 눈을 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말씀 속에서 보고 말씀하시는 그의 음성을 듣고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이는 에스겔 위에 하나님의 권능이 임한 것처럼, 성령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 앞에 에스겔이 엎드린 것처럼 우리도 겸손히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에 엎드려 경외함으로 환난가운데 있는 우리와 공동체를 위하여 간구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두에게, 우리를 위하여 나타나신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며, 본체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친밀하심이 경험되길 소망합니다. 영광 가운데 높이 계신 하나님께서 삶의 여러 문제를 통과하는 우리 교우님들의 심령 가운데 함께 하셔서 죄는 모양이라도 버리고 약자를 도우며 말씀을 삶으로 드러내도록 힘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정직하게 행하고 어려운 자를 돕는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거룩하시고 영광가운데 계신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영광의 광채이시며 본체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으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으로 삼아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말씀 앞에 겸손히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신속히 순종하며 약자를 사랑하기에 힘쓰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친밀함이 가득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에스겔의 이름 뜻을 볼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어떻게 대하시는 분으로 여겨집니까?

2. 네 생물과 바퀴의 환상을 보면서 하나님 말씀 앞에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3. 보좌 위의 사람의 모양 같은 형상을 볼 때 에스겔은 어떤 태도를 취했으며, 동일하게 하루를 살아갈 때 말씀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작성 : 김소리)

히브리어 에스겔 1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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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예히 비쉘로쉼 솨나 바르비이 바하밋솨 라호데쉬 와아니 베토크 학골라 알 네하르 케바르 니프테후 핫솨마임 와에르에 마르오트 엘로힘

개역개정,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새번역,1 때는 제 삼십년 넷째 달 오일이었다. 그 때에 내가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과 함께 그발 강 가에 있었다. 나는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 보여 주신 환상을 보았다.

우리말성경,1 30년째 되는 해 넷째 달 5일에 내가 그발 강가에서 포로들 가운데 있는데 하늘이 열려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다.

가톨릭성경,1 제삼십년 넷째 달 초닷샛날이었다. 나는 유배자들과 함께 크바르 강 가에 있었다. 그때 하늘이 열리면서 나는 하느님께서 보여 주시는 환시를 보았다.

영어NIV,1 In the thirtieth year, in the fourth month on the fifth day, while I was among the exiles by the Kebar River, the heavens were opened and I saw visions of God.

영어NASB,1 Now it came about in the thirtieth year, on the fifth day of the fourth month, while I was by the river Chebar among the exiles, the heavens were opened and I saw visions of God.

영어MSG,1 When I was thirty years of age, I was living with the exiles on the Kebar River. On the fifth day of the fourth month, the sky opened up and I saw visions of God.

영어NRSV,1 In the thirtieth year, in the fourth month, on the fifth day of the month, as I was among the exiles by the river Chebar, the heavens were opened, and I saw visions of God.

헬라어구약Septuagint,1 και εγενετο εν τω τριακοστω ετει εν τω τεταρτω μηνι πεμπτη του μηνος και εγω ημην εν μεσω της αιχμαλωσιας επι του ποταμου του χοβαρ και ηνοιχθησαν οι ουρανοι και ειδον ορασεις θεου

라틴어Vulgate,1 et factum est in tricesimo anno in quarto mense in quinta mensis cum essem in medio captivorum iuxta fluvium Chobar aperti sunt caeli et vidi visiones Dei

히브리어구약BHS,1 וַיְהִי בִּשְׁלֹשִׁים שָׁנָה בָּרְבִיעִי בַּחֲמִשָּׁה לַחֹדֶשׁ וַאֲנִי בְתֹוךְ־הַגֹּולָה עַל־נְהַר־כְּבָר נִפְתְּחוּ הַשָּׁמַיִם וָאֶרְאֶה מַרְאֹות אֱלֹהִים׃

성 경: [겔1:1]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소명받은 장소와 시간]

󰃨 제 삼십 년 – 어느 때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 구야게서 제사장들이 삼십 세에 그의 직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볼 때(민 4:23, 30, 39, 43) 선지자요 제사장인 에스겔이 소명받은 나이를 가리킨다(Origen, Patrick, Dyer, Wycliffe, Hengstenberg). (2) 희년에서 삼십 년이 지난 때를 가리킨다(Hitzig, Kimchi). (3) 요시야의 종교 개혁이 시행된 즉위 18년부터(왕하 22:3-23:23) 삼십 년이 지난 때(B.C. 593년)를 가리킨다(Jerome, Herrman, Theodoret). 특히 칼빈(Calvin)은 요시야 왕 18년에 유월절 의식이 실행되어진 점으로 미루어(왕하 23:23) 이때가 희년으로 추정된다고 언급하면서 이를 지지한다. (4) 바벨론 제국이 세워진 후 삼십 년이 지난 때를 말한다(Ewald, Scaliget). (5) 본서가 편집된 후 삼십 년이 지난 때를 가리킨다(Albright, Howie). 그러나 이중에서 (4), (5)는 거의 타당성이 희박하며 (1) 또는 (3)이 가능하다 하겠다.

󰃨 사 월 – 바벨론식 이름으로는 담무스(Tammuze) 월로서 오늘날 태양력의 6, 7월에 해당한다.

󰃨 그발 강가 – 일반적으로 이는 유프라테스 강에서 흘러나와 닙불(Nippur)을 남동쪽으로 거쳐 다시 에렉(Erech)이라는 도시 근방에서 유프라테스 강에 합류하는 거대한 운하로 본다(Wycliffe, Cooke, Dyer).

󰃨 하늘이 열리며 – 마 3:16;요 1:51;행 7:56;10:11;계 4:1 등에도 나오는 이 표현은, 하나님이 성도의 영적 눈을 밝히사 천사의 비밀에 속한 초월적 사실을 특별히 보게 하시는 것을 나타낸다(Calvin).

󰃨 하나님의 이상 – ‘이상’의 히브리어 ‘마르아'(*)는 ‘보다’, ‘모습’ 등을 뜻하는 ‘마르에'(*)의 여성형으로서, 히브리어 ‘하존'(*)과 더불어 하나님의 여러 계시의 수단 중 하나를 가리키는 말이다(단 2:19;슥 1:18-21 등).

마하밋솨 라호데쉬 히 핫솨나 하하미쉬트 레갈루트 함메렠 요야킨

개역개정,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새번역,2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잡혀 온 지 오 년째가 되는 그 달 오일에,

우리말성경,2 그때는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잡혀간 지 5년째 되던 해로 그 달 5일에

가톨릭성경,2 그달 초닷샛날, 곧 여호야킨 임금의 유배 제오년에,

영어NIV,2 On the fifth of the month–it was the fifth year of the exile of King Jehoiachin–

영어NASB,2 (On the fifth of the month in the fifth year of King Jehoiachin’s exile,

영어MSG,2 (It was the fifth day of the month in the fifth year of the exile of King Jehoiachin

영어NRSV,2 On the fifth day of the month (it was the fifth year of the exile of King Jehoiachin),

헬라어구약Septuagint,2 πεμπτη του μηνος τουτο το ετος το πεμπτον της αιχμαλωσιας του βασιλεως ιωακιμ

라틴어Vulgate,2 in quinta mensis ipse est annus quintus transmigrationis regis Ioachin

히브리어구약BHS,2 בַּחֲמִשָּׁה לַחֹדֶשׁ הִיא הַשָּׁנָה הַחֲמִישִׁית לְגָלוּת הַמֶּלֶךְ יֹויָכִין׃

성 경: [겔1:2]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소명받은 장소와 시간]

󰃨 여호야긴 왕의 사로잡힌 지 오 년 – 바벨론의 2차 침입(B.C. 597년, 왕하 24:6-17)이 있은 지 오 년째 되는 해인 B.C. 593년을 말한다.

하요 하야 데발 아도나이 엘 에헤즈켈 벤 부지 하코헨 베에레츠 카스딤 알 네하르 케바르 와테히 알라우 솸 야드 아도나이

개역개정,3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새번역,3 주님께서 ㉠바빌로니아 땅의 그발 강 가에서 ㉡부시의 아들인 나 에스겔 제사장에게 특별히 말씀하셨으며, 거기에서 주님의 권능이 나를 사로잡았다. / ㉠또는 ‘갈대아’ ㉡또는 ‘부시 제사장의 아들 나 에스겔에게’

우리말성경,3 갈대아 사람의 땅 그발 강가에 있던 부시의 아들이며 제사장인 에스겔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다. 그곳에서 여호와의 손이 에스겔 위에 있었다.

가톨릭성경,3 주님의 말씀이 칼데아인들의 땅 크바르 강 가에 있는, 부즈의 아들 에제키엘 사제에게 내리고, 주님의 손이 그곳에서 그에게 내리셨다.

영어NIV,3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Ezekiel the priest, the son of Buzi, by the Kebar River in the land of the Babylonians. There the hand of the LORD was upon him.

영어NASB,3 the word of the LORD came expressly to Ezekiel the priest, son of Buzi, in the land of the Chaldeans by the river Chebar; and there the hand of the LORD came upon him.)

영어MSG,3 that GOD’s Word came to Ezekiel the priest, the son of Buzi, on the banks of the Kebar River in the country of Babylon. GOD’s hand came upon him that day.)

영어NRSV,3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the priest Ezekiel son of Buzi, in the land of the Chaldeans by the river Chebar; and the hand of the LORD was on him there.

헬라어구약Septuagint,3 και εγενετο λογος κυριου προς ιεζεκιηλ υιον βουζι τον ιερεα εν γη χαλδαιων επι του ποταμου του χοβαρ και εγενετο επ’ εμε χειρ κυριου

라틴어Vulgate,3 factum est verbum Domini ad Hiezecihel filium Buzi sacerdotem in terra Chaldeorum secus flumen Chobar et facta est super eum ibi manus Domini

히브리어구약BHS,3 הָיֹה הָיָה דְבַר־יְהוָה אֶל־יְחֶזְקֵאל בֶּן־בּוּזִי הַכֹּהֵן בְּאֶרֶץ כַּשְׂדִּים עַל־נְהַר־כְּבָר וַתְּהִי עָלָיו שָׁם יַד־יְהוָה׃

성 경: [겔1:3]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소명받은 장소와 시간]

󰃨 갈대아 땅 – 바사 만에서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있는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이다(창 11:31;느 9:7). 이는 바벨론 왕 나보폴라살과 그의 아들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 제국의 중심 지역으로 자리잡았다.

󰃨 여호와의 말씀이…특별히 임하고 – ‘에스겔’이란 뜻은 ‘하나님이 강하게 하시다’, ‘하나님께서 단련시키시다’의 뜻이다. 이는 포로 기간 중에 유다의 죄악성과 심판, 예루살렘의 파괴 및 회복 등을 전한 그의 사역적 특성과 잘 어울린다. 한편 에스겔처럼 제사장 가문 출신이면서 선지자 사역을 감당한 자는 구약에서 사무엘(삼상 2:35;3:20;7:9;16:2-13), 예레미야(렘 1:1), 스가랴(느 12:16;슥 1:1;7:3) 등이 있다. 또한 본 구절의 ‘특별히 임하고’의 히브리어 ‘하요 하야'(*)는 ‘하야'(*)의 반복적인 표현으로서 그 의미를 강조해준다.

󰃨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 ‘권능'(*, 야드)이란 원어상 ‘손'(the hand, NASB)을 가리키는 말로서 하나님의 권능, 능력을 나타내는 신인동형동성론(神人同形同性論)적인 표현이다(3:22;8:1;33:22;37:1).

와에레 웨힌네 루아흐 세아라 바아 민 핯차폰 아난 가돌 웨에쉬 미트랔카하트 웨노가흐 로 사비브 우밑토카흐 케엔 하하쉬말 밑토크 하에쉬

개역개정,4 내가 보니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새번역,4 그 때에 내가 바라보니, 북쪽에서 폭풍이 불어오는데, 큰 구름이 밀려오고, 불빛이 계속 번쩍이며, 그 구름 둘레에는 광채가 나고, 그 광채 한가운데서는 불 속에서 빛나는 금붙이의 광채와 같은 것이 반짝였다.

우리말성경,4 내가 보니 북쪽에서 폭풍이 불고 있었다. 큰 구름과 번쩍거리는 불, 그 주위에는 광채가 있었고 광채의 중앙은 불 가운데로부터 오는 황갈색 빛과 같았다.

가톨릭성경,4 그때 내가 바라보니, 북쪽에서 폭풍이 불어오면서, 광채로 둘러싸인 큰 구름과 번쩍거리는 불이 밀려드는데, 그 광채 한가운데에는 불 속에서 빛나는 금붙이 같은 것이 보였다.

영어NIV,4 I looked, and I saw a windstorm coming out of the north–an immense cloud with flashing lightning and surrounded by brilliant light. The center of the fire looked like glowing metal,

영어NASB,4 And as I looked, behold, a storm wind was coming from the north, a great cloud with fire flashing forth continually and a bright light around it, and in its midst something like glowing metal in the midst of the fire.

영어MSG,4 I looked: I saw an immense dust storm come from the north, an immense cloud with lightning flashing from it, a huge ball of fire glowing like bronze.

영어NRSV,4 As I looked, a stormy wind came out of the north: a great cloud with brightness around it and fire flashing forth continually, and in the middle of the fire, something like gleaming amber.

헬라어구약Septuagint,4 και ειδον και ιδου πνευμα εξαιρον ηρχετο απο βορρα και νεφελη μεγαλη εν αυτω και φεγγος κυκλω αυτου και πυρ εξαστραπτον και εν τω μεσω αυτου ως ορασις ηλεκτρου εν μεσω του πυρος και φεγγος εν αυτω

라틴어Vulgate,4 et vidi et ecce ventus turbinis veniebat ab aquilone et nubes magna et ignis involvens et splendor in circuitu eius et de medio eius quasi species electri id est de medio ignis

히브리어구약BHS,4 וָאֵרֶא וְהִנֵּה רוּחַ סְעָרָה בָּאָה מִן־הַצָּפֹון עָןָן גָּדֹול וְאֵשׁ מִתְלַקַּחַת וְנֹגַהּ לֹו סָבִיב וּמִתֹּוכָהּ כְּעֵין הַחַשְׁמַל מִתֹּוךְ הָאֵשׁ׃

성 경: [겔1:4]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네 생물의 이상]

󰃨 북방에서부터 – 이에 대해서는 그 의견이 분분하며 어느 것 하나를 단정적으로 지지하기 힘들다. (1) 렘 1:13, 14와 같이 북쪽의 바벨론 제국이 이스라엘을 침략해 오는 것을 암시한다(G.C. Anlders). (2) 흔히 북쪽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묘사되어진다는 점에서(욥 37:22;시 48:2;사 14:13),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것을 암시한다(Plumtre, Carley). (3) 이는 단순히 하나님의 초월성을 암시한다(Wycliffe). 폭풍과 큰 구름 – 이에 관해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암시한다는 견해와(Anlders, Calvin), 단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현상으로 보는 견해(출 19:9, 16, 18;삿 5:4;왕상 19:11;시 18:10;슥 9:14, Carley, Plumtre, Wycliffe)로 나뉜다.

󰃨 그 속에서 불이…비취며 – 이는 27절과 연관되는 구절로서 하나님의 임재, 특히 ‘소멸하는 불'(히 12:29)이신 하나님의 임재의 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단 쇠(*, 하하쉬말)란 일반적으로 금과 은의 혼합물 또는 분광성(分光性) 금속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표현한 말이다.

우밑토카흐 데무트 알바 하요트 웨제 마르에헨 데무트 아담 리헨나

개역개정,5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사람의 형상이 있더라

새번역,5 그러더니 그 광채 한가운데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습은 사람의 형상과 같았다.

우리말성경,5 거기에 살아 있는 네 생물의 모습이 있었는데 그들의 생김새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가톨릭성경,5 또 그 한가운데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습은 이러하였다. 그들은 사람의 형상과 같았다.

영어NIV,5 and in the fire was what looked like four living creatures. In appearance their form was that of a man,

영어NASB,5 And within it there were figures resembling four living beings. And this was their appearance: they had human form.

영어MSG,5 Within the fire were what looked like four creatures vibrant with life. Each had the form of a human being,

영어NRSV,5 In the middle of it was something like four living creatures. This was their appearance: they were of human form.

헬라어구약Septuagint,5 και εν τω μεσω ως ομοιωμα τεσσαρων ζωων και αυτη η ορασις αυτων ομοιωμα ανθρωπου επ’ αυτοις

라틴어Vulgate,5 et ex medio eorum similitudo quattuor animalium et hic aspectus eorum similitudo hominis in eis

히브리어구약BHS,5 וּמִתֹּוכָהּ דְּמוּת אַרְבַּע חַיֹּות וְזֶה מַרְאֵיהֶן דְּמוּת אָדָם לָהֵנָּה׃

성 경: [겔1:5]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네 생물의 이상]

󰃨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 ‘네 생물’이란 9:3;10:1, 3 이하에 나타나는 ‘그룹들’과 동일한 존재들이다. ‘넷’이란 숫자는 하나님의 무소 부재(無所不在)하심 혹은 피조물의 완전수를 가리킨다(14:21;창 2:10;계 7:1, 4). 본 구절은 하나님의 온전한 피조물로서 네 생물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수종, 보좌하고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함께 나타난 것을 암시한다.

웨알바아 파님 레에하트 웨알바 케나파임 레아하트 라헴

개역개정,6 그들에게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새번역,6 얼굴이 각각 넷이요, 날개도 각각 넷이었다.

우리말성경,6 네 생물은 각각 네 개의 얼굴과 네 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가톨릭성경,6 저마다 얼굴이 넷이고, 날개도 저마다 넷이었다.

영어NIV,6 but each of them had four faces and four wings.

영어NASB,6 Each of them had four faces and four wings.

영어MSG,6 but each also had four faces and four wings.

영어NRSV,6 Each had four faces, and each of them had four wings.

헬라어구약Septuagint,6 και τεσσαρα προσωπα τω ενι και τεσσαρες πτερυγες τω ενι

라틴어Vulgate,6 et quattuor facies uni et quattuor pinnae uni

히브리어구약BHS,6 וְאַרְבָּעָה פָנִים לְאֶחָת וְאַרְבַּע כְּנָפַיִם לְאַחַת לָהֶם׃

성 경: [겔1:6]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네 생물의 이상]

󰃨 각각 네 얼굴 – 계 4:7, 8에 언급된 네 생물들이 각기 하나님의 얼굴로 묘사된 것과는 달리 한 생물이 네 개의 얼굴 모습을 지닌 것을 나타낸다. 이는 곧 존재의 특성을 나타내준다(10절 참조).

󰃨 네 날개가 있고 – 사 6:2의 ‘스랍’이나 계 4:8의 ‘네 생물’이 여섯 날개를 가진 것과 비교된다.

웨라글레헴 레겔 예솨라 웨카프 락레헴 케카프 레겔 에겔 웨노체침 케엔 네호쉐트 칼랄

개역개정,7 그들의 다리는 곧은 다리요 그들의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광낸 구리 같이 빛나며

새번역,7 그들의 다리는 모두 곧고, 그 발바닥은 송아지의 발바닥과 같고, 광낸 놋과 같이 반짝거렸다.

우리말성경,7 네 생물의 다리는 일직선이었고 그들의 발은 송아지 발 같았으며 광낸 청동색같이 빛났다.

가톨릭성경,7 다리는 곧고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았는데, 광낸 구리처럼 반짝거렸다.

영어NIV,7 Their legs were straight; their feet were like those of a calf and gleamed like burnished bronze.

영어NASB,7 And their legs were straight and their feet were like a calf’s hoof, and they gleamed like burnished bronze.

영어MSG,7 Their legs were as sturdy and straight as columns, but their feet were hoofed like those of a calf and sparkled from the fire like burnished bronze.

영어NRSV,7 Their legs were straight, and the soles of their feet were like the sole of a calf’s foot; and they sparkled like burnished bronze.

헬라어구약Septuagint,7 και τα σκελη αυτων ορθα και πτερωτοι οι ποδες αυτων και σπινθηρες ως εξαστραπτων χαλκος και ελαφραι αι πτερυγες αυτων

라틴어Vulgate,7 et pedes eorum pedes recti et planta pedis eorum quasi planta pedis vituli et scintillae quasi aspectus aeris candentis

히브리어구약BHS,7 וְרַגְלֵיהֶם רֶגֶל יְשָׁרָה וְכַף רַגְלֵיהֶם כְּכַף רֶגֶל עֵגֶל וְנֹצְצִים כְּעֵין נְחֹשֶׁת קָלָל׃

성 경: [겔1:7]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네 생물의 이상]

󰃨 그 다리는 곧고 – ‘곧고’의 히브리어 ‘야솨르'(*)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옳은’, ‘정직한’ 등의 뜻을 내포한다. 이는 하나님의 존전에 수종드는 천사들의 성품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암시한다.

󰃨 그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 이는 송아지 발바닥처럼 둥글고 원만하여 안정되게 서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또 한편으로 송아지가 정결한 짐승으로 인정되었던 사실(레 11:3)을 상기시키는 말이기도 하다.

󰃨 마광한 구리같이 빛나며 – 이는 주 예수님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계 1:15)라고 한 말씀과 유사하며, 네 생물들이 불로 연단된 구리처럼 흠과 부정함이 없는 존재로 하나님 앞에 서 있고 행하는 자들임을 암시한다.

웨야도 위데 아담 잍타하트 카네페헴 알 알바아트 리브에헴 우프네헴 웨카네페헴 레아르바탐

개역개정,8 그 사방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 그 네 생물의 얼굴과 날개가 이러하니

새번역,8 그 생물의 사면에 달린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이 있으며, 네 생물에게는 얼굴과 날개가 있었다.

우리말성경,8 사방에 달린 그들의 날개 아래는 사람의 손들이 달려 있었다. 네 생물들에게는 각각 얼굴과 날개들이 있었는데

가톨릭성경,8 그들의 날개 밑에는 사방으로 사람 손이 보였고, 네 생물이 다 얼굴과 날개가 따로 있었다.

영어NIV,8 Under their wings on their four sides they had the hands of a man. All four of them had faces and wings,

영어NASB,8 Under their wings on their four sides were human hands. As for the faces and wings of the four of them,

영어MSG,8 On all four sides under their wings they had human hands. All four had both faces and wings,

영어NRSV,8 Under their wings on their four sides they had human hands. And the four had their faces and their wings thus:

헬라어구약Septuagint,8 και χειρ ανθρωπου υποκατωθεν των πτερυγων αυτων επι τα τεσσαρα μερη αυτων και τα προσωπα αυτων των τεσσαρων

라틴어Vulgate,8 et manus hominis sub pinnis eorum in quattuor partibus et facies et pinnas per quattuor partes habebant

히브리어구약BHS,8 [כ= וְיָדֹו] [ק= וִידֵי] אָדָם מִתַּחַת כַּנְפֵיהֶם עַל אַרְבַּעַת רִבְעֵיהֶם וּפְנֵיהֶם וְכַנְפֵיהֶם לְאַרְבַּעְתָּם׃

성 경: [겔1:8]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네 생물의 이상]

󰃨 그 사면 날개 밑에는…손이 있더라 – 이는 네 생물이 하나님의 뜻을 성실히 수행하고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호베로트 잇솨 엘 아호타흐 카네페헴 로 잇사부 벨레케탄 이쉬 엘 에벨 파나우 옐레쿠

개역개정,9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갈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새번역,9 그들의 날개 끝은 서로 닿아 있으며, 앞으로 나아갈 때에는 몸을 돌리지 않고, 각각 앞으로 곧게 나아갔다.

우리말성경,9 그들의 날개들은 서로 닿아 있었다. 그들이 움직일 때는 뒤돌지 않고 각자 자기 앞으로만 곧장 갔다.

가톨릭성경,9 그들의 날개는 서로 닿아 있으면서, 나아갈 때에는 몸을 돌리지 않고 저마다 곧장 앞으로 갔다.

영어NIV,9 and their wings touched one another. Each one went straight ahead; they did not turn as they moved.

영어NASB,9 their wings touched one another; their faces did not turn when they moved, each went straight forward.

영어MSG,9 with the wings touching one another. They turned neither one way nor the other; they went straight forward.

영어NRSV,9 their wings touched one another; each of them moved straight ahead, without turning as they moved.

헬라어구약Septuagint,9 ουκ επεστρεφοντο εν τω βαδιζειν αυτα εκαστον κατεναντι του προσωπου αυτων επορευοντο

라틴어Vulgate,9 iunctaeque erant pinnae eorum alterius ad alterum non revertebantur cum incederent sed unumquodque ante faciem suam gradiebatur

히브리어구약BHS,9 חֹבְרֹת אִשָּׁה אֶל־אֲחֹותָהּ כַּנְפֵיהֶם לֹא־יִסַּבּוּ בְלֶכְתָּן אִישׁ אֶל־עֵבֶר פָּנָיו יֵלֵכוּ׃

성 경: [겔1:9]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네 생물의 이상]

󰃨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 네 생물들이 상호 연합함으로써 독자적으로 행하지 않고 서로 일치하며 동역함을 나타낸다.

󰃨 돌이키지 아니하고…곧게 행하며 – 이들이 하나님의 뜻과 일을 수행할 때 다른 길로 가거나 서로 분열하지 않고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사역을 행할 때에 서로 일치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을 보여준다(수 1:7;행 1:14).

우데무트 페네헴 페네이 아담 우페네 아르예 엘 하야밈 레아르바탐 우페네 쇼르 메핫스모올 레아르바탄 우페네 네쉐르 레아르바탄

개역개정,10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새번역,10 그 네 생물의 얼굴 모양은, 제각기, 앞쪽은 사람의 얼굴이요,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왼쪽은 황소의 얼굴이요, 뒤쪽은 독수리의 얼굴이었다.

우리말성경,10 그들의 얼굴 생김새로 말하자면 그 네 생물들은 사람의 얼굴을 갖고 있는데 오른쪽은 사자 얼굴, 왼쪽은 황소 얼굴, 뒤쪽은 독수리 얼굴을 갖고 있었다.

가톨릭성경,10 그들의 얼굴 형상은 사람의 얼굴인데, 넷이 저마다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고 왼쪽은 황소의 얼굴이었으며 독수리의 얼굴도 있었다.

영어NIV,10 Their faces looked like this: Each of the four had the face of a man, and on the right side each had the face of a lion, and on the left the face of an ox; each also had the face of an eagle.

영어NASB,10 As for the form of their faces, each had the face of a man, all four had the face of a lion on the right and the face of a bull on the left, and all four had the face of an eagle.

영어MSG,10 Their faces looked like this: In front a human face, on the right side the face of a lion, on the left the face of an ox, and in back the face of an eagle.

영어NRSV,10 As for the appearance of their faces: the four had the face of a human being, the face of a lion on the right side, the face of an ox on the left side, and the face of an eagle;

헬라어구약Septuagint,10 και ομοιωσις των προσωπων αυτων προσωπον ανθρωπου και προσωπον λεοντος εκ δεξιων τοις τεσσαρσιν και προσωπον μοσχου εξ αριστερων τοις τεσσαρσιν και προσωπον αετου τοις τεσσαρσιν

라틴어Vulgate,10 similitudo autem vultus eorum facies hominis et facies leonis a dextris ipsorum quattuor facies autem bovis a sinistris ipsorum quattuor et facies aquilae ipsorum quattuor

히브리어구약BHS,10 וּדְמוּת פְּנֵיהֶם פְּנֵי אָדָם וּפְנֵי אַרְיֵה אֶל־הַיָּמִין לְאַרְבַּעְתָּם וּפְנֵי־שֹׁור מֵהַשְּׂמֹאול לְאַרְבַּעְתָּן וּפְנֵי־נֶשֶׁר לְאַרְבַּעְתָּן׃

성 경: [겔1:10]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네 생물의 이상]

󰃨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 여기에서 ‘사람’이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자로서 영적, 인격적 존재임을 암시하면서(창 1:26, 27) 특히 지혜를 사용하는 총명한 존재임을 나타낸다.

󰃨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 사자는 짐승 중 가장 강인하고 사나운 존재로서 힘과 권능, 또는 왕의 주권을 상징한다(창 49:9;잠 30:30).

󰃨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 소는 열심히 일하는 짐승으로서 충성 또는 봉사를 상징한다.

󰃨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 독수리는 하늘 높이 힘있게 비상하는 존재로서 민첩함 또는 고상함을 상징한다.

우프네헴 웨카네페헴 페루도트 미레모라 레이쉬 쉬타임 호베로트 이쉬 우쉬타임 메캇소트 엩 게위요테헤나

개역개정,11 그 얼굴은 그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렸으며

새번역,11 이것이 그들의 얼굴 모양이었다. 그들의 날개는 위로 펼쳐져 있는데, 두 날개로는 서로 끝을 맞대고 있고, 또 두 날개로는 그들의 몸을 가리고 있었다.

우리말성경,11 그들의 얼굴은 이렇게 생겼다. 그들의 날개는 위로 펼쳐져 있는데 각각 두 날개는 다른 생물과 서로 닿아 있고 다른 두 날개는 자기의 몸통을 덮고 있었다.

가톨릭성경,11 이것이 그들의 얼굴이었다. 그들의 날개는 위로 펼쳐진 채, 저마다 두 날개는 서로 닿고 다른 두 날개는 몸을 가리고 있었다.

영어NIV,11 Such were their faces. Their wings were spread out upward; each had two wings, one touching the wing of another creature on either side, and two wings covering its body.

영어NASB,11 Such were their faces. Their wings were spread out above; each had two touching another being, and two covering their bodies.

영어MSG,11 So much for the faces. The wings were spread out with the tips of one pair touching the creature on either side; the other pair of wings covered its body.

영어NRSV,11 such were their faces. Their wings were spread out above; each creature had two wings, each of which touched the wing of another, while two covered their bodies.

헬라어구약Septuagint,11 και αι πτερυγες αυτων εκτεταμεναι ανωθεν τοις τεσσαρσιν εκατερω δυο συνεζευγμεναι προς αλληλας και δυο επεκαλυπτον επανω του σωματος αυτων

라틴어Vulgate,11 et facies eorum et pinnae eorum extentae desuper duae pinnae singulorum iungebantur et duae tegebant corpora eorum

히브리어구약BHS,11 וּפְנֵיהֶם וְכַנְפֵיהֶם פְּרֻדֹות מִלְמָעְלָה לְאִישׁ שְׁתַּיִם חֹבְרֹות אִישׁ וּשְׁתַּיִם מְכַסֹּות אֵת גְּוִיֹתֵיהֶנָה׃

성 경: [겔1:11]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네 생물의 이상]

󰃨 둘은 몸을 가리웠으며 – 이는 네 생물들이 거룩하고 위엄있으신 하나님을 수종들고 섬기는 자들로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연약함과 제한됨을 겸손히 인정함을 암시한다(사 6:2 참조).

웨이쉬 엘 에벨 파나우 예레쿠 엘 아쉘 이흐예 솸마 하루아흐 랄레케트 예레쿠 로 잇사부 벨레케탄

개역개정,12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그 생물들도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새번역,12 그들은 ㉢영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갈 때에는, 각각 앞으로 곧게 나아갔다. 그들은 몸을 돌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 ㉢히, ‘하루아흐’

우리말성경,12 각 생물은 앞으로만 곧장 나아갔다. 영이 가는 곳마다 그들이 갔는데 가면서 몸을 돌리지 않았다.

가톨릭성경,12 그들은 저마다 곧장 앞으로 나아가는데, 몸을 돌리지 않고 어디로든 영이 가려는 곳으로 갔다.

영어NIV,12 Each one went straight ahead. Wherever the spirit would go, they would go, without turning as they went.

영어NASB,12 And each went straight forward; wherever the spirit was about to go, they would go, without turning as they went.

영어MSG,12 Each creature went straight ahead. Wherever the spirit went, they went. They didn’t turn as they went.

영어NRSV,12 Each moved straight ahead; wherever the spirit would go, they went, without turning as they went.

헬라어구약Septuagint,12 και εκατερον κατα προσωπον αυτου επορευετο ου αν ην το πνευμα πορευομενον επορευοντο και ουκ επεστρεφον

라틴어Vulgate,12 et unumquodque coram facie sua ambulabat ubi erat impetus spiritus illuc gradiebantur nec revertebantur cum ambularent

히브리어구약BHS,12 וְאִישׁ אֶל־עֵבֶר פָּנָיו יֵלֵכוּ אֶל אֲשֶׁר יִהְיֶה־שָׁמָּה הָרוּחַ לָלֶכֶת יֵלֵכוּ לֹא יִסַּבּוּ בְּלֶכְתָּן׃

성 경: [겔1:12]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네 생물의 이상]

󰃨 신이 어느 편으로 가려면 – ‘신'(*, 루아흐)은 원어상 ‘바람’, ‘호흡’, ‘영'(Spirit)을 뜻하는 말로서, 네 생물의 영을 뜻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Aalders) 그보다는 이들을 통제하고 주권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것으로 봄이 더 나을 것 같다(Alexander, Dyer). 이 ‘신’은 에스겔을 인도하시는 분으로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2:2;3:12, 24;11:24).

우데무트 하하요트 마르에헴 케가할레 에쉬 보아로트 케마르에 할랖피딤 히 미트할레케트 벤 하하요트 웨노가흐 라에쉬 우민 하에쉬 요체 바라크

개역개정,13 또 생물들의 모양은 타는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에서는 번개가 나며

새번역,13 그 생물들의 모양은 마치 활활 타는 숯불이나 횃불과 같이 보였다. 그 불은 그 생물들 사이를 오가며 빛을 냈고, 불 속에서는 번개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우리말성경,13 그 생물들의 생김새는 불타는 석탄 같은 모양이기도 하고 횃불 모양 같기도 했다. 생물들 사이에서 불이 앞뒤로 왔다 갔다 했다. 불은 밝았고 불 속에서 번개가 나왔다.

가톨릭성경,13 그 생물들 가운데에는 불타는 숯불 같은 것이 있었는데, 생물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횃불의 모습 같았고, 그 불은 광채를 낼 뿐만 아니라, 그 불에서는 번개도 터져 나왔다.

영어NIV,13 The appearance of the living creatures was like burning coals of fire or like torches. Fire moved back and forth among the creatures; it was bright, and lightning flashed out of it.

영어NASB,13 In the midst of the living beings there was something that looked like burning coals of fire, like torches darting back and forth among the living beings. The fire was bright, and lightning was flashing from the fire.

영어MSG,13 The four creatures looked like a blazing fire, or like fiery torches. Tongues of fire shot back and forth between the creatures, and out of the fire, bolts of lightning.

영어NRSV,13 In the middle of the living creatures there was something that looked like burning coals of fire, like torches moving to and fro among the living creatures; the fire was bright, and lightning issued from the fire.

헬라어구약Septuagint,13 και εν μεσω των ζωων ορασις ως ανθρακων πυρος καιομενων ως οψις λαμπαδων συστρεφομενων ανα μεσον των ζωων και φεγγος του πυρος και εκ του πυρος εξεπορευετο αστραπη

라틴어Vulgate,13 et similitudo animalium aspectus eorum quasi carbonum ignis ardentium et quasi aspectus lampadarum haec erat visio discurrens in medio animalium splendor ignis et de igne fulgor egrediens

히브리어구약BHS,13 וּדְמוּת הַחַיֹּות מַרְאֵיהֶם כְּגַחֲלֵי־אֵשׁ בֹּעֲרֹות כְּמַרְאֵה הַלַּפִּדִים הִיא מִתְהַלֶּכֶת בֵּין הַחַיֹּות וְנֹגַהּ לָאֵשׁ וּמִן־הָאֵשׁ יֹוצֵא בָרָק׃

성 경: [겔1:13]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네 생물의 이상]

󰃨 또 생물의 모양은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 ‘숯불’과 ‘횃불’이란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 내리락하는 ‘불’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외적 현상으로서, 불이 붙었으나 사그러지지 않는 호렙 산의 ‘떨기나무'(출 3:1-4)의 현상과 유사하다. 그리고 본 구절은 네 생물들이 위엄과 권위로서, 소멸하시는 불(히 12:29)로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존재임을 암시한다.

󰃨 그 불이…번개가 나며 – 소멸하시는 불로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암시한다. 특히 ‘번개’란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 나타나는 것으로, 이것 역시 불의와 부정을 소멸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표현해준다(출 19:16;단 10:6;계 4: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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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14 그 생물들은 번개 모양 같이 왕래하더라

새번역,14 그 생물들은 이쪽 저쪽으로 번개처럼 빠르게 달렸다.

우리말성경,14 생물들이 번개 모양처럼 앞뒤로 왔다 갔다 했다.

가톨릭성경,14 그리고 생물들은 번개가 치는 모습처럼 나왔다 들어갔다 하였다.

영어NIV,14 The creatures sped back and forth like flashes of lightning.

영어NASB,14 And the living beings ran to and fro like bolts of lightning.

영어MSG,14 The creatures flashed back and forth like strikes of lightning.

영어NRSV,14 The living creatures darted to and fro, like a flash of lightning.

헬라어구약Septuagint,14 (없음)

라틴어Vulgate,14 et animalia ibant et revertebantur in similitudinem fulguris coruscantis

히브리어구약BHS,14 וְהַחַיֹּות רָצֹוא וָשֹׁוב כְּמַרְאֵה הַבָּזָק׃

성 경: [겔1:14]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네 생물의 이상]

󰃨 그 생물의 왕래가…빠르더라 – 네 생물들이 하나님을 수종하고 그분의 뜻을 수행함에 있어서 신속하고 민첩함을 암시한다. 한편 예수께서는 당신의 재림이 번개처럼 순식간에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마 24:27).

웨에레 하하요트 웨힌네 오판 에하드 바아레츠 에첼 하하요트 레아르바아트 파나우

개역개정,15 내가 그 생물들을 보니 그 생물들 곁에 있는 땅 위에는 바퀴가 있는데 그 네 얼굴을 따라 하나씩 있고

새번역,15 그 때에 내가 그 생물들을 바라보니, 그 생물들의 곁 땅 위에는 바퀴가 하나 있는데, 그 바퀴는 네 얼굴을 따라 하나씩 있었다.

우리말성경,15 내가 그 생물들을 보니 네 얼굴을 가진 각각의 생물들 옆 땅 위에 바퀴가 하나씩 있었다.

가톨릭성경,15 내가 그 생물들을 바라보니, 생물들 옆 땅바닥에는 네 얼굴에 따라 바퀴가 하나씩 있었다.

영어NIV,15 As I looked at the living creatures, I saw a wheel on the ground beside each creature with its four faces.

영어NASB,15 Now as I looked at the living beings, behold, there was one wheel on the earth beside the living beings, for each of the four of them.

영어MSG,15 As I watched the four creatures, I saw something that looked like a wheel on the ground beside each of the four-faced creatures.

영어NRSV,15 As I looked at the living creatures, I saw a wheel on the earth beside the living creatures, one for each of the four of them.

헬라어구약Septuagint,15 και ειδον και ιδου τροχος εις επι της γης εχομενος των ζωων τοις τεσσαρσιν

라틴어Vulgate,15 cumque aspicerem animalia apparuit rota una super terram iuxta animalia habens quattuor facies

히브리어구약BHS,15 וָאֵרֶא הַחַיֹּות וְהִנֵּה אֹופַן אֶחָד בָּאָרֶץ אֵצֶל הַחַיֹּות לְאַרְבַּעַת פָּנָיו׃

성 경: [겔1:15]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네 바퀴의 이상]

󰃨 그 생물 곁 땅 위에 바퀴가 있는데 – ‘바퀴’란 네 생물들이 활동할 때 신속하고 수월하게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 또는 그 네 생물의 일부분인 것으로 보인다(20절;10:9, 12). 혹자는 이 ‘바퀴’를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받치어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단(platform)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Carley, Dyer). 또 다른 사람은 이를 세상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변화를 암시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Calvin).

마르에 하오판님 우마아세헴 케엔 타르쉬쉬 우데무트 에하드 레아르바탄 우마르에헴 우마아세헴 카아쉘 이흐예 하오판 베토크 하오판

개역개정,16 그 바퀴의 모양과 그 구조는 황옥 같이 보이는데 그 넷은 똑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모양과 구조는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새번역,16 그 바퀴의 형상과 구조를 보니, 그 형상은 빛나는 녹주석과 같고 네 바퀴의 형상이 모두 똑같으며, 그 구조는 마치 바퀴 안에 바퀴가 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말성경,16 그 바퀴들의 모양과 구조는 황옥이 빛나는 것 같고 네 개 모두 똑같이 생겼다. 그들의 모양과 구조는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처럼 생겼다.

가톨릭성경,16 그 바퀴들의 모습과 생김새는 빛나는 녹주석 같은데, 넷의 형상이 모두 같았으며, 그 모습과 생김새는 바퀴 안에 또 바퀴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영어NIV,16 This was the appearance and structure of the wheels: They sparkled like chrysolite, and all four looked alike. Each appeared to be made like a wheel intersecting a wheel.

영어NASB,16 The appearance of the wheels and their workmanship was like sparkling beryl, and all four of them had the same form, their appearance and workmanship being as if one wheel were within another.

영어MSG,16 This is what the wheels looked like: They were identical wheels, sparkling like diamonds in the sun. It looked like they were wheels within wheels, like a gyroscope.

영어NRSV,16 As for the appearance of the wheels and their construction: their appearance was like the gleaming of beryl; and the four had the same form, their construction being something like a wheel within a wheel.

헬라어구약Septuagint,16 και το ειδος των τροχων ως ειδος θαρσις και ομοιωμα εν τοις τεσσαρσιν και το εργον αυτων ην καθως αν ειη τροχος εν τροχω

라틴어Vulgate,16 et aspectus rotarum et opus earum quasi visio maris et una similitudo ipsarum quattuor et aspectus earum et opera quasi sit rota in medio rotae

히브리어구약BHS,16 מַרְאֵה הָאֹופַנִּים וּמַעֲשֵׂיהֶם כְּעֵין תַּרְשִׁישׁ וּדְמוּת אֶחָד לְאַרְבַּעְתָּן וּמַרְאֵיהֶם וּמַעֲשֵׂיהֶם כַּאֲשֶׁר יִהְיֶה הָאֹופַן בְּתֹוךְ הָאֹופָן׃

성 경: [겔1:16]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네 바퀴의 이상]

󰃨 넷이 한결같은데 –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일치와 상호 조화의 중요성을 암시한다(9절 주석 참조).

󰃨 황옥(*, 타르쉬쉬) – 이란 출 28:20;39:13에서 ‘녹보석’으로 번역되었으나 일반적으로 푸르거나 녹색이라기보다는 황금 빛 색깔을 띤 보석의 일종으로 본다(Carley, Plumtre, Wycliffe). 그리고 단 10:6에서는 주님의 몸을 묘사하는 색으로 언급되는데 이는 주님의 고귀함, 신성의 영광스러움을 암시한다. 본 구절에서도 이 바퀴가 그 위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신성의 영광을 나타낸다 하겠다.

󰃨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 일반적으로 이는 바퀴 안에 또 다른 바퀴가 직각으로 교차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Taylor). 이러한 바퀴 구조는 (1) 하나님의 섭리의 다양성, (2) 세상사와 하나님의 섭리 간의 긴밀한 연관성, (3) 수종드는 자의 철저한 순종 등을 상징한다는 견해들이 있다.

알 알바아트 리브에헨 벨레케탄 예레쿠 로 잇사부 벨레케탄

개역개정,17 그들이 갈 때에는 사방으로 향한 대로 돌이키지 아니하고 가며

새번역,17 그 바퀴들은 사방 어디로 가든지, 방향을 돌이키지 않고서도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말성경,17 바퀴들은 움직일 때 네 방향 가운데 어느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들은 나아가면서 옆으로 방향을 돌이키지 않았다.

가톨릭성경,17 그것들이 나아갈 때에는, 몸을 돌리지 않고 사방 어디로든 갔다.

영어NIV,17 As they moved, they would go in any one of the four directions the creatures faced; the wheels did not turn about as the creatures went.

영어NASB,17 Whenever they moved, they moved in any of their four directions, without turning as they moved.

영어MSG,17 They went in any one of the four directions they faced, but straight, not veering off.

영어NRSV,17 When they moved, they moved in any of the four directions without veering as they moved.

헬라어구약Septuagint,17 επι τα τεσσαρα μερη αυτων επορευοντο ουκ επεστρεφον εν τω πορευεσθαι αυτα

라틴어Vulgate,17 per quattuor partes earum euntes ibant et non revertebantur cum ambularent

히브리어구약BHS,17 עַל־אַרְבַּעַת רִבְעֵיהֶן בְּלֶכְתָּם יֵלֵכוּ לֹא יִסַּבּוּ בְּלֶכְתָּן׃

성 경: [겔1:17]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네 바퀴의 이상]

󰃨 행할 때에는…돌이키지 않고 행하며 – 바퀴가 각 생물의 ‘네 얼굴을 따라 하나씩'(15절) 사방으로 있으나 행할 때는 한 방향으로, 돌이킴이 없이 곧 바로 나아간다는 뜻이다(9, 12절 참조).

웨가베헨 웨고바흐 라헴 웨이르아 라헴 웨가보탐 메레오트 에나임 사비브 레아르바탄

개역개정,18 그 둘레는 높고 무서우며 그 네 둘레로 돌아가면서 눈이 가득하며

새번역,18 그 바퀴의 둘레는 모두 높고, 보기에도 무서우며, 그 네 둘레로 돌아가면서, 눈이 가득하였다.

우리말성경,18 그들 바퀴의 둘레는 높고 놀랍게 생겼다. 바퀴 네 개가 다 그 둘레에 눈들이 가득 달려 있었다.

가톨릭성경,18 바퀴 테두리는 모두 높다랗고 보기에 무서운 데다, 그 네 테두리 사방에 눈이 가득하였다.

영어NIV,18 Their rims were high and awesome, and all four rims were full of eyes all around.

영어NASB,18 As for their rims they were lofty and awesome, and the rims of all four of them were full of eyes round about.

영어MSG,18 The rims were immense, circled with eyes.

영어NRSV,18 Their rims were tall and awesome, for the rims of all four were full of eyes all around.

헬라어구약Septuagint,18 ουδ’ οι νωτοι αυτων και υψος ην αυτοις και ειδον αυτα και οι νωτοι αυτων πληρεις οφθαλμων κυκλοθεν τοις τεσσαρσιν

라틴어Vulgate,18 statura quoque erat rotis et altitudo et horribilis aspectus et totum corpus plenum oculis in circuitu ipsarum quattuor

히브리어구약BHS,18 וְגַבֵּיהֶן וְגֹבַהּ לָהֶם וְיִרְאָה לָהֶם וְגַבֹּתָם מְלֵאֹת עֵינַיִם סָבִיב לְאַרְבַּעְתָּן׃

성 경: [겔1:18]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네 바퀴의 이상]

󰃨 그 네 둘레로 돌아가면서 눈이 가득하며 – 이는 슥 3:9;4:10;계 4:6의 말씀과 유사한 표현으로서 바퀴의 눈이 세상의 모든 것(일)을 감찰하되 온전히 빠짐없이 통찰함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온 천지를 감찰하시고 모든 것을 아신다는 전지성(全知性)을 상징적으로 암시한다(대하 16:9;시 139:1-12).

우벨레케트 하하요트 예르쿠 하오판님 에츨람 우베힌나세 하하요트 메알 하아레츠 인나세우 하오판님

개역개정,19 그 생물들이 갈 때에 바퀴들도 그 곁에서 가고 그 생물들이 땅에서 들릴 때에 바퀴들도 들려서

새번역,19 그 생물들이 나아가면, 바퀴들도 생물들의 곁에서 함께 나아갔고, 생물들이 땅에서 떠오르면, 바퀴들도 함께 떠올랐다.

우리말성경,19 생물들이 움직이면 바퀴들도 그 옆에서 움직였고 생물들이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바퀴들도 들어 올려졌다.

가톨릭성경,19 그 생물들이 나아가면 그 곁에서 바퀴들도 나아가고, 생물들이 땅에서 떠오르면 바퀴들도 떠올랐다.

영어NIV,19 When the living creatures moved, the wheels beside them moved; and when the living creatures rose from the ground, the wheels also rose.

영어NASB,19 And whenever the living beings moved, the wheels moved with them. And whenever the living beings rose from the earth, the wheels rose also.

영어MSG,19 When the living creatures went, the wheels went; when the living creatures lifted off, the wheels lifted off.

영어NRSV,19 When the living creatures moved, the wheels moved beside them; and when the living creatures rose from the earth, the wheels rose.

헬라어구약Septuagint,19 και εν τω πορευεσθαι τα ζωα επορευοντο οι τροχοι εχομενοι αυτων και εν τω εξαιρειν τα ζωα απο της γης εξηροντο οι τροχοι

라틴어Vulgate,19 cumque ambularent animalia ambulabant pariter et rotae iuxta ea et cum elevarentur animalia de terra elevabantur simul et rotae

히브리어구약BHS,19 וּבְלֶכֶת הַחַיֹּות יֵלְכוּ הָאֹופַנִּים אֶצְלָם וּבְהִנָּשֵׂא הַחַיֹּות מֵעַל הָאָרֶץ יִנָּשְׂאוּ הָאֹופַנִּים׃

성 경: [겔1:19]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네 바퀴의 이상]

󰃨 생물이 행할 때에…바퀴도 들려서 – 생물들과 바퀴들이 일치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수행하며 그 뜻을 좇음을 뜻한다.

알 아쉘 이흐예 솸 하루아흐 랄레케트 예레쿠 솸마 하루아흐 랄레케트 웨하오판님 인나세우 레움마탐 키 루아흐 하하야 바오판님

개역개정,20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생물들도 영이 가려 하는 곳으로 가고 바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영이 그 바퀴들 가운데에 있음이니라

새번역,20 그 생물들은 어디든지, 영이 가고자 하면, 그 영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갔다. 바퀴들도 그들과 함께 떠올랐는데, 생물들의 영이 바퀴 속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20 어디든지 영이 가려고 하면 생물들도 그곳에 갔고 바퀴들도 생물들을 따라 들어 올려졌다. 생물들의 영이 바퀴에 있었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20 어디로든 영이 가려고 하면, 생물들은 영이 가려는 그곳으로 가고, 바퀴들도 그들과 함께 떠올랐다. 그 바퀴들 안에 생물의 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NIV,20 Wherever the spirit would go, they would go, and the wheels would rise along with them, because the spirit of the living creatures was in the wheels.

영어NASB,20 Wherever the spirit was about to go, they would go in that direction. And the wheels rose close beside them; for the spirit of the living beings was in the wheels.

영어MSG,20 Wherever the spirit went, they went, the wheels sticking right with them, for the spirit of the living creatures was in the wheels.

영어NRSV,20 Wherever the spirit would go, they went, and the wheels rose along with them; for the spirit of the living creatures was in the wheels.

헬라어구약Septuagint,20 ου αν ην η νεφελη εκει το πνευμα του πορευεσθαι επορευοντο τα ζωα και οι τροχοι και εξηροντο συν αυτοις διοτι πνευμα ζωης ην εν τοις τροχοις

라틴어Vulgate,20 quocumque ibat spiritus illuc eunte spiritu et rotae pariter levabantur sequentes eum spiritus enim vitae erat in rotis

히브리어구약BHS,20 עַל אֲשֶׁר יִהְיֶה־שָּׁם הָרוּחַ לָלֶכֶת יֵלֵכוּ שָׁמָּה הָרוּחַ לָלֶכֶת וְהָאֹופַנִּים יִנָּשְׂאוּ לְעֻמָּתָם כִּי רוּחַ הַחַיָּה בָּאֹופַנִּים׃

성 경: [겔1:20]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네 바퀴의 이상]

󰃨 이는 생물의 신이 그 바퀴 가운데 있음이라 – ‘생물의 신’이란 12절에 언급된 ‘신’, 즉 하나님의 성령을 가리키며, 이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 생물들의 생명과 힘의 근원, 그리고 주관자가 되심을 나타낸다. 이와 같은 사실은 신약의 관점에서 볼 때 성도들이 ‘생명’되시는(요 14:6) 그리스도를 믿을 때 ‘생명의 성령’으로 거듭나고(요 3:6) 그 ‘생명의 성령’에 의해 살아감을 엿보게 한다(롬 8:2;갈 5:25).

벨레케탄 예레쿠 우베오므담 야아모드 우베힌나세암 메알 하아레츠 인나세우 하오판님 레움마탐 키 루아흐 하하야 바오판님

개역개정,21 그들이 가면 이들도 가고 그들이 서면 이들도 서고 그들이 땅에서 들릴 때에는 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영이 그 바퀴들 가운데에 있음이더라

새번역,21 생물들이 나아가면 그 바퀴들도 나아갔고, 생물들이 멈추어 서 있으면, 바퀴들도 멈추어 서 있었다. 또 생물들이 땅에서 떠오르면, 바퀴도 그들과 똑같이 떠올랐는데, 생물들의 영이 바퀴들 속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21 생물들이 움직이면 바퀴들도 움직이고 생물들이 서면 바퀴들도 섰다. 생물들이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바퀴들도 따라서 들어 올려졌다. 생물들의 영이 바퀴들에 있었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21 생물들이 나아가면 바퀴들도 나아가고, 생물들이 멈추면 바퀴들도 멈추었다. 또 생물들이 땅에서 떠오르면 바퀴들도 그들과 함께 떠올랐다. 그 바퀴들 안에 생물의 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NIV,21 When the creatures moved, they also moved; when the creatures stood still, they also stood still; and when the creatures rose from the ground, the wheels rose along with them, because the spirit of the living creatures was in the wheels.

영어NASB,21 Whenever those went, these went; and whenever those stood still, these stood still. And whenever those rose from the earth, the wheels rose close beside them; for the spirit of the living beings was in the wheels.

영어MSG,21 When the creatures went, the wheels went; when the creatures stopped, the wheels stopped; when the creatures lifted off, the wheels lifted off, because the spirit of the living creatures was in the wheels.

영어NRSV,21 When they moved, the others moved; when they stopped, the others stopped; and when they rose from the earth, the wheels rose along with them; for the spirit of the living creatures was in the wheels.

헬라어구약Septuagint,21 εν τω πορευεσθαι αυτα επορευοντο και εν τω εσταναι αυτα ειστηκεισαν και εν τω εξαιρειν αυτα απο της γης εξηροντο συν αυτοις οτι πνευμα ζωης ην εν τοις τροχοις

라틴어Vulgate,21 cum euntibus ibant et cum stantibus stabant et cum elevatis a terra pariter elevabantur et rotae sequentes ea quia spiritus vitae erat in rotis

히브리어구약BHS,21 בְּלֶכְתָּם יֵלֵכוּ וּבְעָמְדָם יַעֲמֹדוּ וּבְהִנָּשְׂאָם מֵעַל הָאָרֶץ יִנָּשְׂאוּ הָאֹופַנִּים לְעֻמָּתָם כִּי רוּחַ הַחַיָּה בָּאֹופַנִּים׃

성 경: [겔1:21]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네 바퀴의 이상]

󰃨 저들이 행하면…그 바퀴 가운데 있음이더라 – 이는 19, 20절의 반복이다. 이 같은 반복은 생물과 바퀴가 상호 연관되어 그 신의 지배를 받고 그의 뜻대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본 단락의 대미(大尾)를 장식하고 새로운 단락으로 전환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우데무트 알 라쉐 하하야 라키야 케엔 핰케라흐 한노라 나투이 알 라쉐헴 밀마라

개역개정,22 그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있어 보기에 두려운데 그들의 머리 위에 펼쳐져 있고

새번역,22 그 생물들의 머리 위에는 창공 모양의 덮개와 같은 것이 있는데, 수정과 같은 빛을 내서, 보기에 심히 두려웠으며, 그 생물들의 머리 위에 펼쳐져 있었다.

우리말성경,22 생물들의 머리 위로는 천장같이 생긴 것이 펼쳐져 있었는데 그것은 수정 같은 색깔을 띠었고 놀라울 따름이었다.

가톨릭성경,22 그 생물들 머리 위에는 빛나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무섭게 자리 잡았는데, 그들 머리 위로 펼쳐져 있었다.

영어NIV,22 Spread out above the heads of the living creatures was what looked like an expanse, sparkling like ice, and awesome.

영어NASB,22 Now over the heads of the living beings there was something like an expanse, like the awesome gleam of crystal, extended over their heads.

영어MSG,22 Over the heads of the living creatures was something like a dome, shimmering like a sky full of cut glass, vaulted over their heads.

영어NRSV,22 Over the heads of the living creatures there was something like a dome, shining like crystal, spread out above their heads.

헬라어구약Septuagint,22 και ομοιωμα υπερ κεφαλης αυτοις των ζωων ωσει στερεωμα ως ορασις κρυσταλλου εκτεταμενον επι των πτερυγων αυτων επανωθεν

라틴어Vulgate,22 et similitudo super caput animalium firmamenti quasi aspectus cristalli horribilis et extenti super capita eorum desuper

히브리어구약BHS,22 וּדְמוּת עַל־רָאשֵׁי הַחַיָּה רָקִיעַ כְּעֵין הַקֶּרַח הַנֹּורָא נָטוּי עַל־רָאשֵׁיהֶם מִלְמָעְלָה׃

성 경: [겔1:22]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궁창의 이상]

󰃨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펴 있어 – ‘수정’의 히브리어 ‘코라흐'(*)의 원래 의미는 ‘얼음’이다(욥 6:16;37:10). 따라서 ‘수정 같은 궁창’이란 얼음처럼 맑고 막힘이 없는 듯한 투명한 궁창을 뜻한다. 그리고 ‘궁창’이란 창 1:6-8에서 쓰인 말과 같다. 이로 볼 때 선지자가 본 것은 생물들의 머리 위에 있는 맑고 투명한 창공과 같은 곳이었으며, 곧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다(26절). 이는 죄와 부정을 티끌만치도 용납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순결성을 엿보게 한다.

󰃨 보기에 심히 두려우며 – 이는 궁창이 맑고 투명하며 어떤 흠이나 부정들을 배격하는 온전한 상태이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게 한다는 의미이다.

웨타하트 하라키아 카네페헴 예솨로트 잇솨 엘 아호타흐 레이쉬 쉬타임 메캇소트 라헨나 우레이쉬 슅타임 메캇소트 라헨나 엩 게위요테헴

개역개정,23 그 궁창 밑에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향하여 펴 있는데 이 생물은 두 날개로 몸을 가렸고 저 생물도 두 날개로 몸을 가렸더라

새번역,23 그런데 창공 모양의 덮개 밑에는 그 생물들이 펼친 날개가 서로 맞닿아 있었다. 이쪽 생물들이 두 날개로 자기의 몸을 가리고 있고, 저쪽 생물들도 두 날개로 자기의 몸을 가리고 있었다.

우리말성경,23 천장 아래에는 그들의 날개들이 서로를 향해 똑바로 펼쳐져 있었다. 각 생물은 두 날개를 갖고 있었는데 하나로는 자기 몸통의 한쪽을, 다른 하나로는 다른 한쪽을 덮고 있었다.

가톨릭성경,23 그 궁창 밑에서 생물들은 두 날개를 서로 맞닿게 펴고, 나머지 두 날개로는 몸을 가리고 있었다.

영어NIV,23 Under the expanse their wings were stretched out one toward the other, and each had two wings covering its body.

영어NASB,23 And under the expanse their wings were stretched out straight, one toward the other; each one also had two wings covering their bodies on the one side and on the other.

영어MSG,23 Under the dome one set of wings was extended toward the others, with another set of wings covering their bodies.

영어NRSV,23 Under the dome their wings were stretched out straight, one toward another; and each of the creatures had two wings covering its body.

헬라어구약Septuagint,23 και υποκατω του στερεωματος αι πτερυγες αυτων εκτεταμεναι πτερυσσομεναι ετερα τη ετερα εκαστω δυο συνεζευγμεναι επικαλυπτουσαι τα σωματα αυτων

라틴어Vulgate,23 sub firmamento autem pinnae eorum rectae alterius ad alterum unumquodque duabus alis velabat corpus suum et alterum similiter velabatur

히브리어구약BHS,23 וְתַחַת הָרָקִיעַ כַּנְפֵיהֶם יְשָׁרֹות אִשָּׁה אֶל־אֲחֹותָהּ לְאִישׁ שְׁתַּיִם מְכַסֹּות לָהֵנָּה וּלְאִישׁ שְׁתַּיִם מְכַסֹּות לָהֵנָּה אֵת גְּוִיֹּתֵיהֶם׃

성 경: [겔1:23]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궁창의 이상]

󰃨 그 궁창 밑에…서로 향하여 펴 있는데 – 궁창 위에 계시는 영광과 위엄의 하나님 앞에서 그 영광을 보좌하는 생물(그룹)들이 날개를 펴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모습은 지성소 내의 그룹들이 그 날개를 펴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속죄소 위를 감싸 덮고 있는 모습을 상기시킨다(출 25:18-20).

와예쉬마 엩 콜 카네페헴 케콜 마임 랍빔 케콜 솨다이 벨레케탐 콜 핰쿨라 케콜 마하네 베오므담 테라페나 카네페헨

개역개정,24 생물들이 갈 때에 내가 그 날개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으며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으며 떠드는 소리 곧 군대의 소리와도 같더니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내렸더라

새번역,24 그들이 움직일 때에는, 나는, 그들이 날개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마치 힘찬 물소리와도 같고, ㉣전능하신 분의 천둥소리와도 같고, 떠드는 소리 곧 군인들의 진영에서 나는 함성과도 같았다. 그들은 멈추어 서 있을 때에는 날개를 드리웠다. / ㉣히, ‘샤다이’

우리말성경,24 생물들이 움직일 때 그들의 날개 소리를 내가 들으니 많은 물소리 같기도 하고, ‘전능한 분’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함성, 곧 군대의 소리 같기도 했다. 생물들이 가만히 서 있을 때는 그들의 날개들을 내렸다.

가톨릭성경,24 그들이 나아갈 때에는 날개 소리가 들리는데, 마치 큰 물이 밀려오는 소리 같고 전능하신 분의 천둥소리 같았으며, 군중의 고함 소리, 진영의 고함 소리 같았다. 그러다가 멈출 때에는 날개를 접었다.

영어NIV,24 When the creatures moved, I heard the sound of their wings, like the roar of rushing waters, like the voice of the Almighty, like the tumult of an army. When they stood still, they lowered their wings.

영어NASB,24 I also heard the sound of their wings like the sound of abundant waters as they went, like the voice of the Almighty, a sound of tumult like the sound of an army camp; whenever they stood still, they dropped their wings.

영어MSG,24 When they moved I heard their wings–it was like the roar of a great waterfall, like the voice of The Strong God, like the noise of a battlefield. When they stopped, they folded their wings.

영어NRSV,24 When they moved, I heard the sound of their wings like the sound of mighty waters, like the thunder of the Almighty, a sound of tumult like the sound of an army; when they stopped, they let down their wings.

헬라어구약Septuagint,24 και ηκουον την φωνην των πτερυγων αυτων εν τω πορευεσθαι αυτα ως φωνην υδατος πολλου και εν τω εσταναι αυτα κατεπαυον αι πτερυγες αυτων

라틴어Vulgate,24 et audiebam sonum alarum quasi sonum aquarum multarum quasi sonum sublimis Dei cum ambularent quasi sonus erat multitudinis ut sonus castrorum cumque starent dimittebantur pinnae eorum

히브리어구약BHS,24 וָאֶשְׁמַע אֶת־קֹול כַּנְפֵיהֶם כְּקֹול מַיִם רַבִּים כְּקֹול־שַׁדַּי בְּלֶכְתָּם קֹול הֲמֻלָּה כְּקֹול מַחֲנֶה בְּעָמְדָם תְּרַפֶּינָה כַנְפֵיהֶן׃

성 경: [겔1:24]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궁창의 이상]

󰃨 많은 물 소리와도 같으며 – 이는 네 생물들의 날개 소리가 미세하거나 연약하지 않고 장엄하며 웅장함을 나타낸다. 아울러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암시하는 표현이기도 하다(43:2;시 29:3, 4;계 1:15).

󰃨 전능자의 음성 – 성경에서는 종종 하나님의 음성을 우뢰 소리로 비유한다(욥 37:4, 5;40:9;시 18:13;29:3;104:7).

󰃨 그 날개를 드리우더라 – 활동하던 날개를 접어두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거하는 자세이다. 이는 곧 하나님의 다음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스스로의 행동을 멈추고 대기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와예히 콜 메알 라라키아 아쉘 알 로솸 베오므담 테라페나 카네페헨

개역개정,25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서부터 음성이 나더라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내렸더라

새번역,25 그들의 머리 위에 있는 창공 모양의 덮개 위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멈추어 서 있을 때에는 날개를 드리웠다.

우리말성경,25 생물들의 머리 위 천장 위쪽으로부터 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서 있을 때 그들의 날개를 내렸다.

가톨릭성경,25 그들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서도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가 멈출 때에는 날개를 접었다.

영어NIV,25 Then there came a voice from above the expanse over their heads as they stood with lowered wings.

영어NASB,25 And there came a voice from above the expanse that was over their heads; whenever they stood still, they dropped their wings.

영어MSG,25 And then, as they stood with folded wings, there was a voice from above the dome over their heads.

영어NRSV,25 And there came a voice from above the dome over their heads; when they stopped, they let down their wings.

헬라어구약Septuagint,25 και ιδου φωνη υπερανωθεν του στερεωματος του οντος υπερ κεφαλης αυτων

라틴어Vulgate,25 nam cum fieret vox supra firmamentum quod erat super caput eorum stabant et submittebant alas suas

히브리어구약BHS,25 וַיְהִי־קֹול מֵעַל לָרָקִיעַ אֲשֶׁר עַל־רֹאשָׁם בְּעָמְדָם תְּרַפֶּינָה כַנְפֵיהֶן׃

성 경: [겔1:25]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궁창의 이상]

󰃨 궁창 위에서부터 음성이 나더라 – 궁창 위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발하여짐을 뜻한다(26절).

우밈마알 라라키야 아쉘 알 로솸 케마르에 에벤 사필 데무트 킷세 웨알 데무트 하킷세 데무트 케마르에 아담 알라우 말마라

개역개정,26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새번역,26 또 그들의 머리 위에 있는 창공 모양의 덮개 위에는, 청옥처럼 보이는 보석으로 만든 보좌 형상을 한 것이 있었고, 그 보좌 형상 위에는, 사람의 모습과 비슷한 형상이 있었다.

우리말성경,26 그들의 머리 위 천장 위에는 사파이어 보석같이 생긴 보좌 모양이 있었고 그 보좌 모양 위에 사람의 모습 같은 형상이 높이 있었다.

가톨릭성경,26 그들의 머리 위 궁창 위에는 청옥처럼 보이는 어좌 형상이 있고, 그 어좌 형상 위에는 사람처럼 보이는 형상이 앉아 있었다.

영어NIV,26 Above the expanse over their heads was what looked like a throne of sapphire, and high above on the throne was a figure like that of a man.

영어NASB,26 Now above the expanse that was over their heads there was something resembling a throne, like lapis lazuli in appearance; and on that which resembled a throne, high up, was a figure with the appearance of a man.

영어MSG,26 Above the dome there was something that looked like a throne, sky-blue like a sapphire, with a humanlike figure towering above the throne.

영어NRSV,26 And above the dome over their heads there was something like a throne, in appearance like sapphire; and seated above the likeness of a throne was something that seemed like a human form.

헬라어구약Septuagint,26 ως ορασις λιθου σαπφειρου ομοιωμα θρονου επ’ αυτου και επι του ομοιωματος του θρονου ομοιωμα ως ειδος ανθρωπου ανωθεν

라틴어Vulgate,26 et super firmamentum quod erat inminens capiti eorum quasi aspectus lapidis sapphyri similitudo throni et super similitudinem throni similitudo quasi aspectus hominis desuper

히브리어구약BHS,26 וּמִמַּעַל לָרָקִיעַ אֲשֶׁר עַל־רֹאשָׁם כְּמַרְאֵה אֶבֶן־סַפִּיר דְּמוּת כִּסֵּא וְעַל דְּמוּת הַכִּסֵּא דְּמוּת כְּמַרְאֵה אָדָם עָלָיו מִלְמָעְלָה׃

성 경: [겔1:26]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

󰃨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 ‘보좌’란 하나님이 좌정하시어 만왕의 왕, 만주의 주(계 19:16)로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주권적 통치자 이심을 시사한다. 하나님의 보좌는 의와 공의를 그 기초로 삼고(시 89:14;97:2) 영광으로 충만해 있다(사 6:1-3).

󰃨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 ‘남보석'(*, 에벤 사피르)이란 일반적으로 푸른 빛과 자주 빛의 중간의 빛을 띠는 보석으로서 대제사장의 흉패 둘째 줄에 박혀있는 것이기도 하다(출 28:10;39:11). 여기서는 하나님 보좌가 신성한 것임을 암시한다(출 24:10 참조).

󰃨 사람의 모양 같더라 – 이는 인간 형상의 근원이 되시는(창 1:27) 하나님을 엿보게 한다.

와에레 케엔 하쉬말 케말에 에쉬 베이트 라흐 사비브 밈마르에 마테나우 우레마라 우밈마르에 마테나우 우레맡타 라이티 케말에 에쉬 웨노가흐 로 사비브

개역개정,27 내가 보니 그 허리 위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 같고 내가 보니 그 허리 아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방으로 광채가 나며

새번역,27 또 나는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그 위쪽에서 금붙이의 광채와 같은 것이 불꽃처럼 안팎으로 그를 둘러싼 것을 보았는데,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그 아래쪽에서도, 나는 불꽃과 같은 모양을 보았다. 이렇게 그는 광채로 둘러싸여 있었다.

우리말성경,27 내가 그의 허리로 보이는 부분에서 위쪽으로 올려다보니 그 안쪽 사방에는 반짝이는 금속이 불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의 허리로 보이는 부분에서 아래쪽으로 내려다보니 불의 모양이 있었고 그의 주변이 밝게 빛났다.

가톨릭성경,27 내가 또 바라보니,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의 위쪽은 빛나는 금붙이와 같고, 사방이 불로 둘러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의 아래쪽은 불처럼 보였는데, 사방이 광채로 둘러싸여 있었다.

영어NIV,27 I saw that from what appeared to be his waist up he looked like glowing metal, as if full of fire, and that from there down he looked like fire; and brilliant light surrounded him.

영어NASB,27 Then I noticed from the appearance of His loins and upward something like glowing metal that looked like fire all around within it, and from the appearance of His loins and downward I saw something like fire; and there was a radiance around Him.

영어MSG,27 From what I could see, from the waist up he looked like burnished bronze and from the waist down like a blazing fire. Brightness everywhere!

영어NRSV,27 Upward from what appeared like the loins I saw something like gleaming amber, something that looked like fire enclosed all around; and downward from what looked like the loins I saw something that looked like fire, and there was a splendor all around.

헬라어구약Septuagint,27 και ειδον ως οψιν ηλεκτρου απο ορασεως οσφυος και επανω και απο ορασεως οσφυος και εως κατω ειδον ως ορασιν πυρος και το φεγγος αυτου κυκλω

라틴어Vulgate,27 et vidi quasi speciem electri velut aspectum ignis intrinsecus eius per circuitum a lumbis eius et desuper et a lumbis eius usque deorsum vidi quasi speciem ignis splendentis in circuitu

히브리어구약BHS,27 וָאֵרֶא כְּעֵין חַשְׁמַל כְּמַרְאֵה־אֵשׁ בֵּית־לָהּ סָבִיב מִמַּרְאֵה מָתְנָיו וּלְמָעְלָה וּמִמַּרְאֵה מָתְנָיו וּלְמַטָּה רָאִיתִי כְּמַרְאֵה־אֵשׁ וְנֹגַהּ לֹו סָבִיב׃

성 경: [겔1:27]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궁창의 이상]

󰃨 내가 본즉…광채가 나며 – 4절 주석을 참조하라. 특히 본절의 ‘불 같고’, ‘불 같아서’란 표현은 심판주로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위엄을 암시한다.

케마르에 하케쉐트 아쉘 이흐예 베아난 베욤 하게셈 켄 마르에 한노가 사비브 후 마르에 데무트 케보드 아도나이 와에르에 와에폴 알 파나이 와에쉬마 콜 메답베르

개역개정,28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

새번역,28 그를 둘러싼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 속에 나타나는 무지개 같이 보였는데, 그것은 주님의 영광이 나타난 모양과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그 때에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내가 들었다.

우리말성경,28 비 오는 날 구름 속에 있는 무지개의 모습과 같이 그의 주변이 그렇게 밝게 빛났다.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그러자 말하는 이의 목소리가 내게 들렸다.

가톨릭성경,28 사방으로 뻗은 광채의 모습은, 비 오는 날 구름에 나타나는 무지개처럼 보였다. 그것은 주님 영광의 형상처럼 보였다. 그것을 보고 나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그때 나는 말씀하시는 분의 소리를 들었다.

영어NIV,28 Like the appearance of a rainbow in the clouds on a rainy day, so was the radiance around him. This was the appearance of the likeness of the glory of the LORD. When I saw it, I fell facedown, and I heard the voice of one speaking.

영어NASB,28 As the appearance of the rainbow in the clouds on a rainy day, so was the appearance of the surrounding radiance. Such was the appearance of the likeness of the glory of the LORD. And when I saw it, I fell on my face and heard a voice speaking.

영어MSG,28 The way a rainbow springs out of the sky on a rainy day–that’s what it was like. It turned out to be the Glory of GOD! When I saw all this, I fell to my knees, my face to the ground. Then I heard a voice.

영어NRSV,28 Like the bow in a cloud on a rainy day, such was the appearance of the splendor all around. This was the appearance of the likeness of the glory of the LORD. When I saw it, I fell on my face, and I heard the voice of someone speaking.

헬라어구약Septuagint,28 ως ορασις τοξου οταν η εν τη νεφελη εν ημερα υετου ουτως η στασις του φεγγους κυκλοθεν αυτη η ορασις ομοιωματος δοξης κυριου και ειδον και πιπτω επι προσωπον μου και ηκουσα φωνην λαλουντος

라틴어Vulgate,28 velut aspectum arcus cum fuerit in nube in die pluviae hic erat aspectus splendoris per gyrum

히브리어구약BHS,28 כְּמַרְאֵה הַקֶּשֶׁת אֲשֶׁר יִהְיֶה בֶעָןָן בְּיֹום הַגֶּשֶׁם כֵּן מַרְאֵה הַנֹּגַהּ סָבִיב הוּא מַרְאֵה דְּמוּת כְּבֹוד־יְהוָה וָאֶרְאֶה וָאֶפֹּל עַל־פָּנַי וָאֶשְׁמַע קֹול מְדַבֵּר׃ ס

성 경: [겔1:28]

주제1: [하나님의 이상(異像]

주제2: [궁창의 이상]

󰃨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무지개 같으니 – 색색이 어우러져 비추는 영롱한 무지개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찬연하고 아름다움을 뜻한다. 한편 무지개는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성을 입증하기 위한 언약의 증표로서 노아에게 나타났고(창 9:12-14), 하나님께서 좌정하시는 보좌 주위에 영롱하게 둘려지기도 한다(계 4:3).

󰃨 여호와의 영광 – ‘영광'(*, 카보드)이란 원래 ‘무거움’, ‘풍부함’이란 뜻이며, 하나님께 대하여 사용될 경우 하나님의 위엄과 거룩하심의 외적 표현 혹은 그러한 속성을 나타낸다.

󰃨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 위엄있으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경배의 태도를 뜻한다(창 17:3, 17;24:52;출 34:8;수 5:14;대하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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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겔 강해

에스겔 강해 김효성 목 사 2022년 4월 19일 자료 내려받기 머리말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의 증거대로(마 5:18; 요 10:35; 갈 3: 16; 딤후 3:16),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는 고백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진술대로(1:8), 우리는 성경의 원본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고 그 본문이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다”고 믿는다. 이것은 교회의 전통적 견해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은 야곱 벤 카임이 편집한 제2 랍비 성경(봄버그판)을 표준적 마소라 본문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성도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활동들에도 유일한 규범이다. 오늘날처럼 다양한 풍조와 운동이 많은 영적 혼란의 시대에,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묵상하기를 원하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를 원한다. 성경을 가지고 설교할지라도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올 것이다(암 8:11).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오고 있다. 많은 설교와 성경강해가 있지만, 순수한 기독교 신앙 지식과 입장은 더 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요구되는 성경 해석과 강해는 복잡하고 화려한 말잔치보다 성경 본문의 바른 뜻을 간단 명료하게 해석하고 적절히 적용하는 것일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성경책 한 권으로 충분하다. 성경주석이나 강해는 성경 본문의 바른 이해를 위한 작은 참고서에 불과하다. 성도는 각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성경주석과 강해는 오직 참고서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제목 차례 1장: 네 생물의 형상 2장: 패역한 백성에게 보내심 3장: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우심 4장: 예루살렘 멸망의 예표 5장: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함 6장: 이스라엘이 황폐할 것임 7장: 재앙이 임박함 8장: 이스라엘의 가증한 일들 9장: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함 10장: 그룹이 불을 내어줌 11장: 이스라엘의 회복이 약속됨 12장: 속히 포로로 잡혀갈 것 13장: 거짓 선지자들을 책망하심 14장: 우상숭배에 대한 심판 15장: 불에 던질 포도나무처럼 될 것 16장: 예루살렘의 음란 17장: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18장: 하나님의 심판의 공평성 19장: 이스라엘 방백들을 위한 애가 20장: 이스라엘의 패역함 21장: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옴 22장: 이스라엘의 죄악들 23장: 행음한 두 여자와 같음 24장: 가마솥 비유 25장: 암몬, 모압, 에돔, 블레셋에 대한 선언 26장: 두로에 대한 선언 27장: 두로를 위한 애가 28장: 두로 왕에 대한 선언 29장: 애굽에 대한 선언 30장: 애굽의 멸망에 대한 예언 31장: 음부로 내려감 32장: 바로에 대한 애가 33장: 파수꾼의 사명 34장: 부패한 목자들 35장: 세일산에 대한 경고 36장: 이스라엘의 회복 37장: 마른 뼈 환상 38장: 곡이 이스라엘을 치러 옴 39장: 곡의 멸망 40장: 새 성전 ■ 에스겔이 본 성전 평면도 41장: 성소 42장: 제사장을 위한 방 43장: 번제단 44장: 제사장의 법들 45장: 왕을 위한 법들 46장: 예배의 방식 47장: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강물 48장: 땅 분배 서론 에스겔 은 유다 왕국의 멸망기에 바벨론의 제2차 침공으로 유다 왕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갈 때 함께 잡혀간 것 같다. 그는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환상과 계시의 말씀을 받아 선지 사역을 하였다. 에스겔서의 주요 내용 은, 다른 선지서들과 같이, 심판과 회복이다. 본서에는 ‘칼’이라는 말이 89회 나오고, ‘황폐’라는 말이 40회 나온다. 또 ‘기근’이라는 말이 14회 나오고, ‘온역’이라는 말이 12회 나온다. 이 용어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관계된다. 또 본서에는 ‘안다’는 말이 98회나 나오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궁극적 목적을 보인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깨닫고,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을 통해 그의 긍휼과 사랑을 깨닫는다. 에스겔 40장부터 48장까지에 계시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대한 예언 에 관하여, 성전의 구조와 치수, 성전의 기구들, 제사와 절기의 규례 등은 레위기와 큰 차이점을 가진다. 그러나 이것은, 에스겔서의 기록되어 있는 예언이 모세 율법에 기록된 제도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메시아 시대를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선지자 에스겔이 예언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관하여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첫째는 에스겔의 예언이 매우 구체적이기 때문에 장차 문자적으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견해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이런 견해를 가진다. 엉거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완전히 구별하여 그 예언을 이스라엘에게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으로 이해한다. 아춰는 피의 제사를 천년왕국에서 성례식처럼 문자 그대로 가능한 것으로 이해한다. 둘째는 에스겔의 예언을 천년왕국 혹은 천국에 대한 상징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그 견해에 의하면, 그것이 문자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신약성경에 증거된 바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이루신 속죄 사역에 근거하여 구약의 성전 제도와 제사 제도가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골로새서 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히브리서 8: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우리는 이 두 번째 견해가 바르다고 본다. 개혁 신학은 이 견해를 취한다. 본문 혹은 각주에 자주 사용된 약어 KJV 영어 King James Version. NASB 영어 New American Standard Version. NIV 영어 New International Version. LXX 고대 헬라어 70인역. Syr 고대 수리아어역. It 고대 라틴어역. Vg 고대 라틴어 Vulgate역. BDB Brown-Driver-Briggs, Hebrew Lexicon of the O. T. KB Koehler-Baumgartner, Lexicon in Veteris Testamenti Libros. Poole Matthew Poo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JFB Jamieson, Faussett, Brown의 주석. NBD The New Bible Dictionary. IVP. NBC The New Bible Commentary. IVP . 1장: 네 생물의 형상 1-14절, 네 생물의 형상 [1-2절] 제30년 4월 5일에 내가 그발 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異像)을 내게 보이시니 여호야긴 왕의 사로잡힌 지 5년 그 달 5일이라. ‘제30년’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들이 있으나 1) 근거가 있어 보이지 않고 단순히 그의 나이로 보는 해석이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해는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5년 곧 주전 592년경이었다. 그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이상(異像)이 에스겔에게 보였다. [3절]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서 이 계시를 받았다. 그발 강은 유브라데 강의 하류에 있는 바벨론 도시 부근의 지류인 듯하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권능이 제사장 에스겔 위에 임하였다.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말씀은 역사의 한 시점에서, 즉 구체적 시간과 장소에서 주어졌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상 구체적 방식으로 자신을 알리셨다. [4-5절] 내가 보니 북방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 모양이 이러하니 사람의 형상이라. 북방에서부터 오는 폭풍과 큰 구름은 장차 유다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암시하는 것 같다. 에스겔이 이 계시를 받았을 때 아직 유다 나라와 예루살렘 성은 멸망하기 전이었다. 유다 나라와 예루살렘 성은 머잖아 북쪽에서 내려오는 바벨론 군대에 의해 최종적인 멸망을 당할 것이다. 불 가운데 ‘단 쇠’가 나타나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엄위함을 나타낸다. ‘단 쇠’라는 원어( 카쉬말 )는 ‘반짝이는 금속’이라는 뜻이다. 네 생물은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천사들을 상징한 것 같다. 천사들은 사람의 모양으로 계시되었다. [6-9절]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그 다리는 곧고 그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마광한 구리같이 빛나며 그 사면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 그 네 생물의 얼굴과 날개가 이러하니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행할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네 생물들의 다리가 곧음은 그들이 맡은 임무를 중도에 포기함이 없이 굳게 서서 수행함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들의 발바닥이 송아지 발바닥 같고 마광한 구리같이 빛난 것은 잘 단련되어 인내하며 충성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들의 사면 날개 밑에 각각 사람의 손이 있음은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잘 수행할 힘이 있음을 보이는 것 같고, 그 날개들이 서로 연하여 있음은 흐트러짐 없이, 일치단합하여 하나님의 일을 수행함을 보이는 것 같다. 그들이 행할 때에 뒤돌아서지 않고 일제히 앞으로 곧바르게 나아감은 그들이 변절함 없이 시종일관하게 충성함을 보이는 것 같다. [10-11절]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그 얼굴은 이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리웠으며. 사람의 얼굴은 그들의 지혜와 총명을 나타내며, 사자의 얼굴은 그들의 용맹을 나타내며, 소의 얼굴은 그들의 충성을 나타내며, 독수리의 얼굴은 그들의 생명력과 민첩함을 나타낸다. 또 그 두 날개를 들어 편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잘 수행함을 나타내고, 나머지 두 날개로 몸을 가린 것은 겸손히 하나님을 섬김을 나타낸다. 선한 천사들은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들이다. [12-14절] 신[영]이 어느 편으로 가려면 그 생물들이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또 생물의 모양은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서는 번개가 나며 그 생물의 왕래가 번개같이 빠르더라. 그 생물들 속에는 영이 있어서 그 영이 지시하는 곳으로 그 생물들이 그대로 갔고 뒤돌아서지 않고 일제히 앞으로 곧바르게 나아갔다. 그들은 변절함 없이 시종일관하게 충성하며 온전히 순종하였다. 또 그 생물들의 모양은 숯불과 횃불 모양 같았고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는 번개가 났다. 그것은 그들이 수행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엄위함을 보이는 것 같다. 그 생물들의 왕래는 번개같이 빨랐다. 그것은 그들의 민첩함을 나타낼 것이다. 천사들은 민첩한 봉사자들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지혜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람과 짐승의 차이는 지혜이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 또 성령의 감동과 충만함을 받음으로 지혜를 얻어야 한다(잠 1:1-6). 둘째로, 우리는 사자처럼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셨다(수 1:6-7, 9). 주께서도 제자들에게 세상에서 환난 중에 담대하라고 말씀하셨다(요 16:33). 셋째로, 우리는 소처럼 충성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2:10에서, 주께서는 서머나 교회 사자에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교훈하셨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말했다(고전 4:2). 넷째로, 우리는 독수리처럼 민첩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교훈하였고(엡 5:16), 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하였다(롬 12:10). 15-28절, 네 생물의 바퀴 [15-16절] 내가 그 생물을 본즉 그 생물 곁 땅 위에 바퀴가 있는데 그 네 얼굴을 따라 하나씩 있고 그 바퀴[바퀴들]의 형상과 그 구조는 넷이 한결 같은데 황옥 같고 그 형상과 구조는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네 생물들 곁에 각각 하나씩 모두 네 개의 바퀴가 있다는 뜻인 것 같다. 원문에서 16절의 ‘그 바퀴’는 ‘그 바퀴들’( 하오판님 )이라고 복수로 되어 있다. 네 바퀴들과 그 구조의 모양은 같고 황옥( 타르쉬스 )[혹은 ‘녹보석’(beryl)( KJV, NASB, 출 28:20)] 같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 방식의 선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우심을 나타내는 것 같다. 또 그 바퀴는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은 구조이었다. 이것은 자유로이, 빠르게, 잘 굴러가는 것을 상징한 듯하다. [17-19절] 행할 때에는 사방으로 향한 대로 돌이키지 않고 행하며[행할 때에는 사방 어느 쪽이든지 돌이키지 않고 행하며] 그 둘레는 높고 무서우며 그 네 둘레로 돌아가면서 눈이 가득하며 생물이 행할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행하고 생물이 땅에서 들릴 때에 바퀴도 들려서. 그 바퀴는 어느 방향이든지 지시된 방향으로 돌이키지 않고 행하였다. 그 바퀴가 크고 그 둘레가 높고 무서운 것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크고 엄위로움을 나타내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모든 크고 작은 일들을 섭리하신다. 또 그 둘레로 돌아가며 눈이 가득한 것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나타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감찰하신다. 또 그 바퀴들은 그 생물들과 함께 움직였다. [20-21절] 어디든지 신[영]이 가려 하면 생물도 신[영]의 가려 하는 곳으로 가고 바퀴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신[영]이 그 바퀴 가운데 있음이라. 저들이 행하면 이들도 행하고 저들이 그치면 이들도 그치고 저들이 땅에서 들릴 때에는 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신[영]이 그 바퀴 가운데 있음이더라. 네 생물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네 천사들을 가리킨다고 보인다. 천사는 영이다. 그 영이 의도하는 대로 그 바퀴는 행하였다. 생물이 가면 바퀴도 가고 생물이 서면 바퀴도 선다. 생물이 들리면 바퀴도 들린다. 생물과 바퀴는 일치하게 움직인다. 바퀴는 그 생물들이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수행 방식을 상징하는 것 같다. [22-23절] 그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펴 있어 보기에 심히 두려우며 그 궁창 밑에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향하여 펴 있는데 이 생물은 두 날개로 몸을 가리웠고 저 생물도 두 날개로 몸을 가리웠으며. 그 수정 같은 궁창은 하나님께서 계신 세계가 심히 아름답고 엄위함을 나타내는 것 같다. 또 각 생물이 두 날개로 몸을 가린 것은 그들이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다. [24-25절] 생물들이 행할 때에 내가 그 날개 소리를 들은즉 많은 물 소리와도 같으며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으며 떠드는 소리 곧 군대의 소리와도 같더니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드리우더라[아래로 젖히더라].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서부터 음성이 나더라.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드리우더라. 생물들이 행할 때 나는 많은 물소리와 전능자의 음성과 군대 소리 같은 날개 소리는 그들이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수행함을 나타낼 것이다. 또 생물들의 머리 위에 있는 궁창에서 나는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하시는 일을 수행하는 자들이다. [26-28절]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내가 본즉 그 허리 이상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같고 그 허리 이하의 모양도 불같아서 사면으로 광채가 나며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그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들으니라. 네 생물들의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은 남보석같이 엄위하며 영광스러웠다. 또 그 보좌 위에는 사람의 모양 같은 자가 있었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 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의 모습은 매우 두려운 것이었다. 그 허리 이상의 모양은 ‘단 쇠’ 즉 ‘반짝이는 금속’ 같으며 그 속과 주위가 불같고 그 허리 이하의 모양도 불같아서 사면으로 광채가 났다. 또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무지개 같았다. 그것은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었다. 그것은 심판자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 같다. 에스겔은 즉시 엎드리어 그 보좌에서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잘 구르는 바퀴처럼 하나님께 순종하며 봉사하자. 에스겔이 본 바퀴들은 네 생물들이 하나님의 일을 잘 받드는 것을 상징한다. 바퀴는 느리게 가거나 가다가 서거나 이탈하든지 하지 말고 잘 굴러가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봉사자들은 잘 굴러가는 좋은 바퀴들처럼 하나님께 순종하며 봉사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네 생물의 날개소리처럼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받들며 충성하자. 새는 날개를 잘 흔들어야 잘 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또 우리 모두에게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신 6:5). 우리는 온 마음과 온 영혼과 온 힘을 쏟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일을 받들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했다(롬 12:11). 우리는 요란한 날개소리를 내는 생물처럼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명령하시는 하나님께만 절대 순종하고 죽도록 충성하자. 하나님께서는 부모님보다, 회사의 사장보다, 대통령보다 높으시다. 그의 명령은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우리에게 절대적 순종을 요구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며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12:11은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사탄]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죽도록 충성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계 2:10). 2장: 패역한 백성에게 보내심 [1-2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人子)야,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말씀하실 때에 그 신[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그 신’이라는 말( 루아크 )은 ‘성령’을 가리킨다고 본다 (NASB, NIV) . 1장 끝에 말한 대로, 네 생물들 위에 보좌 위에 사람 모양 같은 이가 계셨고 에스겔은 그 앞에 엎드렸고 그는 에스겔에게 말씀하셨다. 그는 하나님 혹은 구약시대에 자신을 계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실 것이다. 그는 에스겔을 ‘인자(人子)야’라고 부르셨다. 구약성경에 사람을 ‘인자’라고 부른 것은 다니엘에게 한 번(단 8:17) 사용된 외에는 선지자들 중 에스겔에게만 사용되었다(에스겔서에 93회 나옴). ‘인자’(人子)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인데 에스겔에게 그가 연약한 인생임을 잊지 않게 하시는 뜻이 있어 보인다. [3-4절]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열조가 내게 범죄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나니[그들과 그 열조가 바로 이 날까지 내게 범죄하였나니]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주 여호와’( 아도나이 예호와 )라는 말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주권과 통치권을 잘 나타낸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는 표현은 성경의 권위와 내용을 증거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여기에 오늘날 설교자의 사명과 권위가 있다. 설교자는 성경의 내용에 충실해야 하고 그럴 때 그의 설교에도 권위가 있다. ‘패역한,’ ‘배반하는’이라는 원어는 동일하며( 마라 ) 그 뜻은 ‘거역하다, 불순종하다, 배반하다’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상태를 그렇게 묘사하셨다. 반복된 범죄, 회개치 않는 마음의 상태는 패역하고 완고함을 만든다.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는 얼굴의 뻔뻔함, 마음의 딱딱하고 완고함, 즉 반성도 자책도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통회자복함도 없는 상태이었다. 선지자 예레미야도 예레미야 8:12에서 말하기를,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했었다. 그것이 사람의 죄성의 실상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에스겔을 이렇게 완고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고 계셨다. 이렇게 완고하고 패역한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선지자에게 큰 고통과 어려움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또한 오늘날 설교자들의 고통과 어려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면하기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하였다(딤후 4:3-5). 비록 말씀을 전해야 할 대상이 완고하고 세속화되어 있다 할지라도, 설교자는 낙망치 말고 고난을 각오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해야 한다. [5절]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패역한 족속’이라고 거듭 부르셨다(5, 6, 8절). 에스겔서에는 ‘패역한’이라는 말( 메리 י������������) 이 15번 나온다. 2)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계속 범죄함으로 마음이 굳어지고 패역한 족속이 되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지니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그의 심판이 공의로우시며 그들로 핑계치 못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6-7절]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지어다.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시와 찔레와 전갈에 비유하셨다. 가시와 찔레와 전갈은 사람의 몸을 찌르고 문다. 그것은 고통을 주고 때때로 치명적 상처를 입힌다. 그와 같이,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비난과 욕을 먹으며 배척과 해를 당할 것이다. 구약시대에나 신약시대나 패역한 무리는 참 선지자들을 욕하고 핍박하고 치고 죽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참 선지자는 패역한 무리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아야 한다. 선지자는 회중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선포해야 한다. 그것이 선지자의 사명이다. 그것이 오늘날 전도자나 설교자의 사명이기도 하다. [8-10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너는] 그 패역한 족속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패역할지라도,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한다. 그는 그 말씀을 가감치 말고 회중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두루마리 책을 펴 보이셨는데 그 책에는 안팎에 글들이 가득하였다. 그 내용은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들이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메시지는 복의 선포가 아니고 재앙의 선포이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펴 보이신 두루마리 책의 안팎에 글들이 가득한 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들의 충족함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알리시고자 하시는 내용을 성경에 충분히 계시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열린 마음과 사모하는 심령으로 성경을 읽는 자마다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패역하지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반복하여 죄를 지었고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은 마침내 굳어졌고 그들의 얼굴은 뻔뻔해졌다. 우리는 그렇게 패역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온유함과 겸손함과 사모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닫고(살전 2:13) 아멘으로 받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달게 받아야 했다. 죄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들을 구원하는 일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겨주신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향해 자비하시고 오래 참으신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을 많이 읽고 듣고 배우고 묵상함으로 온전케 되고 하나님의 일들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는 덕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하고(딤후 3:16-17)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이 되어야 한다. 3장: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우심 1-15절, 에스겔을 준비시키심 [1-3절]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두루마리 책을 주시며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그 책에는 에스겔이 전해야 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다. 에스겔은 입을 벌려 그것을 받아먹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가서 전할 수 있다. 하나님의 종들은 성경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며 말씀의 충만함을 얻어야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담대히 잘 전할 수 있다. 그는 조금 먹을 것이 아니라 배에, 창자에 채워야 했다(3절). 에스겔이 먹은 그 두루마리 책의 말씀은 그의 입에서 달기가 꿀 같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참으로 기쁘고 복된 말씀이다. [4-7절]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너를 방언이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 너를 방언이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알아듣지 못할 열국에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었더면 그들은 정녕 네 말을 들었으리라.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보내시는 대상은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방언이 어려운 이방인들이 아니었다. 만일 그가 이방인들에게 보내졌더라면 그들은 그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신약시대에 바울이 전도할 때도 유대인들은 바울의 말을 대적하였으나 이방인들은 듣고 기쁘게 받았다(행 13:44-48).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보내시는 대상은 이스라엘 족속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받아들여야 하였다. [8-11절] 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대하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네 이마로 화석(火石)[부싯돌]보다 굳은 금강석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라 하시고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하시더라. 에스겔이 보냄을 받은 이스라엘 족속은 얼굴이 굳고 이마가 굳은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얼굴과 그의 이마를 굳게 하시되, 부싯돌보다 더 굳은 금강석같이 굳게 하셨다. 그러므로 에스겔은 그 패역한 족속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말아야 했다. 또 그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고 선포해야 했다. [12-15절] 때에 주의 신[영]이 나를 들어 올리시는데 내 뒤에 크게 울리는 소리가 들려 이르기를 여호와의 처소에서 나는 영광을 찬송할지어다 하니 이는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와 생물 곁에 바퀴 소리라. 크게 울리는 소리더라. 주의 신[영]이 나를 들어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내가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행하니 여호와의 권능이 힘있게 나를 감동하시더라. 이에 내가 델아빕에 이르러 그 사로잡힌 백성 곧 그발 강가에 거하는 자들에게 나아가 그 중에서 민답히[놀라서] 7일을 지내니라. 하나님의 영께서는 그를 들어올려 데려가셨고 그는 괴롭고 분한 심령으로 행하였다. 그가 괴롭고 분한 심령을 가진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극심한 죄악과 그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바벨론 군대의 침공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호와의 손이 힘있게 그 위에 있었고 그의 권능이 힘있게 그를 감동하셨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됨과 패역함 때문에 괴롭고 분한 심령과 당황하고 놀란 심령이었지만 힘을 잃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 아래 있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성경을 사랑하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먹게 하셨다. 이것은 물론 상징적 사건이었을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정금보다 더 귀한 말씀이요 꿀보다 더 단 말씀이다. 시편 19:10,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편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고 읽고 묵상하자. 둘째로, 우리는 패역한 사람들에게도 전도해야 한다. 에스겔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한 자들에게 보내졌다. 그들은 그가 전하는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고 그들에게 전하여야 했다. 우리의 전도 대상자들도 때때로 패역한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하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담대히 전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교훈하였다(딤후 4:3-5). 셋째로, 전도를 위해서는 몇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강한 마음이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부싯돌보다 더 굳은 금강석 같은 이마를 주셨다. 그는 에스겔에게 그들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둘째, 바른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전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권능이다. 에스겔은 심령의 괴로움과 놀람 중에도 하나님의 권능이 그 위에 있었다. 주께서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 .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행 1:8). 16-27절, 파수꾼으로 세우심 [16-17절] 7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에스겔이 델아빕 그발 강가에 거하는 그 사로잡힌 백성들 가운데서 7일을 지낸 후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체적 시점과 상황에서 선지자에게 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스라엘 백성의 파수꾼으로 세우셨다고 말씀하셨다. 파수꾼은 군대의 경계병 혹은 보초병과 같다. 에스겔을 파수꾼이라 부르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대신해 이스라엘 백성을 깨우치고 경고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18-19절]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값[핏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파수꾼의 사명은 엄숙하였다. 악인의 경우, 만일 하나님께서 악인에게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파수꾼이 그 악인에게 경고하고 깨우치지 않았다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 죽을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핏값을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파수꾼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고 말하였고(롬 1:14-15), 또 “[내가]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하였다(고전 9:16). 그러나 파수꾼이 악인에게 경고하고 깨우쳤는데도 그 악인이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떠나지 않고 회개치 않았다면 그는 그 죄악 중에 죽을 것이며 파수꾼의 영혼은 보존될 것이다. 이 경우에 파수꾼의 잘못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파수꾼의 사명을 다한 것이다. [20-21절] 또 의인이 그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 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라. 그가 그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 피값[핏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치 않게 하므로 그가 범죄치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의인의 경우에, 의인이 과거에 많은 의를 행했다 하더라도 파수꾼이 그를 경고하고 깨우치지 않으므로 그 의에서 떠나 악을 행하면 이미 행한 의는 아무 소용이 없으며 그는 죽을 것이다. 죄는 작은 죄라도 영혼을 멸망시킬 만하다. 야고보는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라고 말했다(약 2:10). 비록 우리의 선행이 질적으로 부족하고 시간적으로도 영속적이지 못하여 구원의 공로가 될 수 없고 우리의 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지만, 그러나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가 계속 죄를 지어서는 안 되고 예수님의 의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의를 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의인이 파수꾼의 경고와 깨우침이 없어서 범죄하여 멸망할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 핏값을 파수꾼에게서 찾으실 것이다. 그 파수꾼이 자기 사명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파수꾼이 그 의인을 경고하고 깨우쳐 그가 범죄치 않으면 그 의인은 살 것이며 그 파수꾼도 그 영혼을 보존할 것이다. 그는 그의 사명을 다했기 때문이다. [22-23절]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거기서 내게 임하시고 또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 내가 거기서 너와 말하리라 하시기로 내가 일어나 들로 나아가니 여호와의 영광이 거기 머물렀는데 내가 전에 그발 강가에서 보던 영광과 같은지라. 내가 곧 엎드리니. 하나님께서는 권능으로 에스겔에게 임하시고 일어나 들로 나가게 하셔서 거기서 그와 말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주의 종들을 조용한 곳으로 부르신다. 예수께서는 시시때때로 산이나 들판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곤 하셨다(막 1:35; 14:23). 에스겔은 일어나 들로 나갔는데 거기서 그는 전에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여호와의 영광을 보았고 하나님과 대면하며 그 앞에 엎드렸다. [24-25절] 주의 신[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고 내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 인자야, 무리가 줄로 너를 동여매리니 네가 그들 가운데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 이것은 에스겔이 무리들의 억압과 방해와 배척과 핍박으로 인해 자기 집에 은둔하게 될 것을 보이신 것 같다. 에스겔은 공적인 설교 사역을 잠시 중단하고 그의 집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통의 시간을 가지며 그에게 찾아오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적 설교 사역을 어느 기간 동안 할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26-27절] 내가 네 혀로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너로 벙어리 되어 그들의 책망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하나님께서 에스겔로 하여금 책망의 설교자가 되지 못하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징벌이었다. 설교자의 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스가랴를 벙어리 되게 하셨던 것처럼 그가 입을 닫으시면 설교자는 벙어리나 더듬거리는 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지 않을 때 바른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에스겔과 더불어 말씀하실 때 에스겔의 입은 열릴 것이다(겔 24:27; 33:21-22).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사람들의 입을 지으신 자가 하나님이시며(출 4:11-12), 그가 입을 여시면 선지자의 입이 열릴 것이다. 그때 그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고 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스겔이 입을 열어 말씀을 전할 때에도 듣는 자는 들을 것이지만, 듣기 싫어하는 자는 듣지 않을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파수꾼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하나님을 대신하여 전하는 것이다. 파수꾼은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먼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을 잘 들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전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먼저 성경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고 성경을 배우고 연구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모든 성도는 다 파수꾼과 같다. 우리는 성경을 잘 읽고 듣고 배워 우리 주위의 믿지 않는 가족과 이웃에 대해 파수꾼의 사명을 다하자. 둘째로, 파수꾼의 사명은 악인을 경고하고 깨우쳐 그 죄악에서 떠나게 하며 의인도 경고하고 깨우쳐 범죄치 않도록 하는 것이다. 파수꾼이 죄를 경고하고 깨우치는 일을 바르게 하면, 듣는 자들이 비록 거역하여 멸망한다 할지라도 그의 책임은 없지만, 만일 경고하고 깨우치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 책임이 파수꾼에게로 돌아가고 하나님께서는 그 멸망하는 자의 핏값을 파수꾼에게 찾으실 것이다. 이것은 두려운 말씀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 한다. 그래야 성도에게 주신 전도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된다. 우리가 전도의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책임을 우리에게 물으실 것이다. 셋째로, 파수꾼의 입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파수꾼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파수꾼의 입을 닫기도 하시고 열기도 하신다. 하나님께서 그의 입을 여실 때 그는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입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주시기를 구하며 또 담대히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되자. 4장: 예루살렘 멸망의 예표 [1-3절] 너 인자야, 박석(礡石)을 가져다가 네 앞에 놓고 한 성읍 곧 예루살렘을 그 위에 그리고 그 성읍을 에워싸되 운제(雲梯)를 세우고 토둔(土屯)을 쌓고 진을 치고 공성퇴(攻城槌)를 둘러 세우고 또 전철(煎鐵)을 가져다가 너와 성읍 사이에 두어 철성(鐵城)을 삼고 성을 향하여 에워싸는 것처럼 에워싸라. 이것이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는 모형을 만들게 하셨다. 그는 박석(礡石)을 가져다가 그 앞에 놓고 한 성읍 곧 예루살렘을 그 위에 그리게 하셨다. ‘박석(礡石)’( 레베나 )은 ‘흰색의 토판(土版)’을 말한다. 또 그는 그 성읍을 에워싸되 운제(雲梯)를 세우고 토둔(土屯)을 쌓고 진을 치고 공성퇴(攻城槌)를 둘러 세우게 하셨다. ‘운제(雲梯)’는 포위벽을 가리키고, 토둔(土屯)은 둑을 말하며, 공성퇴(攻城槌)는 성벽을 부수는 큰 쇠망치나 나무망치를 가리킨다. 또 그는 ‘전철(煎鐵)’ 곧 철판을 가져다가 에스겔과 성읍 사이에 두어 ‘철성(鐵城)’ 곧 철성벽을 삼고 성을 향하여 에워싸는 것처럼 에워싸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이 말씀은 예루살렘 성이 강력한 군대에 의해 포위되어 결국 멸망할 것을 예시하신 것이다. 에스겔이 만든 그 모형은 예루살렘 성의 멸망의 징조가 될 것이다. [4-8절] 너는 또 좌편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당하되 네 눕는 날수대로 그 죄악을 담당할지니라. 내가 그들의 범죄한 햇수대로 네게 날수를 정하였나니 곧 390일이니라. 너는 이렇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고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우편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40일로 정하였나니 1일이 1년이니라. 너는 또 에워싼 예루살렘을 향하여 팔을 벗어 메고 예언하라. 내가 줄로 너를 동이리니 네가 에워싸는 날이 맟도록 몸을 이리 저리 돌리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로 하여금 390일 동안 왼쪽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게 하고, 40일 동안 오른쪽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를 담당하게 하셨다. 1일은 1년을 의미했다. 또 그는 에스겔에게 예루살렘을 향해 팔을 걷고 예언하라고 말씀하시고 또 그가 줄로 그를 동이실 것이며 예루살렘 성이 에워싸이는 날이 마치도록 그가 몸을 이리 저리 돌리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다. 본문의 숫자의 뜻은 잘 알 수 없으나, 390년은 대략 북방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운 때(대략 주전 933년)로부터 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올 때(주전 537년)까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고, 40년은 남방 유다의 가장 악한 왕 므낫세의 약 40년간의 우상숭배적 통치 기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9-12절] 너는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를 가져다가 한 그릇에 담고 떡을 만들어 네 모로 눕는 날수 곧 390일에 먹되 너는 식물을 달아서 하루 20세겔 중씩 때를 따라 먹고 물도 힌 6분 1씩 되어서 때를 따라 마시라. 너는 그것을 보리떡처럼 만들어 먹되 그들의 목전에서 인분(人糞) 불을 피워 구울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를 가져다가 한 그릇에 담고 떡을 만들어 그가 옆으로 눕는 날수 곧 390일에 먹되 음식을 달아서 하루 20세겔 중[무게]씩 때를 따라 먹고 물도 힌 6분의 1씩 되어서 때를 따라 마시라고 명하셨다. 1세겔은 약 10그램이며 1힌은 약 3.7리터이다. 그러면 떡 20세겔은 약 200그램의 떡을 가리키고, 물 6분의 1 힌은 약 0.6리터이다. 이것은 하루에 먹기에는 너무 작은 양이다. 그것은 그들이 양식이 부족하고 겨우 연명하게 될 것을 보인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그 떡을 보리떡처럼 만들되 이방사람들의 눈앞에서 인분(人糞) 불을 피워 구우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들이 얼마나 비천한 상태에 떨어질 것인지를 보인다. [13-17절]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열국으로 쫓아 흩을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이와 같이 부정한 떡을 먹으리라 하시기로 내가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나는 영혼을 더럽힌 일이 없었나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죽은 것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을 먹지 아니하였고 가증한 고기를 입에 넣지 아니하였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쇠똥으로 인분(人糞)을 대신하기를 허하노니 너는 그것으로 떡을 구울지니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예루살렘에서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리니 백성이 경겁[근심](BDB) 중에 떡을 달아 먹고 민답[두려움] 중에 물을 되어 마시다가 떡과 물이 결핍하여 피차에 민답하여[두려워] 하며 그 죄악 중에서 쇠패하리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잡혀간 이방 나라에서 이와 같이 부정한 떡을 먹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에스겔은 자신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죽은 것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을 먹지 않았고 가증한 고기를 입에 넣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호와께서는 쇠똥으로 인분(人糞)을 대신하기를 허락하셨다. 또 그는 “내가 예루살렘에서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리니 백성이 근심 중에 떡을 달아 먹고 두려움 중에 물을 되어 마시다가 떡과 물이 결핍하여 피차에 두려워 하며 그 죄악 중에서 쇠패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의뢰하는 양식’이라는 원어는 ‘양식의 지팡이’라는 말로 ‘양식의 공급’ (BDB, NIV) 이라는 뜻 같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예루살렘 성의 멸망이나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은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가운데 이루어질 것이다. 에스겔에게 지시하신 일들은 하나님의 뜻을 예시하였다. 이 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이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고 경외하며 모든 일을 그에게 의탁해야 한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은 죄 때문에 비참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온갖 우상들을 숭배하였고 부도덕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할 것이다. 그들은 먹을 양식이 부족하고 부정한 떡을 먹을 것이며, 이방 나라에 포로가 되어 많은 고생을 할 것이다. 그들은 그 죄악 중에서 쇠패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상숭배를 버리고 참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계명을 순종하고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5장: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함 [1-4절] 인자야, 너는 날카로운 칼을 취하여 삭도( 타아르 학갈라빔 )[면도칼]를 삼아 네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저울에 달아 나누었다가 그 성읍을 에워싸는 날이 차거든 너는 터럭 3분지 1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3분지 1은 가지고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또 3분지 1은 바람에 흩으라. 내가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너는 터럭 중에서 조금을 가져 네 옷자락에 싸고 또 그 가운데서 얼마를 가져 불에 던져 사르라. 그 속에서 불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로 나오리라. 에스겔은 날카로운 면도칼로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보관했다가 예루살렘 성이 에워싸이는 날 그 3분지 1은 성 안에서 불사르고 3분지 1은 성 주위에서 칼로 치고 3분지 1은 바람에 흩어야 했다. 그러면 그 뒤를 따라 하나님께서 칼을 빼실 것이다. 에스겔은 또 그 털들 중 일부를 가져 그의 옷자락에 싸고 그 가운데서 조금 가져다가 불에 던져 살라야 하였다. 그러면 그 속에서 불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로 나올 것이다. 이것은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5-7절]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 두어 열방으로 둘러 있게 하였거늘 그가 내 규례를 거스려서[거슬러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 내 율례도 그리함이 그 둘러 있는 열방보다 더하니 이는 그들이 내 규례를 버리고 내 율례를 행치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 요란함이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인보다 더하여 내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내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인의 규례대로도 행치 아니하였느니라. ‘주 여호와’는 개인과 국가와 세계의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고 특히 자기 백성의 삶을 주장하시고 그의 공의로 다스리시는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을 뜻한다. 주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주신 말씀은 예루살렘 성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선 예루살렘 성의 죄에 대해 말씀하신다. 예루살렘 성은 이방 나라들 가운데 처해 있으면서 하나님의 규례와 율례를 버리고 행하지 않았으며 이방인들보다 더 악을 행하였다. 부패한 교회는 이방 나라 사람들보다 더 악하였다. 그들은 심지어 그들 주위에 있는 이방인들의 규례대로도 행치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이방 나라 사람들이 양심에 의거하여 만든 그들의 도덕적 규범들조차도 지키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8-10절]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너를 치며 이방인의 목전에서 너의 중에 벌을 내리되 네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내가 전무후무하게 네게 내릴지라. 그리한즉 너의 중에서 아비가 아들을 먹고 아들이 그 아비를 먹으리라. 내가 벌을 네게 내리고 너의 중에 남은 자를 다 사방에 흩으리라. 주 여호와 즉 주권적 섭리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예루살렘 성의 징벌을 선언하신다. 그는 “나 곧 내가 너를 치며 이방의 목전에서 너의 중에 벌을 내리되”라고 말씀하신다. 예루살렘 성의 징벌은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그들의 죄는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일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신다. 그는 사람들의 가증한 죄악들에 대해 징벌하실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방인들의 눈앞에서 하나님의 내리시는 전무후무한 벌을 받을 것이다. 심지어 아비가 아들을 먹고 아들이 그 아비를 먹는 참혹한 지경에 떨어질 것이고 또 그 중에 남은 자들은 사방에 흩어질 것이다. [11-13절]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혔은즉 나도 너를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미약하게 하리니( 에그라 ע������������������)[눈을 돌리리니](BDB, NASB) 너의 가운데서 3분지 1은 온역으로 죽으며 기근으로 멸망할 것이요 3분지 1은 너의 사방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3분지 1은 내가 사방에 흩고 또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이와 같이 내 노가 다한즉 그들에게 향한 분이 풀려서 내 마음이 시원하리라. 내 분이 그들에게 다한즉 나 여호와가 열심으로 말한 줄을 그들이 알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미운 물건들과 모든 가증한 일들로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혔다. 그것은 그들의 우상숭배를 가리킨다. 그들은 심지어 성전 뜰에 해와 달과 별들을 위한 단들을 쌓음으로 성소를 더럽혔다. 열왕기하 21:4-5,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전의 단들을 쌓고 또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단들을 쌓고.”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반드시 그 성을 징벌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 성은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아껴 보지 않으시고 긍휼을 베풀지 않으시고 그의 눈을 그들에게서 돌리실 것이다. 그는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자이시지만, 죄에 대해서는 매우 엄위하시고 징벌하신다. 또 하나님께서는 본장 서두에 에스겔에게 주신 모형적 행위의 뜻을 나타내신다. 그들 가운데 3분지 1은 온역과 기근으로 죽을 것이며 3분지 1은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3분지 1은 사방에 흩어질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노가 다하면 그들을 향한 그의 분이 풀려서 그의 마음이 시원할 것이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죄, 특히 자기 백성의 죄악들에 대해 진노하시고 징벌하신다. [14-17절] 내가 또 너로 황무케 하고 너를 둘러 있는 이방인 중에서 모든 지나가는 자의 목전에 능욕거리가 되게 하리니 내 노와 분과 중한 책망으로 네게 벌을 내린즉 너를 둘러 있는 이방인에게 네가 수욕과 조롱을 당하고 경계와 괴이한 것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멸망케 하는 기근의 독한 살로 너희를 멸하러 보내되 기근을 더하여 너희의 의뢰하는 양식[양식의 지팡이]을 끊을 것이라. 내가 기근과 악한 짐승을 너희에게 보내어 외롭게 하고 너희 가운데 온역과 살륙으로 행하게 하고 또 칼이 너희에게 임하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로 예루살렘 성은 황폐해지고 이방 나라들 중에서 모욕거리가 되고 수치와 조롱을 당하며 경계와 두려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에 대해 엄격한 공의로 징벌하심으로 사람의 교만을 꺾으시고 사람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하실 것이다. 그는 또 멸망케 하는 기근의 독한 살로 그들을 멸하려 보내실 것이다. 기근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무서운 징벌과 재앙의 하나이다. 그는 그들의 ‘양식의 지팡이’ 혹은 양식의 공급을 끊으실 것이다. 그는 또 그들에게 기근과 악한 짐승, 무서운 전염병과 칼을 보내실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기근과 무서운 전염병, 전쟁의 칼, 그리고 사방에 흩어짐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은 범죄하면 하나님의 벌을 받는다. 창세기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시편 1: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범죄자는 하나님의 징벌을 각오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벌은 매우 무섭고 혹독하다. 하나님께서는 기근과 무서운 전염병, 칼과 사방으로 흩어짐으로 치시고, 심지어 아비가 아들을 먹고 아들이 그 아비를 먹는 끔찍한 일까지 벌어질 것이다. 옛 세상 사람들의 음란과 강포로 인한 노아 홍수 심판과, 음란과 동성애의 도시 소돔 고모라의 유황불비 심판과, 마지막 불 심판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벌을 두려워하고 죄를 회개해야 한다. 셋째로, 성도의 복된 길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것이다. 신명기 10:13,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이사야 48:18,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시편 119:1-2,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6장: 이스라엘이 황폐할 것임 [1-4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산을 향하여 그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께서 산과 작은 산과 시내와 골짜기를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칼로 너희에게 임하게 하여 너희 산당을 멸하리니 너희 제단이 황무하고 태양상( 캄마님 )[분향단(KB, NASB, NIV), 태양상(sun-pillars)(BDB, Langenscheidt)]이 훼파될 것이며 내가 또 너희 중에서 살륙을 당하여 너희 우상 앞에 엎드러지게 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로 이스라엘 땅을 침공케 하실 것이다. 그때 특히 그들의 우상숭배의 장소인 산당들이 없어질 것이다. 그들의 제단들이 황무할 것이며 그들의 태양상들이 훼파될 것이며 살육 당한 자들은 그들의 우상들 앞에 엎드러질 것이다. [5-7절] 이스라엘 자손의 시체를 그 우상 앞에 두며 너희 해골을 너희 제단 사방에 흩으리라. 내가 너희 거하는 모든 성읍으로 사막이 되며 산당으로 황무하게 하리니 이는 너희 제단이 깨어지고 황폐하며 너희 우상들이 깨어져 없어지며 너희 태양상들이 찍히며 너희 만든 것이 다 폐하며 또 너희 중에서 살륙을 당하여 엎드러지게 하여 너희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함이니라. 그들이 산당들에, 제단들 주위에, 우상들 앞에 엎드러진다는 말은 그 우상들이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구원해주지 못함을 나타낸다. 우상들은 생명 없는 허무한 것들이며 실상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신다. 3)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참 하나님으로, 영원자존자로, 주권적 섭리자와 심판자로 알게 하신다는 뜻이다. 사람이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 구원이며 영생이다. 거기에 땅 위에서의 평안도 있다. [8-10절] 그러나 너희가 열방에 흩어질 때에 내가 너희 중에서 칼을 피하여 이방 중에 남아 있는 자가 있게 할지라. 너희 중 피한 자가 사로잡혀 이방인 중에 있어서 나를 기억하되 그들이 음란한 마음으로 나를 떠나고 음란한 눈으로 우상을 섬겨 나로 근심케 한 것을 기억하고 스스로 한탄하리니 이는 그 모든 가증한 일로 악을 행하였음이라. 그때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이런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겠다 한 말이 헛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열방에 흩으실 때 그들 중에 칼을 피해 이방인들 중에 남아 있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큰 진노 중에도 남은 자들, 피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이다. 그들은 이방 나라에서 포로생활을 하며 자신들이 음란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났고 음란한 눈으로 우상들을 섬겨 그를 근심케 한 것을 기억하고 스스로 한탄할 것이다. 그들은 그때에야 자신들이 불신실하게 떠났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바르게 알게 되며 또한 재앙을 선언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하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11-14절]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말할지어다. 오호라, 이스라엘 족속이 모든 가증한 악을 행하므로 필경 칼과 기근과 온역에 망하되 먼데 있는 자는 온역에 죽고 가까운 데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지고 남아 있어 에워싸인 자는 기근에 죽으리라. 이같이 내 진노를 그들에게 이룬즉 그 살륙 당한 시체가 그 우상 사이에, 제단 사방에, 각 높은 고개에, 모든 산꼭대기에,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무성한 상수리나무 아래 곧 그 우상에게 분향하던 곳에 있으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내 손을 그들의 위에 펴서 그 거하는 온 땅 곧 광야에서부터 디블라까지[디블라의 광야보다 더](KJV, NASB) 처량하고 황무하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말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사람들을 주목시키며 강조하여 말하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족속은 모든 가증한 악을 행하므로 필경 칼과 기근과 무서운 전염병에 망할 것이다. 먼데 있는 자들은 전염병에 죽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남아 있어 에워싸인 자들은 기근에 죽을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이렇게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칼과 기근과 무서운 전염병으로 임할 것이다. 그 살육 당한 자들의 시체들은 그 우상들 사이에, 제단들 사방에, 각 높은 고개들에, 모든 산꼭대기들에, 모든 푸른 나무들 아래에, 무성한 상수리나무들 아래 곧 그 우상들에게 분향하던 곳들에 있을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음란하듯이 그렇게 열렬히 섬겼던 우상들은 가짜 신들이었고 헛것임이 증명될 것이다. 그들이 거하는 온 땅은 황무하게 될 것이다. 그때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이 열심히 섬겼던 우상들은 헛되었다. 그들이 섬겼던 그 모든 산당들과 제단들과 태양상들은 다 헛되었다. 예레미야 10:11,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현대인들의 우상은 돈과 육신의 즐거움과 과학 등이다. 그러나 그것들도 사람에게 참 평안과 행복과 영생을 주지 못하는 헛된 것들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진노하셨고 전쟁과 기근과 무서운 전염병으로 치셨고 그 땅을 황폐케 하셨다. 우상숭배는 죄 중에 큰 죄이며 그 보응은 영원한 지옥 불못이다. 요한계시록 21:8,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우리는 부족한 자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자. 여호와 하나님만 영원자존하신 참 하나님이시며 창조자이시며 섭리자이시며 심판자이심을 바로 알자. 또 모든 우상과 죄악들을 버리고 오직 의와 선을 힘써 행하자. 7장: 재앙이 임박함 [1-4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 인자야, 주 여호와 내가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말하노라. 끝났도다, 이 땅 사방의 일이 끝났도다. 이제는 네게 끝이 이르렀나니 내가 내 진노를 네게 발하여 네 행위를 국문(鞠問)하고( 솨파트 )[판단하고] 너의 모든 가증한 일을 보응하리라. 내가 너를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5-9절]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재앙이로다, 비상한 재앙이로다. 볼지어다, 임박하도다. 끝이 났도다, 끝이 났도다, 끝이 너를 치러 일어났나니 볼지어다, 임박하도다. 이 땅 거민아, 정한 재앙( 체피라 )[멸망의 때](NASB, NIV)이 네게 임하도다.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왔으니 요란한 날이요 산에서 즐거이 부르는 날이 아니로다. 이제 내가 속히 분을 네게 쏟고 내 진노를 네게 이루어서 네 행위대로 너를 심판하여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네게 보응하되 내가 너를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치는 줄을 네가 알리라. [10-13절] 볼지어다, 그 날이로다. 볼지어다, 임박하도다. 정한 재앙[멸망의 때]이 이르렀으니 몽둥이가 꽃 피며 교만이 싹났도다. 포학이 일어나서 죄악의 몽둥이가 되었은즉 그들도, 그 무리도, 그 재물도 하나도 남지 아니하고 그 중의 아름다운 것( 노하 )[뛰어난 것](데오도션, 시마쿠스, 게세니우스, 카일)도 없어지리로다.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왔으니 사는 자도 기뻐하지 말고 파는 자도 근심하지 말 것은 진노가 그 모든 무리에게 임함이로다. 판 자가 살아 있다 할지라도 다시 돌아가서 그 판 것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묵시로 그 모든 무리를 가리켜 말하기를 하나도 돌아갈 자가 없겠고 악한 생활로 스스로 강하게 할 자도 없으리라 하였음이로다. [14-22절] 그들이 나팔을 불어 온갖 것을 예비하였을지라도 전쟁에 나갈 사람이 없나니 이는 내 진노가 그 모든 무리에게 미쳤음이라. 밖에는 칼이 있고 안에는 온역과 기근이 있어서 밭에 있는 자는 칼에 죽을 것이요 성읍에 있는 자는 기근과 온역에 망할 것이며 도망하는 자는 산 위로 피하여 다 각기 자기 죄악 까닭에 골짜기 비둘기처럼 슬피 울 것이며 모든 손은 피곤하고 모든 무릎은 물과 같이 약할 것이라. 그들이 굵은 베로 허리를 묶을 것이요 두려움이 그들을 덮을 것이요 모든 얼굴에는 수치가 있고 모든 머리는 대머리가 될 것이며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예물( 닛다 )[더러운 것, 가증한 것]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베푸는 날에 그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에 빠치는 것이 됨이로다. 그들이 그 화려한 장식으로 인하여 교만을 품었고 또 그것으로 가증한 우상과 미운 물건을 지었은즉 내가 그것으로 그들에게 오예물[더러운 것, 가증한 것]이 되게 하여 외인의 손에 붙여 노략하게 하며 세상 악인에게 붙여 그들로 약탈하여 더럽히게 하고 내가 또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돌이키리니 그들이 내 은밀한 처소를 더럽히고 강포한 자도 거기 들어와서 더럽히리라. [23-27절] 너는 쇠사슬을 만들라. 이는 피 흘리는 죄가 그 땅에 가득하고 강포가 그 성읍에 찼음이라. 내가 극히 악한 이방인으로 이르러 그 집들을 점령하게 하고 악한 자( 앗짐 )[강한 자들, 사나운 자들]의 교만을 그치게 하리니 그 성소가 더럽힘을 당하리라. 패망이 이르리니 그들이 평강을 구하여도 없을 것이라. 환난에 환난이 더하고 소문에 소문이 더할 때에 그들이 선지자에게 묵시를 구하나 헛될 것이며 제사장에게는 율법이 없어질 것이요 장로에게는 모략이 없어질 것이며 왕은 애통하고 방백은 놀람을 옷 입듯하며 거민의 손은 떨리리라. 내가 그 행위대로 그들에게 갚고 그 죄악대로[그들의 공과(功過)대로(KJV), 그들의 판단들대로(NASB)] 그들을 국문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특히 그가 사람의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는지와 그의 진노에 대해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며(3, 8, 12, 14, 19절), 그가 진노하시는 때가 있고(7, 10, 12절), 또 그의 진노는 매우 크고 혹독하고 참으로 무섭다(4, 9절).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재앙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4, 9, 27절).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우상숭배하며 교만하며 남을 미워하며 악을 행하지만, 그가 하나님을 안다면 경건하고 정직하고 선하게 살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모든 악을 버리고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게만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으신다(3, 4, 8, 9, 27절). 그는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떤 행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샀는가? 그들은 우선 교만하였다(10, 20, 24절). 또 그들은 강포하고 포학하며 사람들의 피를 흘렸다(11, 23절). 죄인들은 거칠고 강포하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정반대다(마 11:29). 또 그들은 가증한 우상들을 섬겼다(20절). 우상숭배는 가장 큰 죄이며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죄악이다.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올 뿐이다. 죄의 결과는 모든 불행과 죽음과 지옥 형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죄를 미워하고 버려야 한다. 우리는 우상숭배하지 말아야 하고 교만치 말아야 하며 서로 미워하지 말아야 하고 강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건하게 살며 그의 계명대로, 즉 성경의 교훈대로 정직하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특히 은금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악한 행위들 때문에 그들을 비상한 재앙으로 치실 때(5, 15-18절), 곧 이방인들의 침입으로 그들을 치실 때(21-22절), 그 재앙의 날에 은금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19절). 그 은금은 그들로 교만케 하고 우상을 만드는 데 쓰였을 뿐이다(20절). 은금은 세상에서 유용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참 행복을 주지는 못한다. 그것은 특히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무용지물이다.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재앙에서 구원하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를 전쟁과 기근과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건져주지 못한다. 최종적으로, 그것은 우리를 영원한 지옥 불못에서 건져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적으로 바른 가치관을 가져야 하고, 물질만능적 세상에 살지만 은금을 너무 크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8장: 이스라엘의 가증한 일들 [1-4절] 제6년 6월 5일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았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서 내게 임하기로 내가 보니 불같은 형상이 있어 그 허리 이하 모양은 불같고 허리 이상은 광채가 나서 단 쇠 같은데 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신[영]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이상 가운데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는 투기의 우상 곧 투기를 격발케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 있는데 내가 들에서 보던 이상과 같더라. ‘제6년’은 여호야긴이 사로잡힌 때로부터 제6년, 즉 주전 591년경이다. 에스겔은 자신의 집에서 유다 장로들과 함께 있을 때 이 계시를 받았다. 주 여호와의 손이 그에게 임하였고 그는 불같은 형상을 보았다. 그 형상의 허리 이하는 불같은 모양이었고 허리 이상은 광채가 나서 반짝이는 금속 같았다. 그것은 에스겔 1:27에서도 증거된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의 심판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 같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이상 중에 주의 영의 이끌림을 받아 예루살렘 성전 뜰 안으로 갔고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렀다. 거기는 투기의 우상 곧 질투를 일으키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었다. 우상은 하나님의 질투를 일으킨다(출 20:4-5). [5-6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제 너는 눈을 들어 북편을 바라보라 하시기로 내가 눈을 들어 북편을 바라보니 제단 문 어귀 북편에 그 투기의 우상이 있더라.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행하는 일을 보느냐? 그들이 여기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 너는 다시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에스겔은 성전의 제단 문 어귀 북편에 투기의 우상이 있는 것을 보았다.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는 성전 뜰 안까지 들어와 있었다. 그들은 성전 뜰에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했다. 그들의 가증한 일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소를 멀리 떠나실 수밖에 없었다. 성막이나 성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시는 표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그들에게 응답하시고 그들을 복 주셨으나, 그러나 그들이 범죄할 때 그는 더 이상 그들과 함께하실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이것보다 더 큰 가증한 일들이 또 있었다. [7-11절] 그가 나를 이끌고 뜰 문에 이르시기로 내가 본즉 담에 구멍이 있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이 담을 헐라[뚫으라] 하시기로 내가 그 담을 허니 한 문이 있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들어가서 그들이 거기서 행하는 가증하고 악한 일을 보라 하시기로 내가 들어가보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면 벽에 그렸고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70인이 그 앞에 섰으며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 가운데 섰고 각기 손에 향로를 들었는데 향연이 구름같이 오르더라. 하나님께서는 또 에스겔로 뜰의 담을 뚫고 들어가 한 문을 통과하여 그 안에서 행해지는 가증하고 악한 일들을 보게 하셨다. 에스겔은 담 안 사면 벽에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이 그려져 있고 이스라엘 장로 70인이 그 앞에 서서 손에 향로를 들고 분향하는 것을 보았다. 그 중에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있었다. 장로들의 분향하는 연기는 구름같이 올랐다. 이스라엘 장로들, 즉 나이든 어른들이 우상들 앞에서 열심히 분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12-13절]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그 우상의 방안 어두운 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다시 그들의 행하는 바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곳은 우상을 섬기는 어두운 방이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거기서 우상들에게 분향하며 말하기를,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 나이든 노인들은 회개할 줄 모르고 오히려 참된 신앙을 포기하였다. 그것은 순전한 불신앙이었다. 그러나 또 다른 큰 가증한 일들이 있었다. [14-15절]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그것을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에스겔은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해 애곡하는 광경을 보았다. 담무스는 바벨론 사람들이 섬기던 신이었다. 그것은 여인들까지 우상숭배에 빠져 있음을 증거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들이 또 있었다. [16절]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보니 여호와의 전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25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에스겔을 여호와의 전 안뜰로 인도하셨는데, 에스겔은 거기서 여호와의 전 문 앞, 곧 성소로 들어가는 문 앞, 현관과 번제단 사이에서 약 25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해 동방 태양에 경배하는 광경을 보았다. 현관 앞은 성소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세워진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기둥 사이를 말한다. 이곳은 제사장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그러면 여기 25인은 제사장들이며, 24인은 일반 제사장들이고 1인은 대제사장일 것이다. 그 제사장들은 거기서 성소를 등지고 태양을 향해 경배하고 있었다. 제사장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 태양신을 섬기고 있었던 것이다! [17-18절]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그들이 강포로 이 땅에 채우고 또 다시 내 노를 격동하고 심지어 나무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아껴 보지 아니하고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제사장들의 우상숭배는 심히 가증한 일이며 작은 악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강포로 이 땅에 채운다고 말씀하셨다. 또 그들은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키고 있었다. “심지어 나뭇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는 표현은 태양 숭배의 한 의식으로서 태양신에게 바쳐진 나뭇가지를 소중히 여기는 행위인 것 같다.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다. 하나님께서는 분노로 그들의 악을 갚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또 그는 그들을 아껴 보지 않고 긍휼을 베풀지도 않을 것이며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하여도 듣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본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의 죄악을 증거하며, 우리가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겨야 함을 교훈한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이 우상이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가치 있게 여긴다면 돈이 우상이 되고 하나님보다 육신의 쾌락을 더 사랑한다면 육신의 쾌락이 우상이 된다. 사람이 하나님보다 과학이나 이성을 더 크게 여긴다면 과학과 이성이 우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의 처음과 마지막을 알지 못하는 모든 헛된 우상들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말고 분별하고 경계하고 대적해야 한다.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디모데후서 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우리는 참된 경건을 소유하고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우리는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알고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대로만 믿고 살아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 우리는 성경에 대한 이런 확고한 믿음이 필요하다. 9장: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함 [1-2절] 그가 또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가라사대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로 각기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내가 본즉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 좇아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살륙하는 기계를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 와서 놋제단 곁에 서더라. ‘이 성을 관할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그의 천사들을 가리킨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주관하시며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 그들은 살육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 여섯 중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 천사는 특별한 임무를 맡은 자이었다. [3-4절]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그 특별한 임무를 맡은 천사에게 준 임무는 신약성경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 14만 4천명의 이마에 인을 치는 천사의 사역과 비슷했다. 예루살렘 성에서 탄식하며 우는 자들은 자신들과 동료 이스라엘 사람들이 행하는 가증한 일들이 하나님 앞에서 심히 죄악됨을 느끼기 때문이요 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선악 분별의 양심이 있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조금은 남아 있었던 자들일 것이다. [5-6절]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타하레구 레마쉬키스 )[죽여 멸하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이마에 표를 받은 자들은 죽음을 모면할 것이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마에 인 맞은 자들의 경우와 비슷하다(계 9:4). 천사들은 성전 앞에 있는 노인들에게서부터 심판을 시작했다. 주를 섬기는 일에 종사하는 자들이 먼저 심판을 받을 것이다. 마지막 심판 날에도 교인들이, 그것도 교회 안에서 위선적이게 행하던 자들이 먼저 심판을 받을 것이다. 베드로전서 4:17-18,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7-9절]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는지라. 엎드리어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가돌 비메오드 메오드 )[심히, 심히 커서]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 뭇테 )[왜곡된 정의]이 찼나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하나님께서 시체로 성전 뜰에 채우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우상숭배로 성전을 더럽혔기 때문이다(겔 8:6). 하나님의 진노는 참으로 두렵고 무섭다. 그들의 죄악은 심히, 심히 컸고 그 땅은 피들이 가득했다. 그것은 의인들의 피를 흘리는 것 같은 정당하지 않은 살인들을 가리킨다. 또 그 성에는 불법 즉 왜곡된 정의가 가득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자 되심을 부정하였다. [10-11절]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먹그릇을 찬 사람이 복명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 하더라. 하나님의 진노는 참으로 두렵다. 그가 노하시면 그에게서 긍휼과 자비를 기대할 수 없다. 그는 사람의 행위대로 공의롭게 보응하실 것이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말과 행위로 나타나며 그 인격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하다. 천사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라고 보고했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참으로 두렵다. 하나님께서는 살육하는 기계를 든 천사들을 동원하셨다. 그는 심판받을 자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셨고 천사들에게 그들을 죽여 멸하라고 명하셨다. 하나님의 심판 대상에는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지만 한번 노하시면 그의 노를 막을 자가 세상에 아무도 없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행실을 바르게 하고 모든 죄를 버려야 한다. 이스라엘 나라가 멸망하는 것은 그들의 죄악이 심히 컸기 때문이었다(9절). 이스라엘 땅은 무고한 자들의 피흘림이 가득했고 예루살렘 성에는 불법이 찼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행위를 보신다. 행위가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시겠다고 말씀하셨다(10절). 사람의 악한 행위는 하나님의 진노의 벌을 받을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족과 다른 이들의 죄악을 인해 탄식하며 울어야 한다. 그의 엄위하신 심판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죄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탄식하며 우는 자들에게 그 이마에 표를 하게 하심으로 죽음을 피할 길을 주셨고 멸망의 심판에서 그들을 제외케 하셨다(4-6절). 우리는 죄악된 세상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은 장망성(將亡城)이다. 우리는 우리의 죄악들과 이 세상의 죄악들과 하나님의 심판을 인해 탄식하며 울어야 한다. 10장: 그룹이 불을 내어줌 [1-2절] 이에 내가 보니 그룹들 머리 위 궁창에 남보석 같은 것이 나타나는데 보좌 형상 같더라. 하나님이 가는 베옷 입은 사람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그룹 밑 바퀴 사이로 들어가서 그 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 하시매 그가 내 목전에 들어가더라. 그룹들 머리 위 궁창에 나타난 남보석 같은 보좌 형상은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이라고 보인다. 그 가는 베옷 입은 사람이 그룹 밑 바퀴 사이로 들어가 받은 숯불은 심판의 불을 나타낸다. [3-5절] 그 사람이 들어갈 때에 그룹들은 성전 우편에 섰고 구름은 안 뜰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 성전 문지방에 임하니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 뜰에 가득하였고 그룹들의 날개 소리는 바깥뜰까지 들리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음성 같더라. 구름이 성전과 그 안뜰에 가득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이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음성과 같이 요란한 그 그룹들의 날개 소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 열심을 다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6-8절] 하나님이 가는 베옷 입은 자에게 명하시기를 바퀴 사이 곧 그룹들 사이에서 불을 취하라 하셨으므로 그가 들어가 바퀴 옆에 서매 한 그룹이 그룹들 사이에서 손을 내밀어 그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취하여 가는 베옷 입은 자의 손에 주매 그가 받아 가지고 나가는데 그룹들의 날개 밑에 사람의 손 같은 것이 나타났더라. [9-11절] 내가 보니 그룹들 곁에 네 바퀴가 있는데 이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고 저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으며 그 바퀴 모양은 황옥( 타르쉬스 )[녹보석](beryl)(출 28:20) 같으며 그 모양은 넷이 한결 같은데 마치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그룹들이 행할 때에는 사방으로 향한 대로 돌이키지 않고 행하되 돌이키지 않고 그 머리 향한 곳으로 행하며. 황옥 혹은 녹보석 같은 그 바퀴 모양은 하나님의 섭리 방식이 선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움을 나타내는 것 같고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은 모양은 자유로이, 빠르게 잘 굴러가는 것을 나타낸 것 같다. 그룹들이 행할 때 그 바퀴들이 머리 향한 곳으로 행하는 것은 그룹들이 하나님의 일을 일치단합하여 충성되이 수행하는 것을 보인다. [12절] 그 온 몸과 등과 손과 날개와 바퀴 곧 네 그룹의 바퀴의 둘레에 다 눈이 가득하더라. 에스겔 1:18도, “그 네 둘레로 돌아가면서 눈이 가득하며”라고 말했다. 신약시대에 사도 요한이 본 환상도 비슷했다. 요한계시록 4:8, “[네 생물의]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눈이 가득한 것은 그들이 주위 환경을 두루 감찰하는 것을 나타낼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자들은 주위 환경을 자세히 관찰하며 행해야 할 것이다. [13절] 내가 들으니 그 바퀴들을 도는 것이라 칭하며. ‘도는 것’이라는 원어( 학갈갈 )는 ‘회리바람같이 도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천사들이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때 매우 민첩하게 수행함을 나타낼 것이다. [14-15절] 그룹들은 각기 네 면이 있는데 첫 면은 그룹의 얼굴이요 둘째 면은 사람의 얼굴이요 셋째는 사자의 얼굴이요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이더라. 그룹들이 올라가니 그들은 내가 그발 강가에서 보던 생물이라. 그룹의 첫 번째 얼굴인 그룹의 얼굴은 소의 형상을 가리킨다(겔 1:10). 그룹의 네 얼굴은 그룹의 특성을 나타낼 것이다. 소는 충성을, 사람은 지혜를, 사자는 용맹을, 독수리는 생명력과 민첩함을 나타낼 것이다. 그 특성들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봉사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들, 즉 충성과 지혜와 용기와 민첩함을 보인다. [16-17절] 그룹들이 행할 때에는 바퀴도 그 곁에서 행하고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땅에서 올라가려 할 때에도 바퀴가 그 곁을 떠나지 아니하며 그들이 서면 이들도 서고 그들이 올라가면 이들도 함께 올라가니 이는 생물의 신[영]이 바퀴 가운데 있음이더라. 그룹들과 바퀴들은 함께 움직였다. 그것은 그 영이 그 바퀴 가운데 있기 때문이었다. 그 생물은 천사들을 상징한다. 그 생물들의 활동은 영의 활동이며, 그것은 일사불란하였다. [18-22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내 목전에 땅에서 올라가는데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함께하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물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덮였더라. 그것은 내가 그발 강가에서 본 바 이스라엘 하나님의 아래 있던 생물이라. 그들이 그룹들인 줄을 내가 아니라. 각기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으며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 형상이 있으니 그 얼굴의 형상은 내가 그발 강가에서 보던 얼굴이며 그 모양과 몸둥이도 그러하며 각기 곧게 앞으로 행하더라. 하나님의 영광은 그룹들 위에 머무셨고 그 그룹들은 날개를 들고 에스겔이 보는 데서 땅에서 올라가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물었다. 그 천사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충성하였다.

본장은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심판의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예루살렘 성 위에 흩으라는 명령을 기록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곧 시행될 것을 보인다. 가는 베옷 입은 천사는 하나님의 명대로 그룹들 밑의 바퀴 사이에서 숯불을 손에 받아 나왔다. 그는 이제 그 숯불을 예루살렘 성에 흩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의 멸망이 임박하였다. 그것은 유다 백성의 죄악 때문이었다. 그들의 죄의 결과는 멸망이었다. 본문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일들을 수행하는 천사들의 특성도 증거한다. 그것은 특히 그룹들의 네 얼굴을 통해 증거된다. 그것은 천사들이 하나님의 일들을 수행할 때 지혜와 충성과 용기와 민첩함을 가지고 함을 보인다. 이 네 가지 덕은 주를 섬기는 봉사하는 우리 모두에게 요구된다. 우리는 지혜와 충성, 용기와 민첩함을 가지고 주를 섬겨야 한다. 우리는 지혜롭고 충성된 종들이 되어야 하고, 또 죄와 마귀와 악령들과 싸우는 세상의 현실에서 용기와 민첩함을 가진 종들이 되어야 한다. 11장: 이스라엘의 회복이 약속됨 [1절] 때에 주의 신[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여호와의 전 동문 곧 동향한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그 문에 25인이 있는데 내가 그 중에서 앗술의 아들 야아사냐와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를 보았으니 그들은 백성의 방백( 사레 하암 )[백성의 지도자들](NASB)이라. 이 25인은 8:16에 언급된, 여호와의 전 안뜰 성전문 현관에서 동쪽 태양을 향해 경배하던 대표적 제사장들이며 24인은 일반 제사장들이고 한 명은 대제사장일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었다. [2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사람들은 불의를 품고 이 성중에서 악한 꾀를 베푸는 자니라. 지도자들이 불의를 품고 악한 꾀를 베풀고 있으니 그 성이 얼마나 부패했겠는가. 어느 도시나 나라나 지도자가 바른 사상과 인격을 가지지 않으면 그 도시나 나라는 부패하고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다. [3절] 그들의 말이 집 건축할 때가 가깝지 아니한즉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 하나니. 이 말은 예루살렘 성이 안전할 것이라는 뜻 같다. 그것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비웃는 말이었다고 본다. 그는 바벨론에 잡혀간 유대인들에게 “때가 오래리니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라”고 말했었다(렘 29:28). 하나님의 뜻은 예루살렘 성의 멸망이었다. [4절]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그들을 쳐서 예언하고 예언할지니라.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과 예루살렘의 악한 지도자들의 말은 이와 같이 서로 달랐다. 예루살렘이나 바벨론에서 잘못된 말이 떠돌 때 그것을 반박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가리어질 것이다. 그런 때의 침묵은 하나님의 진리와 뜻을 양보하는 일이 될 것이다. [5절] 여호와의 신[영]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렇게 말하였도다. 너희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내가 다 아노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족속의 불신앙적인 말을 다 아신다. 그는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생각까지도 다 아신다(계 2:23). [6절] 너희가 이 성읍에서 많이 살륙하여 그 시체로 거리에 채웠도다.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문제점은 그들이 그 성읍에서 사람들을 많이 죽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의인의 피를 많이 흘렸다(왕하 21:16). [7-11절]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성읍 중에서 너희가 살륙한 시체는 그 고기요 이 성읍은 그 가마려니와 너희는 그 가운데서 끌려 나오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칼을 두려워하니 내가 칼로 너희에게 임하게 하고 너희를 그 성읍 가운데서 끌어내어 타국인의 손에 붙여 너희에게 벌을 내리리니 너희가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변경(邊境)에서 너희를 국문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이 성읍은 너희 가마가 되지 아니하고 너희는 그 가운데 고기가 되지 아니할지라. 내가 너희를 이스라엘 변경에서 국문하리니. 지도자들이 죽인 자들의 시체는 그 성에 안전히 묻혀 있지만, 그들은 성에서 끌려 나와 다른 나라 사람들의 손에 붙여 칼에 죽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징벌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이 그들에게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은 성에서 끌려 나와서 이스라엘 국경 부근에서 죽을 것이다. 그때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공의로우심을 알게 될 것이다. [12-13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너희가 내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 사면에 있는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예언할 때에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가 죽기로 내가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다 멸절하고자 하시나이까 하니라. 그들이 이런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않고 그들 주위에 있는 이방인들의 규례대로 행하였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의 규례는 우상숭배와 부도덕한 것이다. 하나님의 요구하심은 사람이 그를 경외하고 섬기며 그 계명을 힘써 순종하며 행하는 것이다(신 10:12-13).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저버리고 이방인들의 종교와 풍습을 따랐다. [14-15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예루살렘 거민이 너의 형제 곧 너의 형제와 친속과 이스라엘 온 족속을 향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나라. 이 땅은 우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신 것이라 하였나니. 예루살렘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냉소하며 그들은 이 땅에서 멀리 떠나며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나지만, 자기들은 하나님의 기업인 이곳에서 안전히 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하는 그 성을 보존치 않으실 것이다. [16-17절]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고 열방에 흩었으나 그들이 이른 열방에서 내가 잠간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너는 또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열방 가운데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 예루살렘 성은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성소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예루살렘 성을 떠나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일시적으로 성소가 되실 것이며, 또 그런 후에 그들을 모아서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며 이 땅을 그들에게 주실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 나라를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다. [18-20절]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을 제하여 버릴지라.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영]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단지 사람들만 고국 땅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회복이 될 것이다. 돌아올 자들은 그 가운데 모든 가증한 것들, 즉 우상들을 제하여 버릴 것이다. 그들은 경건의 회복을 가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시고 새 영을 주실 것이며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셔서 그의 계명과 율례를 행케 하시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게 하실 것이다. [21-25절] 그러나 미운 것과 가증한 것을 마음으로 좇는 자는 내가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때에 그룹들이 날개를 드는데 바퀴도 그 곁에 있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도 그 위에 덮였더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중에서부터 올라가서 성읍 동편 산에 머물고 주의 신[영]이 나를 들어 하나님의 신[영]의 이상 중에 데리고 갈대아에 있는 사로잡힌 자 중에 이르시더니 내가 보는 이상이 나를 떠난지라. 내가 사로잡힌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모든 일로 고하니라. 회복의 시대라 할지라도, 마음으로 가증한 것을 좇는 자는 그 행위대로 보응을 받을 것이다. 신약성경도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경고한다(롬 8:13).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말을 분별해야 한다. 악한 지도자들은 예루살렘 성이 안전하다고 말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성의 멸망을 선언하셨다. 우리는 진리와 비진리가 뒤섞여 있는 배교와 혼란의 오늘 시대를 성경말씀으로 분별하고 성경대로만 믿고 행해야 한다. 둘째로, 범죄하는 땅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우상숭배하며 무고한 자들의 피를 많이 흘린 성은 멸망할 것이다. 죄는 반드시 하나님의 보응을 받을 것이다.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국가도 온 세계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는 죄를 멀리해야 한다. 셋째로,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의 긍휼로 회복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몸만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마음의 변화, 즉 그들에게 일치된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하실 것이다. 구원은 심령의 변화이다. 12장: 속히 포로로 잡혀갈 것 [1-2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네가 패역한( 메리 )[반항적인] 족속 중에 거하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않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않는 패역한 족속, 즉 반항적인 족속이었다. 패역하고 반항적이다는 말의 반대말은 온순하고 순종적이라는 말이다. 그들은 온순한 자들, 순종적인 자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을 본받고 배워 온순한 자가 되고 순종적인 자가 되어야 한다. [3-7절] 인자야, 너는 행구[짐]를 준비하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이사하라. 네가 네 처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그들이 보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 너는 낮에 그 목전에서 네 행구[짐]를 밖으로 내기를 이사하는 행구[짐]같이 하고 저물 때에 너는 그 목전에서 밖으로 나가기를 포로되어 가는 자같이 하라. 너는 그 목전에서 성벽을 뚫고 그리로 좇아 옮기되 캄캄할 때에 그 목전에서 어깨에 메고 나가며 얼굴을 가리우고 땅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내가 너를 세워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게 함이니라 하시기로 내가 그 명대로 행하여 낮에 나의 행구[짐]를 이사하는 행구[짐]같이 내어 놓고 저물 때에 내 손으로 성벽을 뚫고 캄캄할 때에 행구[짐]를 내어다가 그 목전에서 어깨에 메고 나가니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낮에 사람들의 눈앞에서 짐을 준비하고 이사하는 것처럼 혹은 포로로 잡혀가는 것처럼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그들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고 하셨다. 그는 그에게 낮에 짐을 밖에 내어놓고 저물 때에 밖으로 나가기를 포로 되어 가는 자같이 하며 성벽을 뚫고 짐을 옮기되 캄캄할 때에 그들의 눈앞에서 어깨에 메고 나가며 얼굴을 가리고 땅을 보지 말라고 하셨다. 그는 에스겔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게 하셨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명하시는 대로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행위를 통해 그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생하게 증거하셨다. [8-11절] 이튿날 아침에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 곧 그 패역한 족속이 네게 묻기를 무엇을 하느냐 하지 아니하더냐?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것은 예루살렘 왕과 그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온 족속에 대한 예조라 하셨다 하고 또 말하기를 나는 너희 징조라. 내가 행한 대로 그들이 당하여 사로잡혀 옮겨갈지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스라엘 족속이 물으면 이것이 그들에 대한 예조, 즉 미리 보이는 징조라고 대답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그의 뜻을 실감 있게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셨다. 그가 보인 바와 같이, 유다 왕과 백성은 사로잡혀 옮겨갈 것이다. [12-15절] 무리가 성벽을 뚫고 행구[짐]를 그리로 가지고 나가고 그 중에 왕은 어두울 때에 어깨에 행구[짐]를 메고 나가며 눈으로 땅을 보지 아니하려고 자기 얼굴을 가리우리라 하라. 내가 또 내 그물을 그의 위에 치고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그를 끌고 갈대아 땅 바벨론에 이르리니 그가 거기서 죽으려니와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 내가 그 호위하는 자와 부대들을 다 사방으로 흩고 또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내가 그들을 이방인 가운데로 흩으며 열방 중에 헤친 후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께서는 또 에스겔에게 유다 왕에 대한 말씀을 주셨다. 그것은 세 가지 내용이다. 첫째, 유다 왕은 갈대아인의 땅으로 끌려갈 것이다. 둘째, 그는 거기서 죽을 것이다. 셋째, 그는 그 땅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 세 가지 내용은 그대로 다 이루어졌다.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두 눈이 뽑혀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고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거기서 죽었다. 그러나 그는 그 땅을 보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왕을 호위하는 자들과 부대들도 다 흩어지고 칼에 죽임을 당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멸망하고 흩어진 후에야 그들은 하나님께서 공의로 그의 뜻을 다 이루셨음을 알 것이다. [16절] 그러나 내가 그 중 몇 사람을 남겨 칼과 기근과 온역을 벗어나게 하여 그들로 이르는 이방인 중에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자백하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멸망이라는 이런 재앙 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들 중에 몇 사람을 남겨두시고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벗어나게 하실 것이다. 또 그들은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 생활하는 가운데 뒤늦게나마 자신들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인정하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것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공의를 알게 될 것이다. [17-20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떨면서 네 식물을 먹고 놀라고 근심하면서 네 물을 마시며 이 땅 백성에게 말하되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 거민과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그들이 근심하면서 그 식물을 먹으며 놀라면서 그 물을 마실 것은 이 땅 모든 거민의 강포를 인하여 땅에 가득한 것이 황무하게 됨이라. 사람의 거하는 성읍들이 황폐하며 땅이 황무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또한 에스겔로 하여금 떨면서 음식을 먹고 놀라고 근심하면서 물을 마시면서 예루살렘 거민과 이스라엘 땅이 그러할 것이라고 말하게 하셨다. 예루살렘 성이 그렇게 멸망할 이유는 거기에 사는 자들의 강포함 때문이었다. 죄인의 특징은 강포함이며 의인의 특징은 온유함이다. 그들의 강포함이 땅에 가득하였기 때문에 그 땅은 황무하게 될 것이다. 이 일을 통해 유다의 남은 백성은 하나님의 의와 심판을 알게 될 것이다. [21-28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땅에서 이르기를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응험이 없다 하는 너희의 속담이 어찜이뇨?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속담을 그치게 하리니 사람이 다시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 속담을 못하리라 하셨다 하고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날과 모든 묵시의 응함이 가까우니 이스라엘 족속 중에 허탄한 묵시나 아첨하는 복술이 다시 있지 못하리라 하라. 나는 여호와라. 내가 말하리니 내가 하는 말이 다시는 더디지 아니하고 응하리라. 패역한 족속아, 내가 너희 생전에 말하고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말이 그의 보는 묵시는 여러 날 후의 일이라. 그가 먼 때에 대하여 예언하는도다 하나니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말이 하나도 다시 더디지 않을지니 나의 한 말이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는 그의 말씀이 더디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이 하나도 더디지 않고 다 이루어지게 하실 것이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곧 임할 것이다.

본장은 예루살렘 성에 거하던 왕과 그 거민들이 포로로 잡혀갈 것이며 예루살렘 성과 유다 땅이 황무할 것이며 하나님의 이 예언이 속히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신 내용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패역하고 반항적이고 강포하였으므로 멸망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다(마 11:29). 우리는 패역하거나 반항하지 말고 온순함으로 성경 교훈에 순종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우리 개인과 나라와 온 세계의 모든 일을 주권적으로 섭리하심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 후에 비로소 하나님을 알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해 지금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고, 천국과 영생에 대한 그의 은혜로운 약속을 감사하게 받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그가 창조자시요 주권적 섭리자이심을 더욱 확실히 알고 경고된 미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준비해야 한다. 13장: 거짓 선지자들을 책망하심 [1-3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진저.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본 것이 없이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들, 즉 거짓 선지자들에게 화를 선언하게 하셨다. [4-5절]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같으니라. 너희 선지자들이 성 무너진 곳에 올라가지도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 족속을 위하여 여호와의 날에 전쟁을 방비하게 하려고 성벽을 수축하지도 아니하였느니라. 여우는 성을 세우는 자가 아니고 성을 허무는 짐승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같았다. 그들은 이스라엘 족속을 위하여 여호와의 날에 전쟁을 대비하여 성의 무너져 갈라진 틈이나 성벽을 보수하게 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지적해 회개시킴으로 하나님의 징벌을 피하게 준비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6-7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으로 그 말이 굳게 이루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라. 너희가 말하기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은 허탄한 묵시와 거짓된 점괘에 불과하였다(6, 7, 8, 9, 23절).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들이 아니고(6절) 그들의 예언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다(7절). 그들의 예언은 단지 그들의 마음과 심령 속에서 나온, 그들이 지어낸 말들에 불과하였다(2, 3, 17절). 그것들은 결국 다 거짓말이었다. [8-9절]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또 말하노라. 너희가 허탄한 것을 말하며 거짓된 것을 보았은즉 내가 너희를 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 선지자들이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 것을 점쳤으니 내 손이 그들을 쳐서 내 백성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도 기록되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땅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그 선지자들이 허탄하고 거짓된 것을 전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치시겠다고 말씀하신다(2, 8, 9, 17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회에 들어오지 못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 기록되지 못하고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살아계심과 그의 엄위하신 공의를 깨닫게 될 것이다. [10절] 이렇게 칠 것은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 혹이 담을 쌓을 때에 그들이 회칠을 하는도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하여 그들에게 평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된 평안을 선언하였다(10, 16절). 그들은 사람이 담을 쌓을 때 회칠하는 자들과 같았다. 본장은 그들의 예언 사역을 반복하여 회칠에다 비교하였다(10, 11, 12, 14, 15절). 그것은 거짓된 위로와 소망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로 멸망할 상황인데도 평안을 말한 것은 거짓된 위로와 소망이었다. [11-13절] 그러므로 너는 회칠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그것이 무너지리라. 폭우가 내리며 큰 우박덩이가 떨어지며 폭풍이 열파하리니 그 담이 무너진즉 혹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것에 칠한 회가 어디 있느뇨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분노하여 폭풍으로 열파하고 내가 진노하여 폭우를 내리고 분노하여 큰 우박덩이로 훼멸하리라. 그들이 회칠한 담은 무너질 것이다. 그들이 말한 평안, 위로, 소망의 말은 헛될 것이다. 재앙의 날에 회칠한 담은 정녕 무너질 것이다. [14-16절] 회칠한 담을 내가 이렇게 훼파하여 땅에 넘어뜨리고 그 기초를 드러낼 것이라. 담이 무너진즉 너희가 그 가운데서 망하리니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이와 같이 내가 내 노를 담과 회칠한 자에게 다 이루고 또 너희에게 말하기를 담도 없어지고 칠한 자들도 없어졌다 하리니 이들은 예루살렘에 대하여 예언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의 묵시를 본다 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거짓 선지자들의 평안의 묵시, 즉 그들이 말한 그 듣기 좋은 위로와 소망의 말은 헛된 말임이 드러날 것이다. 그 날에 그들은 망할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공의로우심을 알게 될 것이다. [17-18절] 너 인자야, 너의 백성 중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부녀들을 대면하여 쳐서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고자 하여 방석을 모든 팔뚝에 꿰어 매고 수건을 키가 큰 자나 작은 자의 머리를 위하여 만드는 부녀들에게 화 있을진저. 너희가 어찌하여 내 백성의 영혼을 사냥하면서 자기를 위하여 영혼을 살리려 하느냐? 이스라엘 백성이 영적으로 어두웠을 때에 여자들도 예언 사역을 많이 하였다. 그들도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로 하여금 또한 그들도 쳐서 예언케 하셨다. 그들은 사람들의 영혼을 사냥하기 위해 방석을 모든 팔뚝에 꿰어 매고 수건을 키가 큰 자나 작은 자의 머리를 위해 만들었다. 그 방석과 수건은 마술 팔찌로 번역되기도 하는 (NASB) 일종의 부적이나 호신부이었다고 보인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잘못된 처방이며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조치이었다. 그 여선지자들에게도 화가 있을 것이다. [19절] 너희가 두어 웅큼[움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 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서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 거짓 선지자들은 두어 움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해 그런 거짓된 예언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이지만, 거짓말을 곧이 듣는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은 경건하고 바르게 살려는 영혼들에게는 위로 대신 낙심을 주었고, 죄 가운데 사는 영혼들에게는 불안 대신에 용기를 주었던 것이다. [20-21절]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새를 사냥하듯 영혼들을 사냥하는 그 방석을 내가 너희 팔에서 떼어버리고 너희가 새처럼 사냥한 그 영혼들을 놓으며 또 너희 수건을 찢고 내 백성을 너희 손에서 건지고 다시는 너희 손에 사냥물이 되지 않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팔에서 방석을 떼어버리시고 그들이 사로잡은 자들을 놓으시며 그들의 머리 수건을 찢고 친히 자기 백성을 그들의 손에서 건지시며 다시는 그들의 사냥물이 되지 않게 하실 것이다. [22-23절] 내가 슬프게 하지 아니한 의인의 마음을 너희가 거짓말로 근심하게 하며 너희가 또 악인의 손을 굳게 하여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삶을 얻지 못하게 하였은즉 너희가 다시는 허탄한 묵시를 보지 못하고 점복도 못할지라. 내가 내 백성을 너희 손에서 건져내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거짓된 예언을 조심해야 한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보내지 않으신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하지 않으신 내용을 자기 심령을 따라 말하는 일이 많다. 우리는 그런 거짓된 설교를 분별하고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표준으로 주신 성경말씀을 자세히 읽고 듣고 연구하고 배우고 살피고 묵상하고 믿고 소망하고 실천해야 한다(시 119:105; 딤후 3:16). 둘째로, 우리는 비성경적인 헛된 소망과 확신을 버려야 하고 미신적 의식이나 물건에도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죄를 회개하고 의를 행함이 없이는 결코 어떤 평안의 보장도 있을 수 없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사 48:22). 평안은 회개하고 의를 행하는 자에게만 기대되는 복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자기 백성을 다 건지실 것이다. 세상에는 회개와 순종의 말씀이 아직 선포되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친 백성이 아직은 있을 것이다. 14장: 우상숭배에 대한 심판 [1-5절]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나아와 내 앞에 앉으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그런즉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무릇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 나아오는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많은 대로 응답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 그 우상으로 인하여 나를 배반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의 마음에 먹은 대로 그들을 잡으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장로들이든지 일반 백성이든지 그들의 우상을 마음에 세우고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는 모든 사람(3, 4, 7절에 반복됨)을 용납지 않으시고 그들의 우상의 많은 대로 그들에게 4) 보응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상을 마음에 들인다는 말은 우상을 마음에 둔다는 뜻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다 그 우상으로 그를 배반하였으므로 그가 그들의 마음을 붙잡으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의 마음에 먹은 대로 그들을’이라는 구절은 ‘그들의 마음을’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KJV, NASB, NIV) . [6절] 그런즉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이켜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을 돌이켜 모든 가증한 우상을 떠나라고 명하신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은 우리가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며 그의 계명들을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그것이 성경 전체의 요점이다(신 10:12-13; 전 12:13). [7-8절] 이스라엘 족속과 이스라엘 가운데 우거하는 외인 중에 무릇 나를 떠나고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자기를 위하여 내게 묻고자 하여 선지자에게 나아오는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친히 응답하여 그 사람을 대적하여 그들로 놀라움과 감계와 속담거리가 되게 하여 내 백성 가운데서 끊으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이스라엘 백성이나 그들 가운데 우거하는 외국인들 중에 하나님을 떠나고 자기 우상을 마음에 두고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하나님에 관하여 그에게 묻고자 하여 5) 선지자에게 나아오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를 대적하여 그로 징표와 이야깃거리가 되게 하여 그 백성 가운데서 끊으실 것이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의 공의의 심판을 알게 될 것이다. [9-11절] 만일 선지자가 유혹을 받고 말을 하면 나 여호와가 그 선지자로 유혹을 받게 하였음이어니와 내가 손을 펴서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를 멸할 것이라. 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은즉 각각 자기의 죄악을 담당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족속으로 다시는 미혹하여 나를 떠나지 않게 하며 다시는 모든 범죄함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않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또 거짓 선지자들이 유혹을 받아 말들을 하는 것도 그의 주권적 섭리 가운데 된 일이지만 그들의 악에 대해서는 벌하셔서 그들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멸하실 것이다. 선지자의 죄악의 형벌이나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의 형벌이 똑같으며 각자가 자기의 죄악의 형벌을 담당할 것이다. ‘죄악’이라는 원어( 아본 )는 ‘죄악의 형벌’이라는 뜻도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하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는 미혹하여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모든 범죄함으로 그들 자신을 더럽히지 않게 하셔서 그들로 하나님의 친 백성을 삼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다. 그것이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목표이다.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이며,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의로운 친 백성이 되는 것이다. 천국은 죄가 전혀 없는 세계이며, 성경 맨 마지막에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계 21:7). [12-14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가령 어느 나라가 불법하여 내게 범죄하므로 내가 손을 그 위에 펴서 그 의뢰하는 양식을 끊어 기근을 내려서 사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다 하자.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다시 자신의 심판이 공평함을 강조하신다. 노아, 다니엘, 욥은 에스겔 당시에도 알려진 의로운 인물이었다. 노아와 욥은 오래 전의 인물이지만, 다니엘은 동시대의 인물인데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의 문제가 각 사람의 문제라는 것이다. 각 사람은 자신의 구원을 준비해야지 다른 사람이 그것을 준비할 수 없다. 각 사람은 자기의 행위대로 보응을 받을 것이다. [15-20절] 가령 내가 사나운 짐승으로 그 땅에 통행하여 적막케 하며 황무케 하여 사람으로 그 짐승을 인하여 능히 통행하지 못하게 한다 하자.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겠고 그 땅은 황무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가령 내가 칼로 그 땅에 임하게 하고 명하기를 칼아, 이 땅에 통행하라 하여 사람과 짐승을 거기서 끊는다 하자.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가령 내가 그 땅에 온역을 내려 죽임으로 내 분을 그 위에 쏟아 사람과 짐승을 거기서 끊는다 하자.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비슷한 말씀을 사나운 짐승으로 징벌하시는 경우와 칼로 징벌하시는 경우와 무서운 전염병으로 징벌하시는 경우를 들어 반복해 말씀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세 번이나 공통적으로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것은 이것이 꼭 유념해야 할 진리임을 강조하신 것이다. 또 그는 세 번이나 반복하셔서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라 할지라도 자기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 생명만 건지리라고 말씀하셨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자녀의 구원에 대해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점을 마음에 새기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고 우리 자녀는 자동으로 은혜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자녀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 그 자신이 깨어 있어야 하고 죄를 회개해야 하고 참된 믿음을 가져야 하고, 또 구원받은 자마다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21절]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네 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온역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중에서 끊으리니 그 해가 더욱 심하지 않겠느냐?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무서운 전염병 중 한가지만 내려도 큰 해를 입겠는데, 네 가지가 동시에 내리니 얼마나 큰 해를 당하겠는가! [22-23절] 그러나 그 가운데 면하는 자가 남아 있어 끌려 나오리니 곧 자녀들이라. 그들이 너희에게로 나아오리니 너희가 그 행동과 소위를 보면 내가 예루살렘에 내린 재앙 곧 그 내린 모든 일에 대하여 너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 너희가 그 행동과 소위를 볼 때에 그들로 인하여 위로를 받고 내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모든 일이 무고히 한 것이 아닌 줄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 백성을 완전히 멸절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 징벌 중에서도 그것을 모면하고 남은 자녀들은 유다 백성이 있는 바벨론 땅으로 오게 될 것이다. 또 “그 자녀들의 행동과 소위를 보면”(2번 언급됨) 그들은 위로를 받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행하신 모든 일이 까닭 없는 일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먼저 잡혀온 자들이 오히려 작은 고통을 당하였다는 뜻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마음에 있는 우상과 죄악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이켜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고 명하셨다. 오늘날 우리도 마음 속에 죄악되고 가증한 우상을 숨겨두지 말아야 한다. 모든 숨겨진 우상을 버리고 모든 은밀한 죄악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의 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범죄함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경건함과 거룩함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며 죄를 짓지 않고 거룩과 의와 선을 실천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이다. 전도서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로마서 6:22,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라.” 셋째로, 자녀들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회개하고 믿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 구원은 개인의 문제이다. 자녀의 구원은 자녀의 몫이다. 부모가 그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대신해 줄 수 없다. 노아와 다니엘과 욥이라 하더라도 자기 자녀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없다. 그들은 그들의 의로 그들 자신만, 그들의 생명만 구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그들에게 믿음과 의의 말씀으로 교훈해야 하고 눈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한다. 15장: 불에 던질 포도나무처럼 될 것 [1-2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삼림 중 여러 나무 가운데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포도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나은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포도 열매를 맺는 데 있다. 포도 열매는 맛있고 몸에도 아주 유익한 열매이다. 그것은 포도 쥬스와 건포도와 포도주를 만드는 데 쓰인다. [3-5절]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불에 던질 화목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보라] 그것이 온전할 때에도 아무 제조에 합당치 않았거든 하물며 불에 살라지고 탄 후에 어찌 제조에 합당하겠느냐? 포도나무가 만일 포도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그 외의 용도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것은 무슨 물건을 제조할 수 있는 나무로 쓸 수 없다. 그것은 그릇을 걸 못을 만들기도 어렵다. 포도나무는 그렇게 단단한 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고작해야 불태우는 땔감으로 쓰일 정도이다. 그것은 굵은 가지가 없고 잔가지만 많기 때문에 땔감으로라도 좋지 않다. 그것은 장작 같은 굵은 나무에 비해 빈약한 땔감이다. 더욱이, 불이 포도나무 가지의 두 끝을 사르거나 그 가운데를 태웠을 때 그 포도나무는 무엇에 쓰이겠는가? 열매 없는 포도나무는 온전할 때도 별 쓸모가 없는데, 불에 탄 후에는 더욱 더 쓸모가 없을 것이다. [6절] 그러므로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내가 수풀 가운데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화목이 되게 한 것같이 내가 예루살렘 거민도 그같이 할지라. 하나님께서는 수풀 가운데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땔감이 되게 하셨듯이 예루살렘 거민을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건과 도덕성의 좋은 열매 맺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좋은 열매 대신에 악한 일들만 행했다. 이사야 5:1-2,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포도를 맺지 않고 들포도나 맺은 예루살렘 성과 유다 백성을 불로 멸망시키실 것이다. [7절] 내가 그들을 대적한즉 그들이 그 불에서 나와도 불이 그들을 사르리니 내가 그들을 대적할 때에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을 대적한다”고 본절에 두 번이나 말씀하신다. 예루살렘 성의 멸망은 하나님의 징벌이다. 하나님께서는 포도나무를 불태우듯이 그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침공하는 것은 예루살렘 성 거민들에게 불같은 고난일 것이다. 예루살렘 성 거민들의 다수는 그 침공으로 죽임을 당하고 예루살렘 성은 멸망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성이 멸망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심을 알게 될 것이다. [8절] 내가 그 땅을 황무케 하리니 이는 그들이 범법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황무케 하실 것이다. 예루살렘 성의 멸망은 그 땅을 황폐케 만들 것이다. 성벽은 무너지고 집들은 부서지고 그 성은 사람들이 살 만하지 못하고 짐승들의 거처가 될 정도로 황량해지고 황폐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황무케 하시는 까닭은 그들이 범법하였기 때문이다. ‘범법하다’( 마알 마알 )는 원어는 ‘불성실하게, 배신적이게 행하다’는 뜻이다 (BDB, NASB, NIV) . 그것은 아내의 부정(不貞)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며, 다음 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인 음행, 즉 우상숭배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우상숭배나 부도덕은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는 것이고 하나님께 대해 불성실한 일이다. 모든 죄는 하나님께 대해 불성실한 행위이며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는 배신적인 행위이다.

짧은 본문인 에스겔 15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그의 언약에 불성실하거나 배반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의 요점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신명기 10:12-1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전도서 12:13,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요한일서 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도 비슷하다. 주께서는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1-5절). 선행은 참된 신앙의 열매이며 증표이다. 성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때 좋은 행실의 열매를 맺는다(갈 5:22-23).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목적은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다(딛 2:14).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과 영생을 확신하며 성경의 교훈대로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16장: 예루살렘의 음란 1-22절, 예루살렘의 과거와 현재 [1-5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예루살렘으로 그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네 출생]은 가나안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 사람이라. 너의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너를 돌아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긍휼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꺼린 바 되어 네가 들에 버리웠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 거민들로 그 가증한 일 즉 우상숭배를 알게 하기를 원하신다. 사람이 자신의 잘못과 문제를 알아야 회개할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이스라엘의 근본과 출생은 가나안이며 그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그 어미는 헷 사람이다. 그것은 육신적 의미가 아니고 영적 의미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은 본래 우상숭배하던 이방인이었다(수 24:2). 그들의 본래의 모습은 배꼽줄을 자르지 않고 물로 씻지 않고 소금도 뿌리지 않은 불결한 자 같았다. [6-8절]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 내가 너로 들의 풀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오히려 벌거벗은 적신이더라.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죄인이었던 이스라엘의 선조를 불러 죄사함을 주셨다. 원문에 ‘피투성이가 되어’ 혹은 ‘피투성이인’이라는 반복된 표현은 이스라엘의 선조가 본래 죄악되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이스라엘을 살리셨고 번성케 하셨다. 이스라엘 민족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한 나라가 되었다(출 1:7).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기와 언약을 맺어 언약 백성이 되게 하셨고 그들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다(출 19:5). [9-14절] 내가 물로 너를 씻겨서 네 피를 없이 하며 네게 기름을 바르고 수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띠우고 명주[비단]로 덧입히고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사슬을 목에 드리우고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면류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명주와 수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 네 화려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물로 씻듯이 속죄의 피로 씻으셨고 기름을 바르듯이 성령의 은혜를 덧입혀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많은 은혜를 주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주신 특권과 복된 지위를 누렸다(출 19:5-6). 예루살렘 성은 부요와 영광을 얻었고 그 명성은 온 세계에 널리 알려졌었다. [15-16절]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무릇 지나가는 자면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 네가 네 의복을 취하여 색스러운 산당을 너를 위하여 만들고 거기서 행음하였나니 이런 일은 전무후무하니라. 사람이 부요하고 명성을 얻으면 교만해지고 해이해져서 범죄하기 쉽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하였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고 말했었다(신 8:12-14). 또 성경은, 유다 왕 웃시야가 강성해질 때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였다고 증거하였다(대하 26:16). [17-22절] 네가 또 나의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또 네 수놓은 옷으로 그 우상에게 입히고 나의 기름과 향으로 그 앞에 베풀며 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 한 내 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네 자녀를 가져 그들에게 드려 제물을 삼아 불살랐느니라. 네가 너의 음행을 작은 일로 여겨서 나의 자녀들을 죽여 우상에게 붙여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느냐? 네 어렸을 때에 벌거벗어 적신이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하던 것을 기억지 아니하고 네가 모든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들을 만들고 그것들에게 장식한 금은은 하나님의 주신 것들이며 그들이 그 앞에 제사하고 불사른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향은 다 하나님의 주신 것들이며 또 그들이 그 앞에 불살라 죽게 한 그 자녀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하나님을 위해 낳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금하시고 노하시는 우상숭배에 사용했던 것이다. 그들은 무지하게 범죄했고 타락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났다. 그 결과, 그들은 멸망을 당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과거의 죄와 불행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새 삶을 잊지 말고 항상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결코 과거의 죄악되고 불결한 삶으로 다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현재 우리의 가지고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고 결코 교만하거나 해이해지지 말아야 하고 또 하나님의 것들을 가지고 악하고 허무한 일을 위해 쓰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또 그의 선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써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결코 우상숭배에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우상숭배는 사람이 범하는 죄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죄이다. 우리는 오직 성경에 근거한 순수한 경건과 보수신앙을 지켜야 한다. 23-43절, 예루살렘의 음란과 그 결과 [23-24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는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네가 모든 악을 행한 후에 너를 위하여 누(樓)( 갑 )[둔덕(mound)(BDB, NIV), 사당(shrine)(NASB)]를 건축하며 모든 거리에 높은 대( 라마 )[산당(high place)]를 쌓았도다. 주 여호와께서는 유다 백성에게 화를 선언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화를 선언하신 것은 그들이 모든 악을 행한 후 우상을 섬기는 단을 쌓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사당을 건축하며 모든 거리에 산당을 쌓았다. 곳곳에 우상숭배의 단들을 쌓았던 것이다. [25-26절] 네가 높은 대를 모든 길 머리에 쌓고 네 아름다움을 가증하게 하여 모든 지나가는 자에게 다리를 벌려 심히 행음하고 하체가 큰( 기들레 바사르 )[신체가 큰] 네 이웃나라 애굽 사람과도 행음하되 심히 음란히 하여 내 노를 격동하였도다. 그들은 모든 길 머리에 사당을 세우고 모든 지나가는 자와 행음하였다. 그들은 애굽 사람들과도 행음하였다. 본문의 행음이라는 말은 우상숭배를 가리키는 비유이다. 그들의 우상숭배는 심했고 그 우상숭배의 행위들은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켰다. [27-29절] 그러므로 내가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네 일용 양식을 감하고 너를 미워하는 블레셋 여자 곧 네 더러운[음탕한]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자에게 너를 붙여 임의로 하게 하였거늘 네가 음욕이 차지 아니하여 또 앗수르 사람과 행음하고 그들과 행음하고도 오히려 부족히 여겨 장사하는 땅 갈대아에까지 심히 행음하되 오히려 족한 줄을 알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우상숭배에 대한 징벌로 그들의 일용할 양식을 감소시키셨다. 또 그는 그들을 음탕한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블레셋 여자들에게 붙여 임의로 하게 하셨다. 그러나 유다 백성은 애굽과의 음행으로 만족지 않고 앗수르 사람들과 행음하였고 그것도 부족하여 갈대아 사람들과도 행음하였다. ‘음욕이 차지 아니하다’는 원어는 ‘만족이 없다’는 뜻이다. 유다 사람들의 우상숭배는 끝이 없었다. 사람이 하나님 대신 사랑하는 우상들은 참된 만족을 주지 못한다. [30-34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이 모든 일을 행하니 이는 방자한 음부(淫婦)( 잇솨 조나 솰라텟 )[뻔뻔스런 창녀]의 행위라.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 네가 누를 모든 길 머리에 건축하며 높은 대를 모든 거리에 쌓고도 값을 싫어하니 창기 같지도 않도다. 그 지아비 대신에 외인과 사통하여 간음하는 아내로다. 사람들은 모든 창기에게 선물을 주거늘 오직 너는 네 모든 정든 자에게 선물을 주며 값을 주어서 사방에서 와서 너와 행음하게 하니 너의 음란함이 다른 여인과 같지 아니함은 행음하려고 너를 따르는 자가 없음이며 또 네가 값을 받지 아니하고 도리어 줌이라. 그런즉 다른 여인과 같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이 행하는 모든 우상숭배의 일을 ‘뻔뻔스런 창녀의 행위’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그들의 마음은 너무 약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일반적 창녀와 같지 않았고 자기 남편을 두고 다른 사람과 간통하는 아내와 같았다. 보통 창녀는 사람에게 선물을 받고 값을 받고 행음하지만, 유다 백성은 그를 따르는 자가 없고 오히려 그 자신이 값을 주며 행음하였다. [35-37절] 그러므로 너 음부야,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어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네 누추한 것( 네코쉣 )[누추한 것(KJV), 음탕함(NASB, BDB)]을 쏟으며 네 정든 자와 행음함으로 벗은 몸을 드러내며 또 가증한 우상을 위하며 네 자녀의 피를 그 우상에게 드렸은즉 내가 너의 즐거워하는 정든 자와 사랑하던 모든 자와 미워하던 모든 자를 모으되 사방에서 모아 너를 대적하게 할 것이요 또 네 벗은 몸을 그 앞에 드러내어 그들로 그것을 다 보게 할 것이며. 유다 백성이 우상숭배로 그 누추함을 쏟고 그 벗은 몸을 드러내며 자녀들의 피를 우상에게 드렸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즐거워하는 정든 자들과 사랑하는 자들과 또 그의 미워하는 자들을 다 사방에서 모아 그를 대적하게 하실 것이며 그의 벗은 몸을 보게 하실 것이다. [38-41절] 내가 또 간음하고 사람의 피를 흘리는 여인을 국문함같이 너를 국문하여 진노의 피와 투기의 피를 네게 돌리고 내가 또 너를 그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네 누를 헐며 네 높은 대를 훼파하며 네 의복을 벗기고 네 장식품을 빼앗고 네 몸을 벌거벗겨 버려두며 무리를 데리고 와서 너를 돌로 치며 칼로 찌르며 불로 너의 집들을 사르고 여러 여인의 목전에서 너를 벌할지라. 내가 너로 곧 음행을 그치게 하리니 네가 다시는 값을 주지 아니하리라. 외도한 여자가 사람들 앞에서 수치와 형벌을 받듯이, 유다 백성은 이방 나라들 가운데서 수치와 멸망을 당할 것이다. 우상숭배의 결과는 수치와 고통과 멸망이다. [42-43절] 그리한즉 내가 네게 대한 내 분노가 그치며 내 투기가 네게서 떠나고 마음이 평안하여 다시는 노하지 아니하리라. 네가 어렸을 때를 기억지 아니하고 이 모든 일로 나를 격노케 하였은즉 내가 네 행위대로 네 머리에 보응하리니 네가 이 음란과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다시는 행하지 아니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유다를 징벌하시는 목적은 그들로 그 음행을 그치게 하시기 위함이다. 유다가 멸망할 때 하나님의 분노가 그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우상숭배치 말라는 것이다. 요한일서 5: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오늘날 우리는 돈, 육신의 쾌락, 과학과 이성 등의 현대적 우상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믿고 섬기며 순종해야 하며 오직 성경의 교훈대로 믿고 섬기며 순종해야 한다. 신명기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성경의 교훈대로 믿고 행해야 한다. 44-63절, 유다의 죄와 하나님의 긍휼 [44-46절] 무릇 속담하는 자가 네게 대하여 속담하기를 어미가 어떠하면 딸도 그렇다 하리라.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어미의 딸이요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형의 동생이로다. 네 어미는 헷 사람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며 네 형은 그 딸들과 함께 네 좌편에 거하는 사마리아요 네 아우는 그 딸들과 함께 네 우편에 거하는 소돔이라. 어머니가 어떠하면 딸도 그러하다는 속담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타고난 기질도 있고 듣고 보고 배운 것도 있기 때문이다. 유다 백성은 그 남편과 자녀들을 싫어한 어미의 딸과 같고 그 남편들과 자녀들을 싫어한 여형제와 같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어미가 헷 사람이며 아비가 아모리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며 그 형이 사마리아요 그 아우가 소돔이라고 말씀하신다. 영적인 의미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그들은 다 불경건하고 우상숭배적인 점에서 비슷하였다. [47-48절] 네가 그들의 행위대로만 행치 아니하며 그 가증한 대로만 행치 아니하고 그것을 적게 여겨서 네 모든 행위가 그보다 더욱 부패하였도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우 소돔 곧 그와 그 딸들은 너와 네 딸들의 행위같이 행치 아니하였느니라. 유다 백성은 주위 백성보다 더 우상을 섬겼다. 그들은 그들보다 더 부패했다. 소돔 백성들은 유다 백성처럼 행치는 않았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라는 원어( 카이 아니 )는 6) “내가 살아 있거니와”라는 뜻이다. 사람은 보통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한다.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살아계심을 언급하며 말씀하신다. 그것은 살아계신 그가 모든 인간의 행위를 보고 계심을 말한다. [49-50절]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안이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하였느니라. 소돔의 죄악은 첫째, 교만하고 거만하였다. 교만은 모든 죄의 근원이다. 모든 죄는 하나님을 거역하며 하나님을 무시하고 인간 자신을 높이는 결과이다. 둘째, 그들은 식물의 풍족함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자를 도와줄 줄 몰랐고 안이했다. 셋째,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일을 행했다. 가증한 일이란 음란과 우상숭배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와 음란을 가장 미워하신다. 인간의 삶은 하나님 앞에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모든 선악의 행위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을 받을 것이다. 소돔의 음란과 우상숭배의 행위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없이하셨다. [51-52절] 사마리아는 네 죄의 절반도 범치 아니하였느니라. 네가 그들보다 가증한 일을 심히 행한[심히 많이 행한] 고로 너의 가증한 행위로 네 형과 아우를 의롭게 하였느니라. 네가 네 형과 아우를 논단하였은즉 너도 네 수치를 담당할지니라. 네가 그들보다 더욱 가증한 죄를 범하므로 그들이 너보다 의롭게 되었나니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의롭게 하였은즉 너는 놀라며 네 수치를 담당할지니라. 북방 이스라엘은 남방 유다 백성의 죄의 절반도 범치 않았다. 유다 백성은 그들보다 가증한 일을 심히 많이 행했다. 그것이 성경에 기록된 므낫세 때의 상황이었다(왕하 21장). 그들의 가증한 행위 때문에 북방 이스라엘은 오히려 의롭게 보일 정도이었다. 그러나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징벌로 수치를 당할 것이다. 본문은 이 사실을 두 번 말함으로 강조한다. 유다 백성의 부패는 교회가 타락하면 세상보다 더 타락함을 보인다. 이단 종파들이 심지어 사회의 지탄받는 것을 보면 그러하다. 그들의 어떤 악들은 보통 상식 있는 사회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신도들의 물질을 교묘히 취하고 그들의 인권을 심히 유린하며 성적으로도 매우 문란하다고 알려져 있다. [53-55절] [그러나]( 웨 )(NASB, NIV) 내가 그들의 사로잡힘 곧 소돔과 그 딸들의 사로잡힘과 사마리아와 그 딸들의 사로잡힘과 그들 중에 너의 사로잡힌 자의 사로잡힘을 돌이켜서 너로 네 수욕을 담당하고 너의 행한 모든 일을 인하여 부끄럽게 하리니 이는 네가 그들에게 위로가 됨이라. 네 아우 소돔과 그 딸들이 옛 지위를 회복할 것이요 사마리아와 그 딸들도 그 옛 지위를 회복할 것이며 너와 네 딸들도 너희 옛 지위를 회복할 것이니라. 이 세상이 이처럼 부패하고 타락했을지라도,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같고 사마리아와 같은 죄인들을 돌이키실 것이다. 그때 유다 백성은 자신들의 과거의 악한 행위들을 인해 부끄러워할 것이다. [56-59절] 네가 교만하던 때에 네 아우 소돔을 네 입으로 말하지도 아니하였나니 곧 네 악이 드러나기 전에며 아람 딸들이 너를 능욕하기 전에며 너의 사방에 둘러 있는 블레셋 딸들이 너를 멸시하기 전에니라. 네 음란과 네 가증한 일을 네가 담당하였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는]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맹세를 멸시하여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네 행한 대로 네게 행하리라[행할 것임이니라]. 유다 백성은 과거에 교만하여 이방인들을 무시하며 말도 걸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 우상숭배로 인해 하나님의 징벌을 받고 주위 백성들에게 능욕과 멸시를 받은 후, 그러나 또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를 받은 후, 자신의 죄와 부족을 깨닫고 부끄러워할 것이다. 유다 백성이 죗값으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언약하고 맹세한 제1, 2계명을 어기고 그 맹세를 멸시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한 대로 그들에게 갚으실 것이다. [60-63절]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접대할 때에 네 행위를 기억하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네게 딸로 주려니와 네 언약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서 너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니 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너로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유다 백성이 부패하고 패역했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위대로 그들에게 갚으실 수밖에 없으셨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어릴 때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실 것이다(61, 62절). 그때 이방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며 유다 백성은 그들을 접대할 것이다. 그것은 이방인들의 구원을 암시한다. 이러한 세계적 회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 때문이다. 이 언약으로 유다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을 참으로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죄악된 일들을 용서하신 후 이루어질 것이다. ‘용서한다’는 원어( 킵페르 )는 ‘덮다, 속죄하다’는 뜻이다. 그것은 다니엘 9:24에 말한 “죄악이 영속(永贖)되며[영원히 속해지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는” 일이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말미암은 새 언약의 은혜를 가리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의 본성은 전적으로 부패되어 있다. 유다 백성은 심지어 소돔 사람들보다 더 부패했다. 그것은 사람의 전적 부패성을 잘 보인다. 이런 죄성은 우리 속에도 남아 있다. 로마서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우리는 이 죄성과 싸워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공의는 두렵다. 하나님께서는 소돔 사람들이나 이스라엘 백성보다 우상숭배에 더 빠진 유다 백성을 징벌하시고 버리실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변함이 없다.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워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과 새 언약을 감사해야 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예언했다(렘 31:33-34; 32:39-42)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이루어진 언약이다. 우리는 그것을 감사하며 이제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고 늘 근신하고 모든 죄악된 것을 버리고 거룩하며 성경의 교훈을 충실히 순종하며 살아가야 한다. 17장: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 [1-6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수수께끼와 비유를 이스라엘 족속에게 베풀어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채색이 구비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취하되 그 연한 가지 끝을 꺾어 가지고 장사하는 땅에 이르러 상고(商賈)의 성읍에 두고 또 그 땅의 종자를 취하여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가에 심더니 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 곧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난 포도나무가 되어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고 그 뿌리는 독수리의 아래 있었더라. 하나님께서는 두 독수리와 포도나무의 수수께끼와 비유를 말씀하셨다. 여러 색깔을 가지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많은 한 큰 독수리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가리켰다(12절). 하나님께서는 11절 이하에서 그 수수께끼와 비유를 설명해주셨다. [7-10절] 또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 하나가 있었는데 그 포도나무가 이 독수리에게 물을 받으려고 그 심긴 두둑에서 그를 향하여 뿌리가 발하고 가지가 퍼졌도다. 그 포도나무를 큰 물가 옥토에 심은 것은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그 나무가 능히 번성하겠느냐? 이 독수리가 어찌 그 뿌리를 빼고 실과를 따며 그 나무로 시들게 하지 아니하겠으며 그 연한 잎사귀로 마르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많은 백성이나 강한 팔이 아니라도 그 뿌리를 뽑으리라. 볼지어다, 그것이 심겼으나 번성하겠느냐? 동풍이 부딪힐 때에 아주 마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자라던 두둑에서 마르리라 하셨다 하라. 7절의 다른 한 큰 독수리는 애굽 왕 바로를 가리킨다고 보인다. 또 9절에 그 포도나무의 뿌리를 빼고 실과를 따며 그 나무로 시들게 한 독수리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가리켰다고 보인다. [11-15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패역한 족속에게 묻기를 너희가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겠느냐 하고 그들에게 고하기를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왕과 방백을 사로잡아 바벨론 자기에게로 끌어가고 그 왕족 중에 하나를 택하여 언약을 세우고 그로 맹세케 하고 또 그 땅의 능한 자들을 옮겨 갔나니 이는 나라를 낮추어 스스로 서지 못하고 그 언약을 지켜야 능히 서게 하려 하였음이어늘 그가 사자를 애굽에 보내어 말과 군대를 구함으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으니 형통하겠느냐? 이런 일을 행한 자가 피하겠느냐? 언약을 배반하고야 피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그 수수께끼 비유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그 처음의 큰 독수리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가리켰고 레바논은 유대 땅을 가리켰다. 그 바벨론 왕은 유다 땅 예루살렘에 와서 왕과 방백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끌어갈 것이다. ‘연한 가지’는 유다의 어린 왕 여호야긴을 가리켰고, 장사하는 땅과 상인들의 성읍은 바벨론 땅을 가리켰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유다 나라와 예루살렘 성을 침공하여 여호야긴 왕을 사로잡고 그와 여러 방백들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갈 것이다(왕하 24:8, 15-16). 바벨론 왕은 그 땅의 한 씨로 비유된 왕족 중 하나인 시드기야를 택하여 언약을 세우고 그로 맹세하게 하고 그 땅에 재능 있는 자들을 옮겨갔다. 그것은 유다 나라로 하여금 스스로 서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다(왕하 24:17). 그러나 시드기야 왕이 사자를 애굽에 보내어 말과 군대를 구함으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다. 그가 바벨론 왕과의 언약을 배반하였으니(왕하 24:20; 대하 36:13) 재난을 피할 수 있겠는가?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 왕을 배반하고 친(親)애굽 정책을 취하였기 때문에, 바벨론 왕은 예루살렘 성을 다시 침공하였고 유다는 멸망하게 될 것이다. [16-18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바벨론 왕이 그를 왕으로 세웠거늘 그가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그 왕의 거하는 곳 바벨론 중에서 왕과 함께 있다가 죽을 것이라. 대적이 토성(土城)을 쌓으며 운제(雲梯)[포위벽]를 세우고 많은 사람을 멸절하려 할 때에 바로가 그 큰 군대와 많은 무리로도 그 전쟁에 그를 도와 주지 못하리라. 그가 이미 손을 내어 밀어 언약하였거늘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고 이 모든 일을 행하였으니 피하지 못하리라.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웠는데, 그가 맹세를 업신여기고 언약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그는 바벨론 왕의 거하는 곳에서 왕과 함께 있다가 죽을 것이다. 또한 예루살렘 성을 침공할 바벨론 군대가 토성을 쌓고 포위벽을 세우고 많은 사람을 멸절하려 할 때, 즉 유다 멸망 때, 애굽의 바로와 그 큰 군대와 많은 무리가 그 전쟁에서 유다 왕 시드기야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시드기야가 손을 내밀어 바벨론 왕과 언약했으나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고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므로 그 멸망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19-21절]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 내 그물을 그 위에 베풀며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끌고 바벨론으로 가서 나를 반역한 그 반역을 거기서 국문할지며 그 모든 군대에서 도망한 자들은 다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남은 자는 사방으로 흩어지리니 나 여호와가 이것을 말한 줄을 너희가 알리라. 시드기야 왕의 배신 행위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맹세를 업신여기고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것이었다. 그것은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에게 맹세시킬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였기 때문이다(대하 36:13). 그 맹세와 언약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것이며 물론 바벨론 왕과도 맺은 언약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시드기야의 그 언약 배반에 대한 죄를 그 머리에 돌리실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를 끌고 바벨론으로 가서 그 반역을 심문할 것이며 또 이스라엘의 모든 군대에서 도망한 자들은 다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남은 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며, 이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될 것이다. 바벨론 군대에 의한 유다 나라의 멸망은 곧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22-24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또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취하여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빼어난 산에 심되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을 이룰 것이요 각양 새가 그 아래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거할지라.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우고 마른 나무를 무성케 하는 줄 알리라.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백향목 꼭대기에서 한 높은 가지를 취하여 이스라엘 산에 심으실 것이며 그 가지는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 아름다운 백향목을 이룰 것이요 각양 새가 그 아래 깃들일 정도로 커질 것이다. 그 가지는 열매 맺는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의 예언 곧 메시아 예언이라고 본다. 이것은 구약의 다른 성경들과 일맥상통한다(사 11:1, 10; 53:2; 렘 23:5; 슥 3:8).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이루시는 주권적 하나님이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바벨론 왕의 유다 침공, 유다 왕이 포로로 잡혀감, 다른 유다 왕이 세움 받음, 그 왕의 배신과 유다 나라의 멸망은 다 주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로 되어진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개인의 생사화복, 가정과 교회의 일들, 우리나라의 흥망성쇠와 세계 역사를 주관하심을 알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치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배반함으로 멸망하였다. 우리가 세례 서약이나 결혼 서약이나 임직 서약에서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저버리지 말고 잘 지켜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배반치 말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의지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회개시키시고 예수님 믿게 하시고 순종케 하신다. 우리는 우리를 죄와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삶을 살아야 한다. 18장: 하나님의 심판의 공평성 [1-4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라엘 땅에 대해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을 하였다. 그것은 그 땅이 황폐해진 것은 조상탓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자신들의 죄악됨을 인정치 않고 회개치 않는 데서 나온 속담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 속담을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죄와 부족을 철저히 깨닫게 되기를 원하셨다. 그들의 속담에 대조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는 것이다. 아비의 영혼이나 아들의 영혼이나 모든 영혼은 다 하나님께 속하며, 각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개인적으로 서며, 누구든지 범죄하는 그 사람은 자기의 죗값으로 인해 죽을 것이다. [5-9절] 사람이 만일 의로워서 법과 의를 따라 행하며 산 위에서 제물을 먹지 아니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에게 눈을 들지 아니하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 아니하며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며 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며 빚진 자의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변( 네쉑 )[고리대금](KJV, NIV)을 위하여 꾸이지 아니하며 이식[이자]을 받지 아니하며 스스로 손을 금하여 죄악을 짓지 아니하며 사람 사람 사이에 진실히 판단하며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진실히 행할진대 그는 의인이니 정녕 살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예를 드신다. 어떤 사람이 의로워서 하나님의 법을 행하며 산 위에서 드려진 우상제물을 먹지 않고 우상숭배치 않고,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지 않으며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으며(레 18:19), 사람을 학대하지 않으며 빚진 자의 전당물을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며(출 22:26) 강제로 남의 물건을 빼앗지 않으며, 굶주린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사람이 있으면 옷을 입히고, 고리대금하지 않으며 이자를 받지 않으며, 손으로 남을 해치는 죄를 범치 않으며 사람 사람 사이에 진실히 판단하며, 하나님의 율례를 좇으며 그의 규례를 지켜 진실하게 행한다면, 그는 의인이며 참으로 살 것이다. [10-13절] 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이 모든 선은 하나도 행치 아니하고 이 악중 하나를 범하여 강포하거나 살인하거나 산 위에서 제물을 먹거나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거나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학대하거나 억탈하거나 빚진 자의 전당물을 도로 주지 아니하거나 우상에게 눈을 들거나 가증한 일을 행하거나 변을 위하여 꾸이거나 이식을 받거나 할진대 그가 살겠느냐? 살지 못하리니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은즉 정녕 죽을지라.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한 의인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이 모든 선은 하나도 행치 않고 이 악들 중 하나를 범하여 강포하거나 살인하거나 산 위에서 우상제물을 먹거나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거나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학대하거나 강제로 물건을 빼앗거나 빚진 자의 전당물을 돌려주지 않거나 우상에게 눈을 들거나 가증한 일을 행하거나 고리대금한다면, 그는 살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기 때문에 참으로 죽을 것이며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14-18절] 또 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그 아비의 행한 모든 죄를 보고 두려워하여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산 위에서 제물을 먹지도 아니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에게 눈을 들지도 아니하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도 아니하며 사람을 학대하지도 아니하며 전당을 잡지도 아니하며 억탈하지도 아니하고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손을 금하여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변이나 이식을 취하지 아니하여 내 규례를 지키며 내 율례를 행할진대 이 사람은 그 아비의 죄악으로 인하여 죽지 아니하고 정녕 살겠고 그 아비는 심히 포학하여 그 동족을 억탈하고 민간에 불선을 행하였으므로 그는 그 죄악으로 인하여 죽으리라. 악인의 아들 즉 처음 의인에게는 손자가 되는 그 아들이 그 아비의 행한 모든 죄를 보고 생각하여 7) 그대로 행하지 않고 산 위에서 제물을 먹지도 않고 우상에게 눈을 들지도 않고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도 않고 사람을 학대하지도 않고 전당물을 취하지도 않고 강제로 무엇을 빼앗지도 않고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며 헐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손을 금하여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않고 고리대금하지 않고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며 그의 율례를 행한다면, 그는 그 아비의 죄악으로 인해 죽지 않고 참으로 살 것이며, 그 아비는 심히 포학하여 그 동족을 강탈하고 사람들에게 선하지 않은 일들을 행했기 때문에 그 죄악으로 인해 죽을 것이다. [19-20절]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비의 죄를 담당치 않겠느뇨 하는도다. 아들이 법과 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정녕 살려니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아들이 어찌 아비의 죄를 담당치 않겠느냐?”는 속담은 옳지 않다. 아들이 법을 행하며 하나님의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참으로 살 것이며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 것이다. 또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않을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않을 것이며,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21-24절]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 행한 의로 인하여 살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하고 악인의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죽으리라. 악인이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서 하나님의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않을 것이며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않을 것이며 그 행한 의로 인해 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가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 한편, 의인이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하고 악인의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그는 살지 못하고 그의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않을 것이며 그는 그가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해 죽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고 보응하실 것이다. [25-29절]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 만일 의인이 그 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인하여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인하여 죽는 것이요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법과 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의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심판이 공평하였다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불공정한 재판관인 것처럼 불평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심판이 사람들의 선악의 행위에 근거한 공정한 심판임을 강조하셨다. 의인이라도 그 의를 떠나 악을 행하면 그 악을 인해 죽을 것이며, 악인이라도 그 악을 떠나 의를 행하면 살 것이다. [30-32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의 행한 대로 심판하실 것이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나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죽는 자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회개는 새 마음과 새 영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해야 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공정성을 알아야 한다. 그는 결코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시다. 그는 사람의 행한 대로 공의롭게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모든 사람은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 앞에 잠잠해야 한다. 둘째로, 구원은 각 사람의 문제이다. 아무리 경건한 부모라 하더라도 그가 그의 자녀의 구원을 보장할 수 없다. 구원받는 사람은 믿고 순종하며, 그 일에 있어서 각 사람은 책임을 가진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각 사람은 구원의 수단을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셋째로, 모든 사람은 회개하고 죄를 떠나야 한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 것이다. 이 진리는 신약 아래서도 여전히 진리이다.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 우리는 새 마음과 새 영, 즉 심령의 새로움을 가져야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실제로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이 순종하는 것이다. 19장: 이스라엘 방백들을 위한 애가 [1-4절] 너는 이스라엘 방백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부르기를 네 어미는 무엇이냐? 암사자라. 그가 사자들 가운데 엎드리어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기르는데 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 젊은 사자가 되어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 땅으로 간지라. ‘이스라엘 방백들’은 유다 왕국 말기의 왕들, 즉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를 가리켰다고 본다. 유다 나라는 암사자에 비유되었고 그 왕들은 사자 새끼로 비유되었다. 사슬에 묶여 애굽 땅으로 끌려간 젊은 사자는 여호아하스 왕을 가리켰다. 열왕기하 23장에 보면, 여호아하스는 23세에 왕이 되었으나, 그 열조의 모든 행위대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다가(32절) 애굽 왕 바로느고의 침공으로 석달 만에 폐위되고 애굽으로 잡혀가 거기서 죽었다(33-34절). [5-7절] 암사자가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을 알고 그 새끼 하나를 또 취하여 젊은 사자가 되게 하니 젊은 사자가 되매 여러 사자 가운데 왕래하며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며 그의 궁실들을 헐고 성읍들을 훼파하니 그 우는 소리로 인하여 땅과 그 가득한 것이 황무[황폐](국한문)한지라. 암사자가 두 번째로 키운 젊은 사자는 여호야김을 가리켰다. 그는 활동적이고 이웃 나라들과의 교제도 활발하였다. 여호야김은 25세에 유다 왕이 되어 11년간 통치했다. 그러나 그도 잔인하고 난폭하였다. 성경은 여호야김도 그 열조의 모든 행한 일들을 본받아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증거한다(왕하 23:37). ‘그의 궁실들을 헐었다’는 원어( 와예다 알메노사우 ) 8) 는 ‘그의 과부들을 알았다’는 뜻이다. ‘그의 과부들을 알았다’는 말은 그가 사람들을 죽이고 그의 과부들을 학대하였다는 뜻일 것이다 (Delitsch) . 예레미야 22:17은 여호야김이 탐람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강포를 행하였다고 증거한다. 왕이 악하고 난폭하므로 온 땅이 황폐하였다. [8-9절] 이방이 둘려 있는 지방에서 그를 치러 와서 그의 위에 그물을 치고 함정에 잡아 갈고리로 꿰고 철롱에 넣어 끌고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나니 그를 옥에 가두어서 그 소리로 다시 이스라엘 산에 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웃 나라들을 통해 그를 징벌하셨다. 열왕기하 24:2는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자들로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라고 기록한다. 이방 나라들은 그물을 치고 그를 함정에 잡아 사슬에 매고 철롱에 넣어 끌고 바벨론 왕에게로 데려갔고 그를 옥에 가두었다. 여호야김은 바벨론으로 잡혀갔다. 역대하 36:6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와서 치고 저[여호야김]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10-12절] 네 피의 어미는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실과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그 가지들은 견강하여 권세 잡은 자의 홀이 될 만한데 그 하나의 키가 굵은 가지 가운데서 높았으며 많은 가지 가운데서 뛰어나서 보이다가 분노 중에 뽑혀서 땅에 던짐을 당하매 그 실과는 동풍에 마르고 그 견강한 가지들은 꺾이고 말라 불에 탔더니. “네 피의 어미”라는 원어는 “네가 피를 이어받은 네 어미”라는 뜻이든지 “네가 피투성이었을 때에 네 어미”(겔 16:6)라는 뜻일 것이다. 유다 민족은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 열매를 많이 맺고 가지가 무성하고 튼튼하였다. 그 굵은 가지들 중 뛰어난 한 가지가 꺾이고 말라 불에 탄 것은 여호야긴 왕을 가리켰다. 여호야긴은 18세에 왕이 되었으나 석달 만에 폐위되었고 바벨론으로 잡혀갔다(왕하 24:15). [13-14절] 이제는 광야,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에 심긴 바 되고 불이 그 가지 중 하나에서부터 나와서 그 실과를 태우니 권세 잡은 자의 홀이 될만한 견강한 가지가 없도다.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 유다 땅은 광야 같고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같이 되었다. 한 가지는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이었다. 그러나 그로 말미암아 유다의 왕권은 완전히 몰락했다. 이제는 왕의 권위도, 힘도, 영광도 없었다. 그가 바벨론 왕을 배반함으로 유다는 결국 멸망하게 되었다. 그 후에는 유다에 권세 잡은 자의 홀이 될 만한 가지가 없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방백들을 위한 애가의 내용이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악하고 난폭한 왕을 징벌하실 것이다. 유다 나라의 말기에 왕들은 악한 왕들이었다. 그들은 사람을 삼키는 난폭하고 잔인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무고한 자들의 피를 많이 흘렸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왕들을 애굽이나 바벨론에 잡혀가게 하셨다. 세상의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롬 13:1-2)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세우기도 하시고 멸하기도 하신다(롬 14:4). 둘째로, 왕이 악하면 그 나라는 약해지고 그 온 땅은 불행해진다. 이것은 유다 나라 멸망의 역사에서 증거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왕이 의와 진리와 선으로 통치하면 그 왕위가 견고하고 그 나라도 든든히 설 것이라고 말한다. 잠언 14:34,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잠언 20:28, “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하고 그 위(位)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 통치자의 인품이 중요하다. 셋째로, 우리는 통치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고 바른 통치자들을 세워야 한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통치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디모데전서 2:1-2,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또 우리는 건전한 사상과 선한 인격과 도덕성을 가진 통치자들을 뽑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평안하려면 지도자들이 바른 식견과 인격과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의와 선으로 백성을 다스리며 나라를 인도할 것이다. 20장: 이스라엘의 패역함 1-9절, 애굽에서의 패역함 [1-4절] 제7년 5월 10일에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여호와께 물으려고 와서 내 앞에 앉으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내게 물으려고 왔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인자야, 네가 그들을 국문[판단]하려느냐? 네가 그들을 국문[판단]하려느냐? 너는 그들로 그 열조의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제7년”은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때로부터 계산한 것이다. 9)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라는 원어는 “내가 살아 있거니와”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며 모든 일을 보시고 판단하시고 보응하신다. 그는 에스겔에게 온 장로들이 그에게 묻기를 용납하지 않으시며 또 그들로 그 열조의 우상숭배의 가증한 일을 알게 하기를 원하신다. 그가 그들이 하나님께 묻기를 용납지 않으시는 까닭은 그들이 우상숭배의 죄를 마음에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5-8절]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옛날에 내가 이스라엘을 택하고 야곱 집의 후예를 향하여 맹세하고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타나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하였었노라. 그 날에 내가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그들을 위하여 찾아두었던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에 이르게 하리라 하고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눈을 드는 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고 애굽의 우상들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하였으나 그들이 내게 패역하여 내 말을 즐겨 듣지 아니하고 그 눈을 드는 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지 아니하며 애굽의 우상들을 떠나지 아니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내가 애굽 땅에서 나의 분을 그들의 위에 쏟으며 노를 그들에게 이루리라 하였었노라. 하나님께서는 옛날에 그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 자손을 향해 맹세하셨고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타나 맹세하며 몇 가지 내용을 말씀하셨다. 그 첫 번째는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는 말씀이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특별한, 친밀한 관계를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에 근거한 것이었다(창 17:7-8). 그 두 번째 내용, 특히 그가 맹세하시며 말씀하신 것은 그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시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그들을 위해 찾아두었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복된 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세 번째 내용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만 참 하나님으로 섬기고 애굽의 우상들로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우상들을 “눈을 드는 바 가증한 것” 즉 “눈의 가증한 우상들”이라는 표현하셨다. 그것은 그것들이 눈으로 보기에 그럴 듯하나 사람을 속이는 가증한 것들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패역했고 그의 말씀을 듣기를 즐거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애굽의 우상들을 버리지 않았고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광야에서만 우상을 섬긴 것이 아니고 애굽에서부터 그러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서부터 이스라엘을 향해 진노하셨다. 그는 거기에서 그의 분을 그들의 위에 쏟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성경 다른 곳에서 증거되어 있지 않은 내용이다. [9절] 그러나 내가 그들의 거하는 이방인의 목전에서 그들에게 나타나서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었나니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목전에서 더럽히지 않으려 하여 행하였음이로라.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스라엘, 즉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숭배적인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심히 죄악된 이스라엘 백성을 왜 구원하셨는가? 여기에 하나님의 크신 긍휼의 구원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그의 이름을 이방인들의 앞에서 더럽히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에 맞는다. 이사야 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특권을 지키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신약교회는 이 복을 누린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얻었고(요 1:12)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과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다(벧전 2:9). 우리는 이 특권을 잘 지켜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패역지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패역하고 우상들로 자신을 더럽혔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대신 하나님처럼 사랑하는 모든 우상을 버려야 하고 자신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아야 한다(요일 2:15-17).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사랑하고(시 73:25) 성경에 증거된 그의 모든 교훈들을 다 믿고 소망하며 실천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을 깨닫고 찬송하자.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셨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이었고 그의 이름의 영광을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전적으로 부패한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셨고 또 성화의 길로 인도하신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에 특히 우리를 택하심은 그의 긍휼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또 그는 모든 일을 그의 영광을 위해 섭리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찬송하고 그를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 10-26절, 광야에서의 패역함 [10-12절] 그러므로 내가 그들로 애굽 땅에서 나와서 광야에 이르게 하고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알게 하였고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안식일들]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패역했던 이스라엘 자손을 참으시고 그들로 애굽 땅에서 나와서 광야에 이르게 하셨고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해 삶을 얻을 그의 율법을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그것을 온전히 지키면 의롭다고 인정받고 영생에 이르게 할 법이었다. 또 그는 그들에게 그의 안식일들을 주셔서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표증을 삼으셨고 그들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이신 줄 알게 하려 하셨다. ‘안식일들’은 안식년과 희년을 포함해 모두 열 개이다. [13-14절]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광야에서 내게 패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으므로 내가 이르기를 내가 내 분노를 광야에서 그들의 위에 쏟아 멸하리라 하였으나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달리 행하였었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목도한 열국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 이스라엘 족속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패역하여 사람이 행하면 그로 인해 생명을 얻을 하나님의 율례를 준행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규례를 멸시했고 하나님의 안식일들을 크게 더럽혔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분노를 광야에서 그들 위에 쏟아 멸하려고 하셨으나 그의 이름을 위해 달리 행하셨다. 그것은 그가 그들을 인도해 내는 것을 본 열국 앞에서 그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려 하셨기 때문이다. [15-17절] 또 내가 광야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그들에게 허한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지 아니하리라 한 것은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좇아 나의 규례를 업신여기며 나의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음이니라. 그러나 내가 그들을 아껴 보아 광야에서 멸하여 아주 없이 하지 아니하였었노라.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좇아 그의 규례를 업신여겨 행치 않고 그의 안식일들을 더럽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셨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아끼셔서 광야에서 멸하여 아주 없애지는 않으셨다. [18-20절] 내가 광야에서 그들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 열조의 율례를 좇지 말며 그 규례를 지키지 말며 그 우상들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나의 율례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고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하였었노라.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들의 조상들의 율례를 좇지 말며 그 규례를 지키지 말며 그 우상들로 자신들을 더럽히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의 조상들의 전통적 풍습 중에는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처럼 우상숭배적 요소들이 많았다. [21-22절] 그러나 그 자손이 내게 패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좇지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는지라. 이에 내가 이르기를 내가 광야에서 내 분을 그들의 위에 쏟으며 내 노를 그들에게 이루리라 하였으나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내 손을 금하고 달리 행하였었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목도한 열국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 패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해 생명을 얻을 하나님의 율례를 좇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안식일들을 더럽혔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려 하셨으나 그의 이름을 위해 그의 손을 금하고 달리 행하였다. 이는 그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본 이방 나라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려 하심이었다. [23-26절] 또 내가 광야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그들을 이방인 중에 흩으며 열방 중에 헤치리라 하였었나니 이는 그들이 나의 규례를 행치 아니하며 나의 율례를 멸시하며 내 안식일을 더럽히고 눈으로 그 열조의 우상들을 사모함이며 또 내가 그들에게 선치 못한 율례와 능히 살게 하지 못할 규례를 주었고 그들이 장자를 다 화제로 드리는 그 예물로 내가 그들을 더럽혔음은 그들로 멸망케 하여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규례를 멸시하고 그의 안식일들을 더럽히고 그 조상들의 우상들을 사모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그들을 이방인 중에 흩으리라고 맹세하셨다. 또 그는 그들에게 선하지 못한 율례와 생명을 줄 수 없는 규례를 주셨고 그들이 모든 맏아들을 불태워 드리는 그 예물로 그들을 더럽히게 하셨다. 이방 종교나 이단 종파의 부흥은 사람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일종의 징벌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모든 사람은 죄를 떠나고 회개해야 한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 세례 요한의 외침대로, 사람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마 3:8). 예수님 믿고 구원 얻은 우리도 모든 죄를 회개하고 버리고 죄 짓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항상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고 이것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다(엡 2:8). 그러나 믿는 성도에게도 몸의 남은 죄성이 있고 그것 때문에 때때로 실수하고 범죄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내면적 싸움과 탄식 중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롬 7:24-25). 셋째로, 우리는 오직 성경말씀대로만 살아야 한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 .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다(마 28:19-20). 바울은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고 말했다(살후 2:15).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우리가 그의 모든 말씀 즉 성경말씀대로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27-49절, 이스라엘의 패역과 회복 [27-29절] 그런즉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열조가 또 내게 범죄하여 나를 욕되게 하였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였더니 그들이 모든 높은 산과 모든 무성한 나무를 보고 거기서 제사를 드리고 격노케 하는 제물을 올리며 거기서 또 분향하고 전제(奠祭)를 부어 드린지라. 이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다니는 산당이 무엇이냐 하였노라. (그것을 오늘날까지 바마라 일컫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은 범죄하여 하나님을 모욕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제1, 2계명을 어기고 우상들을 섬겼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주기로 맹세하신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으나 그들은 모든 높은 산과 나무들을 보고 거기서 제사 드렸고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제물을 올리며 분향하고 전제(奠祭)를 부어 드렸다. [30-32절]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열조의 풍속을 따라 스스로 더럽히며 그 모든 가증한 것을 좇아 행음하느냐? 너희가 또 너희 아들로 화제(火祭)를 삼아 예물로 드려 오늘날까지 우상들로 스스로 더럽히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하겠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스스로 이르기를 우리가 이방인 곧 열국 족속같이 되어서 목석(木石)을 숭배하리라 하거니와 너희 마음에 품은 것을 결코 이루지 못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그 조상들의 풍습대로 자신을 더럽히며 그 모든 가증한 것들을 좇아 우상을 섬겼다. 그들은 심지어 그들의 아들들을 불태워 우상에게 제물로 드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를 섬기는 모양을 내고 그에게 무엇을 묻는 일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그것은 형식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는 우상숭배의 죄를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인들처럼 나무나 돌을 숭배하겠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마음에 품은 것을 결코 이루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결코 죄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33-38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능한 손과 편 팔로 분노를 쏟아 너희를 단정코 다스릴지라. 능한 손과 편 팔로 분노를 쏟아 너희를 열국 중에서 나오게 하며 너희의 흩어진 열방 중에서 모아내고 너희를 인도하여 열국 광야에 이르러 거기서 너희를 대면하여 국문하되 내가 애굽 땅 광야에서 너희 열조를 국문한 것같이 너희를 국문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너희를 막대기 아래로 지나게 하며 언약의 줄로 매려니와 너희 가운데서 패역한 자와 내게 범죄한 자를 모두 제하여 버릴지라. 그들을 그 우거하던 땅에서는 나오게 하여도 이스라엘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께서는 능한 손과 편 팔로 분노를 쏟아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실 것이다. 그는 그들을 흩어졌던 나라들에서 모아내어 열국의 광야에서 판단하실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 중에 패역한 자들과 범죄자들을 다 제거하실 것이며 고국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39-40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려거든 가서 각각 그 우상을 섬기고 이 후에도 그리하려무나 마는 다시는 너희 예물과 너희 우상들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말지니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땅에 있어서 내 거룩한 산 곧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다 나를 섬기리니 거기서 내가 그들을 기쁘게 받을지라. 거기서 너희 예물과 너희 천신(薦新)하는[새로 드리는] 첫 열매와 너희 모든 성물을 요구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우상숭배를 고집하면 해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그의 본심은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본심이다. 이스라엘 온 족속은 그 땅에 있어서 그의 거룩한 산에서 그를 섬길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그들을 기쁘게 받으실 것이다. 또 그는 거기서 그들의 예물과 첫 열매들과 모든 성물을 요구하실 것이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참된 예배를 요구하신다. [41-43절]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열국 중에서 나오게 하고 너희의 흩어진 열방 중에서 모아낼 때에 내가 너희를 향기로 받고 내가 또 너희로 말미암아 내 거룩함을 열국의 목전에서 나타낼 것이며 내가 너희 열조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 곧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들일 때에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고 거기서 너희의 길과 스스로 더럽힌 모든 행위를 기억하고 이미 행한 모든 악을 인하여 스스로 미워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열국 중에서 인도하여 나오게 하시고 그 흩어진 열방 중에서 그들을 모아내실 때 그들을 향기로 받으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을 열국 앞에 나타내실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열조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들이실 때 그들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며 그들의 과거의 길들과 더러운 모든 행위를 기억하고 그 모든 부끄러운 악을 미워할 것이다. [44절]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대로 하지 아니하고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한 후에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족속을 그들의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대로 갚지 아니하시고 자신의 이름을 위해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구원을 받았다. 우리는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었고 오직 구주 예수님의 대속 사역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받았다. [45-49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얼굴을 남으로 향하라. 남으로 향하여 소리내어 남방들의 삼림을 쳐서 예언하라. 남방 삼림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의 가운데 불을 일으켜 모든 푸른 나무와 모든 마른 나무를 멸하리니 맹렬한 불꽃이 꺼지지 아니하고 남에서 북까지 모든 얼굴이 그슬릴지라. 무릇 혈기 있는 자는 나 여호와가 그 불을 일으킨 줄을 알리니 그것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기로 내가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그는 비유로 말하는 자가 아니냐 하나이다 하니라. 본문은 다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남쪽은 유다 땅을 가리키고 남방 삼림은 유다 백성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땅에 불을 일으켜 푸른 나무나 마른 나무, 즉 부자나 가난한 자를 다 멸할 것이며 맹렬한 불꽃이 남에서 북까지 모든 얼굴을 그슬릴 것이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으나 사람들은 그가 비유로 말하는 자라고 반응했다. 그들은 그 말씀을 진지하게 받지 않았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에 대해 노하신다. 그는 특히 우상숭배를 미워하신다. 그는 범죄자들을 향해 능한 손과 편 팔로 분노를 쏟으실 것이다. 그는 푸른 나무도, 마른 나무도 다 태우실 것이며, 유다 땅은 남에서 북까지 다 불태워질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패역한 자와 범죄한 자는 다 제거될 것이며 그들은 결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도 우리가 범죄하면 하나님께서는 노하실 것이다. 우리는 특히 돈 사랑, 세상 사랑 등의 우상숭배적 죄를 멀리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죄를 다 회개하고 버려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고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죄에서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구원받은 자들은 모든 죄와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의 성산(聖山)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룩한 예물을 요구하신다.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온 땅에 나타내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악하고 더러운 행위대로 우리에게 보응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 가운데, 특히 우상숭배의 죄 가운데 머물러 있지 말고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죄씻음의 구원을 받고 이제는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하나님만 믿고 섬기며 그의 계명을 좇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새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죄악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21장: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옴 [1-5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며 성소를 향하여 소리내어 이스라엘 땅을 쳐서 예언하라. 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라. 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 터이므로 내 칼을 집에서 빼어 무릇 혈기 있는 자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무릇 혈기 있는 자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집에서 빼어낸 줄을 알지라. 칼이 다시 꽂혀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대적하며 그의 칼을 빼어 그들을 죽이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그들이 범죄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칼을 빼어 그 백성들을 의인과 악인을 막론하고, 산 자를 남에서 북까지 죽이실 것이며 그 칼을 칼집에 꽂지 않으실 것이다. [6-7절] 인자야, 너는 탄식하되 허리가 끊어지는듯이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 그들이 네게 묻기를 네가 어찌하여 탄식하느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소문을 인함이라. 재앙이 오나니 각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여지며 각 영이 쇠하며 모든 무릎이 물과 같이 약하리라. 보라, 재앙이 오나니 정녕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라. 에스겔은 재앙의 소문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허리가 끊어지듯 슬피 탄식해야 했다. 무서운 재앙이 올 것이며 각 사람의 마음은 녹으며 모든 손은 약해지고 각 영혼이 쇠하며 모든 무릎이 물같이 약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재앙은 반드시 올 것이다. [8-11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마광되었도다. 그 칼이 날카로움은 살륙을 위함이요 마광됨은 번개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내 아들의 홀이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그것이 모든 나무처럼 내 아들의 홀을 경멸하도다](KJV, NIV). 그 칼이 손에 잡아 쓸 만하도록 마광되되 살륙하는 자의 손에 붙이기 위하여 날카롭고도 마광되었도다 하셨다 하라. 모든 나무는 이방 나라들을 가리키며 ‘내 아들의 홀’은 유다의 왕을 가리킬 것이다. 이방 나라들이 유다를 경멸할 것이다. 하나님의 칼은 날카롭고 마광되어 번개같이 사람들을 살육할 것이다. [12-14절] 인자야, 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지어다. 이것이 내 백성에게 임하며 이스라엘 모든 방백에게 임함이로다. 그들과 내 백성이 함께 칼에 붙인 바 되었으니 너는 네 넓적다리를 칠지어다. 이것이 시험이라. 만일 업신여기는 홀이 없어지면 어찌할꼬?[그 칼이 그 홀을 업신여기면 어찌하리요? 그것이 더 이상 없으리라](KJV, NIV).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예언하며 손뼉을 쳐서 칼로 세 번 거듭 씌우게 하라. 이 칼은 중상(重傷)케 하는 칼이라. 밀실에 들어가서 대인을 중상케 하는 칼이로다[세 번째는 칼로 이중이 되게 하라. 이 칼은 살해된 대인들을 위한, 그들을 둘러싼 칼이라](NASB, BDB). 에스겔은 하나님의 칼이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임하며 그 모든 방백에게 임하기 때문에 부르짖어 슬피 울어야 했다. 그들이 다 함께 칼에 붙인 바 될 것이다. 하나님의 칼은 유다 왕도 업신여길 것이며 그 칼은 날카로워서 대인들도 살해하는 칼이 될 것이다. [15-17절] 내가 그들로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 번쩍하는 칼을 베풀었도다. 오호라, 그 칼이 번개같고 살륙을 위하여 날카로왔도다. 칼아, 모이라. 우향하라. 항오를 차리라. 좌향하라. 향한 대로 가라. 나도 내 손뼉을 치며 내 분을 다 하리로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로 낙담케 하시며 많이 엎드러지게 하실 것이다. 그의 칼은 모든 성문을 향해 번쩍이며 번개같고 날카로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군대를 지휘하시듯이 칼에게 명령하신다고 표현되었다. 그는 손을 치시며 그의 분노가 가라앉기까지 행하실 것이다. [18-23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바벨론 왕의 칼이 올 두 길을 한 땅에서 나오도록 그리되 곧 성으로 들어가는 길 머리에다가 길이 나뉘는 지시표를 하여 칼이 암몬 족속의 랍바에 이르는 길과 유다 견고한 성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을 그리라. 바벨론 왕이 갈랫길 곧 두 길 머리에 서서 점을 치되 살들을 흔들어 우상에게 묻고 희생의 간을 살펴서 오른손에 예루살렘으로 갈 점괘를 얻었으므로 공성퇴를 베풀며 입을 벌리고 살륙하며 소리를 높여 외치며 성문을 향하여 공성퇴를 베풀고 토성을 쌓고 운제를 세우게 되었나니 전에 그들에게 맹약한 자들은 그것을 헛점으로 여길 것이나 바벨론 왕은 그 죄악을 기억하고 그 무리를 잡으리라. 하나님의 칼은 바벨론 왕의 칼을 의미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바벨론 왕이 행할 일을 미리 그리라고 지시하신다. 바벨론 왕은 갈랫길 곧 두 길 머리에 서서 점을 칠 것이다. 그 결과, 바벨론 왕은 예루살렘으로 갈 점괘를 얻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향해 공성퇴[성을 공격하는 무기]를 베풀며 입을 벌리고 살육하며 소리를 높여 외치며 토성을 쌓고 운제[포위벽]를 세울 것이다. 바벨론 왕과 맹약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점을 헛되다고 생각할 것이지만, 바벨론 왕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죄악을 기억하고 그 무리를 잡을 것이다. [24-27절]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의 악이 기억을 일으키며 너희의 건과(愆過)[범죄들]가 드러나며 너희 모든 행위의 죄가 나타났도다. 너희가 기억한 바 되었은즉 그 손에 잡히리라. 너 극악하여 중상을 당할 이스라엘 왕아[너 속되고 악한 이스라엘 왕아](KJV, NIV), 네 날이 이르렀나니 곧 죄악의 끝 때니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관을 제하며 면류관을 벗길지라. 그대로 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 이스라엘 왕은 죄로 인해 심판의 날을 맞을 것이며 그 왕관이 제거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낮은 자를 높이시고 높은 자를 낮추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엎드러뜨리시면 그것을 막을 자가 없을 것이다. [28-32절] 인자야, 주 여호와께서 암몬 족속과 그 능욕에 대하여 말씀하셨다고 너는 예언하라. 너는 이르기를 칼이 뽑히도다. 칼이 뽑히도다. 살륙하며 멸절하며 번개같이 되기 위하여 마광되었도다. 네게 대하여 허무한 것을 보며 네게 대하여 거짓 복술을 하는 자가 너를 중상을 당한 악인의 목 위에 두리니 이는 그의 날 곧 죄악의 끝 때가 이름이로다. 그러나 칼을 그 집에 꽂을지어다. 네가 지음을 받은 곳에서, 너의 생장한 땅에서 내가 너를 국문하리로다. 내가 내 분노를 네게 쏟으며 내 진노의 불을 네게 불고 너를 짐승 같은 자 곧 멸하기에 익숙한 자의 손에 붙이리로다. 네가 불에 섶과 같이 될 것이며 네 피가 나라 가운데 있을 것이며 네가 다시 기억되지 못할 것이니 나 여호와가 말하였음이니라 하라. 암몬 족속에 대한 심판도 비슷하게 선언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셔서 그의 분노를 그들에게 쏟으실 것이며 그들은 불에 섶같이 탈 것이며 그들의 피는 땅 가운데 있을 것이며 그들은 다시 기억되지 못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불경건하고 악한 이스라엘을 대적하셔서 칼을 보내실 것과 그들의 악이 드러나게 될 것을 선언하셨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를 행하는 자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인하고 악을 행하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후자의 사람들을 대적하시고 칼을 보내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그의 십자가 공로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과 구원을 받았다(롬 3:24; 엡 2:8).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고(롬 8:1)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우리를 대적할 자가 세상에 아무도 없다(롬 8:31).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줄을 끊을 자가 없다(롬 8:35-39). 복음 신앙, 속죄 신앙은 성도에게 생명선과 같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는 중생한 성도가 죄 가운데 살 수 없다는 진리도 잊지 말아야 한다. 중생한 자는 계속 죄 가운데 거할 수 없다(요일 3:6). 우리는 죄에게 복종해서는 안 된다(롬 6:15). 참 믿음은 순종의 삶으로 나타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약 2:17). 하나님께서는 오직 경건하고 바르게 사는 성도들의 미래를 보장하신다. 22장: 이스라엘의 죄악들 [1-5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네가 국문하려느냐? 이 피 흘린 성읍을 국문하려느냐? 그리하려거든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그들로 알게 하라.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 가운데 피를 흘려 벌받을 때로 이르게 하며 우상을 만들어 스스로 더럽히는 성아, 네가 흘린 피로 인하여 죄가 있고 네가 만든 우상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혔으니 네 날이 가까왔고 네 연한이 찼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로 이방의 능욕을 받으며 만국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노라. 너 이름이 더럽고 어지러움[소란함]이 많은 자여, 가까운 자나 먼 자나 다 너를 조롱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에서 많은 사람들의 피가 부당하게 흘려졌고 가증한 일들 곧 우상숭배가 많았음을 지적하시며, 그들이 이방인들의 능욕을 받고 만국의 조롱거리가 될 것을 예언하셨다. [6-12절] 이스라엘 모든 방백은 각기 권세대로 피를 흘리려고 네 가운데 있었도다. 그들이 네 가운데서 부모를 업신여겼으며 네 가운데서 나그네를 학대하였으며 네 가운데서 고아와 과부를 해하였도다. 너는 나의 성물들을 업신여겼으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으며 네 가운데 피를 흘리려고 이간을 붙이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 산 위에서 제물을 먹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 음란하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 자기 아비의 하체를 드러내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 월경하는 부정한 여인에게 구합( 媾 合)하는 자도 있었으며 혹은 그 이웃의 아내와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혹은 그 며느리를 더럽혀 음행하였으며 네 가운데 혹은 그 자매 곧 아비의 딸과 구합하였으며 네 가운데 피를 흘리려고 뇌물을 받는 자도 있었으며 네가 변전(邊錢)( 네쉐크 )[고리대금]과 이식(利息)을 취하였으며 이(利)를 탐하여 이웃에게 토색하였으며 나를 잊어버렸도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백성의 많은 죄악들, 즉 피흘림, 부모 멸시, 나그네 학대, 고아와 과부를 해침, 성물 무시, 안식일 더럽힘, 이간 붙임, 우상제물을 먹음, 근친상간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음행들, 강제로 빼앗음, 고리대금, 토색, 하나님을 잊어버림 등의 죄를 지적하셨다. 그것들은 십계명의 여러 계명들을 어긴 죄들이었다. [13-16절] 너의 불의를 행하여 이(利)를 얻은 일과 네 가운데 피 흘린 일을 인하여 내가 손뼉을 쳤나니 내가 네게 보응하는 날에 네 마음이 견디겠느냐? 네 손이 힘이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룰지라. 내가 너를 열국 중에 흩으며 각 나라에 헤치고 너의 더러운 것을 네 가운데서 멸하리라. 네가 자기 까닭으로 열국의 목전에서 수치를 당하리니[네가 열국 앞에서 자신을 더럽히리니](BDB, NASB)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에 대한 보응을 말씀하셨다. 그는 그들을 흩으시고 그들의 더

에스겔강해(01)(첫회) 에스겔이 본 네 생물들과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01)(겔1:1~28)_2019-06-12(수)

에스겔은 “하나님은 강하시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제2차 포로기 때의 선지자였다. 그는 원래 제사장이었으나, 포로로 잡혀가 노예가 되었다. 하지만 5년 뒤인 나이 서른에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게 된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천국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그에게 사명을 주셨다. 그것은 1차로 회개에 대한 촉구였다. 그리고 6년 뒤에 나라가 멸망하자, 이제는 이스라엘에 대한 회복을 선포하는 일이었다. 오늘 말씀은 그가 처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소명을 받았을 때, 환상 중에 그가 보았던 천상의 모습을 소개한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에스겔서 강해 첫시간인 만큼 에스겔서가 과연 어떤 책이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그리고 에스겔서를 공부하면 얻게 되는 유익은 무엇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서 천사와 같은 종의 신분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은 대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에스겔서는 구약의 4대 선지서들 가운데,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에스겔서 중의 하나다. 에스겔은 제2차 바벨론포로민 가운데 한 사람 이었다. 그는 남유다 제19대 여호야긴왕과 함께 B.C.597년에 바벨론에 끌려갔다. 그는 그곳 타국땅에서 살았고 거기서 인생을 마감했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아 일했지만 그후 3년만에 아내도 죽고 말았다. 또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무려 7년동안은 벙어리처럼 지내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 이상한 사람 취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그러자 그는 5년후 이스라엘에게 임할 심판과 장차 회복될 이스라엘의 영광에 대해 예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에스겔서에 나오는 주제와 전체적인 윤곽을 한 번 살펴보고, 에스겔1~3장에 나오는 에스겔의 소명 가운데 겔1장에 나오는 그의 대한 소개와 더불어 네 생물의 환상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2. 에스겔 선지자는 누구인가?

에스겔은 “하자크 + 엘”의 합성어로서, “강하게 하다 혹은 단단히 묶어두다 +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은 강하시다” 혹은 “하나님은 강하게 하신다”는 뜻 이다. 에스겔은 B.C.597년에 제2차 바벨론포로 때에 바벨론의 갈대아 땅 그발강가에 끌려왔지만 그는 실로 사독계열의 제사장인 부시의 아들로 존귀한 신분을 가진 자였다. 그리고 그때 그의 나이는 25살이었다. 그런데 그가 만약 예루살렘에 있었더라면 그는 거기서 제사장의 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이상 그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단지 바벨론의 노예가 되어 왕궁을 건설하는 노동자에 불과할 뿐이었다. 의미없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때 그는 자신이 아무런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때를 기다렸다. 그랬더니 그의 나이 30세가 되던 해 B.C.593년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찾아오셨다. 그리고 그 에게 하늘의 이상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예루살렘에게 임할 심판과 회복에 대해 예언하게 했다. 그래서 그는 30세부터(B.C.593) 52세까지(B.C.571) 약 22년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있는 남유다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렇다. 누구나 자신이 아무런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되는 날이 찾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절망하지 말라. 주님께서는 참고 기다리는 자에게 새 길을 열어주시는 분이시니 때문 이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능력까지 덤으로 주셨다(겔1:3).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쓰실 때에는 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같이 주신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약한 자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강하게 만들어주신 것이다.

3. 에스겔서는 어떤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가?

에스겔은 총48장의 상당히 긴 예언의 책 다. 내용을 보면, 계시가 주어진 시점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약 21편의 중단편의 예언집 과도 같다. 하지만 주제별로 살펴보면, 이 예언서는 크게 2개의 내용을 담고 있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반부(겔1~32장)는 심판에 관한 예언 이요, 후반부(겔33~48장)는 회복에 관한 예언 이다. 다시 이것을 좀더 세부적으로 분류해보면, 다섯개(3+2)의 영역으로 분류 할 수 있는데, 첫째는 에스겔의 소명과 파송장면(겔1~3장), 둘째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예언(겔4~24장), 셋째는 열방(7개국)에 관한 심판의 예언(겔25~32장), 넷째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예언(겔33~39장), 다섯째는 마지막으로 종말론적인 선민왕국의 회복에 관한 예언(겔40~48장)이 그것이다.

4. 에스겔서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익은 무엇인가?

우리는 에스겔서(48장)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유익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첫째,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만나게 될 것 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민족을 향하여 “패역한 족속”이라고 그렇게 언급하고 계시지만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노력하신다. 둘째, 하나님은 죄는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 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집인 예루살렘 성전이 결국 이방제국의 백성에 의해 파괴되도록 허용하신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특별한 민족으로 선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채, 하나님만 섬겨야 할 성전의 여인의 뜰과 제사장의 뜰에서까지 우상을 숭배하는 천인공로할 죄를 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인은 사랑하실른지 모르지만 죄는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건을 통해서 당신이 누군지를 드러내신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심판하시는 것은 그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약70회나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가 누군지를 알게 하시겠노라고 하셨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비록 바벨론포로와 성전파괴를 허락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늘 보좌에서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신 것을 보여주신다. 넷째,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자를 반드시는 심판하신다는 것 도 알 수 있다. 비록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을 숭배하여 죄를 범하기는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쳤던 주변의 7개 이방나라를 그냥 두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에스겔서는 모든 형벌은 자기가 개별적으로 지은 죄로 인한 개별적인 심판의 결과라는 것을 말해준다. 당시에는 이런 속담이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리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말이다. 하나님은 개별적인 죄 때문에 개별적으로 심판하시는 것이지, 아버지의 죄 때문에 아들을 심판하시는 분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조상이 우상숭배를 하는 경우라면, 그만큼 그가 죽기 전에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을 가능성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그것의 진짜 이유는 본인이 죄의 길에서 아직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섯째, 하나님께서는 현재의 성도들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을 때에는 그 죄값을 본인이 치르게 된다는 것 을 배울 수 있다. 일곱째, 에스겔서는 우리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긍휼이 풍성한 하나님도 되시는데 죄를 지었으나 회개하는 자를 징계하지 않으시기 때문 이다. 여덟째, 신앙의 회복은 성전에 해당하는 교회의 회복이요, 제사장에 대하여는 목회자의 회복인 것 을 알 수 있다. 그렇다. 교회와 목회자가 바로 설 때에 신앙은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5. 에스겔이 보았던 네 생물은 어떤 존재였는가?

그렇다면, 에스겔이 선지자로 부름받던 날 그는 무엇을 보았는가? 그는 4가지를 보았다. 첫째는 네 생물을 보았다(겔1:4~14). 둘째, 네 바퀴와 같은 것을 보았다(겔1:15~21). 셋째, 수정같은 궁창을 보았다(겔1:22~25). 넷째, 하나님의 보좌와 거기에 앉아계신 이를 보았다(겔1:26~28) 오늘은 “네 생물”에 관하여 일부만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에스겔 선지자는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 것을 보았는데, 이때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 하였다. 그리고 빛이 사방으로 비치었다. 그리고 불 가운데서 “달궈진 쇠”같은 것을 나타나 보였다. 그리고 그것 안에 “네 생물”이 있는 것 을 보았다. 그런데 이 네 생물은 모습은 사람의 형상과 비슷 했는데, 얼굴의 모양이 달랐다. 얼굴의 모양이 사면마다 달랐는데, 하나는 사람의 얼굴이요, 나머지 셋은 사자와 소의 독수리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2쌍의 네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네 생물은 날개 한 쌍으로는 자기의 몸을 가리고 있었으며, 나머지 한 쌍으로는 날고 있었다(겔1:29). 날개들은 서로 연접해 있었으니, 네 생물들이 어디론가 갈 때에 그 날개들의 소리가 “많은 물소리”와도 같았고,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았으며, “떠드는 소리 곧 군대의 소리”와도 같았다(겔1:24). 그렇다면, 왜 네 생물은 날개를 자기의 몸을 가리고 있었을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상의 모습을 보았던 이사야선지자의 환상 을 비교하면 참조가 된다. 웃시양 왕이 죽던 해(B.C.740년경)에 소명을 받았던 이사야는 환상중에 높이 들린 하나님의 보좌 를 보게 된다. 그 옆에는 하나님을 모시고 서 있는 스랍들 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6개의 날개(세 쌍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으니, 둘은 얼굴을 가리었고, 둘은 발을 가리었으며, 둘은 날고 있었다. 날개 한 쌍이 얼굴을 가리운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종으로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것이었어나 자기들의 머리는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모습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둘로 발을 가리웠다는 것은 구약에 제사장에게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마같은 옷을 입게 한 것이 하체의 수치를 드러내지 않도록 하라고 했듯이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우는 측면이 있다고 하겠다.

한편, 네 생물(그룹들)이나 스랍들이나 보면 하나님을 섬기도록 지어진 종들 이므로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을 섬기는 종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장차 하나님의 자녀들도 천국에 들어가서는 “종”이라는 신분도 동시에 가지는 것 이기에(계22:3~5), 천사들이 수종드는 모습을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겠다. 사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의 자녀들은 교회의 지체들인데, 사도바울은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라고 하였다. 고로 우리들도 늘 우리의 머리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특히 보좌 위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네 생물들이 날개를 드리우는(접는) 모습이 나온다(겔1:24). 이는 네 생물들은 천사의 일종으로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종이 듣겠나이다”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그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자로서의 삶이다.

6. 나오며

에스겔, 그는 30살에 부르심을 받아 선지자가 되었다. 그는 원래 제사장이었으나 포로민이 되었기에 직업을 잃고 노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렸던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는 5년뒤 나타나셔서 천그를 이끌로 천국에 가서 하나님의 보좌와 그 주위에 서있는 천사들의 모습 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그에게 당신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자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포로로 끌려오면서 자기민족이 섬기던 신이 이스라엘만 있고 바벨론에는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하늘의 환상을 통해서 그분은 하늘에서 온 주우만물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하나님을 모셔 서 있는 천사들의 모습을 통해서 종의 신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선포하게 된다.

2019년 6월 12일(수)

정병진목사

하늘에 나타난 움직이는 하나님의 보좌 (에스겔 1장)

에스겔 1장

하늘에 나타난 움직이는 하나님의 보좌

맥락과 의미

하나님은 597년 바벨론으로 잡혀 간 제사장 에스겔에게593년에 나타나셔서 선지자로 불러 주십니다 (1-3장). 에스겔은 포로된 땅에서 말씀을 받아 예언했습니다. 1장은 땅의 성전의 원형이 되는 하늘의 성전을 환상 가운데 보여 주십니다. 앞으로 에스겔이 예언할 내용은 하나님이 그 영광 가운데 선포하신 내용입니다.

1. 에스겔이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 때 (1-3절)

에스겔의 나이 30세 되던 때, 여호야긴 왕과 함께 그가 바벨론 포로로 사로잡혀 간지 5년 째 되던 때였습니다. 제사장은 30세에 제사장 일로 부르심을 받는데 (민 4:3), 에스겔은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늘이 열렸고, 하나님의 이상 (비전, 눈에 보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3절, 거기 포로된 곳에서 “여호와의 권능 (손)”이 에스겔의 위에 있으면서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왔습니다. 이 비전은 다음과 같은 말로 위로하는 것 같습니다. “에스겔, 비록 성전이 없는 곳에서, 너는 제사장 일도 하지 못하지만, 내가 보이는 비전과 말씀의 선지자로서 제사장이 해야 할 일을 감당한다”

2. 네 생물 (천사들)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4-13절)

성전이 없는 포로된 그 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강한 바람과 불이 번쩍이며 영광이 빛났습니다. 벌겋게 달구어 진 쇠와 같은 것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그 안에 네 생명체,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네 명의 천사는 다리가 곧고 빛납니다. 각 생물에는 얼굴이 네 개 입니다. 사람, 야생 동물의 대표 사자, 가축의 대표 소, 새들의 대표 독수리의 얼굴입니다. 네 생물의 모양은 계시록 4:7에서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되어 가 있을 때, 하늘이 열리며 보게 될 모습과 같습니다.

네 생명체는 그룹이라는 이름을 가진 천사를 말합니다. 성막의 천에는 많은 그룹 천사들이 수 놓아져 있습니다. 또 성전의 안쪽 벽을 덮은 백향목에는 많은 그룹 천사들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성막/성전의 지성소 안에는 네 명의 그룹 천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큰 그룹 천사 두 명 (세로 4.5 m, 높이 4.5m)가 날개를 맞대고 있습니다(왕상 6:23-28). 또 법궤 두껑에도 두 천사가 서로 마주 보며 조각되어 있습니다 (출 25:17-22).

성막과 성전에서 백성을 대표하여 예배하던 제사장들은, 하늘에서 그룹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계신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에스겔이 이 환상을 볼 때 예루살렘에는 아직 성전이 있었고 성전제사가 드려지고 있을 때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포로된 곳에서 하늘의 성전을 환상 가운데 보며 그 영광에 참여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11절에 ‘그룹 천사의 날개가 서로 연하였다’ (닿았다, 9, 11절 하바르)는 구약의 성막을 연결하는 데 사용한 말입니다 (출 27:3,3,6,9,11) 그리고 대제사장이 입는 에봇 옷을 연결하는 데도 씁니다 (출 28:7,7). 땅의 성전/성막과 제사장은 하늘에서 하나님을 둘러싼 천사들을 그림처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제사장은 성전에서 쫓겨나 포로기에 있지만, 그 곳에서 하나님은 성전의 원래의 영광을 보여 주십니다. 성막/성전과 제사장이 표시하는 하늘의 천사가 하나님을 호위하는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창세기 3:24에서 아담이 범죄한 이후, 에덴 동산과 하나님의 보좌는 그룹 천사가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 후 성전에 그룹 천사를 새겨 두어서, 그 성전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가게 했습니다. 그러나 땅의 성전에 들어간다고 자동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한 대로 믿음으로 나갈 때, 하나님이 만나 주십니다. 영적인 실제 세계에서 그룹 천사들의 위를 받으시며 계신 하나님은 이제 에스겔에게는 그 성전이 없이도 만나 주고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성전 대신에 온 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모이는 교회에 그 영광으로 임재하십니다. 성도들이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송하고 기도할 때 이 영광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합니다.

12절, 또 생물 (그룹 천사)의 신이 어느 곳으로 가려 하면 생물들은 그 곳으로 나갑니다. 천사들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합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맡겨 진 직분을 순종하여 행합시다.

3 생물들 밑에 있는 바퀴들 (15-21절)

네 생물들 각각의 밑으로 바퀴가 네개 씩 있습니다. 그 바퀴는 생물이 땅에서 들리면 들립니다. 생물이 가면 바퀴도 가도, 생물이 서면 바퀴도 섭니다. 바퀴는 땅의 성전에 있던 놋 세숫대야 받침 (놋 받침, 정사각형)의 밑에 달린 네개의 바퀴를 말합니다. 구약 성전의 남쪽에 5개의 세숫대야 받침, 북쪽에 세수 대야 받침이 있었습니다 (왕상 7:27-39). 그 10개의 세수대야 받침에 각각 4개씩 바퀴가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은 양쪽으로 바퀴가 달린 마차처럼 보입니다. 그 받침들에는 그룹 천사와 사자와 소를 조각해 두었습니다 (왕상 1:29, 36)

땅의 성전에 조각된 것의 실상인 하늘의 움직이는 성전에 그룹 천사와 함께 바퀴들이 나타나는 것을 에스겔은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땅의 성전 한 곳에 가두어 져 있는 분이 아니라, 그룹 천사들을 타고서 온 세상을 다니시며 다스리는 분입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은 천사들을 통해 섭리 가운데 일하십니다. 우리에게 일이 잘 될 때나, 힘들 때나 하늘의 하나님이 천사들을 통해 이 땅을 다스리는 다스림을 알고서 위로 받읍시다.

민수기 9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늘의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 올라가면 행진하고 서면, 멈추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퀴들은 생물의 신의 지시를 따라 가기도 하고 올라가기도 하고 멈추기도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시된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말씀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나가기도 하고 멈추기도 합시다.

4. 궁창, 하나님의 보좌, “사람의 모양 같은 분”(22-27절)

천사들의 날개 위로 궁창이 나타납니다. 궁창은 창세기 1:6-8에서 하늘 위와 아래의 물을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영적 세계를 상징합니다. 그 궁창 위에 하나님의 보좌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보좌 위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27)이 나타났습니다. 허리 이상의 모습은 단 쇠 같습니다. 계시록 1:18에서 주석 같이 빛난 분,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룹 천사가 날개를 위로 ( 민-러-마알라, 11,22절)하면서 두 날개로 몸을 덮고 있는 것 (카사22절) 도 이 땅의 성막/성전의 지성소 안에 법궤 두껑에 조각된 두 천사가 날개를 위로하면서, 속죄소 (언약궤의 두껑)을 덮고 있는 것 (출 25:20)이 실제로 행동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그룹 천사가 “위쪽으로 덮는 것”은 성막을 덮는 네 겹의 천막 중 제일 바깥 바다 개의 가죽으로 웃 덮개 (민-러-마알라, 카사, 출 26:14)를 만든 것을 실제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속죄소와 성막은 모두 하늘에서 천사들이 하나님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 표시의 실제가 되신 하나님이 그 분의 실제의 궁궐을 가지고 에스겔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땅에서 제사장이 그 속옷으로 몸을 가리듯이 (카사, 출 28:4), 하늘의 그룹 천사들도 날개로 몸을 가리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비록 땅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하늘의 성전, 하늘의 하나님의 집에 대한 체험을 합니다.

포로기의 제사장 에스겔에게 앞으로 “사람의 모양으로” (빌 2:7) 이 땅에 성육신 하실 아들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앞으로 눈에 보이는 성전이 파괴된 후, 참 성전되신 아들 하나님이 이루실 성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땅의 성전의 원형이 되는 하늘의 성전의 그룹 천사들과 하늘의 보좌와 하늘의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28절, 에스겔은 사람과 같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믿고 복종할 일

에스겔이 환상을 보고, 또 사람과 같은 분, 아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한 것은 개인적인 경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에게 비전계시를 전하도록 주신 체험입니다. 그 절망의 포로기의 에스겔과 백성을 위해, 하나님은 하늘의 성전과 아들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주어 위로했습니다. 그들의 죄 때문에 심판받고 있지만, 그 모든 심판도 하나님이 섭리 가운데 일하심의 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다시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돌이켜 참 예배를 회복할 것입니다.

그 심판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에스겔은 부름을 받았습니다. 고난가운데서의 그의 사역은 하늘의 영광을 본 사람으로서 그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사역하는 것입니다.

그가 환상 가운데 보았던 사람과 같은 분, 하나님의 아들이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님을 통해 잉태되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죽기 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여 우리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부활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우편에 앉으십니다 (빌 2:8-11). 1장의 에스겔의 환상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를 바라 보고 경배합니다. 그 보좌에서 성령님을 교회에 보내 주셨고, 지금도 계속 성령님을 보내셔서 일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순간은 그 천사들을 통해 인도하시지만, 성령님은 더 가까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힘들수록, 우리 환경 가운데 능력으로 임재하시는 하늘의 그리스도를 향하여 엎드려 경배하며 찬양합시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땅의 성막과 성전은 사람의 종교경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그룹 천사의 호위를 받으며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삼위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을 구약 시대에는 성전을 통해서 했지만, 성전은 은혜의 수단이지 은혜 그 자체는 아닙니다. 하늘의 성전에 계신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이제는 말씀과 교회라는 은혜의 수단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성도들 한 명 한 명이 다 연결되어 그리스도의 은혜를 교회 안에서 맛보고, 또 각자에게 주신 은사로서 교회를 세웁니다. 교회에서 받는 예배를 귀히 여기고 형제 자매를 우리의 물질과 시간, 여러 은사로 섬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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