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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 [잘못 아는 구절 바로잡기23] 마16:19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 물질 풀면 하늘에서 부어준다?) 190 개의 새로운 답변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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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꿀같은 말씀이죠. 무슨 주식 하는 사람들이 기대주를 사듯이 헌금을 내면 부자로 만들어줄 복을 기다리는 것 처럼… 하지만 이 본문은 교회에 주신 권위를 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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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순 – 다국어 성경 Holy-Bible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번역비교] [유사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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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olybible.or.kr

Date Published: 11/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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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매는 것과 푸는 것’ 은 어떤 의미인가?

“매는 것과 푸는 것”의 개념은 마태복음 16:19에 나오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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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gotquestions.org

Date Published: 7/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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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림 …

(마 18:18, 개역)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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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rosslamb.tistory.com

Date Published: 4/23/2021

View: 5348

용서와 기도 응답(마태복음 18:15-20) – 다음블로그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받으신 예수님은 “내가 천국 열쇠를 내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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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3/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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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 한국컴퓨터선교회

주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 하나님의 자녀의 대열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매는 일 곧 정죄하는 일도 대단하지만, 푸는 일 곧 사죄하는 일은 더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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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cm.kr

Date Published: 3/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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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도 풀리리라 – 보스톤 한인교회

19절 말씀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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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cboston.org

Date Published: 8/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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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18-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 – Bible.com

… 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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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3/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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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신앙의 힘, 땅에서 매고 풀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풀리리라 …

1.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고 풀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풀리리라! 지난주 말씀에,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의 부활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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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ecumenian.com

Date Published: 3/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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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아는 구절 바로잡기23] 마16:19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 물질 풀면 하늘에서 부어준다?)
[잘못 아는 구절 바로잡기23] 마16:19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 물질 풀면 하늘에서 부어준다?)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 Author: 창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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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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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매는 것과 푸는 것’ 은 어떤 의미인가?

질문

성경에서 ‘매는 것과 푸는 것’ 은 어떤 의미인가?

답변

“매는 것과 푸는 것”의 개념은 마태복음 16:19에 나오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사도 베드로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며, 다른 사도들에게는 간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천국 열쇠를 소유하는 것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일반 권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베드로 자신도 천국 열쇠를 갖게 되며,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모든 신자들에게 하늘의 문을 여는 수단이자 불신자에게는 그 문을 닫는 수단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이런 과정이 나타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날의 설교 (사도행전 2:14-40)를 통해 처음으로 천국의 문을 열었습니다. “매다”와 “풀다”라는 표현은 어떤 것이 금지된 것이고 어떤 것이 허락된 것인지를 선언하는 유대인의 법적인 표현입니다.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선포하면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지속해야 했고, 주께서 가지고 계셨던 것과 똑같은 권세로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8:18을 보면, 교회 권징의 맥락에서 매고 푸는 것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있습니다. 사도들은 개인 신자들과 그들의 영원한 운명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주권과 권세를 남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권징을 위해서, 그리고 필요하다면 불순종하는 교회 지체를 출교하기 위해 권세를 사용하였습니다.마치 사도들이 땅에서 결정하는 것이 하늘에서도 그대로 이뤄질 것처럼,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특권을 받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사도로서의 사명을 감당해 가면서 하늘에서 세워진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도록 격려를 받았습니다. 사도들이 땅에서 어떤 것을 “맬” 때에 혹은 그것을 금지할 때에, 그들은 그 일과 관련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땅에서 어떤 것을 “풀” 때에 혹은 허락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그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6:19 와 18:18의 헬라어 원문의 구조를 보면 그 의미가 분명해 집니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그것이 하늘에서도 매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풀면, 그것이 하늘에서도 풀린 것이다” (마태복음 16:19, Young의 Literal Translation). 또는 확대성경 Amplified Bible이 번역한 것처럼,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금지하면, 부적절하고 불법적이라고 선언하면) 그것은 (이미) 하늘에서 매인 것이며, 무엇이든지 땅에서 너희가 풀면 (허용하고 적법하다고 선언하면) 그것은 (이미) 하늘에서 풀린 것이다.”예수님은 사도들이 지상에서 특별한 임무가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신약의 서신서에 기록된 것처럼, 그들의 권위있는 말씀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반영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교란시키는 사람들에 대하여 저주를 선포했을 때, 우리는 그 저주가 이미 하늘에서 선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1:8-9 참조).

용서와 기도 응답(마태복음 18:15-20)

용서와 기도 응답

(마음이 하나 되어야 기도가 응답 된다)

마태복음 18:15-20

천국 열쇠

기도 응답의 비결이 있습니다. 본문 18-19절을 보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는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매고 푼다는 말은 마태복음 16:19절에도 나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받으신 예수님은 “내가 천국 열쇠를 내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합니다.

‘열쇠’는 청지기로 임명된 자에게 주어짐으로 전권을 가지고 창고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세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장차 반석위에 세워질 주님의 교회와 관련해서 천국 열쇠를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이 천국 열쇠는 음부의 권세도 이길 수 없는 강력한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로마 카톨릭은 예수님께서 천국 열쇠를 베드로 한 사람에게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그의 후계자인 교황에게 그 권한이 계속 부여되고 있다는 주장합니다. 또 다른 주장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해서 천년 왕국이 오면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으로 세상을 통치한다고 합니다. 가장 타당한 해석은 이 신앙을 고백한 베드로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모든 신약의 성도들에게 천국 열쇠를 주겠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는 유대인도 이방인도 다 포함합니다.

그렇다면 천국 열쇠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당신의 주라는 사실을 깨닫고 믿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것을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매고 푸는 권세

매고 푸는 권세란 당시 랍비들의 용어 사용법에 의하면 ‘맨다’는 말은 ‘금지하여 불법임을 선포 한다’는 뜻이고, ‘푼다’는 말은 ‘허락하여 합법임을 선포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매고 푸는 일을 베드로의 절대적 권한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매고 푸는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바르게 깨닫고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성도가 받는 권세입니다.

예수님은 매고 푸는 천국 열쇠의 권세가 죄의 용서와 축복에 대해서도 적용되고 있음을 말씀합니다. 즉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매는 일은 금지하여 불법임을 선포하는 일이고, 푸는 일은 허락하여 합법임을 선포하는 일이 됩니다.

죄의 처리 과정

예수님은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형제의 죄를 처리하는 과정을 세 단계로 말씀합니다. 첫 번째는 죄를 범한 형제와 일대일 상대하여 권고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죄를 판단하고 정죄하려고 일대일로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려고 사랑으로 권고합니다. 만약 권고의 말을 들으면 형제를 얻게 됩니다. 아름다운 결과입니다.

그러나 만일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 번째로 두세 증인을 데리고 가야 합니다. 계속해서 용서와 사랑으로 권면합니다. 만일 두 세 증인의 말도 듣지 않으면 세 번째로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세 단계로 죄를 범한 형제를 용서하라는 것은 형제의 죄를 용서하되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사랑으로 접근할 것을 강조한다고 봅니다.

천국 열쇠는 음부의 권세를 이깁니다. 용서를 방해하는 권세는 음부의 권세입니다. 천국 열쇠의 권세를 믿는다면 용서를 방해하는 세력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믿는 우리에게 이 권세를 주었다면, 우리는 믿음으로 이 권세를 사용해야 합니다. 어떤 죄든지 이 권세를 믿고 나아가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의 교훈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 그렇다면 형제가 네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면 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책무를 수치로 나타내려는 것을 좋아합니다.

랍비들은 이웃이 범한 죄에 대해서는 3번만 용서하고 그 이상은 금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제시한 7번은 율법적 용서를 능가하는 베드로 자신의 관대함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곱 번뿐만 아니라 일곱 법을 일흔 번까지도 용서하라고 가르칩니다. 무한대로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용서의 비유

용서의 교훈을 하신 예수님은 용서의 비유를 말씀합니다. 천국은 그 종과 결산하려는 어떤 임금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임금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결산이란 인생 끝을 말합니다. 인생은 누구나 결산할 날이 옵니다. 결산한 결과 어떤 종은 일만 달란트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임금은 갚으라고 했습니다. 종은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갚을 수 없었습니다. 임금은 그 종의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으라고 했습니다. 망했습니다.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자기 때문에 아내와 자식까지 망하게 되었습니다. 절망이요, 큰 고통이었습니다.

종은 임금에게 엎드려 말합니다. 내게 참으로서 다 갚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지만 갚을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 주며 모든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팔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아내와 자식과 모든 소유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지옥에 떨어졌다가 천국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인 동료 한 사람을 만납니다. 만나자 마자 그는 그 동료의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합니다.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합니다.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겠습니다.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빚을 갚도록 감옥에 넣었습니다. 다른 동료들이 이 장면을 목격하고 임금에게 알립니다. 임금은 그를 불러다가 말합니다. “악한 종아 네가 나에게 빌기에 네 빚을 전부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느냐.”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겼습니다. 지옥의 고통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죄의 해결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나와 관계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매고 풀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내가 다른 형제에게 죄를 범할 수도 있고, 그 형제가 나에게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죄를 용서하는 방법은 동일합니다. 내가 다른 형제에게 죄를 범하면 그 사람이 나를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 형제가 나에게 죄를 범하면 내가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죄의 용서는 죄를 고백할 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기도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가 누구의 죄를 용서해 주기 전에 먼저 예수님께 용서 받은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테텔라스타이’, 다 이루었다. 죄의 갚을 다 갚았다고 선언했습니다. 내가 죄인이고, 내 죄를 예수 이름으로 고백하면 다 용서를 받습니다. 내가 힘으로 갚을 수 없는 죄의 값을 예수님의 피로 다 씻어주셨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처럼 용서를 받았습니다.

내가 정말 용서 받았다면 나도 누군가는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성도의 특권이요 직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국 열쇠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열쇠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내가 매면 매이고, 풀면 풀리는 절대 열쇠입니다.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죄라면 바로 이 열쇠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은 누구?

예수님은 19-20절에서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니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본문의 주제가 용서라면, 여기 나오는 두 세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왜 이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고, 왜 예수님은 그들 중에 함께 계십니까? 용서는 너와 나의 문제입니다. 때론 너와 우리들일 수 있습니다. 너와 나는 용서를 비는 사람과 용서를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 이름으로 모입니다. 왜 예수 이름으로 모입니까? 예수 안에서 죄 용서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를 믿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합니다. 적극적인 용서를 실천하는 장입니다.

특히 일만 달란트에서 보았듯이 임금의 일방적인 용서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일방적인 용서를 받은 사람의 마음에 용서에 대한 감사가 없으면 오히려 불행해 집니다. 용서를 받았다면 용서를 실천할 때 완전한 용서가 됩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이루어질 때에 매고 푸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때 이들이 합심하여 하나님께 구하는 일은 죄의 용서일 것이고, 용서는 더 큰 천국의 축복을 가져다줍니다. 용서는 마치 흥부전에서 제비가 날라다 준 박씨와 같아서 합심하여 영차영차 박을 쓸게 되면 하늘 축복이 쏟다져 내려올 것입니다.

마음의 중요성

마음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35절에서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같이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형제를 용서하는 마음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33절을 보면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고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4:32절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골로새서 3:12절에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고 했습니다.

기도 응답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죄의 용서가 가장 큰 용서입니다. 이 용서를 위해 기도하고, 용서가 실천된다면 예수님은 그 사람들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구하는 모든 것, 필요한 모든 것은 다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 응답을 받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사랑의 용서를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대림동 예일교회 이동섭 목사)

Korean Church of Boston

2015년 이전 설교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날짜 : 2009.07.15

예배명 : 주일예배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성경본문 : 마태복음 16:13-20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090712.wmv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audio_master/Sermon_20090712-0.mp3 세 친구가 배를 타고 항해를 하다가 큰 암초에 배가 부닥쳤습니다. 배는 가라 앉고 세 친구는 어느 섬에 간신히 닿았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6개월을 보냅니다. 하루는 한 친구가 바닷가에서 오래된 램프를 주었습니다. 램프를 열심히 닦았습니다. 갑자기 요정 지니(Genie)가 나타났습니다.

지니가 말합니다, “저를 풀어주어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세가지의 소원을 들어주겠습니다. 여러분이 세분이니 한 분에게 한 소원씩을 들어드리겠습니다.”

첫 친구가 말합니다. “너무 잘 됬네요. 저를 집으로 보내주세요. 저는 저의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답니다.”

순간 친구는 사라졌습니다. 다음 친구가 말합니다. “나의 아내와 자녀들이 보고 싶습니다. 나를 그들에게 보내주세요.”

그 친구도 사라졌습니다. 세번 째 친구 혼자 남아 있습니다. “나는 혼자 있으니 너무 외롭군요. 친구들이 그립습니다. 두 친구를 불러 주세요.”

그 이후의 일은 여러분들 상상에 맡깁니다. 제가 어릴 때 재미있게 보았던 TV 프로그램중 하나가 요정 지니입니다. 물론 기억나는 이야기는 없지만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은 확실합니다. 매 회마다 어려운 일들을 지니가 극적으로 풀어 가곤 하던 생각이 납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한국에까지 들어 왔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내면에 자신이 할수 없는 일을 누군가가 신비스럽게 이루어 가는 것을 보면서 대리만족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얼마 전에 이 지니 이야기를 읽었는데 요즘은 한국인들이 지니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나 궁금해서 ‘요정 지니’를 구글 검색해 보았습니다. 요정 지니의 이야기가 수없이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 신발도 ‘요정 지니’표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지니와 같이 신비한 존재를 그리워 하는 것은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터넷을 보면서 ‘지니가 삶의 중심이 되어 가고 있구나’ 느껴 보았습니다. 최고로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살지만 그 안에서 어찌할 바 몰라 발버둥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어느 웹사이트에서는 지니에게 보내는 소원이 올라와 있습니다. “나는 수학은 잘합니다. 하지만 영어를 못합니다. 영어를 잘하게 해주세요.”

그런데 우리 크리스챤도 매한 가지 아닐까요? 어떤 사람은 지니에게 소원을 말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뿐이지, 그 내면 세계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어느덧 스스로 아무런 힘도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의 운명도 좌우할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진정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지니에게 말하는 소원 정도를 원하시고 계실까요?오늘 본문말씀을 상고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크리스챤의 삶의 자세는 무엇인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유명한 베드로의 고백이 나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갑자기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고백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17, 18절 말씀입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는 원래 이름이 시몬이었는데 이 고백으로 인해서 ‘베드로’ 곧 반석이 됩니다. 베드로는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고백 하나로 인해서 갑자기 반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정신 없이 듣고 있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19절 말씀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을 하였더니 천국 열쇠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주님께서는 이 천국 열쇠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베드로는 두번 째 놀랍니다. 처음 자신이 반석이 된 것에 대해서 놀랬습니다. 자신이 역사의 중심이 된 사실에 대해서 놀란 것입니다. 이것만 해도 놀라운 일인데 두 번째 놀라운 말씀을 듣습니다. 이제는 하늘 역사의 중심 인물이 된 것입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하늘 역사의 중심 인물이 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기도하여야 합니다. 때로는 “영어를 잘 하고 싶습니다” 기도하여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지니에게 말하는 소원과 똑 같은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누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나의 손에 천국 열쇠가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천국 열쇠가 주어진 자들이 곧 세상 역사의 중심 인물들입니다. 하늘 역사의 중심 인물들입니다. 어떠한 내용의 기도를 드려도 이 사실을 잊으셔서는 안됩니다.

사실 그동안 세상 역사는 인간을 세상 역사 가장자리로 늘 몰아내었습니다. 결국 세상 역사의 중심 인물로 지니를 세워가게 한 사건들이 여럿 있습니다. 잠시 역사 공부 좀 해 볼까요? 대표적인 사건들을 말씀드리면, 첫번째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닌 것을 밝힌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혁명이 있습니다. 1500년도에 와서 인간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니 점점 지구에 사는 인간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생각이 스며들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을 세상 역사의 중심에서 몰아내는 첫번째 사건입니다. 물론 그것은 바른 과학적 발견이었긴 하지만….

두번째가 다윈의 진화론입니다. 인간은 원숭이에서 왔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만물의 영장으로 자부해 왔던 사람들은 원숭이의 사촌이 되어 버립니다. 우연 발생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도 나은 것이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려집니다. 그 후 창조론과 진화론은 늘 다투어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화론은 틀린다고 믿고 있지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세번째가 프로이드의 학설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삶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사실 인간의 행동은 자신이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것(무의식)의 자극에 지배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은 어떤 행동의 책임자가 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세계 역사의 책임자가 되겠습니까?

네번째가 DNA 곧 유전자입니다.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유전자 안에 인간의 운명이 다 담겨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유전자 안에 기록된대로 따라 간다는 것입니다. 현대과학의 최고봉이라고 할수 있는 DNA발견은 인간을 또 다시 역사의 중심 밖으로 몰아낸 것입니다.

이처럼 과학이 발달됨과 아울러 인간은 세상 역사의 주변으로 밀려 나갔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칼합니다. 인간이 과학을 발전시켰지만 과학은 인간들을 역사의 주변으로 몰아 갔습니다.

교우 여러분,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은 계속될 것입니다. 인간이 과학을 발전시켰고 또 계속 시키고 있지만,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은 도리어 역사의 주변으로 밀려 나갈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밀려 나갈 것입니다.

이와 같은 대표적인 예가 인터넷이죠. Terrence Sejnowski 라는 하원드 휴즈 의학연구소 신경 콤퓨터 신경과학자는 “인터넷은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다”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 글에서 2015년이 되면 인터넷이 인간의 뇌의 기능을 능가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마지막 여섯번째는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파생된 ‘부’ 곧 ‘돈의 힘’이 인간을 마지막으로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렸습니다. 돈이 사람보다 위에 있습니다. 더 큰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의 중심 역사의 중심은 ‘돈’이라는 것입니다.

이 여섯번의 과정을 거쳐서 인간은 세상 역사에서 밀려나게 된 것입니다. 세상 역사의 주역이 아니라 희생자가 되어 갔습니다. 이처럼 세상 역사에서 인간이 밀린 결과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지니를 찾게 된 것입니다. 역사의 중심에서 밀린 인간들은 역사의 새로운 중심을 만들은 것입니다. 지니입니다. 그리고 꿈에서 지니와 대화를 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지니와 대화를 나누며 잠시나마 대리만족을 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이 여섯 가지 사건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역사의 주변으로 몰아 간 것일까요? 그렇다면 역사를 거꾸로 돌려서 이 여섯 가지를 인간의 역사 가운데서 지워야 하지 않을까요?

당장 인터넷 사용부터 중지해야 하지 않을까요?

스스로 역사의 중심인 것을 인지하고 그처럼 사신 분이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만델라입니다.

2003년도말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인 만델라는 에이즈 치료와 예방을 위한 자선 콘서트인 ‘46664콘서트’를 앞두고 요하네스버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에이즈는 아프리카에서 펼쳐지고 있는 전례 없는 규모의 비극입니다. 에이즈는 더 이상 질병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입니다. 세상을 위해 우리는 지금 행동을 해야 합니다. 자금을 모아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들을 돕고 경각심을 일깨워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의 확산을 예방해야 합니다. ‘46664’는 제가 모번 섬의 감옥에서 18년을 보내는 동안에 사용했던 수감번호였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숫자로만 인식됐습니다. 오늘날 에이즈에 감염된 수백만 명의 사람들도 숫자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그들 역시 평생 동안 수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제 수감번호였던 ‘46664’를 이 캠페인에 붙인 이유입니다.”

이 고백을 통해 만델라의 놀라운 통찰력을 보게 됩니다. 만델라는 세상 문화는 번호문화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세상은 모든 것이 번호 곧 숫자를 붙이고 숫자가 큰 사람들이 작은 사람의 인권을 유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46664콘서트’를 연 것입니다. 그런데 ‘46664’는 자신이 감옥살이 할 때의 번호였다는 것입니다. 에이즈 치료와 예방을 위한 콘서트 이름에 자신의 죄수 번호를 붙인 것은 놀라운 통찰력이 있는 것입니다. 번호를 메기기에 바쁜 세상 문화는 에이즈 환자들을 번호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델라는 죄수 생활할 때는 18년간 이름없이 번호로 살았지만 그는 자신이 역사의 중심에 있는 자라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백인들이 흑인들을 숫자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역사의 중심 인물이라는 확신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숫자와 싸웠고 이겼습니다. 드디어 그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명실공히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숫자화시키고 있는 세상문화와 새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델라의 관점에서 조금 전에 열거해 드린 여섯 가지 사건을 생각해 보면, 인간을 역사의 중심에서 몰아낸 사건들은 모두 인간을 번호화했던 사건들입니다.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은 우주의 항성들에게 번호를 매기기 시작합니다. 지구는 가면 갈수록 작은 번호를 받게 됩니다. 진화론도 어떻게 보면 번호매김입니다. 모든 동물이 아메바로부터 왔습니다. 아메바가 1번입니다. 한참 뒤에 원숭이가 있고 그 다음이 인간입니다. 특히 DNA는 우리 인간을 숫자로 풀이하기 시작한 구체적인 사건입니다. 인간의 모든 것이 유전자라는 번호 안에 다 입력이 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은 인간을 도메인(domain) 번호로 만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돈은 정말로 숫자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를 나누는 것은 단지 숫자입니다.

인간의 삶은 어떻게 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숫자로 시작했다가 숫자로 마칩니다. 특히 보스톤에 살게 되면 더 그렇습니다.

지난번 한국과 호주를 다녀 온 후 교회에 왔더니 어느 레드삭스 팬(Red Sox fan)이 저에게 하는 말이, “목사님이 보스톤에 안 계시니 레드삭스가 계속 이겼습니다.” 늘 숫자 속에 살아 갑니다. 사실 저도 요즘 밤10시 넘어 집에 들어 오면 레드삭스가 어떻게 됬나 TV를 켜 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숫자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큰 고민이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이미 숫자 없이는 살수가 없는 삶을 사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숫자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숫자입니다. 숫자가 늘 우리에게 잠시 동안 기쁨을 주지만 많은 시간 고통과 눈물을 안겨다 줍니다. 이처럼 숫자 안에 살면서 어떻게 숫자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를 역사의 주변으로 밀어 낸 이 여섯 가지 사건을 뒤엎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순응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섯불리 덤볏다가는 너 죽고 나 죽는 격이 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절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말씀은 늘 이러한 가운데서 우리에게 시원한 해답을 주곤 하였습니다.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 말씀을 좀 더 잘 풀이해 보아야겠습니다. 그러면 과연 땅에서 맨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또 푼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땅에서 요술방망이를 두드리면 하늘에서 무언가 뚝 떨어지는 것인냥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가 군인시절 군인 교회를 다녔는데 설날인가 윷놀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윷을 던지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예수이름으로.” 얼마나 윷놀이에서 이기길 원했으면 그렇게 합니까? 예수 이름을 요술 방망이로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그래도 윷이나 모가 나오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분명히 천국 열쇠는 요술 방망이가 아닙니다. 이럴 때 주석가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딱딱한 말씀은 생략합니다. 신학적으로 ‘매고 푼다’는 것은 율법을 해석하는 권위를 말한다고 합니다. 곧 사람의 죄를 매고 푸는 권위가 있다고 신학자들은 해석합니다. 죄를 매고 푸는 권위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죄를 매고 푸는 권위는 예수님의 권위인데 이 권위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자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보면 하늘 역사의 주인공들은 천국 열쇠를 소유한 자들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면 천국 열쇠는 무엇이죠 아니 누구를 위한 열쇠이죠? 이웃을 위한 열쇠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이웃의 영혼을 위한 열쇠입니다.

곧 이웃의 영혼을 생각할 때 우리는 숫자의 노예된 삶에서 해방됩니다. 이 때 하늘문을 여는 자가 되어 갑니다. 하늘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갑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의 고민 거리는 풀렸습니다. 말씀 드렸던 6가지 역사적 사건이 우리를 역사의 주변으로 몰아 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천국 열쇠를 포기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 있었습니다. 6가지 역사적 사건은 하등 천국 열쇠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보는 눈을 잃은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역사의 주변으로 떨어뜨린 것입니다. 지니에게 소원을 말하는 삶을 살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섯가지 말씀드린 문화의 발전 단계가 필요합니다. 물론 진화론은 문제가 있습니다만, 그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문화의 발전이 또 이루어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발전이 생겨나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주인공의 삶을 늘 살수 있습니다. 이웃의 영혼을 사랑하는 삶을 산다면 말입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는 자가 천국 열쇠의 소유자인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하늘 역사의 주인공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 역사의 주인공은 거창한 삶의 주인공들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권위자가 아닙니다. 큰 숫자의 사람이 아닙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천국 열쇠의 소유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숫자의 개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함을 늘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부르클라인의 38%가 유대인입니다. 물론 유대인들 거의 예수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이 숫자에 얼마나 밝은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이들이 마치 세상역사의 중심된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감히 말씀드립니다. 이들을 위한 천국열쇠를 우리가 갖고 있습니다. 그 천국 열쇠는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전할 때 이들은 언젠가 예수를 믿고야 말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바로 천국 열쇠를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역사의 주인공들입니다.

교우 여러분,

역사의 주변에 산다고 생각하십니까? 한 영혼을 사랑하십시요. 역사의 중심부의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온 세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들의 한 영혼을 사랑하십시요. 함께 하늘 역사의 주인공의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작은 시골 소녀이지만 자신이 역사의 중심임을 알고 있었던 프랑스의 잔 다르크가 있습니다. 잔 다르크가 프랑스군을 이끌며 영국군에 맞서 싸울 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17세였습니다. 어느 날, 도시를 향해 진군하던 프랑스 군대는 저 멀리 수만명의 영국 병사가 언덕마다 장벽을 이루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잔 다르크는 “지금 바로 저들을 무찔러야 합니다” 라고 지휘관에게 말했습니다. 잔 다르크는 숙련된 전사와 맞서 이번 전투를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으며 이런 열정과 대담함 앞에서 지휘관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어찌됐든 잔 다르크는 프랑스의 오합지졸 군대를 이끄는 시골 소녀일뿐이었습니다. 잔 다르크가 말했습니다.

“나는 저 장벽의 중심부를 칠 겁니다.”

“네가 저들 속으로 들어가더라도 누구 하나 네 뒤를 따르지 않을 거다.”

“난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을 겁니다.”

잔 다르크가 단호하게 대답했고, 이 어린 소녀의 확신이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잔 다르크는 자신이 역사의 중심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의 쟌다르크는 누구일까요? 한 영혼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을 위해 천국열쇠를 사용하는 자들입니다. 브루클라인은 잔다르크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보스톤은 잔다르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웃은 잔다르크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고백하십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This entry was posted in 2015년 이전 설교 . Bookmark the permalink ← Older posts No. Title Writer Date 291 아이의 손에 이끌리어 admin 2015.05.03 290 안식의 기쁨 admin 2015.04.26 289 나를 만져보라 admin 2015.04.12 288 갈릴리로 가라 admin 2015.04.05 287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주옵소서 admin 2015.03.29 286 그를 기억하리라 admin 2015.03.15 285 나는 내 양을 알고 admin 2015.03.08 284 나의 친구라 admin 2015.03.01 283 은혜를 입은 자 admin 2015.02.08 282 푯대를 향하여 달려 가노라 admin 2015.02.01 < Prev 1 2 3 4 5 6 7 8 9 10 30 ... Next >

마태복음 18:18-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복음 18:18-20 KRV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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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신앙의 힘, 땅에서 매고 풀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풀리리라!(왕하 9:14-26; 딤후 4:1-8; 마 16:13-20)

1.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고 풀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풀리리라!

지난주 말씀에,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 때, 부활의 모습이나, 부활의 때나, 부활 사실 여부 등이 아니라, 그저 그 일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에서 베드로도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죽음의 종교가 아니라, 생명의 종교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처럼 죽음 이후를 묻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현재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아주 현실적인 종교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죽음이라는 음부의 권세가 살아있는 부활 신앙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이러한 부활 신앙의 파워, 곧 힘을 보여줍니다. 먼저 복음서 말씀은 부활 신앙을 가진 이들이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거나 풀면, 하늘에서도 매고 풀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매고 푸는 것일까요? 구약 말씀과 서신서 말씀이 그 매는 것과 푸는 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소개합니다. 바로 ‘공의와 정의의 매듭’을 매는 것이며 ‘진리와 사랑을 만인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먼저 구약 말씀은 불의한 이스라엘의 왕 아합과 그의 부인인 이세벨을 무너뜨린 예후 혁명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예후가 아합 왕의 아들인 요람 왕을 피살하고, 이세벨을 심판하는 내용입니다. 또한 아합 왕의 딸이자 유다 여호람 왕의 부인인 아달랴의 아들, 곧 유다의 아하시야 왕의 죽음도 소개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던, 예후를 통한 오므리 왕가의 멸종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땅과 하늘에서 매듭지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서신서 말씀은 이렇게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시고 그의 나라가 임할 것이니, 부활 신앙을 가진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며 맡은 바 사명인 그 직무를 다하라고 권면합니다. 이것은 푸는 것이죠? 진리와 사랑으로 부활 신앙을 천하 만민에게 베푸는 것, 곧 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 신앙 공의와 정의, 진리와 사랑을 땅에서 매고 푸는 힘입니다. 그리하면 하늘에서도 매고 풀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말에도 “지성이면 감천(至誠感天)”이라는 말이 있죠? 물론 여기 ‘지(至)’자는 ‘이를 지’자로 땅 ‘지(地)’는 아닙니다만, 땅의 지극한 정성이 하늘을 감동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땅과 하늘이, 하늘과 땅이 소크라테스-플라톤 철학처럼 이원론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 신앙으로 묶여 있는 것입니다.

복음서 말씀부터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볼까요?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3)”라고 물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의 그 유명한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4-17)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 혹은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 중 한 분이 아니라, 그리스도(메시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베드로에게 알려주신 분은 “사람(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공동번역)”라고 말씀하십니다. 땅에서 매고 풀면 하늘에서 매이고 풀릴 것이지만, 역으로 하늘에서 매도, 땅에서 매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땅과 하늘이 메이는 장소에 교회가 세워집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신앙을 가진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 천국의 열쇠를 들고 있는 베드로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마 16:18-20)

이렇게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이들, 오늘 말씀의 맥락에서는 부활 신앙을 가진 이들은 땅과 하늘을 매는 장소인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이 땅에서 매고 푸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 신앙의 힘입니다. 그리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신다고 합니다. 지난주 말씀처럼 받은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함께 연대하고 역할 분담하면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며 새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땅에서 매고 푸는 것에 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먼저 ‘매기’입니다.

2. 매기: 나봇의 피와 그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오늘 구약 본문 열왕기하 9장 말씀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제10대 왕 예후에 관한 기록입니다. 예후는 아람과의 전쟁에서 다치고 치료를 받고 있던 요람(여호람)왕에 대항하여 군사혁명을 일으켜 왕권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이후 아합의 혈통인 유다 왕 아하시야와 아합의 부인인 이세벨 역시 차례로 제거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공동번역이 말씀을 이해하기 쉽게 잘 번역했기에 공동번역으로 보겠습니다(이름과 지명은 개역개정을 따릅니다).

“님시의 손자이며 여호사밧의 아들인 예후는 요람을 뒤엎을 계획을 꾸몄다. 마침 요람이 이스라엘 전군을 이끌고 시리아 왕 하사엘을 맞아 길르앗라못을 지키려고 시리아군과 싸우다가 상처를 입고 이스르엘에 돌아와 치료를 받고 있을 때였다. ‘이것이 그대들의 소원이라면, 아무도 이 성에서 빠져나가 이스르엘에 연통하러 가지 못 하게 하시오.’ 예후는 동료 장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나서 자기의 병거를 타고 곧장 이스르엘로 달렸다. 그때 이스르엘에는 요람이 앓아누워 있었고 마침 유다 왕 아하사야가 문병차 와 있었다.”(왕하 9:14-15)

말씀에는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였다고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아합 집에 대한 심판을 위하여 미리부터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곧 예후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 아합의 집안을 멸망시키라고 한 것이죠? 그런데 아합의 집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엘리야 이후 수십 년 동안 연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아합의 회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심판을 연기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심판은 엘리야의 후계자 엘리사 때에 성취됩니다(왕상 19:15-17).

말씀을 찾아볼까요?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낮춤, 공동번역)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왕상 21:29).” 이렇게 악인의 회개도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는 것입니다. 아무튼 다시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자기의 병거를 타고 곧장 이스르엘로 달렸다. 그때 이스르엘에는 요람이 앓아누워 있었고 마침 유다 왕 아하시야가 문병차 와 있었다. 이스르엘의 망대에 서 있던 보초가 예후의 부대가 오는 것을 보고 ‘웬 부대가 오고 있습니다.’하고 보고하자, 요람은 ‘기마병을 하나 보내어 나가서 만나 아군인지 알아 오게 하여라.’ 하고 지시하였다.”(왕하 9:16-17)

예후의 부대가 요람을 잡으러 갔을 때, 요람은 그들이 적인지 아군인지 살펴보라고 합니다. 따라서 기마병 하나가 예후를 만나 묻습니다.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가서 만나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물러나라 하니라. 파수꾼이 전하여 이르되, 사자가 그들에게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하는지라. 왕은 다시 기마병 하나를 보냈다. 그도 그들을 만나 물었다. ‘어명이오. 무슨 일이 있소?’ 예후가 대답하였다. ‘무슨 일이 있건 말건, 네가 무슨 상관이냐? 내 뒤나 따라오너라.’ 그러자 보초가 또 보고하였다. ‘간 자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말을 미친 듯이 몰아오는 품이 님시의 아들 예후 같습니다.”(왕하 9:18-20)

전령인 기마병을 두 번이나 보냈지만, 돌아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후의 뒤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예후의 모습이 보입니다. 말을 미친 듯이 몰아오는 자세로 보아 예후 같다고 보초가 보고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미치게 말을 모는 것을 통해 예후의 급한 성격을 볼 수 있지만, 또한 하나님의 심판이 급속도로 다가온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요람은 병거를 준비하고 예후를 맞으러 나갑니다.

“이 말을 듣고 요람은 당장 병거를 준비하라고 지시하였다. 병거가 준비되자,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는 각기 자기 병거를 타고 예후를 만나러 나갔다. 그들은 이스르엘 나봇의 땅에서 예후를 만났다. 요람이 예후를 만나자마자 물었다. ‘예후 장군, 잘 되어가오?’” (왕하 9:21-22a)

아마도 요람은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인 예후를 만나 아람과의 전쟁 상황을 들으려고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후는 요람을 꾸짖습니다. “네 어미 이세벨이 우상을 섬기며 음란을 피우고 밤낮으로 마술이나 일삼고 있는데 잘 되어가느냐가 다 무슨 소리냐?(왕하 9:22b)” 요람은 깜짝 놀랍니다. 드디어 반역을 눈치챈 요람은 도망치며 아하시야 왕에게 외칩니다.

▲ 요람 왕에게 화살을 쏘는 예후

“요람은 병거를 돌려 도망치며 아하시야 왕에게 ‘아하시야 왕, 반역이오.’ 하고 소리쳤다. 예후는 화살을 메겨 요람의 등을 겨누고 쏘았다. 화살은 그의 가슴을 뚫었다. 그가 병거 바닥에 거꾸러지자, 예후는 요람의 부관 빗갈에게 말하였다. ‘그를 끌어내어 이스르엘 나봇의 땅에 내던져라. 그대와 내가 요람의 아비 아합의 뒤에 서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한 병거를 타고 다닐 때 야훼께서 그에게 내리신 선고를 잊지 않았겠지. <나 야훼가 선언한다. 나는 지난날 나봇과 그의 아들들이 억울한 피를 흘리는 것을 보았다. 내가 바로 이 밭에서 원수를 갚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하시지 않았느냐?’ 그래서 그는 요람의 시체를 끌어내어 그곳에 던졌다. 이렇게 야훼의 말씀이 이루어졌다.”(왕하 9:23-26)

▲ 고대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

이렇게 요람은 예후의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 예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나봇에 관한 말씀이죠. 나봇의 포도원에 사건은 잘 아시다시피, 아합왕 때의 일입니다. 아합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갖고자 하여 그에게 팔라고 하였으나, 나봇은 “하나님이 주신 조상의 기업을 팔 수 없다는 율법에 따라, 팔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거절합니다. 이에 실망한 아합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던 교활한 이방 여인이자 아합의 아내인 이세벨이 계략을 꾸밉니다. 불량자 두 사람에게 나봇을 하나님과 왕을 저주한 자로 거짓 증언을 하게 하였습니다. 결국 나봇을 돌로 쳐 죽이고 강제로 그의 포도원을 빼앗았습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에도 나왔듯이 나봇과 그 아들들의 억울한 피를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시고, 나봇이 피를 흘린 바로 이곳에서 아합 후손들의 피를 흘리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엘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의 악한 행위에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합의 집안이 어떻게 멸망할 것인가에 대한 무서운 예언을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왕상 21:21).” 또한 이세벨이 어떻게 죽임을 당할 것인지도 예언하였습니다. “이세벨에 대하여도 여호와께서도 말씀하여 가라사대, 개들이 이스르엘 성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찌라(왕상 21:23).”

자, 그렇다면 이제 아합에 속한 남자는 한 명만 남았습니다. 바로 유다 왕 아하시야입니다. 그는 아합의 외손자입니다. 아하시야는 요람이 화살 맞아 죽는 것을 보고 급히 도망갑니다. 말씀을 볼까요? “유다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동산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쫓아가며 이르되, 저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저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왕하 9:27).”

므깃도에서 죽습니다. 므깃도(히브리어)는 잘 아시다시피, 신약 시대에서 아마겟돈(헬라어)으로 불립니다. 여기서 요시야 황도 전사하죠? 유다 왕들의 무덤입니다. 따라서 최후의 전쟁이 아마겟돈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생각한 것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마지막 남은 아합의 자손이 죽임을 당합니다. 불의했던 아합에 속한 모든 남자와 이방 여인이며 우상 숭배자였던 이세벨이 죽어, 하나님의 공의가 예후를 통해 땅에서 매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후는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합의 딸인 아달랴는 살아남았습니다. 아달랴는 아들 아하시야 왕이 죽자, 손자들 가운데 하나가 왕위를 계승할 것을 알고, 친손자들을 다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유다의 여왕이 됩니다. 다만 요아스만 살아남습니다. 이렇게 유다는 정치적 소용돌이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은 예후 혁명이 완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땅에서 제대로 매야 하늘에서도 제대로 매일 것입니다.

3. 풀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두 번째로 ‘풀기’에 관해 살펴볼까요? 풀기는 진리와 사랑으로 푼다고 말씀드렸는데,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서신서 본문 말씀은 바울의 목회서신입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 쓴 것으로,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고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씁니다. 특별히 본문 말씀에서 바울은 복음 전도자는 항상 최후 심판을 염두에 두고, 늘 언제나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 전파의 사명을 완수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후는 것이죠. 말씀을 볼까요?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공동번역, 꾸며낸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1-4)

진리의 말씀, 사랑의 말씀을 전파해야 하는데, 이러한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따르는 이들이 생겨 허탕한 이야기, 곧 꾸며낸 이야기를 따르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부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모든 일에 신중하여 전도자의 직무를 다하라고 권면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5-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부활 신앙을 가진 이들은 이 땅에서 세상과의 영적 전쟁에서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의의 면류관이 하늘에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은 힘을 주십니다.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곧 부활 신앙을 가진 모든 이에게 하나님께서는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도시・농어촌선교주일입니다. 도시와 농어촌 모든 지역이 부활 신앙으로 땅에서 제대로 매고, 또 제대로 풀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구현되며 진리와 사랑이 가득 찬 세상을 만들어가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부활 신앙의 힘을 제대로 깨닫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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