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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장 설교 | [하루 한 장] 창세기6장_방주를 만들되 99 개의 새로운 답변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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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4일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방주를 만들되\” (창세기 6장)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창세기 6장부터 9장까지는 대홍수사건입니다
6장은 그 중에서도 왜 홍수가 일어나서
모든 인간을 심판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표현된 셋의 후손은
땅의 딸들이라고 표현된 가인의 후손을
닥치는대로 자기의 아내를 삼으면서
하나님이 지으신 가정의 원리의 깼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은 계속해서 부패해지고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 남을 죽이고 빼앗는
포악함이 온 세상을 가득 채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대홍수를 계획하시고
방주를 지어 인류를 보존할 사람으로
노아를 선택하여 불러 주십니다
노아도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했지만
에녹처럼 승천하지 않은 이유는 노아에게는
방주를 지을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똑같이 받아도 우리의 환경은
각자의 모습으로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처한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진심으로 주를 따르는 예배자로 살아갑시다.
=====================================
* 부산 성민교회 : 부산시 사하구 승학로 201(괴정동).
http://sungminch.com/
성민교회 홈페이지에 오시면 더 많은 성민가족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홍융희 목사의 설교 mp3모음 USB구입은 교회 사무실로 전화 문의 바랍니다.
신구약 66권, 1,189장 전장 강해가 담긴 [하루 한 장] 완성판 USB가 나와 있습니다.
분홍목사의 사역 신청 문의도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051-204-0691 (담당 : 성민교회 박지선 간사)
*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성경말씀을 깨닫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하루 한 장]과 여러 영상들을 통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확인해 보세요.
http://www.youtube.com/c/홍융희
피드백은 댓글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용이 많거나 개인적인 내용을 전하려면 아래의 메일이나 전화로 연락주세요.
[email protected]
010-2741-0734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분홍목사 홍융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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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장 – 사람의 죄악 – 새벽기도 설교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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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창세기6장_방주를 만들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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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창세기 6장 설교

  • Author: 홍융희
  • Views: 조회수 13,69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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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5. 11. 13.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wxIKCDGzyro

창세기 6장 – 사람의 죄악 – 새벽기도 설교

창세기 6-9장에서는 천지창조 이후 가장 큰 사건이었던 노아의 방주와 대홍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 본문은 대홍수가 일어난 직접적인 원인이 된 인류의 타락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세상은 하나님을 떠난 가인의 후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경건했던 셋의 후손들까지도 점차 가인의 후손들과 함께 어울림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1. 먼저,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함께 있었다고 말씀합니다(2절).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하나님께서 가인이 죽인 아벨을 대신해서 인류를 구속할 ‘여자의 후손’의 씨로 주신 셋의 후손들로, 하나님을 경외하던 경건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사람의 딸’이란 하나님을 떠나감으로써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던 불경건한 가인의 후손들을 가리킵니다.

셋의 후손들과 가인의 후손들은 처음부터 그 신분과 삶의 양식이 전혀 달랐지만, 셋의 후손들이 가인의 후손들의 쾌락적인 삶에 서서히 동화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이라는 표현은 셋 후손들과 불경건한 가인의 후손들을 각각 나타내는 문학적 표현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삼았다는 것은 경건한 셋의 후손들이 타락하여 불경건한 가인의 후손들과 교류하고 연합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고 가인의 후손들처럼 부패한 육체의 욕망을 따라 세속적인 삶을 살았음을 비유적으로 지적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라고 한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3절).

또한, ‘사람이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하나님께서 보셨다’고 말씀합니다(5절).

결국 셋의 후손들까지도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일말의 희망도 없이 온통 죄로 가득 차게 된 것입니다.

2.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로 가득한 이 세상을 즉각 심판하시지 않고 120년 동안을 유보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무엇때문에 이처럼 타락한 인류를 즉각 심판하시지 않고, 심판을 120년 동안이나 유보하셨을까요?

그것은 인류가 회개하고 다시 돌아오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묵과하시지 않는 공의로우신 분이시지만 동시에 죄인이 진실로 회개하고 돌이키면 용서하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홍수로 인류를 심판하시기까지 충분한 시간을 주셨던 것입니다.

무려 120년, 인간들에게 있어 이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회개하지 않음으로써 멸망당하고 맙니다.

여러분, 이처럼 죄인이 멸망당하는 것은 회개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충분한 회개의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다만 죄인들이 자신들의 욕심과 쾌락을 포기하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음으로써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고 회개의 기회를 상실함으로써 멸망하는 것입니다.(히 12:17)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회개의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회개의 기간으로 주신 이때에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홍수 심판에서 구원받은 노아와 같이 우리 또한 마지막 대심판에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영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세상에서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성도들은 셋의 영적자손들로서, 하나님을 모르고 경외하지 않는 불신자들은 가인의 영적자손들로서,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세상에서는 영에 속한 세력과 육에 속한 세력 간에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두 세력은 서로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결코 중단 없는 영적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복음을 증거하여 사람들을 주 앞으로 인도하는 것은 영적 전투에서의 승리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확대해 나가는 과정에 속합니다.

반면 성도들이 불신자들의 박해와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 믿음을 버리는 것은 영적 전투에서의 패배이며 결과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축소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전쟁에서 패배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멸망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영적 전투에서의 패배는 영원한 멸망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 미혹된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들과 함께 멸망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와 같이 우리도 영적 전투에서 패배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히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전투에서 패배하지 않도록 항상 영적 경계를 철저히 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죽기까지 악의 세력과 싸워 믿음을 지킴으로써 우리 앞에 놓인 영적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야 합니다(엡 6:10-20).

3. 하나님은 땅 위에 사람을 지으신 사실에 대하여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셨습니다(6절).

이처럼 하나님께서 한탄하시고 근심하신 것은 사람의 죄 때문입니다(5절).

그런데 인간의 죄가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이 큰 잘못을 범하여 그들을 여러분의 손으로 징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당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근심’이 바로 그러한 고통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죄를 범함으로 우리의 참 부모가 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시켜서는 안 될 것입니다(엡 4:30).

또한 설령 연약하여 실수로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즉각적인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용서를 구함으로써 하나님의 근심을 풀어드려야 할 것입니다.

4.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8절).

이것은 죄악이 가득했던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대홍수로 멸망하는 가운데서도 노아가 구원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노아는 극도로 부패하고 타락한 세태 속에서도 여호와 신앙과 도덕적 의로움을 가짐으로써 하나님께 ‘당대에 완전한 자’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9절).

이 사실만 본다면 노아는 그의 행위로 구원받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아는 결코 그의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죄 아래 태어난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여 자기 스스로는 결코 하나님을 알고 섬길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노아가 타락하고 부패한 세태 속에서도 신앙을 갖고 도덕적으로도 의로움을 보일 수 있었던 것 역시 하나님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를 베푸신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만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날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게 죄 아래 태어난 우리 또한, 하나님을 알고 섬기며 그의 말씀에 따라 선을 행함으로써 구원을 받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 비해 본래부터 더 의롭거나 잘났기 때문은 절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에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구원받은 사실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택하시고 은혜로 구원하신 하나님만을 자랑하고 그의 의를 찬양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때의 세상의 모습이 바로 노아 때의 세상의 모습과 같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4:37-39).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가 과연 노아의 때에 비해 더 의롭고 경건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은 말세의 끝에 와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후 심판은 매우 임박해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세상 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더욱 경건한 삶을 통해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구별된 삶을 살 때만이 노아 대홍수 당시 구원받은 노아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최후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창세기 6장 주일 설교 말씀] 은혜를 입은 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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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6장 주일 설교 말씀 중에서 은혜를 입은 노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은혜를 입은 노아 <창세기 6장>

성경에 가르치기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창6:9)”고 했다. 그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은 자였다. 이러한 노아에 대하여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해 보자.

1. 노아의 가문

우리가 이제 노아의 가문과 아브라함의 가문을 비교할 때 조금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아브라함은 우상을 섬기는 불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났고 그런 가운데서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노아는 다르다. 경건한 조상들 밑에 태어난 믿음의 가정의 아들이다. 노아의 증조부는 유명한 믿음의 사람 에녹이었다. 에녹은 65세 때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또 그의 나이 252세 때에 (창5:21과 25절을 비교해 보라) 손자 라멕을 보았다. 에녹이 승천할 때 손자 라멕의 연령은 113세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므두셀라와 라멕은 에녹이 어떻게 경건한 생활을 하며 하나님과 동행했던 가를 친히 자라난 아들과 손자였음이 분명하다. 바로 그러한 므두셀라는 노아의 할아버지였고 또 그러한 라멕은 근의 아버지였음을 생각해 본다면 노아는 얼마나 경건한 가정의 아들이었는가를 상상할 수 있겠다.

우리가 창세기 5:29를 깊이 생각해 볼 때 노아의 아버지 라멕의 믿음을 넉넉히 알 수 있다. “라멕은 182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창5:29)

이 본문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로는 그의 탄식이다. 우리가 이렇게 수고로이 일하며 고생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를 받은 때문이라고 그는 탄식했다. 우리는 이러한 그의 탄식에서 그의 슬픔이 무엇이었던 가를 상상케 된다. 우리 인생들은 다 범죄 한 것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들이 되었다고 그는 탄식하며 슬퍼했던 것임을 본다.

이러한 탄식, 그러한 슬픔이야말로 곧 그의 믿음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본다. 우리는 다 우리의 허물과 죄로 인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슬퍼하며 탄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구원의 길에 가까운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내가 이렇게 고생해야 하는 것은 나의 죗값이라고 생각하는 그 양심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라멕이 그러한 슬픔과 탄식만으로 끝났다면 그것을 가리켜 참 믿음이라고 할 수 없겠다.

라멕은 그저 슬픔과 탄식만으로 끝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저주받은 인간들이라도 장차 하나님의 위로와 안식을 받을 길이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이러한 그의 믿음은 그가 지은 그의 아들 노아의 이름에 잘 나타나 있다.

구약시대에는 그 아들의 이름을 작명함에 있어서 그 아버지의 믿음과 소망이 그 아들의 이름에 표현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그러므로 노아의 이름에서 그 아버지 라멕의 믿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결코 무리한 일이 아니다.

창세기 5:29를 읽어 보라.

“라멕은 아들을 낳고….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

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는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노아라는 히브리 말의 원 뜻은 안식과 위로란 말이다.

라멕은 참 안식과 위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믿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들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으면서 그 아들을 통하여 참 안식과 위로를 바라보고 기뻐하며 감사했다. 그런 의미에서 노아는 장차 나타날 그리스도의 예표로 보아 좋다. 이러한 그 아버지의 믿음은 노아에게도 깊은 감화를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말라기 2:15 참고)

2. 노아 시대의 환경

노아 시대는 심히 부패한 시대였다. 창6:2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했음을 본다.

여기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천사를 가리킨 것이 아니다. 하늘의 천사들을 결혼하지 않는다. 그것은 셋의 후손들을 의미한다. 아벨의 거룩한 계대를 이어줘야 할 셋의 후손들도 가인의 무리와 연합하여 어떻게 부패해진 것을 위의 성경은 보여준다. 이렇게 가인의 후손도 셋의 후손도 다 같이 타락하게 됐다.

창6:5, 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하셨는데 이처럼 노아 시대는 죄악이 관영한 시대요, 사람의 마음이 악하여 하나님을 탄식케 하여 근심케 한 시대였다. 사람의 마음 악함과 세상의 죄악은 하나님을 그처럼 슬프게 했고 탄식케 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과 사람을 처음 창조하신 때는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좋아하셨다는 말씀이 창세기 1장에서 7번이나 나온다 (1:4, 10, 18, 25, 31).

그러나 이제는 반대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시던 것을 보시고 슬퍼하셨다. 죄악이란 이처럼 흉악한 것이다. 노아 시대는 그러한 죄악이 세상에 차고 넘쳤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암흑한 때이기에 노아는 하늘의 별같이 더욱 빛나게 되었다. 모든 백성들이 다 하나님을 탄식케 하는 그러한 시대에 오직 노아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악한 시대를 슬퍼하시며 탄식하심이 사실이었으나 의인 노아, 그 한 사람으로 인하여 그는 지극히 기쁘셨다. 그로 말미암아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으셨다. 억만 인이 죄악을 범한다 할지라도 오직 죄악을 이기며 의를 행하는 한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존귀함을 우리는 노아에게서 배워야 한다.(참고, 예레미야5:1) 그러면 노아는 어떻게 그처럼 의로운 자가 될 수 있었을까? 그 대답은 오직 창세기 6:8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그가 그처럼 의롭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때문이었다. 그가 큰 믿음을 지킨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그가 구원을 얻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죄악이 관영한 시대에 홀로 의롭게 산다는 것은 큰 고통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불의의 물결이 홍수 같이 밀려드는 그런 때에 홀로 그것을 경건히 살아간다는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그것을 감당했다. 그것이 결코 노아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때문이었다. 노아가 마침내 심판을 이기고 구원을 얻은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가 아니었더라면 그렇게 큰 믿음을 지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창세기의 저자인 모세는 노아의 그 승리의 생애를 기록하려 할 때에 먼저 기록한 말씀은 창세기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하신 그 말씀이었다(엡2:8참고).

성경은 노아의 생애를 기록하기에 앞서 그가 어떻게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던가를 먼저 기록한 것을 우리는 주의 깊이 읽어야 할 것이다. 노아의 경건한 신앙과 생애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때문이었다. 혹 우리에게 좋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먼저 하나님의 은혜임을 감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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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장 22절 노아가 보여 준 믿음, 수요기도회 복음적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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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창세기 6장 22절,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설교 : 노아가 보여 준 믿음

지금도 매우 많이 판매되고 있는 과자 중에 “초코파이”의 광고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그냥 바라보면 알 수 있는 것이 “정”이라고 설명하며 감성적으로 큰 공감을 얻었던 광고였습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데, 인터넷에 검색해 보시면 요즘 나오는 광고도 보실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말씀만 하시고, 명확한 예측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행동으로 옮긴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아브라함입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향을 버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온 아브라함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의롭다”라고 평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다라고 평가하신 기준은 “믿음”이었습니다.

창세기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임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처음 밟는 땅인 가나안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5장에서는 아브라함에게서 별과 같은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당장은 자녀마저도 없는 상태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믿었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롭다라고 평가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믿는다”라는 말은 ‘아만'(אָמַן)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아멘”이 “아만”에서 나온 말입니다. ‘아만’의 원 뜻은, “확실하게 한다” “믿는다”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뜻에 대하여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쉬운 성경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히브리서 11: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아는 것입니다. (쉬운성경)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고 분명하지 않아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가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마음과 머리 속으로 가지는 것을 넘어서서, 확실한 행동을 요구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마음과 입을 통하여 고백하고 행동으로까지 옮길 때 진짜 믿음, 요즘 말로 “찐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노아 역시, 하나님께서 홍수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그 말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노아 역시 행동으로 옮깁니다. 120년 동안이나 홍수의 징조가 전혀 보이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주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노아의 믿음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히브리서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은, 하늘에 먹구름 한 점 없는 상태에서도 홍수가 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방주를 준비하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노아 역시 진짜 믿음, 찐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1. 하지만 안타깝게도 죄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에덴 동산에 있었던 아담과 하와는 “동산 중앙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고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증거로, 그들은 동산 중앙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불신앙의 행동, 불순종의 행동을 보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죄가 이 땅에 들어 왔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은 노아 시대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6장 5절부터 7절까지 말씀에서는, 인간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시기에 이르게 됩니다. “내가 괜히 인간을 만들었다”라고 후회하시고 인간의 범죄와 불순종, 그리고 그 결과로 맞이하게 될 심판을 “마음 아파” 하셨습니다.

또 창세기 18장의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불과 유황으로 심판하시길 즐기셨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의인 열명이라도 찾으면 심판을 내리지 말아 달라고 요청 드렸을 때 흔쾌히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라, 심판 전에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길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나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 그리고 오늘날의 사람들 역시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함으로써 하나님을 후회하시게 만들고 마음 아파하시게 만들고 있습니다.

2. 마음 아파 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성도의 순종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8장에서,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믿음을 가진 사람 찾기가 쉽지 않았으며, 오늘날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결코 내 믿음이 크다라고 자부해서는 안됩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믿음을 저버리게 될 지 나 자신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저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믿음으로 순종할 때에는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첫번째는,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우리는 순종해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함께 오늘 본문인 창세기 6장 2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창세기 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온 땅을 집어 삼킬 만큼이나 많은 비가 40일 동안 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3층 높이로 큰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당장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노아는 다 준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그대로 모든 일을 함으로써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일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도 말씀대로 행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노아가 만든 방주의 크기를 오늘날 계산법으로 보면, 길이가 약 135m, 넓이가 22.5m, 높이가 13.5m의 크기로, 오늘날의 축구장(약 105m)보다도 더 긴 배였습니다. 이 큰 배를 노아와 7명의 가족들만 동참하여 만들었기에 매우 힘든 작업이었을 것입니다. 직접 나무를 잘라서 옮기고 조립하고 역청을 발라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8명이 120년 만에 만든 것이 대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노아는 기쁨으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온전한 믿음으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하나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3.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방주 안에 들어간 생명을 가진 존재를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6장 18절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새로운 언약, 즉 약속을 세우십니다. 바로 노아로부터 새로운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도록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했던 인류는, 홍수로 인하여 모두 사라졌습니다. 홍수 이후에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가능하였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믿음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생, 새로운 삶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죄로 인하여 실패하고 넘어졌다 할지라도, 때로는 불신과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고 그 분 안에서 말씀에 순종하여 행동으로까지 옮길 때, 우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기회입니다. 바이러스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생명을 잃었고, 그들 가운데는 복음을 받아 들이고 구원 받을 기회도 잃은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또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고 확인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비록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의 전반적인 모습을 바꾸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주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따라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 나갈 때, 우리는 바이러스 이후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을 향한 참 믿음과 순종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노아는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믿었고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노아로부터 인류가 새롭게 시작하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우리의 상황도 어렵고 불가능해 보인다 할지라도, 또한 뚜렷하게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할 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노아가 보여 준 믿음을 닮아, 하나님을 향한 진짜 믿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진짜 성도, 찐 성도가 바로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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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장. 당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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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내용

6장. 당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찬 435)

1. 창세기 6~8장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난 홍수 심판이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최후 심판에 대한 하나의 전조라고 할 수 있다. 6장은 한 번 인간 세상 속에 들어온 이래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죄의 속성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이것은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는 것”을 경계한 바울 사도의 말씀을 기억하게 한다(고전 5:6).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하여 이 말씀을 들을 때, 그들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을 것이다. 성경에서 가장 논란이 많이 되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결혼의 기사는 그 해석이 쉽지 않다. 어떤 해석도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하나님의 아들들이 셋의 후손을, 사람의 딸들이 가인의 후손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난한 해석이다. 섞여서는 안 되는 것이 섞였고,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갔다. 거룩은 죄와 섞일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어느 사람에게도 삶의 기준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세우신 하나님의 백성이 그 구별을 스스로 무너뜨려버렸다. 결국 노아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이 120년 후에 있을 것이 선언되었다(창 6:3).

2. 하지만 이런 심판의 메시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오늘날 교회는 이것을 보아야 한다. 심판 중에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아야 한다. 그것이 8절이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어서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부연한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을 만난다. 이 구절은 실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특징과 열매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 노아를 통해서 심판 후에 세상의 질서를 보존하시고 다시 세우실 것이다. 성경이 놓치지 않고 강조하는 것은 그의 의인됨과 하나님과 동행함이 어떻게 나타났는가다. “노아가……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22).” 아담과 하와의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우습게 여긴 것이었음을 기억하라. 노아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는 사람으로 하나님과 동행한다. 비록 죄악이 무성하고 어두운 세상이 되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기에 하나님과 동행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구원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다. 정반대다. 오늘날에도 이 원리는 동일하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당신은 그 말씀의 권위를 알 것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을 가능하게 한다. 은혜를 받았다면 당신은 그 말씀을 결코 우습게 여기지는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특징지어주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는 삶이다. 당신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인가?

3. “하나님 아버지,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심판하시는 중에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 노아를 통하여 은혜의 강이 멈추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선하심을 찬양합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백성이 삶의 절대기준인 말씀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현실 속에서도 주의 말씀을 끝까지 굳게 잡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멸망의 시대가 가까이 올 때 (창세기 6:1-22)

창세기 6:1-22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아내로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안팎에 칠하라 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할지니라 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보존하게 하되. 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되리라. 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예수님께서 주의 재림의 때에 대해말씀하셨습니다.

37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 24:37-39).

따라서 우리는 주의 재림의 때와노아의 때는 대단히 비슷한 양상을 띠게 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멸망의 두 시대의 특징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완전하게 멸망당할 때까지 오직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 가는 일만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역사가 흘러갈수록이 땅의 멸망의 때는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자의 때, 즉, 주의 재림의 때는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의 재림 때에 어떤 일들이 발생할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먼저, 본문 1-2절을 보겠습니다.

[ 1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나니 2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창 6:1-2).

1절에 보니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시작할 때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멸망의 시기의특징입니다. 그 특징은 땅 위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지는 것입니다.주님의 재림의 때에는 노아의 때처럼 사람들이 급속하게 땅 위에 번성할 것입니다.

노아 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이 땅에 살았는지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총 인구가 2억에서 90억 사이에 있는 것으로 봅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사람이 땅위에엄청나게 번성했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유명 신학자들은 4억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인구 통계학에 따르면 지금 2019년의 인구 수는 77억입니다.그런데 77억은 노아 홍수 이후 지금까지 이 땅에 살았던 인류의 수를 다 합친 것보다 더많은 숫자입니다.

창조 과학의 아버지인 헨리 모리스에따르면 아담과 하와가 창조된 이후로 인류가 태어나 홍수 이전까지 이 땅에 살았던 수보다 노아 홍수 직전에 살던 인류의 인구 수가 훨씬 많았습니다.

아무튼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는인구의 수가 한없이 많을 것입니다. 어쩌면 벌써 77억 정도가되는 현재의 인구 수는 벌써 노아의 때의 패턴에 들어섰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인자의 재림은 그리멀지 않았습니다.

또한 1절에서 “사람들에게서 딸들이 나더라”고말합니다. 이 표현은 세상의 여인들로 인해 인류에 어떤 위기가 도래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하와의 타락에 의해 인류에게 첫번째위기가 왔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사랑하심으로 인해 인류는 첫번째 위기를 모면하였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창세기 6장 본문에서 여성들이 죄로 향하는 모습을보여줍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난 딸들로 인하여 인류는 두번째 위기에 처하였습니다.

주 예수께서 주님의 재림의 때가노와의 때와 같은 패턴을 취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재림 때 역시 노와의 때처럼 여인들로 인한 위기가 올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의 딸들이 인류에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생기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의 사람들을 범죄로이끈다는 점에서 위기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사람의 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쾌락과 죄악으로 강력하게미혹할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와는 자신이 먼저 선악과를 따먹은죄를 범한 직후에 아직 죄를 범하지 없는 아담을 유혹하여 자신처럼 선악과를 먹도록 하였습니다. 이에아담은 하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었고, 이로 인하여 인류는 완전한 멸망의 위기를 당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보면, 그 성은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하였습니다. 사실 롯 외에는 한 사람의 의인도 없었습니다. 롯 역시 죄에 물든형편없는 주의 백성이었기 때문에 멸망 당할 위기에 있었지만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때문에 롯은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즉, 롯 역시 오직 주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지만단 한 사람의 신자마저 없던 소돔과 고모라는 완전히 멸망하였습니다.

이로 보건대, 사람의 딸들은 주의 백성들로 하여금 범죄를 하게 하는 강력한 요인이 됨으로서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대항하여선악과를 따먹는 것과 다름없는 범죄를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그 죄는 다음 아닌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는배교의 범죄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2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냐에 대한 의견은 학자들 사이에서 분분합니다. 제일 주된 의견으로는천사라는 의견이 있고 셋의 후손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라고하는 주장은 본문의 전후 문맥 관계상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특히 성경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구속사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이들을 천사들로 볼 경우, 향후 전개되는 타락사는 인간의 타락사가 아닌 천사의타락사가 되기 때문에 이 견해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또한 창세기 6장에서천사가 타락한다면 천사가 시도 때도 없이 타락할 수 있다는 논리가 되기 때문에 이 또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더욱이예수님께서 천사들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그들은 장가와 시집을 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즉, 천사들이 사람을 아내로 둘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34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가되 35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36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눅 20:34-36)

그런데 2절에서 ‘아내’라는 단어는결혼이라는 언약 관계를 통해 하나가 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본문의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사들이라고 하면 주 예수님의 말씀과 상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은 셋의 후손들로서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던 주의 백성을 말합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과 같이 주의 영이 거하시는 주의 백성들로 보면 정확합니다.

더욱이 원어 “하나님의 아들들”을 구약에서 찾아보면 경건한 주의 백성을 지칭할 때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들들이라는 원어는 ‘벤’이라고 되어 있는데, 신명기 32장 5절에도 같은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고 삐뚤어진 세대로다”(신 32:5)

호세아서 역시 주의 백성을 향해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호 1:10)

아삽이 시편에서 같은 표현을 합니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시 73:15).

이로 보건대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믿음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반면, 사람의 딸들은 가인 계통에서 태어난 불경건한 자녀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과대응되는 불신앙의 여인들로서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세상 여인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딸들은 아름다웠습니다. 인간의 눈에 탐스러웠습니다. 이는 외적으로 뛰어난 미모를 뜻합니다.

이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그들의외적인 미모에 사로잡혀 그들이 불신앙의 여인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언약을 맺고 아내로 삼아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2절의 고발입니다.

즉, 진리와 빛의 자녀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가인의 후예인 불신자의 딸들과 인간적인 사랑에 빠져 서로언약을 맺어 아내로 삼는 그러한 모습입니다.

2절에서 그들을 아내로 취하였다는 것은 정확하게 하나님의 아들들이 언약을 맺고 육체적으로하나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거듭난 청년이 거듭나지 않는 처녀의 외적인 미모와 조건들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결혼한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구약이든 신약이든 하나님의영이 거하시는 주의 백성이 하나님의 영이 없는 세상 사람들과 언약하며 육체적으로 합하는 것을 금합니다.

고린도후서 6장에서 바울이 언급합니다.

[14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자가 어찌 상관하며 16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7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1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6:14-7:1).

따라서 본문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신앙과 선한 행실, 아름다운 성품 등, 내면적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여인의외모에만 관심을 집중하였다는 것은 큰 잘못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는 그 당시 하나님을 아는 자든모르는 자든 모든 사람이 비성경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이처럼 주의 백성마저 세상의 여인들때문에 주 하나님을 저버리자 이제 모든 인류가 불신으로 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국은 필연적으로멸망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노아의 때에오직 노아 및 그의 가족 외에 아무도 구원을 얻지 못한 것처럼 인자가 다시 오는 때에 믿음 있는 자를 찾아볼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8).

이는 인류의 역사가 끝으로 달려갈수록성령으로 거듭난 참된 신자가 급격하게 줄어들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신자들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이유로는주의 백성들이 세상 사람들과 연합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 시대의 특징은 사람들은엄청나게 번성하여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이며, 그와는 반대로 신자들은 세상 여인들과 짝하면서 신앙을저버림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주님께서 재림하시기직전에도 똑같이 나타날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딸들을 취한 이유는 세상 여인들의 미모 외에 다른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 네피림이라는 특이한거인 족이 있었고, 노아 홍수 이전의 네피림은 온 세상을 군림할 만큼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지닌 집단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의 딸들과 연합하는 이유는 그들 네피림처럼 권력과 힘을 가진 자녀들을 원하였기때문인 사실을 본문이 말합니다.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후에도 – 그들을 본받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창 6:4).

즉, 네피림으로 상징되는 세상의 권력, 여성의 아름다움으로 상징되는 쾌락등, 이생의 자랑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한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믿지만, 상대가 돈도 많고 권력가의 딸이고, 지독히 아름답기때문에 신앙이고 뭐고 다 뒤로 미루고 일단 불신자와 결혼해 버리는 그러한 모습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교회와신자를 떠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육신이 됨이라.”(창 6:3).

또한 5절 이하를 보면 믿는 자가 거의 사라지는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 6:5-7)

우리는 여기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가득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고 할 때 그 관점은 하나님의 관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즉, 인간들끼리 보는 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는 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노아 시대는 그저 밥먹고 놀고 일하고 계획하고 수고하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보면 죄라고 보기에 애매할 수 있습니다.

바벨탑을 쌓을 때 인류는 서로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를 인간 측에서 볼 때는 권력에 의해 질서가 유지되면서 운영되는 조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벨탑의 문제는 하나님을 고려치 않았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노아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즉,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죄는 하나님을 망각하고, 하나님을감사하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의 죄악이온 세상에 가득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과 계획 속에 하나님은 없고 오직 ‘나’와 자신이 속한 공동체만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온 인류을 악하게보시고 멸망시키신 가장 주된 원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를 도덕적 관점에서 보면 복음을깨달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근거로 하여 복음적인 관점에서 죄를 보려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간의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즉, 돈 벌기 위해 신앙을 잃으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죄입니다. 주하나님께 감사하는 것과 주 하나님을 만나 영화롭게 하는 것을 잊으면 그것이 죄입니다. 세상에서 먹고사는 일에 시달리거나 여러가지 오락에 빠짐으로 주 하나님을 계속 잊고 지내면 그것이 죄의 상태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을모르고 감사치 않는 자들은 다 죄인이며 악인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그들의 창조주시며 또한 그들에게모든 좋은 것을 한없이 베푸시는 분이시고, 나아가 주께로 돌아와 영생을 얻기를 원하시는데,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대항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에 로마서 3장에서 바울은 시편을 인용하여 외칩니다.

[10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하나도 없도다 13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18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 3;10-18)

야고보 사도는 다른 무엇보다 주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함이 죄라고 지적합니다.

[4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약 4:4-5)

또한 야고보 사도는 주 하나님을고려치 않는 인생 계획은 악이라고 알려줍니다.

[13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것이라(약 4:13-16)

사랑하는 여러분!

노아 시대의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힘을 쌓기 위해 불신자들과 함께 연합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과 언약을맺고 연합하였습니다. 그러자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물론그들은 세상의 힘과 자랑이 가득한 불신자의 딸들과 결혼하였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네피림처럼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신앙입니다. 하나님입니다. 이는 주의 영이 그들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이 세상은 불신자들로만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처럼 주를 믿는 의인이 극소수가 되었습니다. 현 시대로 치면 교회는 많지만 거듭난 자가 거의 없는 현상입니다. 종교는많지만 구원 받은 자들의 모임인 참 교회가 희귀한 것입니다.

이에 하늘로부터 내려온 유황이소돔과 고모라를 전부 태워버린 것 같이 하나님께서는 신자가 극소수인 노아 시대를 큰 홍수로 쓸어버리기로 정하셨습니다. 노아 시대의 마지막 끝에 이 땅에 얼마나신자가 없었습니까? 남은 신자의 수는 겨우 8명이었습니다. 믿어집니까? 2억에서 90억까지가능한 그 당시의 인구 가운데 참 하나님을 믿은 신자가 오직 여덟 명이었습니다.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벧전 3:20).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도다”(벧후 2:5).

이에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셨음을한탄하십니다. 그 이유는 온 인류가 하나님을 대항하며 무관심하며 감사치도 않고 예배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9절을 보면, 참 신자인 노아는 하나님과의 동행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였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창 6:9).

수억명 가운데 홀로 믿음의 길을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믿음입니다. 온세상 사람들이 전부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관심도 두지 않는채 죄악에 물들어가더라도 홀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죄없이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망각하고 사는 인간들은서로 착취하는 삶으로 나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인간들의 목적은 세상의 힘이기때문에 최고의 네피림이 되는 것으로 종결됩니다. 즉, 누구도이길 수 없는 거인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최고의 갑부가 되는 것이며, 그 누구도 덤빌 수 없는 최고 권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가능한 오래살면서 자신의 권력과 영광을 누리려 하였을 것이며, 이를 위해 철저하게 약자들을 착취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없는 인생 및 사회는 반드시 부패하며 포악하여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법칙입니다. 노아의 때는 바울이 말한대로 주께서 재림하실때의 모습과 방불하였습니다.

[1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것보다 더하며 5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아직도 보존하시는이유는 그리스도인들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주의 백성들이 이 땅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역할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사라지면 이 세상은 곧바로 포악과 강포와 착취가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즉, 힘의 논리에 의해 세상은 운영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폭군, 즉 네피림들이 곳곳에 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온 세상은 철저한무질서와 죄악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노아 시대의 그림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무엇에 의해 이 시대가 운영되고 있습니까? 네피림으로 상징되는 돈과권력의 힘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의 딸들로 상징되는 쾌락이 아니겠습니까? 온 세상이 사람들의 딸들에 의한 음란에 물들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인간들은스스로 살아남아 최고의 네피림이 되기 위해 잠시도 쉬지 못하고 바쁜 것이 아닙니까?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고하는 자들과 교회마저 세상과 짝하고 연합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러한 교회의 배도가 도를넘어서면 주 하나님은 이 땅과 시대를 버리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이 땅을 버리시면곧바로 주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심판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11절에서 13절을 보면, 온 땅이 하나님 앞에서 부패하였다고 하면서, 인류의 멸망은 땅과함께 멸망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 6:13).

이뜻은 하나님께서 친히 공의로이 땅을 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땅에 발을 델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불의한 자들에게 내리시는 형량입니다.

구약을 읽어보면, 주의 백성이 완고한 마음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의도적으로 범죄하여 마침내 하나님께서 정하신 도를 넘을 경우, 그들은 약속의 땅에 거하지 못하고 먼 땅으로 포로로 끌려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그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지진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십니까? 지진은 땅 없는 삶이기 때문에 극도로 무섭습니다.

구약은 땅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계시록 역시 새 땅으로 마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라”(마 5:5).

여기서 온유한 자는 이미 구원을받아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자를 말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는 죄의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자들이 영원히 주님께서 창조하신 땅에 거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영원한멸망입니다.

노아의 때에 하나님은 큰 홍수로온 세상을 쓸어 버리시고 온 인류를 땅에서 제거해 버렸습니다. 그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그들의 시체는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영원한감옥으로 들어갔습니다. 지옥입니다. 음부입니다.

[19그리스도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벧전 3:19-20)

하지만 노아와 그의 가족은 홍수이후의 새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이 땅에서 산 자들마다 불 심판 이후 정결하여진이 땅을 영원히 기업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10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바라보도다 14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0-14).

요한계시록 21장입니다. 주의 백성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 장면입니다.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것 같더라](계 21:1-2).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은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는 죽은 자들과 방불합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처음에 잠깐 녹색을 띠지만시간이 지나면 색바랜 죽은 낙엽이 되는 것처럼, 낙엽은 나무에서 떨어진 순간부터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예수와 관련없는 사람들은 죽은 자들과 같습니다. 그 증거가 그들의 생명은 고작 120살 미만입니다. 그들은 죽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잠시 생명력을 띤 것 같이 120년 미만을 지내지만 그 후 죽음을 통과하는 순간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그들의 영혼은 영원한 감옥으로 들어가게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좀비처럼 수치스러운 썩은 시체의 몸으로 부활하여영원한 불못으로 던져지게 됩니다. 그것이 노아 시대의 불신자들처럼 이 땅에 살았던 모든 불신자들의 운명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두운 이 시대에 저와 여러분이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 일은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탄은여러분을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 할 것입니다. 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는것은 말씀과 기도 생활을 하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을 각오로 주의 말씀과 기도로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에 생명을 바칠 심정을 가지고 철저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노아의 믿음이었습니다.

히브리서는 노아의 삶을 다음과같이 요약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히 11:7).

만일 이러한 믿음을 지니지 못하면서서히 세상의 네피림과 사람의 딸들에게 굴복하게 되면서 사탄과 연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는롯처럼 오직 암몬과 모압의 불신 자녀들만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재림의 때가 너무나 가까이다가왔습니다. 이는 새하늘과 새땅의 새로운 시대 역시 가까이 다가왔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믿음입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여러분의 남은 삶은 어떻게든 믿음을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예배를 통해서 다시 한번 심각한 결단을 내리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매일말씀묵상. 1월 6일. 창세기 6장. > 매일말씀묵상

창세기 6장. 당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1. 창세기 6~8장은 최초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난 홍수 심판이었다는 점에서, 마지막 때에 있게 될 하나님의 최후 심판에 대한 하나의 전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속에 들어온 죄악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계속해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는 것”을 경계한 바울 사도의 말씀을 기억나게 합니다(고전 5:6).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들을 때 , 그들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을 것입니다 .

2. 성경에서 가장 논란이 많이 되는 본문 중에 하나인,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결혼의 이야기는 그 해석이 쉽지 않습니다. 어떤 해석도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하나님의 아들들이 셋의 후손을, 사람의 딸들이 가인의 후손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무난한 해석입니다. 이 두 후손들, 섞여서는 안 되는 것이 섞였고,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었습니다. 거룩은 죄와 섞일 수 없는 것입니다. 섞이면 거룩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더 이상 어느 사람에게도 삶의 기준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3. 결국 거룩은 무너지고 섞이면서 , 하나님의 영은 이들에게서 떠나시고 , 이들은 “ 육 ” 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 육이 되었다는 말은 죄된 본성 가운데 , 목이 곧고 마음이 부패한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 이제 더 이상 영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말씀을 쫓는 인생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없는 인생이 되고, 각기 제 길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결국 노아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이 120년 후에 있을 것이 선언되었습니다(창 6:3).

4. 하지만 이런 심판의 메시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매우 놀랍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오늘날 교회는 끊이지 않는 이 은혜의 물결을 보아야 합니다. 심 판 중에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

5. 8절에 보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말하며, 이어서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했던 또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 구절은 실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특징과 열매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 그의 의인됨과 하나님과 동행함이 어떻게 연결되어 나타납니까? “ 노아가 ……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22).”

6. 아담과 하와의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우습게 여긴 것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는 사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비록 죄악이 무성하고, 어두운 세상이 되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기에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힘든 세상에서 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말입니다 . 물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구원을 얻어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7. 오늘날에도 이 원리는 동일합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 당신은 그 말씀의 권위를 알 것이며 , 어떤 상황이라도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 당신은 그 말씀을 결코 우습게 여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특징지어주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기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인가?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죄악의 물결이 넘실대는 곳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따라간다는 것이 너무나 힘든 삶의 현장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았던 노아의 모습을 봅니다. 세상의 어떠한 물결보다, 하나님의 은혜의 물결을 소중히 여겼던 노아처럼,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소중한 행복인 것을 알고, 말씀대로 살면 바보가 되는 세상에서, 그래도 끝까지 하나님의 편에 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도록 붙들어주시기를 원합니다. 바른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혜로운 인생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창세기 6장 5-8절 : 그들의 제각기 다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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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은 굉장히 드라마틱하다. 구약의 모든 책에서 인간의 죄악을 고발하며, 그로 인한 우울감을 여과없이 표현한다. 요새 묵상하고있는 구약성경의 첫 번째 책에서도 이것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구약이 드라마틱한 이유는, 그 우울감으로 끝을 맺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죄악이 드러나며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는 그 곳에는 항상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구원의 서광이 비쳐온다. 그러니 우리는 이 놀라운 본문들을 읽으며 경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우리의 삶에서도 서광을 비추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을 것임을 기대할 수 있다.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1. 죄악을 보시는 하나님

아직도 본문을 읽으면 개역한글판으로 읽던 어린시절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전의 번역에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이 관영하였다”고 말한다. 가득 차고 더 차서 넘실거리는 모양이다.

1-4절에 대한 요약으로써 본문은 노아 당대의 인간 군상의 죄악에 대하여 고발한다. 거룩을 위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스스로의 거룩을 버리고 아름다워 보이는 인간의 딸에게로 들어간 것이 관영한 죄악의 이유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성읍에 의인 열명이라도 있으면 망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 성읍에는 의인이 단 열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현재라도 별 다를게 있을까? 거룩을 위하여 회심으로 성별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비그리스도인의 삶보다 나을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나의 삶과 마음을 보시고 “의인이 여기 있다”고 말씀하실까?

영원히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넘실거리는 죄악을 보고 계신다. 당신의 언약을 기억하며 인내하고 계시는 우리 주 하나님을 기억하자.

2. 한탄하시며 심판을 준비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여기에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모습을 토대로, 하나님의 전지성에 대해 의심을 품을 수는 없다. 이 표현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사유하는 방법을 들어 당신의 마음을 십분 표현하신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가득찬 인류의 죄악을 보시며 한탄하시며 근심하신다.

7절의 심판 계획에서 특기할 부분은 사람만이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죄악을 지은 대상은 인간인데 왜 인간만 심판을 받지 않고 세상의 모두가 심판을 받게 되는가?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대표성의 원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부르시고 다스림의 책임을 맡기셨다. 이 대표성의 원리가 적용되기에 그리스도의 속죄 또한 효력이 있다.

3. 은혜를 입은 노아

(5절) 여호와께서 죄악을 보시고

(6절) 한탄하시다

(7절상) 지면에서 쓸어버릴 것이다

(7절하) 한탄하시다

(8절) 노아는 여호와의 눈에서 자비를 보았다

물론 한글 성경으로 보아도 매우 드라마틱한 전개이지만, 히브리 문맥에서 또한 깔끔한 수미상관의 전개가 보인다. 본 구조에서 강조점은 7절의 심판에 대한 계획을 말씀하심에 있지만, 인간에게서 죄악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자비를 보여주셨다.

8절에 대한 해석도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기에, 노아는 은혜를 입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고, 직역을 하자면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서 은혜를 발견하였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KJV는 본문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But Noah found grace in the eyes of the LORD.”

죄악을 보신 하나님꼐서는 죄악을 심판할 계획만을 세우지 않으시고 자비를 베풀 계획까지도 함께 세우셨다.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한 구속의 역사를 여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이것을 택정한 자에게 보이시는 구속의 방법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구속은 모든 이들에 대한 것이 아니다. (1) 하나님께서 선택하셨고, (2) 그러므로 혼탁한 세상에서 거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그 사람이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비유를 모든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며 진리의 숨김과 나타냄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구속의 진리를 받아 누린 이들이며, 이것의 아름다움을 향유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로 이 땅에 존재해야 한다.

4. 적용과 결론

나는 이 땅을 아름답게 하고 있는 사람인가?

솔직히, 예수님께서 당장에 재림하신다면 나의 삶의 경중을 어떻게 달아보실지 너무나도 두렵다. 죄악이 관영한 세대라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할 것인가? 히브리서가 말하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그 능력을 발휘하며 살고 싶다는 열망을 가져야 하겠다.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 사람인가?

어제와 오늘의 본문은 세 종류의 존재가 각기 다른것을 보았다고 진술한다.

(2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5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보시고

(8절) 노아는 여호와의 눈에서 자비를 보았다

나는 무엇을 보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눈이 향하여야 할 곳은 무엇인가? 세상의 아름다움/즐거움인가? 아니면 비난하기 위하여 세상의 죄악을 보아야 하는가? 그 가운데 숨겨진 하나님의 자비를 발견해야 하는가?

(궁금증: 창세기의 이름들은 항상 문맥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언어유희적인 요소들이 많이 보인다. 가인에서도, 셋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이 많이 보인다. 노아의 경우에서도 노아라는 이름과 한탄하셨다는 말의 “나함”은 자음 구조가 같다. 나중에 더 공부할 부분으로 기록.)

#말씀묵상 #큐티나눔

[창세기 6장 히브리어 주석강해] 인류의 타락과 노아의 은혜(창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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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6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중에서 인류의 타락과 노아의 은혜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인간들이 땅에서 번성해 갈 때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취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여자를 아내로 삼았기 때문에 세상은 타락해졌고 하나님은 한탄을 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의 마음을 풀어줄 자가 나오는데 노아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노아가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가진 자들이 타락하여 세상의 우상을 섬기게 되면 하나님은 한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버리지 말고 노아처럼 마지막 때에 주님을 섬기면서 신랑이신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은 신부를 데리러 반드시 오신다고 했습니다. 이제부터 노아처럼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인류의 타락과 노아의 은혜(창 6:1-8)

1절은 바예히 키 헤헬 하아담 라로브 알 페네 하아다마 우바노트 율르두 라헴입니다.

창 6: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6:1절

번성하기 시작할 때 –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1:28)는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선 아담의 범죄 이후 모두가 죽을 운명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 기간 동안 인간에게 장수(長壽)를 허용 하사 많은 자녀를 갖게 하셨다.

딸들(바트) – ‘벤'(아들)의 여성형으로 문자 그대로 ‘딸’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람들에게서 딸들이 나다’란 말은 남자에 비해 여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는 뜻이 아니라 그녀들로 인해 인류에 어떤 위기가 도래케 되었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나니 – 얄라드라는 동사이다. 동사 푸알 강조 수동 완료 공성 3인칭 복수이다. 강조 수동을 사용한 것은 세상의 딸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타락시킬 자들이 나오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2절은 바이르우 베네 하엘로힘 에트 베노트 하아담 키 토보트 헨나 바이케후 라헴 나쉼 미콜 아쎄르 바하루입니다.

창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6:2절

하나님의 아들들 –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자들인지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1) 지체 높은 집안의 아들들이라는 유대 랍비들(Onkelos, Symmachus, Aben Ezra)의 견해 (2)성경의 일반적 용례(욥1:6; 2:1; 38:7; 단3:25)에 따른 ‘천사’란 견해(Lxx,Josephus, Tertullian,Luther, Baumgarten, Kurtz, Alford) (3) 셋 계통의 경건한 자녀들이란 견해(Augustin, Calvin, Lange, Keil, Wordsworth).

이 중 (1)은 히브리어의 일반적 용례로 볼 때 비성경적이며 (2)는 본문의 전후 문맥 관계상 상치된다. 그리고 구속사적으로 보더라도 이들을 천사들로 볼 경우, 향후 전개되는 타락 사는 인간의 타락사가 아니라 천사의 타락사가 된다는 견지에서도 이 견해는 합당치 못하다.

따라서 세 번째 견해가 가장 유력시되는데 이는 신학적 의미와도 부합되며 또한 이와 유사한 표현이 경건한 신앙인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 성경 관례(신 32:5; 시 73:15; 80:17; 호1:10)에 의해서도 지지를 받는다.

사람의 딸들 –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에 대해서도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지체 낮은 천민 계층의 딸들 (2) 인간의 딸들 (3) 가인 계통의 불경건한 자녀들. 이 중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말과 자연스레 대응을 이루는 견해는 역시 세 번째인 것이다.

아름다움(토브) – ‘좋은’, ‘선한’, ‘아름다운’ 등의 뜻을 지닌 단어로 성격상에 있어서의 사랑스러운 면을 뜻할 수도 있으나 여기선 외견상의 ‘미모’를 의미한다(24:16; 단 1:15).

보고(라아) – 단순히 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세히 주목하거나 인지하는 것을 의미한다(왕상 20:7; 시 31:7).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신앙과 선한 행실, 아름다운 마음씨 등과 같은 응당 주의를 기울여야 할 내면적 아름다움은 외면한 채 인간의 외모에만 관심을 집중하였다는 것은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곧 하나님을 아는 자든 모르는 자든 간에 당시의 모든 사람이 전도된 가치관을 갖고 있었음을 증거해 주는데 이처럼 온 사회가 타락 일변도로 흘러갈 때 그 결국은 필연적으로 패망일 수밖에 없다(7절).

좋아하는 – ‘선택하다’, ‘지정하다’는 뜻.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들의 안목의 정욕을 좇아 고르는 것을 의미한다(고후 10:7). 바하르라는 동사이다. 칼 능동태 완료를 사용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의 딸들의 외적인 아름다움을 보고 자신들의 생각과 뜻대로 완전히 선택했다는 의미다. 여호와 신앙과는 정반대라 하더라도 얼굴만 예쁘면 선택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한탄스럽게 만들었다.

아내(나쉼) – ‘이솨'(2:24; 3:20; 4:17)와 교체하여 쓸 수 있는 단어로 ‘아내’ ‘부인'(4:19; 삿 8:30)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여인'(신 20:14; 느 8:3)을 뜻하기도 한다.

삼는지라(라카흐) – 4:19에서는 ‘취하였으니’로 번역되었다. 일반적으로 결혼하는 것을 뜻하는 관용적 표현이다(출 6:25; 민 12:1). 라카흐 동사의 문법은 와우접속사 칼 능동태 미완료이다. 와우접속사 문법은 시제를 바꾸어 해석한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흠뻑 빠져 즉시로 자신들만을 위하여 완전히 아내로 삼았다는 의미다.

3절은 바요메르 아도나이 로 아돈 루히 바아담 레올람 베샤감 후 바사르 베하이우 야마이브 메아 베에세림 샤나입니다.

창 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6:3절

나의 신이…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 신(루아흐)은 문자적으로 ‘바람'(8:1), ‘호흡'(7:22), 상징적으로 ‘마음'(26:35), ‘정신'(삿 15:19), ‘영감'(왕하 2:9)을 의미한다. 그런데 때로는 ‘신'(34:9), ‘영'(왕상 22:21)을 뜻하기도 하므로 혹자는 ‘나의 신’을 1:2에 나오는 ‘하나님의 신'(성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다.

여기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생명’을 뜻하는 바 본절은 인간 타락이 절정에 달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홍수 심판으로 그 인간들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겠다는 의미이다(17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 그 시대의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 주고 있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여기서의 육체(바사르)는 헬라어 ‘사르크스’와 같은 의미로 단순한 ‘몸'(15:4; 고전 6:15)이 아니라 죄의 영향으로 사악하게 된 ‘타락한 육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롬 8:6).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 당시 모든 사람들의 수명이 일백이십 년으로 한정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 기간이 지난 후 대홍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적 경고이다. 따라서 이 기한은 당시의 타락한 인간들에게 주어진 심판의 유보 기간이자 동시에 그들이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은혜의 기간이었던 것이다(벧후 3:9).

4절은 하네피림 하이우 바아레츠 바야밈 하헴 베감 아하레 켄 아쎄르 야보우 베네 하엘로힘 엘 베노트 하아담 베얄르두 라헴 헴마 하기보림 아쎄르 메올람 아네셰 하솀입니다.

창 6: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6:4절

네피림(네피림) – ‘떨어지다'(fall)란 뜻을 지닌 기본 동사 ‘나팔’에서 파생된 말이다. 따라서 어떤 학자들(Hoffman, Delitzsch)은 이러한 원어의 뜻에서 유추 해석하여 ‘네피림’을 하늘로부터 떨어진 타락한 천사들의 후손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튜크(Tuch)나 크노벧(Knobel) 같은 학자들은 이들을 ‘괴물'(monster) 또는 ‘신동'(神童)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70인 역(LXX)은 네피림을 ‘장부'(丈夫)란 뜻의 ‘기간테스’로 번역했고, 벌겟역(Vulgate)과 KJV도 70인역을 따라 ‘용사’, ‘거인’이란 뜻의 ‘giant’로 번역하여 네피림을 타락한 천사나 혹은 천사와 인간 사이의 혼혈족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그 신체적 특성상 장부가 거인으로 불릴 수 있는 일단의 사람 혹은 족속을 가리키는 말로 보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신체적 특징은 아울러 도덕적 특성까지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대체로 훼방꾼, 무법자, 난폭꾼, 가해자 등의 속성을 가진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종합하면 노아 당시의 ‘네피림’이란 거대한 신체를 지닌 ‘폭꾼들’ 내지는 ‘침략자들’ 정도의 뜻으로 이해함이 좋을듯하다(Luther, Calvin, Keil, Murphy).

한편 이 용어는 출애굽 이후 광야 여행 시대인 민 13:33에서 다시 나타나는데, 이때 이 용어가 사용된 것은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이 그 땅 족속들의 모습이 마치 홍수 전 노아 시대의 네피림같이 장대하고 난폭하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말하기 위한 것뿐이었다.

그 후에도 –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을 예고하신 이후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이전의 타락한 행실을 답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취하여(야보우) – ‘보'(얻다, 침투하다, 달려가다)의 미완료형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멸망의 경고를 들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맞아들인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보’는 남녀 간의 혼인을 뜻하는 완곡한 말이다(삼하 16:22; 대상 2:21).

용사 – 문자적 뜻은 ‘강한 자’, ‘힘센 자’, ‘우두머리’ 당시 이들은 세상을 지배하던 힘세고 강한 영웅이었거나 아니면 많은 하수인을 거느렸던 압제자였음을 뜻한다. 즉 이들은 전쟁과 약탈, 방종과 사치 등이 난무하던 홍수 이전 시대 그 타락의 주역들이었던 것이다.

고대에(올람) – 헬라어 ‘아이온’과 같이 ‘오래전’, ‘영원'(눅 1:70; 고전 2:7)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3절: 17:7: 왕하 5:27). 이는 저자(모세)의 입장에서 볼 때 본절에 기술된 의미를 지닌다.

유명한(솀) – 좋은 의미에서는 명예나 명성을 얻는 것을 뜻하지만(신 26;19; 단 9:6) 나쁜 의미에서는 본절과 같이 악명(惡名)을 날리는 것을 뜻한다.

5절은 바야르 아도나이 키 라바 라아트 하아담 바아레츠 베콜 예체르 마흐쉐보트 리보 라크 라 콜 하욤입니다.

창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5절

죄악(라) – ‘라아'(깨뜨리다, 상하게 하다, 쓸모없게 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 질서를 어기거나 그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인간의 모든 악한 행위를 의미한다(39:9; 사 47:10).

관영함 – 원어 ‘라바’는 ‘크다’, ‘충분하다’, ‘너무 많다’는 뜻(대상 23:17; 시 130:7). 이는 당시 사람들의 죄악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깊이 뿌리를 박은 지속적인 것이었음을 나타낸다.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 타락한 이후 인류가 지니게 된 보편적 죄성(罪性)을 증거하고 있는 구절이다. 그러므로 칼빈(J. Calvin)은 이에 근거하여 ‘타락한 인간은 근본적으로 그 본성이 부패하고 죄에 오염되었으므로 스스로는 아무런 영적 선도 행할 수 없다’는 ‘인간의 전적 타락설'(Total Depravity)을 주장하였다(롬 3:9-18).

한편 여기서 마음(레브)은 갖가지 감정이 자리 잡고 있는 좌소(座所)를 의미한다(17:17). 그리고 생각(마하솨바)은 어떠한 문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골똘히 연구하는 것을 의미한다(삼하 14:14; 잠 16:3; 렘 18:12).

또한 계획(에체르)은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의도적으로 기획하는 것을 뜻하며(8:21; 신 31:21) 악하다는 것은 앞에 나온 죄악과 같은 의미를 지닌 동일 단어이다.

보시고(야르) – ‘라아'(바라보다, 주목하다, 발견하다)의 미완료형으로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소위(所爲)와 그 생각하는 바가 어떠한 것인지를 오랜 기간에 걸쳐 계속적으로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셨음을 의미한다. 와우접속사를 사용하고 있음으로 하나님은 즉시 인간들을 보시고 계속해서 주목하여 보다가 때가 되매 심판하기로 작정하셨다는 의미다.

6절은 바이나헴 아도나이 키 아사 에트 하아담 바아레츠 바이트아체브 엘 리보입니다.

창 6: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6:6절

지으셨음을(아사) – 여기에 ‘바라'(창조하다) 대신(7절) ‘아사’가 쓰인 것은 자신이 최고의 애정을 기울여 만든 인간을 전멸시켜야 하는데 대한 하나님의 극한 아픔을 강조키 위함이다(5:1). 아사의 문법은 칼 능동태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직접 완전하게 만드셨는데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하니 한탄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한탄하사(나함) – ‘후회하다’는 뜻과 함께 ‘위로하다’는 뜻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5:29). 문법은 와우접속사 닢알 수동태 미완료이다. 수동태를 사용한 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보시고 괴로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는데 인간 때문에 고민할 수밖에 없다. 와우접속사는 미완료 시제이니 완료로 바꾸어 해석하면 하나님의 마음은 한층 더 괴로워지셨다는 의미다. 그 한탄이 떠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는 문자 그대로 하나님께서도 당신이 하신 일에 대해 후회하실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선 인간이 아닌 전지전능한 지존자(至尊者)로서 결코 변개치 않으시기 때문이다(삼상 15:29). 다만 이는 인간의 비극적 타락에 대해 갖으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인간의 측면에서 묘사한 말일뿐이다.

마음에 근심하시고 – 직역하면 ‘그의 마음에 새기셨다’. 아차브 동사인데 와우접속사 히트파엘 강조재귀 미완료이다. 히트파엘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는데 그 인간 때문에 근심이 생기셨다는 의미다. 즉 인간의 비극적인 타락 상황을 보신 하나님께선 그것이 마음 깊숙이 새겨져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극심한 아픔으로 느끼셨다는 뜻이다(시 78:40).

이상에서 우리는 범죄 한 인간에 대해서조차 사랑을 쉽게 단념치 않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 임을 알 수 있는데(눅 15:11-24). 이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할 마땅한 태도는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그것을 준행함으로 더 이상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 않는 것이다(롬 12:2).

7절은 바여메르 아도나이 에메헤 에트 하아담 아쎄르 바라티 메알 페네 하아다마 메아담 아드 베헴마 아드 레메스 베아드 오프 하샤마임 키 니하메티 키 아시팀입니다.

창 6: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6:7절

나의 창조한 사람 – 2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가 아니었음을 반증해 주고 있는 구절이다. 만일 그들이 ‘사람의 딸들’과 함께 방종을 일삼는 타락한 천사였다면 하나님께선 본절에서 ‘내가 창조한 사람과 천사를 멸절시키리라’는 심판을 선고하셨을 것이다(3:14).

쓸어 버리되(마하) – 문자적 뜻은 ‘씻다'(왕하 21:13). ‘지워버리다'(출 32:32). ‘닦아내다’. 하나님께서 물로서 깨끗이 쓸어 세상을 심판하실 것임을 시사해 주며 또한 그 심판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한 파멸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출 17:14). 문법은 칼 능동태 미완료 시제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들과 짐승들을 모두 죽을 때까지 쓸어버리겠다는 의미다. 미완료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완전히 쓸어버릴 때까지 심판하시겠다는 의미다.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 3:17에 이어 다시 한번 인간의 죄책(罪責)과 그 영향이 자연계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처럼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자연계에까지 확산된 점은 (1) 자연계에 대한 인간의 주권성과 (2) 인간에 대한 자연계의 예속성을 보여 준다.

한편 여기서 육축(베헴마)은 본래 소나 말처럼 몸집이 큰 네 발 짐승을 가리키나 본절에서 모든 가축을 뜻하는 집합적 의미로 쓰였다(1:24; 7:14). 그리고 기는 것(레메스)은 ‘라마스’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다)에서 파생된 말로 곧 파충류(1:24; 왕상 4:33)와 곤충(합 1:14)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새(오프)는 날개가 있어 날아다닐 수 있는 모든 생물을 의미하나(레 11:21) 성경에선 대개 ‘새’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1:20; 호 4:3).

8절은 베노아흐 마차 헨 베에네 아도나이입니다.

창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6:8절

여호와께 – 직역하면 ‘여호와의 눈에’, 이는 노아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게 된 까닭이 그분 보시기에 기뻐하실 만한 점이 있었기 때문임을 시사해 준다(9절).

은혜(헨) – ‘하난'(불쌍히 여기다, 아랫사람에게 호의를 베풀다)에서 파생된 말로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시 4:3)와 고생하는 자(시 6:2)를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사랑, 은총, 자비 등을 의미한다(30:27; 출 33:12).

그렇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본성이 곧 사랑과 긍휼, 공의임을 뜻하는 ‘헤세드'(렘 9:24)와는 달리 먼저 은혜를 받는 자가 경건하며 의로운 자여야 한다는 조건을 필요로 하는 단어이다(9절).

여기서 우리는, 비록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이 없다면 구원 얻을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나(롬 3:10-12) 그 같은 사랑에 대한 인간 측의 적극적인 반응과 노력도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 확인할 수 있다(계 3:20).

입었더라 – 마차라는 동사이다. 발견되다는 뜻이다. 칼 능동태 완료 시제이다. 노아는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었다. 하나님은 노아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것이 은혜이다. 우리가 잘나서 눈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노아도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했더니 하나님께서 눈여겨보시는 은혜를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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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장 설교문] “세상에서 은혜 입은 사람”(창 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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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창세기 6장 설교문 중에서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세상에서 은혜 입은 사람”(창6:5-8)

A. 하나님께서 한탄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1.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들이 죄들로 가득 채워졌다. 죄악이라는 단어는 (רע라)이다. 악행 하는, 나쁜, 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알고 있는 경험이나, 눈으로 보이는 데로, 판단한다는 의미가 있다. 죄악의 숫자적 의미는 부족한 숫자의 의미 200과 영적으로 완전하고, 예수를 기다리는 의미 20과의 조합이다. 죄악은 하나님의 생각에서 벗어나 부족한 상태를 의미한다. 세상에 죄가 가득 차서 결국 하나님은 한탄하신다.

2.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악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갔다. 영적인 것은 멀리하고 육체적인 생각만 했다. 생각이라는 단어는 (מחשבה마하샤바)이다. 꾀, 방책, 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생각을 몰두해야 하는데,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유익을 차리는데 생각들을 몰두했다.

잠12:5 의인의 생각은 정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속임이니라

악한 자들은 결국 사람을 속여 자신의 욕심을 채운다. 의인들은 정직하게 하나님 보시기에 행동한다.

B. 하나님의 근심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은 세상의 사람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고민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을 쓸어버리기 위해서 고민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한탄하시는데 한탄이라는 단어는 (נחם나함)이다. 후회하다, 애통하다, 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완성에서 분리하고, 구원에서 탈출시키지 못하는 것에 혼란함이 있다. 라는 의미가 있다. 모든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살릴 수가 없어서 고민하신다.

C. 노아가 하나님의 어떤 은혜를 받았는가?

1. 구원받는 은혜를 받는다.

노아는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에 구원을 받는다. 노아가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숨쉬는 동물들이 죽어갈 때에 노아는 방주에서 안식을 취한다. 생명이 살아나는 은혜를 받는다. 은혜라는 단어는 (חן헨)이다. 은총, 매력, 아름다움, 이라는 뜻이다. 헨의 숫자적 의미는 기쁨과 구원의 부활을 소망하는 의미가 있다.

2. 하나님의 눈에 들었다.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 드는 복을 받았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에 노아만 하나님의 눈에 들었다. 여호와께 라는 단어에서 께라는 단어가 (עין아인)이다. 눈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통찰력적인 눈에 뛰었고, 하나님의 손으로 구원을 받았다. 라는 의미가 있다.

D. 나는 어떤 은혜를 받아야 하는가?

1. 구원을 받는 은혜가 있어야 한다.

이 세상 육신적인 것을 모두 가져도 영적인 구원이 없으면 이 세상 불탈 때에 모두 사라진다. 영혼의 복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은혜가 있어야 한다.

2. 하나님의 눈에 뽑혀야 한다.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노아처럼 하나님의 눈에 뽑혀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은혜가 있어야 한다.

3. 하나님을 한탄시키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지으므로 하나님을 한탄시켰다. 나는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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