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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4 장 | 빌립보서 4장 22288 좋은 평가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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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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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제공 : CGNT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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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4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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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12/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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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4 KLB – 마지막 명령과 부탁 – 내가 – Bible Gateway

4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나의 기쁨이며 면류관입 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님 안에 굳게 서십시오. 2 유오디아와 순두게 두 사람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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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2/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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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4장

빌립보서 4장[개역한글]. 1.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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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tjprayer.net

Date Published: 5/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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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4장 (개역개정/쉬운성경, 자비교회 성경통독)

형제 여러분, 선함을 추구하며 가치가 있는 것들에 마음을 쏟기 바랍니다. 참되고, 고상하고, 옳고, 순결하며, 아름답고, 존경할 만한 것들을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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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reformedkjy.tistory.com

Date Published: 8/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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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품어야할 같은 마음 (빌4:1-3) – 유평교회

본문: 빌립보서 4장 1-3절 설교자: 최종혁.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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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church.or.kr

Date Published: 12/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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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4장 1-7절 말씀 묵상 – 네이버 블로그

빌립보서4장 1-7절 말씀 묵상 ·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 2 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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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8/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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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설교] 빌립보서 4장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빌립보서 4장 본문 빌립보서 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빌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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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392766.tistory.com

Date Published: 10/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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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4장 강해성경말씀]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빌 4:1 …

4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님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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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kh123.tistory.com

Date Published: 11/23/2021

View: 6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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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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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빌 4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 Views: 조회수 10,945회
  • Likes: 좋아요 124개
  • Date Published: 2021. 2. 15.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ET-Qor5tVhU

빌립보서 4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권면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1)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빌립보서 4장 (개역개정/쉬운성경, 자비교회 성경통독)

[빌]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권면

[빌]4: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빌]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빌]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빌립보 사람들의 선물

[빌]4: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빌]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4: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빌]4: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빌]4: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빌]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빌]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4: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끝 인사

[빌]4: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빌]4: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우리가 품어야할 같은 마음 (빌4:1-3)

주제: 우리가 품어야 할 같은 마음

본문: 빌립보서 4장 1-3절

설교자: 최종혁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빌립보 교회의 배경은 사도행전 16장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소아시아에서 전도하고픈 마음이 있었지만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께서 막으십니다. 그러던 중에 사도 바울이 어느 날 밤 환상을 보게 됩니다. 마게도냐에 있는 사람이 “와서 우리를 도우라”라고 말하는 환상이었습니다. 그는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과 그 마게도냐 지역으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 가서 가장 처음 머물렀던 곳이 이 빌립보 성입니다.

이곳은 로마의 식민지였고(행16:12) 이곳에 유대인의 회당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유대인들이 적었던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행16:13). 또한 빌립보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에바브로디도, 유오디아, 순두게, 글레멘드 등 모두 로마식 이름, 즉 이방인의 이름들입니다. 빌립보는 로마의 문화 속에 있었던 도시였고, 그래서 빌립보 교회의 구성원들도 역시 대부분 로마 시민이었을 것입니다.

처음 빌립보 교회가 시작되는 모습을 보면 분명한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강가에서 여자들을 만나 말씀을 전할 때 성령께서 ‘루디아’라는 여자의 마음을 여셔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십니다. 또한 귀신들린 여종을 만났을 때에도 성령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게 됩니다. 이 여종의 귀신을 쫓아낸 일로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그 날 밤 기도하고 찬양할 때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간수와 그의 가족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빌4:15).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였고, 그 이후로도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며 함께 일했던 교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빌립보서는 다른 서신서들과는 달리 교회의 어떤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이 없습니다. 고린도서나 갈라디아서 등을 보면 교회 내의 여러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빌립보서에는 교회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이 없습니다. 이런 것들로 볼 때 빌립보 교회는 많이 성숙한 교회, 좋은 교회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4:1).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위와 같이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빌립보 교회를 사랑하고 있었고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감옥에 있을 때 썼는데 빌립보 교회는 그에게 기쁨을 준 교회였던 것입니다. 또한 이 교회를 가리켜 자신의 ‘면류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빌립보 교회는 기쁨이자 자랑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교회, 좋은 교회라고 해서 그 중에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빌립보 교회에는 몇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빌1:17~2:18을 보면 ‘같은 마음을 품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4:2). 또한 빌립보 교회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1:28). 또한 빌3:2,3에서는 “개들, 행악하는 자들” 즉 거짓교사들로서 유대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을 때 믿음 뿐만 아니라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빌립보 교회에는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3:18)고 하여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3:19)들로 세속적인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런 자들이 빌립보 교회에 있었고 교회에 어려움을 끼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성숙하고 좋은 교회, 복음에 힘쓰던 교회였지만 그 안에도 여러 어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교회에게 “이와 같이 주안에 서라”(4:1)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 서라”는 말은 “주 안에서 흔들리지 말고 굳게 서라”는 의미인데 이 말은 로마 군인들에게 익숙한 용어입니다. 로마시대가 배경인 전쟁 영화를 보면 군사들이 자신의 키만한 방패를 들고 대열에 맞춰 서서 적군과 싸웁니다. 반드시 각자 자신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하고, 두려움에 물러섰다가는 진영이 깨져 전쟁에서 지기 쉽습니다. “굳게 서라”는 말은 그와 같은 상황을 가리킵니다. 교회도 외부의 공격이 있습니다. 대적들이 교회를 흔들려고 하는데 피하지 말고 그 자리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사단은 빌립보 교회만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전, 이후의 모든 교회들을 공격합니다. 교회가 굳게 서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단이 예전부터 지금까지 충실하게 하고 있는 일입니다. 사단은 한 사람이 구원받으면 그냥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굳게 서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방해합니다. 핍박하거나 대적하기도 하고 진리를 잘못 가르치기도 합니다. 진리가 아닌 것이나 진리와 유사한 것을 가르치고 성도들이 하나 되지 못하도록 내부에 분열을 일으킵니다.

성도들 개개인을 향해 사단이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무너뜨려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럽의 교회가 문을 닫고 있고 미국의 교회가 자유주의 신학에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주님 안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 주님 안에 잘 서있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말이 우리 교회에 어려움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단은 계속해서 교회를 넘어뜨리려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불화살을 날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주님 안에 굳게 설 수 있을까요?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1)에서 “이와 같이”라는 말은 2~9절의 내용을 가리킵니다.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굳게 설 수 있는 방법을 6가지 명령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2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4절),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5절), “염려하지 말고 아뢰라”(6절), “이것들을 생각하라”(8절), “행하라”(9절)고 명령합니다. 이 명령들에 순종할 때 주님 안에 굳게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중에서 2,3절에 있는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명령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말씀은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권면하면서 2절에서 ‘유오디아’와 ‘순두개’라는 자매들에게 개인적으로 권면하고 있고, 3절에서는 교회 차원에서 권면하고 있습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2절). 먼저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사도 바울이 교회에 쓴 편지를 한 형제가 대표로 앞에 나와서 읽어주고 있는 상황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1~3장을 기쁘게 읽어내려간 뒤에 4장으로 와서 ‘주 안에 서라’는 일반적인 명령을 할 때까지만 해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2절에 와서 구체적으로 두 자매를 언급했을 때, 그것도 칭찬이 아니라 권면하는 글이었을 때 그것을 듣는 당사자들은 어땠을까요? 분명 그 두 자매는 그 자리에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신중하고도 심각하게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일도 역시 일반적인 명령으로 끝낼 수도 있었는데 그는 굳이 구체적인 이름을 언급하며 ‘권한다’는 말도 두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두 자매를 각각 부르고 각각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개인에게 책임을 더욱 느끼게 하기 위함입니다. 유오디아는 순두개에게 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순두개는 유오디아에게 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각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합니다. 이 두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는 이들이 복음에 함께 힘쓰던 여인들이라고 했습니다(3절). 교회 안에서 열심히 일하던 자매들인 것입니다. 이들은 진리에 있어서 다른 견해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열심과 선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한 마음을 품지 못하고 마음이 갈라선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이 하나 되지 못해서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고 있었습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133:1).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12:16-18)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1:10)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벧전3:8)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시고 믿는 자들이 하나될 것에 대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 예수님의 이 기도는 성령께서 오셨을 때 응답되었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 성령님으로 온 교회가 하나가 된 것입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침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4:4-6). 교회는 예수님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으로, 그리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하나됨을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 성령께서 이미 교회를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한 팀입니다. 이 하나됨을 지키는 것,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같은 마음을 품고 하나될 수 있을까요? 이것은 빌립보서 2장에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2:1). 그리스도 안에 권면, 사랑의 위로, 성령의 교제, 긍휼, 자비가 있습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2:2). 교회가 하나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됨의 방법은 3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2:3). 어떻게 하나될 수 있습니까?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2:4). 또한 자신의 유익만 구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유익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 가치관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2:5) 그러한 겸손의 마음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2:6). 예수님이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에서 주님의 겸손이 시작됩니다. 주님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세상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취한다”는 말은 무엇인가를 “붙잡는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권리’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으로서의 권리를 마땅히 붙잡아야 할 것으로 생각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의 권리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권리를 마땅히 주장해야 할 것으로 생각지 않으신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2:7). 예수님의 태도가 겸손한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님은 자기를 비우시고 자신의 권리와 혜택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것도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주님은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신데 겉모습만 사람이 되셨던 것이 아니라 정말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피조물 중에 하나가 되셨습니다. 스스로 온전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셨습니다. 생명이신 하나님이 죽음을 면하기 위해 피하셔야 했고, 모든 것을 가지신 하나님이 배고픈 존재가 되셨습니다. 피곤하지 않는 분이 피곤해서 주무셔야 했고, 거룩하신 분이 죄의 유혹을 이기셔야 했으며 영원히 찬양받으실 분이 섬기는 자로 사람 중에 계셨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8). 주님은 낮은 자로 오셔서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은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시대든지 오실 수 있었고 어떻게 죽으실 지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좀더 편하고 영광스러운 죽음도 있었는데 주님은 굳이 십자가의 죽음을 택하셨습니다. 그것은 가장 끔찍하고 참혹한 죽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 중에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길가에 있던 구레네 사람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는 장면입니다. 그 때 그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지금 이 십자가를 지지만 나의 죄 때문에 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십자가를 지고 가면 모두들 죄인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 십자가를 예수님께서 지고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들의 죄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개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같은 마음을 품지 못한 것은 겸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서로 자신의 권리를 취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갈등이 있을 때 내가 잘못한 것도 인정하지만 그가 더 잘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두 자매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저 사람이 먼저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마땅히 취해야 할 권리이다’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하나될 수 없습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 즉 겸손한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높은 자들입니다. 야고보는 낮은 형제에게 자신의 높음을 자랑하라고 했습니다(약1:9). 내 육체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주님 안에 있으면 높은 자들입니다. 에베소서 1장은 우리가 얼마나 높은 자들인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 받은 자이며,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제사장이고 장차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을 다스릴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로 생각한다면 교만한 생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내가 더 대접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말하는데 사람들이 왜 잘 듣지 않지?’, ‘나는 이런 대우를 받을 존재가 아닌데…’ 이런 생각들이 교회를 흔들어 하나 되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 제자들의 모습을 생각해보십시오. 주님은 십자가를 향해 가고 있을 때 제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높은 자들인지를 두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마땅히 누려야 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마땅히 섬김을 받으셔야 했지만 그런 권리를 취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중에 교만해지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겸손하기를 원합니다. 다른 이를 높이고 나의 유익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을 예수님의 태도를 통해 배우셔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권리를 마땅히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을 때 겸손한 자로 오셔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이루실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포기하셨던 것들을 생각할 때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유익을 버려야 하고 손해 봐야 하며 억울한 일을 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는 것은 그 겸손의 끝에 하나님의 보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2:9-11).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본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낮아지신 예수님께 가장 높은 자리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낮출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시고, 우리가 스스로를 높일 때 우리를 낮추실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십시오. 그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빌4:3에서 교회 차원에서의 권고를 보겠습니다.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3).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는 빌립보 교회의 장로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빌립보 교회의 리더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자매들은 “복음에 함께 힘쓰던 자들”로서 그녀들을 도와주라는 말입니다. “함께 힘쓰던”이라는 말은 “함께 고생한”이라는 말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쉽게 복음을 전할 수 있던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실라와 함께 감옥에 갇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 학자들은 이 유오디아와 순두개가 사도 바울이 처음으로 만났던 강가의 여인들 중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복음에 힘쓰던 자들이고, 사도 바울과 함께 동역하던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사도 바울과 복음을 전하던 한 팀이었던 것입니다.

교회의 장로에게 두 자매를 도와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하나되는 모습니다. 개개인 스스로는 주님의 마음을 따라서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하나 되게 하는데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됨을 깨는 사람이 아니라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성도의 넘어짐이 기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한 팀,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성도들의 다툼이 재미있는 이야기꺼리가 되지는 않습니까?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같다고 했습니다(잠 18:8).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별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안에 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 겸손한 마음으로 화평케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대적 사단은 우리가 하나 되지 못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다투고 자랑하고 불평하고 갈라서기를 바랍니다. 힘이 약해져서 주 안에 굳게 서지 못하고 복음에 힘쓰는 자들이 되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대장’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적’이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장은 우리가 믿음의 군사, 복음의 군사들로서 하나 되어 굳게 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군사입니까? 겸손한 마음으로, 화평케 하는 자로 교회의 하나됨을 지키고 계십니까? 우리가 주님의 겸손을 닮고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서, 교회가 하나 되어 하나님의 일에 힘쓰기를 원합니다.

빌립보서4장 1-7절 말씀 묵상

빌립보서4장 1-7절 말씀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4장 1-7절

빌립보서4장 1-7절 말씀 묵상

새번역,,,그러므로 사랑하고 사모하는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나의 기쁨이요 나의 면류관인 사랑하는 여러분, 이와 같이 주님 안에 굳건히 서 계십시오.<1절>나는 유오디아에게 권면하고, 순두게에게도 권면합니다. 주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2절>그렇습니다. 나의 진정한 동지여, 그대에게도 부탁합니다. 이 여인들을 도와 주십시오. 이 여인들은 글레멘드와 그 밖의 나의 동역자들과 더불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나와 함께 애쓴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3절>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사랑하고 그리워합니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주안에 서라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주안에 서 있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 주님의 사랑 주님의 십자가안에 서서 있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권하노니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여성지도자인 두 사람이 서로 반목하면 교회는 흔들립니다. 모든 공동체는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어야 그 공동체가 견고하게 서게 됩니다.

바울은 편지를 받는 그에게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멘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함께 참여했던 저 여인들을 돕고 글레멘드와 그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고 합니다. 함께 복음에 참여하고 복음을 위해 함께 멍에를 멘 모든 사람들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흔들릴 수 있으나 서로 돕고 서로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바울은 두 여인이 분열을 일으켰으나 책망하지 않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그들을 도와서 교회의 갈등을 치유하라는 것입니다. 동역자들은 서로의 허물을 덮어 주며 하나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새번역,,,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4절>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5절>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6절>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7절>

바울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며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합니다. 몇번이나 강조하면서 주인에 있을 때에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게 친절하게 돕고 위로하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기쁨이 더욱 충만할 것입니다. 또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염려가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염려하는것은 미약한 나를 바라보고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가 염려에 빠지 않기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면서 구할 것을 아뢰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합니다. 감사와 기도가 염려를 이기는 비결입니다. 염려가 사라지고 마음과 생각에 평안이 올때까지 감사하고 기도하며 구할 것을 구해야 합니다. 염려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불신앙에서 옵니다. 회개하고 감사하고 원하는 것을 아뢰면서 평안이 찾아올 때까지 기도하는 것이 우리는 주안에서의 기쁨을 잃지 않는 비결입니다.

승리하시기를 기도하며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장별설교] 빌립보서 4장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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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설교] 빌립보서 4장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1. 빌립보서 4장 본문

빌립보서 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빌립보서 4: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빌립보서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립보서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빌립보서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립보서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립보서 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빌립보서 4: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빌립보서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립보서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서 4: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빌립보서 4: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빌립보서 4: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빌립보서 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빌립보서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립보서 4: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빌립보서 4: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빌립보서 4: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빌립보서 4: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2. 빌립본서 4장 강해

빌립보서 4장은 로마서의 마지막 장인 16장과 적지 않게 닮아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로마서보다 훨씬 친밀하고 애정이 들어가 있습니다. 바울은 편지를 마치면서 몇 가지를 조언하고 안부 인사를 전합니다. 3장은 아래와 같이 구분할 수 있습니다.

2-9절 서로 화목하라

10-20절 빌립보교회를 향한 감사

21-23절 마지막 인사

1. 2-9절 서로 화목하라

바울은 편지를 마치면서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화목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권하다’라는 ‘파라칼레오(παρακαλέω)’는 ‘간청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같은 마음을 품으라’라는 단어는 ‘τὸ αὐτὸ φρονέω’인데 이 단어는 ‘생각하다’ ‘보살피다’라는 의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일한 마태복음 16:23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사도행전 28:22에서는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로 번역되었습니다.

행 28: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만약 단어의 의미를 그런 의도를 사용했다면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관점의 차이로 인해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랄드 호돈은 이렇게 말합니다.

‘같은 마음을 품으라(τὸ αὐτὸ φρονέω)’ 라는 구절이 지니고 있는 풍부한 의미는 ‘합의하다’와 같은 단순한 번역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공통된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는 개념뿐만 아니라 서로를 향한 동일한 감정과 태도, 즉 인생의 총체적인 일치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문제는 서로 교회를 향한 열심으로 인해 일어난 의견 충돌로 보입니다. 자신만의 신앙관에 의해 옳다고 주장함으로 인해 서로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일어난 충돌인 것입니다. 바울은 비록 이들이 서로 충돌을 일으킨다해도 그들을 존중하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그 여인들 역시 생명책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비록 의견이 충돌이 있다할지라도 주의 일에 동역하며, 주님의 피로 사신 주의 백성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서로 좋은 뜻으로 주의 일을 시작하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원수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4-9절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권면으로 보입니다. 4-5절을 보십시오. 4절에서는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조언하고, 5절에서는 ‘너희의 관용을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충고합니다. 관용은 너그러운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덧붙여 ‘주께서 가까우시니라’고 경고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항상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선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성도는 날마다 ‘주 앞에서(Coram Deo)’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해야하고,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날마다 주 앞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울은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우리 스스로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을 믿는 믿음에 근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최선으로 이끄실 것을 믿을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주님을 신뢰하지 않음으로 일어나는 영적 어두움입니다.

우리는 4-9절에서 프랭크 틸만의 분석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랭크 틸만은 이 부분에서 바울의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수사적으로 정교한 조언’이 네 가지 차원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합니다. [아래의 네 가지 요약은 필자가 자의적 요약 정리한 것이다.]

첫째, 주님이 가까이 오시고 있다.

둘째, 하나님은 주권적이고 긍휼이 많으시다.

셋째, 세상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

넷째, 마지막으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복음에서의 하나님의 계시를 따름으로써 그에게 온전히 순종할 수 있다. 앞의 두 원리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5-7절을 지배한다. 뒤에 두 원리도 역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고, 8-9절에서 나타난다.

결국 성도는 날마다 종말론적 삶으로 일관되어야 함을 말해 줍니다. 바울은 기도를 권면한 다음 ‘생각하라’라고 충고합니다.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는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생각하라’ 라는 헬라어 ‘로기조마이(λογίζομαι)’는 ‘로고스’에서 왔으며,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라는 뜻입니다.

4-9절에서 다섯 개의 동사가 사용되어 성도들을 권면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4절에서 ‘기뻐하라’, 5절에서는 ‘관용을 베풀어라’, 6절에서는 ‘기도하라’, 8절에서 ‘생각하라’, 마지막 9절에서 ‘행하라’라고 권면합니다. 9절의 ‘행하라’는 앞 선 네 동사를 정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어쩌면 9절의 ‘행하라’라는 동사는 그리스도인의 앎과 믿음은 결국 삶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삶으로 실천할 때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9절 하)고 위로합니다.

10-20절 빌립보교회를 향한 감사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애정이 깊다는 것은 10-20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아마 생각만 해도 기쁜 것 같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10절을 의역하면, ‘다시 당신들을 생각하니 주님 안에서 저의 마음이 너무나 기쁩니다.’가 될 것입니다. 아마 전에 하고 싶었지만 기회를 얻지 못해 이제 편지하는 김에 말하려 합니다. 그것은 2차 전도여행 때 마케도냐에 도착해 어려움을 당할 때 빌립보교회가 바울을 적극적으로 도운 것 같습니다.(15절) 바울은 이일을 기억했고, 그들의 도움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마음은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16절에 보니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도 헌금을 보내와 바울을 두 번이나 도왔습니다.(16절)

[빌립보서 4:15-16]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이러한 도움에 감사하면서 칭찬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에게는 모든 적이 풍부하기 때문에 이미 풍족하다고 말합니다.(18절) 바울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들의 도움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18절) 또한 하나님께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쓸 것을 채우실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부분에서 이것을 언급하고 있지만, 에베소서 5:2절에서 비슷한 내용을 발견합니다.

엡 5:2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이 구절은 대속제물로서의 예수님의 사역을 언급하고 있지만, 성도들의 순종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의 행함은 곧 그리스도의 제물로서 드려짐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로 돌아가 봅시다. 이곳에서 역시 비슷한 내용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

[NA28] Παρακαλ ῶ ο ὖ ν ὑ μ ᾶ ς , ἀ δελφο ί, δι ὰ τ ῶ ν ο ἰ κτιρμ ῶ ν το ῦ θεο ῦ παραστ ῆ σαι τ ὰ σ ώ ματα ὑ μ ῶ ν θυσ ί αν ζ ῶ σαν ἁ γ ί αν ε ὐά ρεστον τ ῷ θε ῷ, τ ὴ ν λογικ ὴ ν λατρε ί αν ὑ μ ῶ ν ·

그리스도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이며, 제물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4장은 다시 9절로 돌아가 ‘행하라’는 권면에 묶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답게 살기 위해서는 성경을 통해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해야 합니다.

21-23절 마지막 인사

이제 바울은 마지막으로 인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성도에게’ 문안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서로를 돌아보고 사랑해야 합니다. 문안하다는 말은 서로 마음을 나누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각각’이란 단어도 생각해 봅시다. ‘각각’은 우리나라 말로는 ‘따로따로’란 의미이지만 헬라어 성경은 ‘모두’란 뜻의 ‘판타(πάντα)’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NIV 성경에는 ‘all God’s people’로 번역했습니다. 즉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는 뜻이 됩니다.

“바울이 서신의 서두에서 ‘빌립보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 모든 성도들’로 그들을 호칭했을 때에 회중의 연합을 강조했던 것처럼, 여기 서신의 결론부에서 그는 회중의 각 지체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가치가 있음을 다시금 강조한다.”[프랭크 틸만 『NIV 빌립보서』, 283]

바울의 이 권면 속에는 서로 마음이 맞거나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서로교제하고 좋아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22절에서 바울은 이것을 염두에 둔 것처럼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황제의 집 사람들에게도 전파된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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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4장 강해성경말씀]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빌 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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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빌립보서 4장 강해 성경말씀 중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도 나의 힘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 신앙을 놓고 싶을 때 주님이 내 옆에 있다는 것을 믿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제목: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빌 4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빌립보서 4:1-23

요절: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주제: 자족하는 믿음으로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 행하자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빌립보서 4장을 강해합니다. 빌립보서를 기쁨의 서신이라고 하는데 마지막 4장에서는 기쁨의 열매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주님 안에서 세 가지 권면(빌 4:1-3)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님 안에 서라.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1절 ‘그러므로’라는 말은, 앞장 끝에 언급한 대로,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와 파멸로부터 완전히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실 것이기 때문에라는 말입니다. 사도는 성도들을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 my brethren dearly beloved and longed for, my joy and crown”이라고 부릅니다. 목회자가 자기의 성도들을 이렇게 부를 수 있음은 축복입니다. 이미 살핀바 대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편지할 때도 성도들을 소중하게 표현합니다. 살전 2: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살전 3: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목회자는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과 더불어 성도들의 사랑과 기도와 후원으로 살아갑니다. 성도들은 목회자의 인정과 목양으로 천국 순례를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사도 바울 전도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인들은 “나의 사랑, 나의 사모하는 자들, 나의 기쁨, 나의 면류관”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세 가지 권면을 합니다. 첫째는 “주님 안에 서라”고 권면합니다. ‘서라’는 원어(스테케테 στήκετε stekete)는 ‘굳게 서라 stand firm’는 뜻입니다. 복음의 진리와 교훈 안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주님 안에(in the Lord, ἐν Κυρίῳ)’ 곧 주님의 진리의 지식 안에,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 주님을 사랑함에, 주님의 교훈을 순종함에, 주님을 소망함에, 주님께 대한 충성에, 주님의 진리를 위한 선한 싸움을 싸움에 굳게 서야 합니다. 두 번째 권면은 2절에 있는 대로 주님 안에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유오디아(Euodias)와 순두게(Syntyche)가 어떤 인물인지 우리가 알 수 없으나, “주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be of the same mind in the Lord.”는 권면 속에 보면, 그 두 사람은 서로 생각과 마음이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교회지만, 그 교회 안에도 서로 생각이 맞지 않은 자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미 빌립보 2:2-3에서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부탁합니다. 교회 안에 다투는 성도들에게 필요한 교훈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주님의 진리 안에서, 성경적 교훈에 일치하여, 같은 생각, 같은 마음을 가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세 번째 권면은 3절에 있는 대로 복음의 동역자를 도우라고 합니다.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멍에를 같이한 자 yokefellow’라는 뜻을 가진 ‘수주고’일 수 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는 빌립보교회를 대표할 만한 감독이나 지도자 중 하나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복음 사역에 함께 수고한 자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 빌립보교회에는 바울과 함께 복음에 힘썼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이 전도 부인들은 복음의 일에 전념하였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또 글레멘드(Clement)와 그 외의 그의 동역자들(fellowlabourers)을 언급합니다. 이들의 이름이 생명책(the book of life)에 있다고 증거 합니다.

2. 주님 안에서의 특권들(빌 4:4-7)

4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님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4은 빌립보서의 주제와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있을 때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Rejoice evermore”에서 설명한 대로 그냥 우리가 기뻐해지지 않습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 항상 기뻐할 수 있음은 우리 주님은 기쁨의 옹달샘이시기 때문입니다(빌 3:1). 성령님의 열매는 기쁨(희락)이요(갈 5:22), 주님의 영이 함께하시면 언제나 어디서나 기쁩니다. 한국말로 기쁨이 ‘기를 뿜는다’는 말의 요약이라고 합니다. 임마누엘은 좋은 기분이 뿜어 나오는 것입니다. 찬송가 191장 “1절.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3절. 나와 동행하시고 모든 염려 아시니 나는 숲의 새와 같이 기쁘다. 내가 기쁜 맘으로 주의 뜻을 행함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후렴>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주님과 동행하면 환란 중에라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롬 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Rejoicing in hope)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옥중에 있는 사도는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기뻐하라”는 말을 재차 강조합니다(and again I say Rejoice). 1984년 2월에 한달 동안 싱가폴에 가서 제3세계 선교사 훈련과정인 “학개 연구소”(Haggai Institute, Atlanta, GA에서 활동하시는 유대계 목사님 John Haggai가 설립)에서 16개국에서 오신 42명 선교사들과 시간마다 즐겁게 찬양한 곡이 바로 빌 4:4의 말씀이었습니다.

5절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님께서 가까우시니라.” ‘관용’이라는 원어(에피에이케스 ἐπιεικὲς epieikes)는 ‘온유함, 친절함, 너그러움 등’의 뜻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모든 사람들에게 온유하고 친절하고 너그럽게 대할 수 있습니까? 혹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다 할지라도, 어떻게 자기와 친분 관계가 없는 모든 자들에게, 인격적으로 부족한 자들에게, 심지어 자기를 미워하고 비난하는 자들에게 그렇게 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하신다. “너희 온유함과 친절함과 너그러움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장차 온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주 예수님께서 가까이 와 계십니다. 주님의 재림이 심히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판단을 그분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직 모든 사람들에게 온유하고 친절하고 너그럽게 대하면 됩니다.

6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Be careful for nothing,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but in every thing by prayer and supplication with thanksgiving 하나님께 아뢰라”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염려하고 걱정할 일들이 많습니다. 학생은 학교 성적이나 진학의 염려, 친구들에게 따돌림 받거나 구타를 당할 염려, 청년은 취직과 결혼의 염려, 장년은 직장, 사업, 경제 문제와 자녀들을 인한 염려, 또 건강의 염려, 노년은 자녀들의 평안, 자신의 건강, 노후의 경제적 대책, 외로움 등의 염려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염려하지 말라, 두려워 말라.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실상, 우리가 염려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염려는 우리의 기쁨과 평안과 활기를 빼앗아 갈 뿐입니다. 내과적인 병이 되는 스트레스는 염려 때문에 생깁니다. 잠 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봅시다. 주님께 모든 염려와 걱정, 두려움, 무거운 짐을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맡기면 7절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할렐루야!

시 56: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Casting all your care upon him; for he careth for you.”

3. 완전을 실행하라(빌 4:8-9)

8 마지막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8절 ‘종말로’는 빌 3:1처럼 ‘마지막으로, 끝으로 finally’라고 읽는 것이 좋습니다. 개역 성경처럼 ‘종말로’ 번역하면 종말 윤리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8절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목표를 증거 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영적, 도덕적 완전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덕이나 칭찬이 있다면(if there be any praise) 그것이 어떤 것이어야 할 것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추구해야 할 바들이 무엇인가는 분명합니다. 로마서 8:5-6은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에 속한 자들이 아니고 성령님에 속한 자들이므로 마땅히 성령님께서 주시는 덕들, 즉 성령님의 생각을 해야 합니다. 다음 여섯 가지로 열거합니다.

첫째로, 그는 ‘무엇에든지 참되며 whatsoever things are true’입니다. 우리는 범사에 참되고 진실한 삶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위선과 거짓과 속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매우 미워하시는 악이며 결국 들통납니다. 그것은 마귀의 속성입니다. 우리가 비록 타고난 재능이 부족하고 자란 가정적, 사회적 환경이 나빠서 유능한 인물이 못 된다 할지라도 참되고 진실한 인물은 되어야 합니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둘째로, 바울은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whatsoever things are honest’라고 합니다. ‘경건하다’라고 번역된 원어(셈노스 σεμνός semnos)는 디모데전서 3:8, 11에서 ‘단정하다, 존경할 만하다, 품위 있다’는 말입니다. 성도들은 범사에 존경받을 단정한 태도로 무엇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것은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모범이 됨을 말합니다.

셋째로, 바울은 ‘무엇에든지 옳으며 whatsoever things are just’라고 합니다. 옳은 삶, 의로운 삶,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불의하고 불법, 위법하고 부당한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항상 정정당당하게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넷째로, 바울은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whatsoever things are pure’라고 말한다. ‘정결하다’는 원어(하그노스 ἁγνός hagnos)는 ‘순결하다, 거룩하다’입니다. 죄는 더럽습니다. 우리는 불의한 일을 멀리하고 부정당한 욕심, 사사로운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거듭난 성도는 순수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해야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마 5:8).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면 주님을 만나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물질 문제나 이성 문제나 명예와 권리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고 흠 없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윗은 참회하면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 51:10) 이 기도가 내 기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다섯째로,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whatsoever things are lovely,”입니다. 소년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셨습니다(눅 2:52, 삼상 2:26). 먼저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아야 하며, 이웃으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게 행동해야 합니다. 나의 언행과 마음씨가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는지 자기 관리를 합시다. 언행일치가 되어야 하며, 속과 겉이 같아야 합니다.

여섯째로,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whatsoever things are of good report”입니다. 칭찬을 받는 인격의 아름다움이 있어야 합니다. 습 3: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진실함, 존경받을 만함, 의로움, 순결함, 사랑할 만함, 칭찬할 만함 등은 인격의 완전함을 잘 드러냅니다.

9절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원문에서 ‘내게’라는 말은 ‘내 안에서’라는 뜻이며 ‘본 바’라는 말을 수식합니다. 9절을 다시 정확하게 번역하면, “너희는 배우고 받고 듣고 또한 내 안에서 본 그것들을 행하라 Those things, which ye have both learned, and received, and heard, and seen in me, do”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배우고 받고 들은 것들이란 앞에서 언급한 여섯 가지 도덕적 완전함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이런 도덕적 완전함의 한 모범(good example)을 바울의 신앙생활 속에서 보았습니다. 바울은 범사에 모범적 삶을 살았습니다. 비록 그가 엄격한 의미에서 완전한 모범은 아니었을지라도, 그는 비교적 흠이 없는 인격자로서 성도들 앞에서 행하였습니다. 지난 주일에 읽은 대로 빌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고 합니다(고전 4:16, 11:1).

4. 자족하기를 배움(빌 4:10-14)

10 내가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0절에서 바울의 전도 사역 초기에, 빌립보 교인들은 그를 물질적으로 후원하였으나 얼마 동안 그 일이 중단되었다가 그들이 다시 바울에게 물질적 도움을 보내왔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물질적 도움은 그들이 그의 복음 사역과 그 고난에 동참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빌 4:14). 또 그것은 그들의 믿음과 사랑의 진실함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고후 8:8; 9:13).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득의 10분의 1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해 드려 성전 봉사의 일에 전념하는 레위인들의 생활비로 쓰게 하셨습니다(민 18:21; 신 12:19).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마 10:42).

11-12절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자족하기(therewith to be content)를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의 자족하는 생활신조를 간증합니다. 그것은 아마 그들의 물질적 후원에 대한 바울의 기쁨이 그가 단지 물질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님을 말합니다. 그는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합니다. 성도들이 전도자들을 생각하고 물질로 돕는 것이 선한 일이지만, 전도자들은 물질에 속박을 받지 않고 물질을 초월하여 자족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고 하십니다(마 10:9-10). 복음 전파자들이 복음으로 사는 것이 합당하지만, 복음에 장애가 없게 하기 위해 자신은 그 권리를 쓰지 않았다고 증거 하였습니다(고전 9:12). 자족하는 생활 즉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도 만족하는 삶은 전도자들뿐만 아니라, 또한 모든 성도들이 배워야 할 생활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합니다(딤전 6:7-8). 자족하는 생활은 중세의 수도사들의 신조처럼 가난하게 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자족하는 삶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는 배부를 줄도 알고 배고플 줄도 알며,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궁핍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확신하고 소망하는 성도들은 이 세상의 빈부귀천의 삶에 대해 만족하거나 불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아는 자마다 탐욕도 염려도 버리고 언제나 어떤 형편에서나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자족하며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13-14절 내게 능력 주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개역, 개역개정, 모든 현대역 성경에 보면 “그리스도” 대신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는 자가 선생, 영웅, 위인, 성자 심지어 자신도 될 수 있습니다. 뉴에이지 사상처럼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성경 원문(네슬판이 아니라 개혁자들의 성경)에 보면 분명히 “그리스도”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13절 말씀을 다 같이 따라 외웁시다. “내가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께는 능치 못한 일이 없습니다(창 18:14). 여호와의 손은 짧아지지 않으십니다(민 11:23). 그분은 지금도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시며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해 능력을 베푸십니다(대하 16:9). 우리는 그 호흡이 코에 있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사 2:22). 돈도 환난 날에는 더러운 것같이 여겨질 것입니다(겔 7:19). 사람은 피곤하고 무능하기도 하지만,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며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려가도 곤비치 않을 것입니다(사 40:30-31).

유진 피더슨(Eugene Hoiland Peterson, 1932~2018)의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Leap Over a Wall: Earthy Spirituality for Everyday Christians (HarperCollins Canada/Religious, 1997)에서 삼하 22편을 묵상하면서 시 18편을 가리켜 “이 시편만큼 다윗의 생명력이 약동하는 기도문도 없다”고 하면서 삼하 22:30절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 넘나이다”라는 구절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로서 다윗의 묘비명으로 삼을 수 있는 구절이다”고 합니다. 그러니 다윗의 생애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담을 뛰어넘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한 운동화가 약 5억에 경매되어 팔린 적이 있습니다. 스포츠에 ‘기록이란 깨어지려고 있는 것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담에 가로막혀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그 담을 훌쩍 뛰어넘는 것을 볼 때 순간! ‘나도 저 담을 넘을 수 있구나’ 하는 새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운동화의 주인공은 <로저 베니스터> 육상선수였답니다. 1954년 5월 6일 베니스터라는 의대생이 4분벽을 깰 때가지는 1마일(mile)을 달리는데 4분 안에 달린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만약 인간이 1마일을 4분 안에 달린다면 폐와 심장이 파열하고 인대가 끊어진다는 것이 당시의 통념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니스터>가 마의 4분벽을 깨뜨린 이후에 한 달 만에 무려 10명의 선수가 4분벽을 넘어 섰고, 2년 후에는 무려 200명 이상 선수가 4분벽을 넘어 섰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고등학교 선수도 이 4분벽을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결코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마음의 장벽을 배니스터라는 한 젊은이가 허물어 버리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따라서 허물었던 것입니다. 한 젊은이의 통념을 깬 도전이 사람들의 마음을 `할 수 없어, 안 돼`에서 `할 수 있어, 돼!`로 움직이게 했고 그만큼 세상을 바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다윗은 바로 우리에게 ‘담을 뛰어넘는 신앙의 삶의 본’을 보인 인물입니다. 다윗이야 말로 죽음과 불가능의 장벽이 겹겹이 둘러싸였던 삶이었습니다. 그는 사울의 벽도 넘었고, 블레셋 아말렉 모압 압몬 가나안 족속의 벽도 넘었고, 뿐만 아니라 집안으로도 압살롬의 반란, 신복의 반역 그리고 개인적 잘못으로 밧세바와 불륜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죄의 보응(4개의 참회 시를 썼습니다. 시 51편) 이루 말할 수 없는 벽을 넘었습니다. 다윗은 생애 많은 담을 훌쩍 넘어 오늘 우리에게 신앙의 모델로 떠오른 인물이 된 것입니다. 다윗이 어떻게 그 담을 넘을 수 있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담을 넘게 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어떤 이에게 담을 뛰어넘는 은혜를 주시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담을 뛰어넘는 믿음을 주셔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5. 향기로운 제물(빌 4:15-23)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21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 집 사람 중 몇이니라.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15-16절 ‘복음의 시초에’라는 말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던 초기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바울은 AD 47년경 시리아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되었고(행 13:1-3) AD 50년경 제2차 전도 여행 때 마게도냐 지방으로 건너가 그 지방의 첫 성인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행 16:12).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하였다’는 말은 ‘주고받는 일로 나와 교제하였다’는 뜻인데, 바울이 마게도냐를 떠나 다른 곳들에서 복음을 전파했을 때 빌립보 교인들은 전도 후원금으로 바울을 도왔음을 말합니다. 그때 바울을 도왔던 교회는 그 교회뿐이었습니다. 그가 그들을 떠나 이웃 도시 데살로니가로 가서 전도했을 때(행 17장)부터 그를 돕기 시작했었습니다. ‘한 번 두 번’이라는 말은 ‘몇 번’ 혹은 ‘여러 번’이라는 뜻입니다. 헌금은 전도와 구제를 위해 하나님께 바치는 물질인데, 여기서 말하는 전도는 국내외의 전도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지교회의 목회 활동을 포함합니다.

17-20절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는 헌금이 성도의 열매임을 증거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좋은 행실이 있는 성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구원받은 성도는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헌금은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향기로운 냄새’라는 표현은 구약성경 레위기 처음 부분들에 여러 번 나오는 표현입니다(레 1:9, 13, 17; 2:2, 9; 3:5, 16). 하나님께서는 번제와 소제[곡물제사]와 화목제에서 제단에 태워지는 제물의 냄새를 ‘향기로운 냄새’라고 합니다. 바울을 위한 물질적 후원은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향기로운 냄새요 받으실 만한 제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헌금하는 자들에게 모든 필요한 것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며 부요하시고 풍성하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성도들의 생활의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21-23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말미암아 단번에 거룩함을 얻었고(히 10:10)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고 형제자매가 되었습니다(엡 2:19; 마 12:50). 사도 바울은 빌립보의 성도들이 서로 문안하기를 원하며 또 자기와 함께 있는 성도들의 문안도 그들에게 알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주님 안에서 기뻐합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감사함으로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구합시다. 그리하면 주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인격을 추구하며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아멘.

[오늘의 기도]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주님, 새해에 더욱 참되며,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하며, 사랑받으며, 칭찬을 받으며 자족하는 믿음을 가지게 하옵소서. 다윗처럼 담을 넘는 믿음을 주옵시고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매사 행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독교 구원론 성경공부] 한 눈으로 보는 구원의 종류 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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